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29 21:42:43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문제는 누가 들어줄 것인가
<이키루> 영화 리뷰
영화는 주인공이 현재 처한 상황과 그가 근무하고 있는 시청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주인공인 칸지 와타나베는 시청의 시민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쿠로에 동 부인회는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물 웅덩이에서 나는 악취 문제 해결과 공원 설립에 관해 건의를 하고자 시민과에 문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토목과에서 위생과로 위생과에서 공원과로 즉 부서에서 부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일을 진행함에 있어 어떤 정해진 절차도 기준도 없이 상황이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 장면과 그 상황 속에서 영화가 개봉한 1950년대 당시 일본의 관료제의 문제점을 읽을 수 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인 부하직원 토요 오다기리는 시청에서 변함없이 정해진 일에 실증을 느껴 일을 그만두고 인형 공장에서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 또한 시민의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청과 그 부서인 시민과가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부하직원이었던 오다기리 씨가 힘든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고 뿌듯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자신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뿌듯함을 찾고자 노력하기 시작한다.
와타나베가 하고자 했던 일을 바로 쿠로에 동 부인회가 시민과에 재차 건의했던 물 웅덩이 문제와 공원 설립 문제였다. 그가 물 웅덩이와 공원 설립 문제 관련 서류를 꺼내자 다른 부하직원들은 “그건 토목과 혹은 공원과의 일이 아니냐”며 자신들의 일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비단 토목과와 공원과만의 일이 아닌 ‘시민과의 일이기도 하다’며 자신의 부서에도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말한다. 어떤 문제나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와 원인을 단 한 가지로만 단정할 수 없듯 쿠로에 동 부인회가 겪는 문제는 어느 한 부서에서만 처리해야 할 사항이 아닌 관련 부서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 연관이 있는 부서에 이 일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며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다른 부서의 사람들은 시민과의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참견을 하냐며 화를 내고 자신의 부서와는 연관 없는 일이라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거듭되는 거절에도 와타나베는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한 결과 결국 물 웅덩이 문제를 해결하며 공원 설립 착수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 공원을 완공한 뒤에야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무도 선뜻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은 문제를 그는 시민과를 비롯해 관련 부서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인지하며 적극적으로 시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행정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장에서는 그의 이런 노력을 뒤로한 채 그의 성과를 자신이 가져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빴다.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거리의 쓰레기통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쓰레기통을 가득 채워야 될 만큼의 서류가 필요하다는 대화를 한다.
영화의 주요 사건과 이런 단적인 예시를 두고 볼 때 당시 일본의 행정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효율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부하직원이었을 당시 의견을 제시하는 행위를 월권행위 취급 받았음을 말하며 고위 직책을 맡기 전까지는 그저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할 수 밖에 없었음을 토로한다. 이 부분을 통해 일본 관료제의 위계질서가 문제 해결에 있어 걸림돌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끝내 직원들은 와나타베의 공을 인정하고 그를 본받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며 대화를 마친다. 그러나 또 다른 행정 문제가 발생하자 그들은 이전에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다시 수동적이고 복잡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는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의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단적으로 생각하며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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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면서 한 선택에 대한 후회의 감정을 그리다, 영화 <관상>
장면장면은 다 알고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영화 <관상>. 대표적인 장면들은 다 알고 있지만 스토리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장면 퍼즐들을 맞출 겸 영화를 플레이했다.
영화 <관상> 시놉시스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다 들어있소이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 처남 팽헌, 아들 진형과 산속에 칩거하고 있던 그는 관상 보는 기생 연홍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고,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된다.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내경은 김종서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관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BGM은 역작이 아닐까?
솔직히 장면들과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작품이어서 보다가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미 아는 장면의 순서를 잘 맞춰보고자 보는 영화였고, 한 번 본 작품은 쉽게 질려하는 스타일이라 아무리 좋아하는 작품도 몇 번씩 돌려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 <관상>은 그 지루할 수 있는 틈마다 bgm이 텐션을 끌어올려줬다.
이정재 등진신은 bgm을 이미 알고 있어서 나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했는데 이미 알고 있어도 그 bgm은 사람 심장을 쫄리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bgm은 한명회가 등장할 때 소리가 울리면서 이정재가 등장할 때와는 다른 묘한 위압감을 자아내는데 캐릭터의 특징을 잘 잡아내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데 쉽게 빠져들 수 있게끔 잘 만들지 않았나 싶다.
결국 제 손으로 역모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단종을 설득시키기 위해 수양의 얼굴에 삼각형 모양의 문신을 새겨넣는 내경과 연홍. 수양이 이리의 상으로 이미 왕위를 찬탈할 만큼의 관상을 가지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는 역모의 상을 직접 수양의 이마에 그려넣은 내경과 연홍을 보면서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설득을 하려고 했어도 그렇지 역모의 상인걸 알면서도 수양의 얼굴에 3개의 점을 찍얺는 그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었을까? 단종을 설득할 방법이 그밖에 없었을까? 안타까운감정이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수양이 역모를 일으켰고, 정말 관상대로라면 관장쟁이인 내겸은 수양이 역모를 일으키는데 도움을 준 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종을 설득하려다가 자기 손으로 역모를 일으킨 사람에게 훈풍만 불어준 격이 됐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아들까지 잃어버리는 잘못된 선택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파도가 아닌 바람을 보아라
아마 대부분의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영화 <관상>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를 "내가 왕이 될 상인가?"와 "파도만 봤을 뿐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은 보지 못했다."일 것이다. 나 역시 내겸의 마지막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수양의 역모를 막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삼촌인 수양을 철썩같이 믿는 단종을 설득해야한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이 행한 여러가지 행동들을 후회하면서 하는 말이다.
저 대사를 들으면서 과연 인간이 파도만 보지 않고 바람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라는 게 원하는대로 흘러간다면 모든 사람은 행복하고 평화롭고 이상적인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고 내 마음이지만 그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도 사람이다. 다양한 일을 겪으며 깨달은 사실이지만 저 말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다. 마지막 바다를 바라보며 영화가 마무리되는데 그 여운이 상당히 오래갔던 것 같다.
영화 <관상>은 삶의 선택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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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퀸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7가지
안녕하세요, 여러분! 패션 블로거 BIGSEOUL입니다.
얼마 전 최근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았는데요.
오늘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전설적인 가수 퀸에 대해서 우리가 몰랐던 7가지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1.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역을 맡은 라미 말렉은 영화에서 프레디의 치아를 본뜬 틀니를 착용했다.
저는 라미 말렉이 실제로 이가 튀어나온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프레디의 치아처럼 만든 틀니를 꼈다고 합니다.
