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29 17:02:56
드라이브 마이 카
상실과 우연한 만남
흩어지며 죽어가는 이야기들에 숨을 불어넣는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이야기를 읊듯 시작되는 극 전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상실감에서 시작되었거나 혹은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방에 자신의 증표를 남기는 것처럼 남자의 마음에도 점점 쌓인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상황들이 나도 그 사람도 볼 수 있지만 나만 보고 있는 그 거울을 빗겨나간 채 자리를 비우고 고개를 돌리며 독백이 자기 생각처럼 스며든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내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테이프는 계속 같은 음성을 뱉어낸다.
그렇게 마음을 숨긴 채 세상에 하나 남은 소중한 차를 운전하는 가후쿠는 새로운 연극에 들어가며 의도치 않게 기사를 두게 되면서 기사 미사키를 만나게 되고 미사키를 비롯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국적 / 성별 / 나이,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들과의 조우로 그의 무미건조한 삶에 약간의 파도가 친다. 다른 언어로 같은 뜻의 말을 해도 연극이 진행되는 것처럼 인생도 달리는 자동차처럼 누군가가 사라져도 계속된다. 그리고 그 말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을 마주 보게 되고 뒤늦게 감정이 휘몰아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타인이지만 왠지 모르게 닮아있는 그를 안으며 살아갈, 살아 숨 쉴 자신을 향해 달린다.
상영 시간이 길어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테이프처럼 늘어지지도 않고 꽤 따뜻하고 단단하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품이라 좋았다. 상영 시간이 더 길었어도 좋을 '드라이브 마이 카'는 시작점을 어디서 잡느냐에 따라 또 다르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굉장히 좋은 영화였다. 다른 언어로도 소통할 수 있지만,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쓰는 언어를 알아야 그에 대해서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에 닿을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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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꼿꼿한 송혜교, 날아오른 임지연
* <더 글로리 파트1>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더 글로리 파트1 (2022)
감독: 안길호
극본: 김은숙
출연: 송혜교, 이도현, 임지연, 염혜란, 정성일, 박성훈, 차주영, 김히어라, 김건우 등
방영횟수: 8부작
장르: 범죄, 드라마
공개일: 2022.12.30
재벌 2세 후계자와 불우한 여고생의 사랑, 신부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소녀와 신적인 존재의 운명 같은 사랑, 갑자기 영혼이 뒤바뀐 스턴트맨과 기업 오너의 티격태격 로맨스, 목숨을 뛰어넘은 의사와 군인의 비현실적인 러브 스토리. 내가 지금껏 보아왔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줄곧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언제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써 왔고, 클리셰 범벅인 구조를 말의 맛을 살린 대사로 매력적으로 구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작품의 개연성이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거의 모든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한 것을 보면,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재미 하나만큼은 충분히 보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정만화 같은 오그라드는 대사나 고루한 캐릭터 설정, 판타지 못지않은 비현실적인 전개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적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김은숙’ 작가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보는 이유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극을 보게 만드는 확실한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역시 대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스스로의 역량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고,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며 도전에 성공한 것은 물론, 작품성 면에서도 호평을 받는 성장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미스터 션샤인>은 ‘김은숙’ 작가가 틀에 박힌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만 쓸 수 있다는 편견을 깨부쉈지만 가장 최근작인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후 단 한 번도 실패를 겪지 않았던 그에게 처음으로 뼈 아픈 작품이 되었다. <도깨비>와 <상속자들>로 이미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린 적 있던 톱스타 ‘이민호’와 ‘김고은’을 기용했음에도 화제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특히 극본에 대한 혹평이 자자했다.
한 번의 쓰디쓴 패착은 ‘김은숙’ 작가를 각성시켰다. 주특기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버리고 처음으로 장르물을 택한 그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독한 복수심을 품은 주인공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교훈과 인물들 간의 절절한 로맨스를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주었던 <미스터 션샤인>으로 한 번의 반전을 일으켰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스스로의 필력을 쇄신하는데 도전을 한 셈이었다. <태양의 후예>로 쌍방에게 영광을 안겨주었던 ‘송혜교’를 다시 한 번 캐스팅 했고, ‘이도현’, ‘염혜란’, ‘임지연’, ‘박성훈’ 등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연기력을 인정 받은 배우들과 막강한 한 팀을 꾸렸다.
‘김은숙’ 작가가 처음으로 시도한 피카레스크 장르물 <더 글로리>는 그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인물들 간에 주고받는 티키타카와 언어유희를 활용한 대사, 그리고 극 자체의 재미는 국내에서 ‘김은숙’ 작가를 따라올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음에도 작가 특유의 장점은 그대로 묻어난다. <더 글로리>가 작품성 면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넷플릭스 흥행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 온갖 커뮤니티에서 드라마에 대한 언급이 수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술술 읽히는, 김은숙의 재밌는 각본은 이번에도 통했다는 방증이다. 본격적인 사건들의 실마리가 풀리기 직전인 8화를 기준으로 드라마를 두 파트로 나눈 것도 영리한 판단이었다. 8화까지 정주행을 빠르게 마친 시청자들은 3월까지 목이 빠져라 다음 파트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작품의 재미와는 별개로 완성도 면에서 비판을 받는 부분은 복수극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너무나 순진하다는 것이다. <더 글로리>는 복수 하는 자와 당하는 자의 팽팽한 긴장감을 끌고 가야 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동은(송혜교)’의 계획이 술술 풀리기만 하고, ‘연진(임지연)’과 그의 친구들은 맥 없이 당하기만 해서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평면적인 캐릭터 또한 지적되고 있는데, 피해자인 ‘동은’과 가해자인 ‘연진’ 무리가 분명한 선악 구도를 형성하면서 가해자들에게 일말의 동정의 여지나, 개별적인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고 재력과 사회적 명성을 갖췄음에도 ‘동은’의 복수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만을 나열했다는 것이다. 악인들의 무능함이 부각되다 보니 ‘동은’의 계획이 상대적으로 쉽게 실행되는 것처럼 보이고, 복수의 전면에 나서는 일이 많지 않아 쾌감 또한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비판점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깊게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인 ‘동은’이 17년간 품고 살았던 복수의 칼날을 가감 없이 펼쳐 나가는 전개만으로도 카타르시스는 충분하다. 