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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M2025-03-20 22:40:35

미키 17: 나는 몇번째 '실패작'인가?

<미키 17>

 

 

< 미키 17>

나는 몇번째 '실패작'인가?

“당신은 몇 번째 미키입니까?” 친구 ‘티모’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지고 못 갚으면 죽이겠다는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야 하는 ‘미키’. 기술이 없는 그는, 정치인 ‘마셜’의 얼음행성 개척단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4년의 항해와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한 뒤에도 늘 ‘미키’를 지켜준 여자친구 ‘나샤’. 그와 함께, ‘미키’는 반복되는 죽음과 출력의 사이클에도 익숙해진다. 그러나 ‘미키 17’이 얼음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와 만난 후 죽을 위기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다.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둘이 된 ‘멀티플’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현실 속에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자알 죽고, 내일 만나”

-네이버 영화 소개-

 

 

 

 

도망치듯 떠나온 곳에 파라다이스는 있을리 만무하다.

미키는 자신이 어떤 판단을 한지도 모른채, 우주에서 '실패작'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우주세계의 '미키'에게는 성공이란 없다.

실패를 위해 태어난, 삶의 목적이 실패 그 자체인 삶이다.

이곳이 지옥과 다를 것이 뭔가?

불교의 지옥에서는 사람이 죽지도 않고, 끝없는 고통과 형벌이 계속된다.

끝이 없는 고통의 연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주도 미키에는 곧 지옥과 같았으리라.

 

 

 

 

너는 나, 나는 너.

운 좋게 살아남은 미키 17이 돌아온 곳에는 미키 18이 있었다.

분명 나인데, 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니것도 아니다.

미키 18과 미키 17 중 어느 미키가 진짜 미키라고 할 수 있을까?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

단순히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미키 17이 진짜인가?

이와 비슷한 물음을 하는 재밌는 만화가 있다.

바로,

'오억년 버튼'

 

 

 

사진 출처: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49552

 

 

지금 당장 버튼을 누르면 오억년간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버텨야하고, 오억년을 다 버틴 후에는 버튼을 누른 내가 큰 돈을 벌게되는 간단하지만 복잡한 게임이다.

현재의 내가 오억년을 버틴 기억을 잃었다고해서 내가 오억년을 버텼던게 사라지나?

돈을 받은 내가, 오억년을 버틴 나랑 같은 사람인가?

-

생각만해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문제이다.

이 만화와 미키들의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존재하는 하는 한, '진짜'를 정의한다는 것은 정말 해결하지 못할 난제라는 것이다.

-

두 명의 나 모두 '나'라면, 그 둘을 어느정도 구분할 기준이 필요하다.

여기서 미키가 선택한 새로운 기준은

'주체성'과 '이타성'

이다.

사람은 주체적이며, 그 어떤 동물들보다 관계적이다.

독재자의 무조건 적인 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내 삶을 이끌어나가는 주체성과 타인과의 관계, 더 나아가, 이종과의 관계까지 고려하는 이타성이 더 강한 미키가 '진짜' 미키에 조금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기에는 미키 17이 더 '진짜'답다라고 느끼는 것 아닐까.

(이 부분에서는 감독이 주인공을 '미키 17'로 잡은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 영화의 모든 구조적 장치들이 미키 17을 주인공으로 보이게끔 했기 떄문에 관객이 그를 진짜라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위의 설명은 이러한 연출 부분을 제외하고 말한다.)







자유와 공존.

미키를 끝까지 쫓아오던 빚쟁이, 끝없는 복종을 강요한 독재자 그리고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실패작'으로서의 삶.

이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마침내 마주한 자유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자유'야 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하는 마지막 요소이다.

-

그리고 영화 '미키 17'은 인간에서 더 나아가 '공존'을 말한다.

우리는 혐오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대 사람의 혐오.

더 나아가 사람대 동물의 혐오.

심지어 동물은 일방적으로 혐오를 받아내고 있다.

이 영화는 다양한 생명체의 공존과 생태계의 평화를 기저에 강조한다.

우리는 현재 우주로 나아갈 방법을 찾아보기 전에,

지금 당장 맞닥뜨린 지구에서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공존이 곧 인간으로서 가장 존중받으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만으로는 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작성자 . YELM

출처 . https://blog.naver.com/rendezvouscine/2238041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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