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28 17:58:54
누벨바그 캐다 보면 결국 바르다!
아녜스 바르다 필모그래피 가이드 함께 봐요

오늘은 사진, 영화, 설치 미술 등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우리를 사로잡았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6주기입니다.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선뜻 영화를 보기 어려웠던 분들을 위해 씨네픽지기가 필모그래피 가이드를 준비했습니다!
첫 만남은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한번 만나게 되면 바르다 감독과 사랑에 빠지게 되실 거에요.
혹, 작품이 많아 무엇부터 볼 지 고민이 된다면 <방랑자>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우선적으로 추천드립니다.
그럼 오늘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감상해 볼까요?
*인터뷰 발췌: 「아녜스 바르다의 말」, 아녜스 바르다&제퍼슨 클라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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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탑 메이킹 센스> 먼저 본 후기
“안녕하세요 테이프 하나 틀게요”
<스탑 메이킹 센스>
저희 씨네픽 에디터들이 살짝 먼저 보고 후기 가져왔습니다🕺🏻
41년 만에 처음 한국에서 개봉이기에
토킹 헤즈의 공연을 선명한 화질과 훌륭한 음질로 만날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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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의 아픔이 가져온 크나큰 상실과 성장, "클로즈"
안녕하세요 ㅎㅎ
이번에는 관계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영화를 소개할까 해요~!
바로
2023년 5월 3일에 개봉하는
<클로즈>라는 영화랍니다^^
이 작품은 현재 해외에서 각종 수상을 했을 정도로 모두가 주의를 기울인! 주목할 만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메인 포스터에 나와있는 '레오'와 '레미'의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 걸까?' 하는
큰 기대감과 궁금증에 휩싸였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이 둘의 관계, 애틋하고 각별해보이지 않나요??ㅎㅎ
앞서 예상했듯이 레오와 레미는 평소 형제처럼 사이가 각별한뿐더러 매일매일 함께 보낼 정도로 절친한 사이입니다.
처음엔 진짜 형제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 둘은 너무나도 가깝고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였죠.
위 장면은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왼쪽부터 레오, 레미의 어머니, 레미를 가리킵니다.
전혀 이질감이 안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시죠?
레오는 레미와 레미의 부모님과 함께 앞마당에서 뛰어놀고 밥을 먹으며 같이 잠을 자면서 일상을 서로의 분신처럼 지냅니다.
그중에서도 레오와 레미는 한 방의 한 침대에서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알 정도로 공유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데요.
영화에서는 레오와 레미가 한 침대에 누워 대화하고 바라보는 장면을 자주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장면이 더욱 눈길이 가고 기억에 남습니다.
침대 씬을 통해 서로의 감정이 변화되고 움직이는 걸 지레 짐작할 수 있도록 해주기에 더 마음이 가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 사람은 중학교에 입학하여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아는 친구들이 없어서인지 레오와 레미는 서로에게 더 의지하며 기대는 모습을 보이죠.
화면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멀리 비추면서도 두 사람에게 초점이 가도록 비추고 있는데, 이러한 화면 구성은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더 명백히 보여주는 구성이라고 저 혼자 생각해봅니다 ㅎㅎ
이러한 두 사람을 보고 학교 친구들은 '너네 둘 연인이 아니냐', '보통 친구 사이가 아닌데'와 같은 그 둘의 관계를 비웃는 듯한 반응을 보입니다.
바로 이러한 친구들의 말이 두 사람 간의 관계이자 영화의 핵심 포인트로, 사건을 뒤흔들 계기로 작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레오와 레미는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듯합니다.
레미는 그런 친구들의 말에 타격을 입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레오는 너무나도 큰 타격과 상처를 입었는지 기분이 확 다운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풀썩 눕죠.
그 이후부터 레오는 친구들의 말을 의식하고 점점 레미를 멀리하게 됩니다.
괜히 자신을 괴롭혔던 애들과 어울려 지내려고 노력하고, 레미와 함께 있어도 예전과 같이 서로 뒤엉키며 놀지 않습니다.
처음에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서로 상황극?하며 놀았던 놀이도 이제는 예전같지가 않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는 여전히 은근슬쩍 레미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레미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겉으로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지냄에도 속으로는 여전히 레미에게 향해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째서일까요.