애초에 가해자들의 무능함을 떠나 20대와 30대를 바쳐 치밀한 계획을 세운 ‘동은’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로지 복수 하나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달려온 ‘동은’이 가해자들을 말려 죽이고자 마련한 수는 한둘이 아닐 것이고, 따라서 ‘동은’의 복수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착착 이뤄지는 것은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 전개일 것이다. 무엇보다 ‘연진’과 ‘재준’은 피해자인 ‘동은’을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인간말종들이다. 이들은 십 수 년 전, 동급생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으면서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17년만에 재회한 ‘동은’은 그들에게 여전히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동은’이 복수심을 갖고 제멋대로 날뛴다 한들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기에 함께 힘을 합쳐 ‘동은’에게 맞서기는커녕 그룹 내에서의 분열만 일으킨 것이다. 8화의 엔딩 장면에서 ‘연진’이 ‘동은’이 살아온 흔적과 복수심의 크기를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가해자들이 전력을 다해 ‘동은’과 싸우는 것은 아마 2부의 핵심적인 스토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1부만을 두고 관습적인 설정을 지적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더 글로리>가 복수극으로서의 쾌감은 물론 목표를 갖고 전력질주하는 주인공의 행동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력에 있다. 특히 주특기인 멜로 드라마 속 예쁜 캐릭터를 벗어나 남은 것은 독기 뿐인 학교폭력 피해자 ‘동은’으로 분한 ‘송혜교’는 연기 변신에 대한 꿈을 제대로 성취했다. 생명력을 완전히 잃은 듯한 눈빛, 복수심과 설움이 서려 있는 메마른 표정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힘은 차분하면서도 단단하다. 특히 냉정을 잃지 않겠다는 차가움 속에서도 슬픔이 엿보이는 표정들은 ‘동은’이 오랜 세월 얼마나 고된 시간을 견뎌 왔는지를 조금이나마 짐작케 한다.
‘송혜교’가 묵직하게 극의 무게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악역을 맡은 배우들에게는 제대로 놀 수 있는 판이 깔아졌다. 데뷔 10년만에 첫 악역에 도전한 ‘임지연’은 극중 가장 눈부신 연기 성장을 보여준다. 그동안 왜 단 한 번도 악역을 맡지 않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악에 받힌 캐릭터를 자신만의 색깔로 완벽하게 해석하여 대중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마저 욕을 먹을 수도 있는 희대의 악인을 맡았음에도 ‘임지연’에 대한 호평이 연신 이어지는 것은 배우의 연기력이 그만큼 훌륭했기 때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귓가에 톡톡 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감정 변화에 따라 자유자재로 뒤바뀌는 표정,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에서의 위압감은 작중 최고의 연기력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보며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서야 나도 그에 대해 오랫동안 갖고 있던 편견을 깰 수 있게 되었다.
복수극은 장르 특성상 강렬함을 선보이는 악역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이 조명 받기 쉬운데, 이를 감안하더라도 악역을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력은 대체로 뛰어나다. 특히 적은 분량이지만 ‘연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신예은’은 잔인한 학교폭력의 주동자가 되어 얼굴을 갈아 끼웠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소름 돋는 연기를 선보여 극 초반부에 큰 임팩트를 남겼다. ‘임지연’이 첫 악역으로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남긴 것처럼 ‘신예은’도 처음으로 선역을 벗어나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릇된 신앙심과 폭력 사이에서 모순을 일삼는 마약 중독자 ‘이사라’로 분한 ‘김히어라’는 걸쭉한 욕설과 약쟁이 특유의 초점 없는 눈빛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재력을 갖춘 가해자들과 달리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자존심을 굽히고 근근이 살아가는 ‘최혜정’을 연기한 ‘차주영’은 주요 빌런들 중 가장 입체적인 연기를 선보여 배우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주말극 도련님 캐릭터를 완전히 떨쳐낸 ‘박성훈’, 외모적으로 가장 큰 폭의 변신을 시도한 ‘김건우’까지 하나같이 악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를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매력적인 해석이 더해져 시청자들로 하여금 단순히 욕 하면서 보는 것을 넘어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매료되게끔 만든다.
배우들의 명연기로 인해 <더 글로리>는 하나의 성공적인 캐릭터 쇼가 되어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극에 내재된 주제의식에 좀 더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본작에는 학생들이 안전을 보장받아야 할 학교라는 공간의 사각지대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학교폭력을 고발하고자 하는 기획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며 피해자의 이야기를 통해 학교폭력의 잔혹성과 심각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려는 목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중시 여겼던 부분이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라는 기조를 ‘동은’이 잃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당해 마땅한 피해자는 아무도 없으며,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두었을 것이다.
1화를 보고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뜨거운 고데기로 ‘동은’의 신체를 지지는 잔인한 학교폭력 장면이 너무 자극적이면서도 보기 괴로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을 감상하는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수도 있고, 단순히 작품의 재미를 위해 폭력적인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여러 차례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제의식을 작품 흥행에 이용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출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 지는 몰라도 고데기 학폭 사건은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재이며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의 수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더 글로리> 관련 영상 클립에서 댓글로 ‘김은숙’ 작가에게 학교폭력의 실태를 고발하는 작품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댓글을 단 학폭 피해자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더 글로리>의 학교폭력 연출 방식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제 학교폭력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끔찍한 폭력의 현장을 온전히 마주하여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극중 피해자에게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 시스템에 속한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학교폭력과 절대적으로 무관할 수 없는 대상인만큼 구조화된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느끼도록 만드는 게 중요할 것이다. 만일 <더 글로리>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연진’과 ‘재준’ 같은 사람들이 몇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적어도 작품의 기획의도가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피해자를 기억조차 못하고, 본인이 가해자였던 사실조차 잊은 채 이 드라마를 그저 재밌게 보고 있는 가해자라면 ‘동은’의 표현을 빌려 한 마디 전해주고 싶다. ‘천천히 말라 죽어 보자. 사는 동안은 지옥일 테니까.’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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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을 되새기고 현재로 나아가는 탑건 그리고 매버릭.
