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1-06 16:45:25
'태혜지'를 잇는 3세대 여배우 9명
1세대엔 태혜지가 있다면 현재는 이 배우들이 자리하고 있죠! 3세대 여배우 특집. 땀범벅이 되어도,
피가 튀겨도, 그마저도 아름다운 청춘 스타들. 눈에 익은 배우들도 혹은 생소한 배우들도 보이실텐데요.
현재~미래의 드라마, 영화를 책임질 9명의 배우들을 소개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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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들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 하>
떠나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들
프란시스와 레이디 버드
처음으로 <프란시스 하>를 본 건 입시 준비를 하던 여름이었다. 계속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프란시스를 보는 게 정말 힘들었다. 같은 해, <레이디 버드>를 본 후에는 영화 말미에 대학에 들어가는 레이디 버드가 참 부러웠다. 수능 성적이 좋은 것도, 방과 후에 연극을 하고, 줄리와 대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전부 대단해 보였다. 스물 한 살이 되어 당시에 느꼈던 무력감과 긴장감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새로운 고민이 생긴 후 두 작품을 다시 봤을 때 비로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레이디 버드가 새크라멘토를 그리워하듯, 프란시스가 방황하던 시간을 지나 ‘자기만의 방’을 찾듯 그레타 거윅이 그린 성장은 단순히 귀감이 되기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We were in one parking lot and we went to another parking lot.”
‘레이디 버드’는 고등학생인 크리스틴이 자신에게 직접 붙인 이름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크리스틴이라고 부르면 반드시 고쳐 부르게 하고, 명단에 쓰인 이름은 새로 쓴 후 밑줄까지 그어 둔다. 반듯하게 인쇄된 글자 아래 적힌 손글씨는 어디서든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레이디 버드를 소개하는 듯하다. <레이디 버드>는 수십 벌의 예쁜 의상과 함께 밝은 미래를 노래하는 ‘하이틴’ 영화에서 벗어나 그 이미지를 보고 자란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깊이가 각기 다른 수많은 고민, 견뎌내야만 하는 상황, 결코 설명하지 못할 결정들, <레이디 버드>가 주인공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모녀의 이야기라는 점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관객에게도 호소력을 지닌다.
그레타 거윅이 공동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프란시스 하>는 꼭 <레이디 버드>의 다음 이야기처럼 보인다. 프란시스는 여러 모로 불안정하다. 현대무용가가 되고 싶어하고, 뉴욕에 살며, 함께 살던 친구가 떠나며 갈 곳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어진다. 영화는 색조차 빼앗아 가며 복잡한 감정과 걱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레이디 버드처럼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원동력을 절실히 원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프란시스가 자신의 이름을 줄여 쓰지 않고 반 접어 우편함에 끼워 넣은 것처럼, <프란시스 하>는 때때로 한 발자국 물러나거나 타협하는 것이 결코 최악의 선택지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화려한 스토리와 미장센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프란시스 하>는 불완전한 삶과 끝나지 않은 성장으로 위로를 준다.
레이디 버드는 “우리 주차장에서 출발했는데 또 다른 주차장에 왔네.”라고 말한다. 주차장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출발해야 하는 장소이다. 스치듯 읊조린 대사지만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 하>의 정서를 모두 설명하는 것만 같다. 두 작품은 떠난 후에야 사랑하게 되는 것들, 다시 말해 과거의 경험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성장을 담았기에 특별하다.
그레타 거윅이 그린 여성의 성장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 하>가 유독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두 이야기를 충분히 내면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와는 공통점보다 다른 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집에서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없고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며, 태어난 연도와 사용하는 언어조차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에서 위로를 받거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나를 위한 영화다’라고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레타 거윅의 캐릭터들이 여성으로 살아온 경험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정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는 섹슈얼한 관계를 쟁취하지 않는다. 단지 자연스러운 욕망과 꼬이고 풀어지는 관계들, 보편적이고 사소한 고민을 보여준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모녀 관계와 친구 관계 또한 위와 같은 감상에 큰 영향을 준다.
<굿 윌 헌팅>, <죽은 시인의 사회>, <길버트 그레이프>, <바스켓볼 다이어리> 등은 모두 다양한 감상과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영화와 소통하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자라면서 수도 없이 돌려 본 <금발이 너무해>, <클루리스>, <하이 스쿨 뮤지컬> 같은 작품들은 여성 제작자의 손을 거치거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것임에도 아름다우면서 유능한 캐릭터를 모델로 제시한다. 이러한 영화들을 수없이 본 경험 이후에 그레타 거윅이 참여한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 여성 제작자로서 그레타 거윅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이야기와 연출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나 다른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내면화하고, 다시 새로운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개인의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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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른자들의 깔끔한 작전 속에서 느낀 통쾌함
도른자들의 깔끔한 작전 속에서 느낀 통쾌함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 리뷰
감독] 가이 리치
출연] 헨리 카빌, 앨런 리치슨, 알렉스 페티퍼
시놉시스] 독일의 비밀 병기 잠수함을 막아라. 나치에 대항할 미친 녀석들이 온다.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살상 무기 유보트를 막기 위해 처칠의 지휘 아래 최초의 비밀 특수 부대가 탄생한다. 통제 불능의 미친개, 지옥에서 돌아온 근육질 군인, 냉철한 폭발물 전문가, 암살이 주특기인 미인계 특수 요원까지, 대장인 거스 마치를 필두로 막 나가는 그들이 뭉쳤다. 영국군에 잡히면 감옥에, 나치에게 잡히면 죽음뿐. 유보트를 막기 위한 거스 마치 일행의 ‘언젠틀’한 작전이 시작된다.
