담작가2021-09-08 13:33:08
가면을 벗어야 보이는 것들
넷플릭스 [슈렉] 리뷰
슈렉
줄거리
자신만의 늪에서 아늑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초록 오거 슈렉.
평소처럼 느긋한 저녁을 즐기려는데, 동화 속 주인공들이 갑자기 슈렉의 늪에 쳐들어온다.
알고 보니 듈락의 통치자, 파콰드 영주가 그들을 모조리 쫓아낸 것.
완전 열받은 슈렉은 파콰드를 찾아가 늪을 내놓으라 따지고, 파콰드는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가면을 벗어야 보이는 것들
숨은 의미 찾기
‘오거’라는 단어는 슈렉 전과 후로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영화 개봉 시기가 2001년인데, 그 당시에 ‘괴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도 모자라 영웅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실로 과감한 시도였다.
“이해가 안 돼, 슈렉. 왜 오거처럼 안 했어?”
“넌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 알려진 게 다가 아냐. 어디 보자, 오거는 양파와 같지.”
슈렉은 탑 꼭대기에서 피오나를 구출하고 계단을 뛰어내려오면서 서사시 따위는 사치라고 말한다. 그런 슈렉이지만, 왜 오거처럼 굴지 않느냐는 동키에게만은 ‘괴물은 양파다’라며 지리는 비유를 한다. 깊은 문학적 비유 따위를 알 리 없는 동키는 ‘냄새가 고약해?’라고 묻지만.
슈렉은 양파처럼 겉으로는 맵고 눈물 나게 하고 냄새도 나지만, 속을 까고 까고 까다 보면 정의롭고 여리고 순수한 면도 있다. 양파의 생김새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으로 요상하다. 반으로 잘라내지 않는 한, 둥근 막을 완전히 벗겨내야만 그 속의 다른 겹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양파와 같은 슈렉의 매력, 참모습을 보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슈렉' 스틸컷)
“그런데 모두가 양파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괴물과 양파는 똑같이 겹이 있다는 슈렉에게 동키는 깐족거리며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을 덧붙인다. 물론 생양파도 물에 한 번 헹궈서 연어랑 홀스래디쉬 소스에 찍어 먹거나, 라이스페이퍼에 각종 야채와 넣어 월남쌈으로 먹으면 꿀맛이긴 하다. 하지만 생양파를 우적우적 씹어먹을 만큼 양파를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슈렉이 말한 ‘괴물의 겹’은 결코 파르페나 케이크와 같은 달콤한 음식에 비유될 수 없는 것이다.
양파는 속을 까보지 않아도 누구나 좋아하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들과는 다르니까.
“케이크는 다들 좋아해! 게다가 층으로 되어있지.”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슈렉' 스틸컷)
슈렉이 양파라면 피오나는 케이크나 파르페 쯤일 것이다.
구태여 속을 까보지 않아도 모두가 달콤한 향기와 황홀한 생김새에 마음을 홀딱 뺏기고 마니까. 양파가 제대로 속을 까보지도 않고 판단해서 문제라면 케이크는 속에 얼마나 많은 겹이 있는지 아무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 속에 초코시트가 들었는지, 바닐라 시트가 들었는지, 딸기가 들었는지, 생크림이 들었는지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위험에 처한 공주를 구해서 결혼하고 왕이 되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남성형 신분 상승’ 이야기다.
피오나를 권력 취득의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점에서 파콰드나 성에서 불타 죽은 이름 모를 기사들은 전부 동일 인물이다. 동화 속에서 여성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것은, 남성이 주인공일 때든 여성이 주인공일 때든 마찬가지였다.
“밤과 낮에 따라 모습이 달라질지어다.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로 사랑의 참모습을 따를 때까지.”
그런 점에서 슈렉 속 마녀의 저주는 다른 마녀들의 저주와는 달리 참으로 특이하다.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가 ‘저주를 풀어준다’고는 하지 않는다. 피오나의 겹은 파르페나 케이크와 같다 했던가. 낮에 비치는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은 모두가 독점하려 달려드는 케이크의 겉모습이지만, 그 속에 들은 진정한 모습은 괴물이었다.
내면이 괴물이라고 해서 그것이 추하다거나, 못났다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울퉁불퉁 못난 괴물이라는 생김새는 피오나 내면의 아픔을 형상화 한 것이다. 공주라고 항상 아름답고 행복하고 즐거운 것은 아니다. 성에 갇혀 홀로 살면서 느낀 외로움과 슬픔, 슈렉은 그 상처마저도 피오나의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한 마디로, 슈렉은 케이크 속을 들여다본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슈렉이 피오나를 구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를 구해준 셈이다.
슈렉과 피오나는 아주 두꺼운 가면을 쓴 채로 서로를 만났다. 슈렉은 까칠하고 투덜거리면서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숨겼다. 피오나는 '공주다운' 외모와 지위로 자신을 포장하며 아픔을 숨겼다. 가면은 자신을 가리는데에는 꽤나 효과적이지만, 상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면이 너무 두터우면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면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게 자기 가면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했던가.
때론 그 가면을 벗어던져야만 진실되게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슈렉' 스틸컷)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페르소나다.
슈렉이라는 영화를 두고 대부분은 괴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도전장이라고만 해석한다. 하지만 슈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 슈렉과 같지는 않는지 묻는다. 우리 내면에 겹겹이 쌓인 아픔과 상처들이 만들어낸 가면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라고 말한다.
우리는 슈렉처럼 깊숙한 늪지에 스스로를 가두고는,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며 거칠고 위협적인 가면을 쓴다. 사실 그 가면을 쓰는 이유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닌가? 물론 이 험난한 세상에서 뒹굴기 위해서는 맨 얼굴을 가리는 게 필수라고들 한다. 어쩔 수 없다고. 그렇다면 적어도 남들이 나의 가면만 보고 나를 판단한다고 말하지는 말자. 나 역시 남들을 그렇게 바라보았을 게 뻔하니까.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일단 나부터 가면을 벗고 마음을 열어보는 게 우선 아닐까.
어른에게 더 필요한 동화
감상평
어릴 적 엄마는 나의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수많은 애니메이션 DVD를 구매해서 끼니마다 틀어주었다. 정말 영어공부가 되었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당연히 효과 없다. 아,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다. 이번에 영화를 보니 나도 모르게 대사를 줄줄 읊고 있더라. 아주 허튼짓을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1시간 30분짜리 영화의 대사를 거진 다 외울 정도라면 얼마나 돌려봤을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아리라 믿는다. DVD 케이스 안에 꽂힌 무수히 많은 영화 중에서도 슈렉은 늘 새로운 영화였다. 나 역시 그 영화를 볼 때는 어린아이였으므로, 사회가 규범처럼 내밀던 진부한 공주와 왕자 이야기가 정답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어린아이의 생각을 일깨워준, 그야말로 인생 영화라 할 수 있겠다.
나이를 먹고 슈렉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어릴 땐 저녁밥 먹을 때마다 틀어보던 영화였다지만, 이제는 나도 모르게 세상과 벽을 쌓고 싶을 때,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보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슈렉'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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