왜 사람은 어떠한 큰 사건, 계기가 생겨야지만 비로소 몰랐던 점을 깨닫게 되고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요.
영화를 보면 바로 이 점이 제일 안타깝고 안쓰럽고 후회스러울 지경입니다.
레미는 갑자기 변해버린 레오가 낯설고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바뀌어버린 레오의 태도에 상처를 받았는지 하루가 갈수록 점점 피폐해집니다.
한순간에 제일 가까웠던 친구가 제일 멀게 느껴지게 되는 그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요.
레미의 입장에서는 감히 그 감정을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가시, 큰 상처가 되어 마음에 슬프게 박혔을 테죠..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는.. 어딘가 나만 홀로 버려진 땅에 서 있는 기분..
아마 그런 느낌이었겠죠, 레미는.
이들에게 기어코 큰 사건, 절대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레오의 가장 절친인 레미가 자살하여 죽었다는 것이죠.
레미가 죽은 이 거대한 사건이 레오에겐 가장 큰 영향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때 이후부터가 영화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흐름이자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내가 주목했던 건?
저는 영화 장면 중에서 제일 주목했던 부분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바로 첫 번째는 포스터 속 장면처럼 레오와 레미가 꽃밭에서 뛰어다녔던 장면입니다.
둘은 각자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꽃밭에서 뛰는 속도를 달리 조절합니다.
영화의 첫 도입부분 역시 레오와 레미가 신나게 깔깔 거리며 꽃밭을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때 둘은 서로 나란히 같은 속도에 맞춰 혹은 엇비슷한 속도로 꽃밭을 뛰어다닙니다.
초반에는 어떠한 장애물 없이 세상에는 레오와 레미 단둘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속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환히 웃으면서 해맑은 상태로 달려가죠.
하지만, 레오가 레미를 점점 피하고 나서부터는 꽃밭에서 뛰는 이 둘의 속도도 점점 달라집니다.
같은 꽃밭에서 예전과 같이 뛰지만, 한 사람은 앞서 나가고 또 한 사람은 뒤로 뒤쳐지게 되죠.
서로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듯 꽃밭에서 달리는 설정을 통해 레오와 레미 이 둘만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 깊은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엔 같은 속도로 달리는 둘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함께 웃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는 서로 다른 둘의 속도를 보고 마냥 웃으며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뭉클해지며 가슴 한 편이 시큰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레오와 레미가 자전거로 달리는 장면인데요.
앞서 꽃밭에서의 달리기를 통해 둘의 거리감을 표현했듯이 자전거를 통해서도 이 둘의 관계를 표현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초반에서 이 둘 역시 처음에는 학교를 향할 때 같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장난도 치며 웃으며 자전거를 타고 비슷한 속도로 달렸죠.
하지만 둘의 관계가 변화가 있은 후부터는 자전거를 세게 밟아 서로를 앞질러 갈려고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웃는 얼굴이 아닌, 이 악문 표정으로 말입니다.
마치 자전거를 통해 자신의 화난 감정이나 속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언같기도 하고요.
이렇듯 레오와 레미가 꽃밭에서 달리는 모습이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통해 이 두 명간의 관계, 거리감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중요한 대목 같아서 저는 이 두 장면을 주의깊게 눈여겨 봤답니다!
영화 <클로즈>를 보고 저는 사람 간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이 주는 영향력을 감히 무시할 순 없구나.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레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관련하여 별로 좋지 않는 말을 할 때, 비웃을 때 등등 그런 말들에 당연히 의식하기 마련입니다.
그 말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리지겠죠.
저는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에서 레오와 레미가 서로 어긋난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레미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의식하지 않기로 판단한 것이죠.
레미에겐 그러한 사람들보다 레오, 즉 자기 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말입니다.
그에 반해 레오는 다른 사람의 말에 더 의식을 했던 인물이었던 거죠.
이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건 아닌가 하는.
저도 레오와 같이 주변인들의 인식과 말에 영향력을 받는 사람인지라 공감이 갔습니다.
머리로는 가장 친한 친구인 레미에게 가야겠다는 건 알았으나, 행동이 그를 따라가주지 못했죠.
비록 레오는 절친인 레미를 안타깝게 잃고 나서야 레미의 소중함을 깨닫고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를 보는 우리만큼은 레오처럼 그런 후회를 남기지 말라고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나를 좌지우지할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더욱 가지라고 말이죠.
