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7-24 18:09:58
외계의 세계로 빨려들수록 흩어지는 등장인물들
영화 <외계+인 1부> 리뷰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의 케이퍼 무비를 통해 많은 기대감을 주었던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신작 외계+인이라는 영화를 냈다. 쟁쟁한 출연진들만으로도 볼만한 이유가 충분했던 것만큼 시간을 내고 무대인사를 볼 겸 영화를 보고 왔다. 2시간 22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감정을 느끼면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굉장히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방대한 세계관만큼이나 복잡한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계속 이어지다가 하나가 된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르의 조합과 등장인물들로 인해 다소 산만해져 머리가 어지러워 지지만 이 이질적인 공존이 후반부로 갈수록 잘 풀어지면서 몰입감을 더한다. 이 방대한 세계관과 함께하는 이질적인 공존의 연결고리는 2부까지 무사히 이어질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외계+인 1부는 인간의 몸에 외계인 죄수를 가둔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죄수들이 인간의 몸에서 탈옥하는 일을 막기 위해 가드와 썬더는 지구에 머문다. 한편, 고려 말, 도사 무륵은 신검의 행방을 찾다가 신검을 쫓는 자들과 맞닥뜨린다. 신검을 중심으로 하는 이 세계의 시작은 현재에도 과거에도 중요한 열쇠와 같은 존재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신검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며 등장인물들이 신검과 함께 떠오른다.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현재와 과거는 신검으로 연결되며 신검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치열한 대결이 과열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안, 흑설, 청운 그리고 밀본의 수장인 법사까지 최종적으로 신검을 차지하게 되는 이는 누구일까.
캐스팅만으로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던 배우들의 매력이 영화 속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전우치와 어벤져스가 합쳐진 느낌으로 현재와 과거, 하나도 살리기 힘든 상황에서 다 보여주려 하다 보니 과해져 하나의 영화임에도 영화 두 편을 본 것 같다. 엄청난 스케일과 볼거리를 자랑하지만, 개그 코드도 살리지 못했고 등장인물도 생생하지 않으며 세계관도 산만해져 모두 놓쳐버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겠다. 줄거리도 쉽게 쓰기 힘든 어디로 튈지 모를 이 이야기들이 2부에서는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지기는 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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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크: 더 비기닝>성찰 없는 폭력의 전시가 낳은 결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고3 수험생 '차우솔(김민석)'. 여느 때와 같이 공부에 몰두하던 중, 그는 자신에게 학교 폭력을 가했던 가해자 '배석찬(정원창)'이 같은 반으로 전학 왔음을 알고 공포에 휩싸인다. 예전처럼 자신을 괴롭히려는 석찬에게 저항하던 중 그는 뜻밖의 사고를 내고 소년교도소에 수감된다. 교도소 안에서도 언젠가 닥쳐올 석찬의 복수를 항상 두려워하던 우솔. 그는 가족을 죽인 살인범들을 똑같이 죽인 종합격투기 챔피언 '정도현(위하준)'을 우연히 교도소에서 만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누구에게도 숙이지 않아도 될 힘을 기르기 위한 훈련에 돌입한다.
약 160만 명에 육박하는 구독자를 보유한 카카오페이지 웹툰 <샤크>를 영상화한 티빙 오리지널 무비 <샤크: 더 비기닝>은 한 마디로 우직하다. 영화는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준다'는 명료하고 전형적인 줄거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건의 시간 순서를 뒤바꾸면서 플롯을 꼰다던가 반전을 주는 식의 변칙은 없다. 오직 피해자인 우솔이 가해자 석찬에게 주먹을 되돌려주는 순간의 통쾌함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우솔의 감정선과 액션씬, 그리고 그가 힘을 기르고 단련하는 장면 외에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대목은 아예 등장시키지 않는다.
다만 <샤크>의 우직함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기대만큼의 쾌감을 선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솔과 석찬의 마지막 승부에는 긴장감이 없고, 우솔의 최종적인 승리도 시원하지 않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영화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액션이 흥미를 자아내지 못한다. 작중 액션씬은 3단계로 구성된다. 싸움이 시작된 직후 예상보다 강한 우솔을 보면서 상대가 당황하는 게 1단계다. 다음 단계에서 상대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강력하게 반격하며 우솔을 궁지로 몬다. 그러나 끈기와 오기로 버텨내는 우솔은 마지막 순간 승리를 쟁취한다. 이러한 흐름을 액션씬이 수 차례에 걸쳐 반복하다 보니 긴장감이나 절박함은 느껴지려야 느껴질 수가 없다.
