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2-02-06 22:31:54
태어나서 본 극장 영화 중에 제일 무서웠던
<유전>, 스포일러 없이 추천합니다!
누구야. 영화 추천 좀 해줘! '영화 마니아'로 살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내 인간관계가 엉망이어서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예외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 공통점은 바로 '추천하면 안 본다'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나서 한 3,4년 즈음에 추천해달라는 말을 한창 많이 들었다.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나에게 그런 질문을 건넸다. 난 또 신나서 대답한다. 넷플릭스야? 왓챠야? 내 또래의 20대들은 거의 대부분 넷플릭스를 구독했다. 바로 넷플릭스에 어떤 로맨스 영화가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예전엔 <빅 피쉬>를 추천했었다. 아 <이터널 선샤인>도 있다. 예전에 <500일의 썸머>도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런 영화들 많이 답했던 것 같다. 스릴러 물을 좋아한다. 오. 너 스릴러 좋아하는구나! 나도 사람 죽는 거 좋아해. 바로 <언컷 젬스>를 답한다. 그리고 며칠 있으면 '그 사람이 이걸 봤을까' 싶다.
거의 대부분 안 본다. 딱 한 명 있다. 예전에 근로장학생 할 때 성격 좋았던 주임님이 계셨는데 그분 제외하고 단 한 명도 영화를 본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이제는 뭐 나에 대해서 대화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꺼냈으니 나쁘다고 말할 건 아닌 것 같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래서 요즘은 그런 질문이 들어오면 그냥 무난한 거 답한다. 아마 <벌새>나 <끝까지 간다>를 많이 답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이제까지 본 영화 취향에 맞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 사람들도 나름 할 일이 있을 테니, 난 그들의 삶을 응원하는 게 더 보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항상 주변인들에게 꾸준히 언급하는 작품이 있다. 이걸 실제로 볼 때 극장에서의 그 기분을 아직도 잊질 못하겠다. 또 이런 장르영화에서 느꼈던 결과는 전혀 다른 두려움을 느꼈으니 시야가 넓어지기까지 한 셈이다.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는 것도 맞는데 그 이면의 '난 태어나서 이 정도까지 무서워봤다'를 주로 이야기하게 됐었으니. 감독이 의도한 바가 나에게 통한 것 같다. 이런 나는 <유전>을 아마 50대가 될 때까지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여러분도 봤으면 한다. 이왕에 극장에서 보면 좋겠지만 재개봉 계획이 없는 것 같으니 일단 급한 불 끄러 왓챠와 넷플릭스로 가보자.
1.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주인공은 중년의 여성 애니다. 애니는 일주일 전에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찢어질 것 같이 아픈 마음을 안고 추도식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는 알 수 없는 분이셨어요. 비밀이 많았죠. 그리고 영화는 추도사 이후의 애니 가족 구성원을 비춘다. 가장 먼저 비추는 사람은 작은 딸 찰리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행동을 하는 찰리. 새의 머리를 갑자기 자르거나, 입으로 똑 똑 소리를 내는 둥 어딘가 좀 이상해 보인다. 이런 기행은 어머니 애니에게 들키게 된다. 딸이 느닷없이 맨발로 싸돌아다니는 걸 본 어머니 애니는 아들 울프에게 찰리와 함께 놀러 가라고 재촉한다. 억지로 따라가는 찰리. 울프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파티에서 오빠는 여학생들에게 정신이 팔리게 된다. 자연스레 동생 찰리는 시선에서 멀어지게 되고, 사건이 터진다. 바로 찰리가 땅콩이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된 것이다. 땅콩이 향만 첨가만 되는 정도면 모르겠는데 많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찰리는 오빠 울프에게 호흡곤란을 호소한다. 큰일 났다 싶어 차로 빠르게 병원에 달려가려는 울프. 엑셀을 꽉 눌러 과속하고, 찰리는 알레르기에 의한 답답함을 견디기 위해 창에 머리를 내민다. 그리고, 이 집안에서 일어나면 안 될 끔찍한 사고가 더 일어난다.