#스포일러 유의#
탑건과 캐리비안 해적 사이 깔끔한 선을 지키다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재밌다. 너무 재밌다. 사실 이 날 팀원들에게 혼도 내고, 미팅이 줄줄이 잡혀 있는 와중에 감사기간이라 대응할 것도 많아서 아주 피로한 날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 한 편으로 도파민이 싹 돌면서 피로를 한 번에 다 날릴 수가 있었다. 사실 도파민이 돌고 나면 새로운 자극 때문에 순간의 기분은 좋아질지라도 그 자극 때문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더 피로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굉장히 깔끔하게 선을 타서 감정적으로 너무 한 캐릭터에 빠진다기 보다는 과함이 없이 잘 짜여진 무언가를 보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캐리비안 해적과 탑건의 제작자, 그리고 알라딘과 셜록 홈즈를 만든 가이리치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실 나치의 유보트를 막기 위한 7명의 요원들은 수적 열세에 노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임무가 실패하면 영국을 필두로 한 연합군은 나치와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유보트의 공급을 중단시키는 이 작전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충분히 무겁고 요원들을 영웅화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이다. 하지만 제작진들은 이들을 히어로라는 캐릭터 대신 똘기 충만한 가벼운 이미지를 씌움으로써 영화자체가 무겁게 흘러가지 않도록 만들어낸다. 물론 실화 속 그들이 도른자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영화 곳곳에서 잭 스패로우의 향기가 물씬 나면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기의 분야에서는 매버릭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치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고, 7명의 요원들이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도를 지나치지 않아 편안한 깔끔함을 느낄 수 있어서 카타르시스가 꼭 모든 걸 토해내고 비워내야 느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정제된 감정을 느끼면서도 후련함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리더의 모습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이 작전에 투입된 7명의 요원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7명이 어떻게 나치를 골려주고 작전을 성공시키는지에 대해서 보여준다. 이 7명이 정말 멋있기는 했지만 이들 7명을 모으고 이 작전에 투입한 처칠이라는 인물에 눈길이 가기도 했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총리가 되어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정치인이다. 사실 정치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결과주의적이다. 이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내각에서는 처칠을 탄핵했을 것이고 처칠은 위대한 정치인으로 칭송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유보트 공급을 막아낸 정식 승인되지 않은 작전이 성공하면서 대서양의 패권이 다시 영국에 넘어올 수 있었고, 미국의 직접적인 참전이 가능해지면서 전쟁 승리의 기운이 연합군 쪽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윈스턴 처칠은 군에 대한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이 작전을 지시한 것이 자신의 정치 인생에 기로가 될 것 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안정적인 정치 인생만 생각했다면 사실 이 위험한 작전을 지시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영국이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만든 절차와 합의라는 것이 시간 싸움인 전쟁에서는 불필요하다고 느낀 처칠은 리더로서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팀을 꾸린다. 그리고 모든 작전을 성공했지만 영국군에게 자발적으로 잡혀 감옥으로 이송된 그들에게 처벌이 아닌 상을 내림으로써 자신이 기용한 사람들에게 신뢰를 보여준 것을 보면서 위기 속에서의 리더의 행동을 어떠해야 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잘 굴러가고 있는 나라에서 도전을 하겠다며 이미 있는 절차와 합의를 무시하는 리더는 옳지 않다. 윈스턴 처칠의 이러한 행동은 전시상황이라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절차와 방법이 적법하지 않더라도 용서가 되어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기용하는 결단력과 자신이 기용한 사람에게 현재의 상황과 그들이 미래에 처할 상황을 숨기지 않는 그 솔직함이 위기의 상황 속에서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
- 개봉 : 2025. 3. 19. (수)
- 한줄평 : 통쾌함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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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운탕도 끓어야 맛이다
이 글은 영화 [대무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인용하거나 퍼가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영화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언뜻 본다 해도. 영화만큼 종합 예술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형태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연기와 음악, 또 시나리오, 화면의 재현 등이 “어우러져야” 한 편의 “좋은” 영화를 보았다는 포만감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서게 될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표값이 치킨 한 마리 가격만큼이나 상승하는 지금은 다들 익숙하고 어느 정도를 보장하는 프랜차이즈 맛의 영화에 자신을 맡겨 안전한 경험을 하기 쉽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시도로 마니아의 입맛을 한 번쯤은 달래주는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영화 [대무가]는 오컬트 물의 최전방에 서 있는 무당을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신빨이 떨어진 무당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더했다. 다시 전성기를 찾기 위해 피 튀기는 굿을 벌이는 세 무당을 보며 관객들은 과연 떡이나 먹고 있으면 될 것인지. 굿 하기 딱 좋은 날씨에 마침맞게 찾아온 영화가 더 보여줄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져 이번 주말 극장을 찾았다.