이에 더해 주인공을 묘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결과 영화의 층위가 얕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작중 우솔 외에 다른 인물들은 사연이 없다. 학교 친구들도, 교도소 안에서 만난 사람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게임 속 NPC 마냥 우솔의 말과 행동에 반응할 뿐이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등장한 석찬도 마찬가지다. 그가 우솔을 괴롭히기 시작한 최소한의 계기나 배경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우솔이 강해지기 위해서 존재해야만 하는, 전개상 악역이 필요하기에 나쁜 짓을 해야만 하는 생동감이 없는 악역으로 그려진다.
그나마 우솔의 멘토인 도현이 자신의 이야기를 지닌 인물로 묘사되지만, 작중 전혀 해결되지 않는 그의 비극적인 사연은 '더 비기닝'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속편을 준비하는 디딤돌로 사용되는 데 그친다. 이처럼 우솔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보니 그의 변화와 성장은 일방향적이라서 감흥이 반감되고, 그가 가해자를 극적으로 제압하는 결말도 '상어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갖는 비장함에 비해 심심하다.
문제가 그뿐이라면 <샤크>는 그저 지루한 영화 혹은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는 영화에 그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의도한 재미를 끌어낼 수 없는 플롯의 구조를 손보는 대신 손쉽게 시청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무비판적으로 폭력을 전시한 결과 <샤크>는 불쾌하고 이율배반적인 영화로 전락해버렸다. 작중 묘사되는 학교 폭력의 양상은 매우 구체적이다. 당장 시작부터 석찬은 교실에서 우솔을 거침없이 구타한다. 자신을 말리려는 다른 친구의 목을 조르며 제압한 후 다시 우솔을 때리고 발길질한다. 이에 우솔도 흉기를 사용해 석찬에게 저항한다. 이 모든 장면은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긴다.
물론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는 것, 또 폭력의 수위가 높은 것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위에서 예시로 든 장면들만 하더라도 우솔이 얼마나 지옥 같은 상황에서 살아야 했는지, 그의 공포와 트라우마가 얼마나 강력한지, 교도소에서 강한 힘을 얻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그의 절박함이 얼마나 큰지를 효과적으로 환기시키는 유용한 영화적 장치다. 또 석찬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잔인하고 뒤틀려 있는 인물인지도 명료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인물의 처지와 감정선을 환기시킨다는 목적을 오프닝에서 달성했는데도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들이 계속 보인다는 점이다. 우솔이 도현을 설득시키기 위해 쓰러질 때까지 운동장을 뛰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 장면은 그가 자신을 억누르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대면하고 스스로의 정신적,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결정적 순간이다. 이때 영화는 석찬이 그를 감금하고, 소변을 못 보게 하고, 또 소변을 강제로 마시게 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학교 폭력의 순간을 교차로 삽입하는데, 사실 해당 묘사가 없어도 이 장면의 의미나 중요성이 전달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감정과 정서의 과잉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따라서 이 장면은 누군가에게는 실재하는 현실의 트라우마가 불필요하게 자세히 재현되는 순간이자, 타인의 고통이 엔터테인먼트적인 목적으로 남용되고 착취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폭력의 전시는 메시지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여러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궁극적으로 모든 폭력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비록 진지한 분위기도 아니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도 않지만, 교도소 내에서 싸움이나 집단 린치를 줄이려는 일말의 시도가 잠시 등장하는 이유다. 또한 수단으로써의 폭력도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도현은 우솔을 처음부터 도와주지 않고, 그의 절박함을 이해한 후에야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우솔 역시 충분히 강해진 이후로도 먼저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초적인 영상을 남발하는 연출과 편집으로 인해 영화의 메시지는 단지 메시지로 머무는 듯 보인다. 사회비판적 소재를 다루는 이상 영화는 단지 세상을 재현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와 원인, 나름의 해결책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비상, 쿠팡 플레이의 공격적인 투자 및 디즈니 플러스의 한국 시장 진출 예정 등으로 인해 OTT 시장의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티빙 역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예능,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오리지널 작품을 연일 선보이고 있으며, <샤크: 더 비기닝>은 그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샤크: 더 비기닝>이 티빙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재현의 윤리조차 지키지 못한 채 성찰 없는 폭력의 전시로 가득한 이 작품은 상업성, 작품성, 시의성, 다양성 등 그 어떤 기준에서도 만족스럽다고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D(Dreadful, 끔찍한)
절박하고 통과해야 할 주먹에 공허함과 불쾌함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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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4주 차, OTT 종료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OTT를 구독해도 항상 어떤 영화를 볼 지 고르는 데만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그럴 때 저는 종료예정작 중에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보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이번 주에 꼭 봐야만 하는 종료 예정작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6월 4주 차 종료예정작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내 이름은 아닌아
06.22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내 이름으로 놀리는 친구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다.
하필 교장 선생님이 나타나 우릴 데려갔고, 신비한 봉투를 나눠주며 절대 열어보지 말고
일주일 후에 그대로 가져오라는 벌을 주는데...
cine pick!