세상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챙기기에도 바쁘니까요 ㅎㅎ
자신과 가까운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레오'라는 한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 <클로즈>였습니다.
아름다움과 아픈 시련이 함께 담긴 영화랍니다.
여러분도 이 영화를 보시면서 주위 사람들을 한 번쯤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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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가 산 자를 또 살릴 때.
이 글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긴 한데 이것도 재개봉이니까 봐줍시다. 글을 퍼가실 때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단 5분이다.
무려 대학 졸업 작품으로 [쉰들러 리스트]를 제출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 감독의 작품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난 뒤에 감상해도 전율로 몸서리치게 만들기 충분한 시간. 그러나 이 시간은 영화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허세의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행하는 작전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병사들의 얼굴. 들리지도 않게 입 안에서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기도. 지휘관조차 손을 떨며 맞이해야 하는 불과 몇 분 후의 두려움들을 비춘다. 군인들의 어깨에 고요하게 내려앉은 공포를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실체로 바꾸어 보여주는 이 5분은 폭발적이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하며. 이를 그저 지켜봐야 하는 관객인 나마저도 그 처절함과 처참함에 온몸이 떨려온다.
그렇다. 이 작품은 이미 초반 5분 만에 영화 역사 길이 남을 만큼 기강을 확실히 잡긴 했다. 그러나 전쟁영화라는 장르에 속하는 것 치고는 사실 전투씬 자체가 차지하는 시간적인 비중은 그다지 크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왕좌에 앉아 영원히 군림할 제왕이 되어버린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나는 감독의 그 탁월한 선택에 경이와 감사를 함께 표한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는 전쟁이 가진 비참함을 전시하지 않았다. 그가 해석한 전쟁에서는 죽음이나 승리, 비장함 등을 과대포장하지 않았다. 상부의 명령은 언제나 부조리하거나 모순적이고. 그로 인해 전쟁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언제나 병사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는 해변에서 널브러져 죽어가는 생선만큼이나 하찮게 그려진다. 심지어 밀러(톰 행크스)의 죽음마저도 전쟁 속 오고 가는 수많은 총알 한 발로만 그려질 뿐. 소위 말하는 “가오”를 단 한 순간도 느낄 수가 없다.
감독이 해석한 전쟁 속에는 사람이 있지만 동시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담백하다 못해 냉정하고 덤덤해 보이게 연출할 수 있었던 데는 배우 톰 행크스의 역할이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종전되기 전 까지는 모든 것이 과정일 뿐이고, 그 속의 개인은 그저 부품일 뿐이라는 것을. 밀러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은 표현 해 낸다. 이 무미건조함에 매몰된 관객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 한채, 세 시간짜리 전쟁이 주는 두려움으로 벌벌 떨어야만 한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몇십 년 전 영화를 보면서 이토록 촌스럽지 않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동시대를 살면서 이 작품을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 감독에게, 그리고 모든 배우들과 참가자들에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뉘우침(?) 뒤에야 밀러가 라이언(맷 데이먼)에게 건넨 마지막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밀러는 100명에 가까운 자신의 부하들을 잃고 나서 스스로의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수많은 영혼들의 넋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이 빚을 갚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자신의 삶이 증명됨과 동시에 그들의 죽음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밀러는 주인공 버프 하나 없이 창백하고 초라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밀러의 표정은 아주 조금은 홀가분해 보였다. 마치 죽은 부하들이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살린 것처럼. 자신 또한 이제 죽은 자가 되어 라이언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을 살려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라이언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그토록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자, 자신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 달라는 소원을 마지막 숨결에 실어서.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으니.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라고.
마치면서
사진 출처:다음 영화
사실 잭슨(배리 페퍼)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나이퍼들의 순위를 매길 때마다 매번 상위권에 랭크되곤 한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매 순간의 위기를 해결해 내는 담대함이 늘 그를 멋있는 존재로 포장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지닌 두려움이 명확하게 보였다. 잭슨은 한 발 한 발 장전하고 쏠 때마다 마치 주문처럼 성경구절을 읊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마치 스스로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 들렸기에. 그가 마주한 두려움의 크기에 측은함 마저 느껴졌다.