영화는 다채로웠고. 어느 정도 마음에 들었으나.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으니 끓기만 하면 맛은 보장하는 매운탕처럼 보였는데도. 대체 이 매운탕의 어떤 부분이 결국 관객을 아쉽게 했는지를 세 가지 요소를 통해 분석(?)해보려 한다.
재료;이게 다 들어가네.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를 소재라는 입장에서 보면. 정말 독특하다 못해 탐나는 재료들로 가득하다. 애초에 오컬트 물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입맛을 다시게 하는 재료가 없어 보인다. 무당이라니. 그것도 신빨 떨어진 무당이라니!!! 게다가 그런 무당이 셋이나 된다니!!
그러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당이 셋이나 된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영화의 균형감이 자칫 잘못하면 깨지기 쉽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절묘함은 영화에서 칭찬할 만큼 잘 지켜졌다. 세 배우는 각자의 색을 잃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어딘가 한쪽으로 쏠리지도 않았다. 서로의 매력이 완벽하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자기주장을 한다.
또한 온화한 배역이 훨씬 더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던 정경호 배우의 악역 연기는 새로움과 함께 영화 속의 긴장감도 잘 챙긴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생기도 불어넣는다.
한국에서만 가능한 소재가 연기자들의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이걸로는 무슨 탕을 끓여도 맛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향신료;살인사건, 갈등, 성장
사진출처:다음 영화
물론 재료가 좋은 것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기본 재료의 맛을 끌어올릴 조미료마저 생략한 것은 아니다.
영화는 절대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소금과 다진 마늘 같은 갈등과 성장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 기본적인 요소 위에 큰 두 가지 킥(Kick)을 첨가했다.
첫 번째는 무당들의 노래(대무가)를 랩 배틀처럼 풀어냈다는 점이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고해성사를 통해 발전을 이뤄나간다는 면을 지니고 있기에 이런 선택은 꽤나 탁월해 보인다. 여러 영화에서 보여줬던 굿 장면을 생각해보았을 때. 무당의 노래가 괴이하고 소름 끼치게 들렸던 가장 큰 원인(?)중 하나는 그 노래를 알아들을 수 없음에서 오는 것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당의 노래가 귀에 박히면서 그들에게 관객이 주화입마 하기 쉬울 정도의 리듬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굿을 지켜보기만 한다는 느낌보다 굿에 함께 참여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니까.
두 번째는 살인사건이다. 무당과 살인사건은 가까우면서도 참 멀어 보이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승과 저승의 존재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무당이다.
또한 정경호는 이 신빨 떨어진 무당들이 반드시 용함을 되찾아야 하는 데 있어 기폭제 같은 역할을 악착같이 해내기에 이 동떨어져 보이는 관계 사이의 유착은 영화 내내 꽤나 잘 유지된다.
그 어떤 비린맛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신선한 재료와. 끓기만 하면 입에 쩍쩍 달라붙는 맛을 보장할 매운탕 끓일 준비가 어쩌면 완벽하게 다 끝난 셈이다.
불의 문제인가 냄비의 문제인가. 가게의 문제인가.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러나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끓지 않는다. 이것이 냄비 자체가 작았던 것인지. 혹은 버너의 가스가 모자라 최대 화력을 내지 못하거나 유지하지 못해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영화는 두 시간 내내 부분적으로만 끓어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며 주인을 찾아보지만. 그 어디에도 부탄가스를 갈아줄 주인이 보이지 않는 심정이다. 영화의 좋은 요건들을 확인한 관객이기에 괜히 애가 닳아 괜히 아직 끓지도 않은 매운탕에 수저를 집어넣어 휘휘 저어 보지만. 아직 이 매운탕은 여기저기 맛이 다를뿐더러 한쪽은 차갑고 또 다른 쪽은 덜 익어 풋내만 낼뿐이다.
그러니 괜히 수저를 집어넣을 때마다 어쩐지 실망감이 이미 익어 곤죽이 된 쑥갓이나 미나리처럼 숟가락에 붙어 올라온다. 스스로의 성미를 탓해보며 꿍한 얼굴을 하고 가만히 영화가 온 전체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기를 기다리지만. 그 알맞은 순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세 무당의 대무가 중창에도 오지 않는다.
가장 아쉬운 점이 바로 이 “들쑤심”에 있다. 분명 좋은 재료들이었으나 고루 끓지 못해 결국 이 좋은 재료들은 부스러져 매운탕에서 존재감조차 꽤 많이 사라져 버린다. 무엇이 들어갔건 간에 매운탕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결국 펄펄 끓어 온전한 재료의 형상도 갖추지 못한 채. 관객들은 들큼하고 미적지근한 국물만 들이켜다 극장을 나오게 된다.