동화가 원작인 이 영화는 동화책 속 나올법한 캐릭터 디자인으로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나의 어머니
06.24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엄마와의 이별을 앞두고 가족도, 일도, 사랑도 마음처럼 쉽지 않은 영화감독 마르게리타와
그녀의 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우아한 유머와 담담한 슬픔으로 담아낸 드라마
cine pick!
제 68회 칸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수상 후 15분 간의 기립 박수를 받은 작품.
난니 모레티 감독의 어머니와의 추억에서 출발한 영화 <나의 어미니>는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더 테이블
06.24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 하루 동안 머물다 간 네 개의 인연을 통해 동시대의
사랑과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비추는 작품
cine pick!
매력적인 연기를 펼치는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배우와
감성 비주얼리스트 김종관 감독이 만나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전석 매진이 됐으며,
제 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5초만에 매진이 되었다.
몬스터 헌터
06.23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사라진 부대원을 찾기 위해 파견된 지상 최고의 군인 아르테미스 대위가 목숨을 위협하는
강력한 거대 몬스터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펼치는 사투를 그린 생존 액션
cine pick!
영화는 전 세계 6,000만 장 이상 판매된 게임 [몬스터 헌] 시리즈를 영화한 작품이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폴 앤더슨 감독 X 배우 밀라 요보비치 X MCU 참여 시각 효과팀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영화이다.
인비저블 사인
06.24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빠가 삶의 의욕을 잃는 이름 모를 병에 걸리자 딸 모나도 그를 따라 삶의 의욕을 버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유일하게 수학만큼은 흥미를 버리지 못한 모나는 초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된다.
cine pick!
LA 타임즈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보이지 않는 사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성장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따듯한 영화이며, 긍정적인 기운을 샘솟게 만든다.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06.24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친밀한 인간관계를 피하며 살아온 호주 시골 마을의 택시운전사 렉스는
어느 날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존엄사 허용법이 통과된 다윈까지
3,000km의 여정을 떠난다.
cine pick!
여운이 오래 남으며, 인생에 대한 고찰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나며 유수의 영화제에서 왜 호평을 받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화장실의 피에타
06.25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화가에 대한 꿈을 포기한 히로시는 고층 건물의 창문을 닦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생의 마지막 여름에 고등학생 마이를 만난다.
cine pick!
제 39회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와 함께 마츠나가 다이시 감독의 연출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
마지막 엔딩곡까지 울림을 남기는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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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추적 시간여행 영화 시간이탈자
시간 여행 그런 영화 좋아하시나요?! 과거로 간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 로또를 산다?, 주식을 산다? 등등 많이 있겠지만, 누군가는 순양을 산다고.. 아.. 아무튼!
영화 시간이탈자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이번에 가지고 온 영화 시간이탈자는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펼쳐지는 시간 여행입니다~
기본 정보장르 : 감성 추적, 스릴러, 시간 여행감독 : 곽재용각본 : 고정운출연진 : 임수정, 조정석, 이진욱개봉일 : 2016년 4월 13일평점 : 7.89스트리밍 : tvN , NETFLIX, 웨이브, 쿠팡 플레이, 왓챠기획 의도1983년과 2015년의 두 남자가 우연히 꿈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보기시작하고, 서로에게 연결된 한 여자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과거의 사건을 추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여담영화는 임수정, 조정석, 이진욱이라는 멋진 배우들을 앞세워 초반에는 흥행했으나 갈수록 입소문과 다양한 후기로 인하여 초반 흥행이 끝까지 이어가진 못했다. 영화 시간 이탈자의 경우 모든 장르가 다 합치면서 그 무엇 하나 챙기지 못했다는 평이 가장 크다. 또한, '타임 패러독스'를 빼고는 허술한 부분이 정말 많이 있었다.후기 및 결말영화 시간이탈자 결말윤정을 살해한 범인은 생물 선생님이었고 학생의 도움을 받아 낙뢰를 맞고 최후를 맞이하게 했습니다.그리고 나중에 경찰이 아닌 음악선생님이 되어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됩니다.영화 시간이탈자의 경우 호불호 갈리는 영화를 가지고 있지만, 팝콘 영화를 찾는 분들에게 이만한 영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시간이탈자 한 번쯤 보기 좋은 영화라고 추천하고 싶다. 팝콘 준비하시고! 한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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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왜 우리는 살면서 잔인한 기억을 한 번쯤 겪게 될까요? 월요일에 들었던 질문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금새 나는 한 가지의 끔찍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 주의 내가 그 시간에 고통받았냐? 아니다. 지금의 나는 19과 20에 겪은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다. 너무 멀리 돌아왔다는 생각을 한 300번째 한 후, 내가 겪었던 고통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실 별 것 아니다. 별 것 아니었다는 결론에 달한 것이 나의 트라우마 극복의 전부다. 이겨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머릿속에 새기는 것일 거다. 근데 이것과 별개로 내가 무언가에 휘둘려 살았던 기억은 나의 행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대체 왜 그랬지. 이 트라우마가 만든 창피한 경험은 역설적이게도 그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다. 난 누군가를 생각하는 법 자체를 몰랐다. 사랑받는 법도 주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방황했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바보 같은 순간이 머릿속에 스쳐가는 오늘이다. 그때의 시간은 어리다는 말로 전부 수식할 수 없으니 오늘 밤도 이불을 뻥뻥 차게 생겼다.