라미 말렉은 처음에는 그 틀니(?)를 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영화를 하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정이 들었다고 해요.
음악사에 길이 남을 전설 프레디 머큐리의 역을 맡을 수 있어서 너무나 영광이었기에 이를 기념하고자 저렇게 gold grill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2.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는 실제 프레디의 목소리가 아니다.
네! 영화 속 퀸의 노래들에서 프레디의 목소리는 따지고 보면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배우 라미 말렉의 목소리와 캐나다 가수 마크 마텔의 목소리, 그리고 실제 프레디의 목소리가 합쳐진 것인데요.
마크 마텔은 2011년 로저 테일러가 주최한 퀸 트리뷰트 공연을 위한 오디션에서 보컬파트를 맡았던 가수입니다.
그리고 라미 말렉은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모든 노래를 실제 본인이 불러야했다고 해요.
더불어 퀸의 멤버인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서 더욱 영화에서 노래가 생생했던 것 같습니다.
3. 퀸은 실제로는 멤버들 간 싸움으로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 부분이 가장 실제와 차이가 나는 부분인데요.
영화에서는 프레디와 멤버들이 프레디의 솔로 계약으로 불화를 겪어서 잠시 해체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 10년간의 월드 투어로 모든 멤버가 지쳐있어서 퀸으로서의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각자의 솔로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해요.
하지만 영화와 달리 서로 연락을 꾸준히 했고, 그 해 말부터 그룹 활동을 위해 작업을 같이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라이브 에이드 공연 역시 재결합한 뒤 급하게 준비한 것이 아니라 리허설을 잘 하고 갔다고 하네요.
4. 프레디 머큐리는 엄청난 고양이 덕후였다.
프레디 머큐리도 고양이 앞에서는 집사에 불과하죠.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그는 엄청난 냥덕후입니다.
자신의 첫 솔로 앨범 <Mr. Bad Guy>의 헌정사로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답니다.
"This album is dedicated to my cat Jerry - also Tom, Oscar and Tiffany, and all the cat lovers across the universe. Screw everybody else!"
(이 앨범을 나의 고양이 제리에게 바친다. 톰, 오스카와 티파니 그리고 세상의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은 다 꺼져!)
5. 영화 속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의 관객들의 목소리는 실제 전 세계의 퀸 팬들이 직접 부른 목소리를 합친 것이다.
Bohemian Rhapsody | "Put Me In Bohemian" - Mixing in the Vocal | 20th Century Fox
엄청난 수의 관객임을 실감할 수 있던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실제 공연 영상을 보면 감동이 더하더라구요.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되어 퀸의 음악을 즐기는 모습에서 음악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요.
영화에서 팬들이 따라부르는 목소리는 실제 팬들의 목소리를 사운드 감독이 직접 가져와서 합친 거라고 합니다.
정성스럽고 디테일한 연출에 감동이 더해지는 것 같네요!
6. 실제로 퀸은 첫 앨범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영화에서는 퀸이 차를 판 돈으로 녹음한 첫 앨범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그려지죠.
하지만 실제로는 첫 앨범 Queen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지도 못했고 그들이 기대한 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후 Mott the Hoople이라는 락커의 오프닝 공연에서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기 위해 프레디 머큐리가 독특한 옷을 입고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그때 그들을 봐두었던 기획사 EMI가 퀸에게 연락을 했고, 그렇게 녹음한 두번째 앨범이 큰 히트를 친 것이라고 합니다.
7.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글 발매를 반대한 기획사 사장 '레이 포스터(Ray Foster)'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글 발매를 반대하며 실패할 것이라고 하던 기획사 사장, 기억하시나요?
라이브 에이드 공연 중 We are the champions 장면에서 퀸을 놓친 그의 쓴 표정이 비춰져서 다들 기억하실텐데요.
사실 Ray Foster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이 캐릭터는 EMI의 사장인 Roy Featherstone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요.
캐릭터와 달리 Roy Featherstone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싱글로 나오기엔 너무 길다고 생각은 했지만 여전히 퀸의 엄청난 팬이었다고 해요.
* 본 콘텐츠는 블로거 BIGSEOUL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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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추천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내일 드디어 대한민국 대표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을 하는데요!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정상적으로 개최됐으며, 그동안중단되었던 프로그램도 모두 재개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티켓 예매는 이미 진행되었지만, 현장 예매도 가능하니
오늘 씨네랩에서 추천하는 작품 외 다른 작품들도 한번 살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추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문 앞에 두고 벨 x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큰맘 먹고 마련한 중고 자전거를 끌고 배달 일에 나선 지호는 어느 밤 우연찮은 배달 실수로 동분서주하게 된다. 일을 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역설적인 날. 골목 어귀마다 배달 라이더와 마주칠 수 있는 시대에 어딘지 익숙한 상황, 있을 법한 일들이 펼쳐진다.CINE PICK!
독립영화를 시작으로 상업영화 그리고 드라마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있는 이주영 배우의 감독으로서 첫 번째 연출작인만큼 많은 이들에게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나의 작은 나라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도쿄에 인접한 사이타마현에 사는 17세 쿠르드인 소녀 사랴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하여 다른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청춘을 보내왔다. 하지만 가족의 난민 신청이 인정받지 못하고, 아버지가 입국관리국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CINE PICK!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끄는 회사인 분부쿠에 소속된 가와와다 에마의 상업 장편 데뷔작이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초청되어 엠네스티 국제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에브리씽 윌 비 오케이 (2021)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동물들의 영화관이 열리고 스크린에는 인류의 역사가 펼쳐진다. 히틀러, 베트남전, 원폭, 나치수용소, 내전, 학살 등 인간이 자행한 비극의 역사를 관람한 동물들은 거기서 무얼 배울 것인가? <에브리씽 윌 비 오케이>에서 리티 판은 동물들이 권력을 쥐게 된 세상을 상상한다.CINE PICK!
동물이 권력을 쥐게 되는 세상을 스톱모션으로 담아낸 영화이다. 화면 분할, 내레이션 등을 통해
독특한 감독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칼렛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어느 날 한 마법사가 훗날 줄리엣이 하늘을 나는 주홍 돛을 단 배에 납치될 거라는 예언을 하고, 줄리엣은 이 예언을 굳게 믿으면서 왕자를 기다린다.CINE PICK!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은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작품으로 칸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감독 특유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디셈버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7년 전, 고등학생이던 딸이 친구의 손에 살해당했다. 딸을 잃은 부모는 이혼하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 채 남은 삶을 분노와 슬픔에 빠져 보낸다. 어느 날, 살인을 저질렀던 딸의 친구가 주어진 형량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낸다. 아버지는 지금은 재혼한 어머니를 만나 딸을 죽인 살인자를 사회로 복귀시켜서는 안 된다고 설득한다. 둘은 법정에서 딸을 죽인 살인자와 대면한다.CINE PICK!