영화표 값이 많이 오른 터라 영화관에 가는 것이 망설여지는 요즘, 티켓값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영화를 보려고 하다 보니 내가 끌렸던 것을 다 보기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았거나 나의 예상 별점이 높은 것을 위주로 하게 되는 ‘신중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호평에 영화관에서 <탑건: 매버릭>을 보기로 했다. 망설여 왔던 것이 무색하게 <탑건: 매버릭>은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후회될 정도의 굉장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이야기와 액션을 잘 버무려 추억이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정말 놀라웠다. 12세 관람가임에도 유치하지 않고 매번 주인공 버프를 받으며 성공하는 장면이 나옴에도 재미가 있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음에도 향수를 일으키며 26년 만에 찾아온 이 영화가 인기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곳곳에 담겨 있었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에서 굳건히 서 있는 사람, 매버릭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 영광의 중심에 있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매버릭은 언제나 그 모습으로 남아있고 싶었던 것인지 홀로 그 자리에 남아 26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영화 안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놓아줄 때야.”라는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 그는 비행기 안에 자신의 과거를 끊임없이 담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주변도 변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고픈 그에게 찾아온 현재라는 이름은 잔인하기만 했다. 철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조직 생활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괜스레 응원하게 된다. 진심으로 비행하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화면 밖으로도 새어 나와 내 마음을 욱하고 건드리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과 분위기로 인해 말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수많은 꿈이 소리 내 외치는 것 같다. 비행을 사랑하는 마음은 ‘무사 귀환’이라는 말을 통해 더 짙어진다. 잊을 수 없는 동료 ‘구스’라는 이름이 그의 마음에 깊게 새겨져 쉬이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이 ‘루스터’의 이름으로 덧씌워지며 믿음과 변화가 동시에 찾아온다. 그가 다져온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더한 성숙함으로 매버릭을 장식한다. 그가 방치한 자신도, 사랑도, 사람도 이제는 모두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그의 귀환을 모두가 환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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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시간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사 둘의 광기
그토록 기다리던 닥터 스트레인지 2편이 개봉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두 번째 쿠키영상을 보고 나서 '아 언제 개봉날 오냐' 싶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소처럼 일하는 근면성실함 덕에 시간이 금방 갔던 것 같다. 또 <문나이트>를 비롯한 여러 디즈니 시리즈도 있었다! 오스카 아이작의 1인 다역 연기 보는 맛에 일주일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뭐 같은 사회복무요원 노예생활에서도 마블 덕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5월 5일 어린이날 전야에 무려 오후 반가를 쓰고 갔던 극장! 영화 자체는 나에게 엄청 재밌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 이은 기대치를 충족한 느낌이 좋았다. 샘 레이미 감독의 필모그래피 <드래그 미 투 헬>, <이블데드>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도 몇 군데 보여 보는 재미도 좋았다. 만약 안 본 분이 있다면 난 추천하고 싶다.
아. 안 본 분이 있다면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 준비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일단 <완다 비전> 시리즈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이 없고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기 싫다 하는 분들은 유튜브에 내용 요약이라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크 홀드의 존재와 비전의 존재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웬만하면 <완다 비전>을 구독해서 보는 걸 추천드린다. 드라마를 잘 만들기도 했지만, 리뷰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요약본 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또한 '브루스 캠벨'이라는 배우가 감독 샘 레이미의 필모그래피 단골손님이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사람이 뭐 영화 자체에 이야기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배우의 등장이 갑자기? 싶은 구석도 있을 것 같다. 사전에 알려진 대로 호러 맛 첨가의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또한 샘 레이미의 이름값과 어울리는는 탁월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올슨과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엄청났다! 아,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는 여기까지만 쓰고 싶다. 이다음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읭? 싶으실 수도 있는 부분을 글로 풀어쓰려고 한다. 영화를 본 다음의 폭넓은 감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든 스칼렛 위치
이게 <완다 비전>을 봤는지 유무가 극 이해에 영향이 갈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다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는 봤겠지? 잠깐 언급하자면, 비전은 완다에게 타노스의 마인드 스톤 회수 방지를 위해 자기를 파괴해달라고 요청한다. 완다와 비전은 서로 연인관계였기에 완다는 당연히 거부한다. 하지만 마음이 바뀐다. 전 우주의 평화를 위해 희생을 결심하는 완다. 어벤저스를 위해 자기 손으로 연인을 죽이게 된다. 그러나 타노스는 타임 스톤을 활용해서 비전을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머리에 마인드 스톤이 뽑힌 채로 잔인하게 죽는다.
다시 <완다 비전>으로 돌아간다. 완다의 시트콤은 끝이 났다. 연인이 떠난 세상을 받아들이는 완다. 자기기만의 원인을 하나하나 돌아보기로 한다. 문제에는 소드가 있었다. 실드와 유사한 조직인 소드. 소드의 국장이라는 놈은 비전의 몸을 오체 분시 한다고 한다. 이유는 자원 때문에 다. 고작 돈 때문에 내 연인을 죽이려고 한다. 국장은 재료 하나하나를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을 한다. 완다의 동의도 없이 비전을 무작정 끌고 갔다. 그리고 그 해부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다. 마음이 어두워지는 완다. <시빌 워>에서 부터 시작해, 온 세상이 그녀에게 부드러웠던 적이 없었다. 멘토였던 스티브 로저스와 호크아이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닉 퓨리? 의무만 주고 혜택은 뭐 준 게 있었나? 나타샤 로마노프는 희생해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피붙이였던 오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삶을 그렸던 완다. 그녀에게 행복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그나마 행복했던 시기에 돌아가려고 애쓴다. 굴곡진 그녀의 삶에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유일한 전성기였다. 현재가 너무나도 불행하기 때문에, 과거에 미련을 돌리는 완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완다 비전>의 빌런 아가사가 말해준 다크 홀드를 꺼내는 완다. 그렇게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 전우주적으로 강력한 마법사 스칼렛 위치로 변한다. 완다는 이 힘을 이용해 멀티버스를 파괴해서라도 아이들에게 가고 싶어 한다.