다행인 점은 있다. 내가 미쳤지 싶었던 때에서 얻은 건 있으니 말이다. 이 얻은 것은 두 가지다. 사랑받는 인생은 무엇이고, 그걸 주는 삶이란 또 어떤 것인가? 에 관한 것이다. 이건 살면서 굉장히 중요했다. 내 정신연령이 죽을 때까지 10대에 머무를 순 없잖아? 세상의 모든 애정이 이성 간의 사랑과 그것이 아닌 무언가로 나뉜다면 삶이 퍽퍽해질 것이다. 물론 선을 넘는 건 나 역시 부담스럽겠지만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는 따뜻한 무언가를 잘 보듬으려고 한다. 살다 보니 정말 사랑이 전부였다. 내가 무언가를 위해 노력할 때는 보통 내가 좋아하는 타인에게 더 당당해지기 위함이었다. 또 언제는 그가 한 말 한마디가 내 동기부여의 전부가 되기도 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이성 간의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누구에게 진심인 편이 된다는 건 굉장히 어렵다는 걸 알았다. 진정성은 사소한 것에서 왔었다. 내가 지키는 소소한 것에서 섬세함이 생기고 그 사람의 말에 설득력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상대방은 보통 '이 사람이 진정성을 갖고 행동하는구나'라고 느껴 나를 좋아해 준다. 보통 그런 지레짐작은 맞는 말이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없이 나 스스로의 이미지를 속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싫다. 진실된 사람이라는 말에 유달리 집착했던 나는 앞과 뒤가 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태도에는 단점이 있다. 마음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짝사랑을 심하게 한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에 취해있으면 그 사람에게 맞춰진다. 그러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 진다. 사랑받기 위해서다. 정서적인 무언가를 받기 위해 계속해서 어떤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다가 크게 다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점점 뒤가 없어진다. 모 아니면 도인 내 방식이 가끔 질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마음을 막을 수 있느냐. 글쎄. 아마 아닐 것이다. 지극히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나는 진정성을 위해 내 언어로만 행동하고 말한다. 그리고 두려워한다. 이 사람이 언젠가 날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떠나간 후의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잃고 나서 난 이런 것들을 배웠다고 자위하는 건 이제 질렸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무서운 게 많아지는 셈이다. 차라리 누군가를 아껴주지 않는다면 다칠 일도 없을 텐데. 난 오늘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무서워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필연을 운명에 빗댄 영화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이유에는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좀 심각하게 극단적이다. 아버지에게 알맞은 애정을 받지 못한 채로 자란 마츠코. 시크한 아버지가 웃음을 주지 않은 것에 마음이 답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츠코는 일찍 취업에 성공해 선생님이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다. 교사로서의 일과 도중, 마츠코가 재직하던 중학교 제자가 누군가의 돈을 훔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츠코는 이 사건으로 인해 억울하게 학교를 떠나게 되고 작가 지망생인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도 못했고 믿었던 학교에서까지 배신당한 마츠코. 이번에는 정말 날 사랑해주는 곳을 찾은 것 같았다. 근데 그건 잠깐 뿐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재림이라는 말과 함께 미래가 밝았던 첫 번째 남자 친구는 예술가의 지나친 우울함 때문인지 자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두 번째 남자 친구는 첫 번째 남자 친구에게 열등감이 가득했던 인물이었다. 마츠코를 얻음으로써 이 열등감을 해소하려 했었다는 이유로 결별을 선언한다. 자기 내적의 무언가 때문에 마츠코를 이용한 것이다. 연이은 이별 후 직장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마츠코. 새로운 일터는 마사지방이었다. 업계 톱으로 잘 나갔던 그녀지만 이내 회사가 무너지게 되고 다시 위기에 봉착한다. 이 시기에 원래 살던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마츠코 연락 없음'이란 글을 읽게 된다. 아버지의 애정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홀로 집을 나와 독립을 시작하고 세 번째 남자 오노 데라를 만나게 된다. 이 남자의 정체는 사기꾼이었다. 후에 마츠코를 배신하자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네 번째 남자를 만나 삶을 살던 도중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8년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로 나온 마츠코.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남자는 교사 시절 도둑 누명을 쓰게 만든 제자였다. 제자 류와의 사랑에 빠지는 데는 성공하지만 정작 끝은 좋지 못했다.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갔다 온 후 마츠코를 돌보기를커녕 주먹 한대 쳐버리고 류는 도망친다. 결국 버림받게 되는 마츠코. 히키코모리처럼 집에서 은둔하며 TV만 보다가 우연히 본 아이돌에게 빠지게 된다. 하는 거라곤 그 아이돌에게 편지 보내는 것 빼곤 아무것도 없던 마츠코. 감옥 동기가 재기할 수 있을 거라며 건넨 명함에 행복 회로를 돌리다 후반부에 허무하게 객사하게 된다. 그게 영화의 끝이다.