스틸샷 속 배우의 눈빛이 강렬해 영화에 대한 궁금증 불러일으킨다. 청소년 범죄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전작에 이어 구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6명의 등장인물 (2022)
ⓒ 부산국제영화제
SYNOPSIS긴장감이 감도는 영화 세트. 호러영화를 촬영하려는 감독(마리오 마우러)은 무척이나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제멋대로인 배우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와중에 갑작스럽게 정체불명의 여섯 명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죽은 작가가 남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CINE PICK!
태국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극작가 루이지 피난델로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을 각색한 작품이다.
슬픔의 삼각형 (2022)
ⓒ 온피프엔
SYNOPSIS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모델 커플이 탑승한 호화 크루즈가 좌초되면서 무인도에 남겨진 사람들의 생존기CINE PICK!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자,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두 번째 황금종려상이다.
초현실적인 코미디를 그린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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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NE1, 블랙핑크
2NE1, 블랙핑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블랙핑크 : 세상을 밝혀라'을 봤다.
한국의 대중가요에서 특히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세계로 퍼져나가는 음악을 K-POP으로 부른다. 많은 아이돌 그룹이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BTS와 블랙핑크가 단연 돋보인다.
나는 아이돌, 아이돌 그룹에 거의 관심이 없다. 내가 '꼰대'이라서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음악 취향과 음악성이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지금도 항상 듣는 음악이 2NE1이다.
투애니원은 이미 공식 해체한 그룹이다. 그룹 리더인 '박봄'도 이제 30대 중반이 되었으니, 이들도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투애니원의 음악이 참 좋다. 여느 걸그룹과 확실하게 다른 음악, 음악 자체가 일단 좋고, 멤버 네 명 - 박봄, 산드라박, 씨엘, 민지 - 의 개성도 뚜렷하고, 노래, 춤, 의상 모두 훌륭하다.
투애니원이 처음 등장할 때를 기억한다. 그때가 데뷔였다는 건 몰랐지만, 2009년, 아내와 영화를 보러 코엑스에 있는 메가박스에 가서 영화관 자리에 앉아 있었고, 곧이어 광고가 나왔다. 그 광고 가운데, 빅뱅과 네 명의 여성 그룹이 나왔고, 이들이 부른 노래는 '롤리팝'이었다. 나는 그 광고가 투애니원의 데뷔곡인지 몰랐지만, 매우 감각적이고 인상 깊은 노래여서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투애니원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듣게 되었다. 투애니원의 노래는 강렬하고 통쾌하다. 여성 아이돌 그룹 가운데서 거의 유일하게 '걸크러시' 모습을 보여주었고, 네 명의 보컬과 춤은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투애니원은 7년 동안 활발하게 활동했고, 지금은 각자 따로 활동하지만, 다시 뭉칠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다. 지금 유튜브의 '투애니원 공식 계정'에는 구독자가 꾸준히 늘고 있고,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나 역시 '2NE1'의 팬이다.
블랙핑크의 등장은 투애니원보다 더 화려하고 완벽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들이 연습생 때부터 데뷔, 데뷔 이후의 월드투어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듯 블랙핑크는 '2NE1'의 '럭셔리 버전'이라고 봐도 좋겠다. 같은 YG 소속이고, 2NE1의 음악을 프로듀싱한 '테디'가 블랙핑크의 음악도 프로듀싱했다는 점에서, 블랙핑크는 2NE1의 유전자를 거의 그대로 복제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들이 연습생 시절에는 함께 연습하던 동료들이 20-30명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탈락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결국 지금의 블랙핑크 네 명 - 지수, 제니, 로제, 리사 - 이 남았다. 이들의 가창력과 안무는 당연히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미모도 빼놓을 수 없는데, 노래, 춤, 외모까지 완벽하게 갖춘 아이돌 그룹 가운데 블랙핑크는 단연 톱이라고 생각한다.
블랙핑크가 보여주는 성과는 정말 대단하다. 2NE1도 훌륭했고, 여전히 훌륭하지만, 블랙핑크는 선배인 2NE1의 어깨 위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지금 세계를 주름잡는 K-POP의 물결을 타면서 블랙핑크는 실력과 함께 운도 좋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2NE1이 '걸크러시'의 모습을 조금 더 강하게 드러냈다면, 블랙핑크는 화려하고 '럭셔리'한 컨셉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힘 있는 춤과 도도함, 강렬한 사운드와 화려한 안무는 팬들을 매혹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2NE1과 블랙핑크의 음악은 매우 비슷하다. 강렬한 비트를 배경으로 깔고, 네 명으로 구성된 멤버, 메인 보컬, 서브 보컬, 메인 힙합, 메인 안무를 담당하는 멤버가 있고, 격렬하면서 힘찬 안무, 네 명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당당하고 자신 있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 등, 프로듀서가 같고, 지향하는 음악이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블랙핑크는 2NE1의 모습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 걸그룹이다.
블랙핑크는 아이돌 걸그룹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기록은 모두 '세계 최초'이자 '세계 최고'들이다. 한국의 대중음악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건 기분 좋고 자부심을 가질 일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이제는 세계를 향해 더 활발하고,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가능성이 앞으로도 꾸준히 확대될 것을 기대한다.
2NE1, 블랙핑크 - 2
블랙핑크가 만들고 있는 놀라운 기록들은 분명 긍정적이다. 한국 대중가요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그로 인한 유무형의 자산이 확대, 확산하고 있는 건 분명 우리나라에게도 좋은 현상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2NE1이나 블랙핑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연예산업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한, 기획사와 아이돌, 걸(보이)그룹의 소비, 성상품화 등에 관한 문제 의식이다.
'기획사'로 불리는 연예 기획회사는 아이돌 뿐 아니라 연예인들과 계약을 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회사를 말한다. 연예 기획사는 장르에 따라 구분되는 특징이 있어서, 가수들만 관리하거나, 영화배우만 관리하는 방식으로 특화되어 있다. 대형 기획사는 장르에 관계 없이 가수, 배우, 탤런트, 개그맨 등과 계약을 맺기도 한다.
