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1-10-29 16:35:35
서부극의 새로운 템포
영화 〈퍼스트 카우〉 리뷰

황량한 벌판, 결투, 피스톨, 말, 선술집 등등. 미국 개척시대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 장르 서부극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비장한 분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사막 위에서 말과 권총에만 의지한 채 삶을 이어가는 서부극 주인공들의 모습은 ‘내던져진 삶’이라는 인간의 고독한 실존과 닮은 데가 있다. 대부분의 서부극이 쓸쓸한 비장함을 뿜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결의 서부극이 있다. 영화 〈퍼스트 카우〉는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쫓기는 중국인 남성 킹 루를 유대인인 쿠키가 구해 주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몇 년 후 정착촌에서 만나고, 돈을 벌 방법을 궁리하다가 마을의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팔기로 한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줄거리 임에도 왜 〈퍼스트 카우〉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았을까? 이 영화가 기존의 서부극과 다른 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짚어 보자.


우선, 두 주인공이 너무 ‘귀엽다.’ 귀엽다는 말처럼 서부극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두 주인공 쿠키와 킹 루는 너무 귀엽다. 두 성인 남성이 우악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세심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우정을 쌓아 가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몰래 우유를 짜는 와중에 젖소에게까지 다정하게 말 거는 쿠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서부극의 두 남성 주인공에게서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고 새로웠다(물론, 서부극이 아니라도 영화에서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가진 남성 주인공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는 〈퍼스트 카우〉의 주제다. 대부분의 서부극은 개인의 강함과 탁월함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여기서 우정의 자리는 없거나, 부차적이다. 주인공은 타인과 관계 맺는 대신 자기 내면에 침잠해 삶의 무게를 외로이 견딘다. 그러나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로 시작하는 〈퍼스트 카우〉는 인간이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온기의 공간으로 우정을 그려 낸다. 고뇌하는 얼굴 대신 서로에게 기댄 두 남자의 표정이 영화의 전면에 등장하는 이유다. 〈퍼스트 카우〉는 혼자 고뇌하며 답을 찾는 서부극의 유산 위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자고 말하는 용기 있는 영화다.

〈퍼스트 카우〉가 서부극의 전통을 비틀기 위해 사용한 건 템포의 변주다. 영화는 지독할 정도로 느리다. 빠르고 빈틈없는 장면의 연속으로 전개되는 영화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지루함의 순간을 견뎌 내고 쿠키와 킹 루의 미묘한 표정을 마주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부터 내내 행복한 즐거움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집에 놀러 온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장작을 패는 킹 루를 보며,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바닥을 쓸고 나뭇가지로 친구의 집을 장식하는 쿠키의 표정은 〈퍼스트 카우〉가 지독히 느렸기에 포착할 수 있는 장면이다. 즉 영화는 느린 템포로 대상을 천천히 비춤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두 남자가 우정을 만들어 가는 긴 호흡에 동참케 한다. 〈퍼스트 카우〉의 느림은 섬세한 배려가 깃든 머뭇거림,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 주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해롭지 않은 남성성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질문에 회의적인 사람이라면 〈퍼스트 카우〉를 꼭 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저 해로운 남성성이 과잉 노출되어 필요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상에 살고 있을 뿐,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쿠키와 킹 루가 각각 유대인과 중국인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희망은 ‘중심’에서 떨어진 저 먼 곳으로부터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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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제철 시詩시詩한 영화 8선
가을만큼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요?
제철을 맞아 시詩시詩한 영화 8선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시인 윤동주와 친우 송몽규의 이야기를 담은 <동주>
- 칠레의 전설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전기 영화 <네루다>
-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사랑을 다룬 <브라이트 스타>
- 첫 시집을 준비하는 시인 진아의 이야기 <한강에게>
- 생전 단 7편의 시를 출간했지만, 사후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에밀리 디킨슨의 전기 영화 <조용한 열정>
- 재능 없는 마흔 살의 시인,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 파도처럼 휘청이는 소년 세 사람을 다룬 <시인의 사랑>
- 故 윤정희 배우의 유작이자 난생처음 시를 쓰게 된 ‘미자’의 이야기 <시>
- 버스를 운전하며 틈틈이 시를 쓰는 패터슨의 이야기 <패터슨>
영화 속 ‘시’가 여러분의 마음에 안착하기를 바래봅니다.