더 끓었으면 맛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
마치면서
투박한 예고편이었지만. 소재 자체가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아쉬웠다. 배우분들의 연기야 뭐 말할 필요도 없었고. 살인 사건과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아 이거 괜찮다. 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저기 얽혀 있어 풀어낼 이야기가 많은 구조였는데. 잘 살리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이 컸다.
조금만 더 제대로 미쳤다면 어땠을까. 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사랑니 후유증 거의 다 없어짐.
2. 그럼에도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대단하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많아지길 바란다.
3. 환절기라서 레몬 생강청 담글 준비 하는데 또 손 커서 2킬로씩 살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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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 만에 다시 만난 기념비적 SF
잘생긴 사람이 부산 사투리로 어떤 말을 한다. 남자는 입담이 엄청 좋다. 이 남자의 이름은 '사이먼 도미닉', 이하 '쌈디'다. 굉장히 좋은 행보로 AOMG의 사장을 지나 현재 한국 힙합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이 남자. 이 사람의 언더신에서의 행보는 아주 훌륭하다. 여전히 그는 한국 힙합의 전설이 되어 좋은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글쓴이도 쌈디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된 계기는 MBC의 <아바타 소개팅>이다.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말을 저렇게 재미있게 한다고? 그 프로그램 자체의 아이디어도 신박했다. 일단 누군가가 직접 보이지 않은 채로 타인을 대하면 민망한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 일 아니거든. 이 프로그램은 그 지점을 똑똑하게 활용하며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몇몇 레전드 클립을 남겼다.
어떤 영화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다. 단순히 <범죄도시 2>에서 손석구 배우의 카리스마로 그가 스타덤에 오른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다. 일단 손석구 배우 개인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어떤 영화가 TV 프로그램 몇 개 만들다 못해 '아바타'라는 개념 자체를 갖고 온 것이라면 그건 감독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아, 이 영화는 이 선견지명만 남기고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SF 명작이 되어 그렇게 남아있다. 12년을 돌아 메타버스를 꿰뚫은 영화를 만나보자. 다음 주 수요일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는 <아바타>다.
아주 먼 미래
2150년. 상이군인 제이크 설리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사는 것 같다. 나라를 위해 투신했지만 보상이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에게 잊히고 있는 제이크. 어떤 술집에서 웬 부랑자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 정신을 차릴 즈음 누군가가 말을 건다. "이 자가 제이크야?" "맞는 것 같은데요." 남자 둘은 제이크를 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일종의 연구실이다. 여기가 뭐하는 데야? 처음 겪는 상황이다. 어리둥절한 제이크.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그레이스 박스는 싹수가 없다. 아무튼 제이크에겐 임무가 주어진다. 1kg당 2천 달러나 하는 물질 언옵테늄을 채취하는 것. 이 언옵테늄이 있다면 가상의 행성 판도라를 개발해 인류의 평화로운 삶을 기약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대규모 부대를 판도라에 파견하는 인류. 판도라에는 원주민 나비족이 살고 있었다. 인류는 나비족과의 공존을 위해 가상으로 된 몸 '아바타'를 만들어 외계인과의 소통에 나선다.
아바타를 통해 외계인과 통신하는 제이크. 임무를 하던 도중이었다. 원래 판도라에서 살던 외계 동물에게 공격을 받고 무리에서 낙오된다. 절망스러운 상황. 헤매던 제이크를 오마티카야 부족의 여전사 네이티리가 발견하고 그를 구해준다. 묘하게 시작되는 인연. 사실 네이티리는 제이크에게 화살을 겨눴지만 사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바로 지역의 수호신 같은 존재 에이와가 이를 제지한 것. 제이크에게 뭔가 다른 걸 느끼는 네이티리. 살고 있는 고향으로 데려간다. 술렁이는 부족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와의 계시를 받았다는 네이티리의 말에 제이크가 부족과 함께 동화되는 것을 허락한다.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동상이몽인 채로 서로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과연 아바타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 있지
글쓴이는 97년이다. 이 영화의 개봉 연도는 2009년이다. 이때 <무한도전>이 인기가 많았다. <무한도전>의 팬이었던 나. 엄마는 많이 바빴기 때문에 주말이 아니면 극장에 갈 수 없었다. 토요일 저녁 6시 40분. 애매한 시간대에 표 예매를 잡았다. <무한도전>이 삶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극장 가기 직전까지 엉엉 울었다. "우리 아들. 왜 그래? <무한도전> 보고 싶어?" 지금 다시 생각하면 이마빡을 손바닥으로 쳐버리고 싶지만 아무튼 그땐 <무한도전>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 3시간 분량이 끝나고 난 뒤 뭔가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SF였던 <아바타>. 메이플스토리를 필두로 한 아바타 게임은 적지 않았지만 그걸로 이런 서사를 짰다는 건 굉장히 신선한 시도였다.
