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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1-04-13 19:19:47

<테넷> 운명은 원래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테넷> 리뷰

1. 테러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었던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작전 도중 벽에 박혀 있던 총알이 총으로 다시 들어가는 현상을 목격한다. 작전이 종료된 후 그는 테넷이라는 조직을 찾아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inversion)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러시아 무기 밀매업자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의 음모를 파악한다. 이에 주인공은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가진 요원 '닐(로버트 패틴슨)'과 미술품 감정사이자 사토르로부터 벗어나려는 그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을 만나 미래의 공격에 맞서 제3차 세계대전을 막으려는 새로운 작전에 나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은 어렵다. 단지 엔트로피의 흐름을 바꿀 때 시간의 역행이 가능하다는 인버전 개념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 영화를 보여주는 방식이 불친절하다. 다른 시간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들은 안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상황을 가능케 하는 인버전에 대한 설명은 초반부에만 짧게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그 와중에 인물들의 동기, 행위와 인과관계 등 스토리 전개를 쫓아가는 것도 상당히 벅찬 데, 씬들이 전체적으로 짧아서 화면 전환이 잦은 데다가 장소도 금방 바뀌는 등 영화의 리듬이 빠르기 때문이다. 또한 이름이 없는 주인공이나 극단적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사토르처럼 그저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로 느껴지는 캐릭터들은 쉽게 공감하거나 마음을 붙이기 어렵다. 그 결과 <테넷>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값을 해내지 못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2. 하지만 <테넷>을 물리학의 이론을 빌려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로 이해할 때, <테넷>의 어려움, 난해함, 불친절함은 영화가 의도한 서사와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작중 인버전 현상이 암시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인버전 될 때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과관계는 사라진다. 원래 과거의 사건은 미래의 원인이며, 미래는 과거 행위의 결과여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역행하면서 그 순서는 뒤바뀌고, 역행하는 시간이 현실에 공존할 때 원인과 결과는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캣이 요트에서 다이빙하는 여인을 보며(원인) 자유롭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결과), 정작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으로 인해(원인) 요트에서 다이빙한 것처럼(결과). 

 