이게 영화의 30분 정도 되는 부분의 지점이다. 애니 가족은 이 사고를 기점으로 점점 혼령에 홀린 듯 행동한다. 울프, 애니, 스티브 그리고 다시 찰리까지. 집안의 우환이 구성원들이 선택하는 것 외에서 점점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를 위해 어머니 애니는 이 운명에 가까운 악재들을 극복하기 위해 크고 작은 노력들을 지속한다. 영화는 이 애니의 선택지에 대한 작품이다. 애니가 가족들을 구원해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를 보여주며 다른 공포영화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이 과정에서 오컬트와 호러라는 키워드가 들어간다. 더 구체적으로 쓰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뭐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말해보자면, 이 영화는 다른 공포영화와는 살짝 다른 두려움을 안겨준다. 소재가 '오컬트'인 부분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오컬트 영화. 대표적으로 <사바하>와 <검은 사제들>이 생각날 것이다. 이 영화에는 의식이라는 소재가 들어간다. 또 악마와 유령이라는 소재도 들어간다. 우리 일상 속에 악마와 유령이 있을까?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으니 '없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근데 우리는 이들의 속성을 알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이는 이 유령과 악마의 속성은 '우리 선택지 외의 것을 각자의 인생에 가져다준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이 악마의 속성을 반영했다. 정해져 있는 미래에서 오는 두려움이 뭐냐. 생각하는 게 그대로 결론이 난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결과가 똑같다는 뜻도 되기 때문에 무력감이 든다는 점에서 사람이 겁이 많아진다. 영화는 치밀하게 짜인 이야기 구성으로 사람을 점점 이 공포감을 안겨준다. '혹시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의 겁이 점점 현실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악마 때문은 아닐까? 싶게 만든다. 마치 모든 게 전지전능한 존재의 조종 아래에 있는 인형들처럼.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 무섭다. 엄청 무섭다. <악마를 보았다>나 <해피 데스 데이>같이 강한 이미지를 쓴 공포는 아닐 수도 있다. 근데 2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서히 조여 오는 공포가 영화의 특장점으로 발현되는 영화다. 아니 사실 많은 조건들 다 떠나서 공포영화의 최고 덕목이 뭐냐? 무서우면 최고 아닌가? 이 영화는 무서운 영화다.
두 번째. 미술이다. 세트장 구현을 잘해놓은 것 같다. 세트장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것 같은데 장소마다 인물이 커져 보이는 설계를 통해 오컬트라는 장르적 특징을 강화시켰다. 또 비주얼적으로 무섭다. 후반부 울프가 교실에서 하는 장면, 초반부 찰리가 머리를 자르는 부분, 또 찰리에게 일어난 사고 사후의 묘사 등 압도되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의식이나 주술의 비주얼도 잘 살려서 몰입하기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난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 자체가 3대 가문에서 이어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엥?' 싶을 수도 있을 듯.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토니 콜렛 이 해에 좀 서운했을 것 같다. 당시 아카데미 기록을 찾아보니 후보에도 못 들었다는데 나 같으면 좀 섭섭했다. 이 배우의 퍼포먼스로도 극을 이끌어가는 부분이 있으니 좋은 캐스팅이라고도 볼 수 있을 듯. 또 중반부 가족끼리 싸우는 신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도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했다.
6.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첫 번째. 무조건 밤에 봐라. 두 번째. 무조건 불 끄고 이불 덮고 봐라. 끝. 최대한 공포영화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을 각자가 만들면 몰입에 도움이 될 듯!
7.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공포 영화의 팬이라면 당연히 강력 추천한다!
- 2022-02-07 18:34:40테사
공포물을 좋아해서 다른 공포물들은 몇 번씩 다시 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유독 잔인해서 다시 볼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ㅠ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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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세계 - 아름다움과 아픔이 비례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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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한 남자가 출소했다. 그가 본 세상은...