대중연예인이 이름 있는 기획사에 소속된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형 기획사에 유명 연예인이 많이 소속되어 있으면, 기획사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명 연예인이 기획사를 먹여 살기기도 한다. 작은 기획사에 소속한 무명 연예인이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되고, 많은 돈을 벌면 작은 기획사는 스타가 된 연예인 한 명의 힘으로 성장해 중형, 대형 기획사로 성장할 수 있다.
연예기획 사업은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투기적 성향을 갖는다. 연예인이 되려는 사람은 많지만, 이들 가운데 스타가 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설령 유명한 연예인이 된다 해도 아이돌, 아이돌 그룹의 경우,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아 연예기획사는 아이돌(그룹)이라는 상품을 최대한 활용하게 된다.
모든 자본주의의 상품이 그렇듯, '아이돌' 역시 하나의 '상품'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상품도 있지만, 특수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상품도 있다. 공장에서 만드는 상품은 노동자의 '노동'이 투입되면서 잉여가치가 생산된다. 즉, 노동자의 노동이 잉여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반면 연예산업은 노동자의 역할이 사라지는 대신 - 기획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당연하고 - 연예인은 그 자신이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특수한 형태의 '상품'이다. 기획사는 자신이 고용한 특수한 형태의 노동자에게 투자한다. 기획사는 건물, 토지, 돈을 가지고 있으며 이 자산을 바탕으로 자신의 '상품'이 될만한 대상을 찾는 것이다.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은 특수한 형태의 노동자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임금을 받으며 일하지 않지만,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연극, 연기를 하거나 공연을 하면 그에 대한 일정한 대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자신이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노동자다.
이들이 '특수한 형태의 노동자'인 이유는, 자신의 재능으로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건물주), 부르주아가 될 확률이 다른 노동자보다 높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되고픈 청소년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들 가운데 스타가 될 확률은 0.1%도 안 된다. 그렇기에 더욱 '스타'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것이다.
기획사(자본)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품에 투자해야 하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이들은 재능 있는 청소년을 발굴해서 혹독한 연습생 과정을 거쳐 데뷔시키는데, 이 과정이 짧게는 몇달이지만 길게는 십년도 걸리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통 2-3년에서 5-6년 사이에 연습생 과정을 마치고 솔로 또는 그룹으로 데뷔하는데, 데뷔부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고, 그들의 노래가 많이 팔리고, 아이돌(그룹)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또 시간이 필요하다.
기획사는 자신의 '상품'인 아이돌(그룹)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다양한 방식의 홍보, 마케팅, 로비를 펼친다.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하고, 유튜브 채널을 만들며, 오프라인의 다양한 행사-대학, 잔치, 지역 등-에 출연해 얼굴과 이름, 노래를 알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뉴페이스 '상품'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연예기획사의 요구와 주문에 따라 일정을 소화한다.
기획사에서는 새로운 상품이 충분히 '판매'될 것인지 빨리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판매'는 방송출연, 음반(디지털 포함) 판매, 대중의 소구력, 인지도, 각종 행사 스케줄의 종류와 양 등을 말한다. 즉, 기획사가 아이돌(그룹)에 투자한 총비용와 이윤을 합한 매출 이상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면 아이돌(그룹)은 계속 활동할 수 있으며, '스타'가 될 확률이 높다.
반면 기획사의 예상보다 반응이 낮은 아이돌(그룹)은 일찍 폐기해 지출을 가능한 적게 만든다. 기획사는 '상품(아이돌(그룹))'은 꾸준히 만들고 있으므로, 상품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미련없이 폐기한다. 오로지 자본의 논리만이 '연예 시장'에서 통용되는 건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돌'은 인간으로의 존엄과 권리가 종종 침해당하게 된다. 단적으로 기획사와 아이돌 사이의 계약조건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져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고, '갑'인 기획사의 의도를 '을'인 개인이 반박하거나 항의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럼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불공정한 계약과 처우,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연예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성공했을 때 받는 결과가 극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예시장이나 스포츠시장은 그런 점에서 같다. 자신의 재능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혹독한 반면, 성공 가능성은 낮고, 성공하지 못하면 아무런 대가가 없지만, 일단 성공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부와 명예를 누리기 때문이다.
연예 시장에서 기획사의 역할은 재능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시장의 상황에서 자본을 투입해 홍보, 마케팅을 동원해 성공하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재능만 있다고 성공하지 못하는 연예시장에서 홍보와 마케팅은 결국 자본을 대량으로 투입해야 하고, 자본의 규모에 비례해 아이돌(그룹)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
아이돌(그룹) 가운데 여성이 많은 이유는 가부장 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남성 중심,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늘 '대상화'된다. 여성은 '사회적 소수자'이면서 '사회적 약자'이기에 남성보다 더 많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대상이 된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비율로 '성 상품'으로 판매되는데, 이것은 가부장,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안정된 직업이나 직장의 자리를 남성들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불공정, 불평등한 구조가 원인이다. 즉, 여성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성'을 판매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는 것이 사회적 불평등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해야 하고, 성 착취와 성별 불평등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성의 '성 상품화'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여성도 나타난다. '성'을 상품화 하는 것이 평범한 노동을 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편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한 일부 여성은, 체제의 한계 - 가부장제, 남성 우월주의 사회 - 를 빠르게 인정하고, 그 체제 안에서 순응하며 자신의 재능이나 '성'을 상품으로 판매하려는 전략을 세운다.
연예기획사에 수많은 청소년이 몰려드는 것도 이런 이유와 맞물려 있다. '스타'로서의 성공과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장미빛 미래와 자신의 재능을 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 이런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의 논리,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등이 결합해 연예 시장은 더욱 경쟁이 치열해진다.
아이돌(그룹), 특히 여성 아이돌(그룹)의 경우, 그들의 노래와 춤이 경쟁적으로 선정성을 띄는 것은 명백히 자본의 논리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남성 아이돌도 어느 정도 선정적이긴 해도, 그들이 '남성'이라서 '성적대상화'는 여성 아이돌에 비해 덜 하다.
여성 아이돌(그룹)은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는데, 이것을 남성 아이돌(그룹)과 비교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남성 아이돌(그룹)도 옷을 벗고 맨몸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드문 경우고, 여성 아이돌(그룹)은 거의 예외 없이 짧은 치마, 짧은 바지, 배와 배꼽이 보이는 짧은 옷, 속옷처럼 보이는 바지와 상의를 입고 노래하고 춤춘다.