짧게 완다의 서사를 써 봤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완다 비전>과 인피니티 사가의 모든 영화를 봐야 한다. 그래서 이들 중 하나라도 안 본 분은 영화의 갑작스러운 호러영화 전개에 의문을 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과수원이 지옥도로 변한다고? 갑자기 완다가 스티븐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고?라고 느끼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 오기 이전에 완다는 이런 서사를 품고 있다는 걸 다시 상기하시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을 때 봤던 스타크 폭탄. 너무 어릴 때 하이드라와 엮여 생겼던 능력. 이 덕에 날 괴물 취급하는 세상. 히어로 노릇하다 떠난 오빠와 비전. 마음 둘 데 없이 자기 인생 찾아 떠난 선배들까지. 그녀에게 행복이란 없다. 그녀가 희생해야 할 건 많았는데 세상이 해준 게 있을까? 솔직히 소드/실드/어벤저스가 도움 된 거라곤 비전의 오체 분시 직관이었다. 뭐 <시빌 워>에서도 그녀의 실수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긴 있지만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전 세계가 두들겨 팼으니 어느 정도는 가혹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러의 책임이 그녀에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래서 난 그녀의 흑화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크 홀드를 펼치기 전에 슈퍼히어로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저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반복되어 내면이 뒤틀린 인간이다. 유일한 행복이라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인데, 히어로 짓 해서 얻었던 것도 없다면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양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적인 내면묘사로 인해 인물의 성격이 뒤틀렸고 이는 곧 <완다 비전>으로 이어진다. 아마 슈퍼 히어로서의 선함이 내면에 우세하다면 웨스트뷰 마을 주민들을 세뇌시킬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녀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본작에서의 살육극은 완다가 MCU에 존재하며 갚아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서사 전체에 대해서는 허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멀티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등장한 이유
극에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네 번 나온다. 첫 번째는 MCU의 닥터 스트레인지다. 슈퍼 히어로서의 닥터 스트레인지이며, 우리가 아는 사람이다. 마블의 영화를 꾸준히 정주행 했다면 그의 서사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초반부다. 이상한 아저씨가 스티븐에게 스윽 나타나서 '정말 그것 빼곤 방법이 없었냐?'라고 묻는다. 스티븐은 대답한다. '응. 그거 빼곤 없었어'라고. 그리고 결혼식에서 크리스틴과 대화한다. 그녀가 스티븐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어차피 우리는 안 됐을 거야'라고. 크리스틴 역시 '그 방법 빼고는 없었다' 식의 답을 한 것이다. 사랑에 미련이 남은 스티븐에게 비수가 꽂힌다. 그리고 마음이 깨진다. 마치 유리가 깨진 시계처럼. 정말 그 방법 빼곤 없었을까? 아마 그는 그 자신에게 여러 번 질문한 듯 보인다.
다른 스트레인지는 디펜더 스트레인지(꽁지머리 스트레인지)이다. 아메리카 차베즈와 멀티버스를 여행하다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사망하는 스트레인지. 그는 아메리칸 차베즈의 능력을 뺏으며 '이것 빼곤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아는 게 전부라고 말하며 차베즈를 살상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이 스트레인지는 시체가 된다. MCU로 시체가 이송되고, 이 꽁지머리 스트레인지는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극후 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은 슈프림 스트레인지다. 슈프림 스트레인지는 본인을 희생해서 타노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아이언맨이 메인 세계관에서 어마어마한 위인으로 평가받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그가 추앙받는다. 그러나 슈프림 스트레인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역시 다크 홀드를 이용해서 멀티버스를 여행했고, 이 덕에 타노스 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내 기억상 그가 직접적으로 '이것 빼곤 방법이 없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스티븐의 행적을 뒷받침하는 사람은 있다. 바로 변종 크리스틴이다. 크리스틴은 스티븐에게 '그 역시 독선적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증언은 미스터 판타스틱의 입에서 다시 나온다. 세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도 그가 하는 행동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을 믿지 않았다.
네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역시 독선적인 판단에 지배당하는 인물이다. 크리스틴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한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이것에 대현 여파로 그 역시 흑화 했다. 다른 차원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수도 없이 밀어 죽여왔으며 메인 유니버스의 스티븐에게도 다크 홀드를 이용한 교환을 요청한다. 당연히 거절하는 스티븐. 이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를 요약하자면 역시 타인을 믿지 않는 인물이다. 역시 자기가 선택한 해결책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네 명의 스트레인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독선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크리스틴의 대사 '모든 스트레인지는 다 똑같군요'로 다시 재현된다. 그리고 이 독선적인 선택을 다른 주요 인물에게 적용할 수 있다. 바로 완다다. 사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는 또 다른 차원의 완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랑하는 사람(크리스틴/완다의 두 아이)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해 흑화 했으며 역시나 타락했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자아를 죽이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 이름이랑 외모만 다르다 뿐이지 완다와 비슷한 처지에 처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MCU 스티븐의 대결이 완다와의 싸움이라는 의미와도 닿아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왜 완다가 아닌 닥터 스트레인지인가? 와도 닿으며, 부제에 Madness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스티븐은 완다만큼 미친 사람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크 홀드가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 역시 그걸 이용해서 스칼렛 위치를 저지했다. 그럼 그게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 아닌가? 그가 슈퍼히어로라고 해서 그의 이런 광기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변종 크리스틴과 변종 스트레인지를 투입해서, 자기가 쌓아놓은 이 '내로남불'과 마법사의 운명론을 서서히 깨트린다. 모든 게 다 정해져 있을 거라 믿었던 스티븐. 사랑하는 사람이 두려웠던 그에게 마법사로서의 자아를 뛰어넘는 선택지를 고르게 해 이제 더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그가 슈퍼히어로로 한 단계 더 진화한 이유이며, 그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또한 네 명의 스트레인지가 등장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점점 가면 갈수록 변종 스트레인지의 모순이 완다와 유사해져 그의 성장 서사를 만든 것이다.
일루미나티의 빠른 퇴장?
극에 흥미로운 집단이 나왔다. 바로 일루미나티다. 일루미나티는 원작에서 굉장히 똑똑한 집단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완다에게 아주 박살이 났다. 변종 모르도를 제외하고, 모두 다 잔인하게 죽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특히 캡틴 카터와 변종 미스터 판타스틱은 어린이날 전날에 나온 히어로 영화 답지 않게 잔인하게 죽었다. 찰스 자비에는 X맨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강력함 절반도 못 갔다. 얼핏 보면 슈프림 스트레인지가 다크 홀드를 써서 타노스를 저지한 게 그나마 다행인 상황. 어느 정도는 이 일루미나티의 퇴장이 허무했다. 다른 세계의 어벤저스 같은 존재들이 마법사 한 명에게 먼지가 되도록 두드려 맞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난 이게 필요한 연출이라고 봤다.