비록 작품 속이지만. 잭슨의 기도가 공허하게 울려펴지기만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의 TMI]
1. 내가 진짜 아무리 다시 봐도 업햄은 용서가 안 된다. 너어는... 진짜..
2. 커피랑 프로틴 바 들고 들어갔는데 하나도 못 먹음
3. 드디어 재개봉 영화 관람 끝났다.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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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푸른 눈의 사무라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은, 지난 11월 초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푸른 눈의 사무라이>. 장편 영화 각본 작업과 시리즈 작업으로 국내에도 제법 알려진 마이클 그린과 앰버 노이즈미가 제작과 각본을 맡은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마이클 그린은 넷플릭스와 최근 전속 계약을 체결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을 작업 중이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제작된 작품이지만 그 배경은 일본을 소재로 하고 있고 사무라이 소재이기에, 성우진들은 랜달 파크, 마야 어스킨, 마시 오카 등의 아시안 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총 8부작의 다소 짧은 호흡의 시리즈로, 제인 우를 비롯한 다섯 명의 감독이 번갈아가며 에피소드별로 연출을 맡았다.
일본의 에도 시대인 17세기, 혼혈 검사 '미즈'의 복수를 다룬다. 미즈는 일본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푸른 눈을 물려받았으나 눈빛의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과 차별을 당하고 '악마'라는 수식을 얻는다. 어머니와 일찍 헤어진 후, 야유를 피해 도망치다가 외딴 곳에 기거하는 한 맹인 도공과 함께 살며 검에 대한 기본기를 익힌다. 미즈의 목적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 그러니까 자신이 태어날 시기 즈음 일본에서 머물렀던 백인 유럽 남성을 모두 죽이는 것이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미즈의 복수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일단락되는 지점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출생의 비밀과 복수가 가미된 로드 트립 등 일반적인 사무라이 물이나 소위 말하는 '찬바라'(검이 부딪히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장르가 갖춰야 할 기본이 잘 녹아있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의 첫 번째 화에서는 '미즈'라는 검객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설명하며 절대 권력 아래 제멋대로 흘러가는 가공된 에도 시대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데, 이 이야기의 진짜 시작은 이 첫 번째 화가 끝나면서 비롯된다. 앞서 말했듯 일반적인 사무라이 장르인 듯하지만 주인공 미즈가 남장 여자라는 신분이 말미에 드러나고, 그 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말하자면 뻔한 찬바라 장르가 주인공의 성별을 치환했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로 인해 '뻔하지 않은' 장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남성들이 군림하는 싸움의 세계에서 남장 여자라는 컨셉의 애니메이션은 <뮬란> 등을 통해 알려지고 전파된 바 있지만,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단지 그 소재를 적극적으로 캐릭터에 입히는 것에 그치지 않아 주목할 만하다. 백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 사이에 혼혈로 태어났고, 백인의 눈과 피부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어디서든 차별받는 사람이 되었으며, 자신에게 입혀진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검기를 익힌다는 설정이 자칫 평범해질 수 있는 캐릭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의 두 제작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의 아이를 바라보며 <푸른 눈의 사무라이>가 시작되었다고 밝힌 그들은, 누구도 튀어보이고 싶지 않고 튀는 자를 억압하려 노력한 답답하고 절망적인 시대를 다뤄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미즈를 비롯한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억압하고 정형화하는 굴레를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결국 그것을 스스로 이루게 된다. 갇힌 새장에서 날아가듯 자유를 찾아 각자의 사명과 신념을 향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매 에피소드마다 흘러 넘친다.
입체적이고 주체적인 캐릭터성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8부작 내내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갖가지 변주를 꾀하는 연출이 가장 인상적이다. 2D/3D 하이브리드 기술로 제작되어, 3D를 사용하더라도 2D의 수작업을 연상케하는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식은 이런 화려하고 회화 같은 분위기의 연출을 기술적으로 충분히 뒷받침해준다. 특히 5화의 인형극의 형식으로 설명되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 플롯 연출은 압도적. 실화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전체 애니메이션 등급을 18세 이상으로 수위 상향을 꾀한 선택은 신의 한 수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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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자와 죽은 자, 두 세계를 뒤집어 접목하다
7★/10★
아르투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부장품이 있는 무덤 위에 서면 어질어질해지며 혼절하듯 주저앉는 ‘키메라 상태’가 된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이 놀라운 재주를 가진 남자는 고고학계에 안착하지 못했고, 도굴꾼이 되었다.