혹, 여러분만이 간직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 댓글로 나누어주세요 !
줄거리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진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 길에 오른 두 사람. 일본으로 건너간 뒤 몽규는 더욱 독립 운동에 매진하게 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동주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어둠의 시대,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줄거리
권력에 저항한 정치인이자 민중을 대변하는 칠레의 전설적인 시인 ‘네루다’.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난한 그를 잡아오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비밀경찰 ‘오스카’는 도피를 위해 아내 ‘델리아’와 함께 은둔생활을 하는 ‘네루다’의 흔적을 밤낮 없이 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은둔생활이 길어질수록 ‘네루다’는 세계적 영웅이 되어가고, 그를 잡아야만 하는 ‘오스카’조차 그가 남긴 책 속 문장들에 매료되고 마는데…
줄거리
1818년 영국 런던, 23살의 시인 존과 패션을 공부하고 있는 옆집 소녀 페니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싹튼다. 처음에 존은 페니를 철부지 말괄량이로만 여겼고 페니도 시를 비롯한 문학은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히 존의 동생으로 인해 시작된다.
줄거리
첫 시집을 준비하는 시인 ‘진아’. 오랜 연인 ‘길우’의 뜻밖의 사고 후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대학교에서 시 수업을 하고, 친구를 만나며 괜찮은 것 같지만 추억과 일상을 헤매며 써지지 않는 시를 붙잡고 있다.
“괜찮냐고 묻지 말아 줘…”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 해야되잖아”
줄거리
19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선택이 아닌 결정되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의무이던 시대. 독립적이고 자기주관이 뚜렷한 에밀리는 획일적인 교육과 억압이 만연한 기숙학교를 나와 가족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유일한 삶의 행복이자 위로가 되는 시(詩)를 쓰면서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며 혼자만의 고독에 깊이 빠지게 되는데…
줄거리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마흔 살의 시인은 시를 쓰는 재능도, 먹고 살 돈도, 심지어 정자마저도 없다. 그리고 시인의 곁에는 무능한 남편을 구박하면서도 세상에서 그를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팍팍한 현실에서도 진짜 시를 쓰는 일이 뭘까 매일 고민하는 시인, 그리고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내 앞에 어느 날 파도처럼 위태로운 소년이 나타나고, 시인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데... 그 사람 생각이 자꾸만 나서요.
줄거리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 낡은 서민 아파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 그녀는 꽃 장식 모자부터 화사한 의상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엉뚱한 캐릭터다 미자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며 난생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다. 시상을 찾기 위해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아 소녀처럼 설레 인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오면서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줄거리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의 이름은 ‘패터슨’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은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산책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일상의 기록들을 틈틈이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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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 | 현생과 전생 사이에서 부유하는 인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2살의 '해성'(유태오)는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를 갑자기 잃는다. 그녀의 가족 모두가 뉴욕으로 이민을 떠났기 때문. 이후 12년이 지나도록 해성은 현생을 열심히 살아간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에 가고, 취업을 걱정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편에는 나영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는 SNS를 통해 나영을 찾기로 결심한다.
한국을 떠나 12년 간 뉴욕에서 살아간 나영. 노벨 문학상 수상을 꿈꾸던 소녀는 여전히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어느 날, 나영은 SNS에서 어릴 적 풋사랑의 주인공이었던 해성이 자기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에게 연락한다. 그렇게 가까스로 닿은 인연을 또 다른 12년 간 간직한 두 남녀. 마침내 해성은 나영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스쳐 지난 수많은 "만약"의 순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공식을 거부하다
바에 나란히 앉은 세 주인공. 그들의 대화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두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인공 셋을 관찰하며 그들의 관계를 유추한다. 그 내용은 마치 관객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하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동양인 남녀를 커플 비슷하게 생각한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서양인 남성은 친구 내지는 가이드일 거라고 여긴다. 추측은 계속 바뀌지만, 그들의 의견은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구도 안에 갇혀 있다.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라면 평범한 순간이다. 애초에 로맨스 장르의 틀은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해피엔딩이든 배드엔딩이든 그 결말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속내용도 새로운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사랑의 힘으로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와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셀린 송 감독의 첫 장편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알 수 있다. 위의 오프닝 시퀀스는 선전포고였다는 것을. 실제로 <패스트 라이브즈>의 끝은 전혀 다르다. 로맨스 영화에 기대하는 바를 완전히 벗어나는 감성의 여운을 선사한다. 그 중심에는 전생과 이민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이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신인 감독 작품인데도 아카데미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기시감 가득한 시작
초반부는 익숙하다. 해성과 나영의 유년 시절을 보여준다. 초등학교에서 성적을 두고 다투던 라이벌. 그와 동시에 단순한 친구 이상의 호감을 지닌 두 베스트 프렌드. 그들의 풋사랑은 나영이네 가족이 모두 이민을 가면서 자연히 깨진다. 그렇게 둘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노벨 문학상을 꿈꾸던 소녀 나영은 미국에서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공대생이 된 해성은 취업하기 위해 분투한다.