13년이 지났다. 마블이 휘황찬란한 영화들을 발표하고 드니 빌뇌브가 <듄>을 발표했다. 긴 시간 동안 SF 장르에 햇살 같은 축복이 내렸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아바타>의 임팩트를 넘어선 SF가 없었다는 것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파란 피부에 신기하게 생긴 외계인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무슨 날개 달린 외계 생물체를 달고 비행하던 쾌감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어릴 때야 '그때 그거 쩔었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분명하게 이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가진 시각적 쾌감은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거장이 가진 연출력 덕택에 나왔다. 180분 동안 살짝 진부할 수도 있는 스토리를 매 번 다른 느낌으로 끌고 간 감독의 개인능력이 돋보인다. 괜히 기념비적인 SF가 아니다.
뭐가 있냐면
일단 시각화 수준이 대단하다. 이 영화는 SF영화다. SF영화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시각적인 게 중요할 것이다. 기존의 세계를 새로 만드는 게 이 영화의 주요 과제다. SF이니 만큼 기존에 없는 대신 설득력 있게 사실적으로 가상의 현실을 구현해야 한다. 이곳에서의 CG 연출은 우리를 설득하기 충분하다. 일단 나비족을 CG로 연출한 방식은 '적당히 신선하다'라는 말과 어울린다. 우리는 살면서 외계인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는 사람처럼 구성하되 외관만 살짝 빗겨 난 형식을 썼다. 또 부분적으로 근육질의 묘사도 인간의 것을 따온 것이 보인다. 다들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 대해 알 것이다. 기괴함과 신선함의 차이는 정말 간발의 차다. 그런데 이 영화가 초반부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유지하고 있었던 건 이 시각 연출의 힘이 크다. 또 판도라에 사는 외계동물 연출도 공룡을 연상케 하는 좋은 시각화였다. 우리 인류가 처음 탄생하기 이전에 공룡이 살았다. 그리고 판도라 역시 도시를 개발하기 이전이다. 이 점에서 '인류의 역사와도 닮으면서 신선함을 유지했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공룡들을 활용한 액션도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다. 타고 다니는 동물이 있다. 이 타고 다니는 동물을 가지고 하는 전투신이 이 영화에서 제시되는데, 실제로 이 동물들을 타고 싸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장면을 구성했다는 이야기인데 운동의 디테일이 구석구석 살아있어 생동감을 더한다.
이런 시각화를 뒷받침하는 이야기 구성도 눈에 들어온다. 사실 이 영화 줄거리 별 것 없다. 자연을 개발하려는 인간과 원주민의 대립은 우리 역사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설정한 건 어느 정도 노림수가 있다. 우선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것도 분명히 의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감독이 하고자 했던 메시지와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글쓴이의 생각은 이야기를 통해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시각화에 힘을 빡 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아바타'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계 문명과 소통하는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럼 3자의 관점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하는 게 뭘까? 외계인과의 신기한 소통 과정일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를 신선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각화에 힘을 주는 것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가 조금 진부하더라도 액션과 CG에 힘을 주는 방식은 우리 요즘 할리우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단 올해 국내에서 800만 관객을 동원한 <탑건 : 메버릭>만 봐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베테랑 조종사 메버릭의 이야기가 서사의 전부다. 그럼에도 메버릭의 저세상 액션 하나만큼은 정말 끝장났다. 이렇게 이 영화가 후의 상업영화들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가정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외계인들과의 소통' 중 어떤 것을 소재로 삼았는지 생각해보면 이는 감독의 노림수가 꼼꼼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주인공 제이크의 인물 설정이 흥미롭다. 바로 하반신 마비라는 점이다. 이 하반신 마비라는 특성은 1) 초반부에 아바타를 연결하고 난 다음의 카타르시스 2) 아바타 프로젝트에 참여할만한 근거 제시 3) 후반부 인물의 선택지에 합리적인 근거 제시라는 점에서 꼼꼼하다. 또한 액션 신에서 탈것이 되어주는 동물과의 교감을 넣은 것, 후반부에 인류와의 대립이 있는 것, 네이티리의 전투신까지 '이걸 넣으면 영화의 시각적 요소가 풍부해질 것'을 고려한 티가 난다. 일단 아크란과의 교감과 비행은 극에서 중요한 위치도 차지하면서 불필요하게 삽입하지 않았다. 인류와의 대립 액션신은 핵심 인물들의 내적 변화를 꼼꼼히 만들었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도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를 설득할 수 있다. 또한 네이티리의 맨몸액션은 초반부에 이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방식 중 하나다. 이 사람이 내적으로 강인하지만 그렇다고 빈틈이 아예 없는 인물은 아니라는 걸 경제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12년을 돌아 다시 직면하다
이 영화에서 주요하게 작동하는 테마 중 하나는 '인간의 것은 과연 무엇인가?'다. 대사에서도 언급된다. '모든 에너지의 것들은 잠시 빌린 것이며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이 영화가 개봉한 2009년 12월부터 세계는 다양한 사건을 맞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팬데믹 사태를 겪어도 변하지 않았던 뜨거운 감자는 사실 명확했다. 바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지구 온난화 문제였다.