첫 번째. 클리셰 뒤집기다. 우리가 익숙하던 사람들이 나왔다. 변종 모르도, 찰스 자비에, 변종 캡틴 마블, 캡틴 카터, 미스터 판타스틱 모두 사실 <왓 이프..?>와 <인휴먼즈>, X맨 시리즈 등 기존의 마블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마블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집단이 굉장히 셀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특히 찰스 자비에의 경우 본지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세계관에서 굉장히 강한 마법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종 모르도도 소서러 슈프림이고. 캡틴 마블은 그냥 세고. 블랙 볼트는 입 열면 엄청 강한 캐릭터인 것 같다. 이 인물들이 스티븐과 차베즈, 웡과 동맹을 맺어서 완다를 상대하면 사실 좀 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극이 평이하게 가는 느낌이다. 어느 한 편으로는 <인피니티 워>가 생각난다. 이미 뒤집는 이야기를 몇 번 썼던 샘 레이미가 이걸 눈 뜨고 패스했을 것 같지는 않다. 완다가 울트론이고 뭐고 다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기존의 히어로 무비와는 다른 지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캡틴 아메리카 같은 맨몸 히어로가 스티븐 스트레인지 같은 마법사들과 비등하면 그거대로 이상하지 않을까?
두 번째. 후반부에 드러나는 맥거핀 '비샨티'의 존재 때문이다. 이 영화는 2)에서도 썼듯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성장 서사가 중요한 영화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감독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오케이. 어느 세계관이던 궤변이 심한 스트레인지는 넣었어. 그리고 그 아치 에너미로 완다도 넣었어. 그러면 완다가 엄청 세야겠지? 그럼 그 완다가 세진 이유는 뭐야? 다크 홀드겠지? 근데 다크 홀드가 중요해? 아니야. 결국 중요한 건 다크 홀드를 쓰는 스티븐의 모순이야.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쓰게 만들어야 해. 멀티버스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에, 완다가 아바타를 조종하듯 스티븐도 마찬가지의 환경이 만들어져야겠지? 이를 위해서 비샨티의 존재에 힘을 점점 더 주게 된다. 비샨티가 없어졌다는 이유가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사용하는 개연성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완다 이야기로 돌아간다. 다크 홀드에 의해 강해진 완다. 일루미나티를 바사삭 가루로 갈아버린다. 그럼 이 강해진 완다와 상대하기 위해서 비샨티가 필요할 것이다. 이 비샨티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일루미나티는 필요했다. 스티븐의 모순을 보여주는 도구가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일루미나티 역시 스티븐과 똑같은 모순을 범했다. 일루미나티는 스티븐에게 '완다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즉, 자기가 믿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는 곧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황과도 이어진다. 그들 역시 스티븐과 같은 실수를 범했고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난 이런 소소한 디테일들 때문이라도 그들이 이렇게 퇴장하는 것이 각본상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완다의 사망?
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지도 모른다. 난 안 죽었다에 건다.
일단 배우가 마블과 재계약을 했다는 말이 있고또 <호크아이>의 킹핀처럼 일부러 시체를 보여주지 않는 연출이 후속작과도 이어진다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좀 나와주세요.. 히히..시계의 의미?
이 시계라는 매개체는 사실 영화 리뷰계의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존재다.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다.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다 근데 이 시계가 깨졌다? 당연히 그의 시간이 멈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티븐에겐 미련이 있다. 크리스틴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지질해진 스티븐. 사랑받는다는 것이 두려워 전해지 못했던 마음을 크리스틴에게 전한다. 그리고 바로 시계를 고치는 신이 나온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싸우는 자아에 대한 꿈을 꾸고 시계가 부서진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시계를 고치는 신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나타났다. 내적인 성장 이후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제는 마법사의 예언이 아닌, 나와 자신 그리고 동료들을 믿으니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는 슈피 히어로서의 성장이 오히려 인간 그 자체의 진보와 이어졌다는 점에서 <아이언맨 2>나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 생각난다.
누가 봐도 샘 레이미
영화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역시 호러 분위기였다. 완다가 거울에 갇히는 장면 인상 깊었다. 또 어디에선가 좀비같이 튀어나오는 장면, 물웅덩에 눈 하나 짠 나오는 장면, 자비에의 죽음, 메이크업까지 섬세하게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하이라이트 부분 좀비 스트레인지가 영혼을 가지고 망토처럼 쓰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의 비주얼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멀티버스 내부 묘사나 가르 간 토스 외면까지 판타지에 의존하는 부분도 꼼꼼함이 가득했다. 샘 레이미라서 가득한 CG 느낌? 또 사운드도 몰입하기 좋았다. 아마 피아노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질감이 단 1도 없다. 고전적인 호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과연 1등 공신인 셈이다. 이 외에도 초반부 가르 간 토스를 사살하는 장면에서는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엔딩신에선 <드래그 미 투 헬>이, 좀비 비주얼은 <이블데드>가 생각났다.
