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은 많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신 후에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어른들의 동화라는 소문대로 정말 아름다운 우화였다. 회화적인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물속에서 끌어안은 서로 다른 종의 연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 음악 선정도 적절하다. 아름답다.
인간과 비인간의 결합에 대해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이 영화는 뭔가 특별하다. 기존의 작품들이 지극히 인간중심적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러한 '인간 중심'의 사고 바깥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작품 속의 '어인(수륙양용(?)이니 양서인이라고 불러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편의상 어인이라고 부르겠음.)'은 우리와 다르다. 이질적이다. 그에게는 아가미와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고, 두 눈은 물고기의 그것처럼 크고 둥그며, 사람과는 달리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인간의 감정과 언어를 이해하며, 그들의 문화를 즐길 줄 안다. 엘레이자와 교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혼란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필자는 그랬다. 영화 초반까지만해도 끊임없이 한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이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이들의 사랑을 응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
우리는 지금껏 많은 비인간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서사를 경험해 왔지만 돌이켜보면 이토록 이질적인, 그러니까, 인간의 외모, 인간의 유머, 인간의 문화와 동떨어진 존재와의 결합은 그다지 빈번하게 목격하지 못한 것 같다. 미녀와 야수의 야수도 결국은 언어를 구사하고 옷을 입는 존재였고(사실 원래부터 인간이었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슈렉은 인간들이 혐오하는 오거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사정 역시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인간인 관객이 보기에 그다지 큰 거부감이 없도록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커녕 기괴한 꺽꺽거리는 소리만 내는 이 생물은 인간과 너무나 다르다. 때론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친구(?)의 애완 고양이를 잡아먹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과연 이 존재를 인간과 같은 선상에서 보아도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엘레이자의 절규에 찬 대사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훌륭한 해답을 제시한다.
'나도 그 사람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릴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그녀의 이러한 발언은 '무엇이 인간을 정의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트릭랜드는 인간을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정의 내린다. 그리고 어인을 인간과 구별되는 야만적인 짐승으로 치부한다. 이러한 구분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서열화 혹은 자기우열화는 우리 인간 내부에서도 다시금 되풀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세계에서는 흑인보다는 백인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성소수자보다는 성다수자가 우월하고, 더 '신의 모습에 가까우며' 따라서 더 '완벽한 존재'이다. 그에게 '인간답다'는 것은 요약하자면, '서구 가부장 사회의 백인이자 헤테로 섹슈얼인 남성답다'라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서열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우열을 가린다. 그 악독한 스트릭랜드도 결국 호이트 장군의 아래에 있다. 호이트 장군의 위에 또 누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를 끝 없이 자신의 아래에 놓고, 위로는 끊임없이 '더 인간다운', '더 완전한', '더 그럴싸한' 삶을 갈구하는 그들(스트릭랜드와 호이트 장군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의 삶은 강박적이고 피로하며, 속에서부터 썩어들어있다. 결국 썩어버린 스트릭랜드의 두 손가락처럼.
반면 엘레이자와 그 친구들은 앞선 인물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인간'(혹은 인간에 비견되는 지적 생명체)을 바라본다. 엘레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자일스는 늙은 게이이며, 젤다는 흑인 여성이며,드미트리는 냉전시대의 러시아인 스파이이자 과학자다. 이들은 모두 냉전시대 미국 사회에서의 사회적 약자로, 스트릭랜드의 정의에 따르자면 열등하거나 배척되어야 할 대상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불완전한 존재'로 정의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성 혹은 인간애(humanity)'라고 부를 만한 어떤 관념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엘레이자와 자일스의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우정을 보라. 그리고 엘레이자와 젤다의 끈끈한 유대감과 의리를, 어인을 살리고자 했던 드미트리의 노력을 보라. 이들은 불합리한 권력에 저항하는 동시에, 선뜻 타인을 위해 손을 내밀고 그를 돕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이해하는' 어인이 이들에게 하나의 아름답고 경외로운 지적 생명체이자,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비롯된다. 어인이 처한 상황은 그들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레이자와 어인의 결합은 이들에게 그다지 꺼림칙한 일이 아니다. 두 존재는 정신적인 교감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육체적인 결합까지 이루어내지만, 그것은 두 지적 생명체가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장면이다. 엘레이자와 어인 본인은 물론, 드미트리도, 젤다도, 자일스도 이들의 사랑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그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비로소 인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이 작품은 어인과 여인의 사랑을 다룬 우화를 통해 인간 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러나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인물들의 선악구도가 매우 명확한 편인데, 극 중 스트릭랜드는 지독하게도 악랄하면서도 현실에 최소한 하나쯤은 있음직한 악역이라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다. 화장실에서 손 안 씻고 나오는 데다 부하 여직원에게 추악한 시선을 던지는 남자, 다른 인종, 성별, 성소수자 등을 열등하게 여기는 편협한 우월주의자, 멀쩡하게 평범한 가정에서 잘 살고 있으면서 더 나은 삶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허영덩어리... 작품 속에서는 소련과 미국이 살벌하게 경쟁하는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글쎄, 오늘날 우리나라의 사정도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이런 사람은 꼭 있으니까.
4. 어인이 자일스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자일스가 충격에 휩싸여 어인을 비난할 줄 알았다. 그러나 자일스의 태도는 이 얼마나 관용적이었던가. '그는 야생이니 고양이를 먹은 건 어쩔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자일스의 모습은 작품이 추구하는 '인간성'에 대한 관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는 엘레이자와 마찬가지로 문화적인 우월성을 가지지 않고 어인을 대한다. 그에게 어인은 좀 다른 문화를 가진 대상일 뿐이다. 그는 어인을 용서했고, 어인은 그에게 사죄한다. 진정한, 성숙한 문화와 문화 간의 교류다.
이 장면은 언젠가 시끄러웠던 한 네덜란드 선수의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들'에 관한 발언과 비교된다. 자일스에 비하면,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다름을 '틀림'으로 섣불리 단정짓고 비난했던 그 선수의 태도는 이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한가. (필자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개고기 문화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데에 동의한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비윤리적인 도축과 유통 과정이지, 문화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5. 엘레이자는 정말 사람이었을까? 강에서 발견되었다던 그녀의 목에 있던 아가미같은 흉터는 극의 후반부에서 정말 아가미로 변한다. 그녀의 조상 중에는 어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단순히 어인의 전지적인(??) 능력으로 바다 생활에 적합하게 변하게 된 걸까? 오픈 엔딩이니 상상의 여지가 있어 좋다. 확실한 것은, 그 둘이 행복했으리라는 사실이다. 그 둘은 더 이상은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6.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간만에 정말 좋은 영화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