이 영화는 많이 비극적이다. 선생님이란 좋은 직업으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과할 정도로 사랑을 찾는다. 2021년의 우리가 보기엔 '굳이 저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다. 영화의 주인공이 보여준 행보와 같은 질문을 우리의 삶에 던질 수 있다. 과연 사랑이 그렇게나 중요할까? 주인공의 자존심까지 다 팔아가며 받고 싶을 만큼 관심과 애정이 우리 삶에서 중요할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거 말고 하나 더 있다. 그거 받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극적으로 나아진다는 보장이 있는가? 어차피 누군가는 어떤 인물의 삶에서 떠나갈 수밖에 없다. 겉보기엔 오해로 멀어지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당연하다. 모든 영화에는 엔딩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필연적인 끝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불륜이든 풋풋한 첫사랑이든 우리는 끝이 어떤 결말로 이뤄질지 뻔히 아는데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연인이 아니고 친구관계이거나 형이나 누나로 불려지는 사이여도 마찬가지다. 단 한 가지의 예외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잘 알면서도 우리는 운명을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생각해보자.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단지 섹슈얼한 무언가가 아니라 존경과 우정, 공감의 의미여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감정이야 말로 우리 인생의 전부다. 내가 느끼기엔 -내 기준- 이성 간의 사랑보다 이 감사함의 표시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준 형들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난 게이가 아닌 것처럼 세상은 다양한 감정들로 이뤄져 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때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존경이라는 말이 식상해질 때 누군가에 대해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봐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순수한 동기부여는 이런 것들이다.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내 모습을 사랑해줄 인간이 있다면 그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이 소중한 이유가 이거 아닐까? 거의 대다수에게 가족이란 어떤 일을 겪어도 내 편인 존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잘하는 것일 테지. 나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근데 난 이기적 이게도 이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싶다. 가족이 주는 무언가는 항상 고마운데. 나는 그 외에서도 쓸모를 찾고 싶다. 난 개 같던 20대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았던 것 같다. 그 뭐 같던 순간에서 제일 찌질한건 나였단 걸 깨달은 후에도 다른 뭔가를 찾았던 것 같다. 이런 인간관계의 결말? 항상 같았다. 난 정말 나밖에 모른다. 친해지는 걸 못해 별것 아닌 것에도 이상한 사람 취급당했던 기억이 생생하고, 또 정신상태가 무너져 있을 때 본능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던 모습이 선하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나란 걸. 남 탓 열심히 해도 어차피 원인은 나에게도 있다. 정말 타인이 100% 잘못해서 무언가 발생한 경우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그 경우가 절대다수라고 하면 그건 추한 남 탓이 될 것이다. 과연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인가.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외부에서 우리의 쓸모를 증명받고자 한다. 우리 엄마나 아빠만 해도 자기 직업에 진심인 사람이다. 심지어 아빠는 방송에도 여러 번 나왔고 몇 박사들의 책에도 참여한 바 있다. 단순히 엄마 아빠가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걸 하는 건 아닐 것 같다. 대학생 때 보이는 학생회, 대외활동 뭐 이런 것들도 그 예시다.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회 활동과 여의도 중앙정치는 사실 (물리적으로만) 거리가 멀고, 대외활동과 같이 외부의 일은 끝이 다 정해져 있다. 해단식 하면 자주 못 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활동을 한다고 해서 취업문이 활짝 열리지는 않는다. 이렇게 시시하고 재미없게도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정해져 있는 결말로 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이 모든 걸 벌였고 또 넘어지며 좌절한다. 같은 행동을 두 번 세 번 반복하게 되고 비슷한 순간을 마주한다. 씨발. 왜 나는 이거밖에 안 되는 인간이지. 나의 출생만으로도 세상에게 사과할 이유가 생기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잠수 타다 죽을 때가 되면 내 머리를 방망이로 쳐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근데 우리 거의 대부분은 이 미련을 잊어버린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이제 그런 필연이 중요해지지 않아 진다는 뜻이다. 왜? 그게 행복하기 때문이다. 자주 못 보는 사람이더라도, 애초에 표현하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 산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기약하며 말이다. <중경삼림>과 <노매드 랜드>를 봤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난 항상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름다웠던 순간을 다시 돌이키는 것만큼 인생에서 즐거운 건 없다. 토익 공부를 해도, 유럽에 가도, 사고 싶었던걸 사도 항상 무언갈 상상하고 있었다. 현실은 아니었다. 어떤 선택지를 골라서 내 결과 중 아무것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난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마음 한편으론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자. 영원한 건 없다. 뭔 선택지를 골라도 나는 아팠을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받을 줄 몰랐고 하는 것도 서툴렀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영원히 혼자 사는 것이다. 그럼 외롭기만 하지 사람에게 상처 받는 일은 없어 좋을 것이다.