아쉬운 부분도 있어
아마 많은 분들이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데, 음표 전투신 좀 오그라들었다. 너무 샘 레이미하고 싶은 대로 다 해~였다. 굳이 음표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주변 물건으로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완다 비전>이 강제되는 부분은 라이트 하게 즐기는 분들이 보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뭐 뭘 만들든 제작자들 마음이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소외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두 마법사의 광기를 보여주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연기 잘하는 거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물이 1인 4역을 해야하는데 성격이 미묘하게 달라야 한다. 그냥 대놓고 다른것도 뭐 어렵겠지만 미묘하게 다른 연기를 하는 건 신기할 정도. <문나이트>의 오스카 아이작을 보면서도 감탄했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그냥 빙의한 사람 같았다. 특히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변종 크리스틴과의 대화신이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는 건 누가 보면 거짓말인 줄 알 것이다. 다른 배우 중 놀란 사람은 엘리자베스 올슨이다. 분노. 슬픔. 당황. 행복회로 굴리는 모습. 광기. 눈물. 모든 것을 소화하는 연기였다. 연기 잘하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또 일단 비주얼적으로 너무 예뻤다. 피칠갑을 해도 미모는 못 숨겼다. 엘리자베스 올슨의 스타성 만으로도 티켓값을 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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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tflix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2013년에 국내에 개봉한 <컨저링>은 여름이 아닌 추석임에도 2,262,758명으로 100만명만 넘겨도 대박이라는 공포 영화의 한계를 깼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국내의 공포 영화들도 하나둘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 개봉한 <검은 사제들>은 국내에서 낯선 "오컬트"를 활용하며 5,443,049명으로 큰 흥행을 거두었고, 이후 2016년에 개봉한 <곡성>은 6,879,989명으로 국내에서는 더 이상 낯선 장르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바하>나 <변신>의 성적이 말해주듯이 슬슬 이 장르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은 점점 피로해지는 "오컬트 장르"의 또 다른 변화점을 제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9월 25일에 "넷플릭스"로 총 6화로 공개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은 <미쓰홍당무>와 <비밀은 없다>로 이미, 독특했던 "이경미"감독이 맡으며 이미 그 독특함은 예상했습니다.
아무리,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읽었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드라마였을거구요.
그렇게 이미, 본 사람들의 호불호 갈리는 평가를 뒤에 엎고서 본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는 목련 고등학교에 부임한 보건교사 "안은영"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건,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가 보인다는 것이고 그 젤리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곧장 영향을 미치는데요.
그리고 학교 지하실에 이번 일에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에 한문 선생 "인표"와 함께 지하실에 들어가고 그곳에 얽힌 학교의 비밀들을 하나둘씩 알게 되는데...
넷플릭스의 장점1. 공포 답지 못해서 호불호?
영화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는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들입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영역을 구분 짓는다면, <반지의 제왕>은 "하이 판타지"에 속하며, <해리 포터>는 "로우 판타지"에 속합니다.
무엇이 더 높고 낮은지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혼선이 오갈 텐데요.
높고 낮음은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에 얼마나 닮았는지를 말합니다. 높은 건 그만큼 닮지 않는 것이고, 낮은 건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
이를 공포 영화로 빗대어본다면, <엑소시스트>와 <오멘>같은 한없이 진지한 공포 영화들이 있을 거고 <콘스탄틴>과 <미이라>처럼 공포가 주된 가벼운 오락영화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보건교사 안은영>은 한없이 진지해진 공포를 가볍게 풀어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가벼운 공포?물론, 이 점이 "안은영"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해당 작품은 한없이 엽기적인 작품에 그치고 말 겁니다.
근데, <보건교사 안은영>의 가벼운 소화력은 이미 우리 주변에 접하는 이야기에 있습니다.
모두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쯤은 접해봤을법한 괴담과 같은 이야기는 '학교'라는 익숙한 건물에 낯선 '미시감'을 안겨줍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당 작품에서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에 점점 설득되어가는데요.
그러면서, <콘스탄틴>과는 비슷하면서도 <보건교사 안은영>만의 차별화를 선사해 고여있던 "오컬트"의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겁니다.
2. 놀라운 소화력, 다만 너무 짧다.
사실 이런, 변화는 이미 드라마가 아닌 게임으로 목격했습니다.
손노리사의 <화이트 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은 토속신앙과 얽혀내 그만의 공포를 안겨주는 게임으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보건교사 안은영>도 이를 "금줄"과 "팥", 그리고 "떡" 등이 있는 제사상과 "압지석"과 같이 기운을 누르는 돌 등을 보여주며 <콘스탄틴>이나 <블레이드>처럼 그럴듯한 소재들을 보여주어 시청자들을 설득시킵니다.
이외에도 "젤리"를 귀신에 빗대는데요.
비엔나소시지를 자른 문어부터 벌레, 그리고 두꺼비까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쏟아지는 하트까지 친근하게 다가서는데요.
여기에 장난감 칼과 권총은 앞에서 언급한 작품들과의 비교를 피하려 보이는데, 이마저도 성공적인 결과로 보입니다.
6화뿐이라고 해도...그럼에도, 아쉬움이 생기는 건 해당 작품의 이야기입니다.
각 화마다 약 50분의 분량으로 드라마로는 정량에 속하나 이를 풀어내는 이야기의 결자해지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 3화를 기점으로 그 아쉬움이 생기는데요.
"은영"을 제외하고도 젤리가 보이는 "매켄지"의 설명이 다음 화에서는 아무런 설명 없이 전개되는데요.
그러고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니 캐릭터들의 시점 변화가 많아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무엇보다 아쉬운 건 마지막 화의 이야기입니다.
초반에 학교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이후 학교를 둘러싸고 각 이해관계들이 부딪히며 대립했는데 이를 "생략"시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보여주는데 그칩니다.
3. 어쩔 수 없는 극약 처방?
여기에 "안은영"과 "홍인표"를 제외한 캐릭터들의 설명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중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는 "농구부"의 "지형"인데 극 중 괴롭힘을 당해 "메켄지"의 제안을 받는데요.
익숙한 전개이고, 이를 해결할 "은영"의 패턴도 뻔히 예상되지만 드라마의 해당 화는 이를 유야무야하게 끝내며 서둘러 다음 화로 이어나갑니다.
족히, 2화까지 이끌어 됐음에도 서둘러서 이야기를 끝내니 아쉬움이 짙게 남았습니다.
이외에도 "방석"에 연관된 이야기도 늘릴 수 있음에도 드라마가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건 최근 트렌드와 거리가 멀어진 국내의 방식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눈물 많은 한국 공포국내는 "한"이 전제로 깔려있어 늘 사연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이를 풀어내 자칫하면, 이야기가 늘어지고 눈물에 앞을 가려 무서운 느낌도 사라지니 내려진 극약 처방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해당 캐릭터들이 각화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해서 쓰일 캐릭터임을 생각하면 아쉬운 처사입니다.
대개, <아따맘마>나 <스폰지밥>처럼 각 화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애니의 아쉬움은 설정상 오류가 많습니다.