13년간 감옥에 복역 중이던 전직 야쿠자 미카미는 새로운 각오를 품고 출소한다.
변해버린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매번 트러블을 일으키지만
주변 이웃들의 작은 관심과 애정으로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자신의 갱생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어 하는 진지한 청년과도 만난다.
하지만 13년이라는 시간의 공백과 범죄자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정상이라 말하는 이 세상은 자신이 소중히 지켜온 것마저 버리게 만들어 버린다.
이 세상은 과연 그가 꿈꾸던 멋진 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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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 리뷰 - 누군가의 혁신이 불법으로 되버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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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금지법 이후 6개월 간의 악전고투 이야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한국의 우버로 불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TADA).
출시한 지 9개월 만에 100만 유저를 확보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택시업계의 반발로 법적 공방에 휘말린다.
뜨거운 논란 속 치러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날, 모든 팀원들은 함께 모여 ‘종이컵 와인 파티’로 자축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단 14일 뒤, ‘타다금지법’이 통과됐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이 들려오는데...
그들은 이 최악의 위기를 뚫고 타다를 새롭게 부활시킬 수 있을까?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의 이야기로 세상에 공개되는
‘스타트업’에 대한 국내 최초의 다큐멘터리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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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탈주> 2차 예고편
올여름, 극장가 포문을 열 단 하나의 추격 액션! 절박한 질주 VS 긴박한 추격! [탈주] 2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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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를 깨우는 바람> 예고편
“우리는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여성이 삶에서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빼면, 처음 보는 사람들마저 대뜸 그 여성의 비참한 미래를 예언한다. 여성의 삶은 '아내'나 '엄마'로 마무리 되어야만 해피엔딩이라는 낡은 믿음은 2020년이 된 지금도 건재하다.
2020년이 된 지금, 많은 여성들이 낡은 관습을 버리고, 자신만의 세상을 향한 비행을 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비혼의 길을 걷고 잇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선택지가 둘이 되어 자유가 확장되고 그리하여 여성들의 일상이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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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한 폭발이 불러온 감정의 분열
자신이 한 일이 복합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갈 때,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양한 결정을 하고 그것은 당연히 최선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여야만 한다. 당연히 그것은 그 모든 주변 상황 속에서 얻은 최선의 결과일 것이고 그렇게 생각해야 그 성취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결정이 다른 방향의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분명히 그것은 내 안위를 위한, 주변 사람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것으로 인한 피해를 받게 된다.
전쟁이라는 소용돌이는 그런 아이러니를 무수히 만들어낸다.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전한 여러 일반인들은 최전선에 투입되어 목숨을 걸고 적군에게 총을 겨눈다. 상대 적군으로 참여한 병사도 마찬가지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명령에 따라 상대방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 결정하나만으로도 우리 병사가 쏜 총탄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죽음의 총탄이 된다. 이렇게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는 전쟁 속에서 무수한 결정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합적인 고민과 감정을 만들어준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 팀장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개발 연구였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결국 핵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일 그리고 일본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력했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오펜하이머라는 물리학자를 중심에 세워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나치에 퍼부울 원자폭탄을 개발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을 한 이후 정보 열람권을 놓고 작은 청문회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과거 회상을 섞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다른 한 편으로는 미국 원자력 협회 소속인 스트라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장관 후보 청문회 과정을 보여주면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조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미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있다. 