감독이자 각본가 제임스 카메론은 이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환경에 대한 소재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이야기 전개는 어디서 봤다. 또 소재는 우리 책에서 많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소재를 갖고 왔다고 해서 절대 깊이가 얕지 않다. 인류가 자기를 희생하기 위해 타자들을 어디까지 희생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과학의 진일보를 어디까지 바라볼 것인가, 복제인간은 과연 인간과 어떤 차이점을 갖는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논의, 대화와 소통 없는 의사소통 방식까지 영화는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져 넓은 이야기를 한다. 과연 이게 2009년의 세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아닐 것이다. 금세 우리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팬데믹 사태를 불신했던 몇몇 정상들도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인형에 대한 논의는 뜨거운 감자였다. 이런 일에 대해 감독은 각각의 해결책도 제시하지만 결정적인 키워드로 어떤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뭐. 사람에 따라 고리타분하게 느낄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인 걸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0여 년을 지났지만 시대상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것은 제작자들의 인사이트가 탁월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단순히 눈요깃거리로 뛰어난 영화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삶에 대해 통찰해보면 좋은 영화가 <아바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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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일의 밤> 불교 엑소시즘의 성취와 한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북산 암자의 ‘하정 스님(이얼)'은 부처가 봉인한 악귀 ‘붉은 눈’과 ‘검은 눈’ 중 '붉은 눈'이 풀려났고, 자신의 반쪽을 찾으러 올 것임을 직감한다. 이에 그는 2년째 묵언수행 중인 제자 ‘청석(남다름)'을 귀신을 천도해야 한다는 숙명과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박진수’(이성민)에게 보낸다. 청석은 정체모를 소녀 ‘애란(김유정)'을 만나 '검은 눈'이 들어있는 사리함을 잃어버리는 등의 낭패 끝에 진수를 찾는 데 성공하고, 자초지종을 들은 진수는 애란이 ‘붉은 눈’이 거쳐야 할 7개의 징검다리 중 하나라고 확신하며 그녀를 찾아 길을 나선다. 한편, 괴이한 모습으로 죽은 시체들이 매일같이 발견되자 강력계 형사 ‘김호태’(박해준)와 후배 ‘박동진’(김동영)은 시체들 간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수사를 이어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제8일의 밤>은 낯설다. 단지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오컬트 영화라서가 아니다. 이미 <검은 사제들>을 필두로 <사바하>, <사자>, <변신>, <곡성> 등 많은 오컬트 작품들은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도 <제8일의 밤>은 낯설다. 우선 십자가, 사제나 목사, 신과 악마, 라틴어 대신 염주와 도끼를 들고 산스크리트어를 외는 승려가 전면에 등장한 그림부터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낯선 것은 그간 한국 오컬트 영화들의 배경이었던 기독교적 세계관 대신 불교적 주제의식에 근간을 둔 이야기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업(業)'과 '유식(唯識)'이라는 개념을 통해 악의 존재와 퇴치 방식을 오롯이 개인에게 돌리는 퇴마록이 낯설다.
<제8일의 밤>의 불교적 세계관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된다. 여덟 번째 밤은 봉인에서 풀려난 ‘붉은 눈’이 자신의 반쪽, ‘검은 눈’을 찾아가 하나가 되어 온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해지는 날을 말한다. 이러한 제목은 불교에서 중생이 받는 고통과 수행해야 할 계율을 주로 8가지로 나눈다는 점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도 붉은 눈이 반드시 7개의 징검다리를 밟아야만 완전체가 될 수 있다는 설정은 특히 흥미롭다. 이 설정이 사람의 모든 행위가 필연적으로 원인에서 결과, 결과에서 또 다른 원인이 되며 사람들은 일련의 과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업'을 시각화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누군가의 행위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악귀에게 사로잡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일례로 한 여고생이 숱하게 가출을 반복한다는 이유로 경찰은 그녀의 실종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 결과 붉은 눈은 그녀를 손쉽게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다.
또한 영화를 지탱하는 두 쌍의 주인공들에게서도 서로의 행위가 원인과 결과로 얽혀 업보로 되돌아오는 관계성을 찾아볼 수 있다. 겉보기에는 등 뒤에 천도해야 할 영혼들이 가득한 진수와 사탕을 먹고 새 운동화를 신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청석 간의 접점은 없다. 그러나 서로의 가족과 관련된 과거의 불상사를 모두 알고 있는 진수는 청석을 보는 것만으로도 분노에 사로잡힌다. 호태와 동진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경찰로 일하기 힘들어 보이는 동진을 보면서 호태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그런 그를 보면서 동진은 부적을 자그마한 선물로 건넨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행위의 원인과 결과가 되기를 반복하면서 그들은 번민에 빠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주인공들이 자신의 업으로서 따라온 번뇌와 번민을 다스리지 못할 때, 그들은 좀처럼 악귀를 제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진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붉은 눈에게 농락당하고, 호태는 연이은 살인 사건의 실체에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각자의 행동이 틀렸다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번민과 번뇌에 사로잡힌 상태에서의 행위는 거듭 악을 돕고 만들어 낸다. 결국 <제8일의 밤>에서 악은 사람의 밖에 존재하며 그의 약점이나 콤플렉스가 반영하는 존재가 아니라 애초에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존재인 것이다. 이는 시작할 때만 해도 단순한 악귀로 설명한 붉은 눈과 검은 눈에게 영화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각각 번뇌와 번민이라고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이유다.