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이 당연한 정답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건넨다. 과연 그게 맞아?라고 말이다. 아니다. 당연히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한심한 순간을 반복한다. 나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홍상수나 윤종신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우리 인생에서 이것에 공감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끝이 정해져 있는 생인데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갈 것인가. 우리는 실패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는 경향이 있다. 퍼주지 말걸. 비극적인 사건에 놓인 우리를 위로하기보단 학대한다. 영화는 이런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극도로 비극적인 인물 설정? 현실적이지 않은 게 맞다. 근데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것에 공감한다. 상처 투성이에 그 아무도 찾지 않는 모습이야 말로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에게 상처 받아 사과받으면 그게 다 없던 일이 되나? 또 그 사람들이 사과를 과연 몇 번이나 했나? 또, 뮤지컬을 중심으로 영화를 전개한 이유? 비비드한 색감? 우리에게 이 마츠코의 삶을 비극이라고 재단할 권리가 있을까? 그 때 만큼은 행복했을텐데. '왜 굳이 3자 주인공이 나왔는가'나 '뮤지컬+색감배치'의 이유는 우리의 인생을 대변한다. 우리는 원래 이 모양 이 꼴로 살 수밖에 없다. 근데 이런 영화와 현실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 왜? 인간의 가치는 무얼 받느냐가 아니라 무얼 주느냐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비록 비극적인 사건이 연이어 겹쳐 좌절하는 삶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극단적인 비극을 보여준다. 근데 어떻게 전개하나? 도 중요하다. 바로 주인공을 따로 설정해 그 인물로 하여금 마츠코의 일대기를 좇게 만든 것이다. 이럼 뭐가 되냐? 어느 정도 객관화가 된다. 극한의 비극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마츠코가 어떤 인물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너무 타인의존적인 측면도 있었던 건 맞지만 당연히 좋은 부분도 많이 볼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군가를 품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원인이 사랑의 결핍이더라도 괜찮다. 마음의 구멍 한 구석을 인정하게 되는 것도 다 좋으니까, 무서워서 숨지는 말자. 그게 우리가 인생을 사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병의 마수에 빠져 방황하고 나서 얻은 결론도 이와 비슷하다. 어차피 결론이 똑같다면 한 번쯤 또 한 명에게 모든 사랑을 다 가져다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나 자신이 인기가 없더라도 누군가의 인생이 옳다는 증명이 된다면 그 나름대로 성공한 삶일 것이다. 난 나에게 이 말을 해준 사람의 이 문장을 이루기 위해 그 20대를 보내왔고, 한 번도 진정성이 없었던 적 없었으며 나름대로 행복했다. 그래서 난 내가 한 말에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이 혐오스럽게 느껴지더라도 한 번쯤은 필연에 부딪히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겪는 난제를 돌파하는 방식일 것이다. 영원한건 없다 하더라도 그 순간 만큼은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자. 마음이 괴롭다면 병원에라도 꼭 가자. 그것이야 말로 구멍이 난 사람에게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400% 확신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모름지기 이 영화가 말해주는 바와 같이, 인간의 가치는 무얼 받느냐가 아니라 뭘 해주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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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흡연하는 페미니스트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영화
8★/10★(신수원 감독 작품, 2021년, 108분, 한국.)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역사를 기록하는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의 계보를 기록한다면 어떤 영화가 포함될까?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시네마 천국〉부터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나 소외되어온 흑인의 기여를 영화사에 기입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최근의 〈놉〉까지 다양한 영화가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 〈오마주〉가 있다. 〈오마주〉는 종종 ‘홍일점’ 대접을 받았으나 대체로 빛 좋은 개살구로 취급되었던 여성 영화인에게 바치는 헌사다. 여전히 영화계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시대 여성 영화인들을 향한 연대의 마음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중년의 여성 영화감독 지완이다. 지완은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나 흥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집에서는 ‘꿈꾸는 여자랑 살면 외로워진다’는 핀잔을 받거나 돈 되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지완이 여기서 별다른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족의 말이 지완에게 모욕이 아닌 일상이란 의미다.