이 현상은 두 가지 이유가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결과인데, 연예기획사에서는 여성 아이돌(그룹)을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가장 보기 좋은 디자인으로 만든다. 그것은 기본이 되는 노래와 춤을 제외하면, 외모, 화려하고 개성 있는 의상, 대중의 선망과 욕망을 자극하는 패션과 화장, 이미지 메이킹을 만들어간다. 여기에 아이돌 자신도 연예인으로 성공하고픈 욕망과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한 노력, 선망의 대상이 되려는 의지,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는 압력 등의 기제를 통해 스스로 몸을 드러내게 된다. 즉, 아이돌의 노출은 기획사의 이윤추구를 위한 목적, 대중의 욕망, 아이돌 자신의 욕망을 위한 의지가 결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쯤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발적 성매매', '자발적 성상품화'에 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우리 모두(여성과 남성)는 이 문제에 대해 속고 있거나 무지하기 때문에, 본질을 모른 채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걸 볼 수 있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섹스, 임신, 출산에 있어서 여성 스스로 주체적으로 판단, 결정하는 걸 말한다. 즉, 외부의 힘에 의해 압력을 받아서는 안 되며, 법과 제도에 의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호받아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자신의 '성'을 외력(폭력)에 의해 유린당할 수 있으므로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사회에도 있다.
반면, '자발적 성매매'나 '자발적 성상품화'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의미도 다를 뿐 아니라, 본질에서 매우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떤 여성이 스스로 몸을 노출할 권리는 있다. 또한 자기의 '성'을 판매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오로지 여성 자신의 판단과 결정인지는 사회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2천년 전,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있다고 알려졌다. 즉, 체제를 불문하고 여성이 '성'을 판매한 것을 두고 여성은 자신의 '성'을 파는 것을 좋아하고, '성'을 팔아서 쉽게 돈을 번다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한 발언이다.
여성이 '성'을 팔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 사회가 되면서 여성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차별당하면서 발생한 불평등에 원인이 있다. 이 차별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농사를 지으면서부터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인류가 집단생활을 시작하고, 가축을 기르며, 정착해서 안정적 거주지를 확보하고, 농산물의 수확을 통해 잉여생산물이 발생했다는 걸 뜻한다.
잉여생산물은 필연적으로 계급의 발생으로 이어지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뉜 집단은 생산성이 높아지고, 잉여생산물이 늘어나면서 집단화, 도시화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소유물은 남성이 차지하고,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관계 또는 피착취 관계로 전락한다.
이런 양상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욱 첨예하고 격렬하게 드러나는데, 자본주의는 자본이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해서 이윤을 확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질서에서 소외된 여성은 자본주의에서 소외와 착취라는 이중의 고통 속에 놓이게 된다.
여성의 인권과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며, 남성에게 소외당하는 존재이고, 자본에 착취당하는 노동자이면서, 남성 우월의 불평등 구조에 억눌린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성'을 판매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오로지 여성의 주체적 결정인가는 의문이다. 사회 속 여성, 특히 가부장, 남성우월주의,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여성이 선택하는 결정이 '주체적'일 수 있을까. 여성은 태어나 자라면서 자기도 모르게 남성의 세계관을 주입당하고, 남성의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훈련을 받는다. 그것이 여성의 잘못은 아니지만, 여성이 불평등의 피해자라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곡된 결론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남성도 '성'을 판매하기는 한다. 여성과 마찬가지 이유로. 그것은 쉽고 빠르게 돈을 벌려는 목적이다. 즉 남성이나 여성이 '성'을 파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압력에 의한 행위이며,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없는, 개인을 착취하는 구조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자발적 성상품화' 역시 같은 구조를 갖는다. 스스로 자기의 성을 상품화한다고 생각하는 개인은, 자기의 선택과 결정으로, 주체적 행위를 한다고 믿지만,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성상품화는 거의 모두 사회적(자본) 압력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단지 개인은 자신의 욕망과 사회적(자본) 압력을 구분하기 어렵고, 그 둘의 이해가 상충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으로 여길 뿐이다.
많은 아이돌(그룹)이 노출이 많은 의상으로 무대에 서서 선정적인 춤을 추는 것은, 그들 자신의 의지라기 보다는 사회적(자본) 압력, 대중의 욕망, 그리고 그 압력과 욕망에 조응하는 아이돌 개인의 욕망과 자기최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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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툴지만 그만큼 절실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들>
초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였을까? 어린 시절, 내게 ‘친구’는 때로는 부모님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느껴질만큼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존재였다. 지금은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어렴풋한 기억만 남았지만, 친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꽤나 치열하게 살아왔던 내 모습만큼은 자주 떠오르곤 한다. 어쩌면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보다도 더 예민하고, 위태롭고, 흔들리기 쉬웠던 시기였기에 그 친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내 전전긍긍하곤 했다. 이러한 기억들의 색깔은 내가 커가면서 점점 흐릿해졌지만, 이 영화를 본 순간 다시금 선명한 원색으로 돌아왔다.
<우리들>은 ‘선(최수인)’과 ‘지아(설혜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친구 사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초등학교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항상 혼자이던 선에게 ‘전학생 지아’라는 새 친구가 생긴다. 둘은 금방 친해져서 여기저기 같이 돌아다니고, 서로의 집에도 놀러가며 행복한 여름의 시간들을 보낸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난 뒤, 선은 지아에게 밝게 인사하지만 지아는 그런 선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방학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지아는 새 친구 ‘보라(이서연)’를 사귀었다. 보라와 보라의 친구들은 타인의 말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오해해서 듣고, 만만하다고 생각되는 친구에게 함부로 말하곤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지아는 보라와 어울리며 선과 멀어진다. 하지만 이 관계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보라와 보라 친구들의 다음 괴롭힘 ‘타겟’은 지아였다. 무리에서 ‘낙오’된 지아는 선을 화나게 하는 행동을 하였고, 결국 감정이 쌓이고 쌓인 지아와 선은 몸싸움까지 벌인다.