길이 갈린 두 친구가 재회한 계기도 익숙하다. 해성이 군대에서 훈련을 받던 중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린다. 그는 나영의 아버지가 유명 영화감독이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SNS에서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그의 노력 덕분에 나영도 해성이 자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에게 연락한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12년 만에 극적으로 이어진다.
이 빌드업은 익숙한 그림을 연상시킨다. 해성과 나영은 곧 재회할 것이다. 같이 살던 옛 동네에서 추억을 공유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이 반가움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성인이 됐으니, 이성적인 감정으로 커질 것이다. 물론 현생은 그들을 편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원거리 연애라는 제약도 있고, 취업을 비롯한 미래의 문제가 그들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은 끝내 해피엔딩에 도달할 것이다.
두 번의 변곡점
그런데 <패스트 라이브즈>는 예상된 그림을 자꾸 벗어나며 관객과 밀당을 벌인다. 해성과 나영은 재회하지 않는다. 둘은 영상 통화만 나눈다. 그조차도 오래가지 않는다. 서로에게 빠져들고, 서로의 존재가 너무나도 익숙해지려는 찰나에 그들은 교류를 끊는다. 온라인상의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자 그들도 서로의 관계를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성과 나영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다시 예상대로 되돌아오기는 한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한 나머지 뉴욕에서 재회한다. 해성과 데이트를 즐기며 혼란스러워하는 나영. 해성을 질투하는 나영의 남편 '아서'(존 마가로). 조심스럽지만 자기 마음을 숨기지는 않는 해성까지. 로맨스에서 빠질 수 없는, 삼각관계라는 익숙한 풍경이 마침내 펼쳐지는 듯 보인다.
이 기대는 한 번 더 깨진다. 셋이 오프닝 시퀀스의 술집으로 향하자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작은 불꽃만 튀어도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해성과 나영은 아서를 빼놓은 대화 끝에 서로를 사랑한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이 그리웠을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렇게 영화는 불륜도, 운명적 사랑도 아닌 오래되고 특별한 우정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로맨스 영화의 공식을 오가는 작법 덕분에 <패스트 라이브즈>는 기술적으로 퍽 흥미롭다.
전생과 현생 사이에서
물론 혹자는 <패스트 라이브즈>의 시나리오를 비판할 수도 있다. 확실한 맛이 아니라며 게으르거나 흐릿하다는 지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개의 변곡점을 잇는 멋진 선 덕분에 <패스트 라이브즈>의 변주는 더욱 아련하다. 영화는 나영의 대사를 통해 거듭 '인연'을 강조하고, 그 결과 '전생(Past Lives)'이라는 제목에도 새로운 의미가 깃든다.
아서에게 나영은 말한다. 부부로 맺어지려면 전생에 8천 겁의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1겁이 10년의 28 제곱이니, 부부의 연이 얼마나 특별한 지를 강조하는 고백인 셈이다. 이는 해성과 노라의 관계에도 해당이 된다. 1만 킬로미터가 넘는 공간과 수십 년의 시간 차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끊어지지 않는 사이니까. 그들 스스로도 본인들의 전생을 궁금해할 정도로. 이 특별함은 아련함이 되고, 몽글몽글한 감정은 스크린을 휘어잡는다.
그 특별함은 결말에도 더 힘을 싣는다. 아무리 과거의 인연이 질기더라도, 부부의 연은 결국 나영과 아서의 몫이다. 전생의 인연이 더 강렬해 보여도 현생의 인연보다 진하지는 못하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미 전생의 인연은 전생이 아닐 테니. 현실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논리적으로 귀결되기에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히려 더 감성적이다. 해성과 나영의 인연을 일반적으로 풀었다면 판타지겠지만, 그 길을 가지 않았기에 울림이 더 깊다.