그러던 지완에게 영상자료원에서 일 하나가 들어온다. 1960년대에 활동한 한국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인 홍재원 감독의 〈여판사〉* 상영회를 준비 중인데 필름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복원해달라는 의뢰였다. 〈여판사〉는 판사로 일했던 여성이 남편에게 독살당했다는 실제 사건에 모티프를 얻어 제작된 영화였다. 홍재원 감독은 결말을 바꾸어 주인공이 좋은 판사인 동시에 효부로도 인정받았다는 영화를 만들었다. ‘슈퍼우먼’을 강요하는 상상 속 세계에서나마 ‘단죄’ 당한 여성을 복권시켜준 것이다. 현실의 홍재원 감독은 혹시나 모를 불이익에 절친한 동료에게조차 자신에게 딸이 있음을 밝히지 않았을 정도로 고독하게 영화 작업을 이어갔지만 말이다.
지완은 어렵게 〈여판사〉의 대본을 구하고 성우와 후시녹음을 하며 영화의 사운드 공백을 채워나가는 등 복원 작업에 매진한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영화가 뚝뚝 끊긴다. 중간에 잘린 부분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검열 때문이다. 검열당한 장면이 대단히 파격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페미니스트 관객이라면, 홍재원 감독의 옛 여성 동료인 필름 기사가 복원해낸 이 장면에서 기품 있는 뒷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화면 속 주인공과 함께 흡연하고 싶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담배는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 된다.
〈여판사〉의 잊힌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지완은 홍재원 감독에게서 자신을 본다. 홍재원 감독 역시 여성이 소수자인 영화판에서 힘겹게 버티며 세 편의 영화를 찍었다. 힘들었지만 적게나마 자신의 곁을 지키는 동료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아내, 엄마이자 좋은 감독이어야 했다. 지완과 놀랍도록 닮은 데가 많다.
지완은 두렵다. 홍재원 감독을 향한 연대의 마음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공포가 샘솟는다. 홍재원 감독은 세 번째 영화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했다. 그 시절 그녀와 함께 영화를 작업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와 2020년대가 겹치기 시작한다. 지완은 세 번째 영화가 흥행에 처참히 실패했고, 오랜 세월을 함께 작업한 동료 여성 PD는 눈물 흘리며 그 영화를 끝으로 영화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지완은 남편‧아들과 다정하게 투닥거리지만 그들이 지완의 꿈을 응원해주지는 않는다. 자궁에 큰 혹이 생겨 자궁적출 수술을 받기도 한다.
영화계 여성 선배를 발견했다는 기쁨과 공포의 혼재 속에서 지완은 깨닫는다. 멈추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지완을 다잡는 건 지완 자신뿐만이 아니다. 〈여판사〉를 복원하며 가슴으로 깊게 공명한 홍재원 감독, 그리고 이제는 노쇠해진 그녀의 여성 동료도 지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자네는 끝까지 살아남아.” 지완에게 여러 여성의 삶과 꿈이 포개진다. 이제 지완은 혼자가 아니다. 끝내 히트작은 만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완은 영화를 계속함으로써 무언가가 변화했음을,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여성 선배들에게 빚진 것임을 기억하며 영화를 만들 것이다. 존경과 헌사로서의 ‘오마주’. 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그녀가 언젠가 후배 여성 영화인들에게 받을 것이기도 하다.
여성 영화의 계보와 여성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것이 〈오마주〉의 전부는 아니다. 〈오마주〉에는 어쨌든 무언가를 만들어놓는 것의 중요성도 담겼다. 지금은 아무도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하찮은’ 결과물이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판사〉가 그러했듯 성실하고 뜻있는 후배에게 발견되는 일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록을 남기는 일은 중요하다. 누군가는 그 시대를 다르게 살아냈음을 나 자신에게, 언젠가 만나게 될 이름 모를 후배에게 증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벅차오를 정도로 감동적인 이 영화는 잊힌 창작자들에게,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창작자들에게 진한 위로와 연대의 계기로 다가갈 것이다.
*〈오마주〉가 참고한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는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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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에 트럼프와 한목소리로 MAGA를 외쳐버린
6★/10★
거대한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차근히 조립된다. 땅과 수평으로 놓인 우주선은 이내 발사를 위해 세워진다erect. 그리고 분출하듯ejaculate 솟아오른다. 아폴로 11호에 진심인 발사 책임자 남성 콜의 곁에는 그를 보조하며 천문학적인 예산 확보에 혁혁한 공을 세운 마케팅 전문가 여성 켈리가 있다. 긴 칼, 높게 솟은 건물은 남성성(남성 성기)의 오랜 은유다. 우주선은 이 연장에 놓일 자격이 차고 넘친다. 그렇다.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한 여성이 진심을 가졌으나 영 숙맥인 남성(그리고 미국)의 시든 성기를 완벽하게 북돋고 위무해 다시 부풀어 오르게 하는 이야기다.
