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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로진2021-11-25 18:17:39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홀로서는 것

드디어 한국에 상륙한 디즈니플러스 속, <토이스토리4> 리뷰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토이스토리1이 1995년에 나온 이래, 2019년까지 네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1995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20대 중후반이다. 우디의 첫 주인인 앤디도 이제 서른이 넘었겠다.

 

내가 없는 사이 움직이고 말하는 장난감들이라.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보았을 법한 이야기이고, 픽사는 이를 구현했다.

 

 

 

심리학 네임드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전조작기(2~7세, 앤디, 보니 또래)에는 아이들에게 상징적 기능이 발달한다.

 

물활론적 사고가 대표적이다. 인형도 살아있고, 장난감도 살아있고, 지나가는 강아지 고양이도 다 자기 말을 알아듣고,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그러는 줄 안다.

 

 

 

나도 고만할 때, 인형들을 동원해서 뭔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 필통 속 연필들을 가지고 밤새 떠들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병아리 인형의 머리에 짐을 올려두고 일을 시켜먹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나기도 한다.

 

 

 

 

 

 

토이스토리4가 개봉된 지 2년이 지났다. 어떠한 OTT에도 올라오지 않더니, 디즈니플러스가 달콤한 자본의 맛을 보여주었다.

 

 

 


앤디에게서 보니에게로 간 우디와 친구들. 보니는 앤디와는 다른 아이이고, 우디의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 한때 우디는 장난감들을 통솔하는 장난감대통령이었다면, 이제는 벽장 신세를 면치 못한다.

 

보니는 드디어 유치원을 다니게 되는데, 유치원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우디는 그런 보니가 영 걱정이다. 보니가 적응을 하지 못할까 봐서. 우디는 나름대로 아이들에 대한 통찰, 말하자면 짬이 있기 때문에 보니가 유치원 생활을 힘들어할 거란 걸 안다. 따라가겠다고 하자 다른 인형들은 우디를 말린다. 말리는 정도가 아니라, 다시 벽장에 집어 넣어버린다.

 

 

 

하지만 우리의 용감한 카우보이 우디는 보니의 가방 속으로 숨는다. 아니나 다를까 보니는 유치원 첫 시간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고, 심술궂은 남자애가 보니의 미술도구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우디는 보니의 가방에서 몰래 빠져나와 미술도구들을 제자리에 둔다. 보니는 그날, 처음으로 스스로 장난감을 만든다. 포크를 재활용해서 만들었으니 이름은 포키. 모양새는 엉성하지만 보니는 포키와 사랑에 빠진다. 아마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일 거다.

 

 

 

우디에게는 관심도 없고 포키만 끌어안고 사는 보니이지만, 우디는 포키가 도망가지 않도록 포키를 지킨다.

 

왜일까? 주인에 대한 충성심? 우디의 행동이 과해 보일 수도 있다. 인간에게 지나치게 개입하는 장면들은 누군가에게는 선을 넘는 행동일지도.

 

 

 

중반부에 우디는 그것을 '의리'라고 부른다.

 

 

 

주인과의 의리, 장난감친구들과의 의리.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우디에게 주어진 일관된 사명은 의리였다.

 

1편에서 앤디가 버즈를 갖게 되자 우디를 거들떠보지 않을 때, 버즈를 질투하여 창밖으로 밀어버리지만 버즈를 구해내면서 우디의 의리는 쭉 이어져왔다.

 

2편에서는 장난감들이 수집가의 손에 넘어갈 뻔한 우디를 지킨다. 그렇게 그들의 우정은 견고해진다.

 

3편에서는 앤디가 대학에 가면서 장난감들을 보니에게 넘겨준다. 장난감나라가 새로운 세계로 개편됨으로써 그들은 다시 한번 자기들의 우정을 다짐한다.

 

 

 

다시 토이스토리4로 돌아가보자. 포키는 자꾸 쓰레기통을 찾아 도망친다. 출신이 쓰레기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집에서는 집 안에 있는 쓰레기통에 처박히니 금세 찾아내지만, 보니 가족이 캠핑카 여행을 떠났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어디든 쓰레기통만 보이면 들어가려는 포키와 기어코 찾아내는 우디.

 

 

 

우디는 한 골동품상점에서 옛 친구 보핍의 스탠드를 발견한다. 보핍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골동품상점은 장난감들의 지옥이다.

 

무시무시한 개비개비와 마네킹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소리장치가 고장나 아이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개비개비의 앞에 소리가 멀쩡히 잘 나는 우디가 제 발로 기어들어오다니.