돌풍의 원천
이 지점에서 <패스트 라이브즈>의 또 다른 특이점도 엿볼 수 있다. 전생과 현생의 개념을 공간적으로 시각화한다. 그래서 해성과 나영이 결코 연인이 되지 못할 인연이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암시한다. 그들의 현생은 따로 있다. 나영은 미국, 해성은 중국에서의 삶과 관계가 그들의 현생이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은 이미 떠난 보낸 한국에서의 삶이다. 즉, 한국이라는 장소와 그곳에서의 시간이 그들의 전생인 셈이다.
이는 나영과 해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이민자에게 미국은 현생이고, 떠나온 고국은 전생이나 다름없다. 장소뿐만 아니라 그곳에서의 사람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민자라면 누구에게나 나영과 해성 같은 사랑이나 우정이 있었을 테니. 인연과 전생, 윤회라는 개념에 착안한 점도 나름 신선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를 이민자의 삶에 결부시켰기에 보편적인 공감대를 자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나영에게 해성은 고국과 전생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다. 반면에 아서는 미국에서의 정착과 현생을 뜻한다. 이때 끝내 아서를 택한다는 것은 모든 이민자가 결국 미국에서의 삶과 가치,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즉, 지극히 미국적인 이야기이자 결말인 셈이다. 그래서 <패스트 라이브즈>가 유독 미국에서 반응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뻔한 말도 이토록 감성적일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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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 너머, 사실주의의 미학
<용서받지 못한 자>는 사실주의 영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영화를 본다기보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점이 내가 이 작품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영화는 군대 조직에 유연하게 적응해 가는 태정과, 태정의 중학교 동창이자 군대의 부조리에 적응하지 못하는 승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연출 방식과 편집을 통해 사실주의 영화의 면모를 강하게 드러내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에는 군대 운동장 계단에 앉아 태정과 승영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중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데 일반적인 대화 장면처럼 시점 편집을 사용해 표정을 번갈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카메라를 다소 먼 거리에서 고정해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담는다. 이로 인해 대화 중 승영의 표정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인물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독특한 감정을 유도한다.
또한 군대에서 나온 승영이 태정을 귀찮게 하다가 둘이 다툰 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인도와 차도의 경계선에 서 있다. 그 뒤로 인도를 지나는 사람들, 차도를 오가는 차량과 불빛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담긴다. 정돈되지 않은 밤거리의 분위기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비 오는 날, 벤치에 앉은 승영이 “내가 고참이 되면 군대를 바꾸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두 번 반복된다. 중반부에는 배우들의 앞에서 촬영하고, 후반에는 같은 대사를 배우들의 뒤에서 촬영해 보여준다.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이라면 알 수 있다. 두 장면은 같은 내용이지만 감정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이 같은 연출은, 끝내 군대를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변해버린 승영의 모습을 상징한다. 동시에, 그조차 용서받고 싶어 하는 승영의 여린 내면을 드러낸다.
이 외에도 여러 충격적인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하며, 흔하지 않은 카메라 시점과 연출은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 사실적인 감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름이 돋게 한다.
이 작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롱테이크와 와이드 샷은 상업 영화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장면의 생생함과 여운을 극대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연출과 편집, 기술적 개입을 최소화하여 관객은 마치 카메라를 잊은 채 그 장면 자체를 바라보게 된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마지막에 비 내리는 벤치를 비추며 영화가 끝난다. 이 마무리 장면 또한 롱테이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객은 오랫동안 화면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처럼 강한 여운을 남기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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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2월 첫째 주 씨네랩 홈시네마 추천작 3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여러분, 설 연휴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보내셨는지요? :)
연휴가 끝나서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곧 다가올 주말을 기대하며
2022년 2월 첫째 주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 시네마 추천작 3편을 소개드리겠습니다.
넷플릭스 서비스 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과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디즈니 플러스에서 서비스 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까지..
씨네랩이 각 작품을 선정 및 추천하는 이유와
간단한 작품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시네마작을 시청하면서
오늘 하루도 영화로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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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웹 드라마ㅣ12부작
- 콘텐츠 소개 :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 선정 및 추천 이유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작품입니다. 이젠 전 세계 시청자들이 믿고보는 K-콘텐츠인데요.