피구
이 영화는 피구 경기로 시작해서 피구 경기로 끝난다. 영화의 첫 장면은 피구 경기를 위해 각자의 팀을 뽑는 상황 속에서의 선의 모습이다. 선은 자신이 뽑히길 기대하는 눈빛으로 팀원을 뽑는 두 아이를 계속 번갈아 쳐다본다. 다른 친구들이 뽑히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고, 자신이 마지막까지 뽑히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입술을 뜯으며 초조해하면서 선은 조용히 기다린다. 그런 선을 향해 반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선 못한단 말이야’라는 말을 꺼내곤 한다. 아이들은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고 해도 초등학생의 아이에게 이 말은 마음 한 구석에 꽤 오래 남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의 ‘우리들’은 지금보다 더 예민하곤 했다. 이런 말 하나에도 금방 위축되곤 했다. 그렇게 피구 경기가 진행되던 중, 선은 갑자기 상대편으로부터 ‘금을 밟았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선은 금을 밟지 않았다고 주장해보지만 ‘너 아웃이야’, ‘빨리 나가’라는 등쌀을 견뎌내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선이 금을 밟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반에서 외톨이인 선의 상황과 선을 대하는 반 아이들의 반응을 통해 이러한 말과 행동들은 선을 향한 심술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두 번째로 나오는 피구 경기는 지아가 전학 오고 선과 멀어진 이후에 이루어진 경기이다. 지아는 상대편인 선을 주저없이 공으로 맞춘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보라는 피구를 잘하는 지아를 의식하고 경계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세 번째 피구 경기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지아와 보라가 멀어지고, 지아와 선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 이루어진 경기이다. 첫 번째 피구 경기에서 아무도 자신의 팀에 데려가려고 하지 않던 선의 상황이 이제는 지아에게 일어난다. 결국 맨 마지막으로 뽑힌 지아는 앞선 선의 상황과 똑같이 ‘금을 밟았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지아는 금을 밟지 않았다고 주장해보지만, 주변 아이들은 지아를 둘러싸며 빨리 나가라고 재촉한다. 이런 지아를 향해 선은 ‘한지아 금 안 밟았어. 내가 봤어.’라는 말을 꺼낸다. 그리고 지아와 선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용기를 내서 서로를 바라본다. 날이 서 있는 눈빛이 아닌 조금은 누그러진 눈빛으로.
‘피구’는 우리들 모두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빠짐없이 해 본 경기이다. 반 친구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 경기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꽤 폭력적인 경기였다. 팀을 정할 때에는 자연스레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체력이 조금 약한 친구가 남게 된다. 마지막까지 남게 된 그 심정은 생각보다 더 속상하다. 경기를 진행할 때에도 선과 지아가 처한 상황과 유사하게 대뜸 금을 밟았다는 오해를 받게 되는 일도 종종 일어나곤 한다.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행동들은 선과 지아의 상황에 처한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다. 이렇듯 피구는 몇몇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기곤 하는 폭력적인 경기였다.
김밥
자신의 집에 놀러온 지아를 위해 선은 지아가 좋아하는 오이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엄마를 재촉한다. 서로에게 장난도 치고, 다정해보이는 이들의 모습을 우연히 지아가 목격한다. 지아의 부모님은 이혼했고, 엄마는 떠났다. 그래서 지아는 엄마를 보고 싶어도 당장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선과 선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약간 심술이 난 지아는 선이 권하는 오이김밥을 거절하고 옆에 있던 과자를 먹는다. 평소와 조금 다른 지아의 모습을 눈치챈 선은 더 이상 김밥을 권유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도 우리들은 자신을 대하는 친구의 미묘한 변화를 종종 쉽게 눈치채곤 했다. 어쩌면 성인이 된 지금보다도 더 쉽게 그런 상황들을 눈치챘고, 그래서 더 걱정하곤 했다.
한편, 방학이 끝나고 더 이상 자신과 놀지 않는 지아에게 선은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다. 이후 소풍날, 선은 혼자 있는 지아에게 다가가 엄마가 싸 주신 김밥을 함께 먹자고 한다. 김밥을 먹는 지아를 보며 선은 조금은 안심한다. 자신과 함께 놀지 않던 지아가 자신이 건넨 김밥을 먹는 모습을 본 지아는 약간의 희망도 얻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함께 여기저기 놀러가며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희망. 그 시절의 예민했던 우리들은 이런 사소한 친구의 변화에 또 금세 행복해지곤 했다. 하지만 선의 의도와는 다르게 날선 말이 오가고, 결국 흥분한 지아는 선에게 ‘그러니까 네가 친구가 없는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동시에 선이 가져온 김밥은 바닥에 떨어진다. 흙으로 더럽혀진 김밥처럼 친구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었던 선의 마음도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럼 언제 놀아?"
선의 동생 ‘윤(강민준)’은 친구 윤호와 놀다가 자주 맞곤 했다. 선은 이런 동생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너에게 상처를 주고 장난도 심하게 하는 친구랑 왜 계속 같이 노는 것이냐고 질문한다. 선은 동생에게 ‘윤호가 너를 때린만큼 너도 똑같이 때려야 바보가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이를 들은 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럼 언제 놀아?
연호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또 연호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이 상황이 선의 상황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선은 지아에게서 모진 말도 들었고, 지아에 대한 사실을 반 친구들 앞에서 말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지아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고, 친구라고 생각한 지아가 자신의 곁을 떠나 다시 홀로 지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아를 신경 쓰고 있다. 지아가 자꾸 눈에 밟히고, 지아에 대한 말들이 함부로 오고 가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지아는 자신의 친구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함께 많은 추억을 쌓은 나의 친구이니까. 지아와 계속 갈등하던 선은 그냥 친구와 놀고 싶다는 동생의 말을 들은 뒤, 피구 경기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한 지아를 도와준다.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것이다.
봉숭아물과 매니큐어
여름방학 중에 선은 지아에게 봉숭아물을 들여준다. 봉숭아를 빻아서 손톱에 하나하나 올리고, 비닐로 묶은 뒤 물드는 동안 기다리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진하게 물든 손톱의 봉숭아물처럼 둘의 관계도 오래오래 지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방학이 끝난 뒤 보라와 친해진 지아는 그 손톱 위에 보라의 매니큐어를 칠한다. 그렇게 선과의 추억이 담긴 봉숭아물은 매니큐어로 인해 가려졌다. 여름방학 동안 보냈던 선과의 추억들도, ‘선’이라는 소중한 친구도 잠시 잊혀졌다.
이후 학원에서 울고 있는 보라에게 손수건을 건넨 선은 보라의 매니큐어를 받게 된다. 선의 손톱에 남아 있던 봉숭아물도 보라의 매니큐어로 인해 가려졌다. 선도 지아가 미웠다. 친구인 자신과 함께 어울리지 않으려는 지아가 미웠다.
그리고 영화의 끝부분, 피구 경기를 하며 난감한 상황에 처한 지아를 도와준 선의 손톱에는 어느덧 매니큐어가 모두 없어지고, 끝에 봉숭아물만 조금 남아 있다. 손톱 끝에 아주 조그맣게 남겨진 봉숭아물처럼 선과 지아의 관계는 거의 끝에 다다른 상태였다.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해 이 관계가 회복될 수도, 혹은 영영 틀어질 수도 있는 상태였다. 이때, 선이 지아를 도움으로써 먼저 용기를 내서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지아가 이 용기에 화답해줄 차례다. 선이 먼저 지아의 손톱에 예쁜 빛깔을 선물해준 것처럼, 지아가 선의 손톱을 예쁘게 물들여주면 된다. 서로에게 남긴 상처를 또다른 소중한 추억으로 그렇게 뒤덮으면 된다.