여기에 각 화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하니 이를 지속적으로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피곤해지는 부분이죠. 그렇기에 <보건교사 안은영>이다음 시즌 2에서 풀어야 할 문제는 이야기의 떡밥뿐만은 아닙니다.
4. 시즌 2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
결론부터 말하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모처럼 만의 소재도 신선하고 재밌는 드라마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취향이 맞는다는 전제하에 깔려둔 이야기이지만 취향이 맞는 저로서는 최고이자 아쉬움이 공존한 작품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이라 원작도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분들의 리뷰들을 살펴보면, 원작에 못 미치는 재미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커지는데요.
무엇보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의 노래는 작품의 호불호로 막론하고 가장 인상적인 역할까지 맡았으니 다음 시즌 2가 나왔으면 합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파천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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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느끼는 상실감과 후회
시놉시스
예분은 손녀인 수정을 물가에서 사고로 잃게 되어 하루 종일 수색 탐지기로 죽은 손녀의 물건들을 건지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녀인 수정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예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1년 동안이나 긴 세월을 물가에서만 맴돈다.
오늘은 예분이 손녀 수정의 장례식을 치르는 날인데 조문객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옥임이 찾아와 예분에게 말을 걸며 그 때 사건을 회상시키는데...
손녀인 수정은 강가에서 래프팅을 하다가 죽게 되었다. 그 사건을 목격한 예분에게는 자신한테 닥친 일이 큰 미스터리가 되어 수색 탐지기를 써서 사고 현장에서 손녀가 가졌던 물건을 찾기 위해 애쓴다.
아마도 가까운 지인이나 친척의 죽음을 목격하면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것 같다. 죽음의 공포는 누구에게 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강가에서 놀다 죽은 어린아이의 시체를 보며 슬퍼하는 부모의 모습이 예분에게 다시 큰 트라우마를 회상하게 만드는데 자신이 강가에서 수색 탐지기로 손녀인 수정의 물건을 찾다가 공사장 인부들과 시비가 붙고 경찰들한테도 이제 그만 잊으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손녀의 시신을 찾을 수도 없었고 유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고 그런 죽은 손녀를 지키지 못한 한이 예분에게는 큰 미련으로 남겨졌을 것이다.
그 죽음의 단서는 사실 죽은 수정의 친구였던 지윤에게 있었는데 지윤은 수정을 이끌고 래프팅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며 자신은 수영을 잘한 수정을 부러워했다. 지윤은 집에만 가면 보이는 환각과 환청 때문에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는데 자신의 아버지는 도박 빚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고
자신을 키워주던 할머니인 옥임조차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 이후로 자신이 속한 수영부에서도 부진한 실력을 보여주게 된다.
과연 이 영화가 보여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필자가 보기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생기는 상실감과 죄책감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등장인물인 예분과 지윤은 소중한 걸 잃어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둘의 상처는 자신의 내면을 파괴해버리기까지 한다.
결국 후회는 돌이킬 수가 없기에 집착으로 번져나간다.
이걸 막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기에 힘이 드는 것이다.
상실감은 커다란 죄책감을 만든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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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행복"의 도시
PROGRAM NOTE.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최신작 〈폴른 리브스〉는 감독의 프롤레타리아 3부작[〈천국의 그림자〉(1986) 〈아리엘〉(1988) 〈성냥공장 소녀〉(1989)]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전해주는 라디오 외에는 세상과 단절된 여자와 우울한 일상을 알코올로 달래는 자칭 터프가이 남자는 헬싱키의 밤 거리에서 만나 호감을 느낀다. 이들의 조심스러운 로맨스는 몇 번의 우연과 몇 번의 불운을 거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무미건조한 유머를 쉬이 납득하기 어렵더라도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순간이 있고, 삶에서 무수한 실패를 거듭해 온 주인공들의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조용히 응원하게 된다. 색다른 별미는 아니지만 진하게 끓여낸 김치찌개가 당기는 것처럼, 지난 40년간 인간의 외로움에 천착한 아키 카우리스마키 필모그래피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시네필이라면 브레송, 고다르, 자무쉬, 채플린 등 거장들에 대한 헌사를 발견하는 재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박가언/2023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POINT.
✔️ 꼭 운명적으로 로맨틱하지 않아도 아기자기 귀엽고 러블리할 수 있지. 인생 뭐 있나! 보고 나면 기분이 산뜻해지는 로맨스 영화
✔️ 북유럽이랑 우리 정서 잘 안 맞지 않았나? 그런 줄 알았는데...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나와요
✔️ 80년대부터 쭉 영화 작업을 해온 감독이 은퇴 선언을 뒤엎으며 들고 온 작품. 꾸준히 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노련한 힘이 엿보여요
✔️ '영화'라는 세계에 대한 애정이 반짝반짝 묻어나는 작품
✔️ 2023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 엄청 귀여운 연기천재 강아지가 나옵니다. 실제 감독이 키우는 개인데, 칸 영화제 출품작 중에서 가장 연기력이 훌륭한 개에게 수여되는 "팜 도그Palm Dog 상" 부문에서 심사위원상 수상작
✔️ 12월 20일 개봉! 연말에 따뜻하고 싱그러운 로맨스를 찾으신다면 추천해요
#"조용한 행복"의 도시
도시의 삶은 치열하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 지울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이런 당연한 말 쓸 필요 있나? 이제는 용어조차 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N포 세대" 같은 단어들까지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삶을 헤엄치는 건 갈수록 녹록하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N포 세대"라는 용어에서 시의성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전에는 "N포"라는 표현 안에서 "포기"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더 이상 포기할 대상조차 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K-드라마의 자장 안에서 유구하게 사랑받은 로맨스라는 장르 또한, 이 치열한 도시의 삶 속에서 빛깔을 달리해 왔다. 물론 변화는 다면적이고 그 기저에도 수많은 것들이 깔려 있으므로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는 없고, 동일한 장르의 동일한 변화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예전에 나왔다면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평가 받았을 설정들이 로맨스와 쏙쏙 접목되는 게 너무나 익숙해진 지금, 빙의/회귀/환생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을 떠나서만 가능한 로맨스도 분명 존재한다. 지치고 초라한 현실을 잠시 떠났을 때 화려하게 열리는 세상이, 거기서만 로맨스에 이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는 분명히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우리에게 쑥 다가온다. 헬싱키의 "조용한 행복"을 담아서. 영화 속 두 인물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렸다면 한국 인터넷 세상의 선생님들께 한소리 들었을 것이다. 너네가 지금 연애할 때니? 직업도 마땅치 않고, 그나마도 불안정하게 오락가락하는데. 심지어 상대는 이런 상황인데!