또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좀비 소재의 시리즈입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는 고등학교로 간 좀비물로 기존 좀비물과는 차별화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에서 공개한 후 하루만에 세계 1위를 달성했다고 하는데, 계속 순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화제에 오른만큼 국내 시청자들의 후기를 보면 호불호가 확실히 강한 작품인데요.
고등학교 배경이지만 아이들의 폭력적인 장면과 선정적인 학교 폭력의 묘사,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잔인한 장면도 많이 나옵니다. 좀비물 특성 상 특유의 묘사로 그 선정성이 높고 더 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가운데 작품을 호불호와는 무관하게 <지금 학교 우리는>의 화제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화제의 작품을 여러분께서도 직접 시청하시고, 각자의 판단을 생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
2. 넷플릭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애니메이션 ㅣ117분
- 콘텐츠 소개 : 혈귀로 변해버린 여동생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릴 단서를 찾아 비밀조직 귀살대에 들어간 ‘탄지로.’
‘젠이츠’, ‘이노스케’와 새로운 임무 수행을 위해 무한열차에 탑승 후 귀살대 최강 검사 염주 ‘렌고쿠’와 합류한다.
달리는 무한열차에서 승객들이 하나 둘 흔적 없이 사라지자 숨어있는 식인 혈귀의 존재를 직감하는 ‘렌고쿠’.
귀살대 ‘탄지로’ 일행과 최강 검사 염주 ‘렌고쿠’는 어둠 속을 달리는 무한열차에서 모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예측불가능한 능력을 가진 혈귀와 목숨을 건 혈전을 시작하는데…
- 선정 및 추천 이유 :
많은 분들이 인생 명작 애니메이션이라고 칭하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이니,
이제 집에서도 편안히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애니메이션은 한 눈에 딱 들어오는 캐릭터들과 예쁜 그림체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또한 많은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되는 혈귀,마귀가 나오는 소재 또한 다시 한번 기대가 되는 포인트인데요.
막강한 비주얼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
그리고 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의 이야기들이 어우려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을 본 분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눈물샘이 폭발?하는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데요!
액션과 감동까지 모두 사로잡는 애니메이션을 홈시네마 작품으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3. 디즈니 플러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영화 - 드라마 ㅣ 114분
- 콘텐츠 소개 : 세계적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는 사건 의뢰를 받고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초호화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탑승한다. 폭설로 열차가 멈춰선 밤, 승객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기차 안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13명의 용의자.
포와로는 현장에 남겨진 단서와 용의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미궁에 빠진 사건 속 진실을 찾기 위한 추리를 시작하게 되는데…
- 선정 및 추천 이유 :
2월 9일 개봉하는 <나일 강의 죽음>의 전작으로 추천드리는 작품입니다.
<나일 강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요.
<오리엔트 특급 살인> 또한 명탐정 포와로의 활약이 돋보이는 추리 영화입니다.
역시나 추리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며, <나일 강의 죽음>의 공간 배경이 초호화 여객선이라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공간 배경은 초호화 열차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영화로써 긴장감과 몰임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13명의 용의자들을 연기한 배우들..
조니 뎁, 주디 덴치, 페넬로페 크루즈, 미셸 파이퍼, 윌렘 대포 등 할리우드 명배우들이 뿜어내는
캐릭터들의 매력 또한 한껏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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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BIFF가 주목한 영화로운 한국영화
10월 9일,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6층 아주담담 라운지에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마지막 '아주담담' 세션이 열렸습니다. '아주담담'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여러 작품을 소개하고, 게스트와 직접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이날은 차한비 모더레이터의 진행으로 '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섹션에 오른 세 편의 영화에 관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Merely Known as Something Else
첫 번째로 소개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시간과 차원이 교차하는 다면적 구성이 인상적인 조희영 감독의 작품입니다. 아주담담 라운지를 찾은 조희영 감독와 정보람, 정회린, 류세일 배우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조희영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인주', '유정', '수진'이 각기 다른 연유로 '정호'와 얽히는 이야기이며, 제목을 생각하면서 관람하면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를 느끼실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영화를 감상하기 전부터 관객의 궁금증을 야기하는 독특한 제목을 갖고 있는데요. 조희영 감독은 평소 시나리오를 쓰던 도중이나 시나리오를 마무리한 후에 제목을 정하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제목을 처음부터 정해놓고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제목에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죠.