 

 

 

그들은 우디에게 소리장치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지만 우디는 거부한다. 그래서 결국 포키 인질극이 시작된다.

 

우디는 포키를 찾으려다 놀이공원에서 보핍과 마주한다.

 

보핍은 예전의 그 공주가 아니다. 치마 대신 활동적인 바지를 입고, 청설모로 분장한 자동차를 험하게 몰고, 주인 없이 스스로 삶을 이끌어나간다. 우디는 보핍의 도움을 받아 골동품상점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선택되지 못한 수많은 장난감들도 만난다.

 

듀크 카붐이 대표적이다. 과대광고에 속아 듀크 카붐이라는 오토바이 타는 장난감을 샀지만 장난감이 어찌 광고와 같겠는가. 멀리 날아가지 못하는 듀크 카붐에 실망한 주인 '장'은 장난감을 버린다.

 

 

 

포키를 구하기 위한 우여곡절 가운데, 버즈는 우디를 구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가 놀이공원을 탈출하고 싶어하는 더키와 버니를 만난다. 개비개비처럼 한 번도 주인을 갖지 못한 인형들이다.

 

 

 

보핍, 버즈, 우디, 더키와 버니가 힘을 합쳐 포키를 구하려고 했지만 골동품상점에서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실패했을 때, 모두가 포기하기로 했지만 우디는 다시 포키를 구하러 간다. 그리고 결국 자기의 소리장치를 개비개비에게 내어준다.

 

 

 

'내 이름은 개비개비야. 사랑해'라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개비개비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간절히 원하는 어떤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삶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픽사는 <소울>에서도 반복한다.

 

 

 

우디는 절망한 개비개비를 데리고 보니에게로 간다. 그러다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은 여자아이를 보게 되는데, 개비개비는 그 아이의 공포와 외로움에 공감하면서 그 아이에게로 간다. 아이에게 개비개비는 같이 길잃은 자가 되어 준다.

 

 

 

보핍의 진두지휘로 보니네 차와 만나기로 한 회전목마까지 왔을 때, 듀크 카붐은 난생 처음으로 장거리 날아오르기를 성공하면서 "장을 위하여!"라는 멋진 말을 남긴다. 

 

모든 임무를 완성한 우디. 이제 보니네 차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우디는 돌아가는 대신 보핍과 주인 없이 스스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이제 친구들과 작별할 시간이다. 

 

 

 

*

 

 

 

토이스토리에 출연하는 장난감들은 모두 성장한다.

 

앤디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우디가 다른 장난감들과 우정을 쌓고, 같이 모험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바뀐다.

 

그러는 동안 어린이였던 앤디는 대학생이 되고, 앤디는 장난감을 다른 사람에게 줄 줄 알 만큼 성장한다.

 

우디도 앤디 없이 못살 것 같았지만, 앤디가 떠날 때 잘 가, 나의 파트너라며 앤디를 보내줄 줄도 안다.

 

 

 

4편에서 가장 돋보였던 캐릭터는 보핍이 아닐까 싶다. 드레스를 입은 예쁜 바비인형이 아닌,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다만 아쉬웠던 건 보핍과 우디, 포키 외 다른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미미했다는 점이겠다.

 

 

 

우디는 성장하여 더 큰 세상으로 떠났다. 온종일 주인 걱정만 하는 장난감이 아니라, 이제 장난감의 생을 제대로 살아볼 참이다.

 

우디와 버즈, 그 친구들이라는 세계관을 깨버렸다고 괜히 봤다는 리뷰를 몇 개 보았는데, 우디도 떠날 때가 되었고 우리도 우디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홀로서는 것이다.

 

개비개비의 끈질긴 집착으로부터, 듀크 카붐의 트라우마로부터, 우디의 주인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나에게 당연한 것들로부터 독립해야만 한다. 

 

아이는 자라 부모를 떠나고, 부모도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 친구들은 자기 알아서들 잘 살고, 각자가 내던져진 세상에서 자기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나는 토이스토리를 볼 때마다 결국 울어버린다. 그리고 올가을에 나를 울게 했던 책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안정을 추구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성장하지 못했다. 독에 갇힌 나무처럼 가지를 마음껏 뻗어나갈 수가 없었다. 고립되었다." (<밝은 밤>, 최은영, 문학동네, 299p.)

작성자 . 김로진

출처 . https://brunch.co.kr/@delivery-k/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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