이야기는 감옥에 갇힌 아르투가 석방 후 이탈리아 시골 마을로 도굴꾼 동료를 찾아가는 데서 시작한다. 이탈리아 마을에 도굴할 무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르투는 그 마을에 가면 사라진 연인 베니아미나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베니아미나의 언니들은 그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돌아오지도 않을 거라고, 심지어 죽었다고 확신하지만 베니아미나의 어머니만은 자기 딸을 잊지 않고/살아 있다고 믿고 찾아다니는 아르투를 반기고 아껴준다.
영화는 아르투가 도굴을 이어가던 중 진귀한 고대 조각상을 찾는 과정과 베니아미나와의 재회를 독창적으로 엮어내 담아낸다. 화면비, 연출 등에서 고전 영화의 느낌을 풍기면서도 이를 능숙하게 변주해 동시대 관객이 그리 생경하게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호흡을 조절한다. 때로는 익살극 같고, 때로는 모험극 같은 영화의 흐름은 낯설면서도 자연스러워 자연히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제일 흥미로운 건 유물과 연인을 향한 아르투 여정의 궤적이다. 자잘한 부장품만 도굴하던 아르투와 친구들은 고대 신전 속 조각상을 찾는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값어치의 물건이다. 그런데 넋을 잃고 조각상을 바라보던 아르투의 눈앞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동료 무리가 밖으로 쉽게 나르기 위해 멀쩡한 조각상을 부숴 머리를 분리한 것. 아르투는 격렬히 달려들어 이들을 제지하지만 동료들은 이전에도 편히 운반하기 위해 이렇게 해오지 않았느냐며 되레 아르투를 책망한다. 혼란도 잠시, 아르투와 동료들은 그들이 부장품을 팔아넘기던 사람들에게 이 조각상을 도둑맞는다. 그러고는 조각상의 떼어낸 머리를 두고 그들과 협상한다. 이 모습을 보고 아르투는 확신한다. 이들이 그를 황홀하게 한 조각상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초연하게 결단한다. 아르투는 손에 든 조각상의 머리를 깊은 호수에 던져버린다. 이 일로 아르투의 동료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당연히 그의 생계 역시 어려워진다.
그러나 얻은 것도 있다. 도굴꾼으로 전락한 아르투가 지금까지 해오던 일에 갑자기 거리감을 둔 건 신전 속 조각상의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그 참된 값어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고학적, 예술적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다. 죽은 사람들과 함께 묻힌 물건에는 그 사람을 아끼는 주변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즉 아르투는 자신이 지금껏 물건으로서의 부장품을 훔쳤을 뿐 아니라 그에 담긴 마음까지도 훔쳐왔음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아르투를 헤어진 연인 베니아미나에게 인도한다. 가족들도 포기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만이 살아 있다고 믿은 베니아미나, 즉 아르투의 ‘죽은’ 연인에게 가는 길이 이 깨달음으로 열린다.
빈털터리가 된 아르투는 먹고 살기 위해 또 다른 도굴꾼에게 고용되어 땅속에 들어갔다가 홀로 갱도에 갇힌다. 때마침 그에게는 조각상 사건 후 조우한 영혼들에게서 받은 라이터가 있었다. 라이터로 불을 밝히자 지상의 베니아미나가 남긴 흔적이 보인다. 아르투는 그 흔적을 잡고 땅 위로 올라가 베니아미나를 만난다. 이 극적인 만남 직전 아르투가 있던 갱도는 땅속, 즉 죽은 자의 자리고 베니아미나가 있던 땅 위는 산 자의 자리다. 산 아르투가 죽은 자의 자리에, 죽은 베니아미나가 산 자의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 장면은 아르투가 조각상의 참된 가치를 알아보고 죽은 자의 세계에 온전히 접속했음을, 즉 죽은 연인을 만날 자격을 획득했음을 보여준다. 아르투가 키메라 상태가 될 때마다 카메라가 360도 수직으로 돌아 땅이 뒤집히는 듯 보이게 촬영한 장면도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가 뒤집힌 채 맞닿아 있음을, 그가 가진 특별한 능력이 두 세계를 오고 갈 수 있는 잠재력임을 암시한다.