어차피 모든 것들은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니, 이 작품도 영화가 끝난 이후 관객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여서 각기 다른 것으로 완성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제목을 지었어요. (조희영 감독)
배우들 역시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궁금증에 매료되었다고 하는데요. 정회린 배우는 "각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제목처럼 서로 다른 영화로 느껴질 것"이라며 영화를 더 재밌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했고, 류세일 배우는 "인생은 역할놀이 같아서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해 온 터라,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무조건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목에 대한 인상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이 영화가 개봉하는 날, 여러분도 감독과 배우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이 영화의 제목에 담긴 매력을 느껴보셨으면 좋겠네요.
봄밤
Spring Night
<푸른 강은 흘러라>에 이어 14년 만에 새로운 장편으로 돌아온 강미자 감독이 두 번째로 아주담담 라운지 무대에 올랐습니다. 강미자 감독은 영화제에 온 것이 "꿈에 본 내 고향에 있는 느낌"이라며, 자신을 기다려준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그간 영화 편집 강사로 활동해 온 강미자 감독은 우연히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 『봄밤』을 읽고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안 좋은 일이 있지 않아도 아픔이라는 감정이 내 안에 켜켜이 쌓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아픔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 소설을 영화의 언어로 표현해 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제작 배경을 밝혔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영경' 역의 한예리 배우와 류머티즘 환자 '수환' 역의 김설진 배우를 향한 애정 어린 찬사도 이어졌습니다. 전작 <푸른 강은 흘러라>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한예리 배우는 이번에도 강미자 감독과 함께했는데요. 강미자 감독은 처음부터 한예리 배우를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준비했다며, "소설에서 느꼈던 '영경'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단 한 분의 배우가 한예리 배우였다"고 전했습니다. 분장 등의 도움 없이 체중 감량을 통해 아픔과 고통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었는데도 한예리 배우는 흔쾌히 함께해 주었죠.
김설진 배우는 한예리 배우의 추천으로 이 영화에 참여했습니다. 강미자 감독은 "몸을 잘 쓰기로 유명한 두 배우와 함께한 덕분에 시나리오에서 글로도 표현해 내지 못한 '영경'과 '수환'의 감정을 영화에 온전히 담길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봄밤>은 최소한의 장치만을 사용해 이 영화만의 올곧은 리듬을 만들어 가는 영화입니다. 강미자 감독은 이러한 방식의 영화를 구성한 이유를 묻는 차한비 모더레이터의 질문에 "저희 영화는 투박한 편"이라고 낮추면서도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 고민 끝에 카메라를 절대로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결단으로 <봄밤>은 대중적인 서사나 표현 밖에 있으면서도 관객 내면의 깊은 감정을 건드리는 섬세한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죠.
두 인물은 사회적인 관습 밖에 있는데도 자기의 삶을 온전히 버텨낼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도 버텨내는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에 화면의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당당하게 존재하게끔 해주고 싶었어요. (강미자 감독)
파편
Fragment
아주담담 세션의 피날레를 장식한 게스트는 <파편>의 김성윤 감독과 오자훈 배우였습니다. <파편>은 살인 사건 이후 남겨진 가해자와 피해자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파편>의 타이틀 디자인이 인쇄된 팀복을 입고 나타난 오자훈 배우에게서는 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 절로 느껴졌죠. 세 번의 상영이 모두 끝난 뒤 무대에 오른 두 사람은 후련해하면서도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김성윤 감독은 영화가 촉발하길 바랐던 메시지에 많은 관객이 공감해 주어 감사하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남겨진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를 다들 한 번쯤 생각해 보길 바랐는데, GV 때 이 질문을 해주시는 분이 계셨다"며, "그 이후의 삶은 현실의 우리들이 써내려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감독이자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의 소망을 덧붙였죠.
살인자 아버지를 둔 '준강' 역을 맡은 오자훈 배우는 300:1의 경쟁률을 뚫은 캐스팅 비하인드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오자훈 배우는 "세 번의 오디션을 거치면서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책임감을 가지고 '준강'이를 뚜렷하게 표현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긴장과 불안이 계속되는 촬영이다 보니 아이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연출자로서는 이야기가 제대로 완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성윤 감독)
김성윤 감독은 세션을 끝마치며 <파편>과는 또 다른 결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를 사랑한다는 그는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 놓을 때마다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감독이 되고 싶다"며 뜨거운 포부를 전했습니다.