아폴로 1호 발사 실패 후 쪼그라든 콜과 미국의 상징적 성기는 아폴로 11호의 성공으로 다시 거대하고 단단한 위세를 과시한다. 절대적 거대함뿐 아니라 상대적 거대함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미국인과 소련인 중 누가 먼저 달에 발을 디딜 것인지가 체제 경쟁의 핵심으로 여겨지던 때, 아폴로 11호의 성공은 미국의 상징적 남성 성기가 소련의 것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남성성 경쟁에서의 완승이다.
콜은 자신의 책임으로 아폴로 1호가 실패해 사랑하는 동료 3명을 잃었다. 미국 역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여론 악화와 상대적으로 앞서 있던 소련의 우주 기술로 위축된 상태다. 아폴로 11호의 성공은 이 모든 좌절을 한 번에 뒤엎는다. 그리고 영화가 보여주듯, 이 과정에서 어쩌면 NASA 엔지니어보다 더 큰 공을 세운 게 켈리다. 연이은 발사 실패로 시큰둥해진 대중의 관심을 다시 아폴로 11호에 불러 모으고, 여러 기업의 후원을 끌어오고, 예산 지원에 미온적인 정치인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켈리는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켈리는 콜과 미국의 비아그라다.
그러나 켈리가 비아그라여서는 안 된다. 축 처진 무언가를 바로 세워야 하지만 인위적, 인공적 힘이 개입해서는(혹은 개입한 것처럼 보여서는) 곤란하다. 누군가가 어르고 달래야만 딱딱해진다면, 그 강함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즉 ‘비아그라 발기’를 ‘자연 발기’로 바꿔야 한다. 능력 좋은 사기꾼이었던 켈리가 아폴로 11호를 향한 콜의 진심에 감화되어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그의 여정에 몰입하는 서사는 콜이 발기력을 회복하는 데서 켈리가 담당한 역할을 슬그머니 사라지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아폴로 11호가 임무에 실패할까 두려워 별도의 세트장을 꾸린 후 거짓 달 착륙 영상 송출을 기획한 백악관의 음모를 켈리가 끝내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 미국의 강함은 거짓 연출에 기댈 필요가 없다. 비아그라 없이 자연스럽게 우주선을 조립하고, 세우고erect, 발사ejaculate하면 된다.
개별 남성과 국가의 위축을 아폴로 11호라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상징적인 이벤트로 다시금 곧추세우는 이 영화는 아마도 의도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구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와 공명한다. 유세 과정에서 총기 피습을 당한 후 푸른 하늘과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치켜올리는 그의 사진은 아폴로 11호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인에게 하나의 잊지 못할 시대적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피습 후 곧바로 일어난 그가 수많은 다른 미국인의 마음속에 불꽃을 일으킨 것도 아폴로 11호와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분노, 좌절, 절망, 혐오를 동력으로 하며 이를 정치적 에너지로 폭발시키기 위해 가짜뉴스, 의회 폭거, 범죄 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트럼프가 〈플라이 미 투 더 문〉이 설파하려는 ‘진짜’ 미국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오히려 트럼프는 가짜 달 영상을 송출하자는 음모를 기획한 영화 속 인물에 가깝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는 아니다. 둘 다 쇠락한 남성/미국을 다시 발기시켜야 한다는 데는 똑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다만 ‘자연스럽게’, ‘진실되게’(즉 비아그라 없이) 할 것이냐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냐의 방법론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의 질문은 이렇다. 자연 발기든, 비아그라든, 그 외 다른 방법이든 미국을 시든 남성 성기로 은유하고 여성을 이를 보드랍게 달래주는 타자로 활용하는 방식(사랑 앞에 눈물 흘리며 반성하는 켈리보다는 온갖 거짓말로 종횡무진 자본주의 한복판을 헤집는 초반부의 켈리가 훨씬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를 보며 개별 남성이 안도감을 얻을 수 있도록 사랑을 재현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운’ 나라가 과연 진정 위대한가? 그들의 위대함은 어디를 향하는가? 애초에 그들이 위대한 적은 있었던가? 위대함의 은유와 계보에 대한 ‘대체 역사’ 구성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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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라떼극장] '귀신이 산다'는 집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03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에서 발견한 소중한 기억들
'귀신이 산다'를 보며 3D TV를 체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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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줬으면 해서, 알아줬으면 해서.
Call me by your name / 2017
:: BGM
Nick Gunner - Lucid Dreaming (feat. DNAKM)https://soundcloud.com/nickgunner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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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이 코 앞인데 모두 다 방해만 합니다" 1970년대, 영화 ‘거미집’의 좌충우돌 촬영장! 예측불가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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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펼쳐지는 스펙타클 액션✈ 톰 크루즈의 항공 액션 블록버스터 '탑건: 매버릭' 6월 22일, 극장에서 고공 레이스에 합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