아르투가 두 세계 사이에서 끝내 연인과 재회하지 못한 오르페우스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그가 죽은 자의 세계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베니아미나 어머니의 하녀이자 제자인 이탈리아에게서 현생의 아름다움도 배운다. 집이 없는 이탈리아는 베니아미나 어머니 집에서 쫓겨난 후에 아이와 여자들을 모아 공동체를 꾸려 폐건물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 나가는데, 아르투는 그녀에게서 수천 년간 땅에 묻혀 있던 조각상만큼이나 찰나의 현생 역시 아름답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배우고 새긴다. 요컨대 아르투는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긍정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깨달음으로 ‘죽은’ 연인과 재회해 행복을 맞이한다. 익살맞으면서도 때때로 정곡을 찌르는 연출과 플롯은 관객이 쉬이 영화에 고개를 끄덕이게 해준다. 고전 영화를 연상케 하는 기법으로 고래古來의 문제의식을 현대적 신화로 재현한, 기묘한 매력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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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란 나에게 무엇일까?
영화는 종합예술로
글과 음악 연기, 편집 등
현대 기술과 과거의 고전적인 요소가 섞인 매체이다.
영화란 무엇인가를 정의할 때, 상당히 힘들다.
누군가는 인생이라 답 할수도 있고, 누군가는 즐거움이라 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추억이라 말 할수도 있다.
오늘 소개해볼 영화는 이 제목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제격인 영화이다.
'시네마 천국'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로,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강남 압구정 CGV에 데려가서 보여주신 기억이 거의 10년이 됬음에도 생생하다.
그 당시엔 이 영화를 볼 때 그저 토토가 영화를 좋아하는 모습에 나를 투영하여 보았고,
지금도 그 모습은 여전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1980년대의 유명 영화감독 살바토레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살바토레가 퇴근하며, 동거하는 여자친구로부터 알베르토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고,
고향에 방문하게 된다.
1940년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시칠리아 섬의 지안칼도 마을에 사는 토토는 시간만 나면, 시네마 파라디소에 가는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이였다.
토토는 그런 영사기 기술자인 알베르토에게 기술을 배우고 싶어했으나,
알베르토는 지옥같다며, 이를 거절한다.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토토의 마음은 부모에게는 속을 썩힐 뿐이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이탈리아. 토토의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 집에 어머니 뿐이였으며,
토토에게 우유심부름을 하면, 그 돈으로 영화를 보기 일쑤였으며,
어쩔 때는, 검열당한 필름을 모아뒀다 불이 나서 동생이 다칠 뻔 하며, 어머니는 알베르토와 가까이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다 어느 날, 초등학교 학력 시험을 보러 온 알베르토는, 토토에게 답안지를 보여달라 하고,
토토는 그 대가로 영사 기술을 가르쳐달라 요구한다.
어느 날, 영사기 필름에 불이 붙고 알베르토의 눈이 멀게 된다.
그 동안 알베르토로부터 영사 기술을 배운 토토가 영사기를 돌린다.
직업도 있는 토토는 학교를 그만두고 영사기를 돌리고 싶어하지만, 알베르토의 충고로 학교를 다니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현실에 벽에 부딪힌다.
좋아하는 엘레나의 집은 부유한 상류층이였지만, 토토는 돈도 없으며, 뺵(배경)도 없고 뭐도 없던 현실에 부딪혀,
엘레나는 아버지의 전근으로 이사가고, 토토는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그 후, 알베르토는 로마로 가서 너의 꿈을 펼치라 한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는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
동심,
꿈
지금 힘든 10,20,30,40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번 쯤은 꿈꾸었던 모든 요소들이
황홀하게 어우러졌으며,
매번 영화를 비관적으로만 보는 내가
다시 어린 초등학생 때의 나의 시점으로 돌아가 영화를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지금에서야 시네마천국을 보면, 그당시의 이태리의 파시즘이 어쩌고, 전쟁피해로 인한 아버지 없는 토토의 이야기니
이렇게 보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볼 때 만큼은, 그냥 영화를 사랑하는 문학소년의 모습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겨져있다.
그저 토토처럼 영화에 빠져 사는 나의 모습을 회상할 때, 가끔 무료한 내 일상에 지칠 때 보약과도 같은 영화이다.
자신만의 영화의 정의를 한번 쯤 이 영화를 보고 내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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