⊙ ⊙ ⊙세 편의 작품, 일곱 명의 게스트와 함께한 '아주담담' 세션은 영화를 향한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영화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 열정,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이토록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라면 '극장은 영원하다(Theater is never dead)'는 외침도 아주 오래도록 유효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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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잡히지 않을 질주
소소한 일탈의 시작
시작은 소소한 일탈이었다. 늘 남편의 기세에 눌려 눈치만 보던 델마, 그녀는 절친인 루이스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내는 언제나 집을 지키며 남편을 보좌해주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앞세우는 가부장적인 성격의 남편이 루이스를 보내줄 리가 없다. 루이스는 남편이 출근한 사이 몰래 덜컥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랜만에 맛본 해방감에 너무 들뜬 탓일까. 취한 루이스는 델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접근해오는 남성과 즐겁게 춤을 춘다. 그러나 이윽고 태도가 돌변한 남자에게 끌려갈 위험에 처하고, 델마가 루이스를 구출하다 충동적으로 남자를 총으로 쏴버리고 만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여행의 시작. 이후 이들은 계획과는 전혀 다른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작품 속 '총'이 가지는 권력
델마와 루이스가 그들을 얕보고 농락하려는 남성들에게서 우위를 가로채는 방식은 바로 총이다. 힘과 폭력으로 당연하다는 듯 그녀들을 짓누르려고 하는 남성들에게 겨누는 총은 폭력의 주체를 곧바로 전환시킨다. 총, 즉 죽음의 위협이라는 어마어마한 폭력의 위계 아래에 놓이고서야 남성들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녀들이 느꼈을 공포를 체험한다. <델마와 루이스> 속 총은 권력이자 폭력의 상징이다.
변화하는 델마와 루이스
순진하고 정이 많아 사람을 잘 믿던 루이스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점차 단단해진다. 자신의 내딛을 다음 행보조차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루이스는 남편의 강압적인 지시에 불복종하고, 자신의 실수로 잃은 돈을 복구하기 위해 강도 범죄까지 강행한다.
여행을 시작하며 한껏 손질한 머리에 예쁜 원피스를 입던 델마와 루이스는 이제 없다. 살인을 저지를 사람들이 아니다, 라며 숱한 이들이 그녀들을 변호했지만 더이상 그녀들은 예전과 같지 않다. 델마와 루이스는 눈앞에 들이닥친 시련을 감내하기 위해 더 거칠어져야 했다.
"우리 잡히지 말자."
마침내 델마와 루이스를 포위하는 무장 경찰 무리들. 수많은 경찰과 '총'이 그녀들을 겨눈다. 자칫하면 사망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막다른 절벽에 들어선 델마와 루이스는 항복하지 않고 허공을 향해 질주한다. 그녀들은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한 번 자유를 맛본 이상 억눌리던 과거의 그때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후진도, 항복도 없다.
그녀들이 선택한 길은 오직 자유를 향한 도약이다.
델마와 루이스가 탄 차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정지된 채로 막을 내리는 영화.
상징적인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델마와 루이스는 영원히 자유로운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다. 땅의 중력도, 총의 위협도 그녀들의 질주를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 잡히지 말자." 루이스의 바람대로, 그녀들은 영원히 잡히지 않을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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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13? ?영화 티켓 가격 구성?!?
?씨나병의 영화정보 #13? ⠀ ?열세 번째 주제? ⠀ ? 영화 티켓 가격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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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라더> 30초 예고편
정의감과 패기로 똘똘 뭉친 강력계 형사 ‘강수’.
어느 날 그에게 마약 밀수입 등의 악질 범죄를 일삼는
거대 조직의 정보가 담긴 발신자 불명의 제보가 들어온다.
범죄 소탕을 위해 조직에 위장 잠입한 ‘강수’는
회장의 오른팔 ‘용식’ 밑에서 조직 생활을 시작하고
각자의 목적을 위해 한 팀이 된 두 사람은 묘한 우정을 느낀다.
“이런 일이 안 어울린다고, 강수 너한테는”
한편, ‘강수’는 계속되는 비밀 수사 중 신분 들통 위기에 처하고
사건을 파헤칠수록 조직과 얽힌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는데…
복수와 배신이 교차하는 세계에 뛰어든 두 남자,
누구도 믿지 못할 팀플레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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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티저 예고편
무너진 서울 속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 내가 사는 아파트?..?! 이병헌 X 박서준 X 박보영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번 여름, 극장에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