그래서 붉은 눈의 모습으로 나타낸 악귀를 퇴치하는 이야기로 보이던 <제8일의 밤>는 개개인의 업과 업보로써 악의 기원과 존재를 설명한 이상 진수와 호태가 자신의 과오를 씻어내는 이야기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다. 이때 영화는 스스로의 잘못을 깨우칠 도구로 '유식'이라는 해답을 제시한다. 불교의 관점에서 물리적 현상 세계는 상대적 관계인 연기에 의해서 잠시 생겨나고 보였다가 없어지는 세계이고,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실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객체라고 착각하는 것들은 대상을 인식하는 정신의 주체이자 마음의 작용인 '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는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내면 작용, 마음에서 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살펴보는 실천을 필요로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에 담긴 교훈이기도 하다.
식의 존재와 중요성은 똑같이 자신의 파트너를 쫓아 북산 암자로 향한 호태와 진수가 사뭇 다른 결말을 맞이하는 데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경찰로서 확실한 사실과 팩트, 변하지 않은 원인을 쫓던 호태는 연이은 살인사건 그 이면의 실체를 깨닫지 못하고, 동진과 얽힌 과거사를 온전히 풀어내지 못한 채 급작스럽게 퇴장한다. 반대로 진수는 자신과 청석의 가족 사이에 있었던 악연과 그로부터 비롯된 번뇌가 악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스스로와 청석을 결과적으로 구제하는 데 성공한다. 진수는 애란을 죽여야만 악귀를 막을 수 있다는 자신의 확신이 오히려 악귀가 마지막 징검다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음을 알게 되는데, 그로부터 그가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을 맹신하는 대신 그 이면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진정으로 얻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악의 기원, 악과의 대면, 악과의 싸움과 퇴치에 이르는 과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성하는 <제8일의 밤>의 시도는 귀를 맴도는 낯선 문구로 축약할 수도 있다. 진수는 악귀와 대치할 때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gate gate pāragate pārasaṁgate bodhi svāhā)"라는 산스크리트어 주문을 반복해서 외운다. 한자로 음차하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라는 꽤 익숙한 문구가 되는 이 주문은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이다. 영어로는 "gone gone, everyone gone to the other shore, awakening, svaha"인 이 문구는 '이미 이 세상에 온, 세상에 있는 진리를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했으니 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자'는 격려의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눈앞에 보이는 악귀에게 저주를 걸거나 그를 옥죄는 대신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에 있을 깨달음을 먼저 찾자고 외는 진수의 모습은 일반적인 퇴마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고, 그렇기에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의식을 한 데 요약한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제8일의 밤>은 기존의 한국 오컬트 영화들의 문법 대신 불교적 맥락 안에서 세계관과 캐릭터를 구축했고, 이는 그 자체로 유의미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와 동시에 이 작품이 과연 선택한 소재의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내고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우선 <제8일의 밤>은 퇴마록, 엑소시즘의 구성을 빌려 결국 한 개인이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드라마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드라마는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인식 및 기대와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당장 대승 불교를 받아들인 한국 불교에서 붓다와 보살 같은 초월적 존재가 등장하고, 그들이 악귀를 물리치면서 일반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 대목은 붉은 눈과 검은 눈을 제압하는 부처가 등장하는 오프닝 애니메이션처럼 불교적 세계관과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빌리는 엑소시즘 영화의 장르적 지향, 관습을 일치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오프닝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괴리감을 낳고 이는 강력한 호불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승려와 무당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 것에 비해 불교와 무속 신앙의 관계와 그 안에 담긴 잠재적인 이야기를 온전히 다 살리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될 당시 무속 신앙에서 명당으로 여기는 장소마다 절을 세운 것, 그래서 유달리 승려가 용을 내쫓고 그 자리에 절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많은 것처럼 역사적으로도 둘은 떼 놓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작중 처녀 무당은 단지 주인공들의 숨겨진 과거를 줄줄이 늘어놓는 도구로 소비되는 데 그쳐 버린다. 그래서 나무에 방울과 깃발들을 달아두어 마치 소도를 연상케 하는 처녀 무당의 점집과 같은 장치 역시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사뭇 아쉬움이 남는다. 소도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성역이라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경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 권력과 종교 간의 관계에 대해 더 밀도 있는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소재를 담아내는 그릇을 잘못 만들었다는 문제도 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보니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작중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재한 것이 대표적이다. 애란은 등장한 순간부터 나름의 반전을 위한 캐릭터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청석과의 첫 만남부터 헤어짐, 재회에 이르기까지 전부 우연으로 가득하다 보니 아무리 불교적 교리를 차용한 전개라고 해도 그녀의 서사는 좀처럼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전개를 비틀기 위해 등장시킨 동진이 호태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개연성을 갖추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는 인물들의 과거사와 관계를 부각해 그들 중 누가 붉은 눈의 징검다리가 될지 여부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해지는 이유다.