우리들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에서 선의 눈빛은 마구 요동치고 있다.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고, 어정쩡하게 웃어보이고, 혹시 자신에게 화난 게 있는 거냐며 조심스레 물어보는 동안 계속 그 눈빛은 흔들리고 있다. 반면 방학 동안 지아를 바라보는 눈빛은 참 밝고 맑다. 오랜만에 생긴 자신의 친구가 그저 좋다. 지아의 눈빛은 보라를 만나기 전과 후가 확연히 대비된다. 방학 동안은 선을 다정하게 바라보지만, 보라와 어울리면서부터는 선을 쌀쌀맞게 바라보곤 한다. 보라의 눈빛은 항상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것 같다. 동시에 가장 종잡을 수 없는 눈빛이다. 지아와 친해졌을 때는 마냥 다정하다가도 피구를 잘하는 지아를 바라볼 때와 자신을 제치고 1등을 했다는 지아를 바라볼 때는 또 한없이 날카롭다. 이 영화는 이렇게 배우들의 눈빛을 따라가다보면 그 감정선을 매우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나는 ‘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마주한 지아와 보라의 몇몇 모습들을 통해 나는 선이었고, 지아였고, 보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어른들의 세계보다 더 예민하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때로는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워했고, 때로는 새로 사귄 친구가 더 좋다는 이유로 불과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다른 친구와 거리를 두기도 했고,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영악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보며 이런 과거의 내가 계속 생각났고, 잠시는 잊고 지내던 선과 지아, 보라의 모습을 띈 몇몇 친구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은 부끄러워졌고, 슬퍼졌다.
선과 지아, 보라를 마냥 질책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나,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그게 우리들의 모든 세상이었다.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서툰 우리들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누군가는 선이었고, 누군가는 지아였고, 또 누군가는 선과 지아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처럼 선과 지아, 보라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들’은 선이었고, 지아였고, 보라였다. 이 영화는 서툴지만 절실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건네는 작품이다. 그리고 선, 지아, 보라의 이야기를 먼저 건넴으로써 자연스레 관객들이 어린 시절의 자신들을 기억해내고, 잠시 넣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리고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나의 마음 한 구석에 항상 남아있던 어릴 적 기억을 계속 쿡쿡 쑤셨고, 자칫 방심하면 그 기억을 금방이라도 끄집어낼 것 같아서, 그럼 바로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우리들’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다시 마주했을 때 한꺼번에 몰아치는 감정은 주체할 수 없었다. 온 마음을 다 주고, 그로 인해 상처받아도 다시 또 내 마음을 주곤 했던 어린 시절의 나와 너, 우리들이 생각났다. 이 영화를 보고 서툴고 간절했던 그 시간들을 보낸, 어쩌면 힘겹게 버텨냈던 우리들에게 그저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조금은 아픈 기억들이 떠오른 이들은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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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의 책무와 촘스키의 시민불복종 원리의 접점이 시사하는 것
일찍이 <여론조작>을 발표했던 노엄 촘스키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에 부당하게 참전해왔다는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국 정부의 행위를 크게 비판하는 한편으론 시민불복종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국가의 범죄를 막기위한 행동을 하는 것은 마땅하다. 살인을 막기 위해 교통 법규를 위반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노엄 촘스키가 구체적으로 지정한 국가의 범죄란 당시 미국 정부의 베트남전 참전이었다. 한편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이 시작된 이래로 군사적 개입은 일절 없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더 나아가 닉슨은 대외적으로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베트남에서 미군이 물러날 것처럼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베트남에서 공산진영(북베트남)의 우세가 두드러지자, 미국은 수많은 장병들을 베트남으로 보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하지만, 결국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는 법이다. 국가기밀로 덮어두기엔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상황은 좋지 않았고, 베트남으로 파병간 장병들의 사기도 날이 갈수록 떨어져갔다. 그런 와중에 뉴욕 타임즈는 다른 언론사들보다 먼저 ‘펜타곤 페이퍼’라고 불리는 베트남전 기밀문서를 입수하게 된다. 이 문서에는 정부가 시민들에게 숨겨온 베트남전의 기록과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영화 <더 포스트>는 바로 이 시기, 정부의 거대한 거짓과 부정한 권력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더 포스트>는 출판의 자유와 권력에 대한 견제로 언론의 역할을 보여주는 영화인 동시에, 캐서린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최초의 여성 발행인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와 지위를 되찾기까지의 이야기도 담아내며, 위엄있고 우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한편으론 다소 정적일 수 있는 소재를 속도감과 몰입감 있게 촬영하여 이야기 자체의 매력 또한 잃지 않고 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어쩌면 미래에도 유효할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점, 영화속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높이 살만하며, 1971년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도 가감없이 반영하고 있다는 점, 이야기 자체도 속도감 있고 흡입력있게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하겠다.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오늘날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고,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당시 트럼프 정부를 향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수 있겠다. 실제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미국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체제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국내의 특정 언론인 혹은 특정 언론들은 진실을 보도하는 것보다도 자신들의 관심사나 이익을 위한 기사를 쓰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언론의 책임에 대한 메세지와 부정한 권력을 향해 경종을 울리는 영화 <더 포스트>는 꽤 오랜시간 회자될만한 수작이다. 언론인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정보의 제공자가 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서 각 개인들에게도 ‘진실’의 의미와 사회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볼만한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두 언론인의 남다른 무게
여기,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정반대의 입장, 정반대의 성격을 보이는 <워싱턴 포스트>의 두 언론인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최고 경영자 캐서린 그레이엄과 편집장 벤 브래들리가 바로 그들이다. 영화가 시작된 이후 두 사람은 끊임없이 의견충돌을 겪는다. 우선, 백인 남성 중심의 전문직 사회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으로 자리잡은 미국인 남성 벤 브래들리는 자신의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언론인답게 특종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날 <뉴욕 타임즈>의 1면을 가득 채운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특종을 접하자마자 벤의 관심사 역시 그쪽으로 쏠린다. 다만, 주목해야 할 점은 벤이 펜타곤 페이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특종을 놓치지 않으려는 언론인의 직업적 열정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는 점이다. 벤 역시 언론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닉슨 정부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으며, “출판할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출판이 답이다”라는 언론인으로서의 도덕과 책임감도 보이긴 하지만, 영화속 그에게서 보이는 상당 부분은 단순한 전문직 종사자의 직업적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벤 : 케이(캐서린)만 용감한 건 아니지.