그러나 왜일까? 고요한 도시에서 그저 불을 켜고 끄면서 적당적당히 스쳐가는 하루하루 속, 크게 애틋하지도 대단하게 로맨틱하지도 않게 흘러가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보고 있노라면,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쉬고 공과금 낼 돈을 헤아려 보고 라디오에서는 전쟁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이런 일상의 편린까지 함께 보고 있노라면, 그래 인생 뭐 별 거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끝에 어쩐지 산뜻한 로맨스를 목격했다는 싱그러운 기분이 남는 것은 왜일까?
#정물, 음악, 그리고... 영화
영화가 보여주는 두 주인공의 현실은 역시나 녹록하지 않다. 어쩌면 당신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답답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마트 계산대에서 바코드 찍히는 소리와 함께 물건이 하나하나 빠져나가고, 바로 이어서 우리의 주인공 안사(알마 포위스티)가 매대에 물건을 채워넣는 장면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도시는 어쩌면 거대한 물건의 컨베이어 벨트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두 사람의 첫 일자리부터가 두 사람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안사가 일하는 마트에서는 폐기 물품 관련 원칙을 이유로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다. "오래된 건 치워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관리자에게 "저도 오래됐다"고 응수하며, 당당하게 손 잡고 걸어나오는 안사와 동료들은 지혜로운 일꾼이자, 마트라는 공간을 굴러가게끔 하는 실질적 힘이었다. 노동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곳들이 주제를 모르고, 의미를 상실한 원칙과 불합리한 조건을 들이댄다. 남자 주인공 훌라파(주시 바타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흡연 구역인 가스통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업무 시간에 술을 훌훌 들이켜는 이쪽의 잘못도 있지만... 노동법전을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상황이 계속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를 "프롤레탈리아적"이라고 말한다. 엄밀히 따져서 주인공이 노동자인 것은 한국의 오피스 로맨스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꽃보다 남자> 혹은 <상속자들>처럼 주인공이 재벌급이거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다 매한가지라는 소리다. 그런데 왜 유독 "프롤레탈리아적"이라고 평가를 받을까? 노동자로서 주인공의 위치가 흔들려서? 그렇다 한들 켄 로치 영화 같은 작품과도 분명 결이 다르다.
나는 어쩐지 이 영화에 "프롤레탈리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 않은데, 주인공의 직업이야 필요에 따라 교사가 될 수도 있고 수영선수가 될 수도 있고...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프롤레탈리아'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남다른 투쟁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그냥 돈이 필요하니 일을 하고, 일하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화도 내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뿐이다.
내겐 오히려 두 사람의 삶에서 풍기는 냄새가 예술의 냄새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물론 일상은 쉬이 남루해지고, 노동은 너무 쉽게 소도구 취급을 받으며, 세상의 분쟁 소식은 여기저기 쏟아진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도 전쟁과 닮은 것들이 있다. 그안에서 아직은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운 마음조차 여러 차례 어긋나고 불발되기도 한다. 어쩌면 마음 편할 날 하루 없는 치열하고 차가운 도시의 삶이, 우리 현실의 전부인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기대, 눈빛, 그리움, 기다림, 사랑... 그런 말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일상에는 예술이 더해지고 분쟁의 소리는 아득하게 멀어진다.
정물 같은 방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분쟁 소식을 피해 음악으로 채널을 돌리는 여자. 꽁트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계속 비우는 남자. 누군가의 선곡 속에서 주고받은 눈빛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은 차츰 영화가 된다. 고전 영화처럼 음악이 대신 두 사람의 정서를 말하고, 그저 걷고 일하고 마시고 눕고 하는 일상의 행위들을 더없이 "영화스러운" 음악들이 감싼다. 그렇게 영화가 된다.
#시간이 가르치는 마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은 분명히 우리와 시간의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전쟁 소식이고, 안사가 일하러 간 공간에서는 급기야 2024년 달력까지 등장하지만, 영화의 소품이나 주인공들이 소통하는 방식은 넉넉하게 쳐도 80년대 이전의 것들처럼 보인다. 낡은 라디오와 레터나이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치 아이폰과 갤럭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두 사람은 옛날옛적 핸드폰이나 집 전화를 갖고 있으며, 그나마도 엇갈린다.
아날로그적인 기다림을 통해, 두 사람의 로맨스에는 아릿한 감정이 더해진다. 수북하게 쌓인 담배 꽁초 같은 것, 도시에서 실제로 마주했다면 그저 치워야 할 쓰레기(이자 도시를 침수하게 만드는 악의 축)에 지나지 않을 것들조차 아련한 감각을 부여받는다. 마치 반죽을 숙성시키듯 감정 또한 재워 놓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간이 가르치는 마음이 있다. 81분이라는 산뜻한 러닝타임 동안 이 영화와 함께 도시를 걸으며 영화에 푹 잠기다 보면, 영화라는 장르가 오랜 세월 우리 안에 어떻게 스며 있었는지 향기로운 찻물처럼 배어 나온다. 고전 영화의 아름다운 감각이 일상의 편린을 자박자박 밟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다르처럼, 브레송처럼, 채플린처럼.
81분 동안 내가 걸은 도시는 <라라랜드>의 대척점에 놓인 것 같은 건조한 도시였다. 꿈과 춤으로 황홀한 사랑과 유쾌한 사람들의 도시가 아닌, 일과 술로 건조한 사람들의 고요한 도시. 그러나 여기에도 사랑스러운 색채와 귀여운 대사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있다. 정물처럼 놓이고 꽁트처럼 가볍게 흘러가는 일상 위에도. 때로는 그런 일상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건조함이 생을 긍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만큼은 치열한 도시를 잊고, 다 아무렴 어때 하고 무던하게 하루를 맺고 싶어진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대를 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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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제 개봉을 합니다.
시사회 참석 후 간단히 이야기해 보았습니다.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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