그 외에도 8일로 나눠서 사건을 진행시키는 구성 역시 부자연스럽다. 사건의 발단을 알리는 첫째 날과 대부분의 진상이 밝혀지는 여덟 번째 날을 제외하면 남은 6일은 붉은 눈의 이동 과정을 보여주는 것 말고 사실상 하는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도 악귀와 진수가 대치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검은 연기와 북산 암자가 위치한 절벽의 모습 등에서 몰입을 방해하는 어색한 CG의 흔적을 손쉽게 볼 수 있다. 그 결과 신비로운 분위기 안에서 나름대로 깊이 고민해볼 메시지를 던지지만, 정작 그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제8일의 밤>은 결국 자신의 낯섦을 신선함과 새로움이 아닌 애매모호함으로 귀결시키고 만다.
P(Poor, 형편없음)
선구안이 좋다고 훌륭한 타자가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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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에 이런 영화가 나오다니
조선 팔도 제일의 살수 '이난'(신현준) 병마가 그를 위협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에 고통스러운 몸을 이끌고 한 마을에 의탁한다. 탐관오리의 횡포와 울부짖는 백성들의 비명으로 점철된 살아있는 지옥… 조선 최고의 살수 '이난' 마침내 그가 깨어난다!
1. 빈약한 극본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이 예상 가능하다. 모든 장면이 클리셰로 가득하다. 악당에게 병에 걸린 전설의 살수가 다시 영웅이 되는 이야기인데 탐관오리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묘사부터 중간중간 등장하는 유머까지 굉장히 얕다. 분명히 초반에는 살수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유머코드가 등장하면서 '달마야 놀자'나 '가문의 영광' 같은 2000년대 상업 영화의 느낌도 많이 난다.
악당에게 쫓기는 비운의 살수 스토리는 마치 어둠의 조직에게 쫓기는 천재 탐정 명탐정 코난을 보는 것만 같다. 코난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이건 성인들을 타겟으로 하는 느와르 액션이 아닌가. '와, 저 살수 진짜 멋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주인공이 매력이 없다. 주인공 캐릭터에 힘은 들어가 있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그 멋있음에 설득되진 않는다. 그저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단편적인 배경 묘사 아래 주인공이 멋있다는 사실만 강조해놔서 관객의 입장에서 그냥 목소리 깔고 액션만 보여주면 캐릭터에 동화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싶다.
2. 어딘가 허술한 액션
장르가 시대극 느와르 액션인 만큼 액션도 굉장히 공들인 티가 난다. 하지만 잘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예상해 본다면, 액션에 돈이 많이 들어간 것 같진 않다. 이게 제작비 때문이라면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 가성비가 높은 액션을 선보였다는 뜻인데 수준높은 액션이냐 아니냐를 평가할 때 가성비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이 적절한 지는 모르겠다. 혹시 가능하다면 굉장한 연출력이 필요할 텐데, '정말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도 이런 액션을 구사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소리는 안나올 듯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액션이 몰려있는데 액션 영화를 잘 보진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액션이 주는 긴장감 보다는 이난 캐릭터가 카리스마있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전략이 다른 관객에게까지 먹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점 때문에 액션이 아무리 많아도 허술하다고 느꼈다.
3.누굴 위한 영화일까
모든 영화는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 독립 영화인지 그리고 장르별로 규모와 타겟 관객이 정해진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어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괜찮은 영화인지 묻고 싶다. 상업 영화인 것 같은데 내용이 너무 뻔하고 액션이라도 보라고 하기엔 액션 연기에 큰 메리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캐릭터도 그저 단편적이라서 예상이 가능하고 말이다. 도대체 이난과 대적하는 그 여자 살수는 눈이 왜 빨간 건지 알 수 없었다. 하다하다 '인간이 아닌 크리쳐'까지 등장시킨 거냐라고 생각했다. 허세 섞인 대사 또한 덤이다.
이난을 죽이려고 하는 그 위의 인물은 끝끝내 등장하지 않아 다음 시즌을 노린 걸까 싶은데 과연 다음 시즌은 나올 수가 있을까.
영화 리뷰 꽤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 혹평은 처음 하는 것 같다. 혹시 보시는 분이 있다면, 피드백 부탁드린다.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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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로드 된 영상입니다! :)
실력 있지만 허세 가득한 사회부 기자 ‘임상진’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취재하지만 오보로 판명되며 정직당한다. “기자님 기사 오보 아니었어요. 다 저희들이 만든 수법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제보자가 찾아온다. 자신을 온라인 여론 조작을 주도하는 댓글부대, 일명 ‘팀알렙’의 멤버라고 소개한 제보자는 돈만 주면 진실도 거짓으로,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불법은 아니에요. 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제보, 어디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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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드 카림> 메인 예고편
국가로부터 은밀한 지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던 첩보 요원 ‘카림’.
그동안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뒤로하고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최대의 테러 조직을 소탕하는 마지막 임무에서 예상치 못한 함정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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