토니 : 당신이 잃을 게 뭐있다고.
벤 : 내 직장, 명성...
토니 : 벤, 왜 이래. 당신 명성은 광택만 더하게 될 걸 우리 둘 다 알잖아. 직장으로 말하자면 또 구하면 그만이고.
실제로 밴에겐 선택지가 많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케이의 선택을 용기있는 선택이라고 말한 토니와 벤이 나눈 대화를 참고해보면, 이 영화속 벤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 벤은 분명 언론인으로서의 열정과 도덕, 책임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전문직 남성들이 갖는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공에 대한 욕망과도 같은 것들이 그에게선 언뜻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진정한 언론인은 벤이 아니다. 자신을 억누르는 사회속에서 당당하게 일어서는 사람, 모든 것을 걸더라도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 사회의 압력으로 움츠러들었을 뿐, 강인한 내면으로 다시 일어서는 사람. 바로 캐서린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주인공이다.
캐서린은 <워싱턴 포스트>의 최고 결정권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녀에게 걸맞는 대우를 하지 않는다. 당시 미국 사회의 전문직은 백인 남성들에게만 열려있었다. 때문에 백인 남성이 대다수인 사회속에서 전문직 여성들은 은근하게 차별받고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영화 <더 포스트>에선 정당하게 회사의 경영권을 이어받았음에도 끝없이 그녀를 무시하거나 소외시키는 태도를 보이는 장면들을 연출한다. 캐서린의 조언을 듣지 않는 벤, 캐서린이 듣는 앞에서 그 자격을 논하는 아서, 이사회가 끝나고 세남자들의 뒤에서 걷는 캐서린의 모습, 이사회에서 일어나려는 캐서린을 한손으로 주저앉히는 증권거래인 등. 벤의 말 한마디면 아무런 말도 못하는 사무실과는 대조되는 캐서린의 환경은 전문직 백인 여성이 감수해야하는 사회적 압력과 시선을 과장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캐서린이 자신을 자꾸만 주저앉히려고 하고, 깎아내리는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자기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당당하게 일어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때문에 캐서린의 성장담을 담아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투쟁의 과정에서 캐서린은 우아하고 위엄있는 방식을 택했기때문에 이 영화의 문체는 캐서린의 숭고한 투쟁을 닮아 품위있는 어조로 읽힌다. 덧붙여 캐서린 개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귀기울이지 않고 거리를 둔채로 그녀의 이야기를 적어가는 것으로 객관적인 시선에서 쓰고 있어서 이야기의 품격을 더하고 있다.
시민불복종과 언론인의 책무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71년, 미국 언론들이 다루었던 ‘펜타곤 페이퍼’의 내용을 읽게 된 미국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1970년에는 캄보디아를 침공하기도 했으므로, 반전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1971년 5월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중 61%는 베트남전 개입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면 군입대 거부도 늘어났고, 베트남에 주둔하는 부대에선 탈영하는 병사들도 늘었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병사들도 있었으며, 반전 시위의 규모와 인식은 점차 커져갔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일련의 움직임들은 미국사의 대표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위 엘리트 계층을 제외한 각계 각층에서 반전(反戰)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시민불복종 운동의 최전선에는 바로 언론인들이 있었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듯이,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인의 책무와 국가 기밀과 관련한 보안법을 지키는 일은 상충되는 것들이다. 시민들의 알 권리를 지키자면, 국가 보안법에 걸려서 불법적인 행위를 하게 되고, 합법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딜레마에서 언론인은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비단 언론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이글의 시작과 함께 소개한 노엄 촘스키는 이런 딜레마를 헤쳐가기 위해서 시민불복종을 강조한다. 실제로 1971년에 한 네덜란드 방송에서 그가 비유한 것을 해석하자면, 국가의 범죄를 막기 위해 국민이 저지르는 범죄는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한 기준과 인간본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의 결과로 얻어낸 정의로운 대의가 있어야만 시민불복종은 정당화될 수 있다. 미국의 베트남전 같은 경우에는 충분히 정당화될 근거를 갖추고 있다. 1971년 한해에만 미국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에 80만 톤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미국 정부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벌인 일련의 무력시위는 학살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이라면, 시민불복종의 권리를 행사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의 국가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면, 우리 정부가 불법으로 지정한 행위를 통해서라도 우리 국가의 범죄를 막아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노엄 촘스키가 강조한 시민불복종의 의미이다.
영화 <더 포스트>는 바로 그 점을 인정한다. 반전시위에서 한 청년은 미국이라는 열차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기위해선 때론 몸을 선로에 던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캐서린과 벤은 국가 보안법에 위반되더라도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실을 신문 지면에 쓰기로 한다. 캐서린과 벤은 이를 통해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물론, 정부의 잘못된 선택을 교정하고자 한다. “헌법 제정자들이 언론의 자유를 준 것은 반드시 가져야 할 보호 장치이며, 민주주주의에 필수적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이다. 언론은 피치자에게 봉사하는 것이지, 통치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이유때문이다. 출판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통해서 권력기관들의 부패를 견제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언론은 억압받지 않는 위치에서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더 포스트>가 말하는 언론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노엄 촘스키가 당시에 말한 시민불복종의 원리와 닮아 있다.
<더 포스트>의 화두, 언론인의 시민불복종과 일반 시민의 시민불복종
여기에 아직도 유효한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이론을 조금 빌려와서 말하자면, 행정부를 비롯한 국가 정책 결정권자들을 비롯한 국가 권력은 모두 시민에게서 양도받은 것들이다. 따라서 시민들에겐 자신들이 빌려준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그 알 권리를 수행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다. 300년 가까이 되어가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내용은 아직도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현대사회에선 새로이 추가되는 것들-요컨대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 자본-은 있어도 그 뿌리가 흔들리는 법은 없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계속되는 한 언론의 역할과 책임, 그 중요성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더 포스트>의 화두는 자유민주주의가 존속하는 이상, 그보다 더 나은 체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유효할 것이다.
한편, “언론인의 책임과 의무”에서 조금 더 나아가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의 역할도 역할이지만, 언론인 역시 일반 시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영화 <더 포스트>가 말하는 언론인의 역할을 다하는 행위와 노엄 촘스키의 시민불복종의 원칙에 접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영화는 비단 언론인 뿐만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부패하고 부정한 권력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2016, 12)되고, 영국의 브렉시트(2016, 06), 미국에선 급진주의자 트럼프가 당선된 시기(2016, 11)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금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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