그렇기에 마지막 작전을 끝낸 후 그의 선택이 의지인지 운명인지 묻는 주인공에게 닐은 현실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우리는 그 운명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신이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했다 해도 우리는 살면서 이를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만약 운명이 있다면,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은 미래를 결정하는 원인이 될 수 없다. 선행을 하든 악행을 하든 이미 정해진 운명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래에 일어날 일 또한 과거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니깐.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지, 곧 <테넷>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현재를 살겠다는 닐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주인공처럼 자신의 운명에 대한 확신을 가진 채 삶을 최선을 다해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3. 이에 더해 작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주인공과 캣, 그리고 사토르의 서사 간의 대비 또한 <테넷>이 결국 운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주인공과 캣은 자신들의 미래와 그 미래를 가능케 하는 사건을 마주하고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처럼 그들은 변하지 않을 예정된 미래에 대해 조금도 알지도 못하지만, 그 미래에 자신들은 원하는 바를 이룰 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실제로 원하는 바를 이뤄낸다. 반면에 사토르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미래를 거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순응하나 정작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다. 이러한 대조는 주체적인 삶에 대한 열망, 자유의지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사토르를 막기 위한 작전에서 이용당하고 있음을 깨달은 후 작전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주인공과 사토르에게 잡힌 약점에서 벗어나 인생의 고삐를 되찾으려는 캣의 모습은 사토르에게서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영화의 주제의식은 놀란 감독의 초기 작품인 <메멘토> 혹은 <인터스텔라>를 연상케 하는, 직선에서 벗어난 구조인 <테넷>의 플롯 때문에 더욱 강조된다. 작중 과거와 미래의 사건들은 중반부, 즉 주인공이 직접 인버전 하는 순간부터 서로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영화의 전반부가 후반부의 복선이자 후반부는 그 결과이고, 결말을 보고 나면 전반부와 후반부의 인과가 또 한 번 뒤집히는 것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두 시간대가 합쳐지고 한 장면 안에 서로 다른 시간대를 공존시키는 시나리오 덕분에 영화는 앞서 뭔가 어려웠던, 놓친 거 같았던, 그리고 이해가 안 되었던 장면들을 후반부에 직관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는 영화가 과학적 설정과 관련된 내용들을 세심하게 이해시키지 않은 채, 스토리 전개를 빠르게 진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알 듯 모를 듯한 난해함과 복잡함을 경험할 때,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운명과 삶을 체감하는 영화적 경험의 전율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4. 한편 첩보와 SF 영화라는 장르 간의 만남은 <테넷>의 운명과 주체적인 삶에 대한 메시지를 새로우면서도 가장 놀란 감독다운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의 첫 첩보물인 <테넷>은 냉전과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용어를 직접 언급할 정도로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에스피오나지 장르는 두 진영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첩보원의 고뇌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근래 <본> 시리즈나 <007: 스카이 폴> 같은 첩보 영화들도 타인을 믿기 어려운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의 고뇌와 외로움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스스로의 삶을 주도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서사는 이러한 장르적 특징과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에 완성도를 더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인과 미국인을 비교하는 유머가 곳곳에 포진한 것 역시 <테넷>이 영국의 상징이자 놀란 감독이 많은 애정을 드러냈던 007 시리즈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첫 첩보 영화라는 새로움은 놀란 특유의 SF 영화스러운 상상력을 만나면서 놀란 감독만의 스타일로 귀결되기도 한다. <테넷>은 엔트로피를 통해 시간을 역행할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운명을 가능한 한 과학적인 상상력의 범위 안에서 풀어낸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우주의 섭리, 혹은 신의 명령으로 여겨질 정도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인 운명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려는 그 시도만으로도 놀란 감독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초현실적, 초자연적인 현상을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돌파하는 SF 영화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이미 꿈과 시간, 유령 등의 의미를 풀어내기 위해 <인셉션>과 <인터스텔라>에서 과학적인 상상력을 뽐낸 바 있다.

 

 

5. 더 나아가 놀란 감독 특유의 단점들이 <테넷>에서 보여준 일부 진일보한 성과들은 메시지와 주제를 더욱 깊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놀란 감독 작품에서 여성은 주로 남성 주인공의 목표, 트라우마 혹은 이상으로 존재했다. 그렇기에 전체적으로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전작들의 여성보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묘사된 캣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있어 최소한 반발짝이나마 변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고, 이는 영화의 메시지가 입체적으로 제시되는 데 힘을 보탠다. 또한 평면적이고 도구화되었다고 비판받는 주인공도 최소한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데는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영화는 주인공의 이름을 마지막까지 밝히지 않는데, 이는 운명을 마주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결국 모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전작들에서 다소 무기력했던 액션 연출의 경우에는 한 단계 진보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작중 액션은 이탈리아에서의 카 레이싱과 오슬로 프리포트에서 펼쳐지는 액션처럼 과거와 미래, 현재의 사건 간의 아귀가 맞아 들어갈 때 전율을 일으켜야 하는 순간인 경우가 많다. 이때 빠르고 리드미컬한 컷들로 이루어진 <테넷>의 액션은 현실감과 타격감이 극대화된 결과 몰입감을 잔뜩 끌어올리고, 그 순간의 충격을 최대로 만든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공존시키는 상상력으로 무장한 <테넷>은 분명 난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려운 영화다. 놀란 감독의 단점들도 여전히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수작이기도 하다. 두뇌를 자극하는 놀란 감독 특유의 스타일과 공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운명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느끼게 되는 충격과 전율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O(Outstanding, 특출남)

아무리 이해가 안 돼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전율이 인다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runch.co.kr/@potter1113/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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