영화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초창기부터 원자폭탄 개발 성공의 과정을 대부분 보여주긴 하지만, 정말 이 영화가 관심이 있는 건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감정과 생각이다. 그래서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심경을 풍부한 음향과 음악으로 표현함으로써 그가 느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정들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필자는 영화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보다는 영화 속 오펜하이머의 변화되는 감정을 생각해 보면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과 후 꽤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서 많은 물리학자와 군인들을 설득하고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했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한 곳에 융합해 내기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여러 트러블이 있었음에도 그는 그 압박을 이겨냈다. 원자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난 직후 오펜하이머의 모습에선 잠시나마 안심이라는 감정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면 보이는 것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본에 수많은 일반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것은 조금씩 오펜하이머의 마음을 조여왔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경전의 말을 그 자신도 인용하듯,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사용 이후 정치인들이 자신이 개발한 무기를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서 꽤 불안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 그가 아인슈타인에게 나쁜 연쇄반응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가 가진 불안이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오펜하이머는 정치인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국가를 위해 최고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그는 메카시즘 광풍에 희생당하는 처지가 된다. 과거 공산당의 이론에 관심이 있었고, 동생을 비롯한 주변 사람이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어 결국 정치적으로 희생당하고 각종 권한을 모두 박탈당한다. 그 당시 오펜하이머는 왜 그렇게 정치적인 논쟁거리 속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저항했을까. 자신의 지위를 보존하는 데에 조금은 부족한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건 오펜하이머가 스스로 만들어낸 악마 같은 무기의 통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방어함으로써 신무기에 대한 정보와 권한을 가지길 원했고, 심지어 그 당시 트루먼 대통령(게리 올드만)을 만나 손에 피를 묻혔다는 말을 하며 그가 개발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전달하려 했다. 비록 인류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했지만 그 자신은 그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는 청문회 이후 가지고 있던 지위를 모두 박탈당하면서 그 자신의 자신감이나 뿌듯한 감정도 분열되어 조금씩 사라져 버리고 만다.
크리스토퍼 놀란식으로 만들어진 파워풀한 전기 영화
이런 감정의 큰 변화는 그의 개인 연애사에서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결혼 전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과 깊은 연애를 했다. 서로 무척 사랑했지만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던 진과는 결국 헤어지게 된다. 마치 원자폭탄을 개발하듯 엄청나게 깊게 빠져들었고, 원자폭탄이 폭발하듯 터졌던 두 사람의 감정은 그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 파멸을 맞는다. 진은 이후 감정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했고, 오펜하이머는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그는 그의 아내인 캐서린(에밀리 블런트)과 결혼한 이후에도 진을 완전히 잊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진에 대한 죄책감이 평생 남은 것처럼 그가 주도해서 만들었던 원자폭탄과 폭탄 투하에 대한 죄책감 역시 평생 가지고 남은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영화는 그런 그가 짊어진 죄책감을 다양한 영상효과와 편집으로 표현해 낸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묵직하고 건조한 이야기의 시간 구조를 교차로 구성하여 영화적 흥미를 높인다. 특히나 오펜하이머의 반대편에 서서 안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 스트라우스의 청문회 장면과 서사는 흑백으로 처리되어 그 당시 메카시즘이 행해져 흑백으로 나눠졌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다르게 보면 스트라우스의 서사와 오펜하이머의 서사가 충돌하는 듯한 느낌도 주는데, 결국 두 사람의 간접적인 충돌과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에 오펜하이머의 주변부가 폭탄처럼 분열되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번 영화에는 음악과 음향이 큰 역할을 한다. 다양한 방식의 교차편집에 긴장감을 더해주는 건 영화음악이다. 이번 <오펜하이머>의 음악감독은 루드비히 고란슨이 맡았다. 그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한스 짐머가 도맡아 했지만, 그가 다른 영화 음악 작업일정으로 인해, 이번 신작에서는 루드비히에게 넘어갔다. 루드비히는 2019년 마블 영화 <블랙 팬서>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은 바 있으며, 이후 <테넷>, <베놈> 시리즈의 음악도 작업한 바 있다.
다른 무엇보다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잘 전달하고 있고, 그가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영화의 주인공 역할도 훌륭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킬리언 머피의 필모 중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 외에 스트라우스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레슬리 역의 맷 데이먼, 진역의 플로렌스 퓨, 캐서린 역의 에밀리 블런트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 인물의 대한 이야기를 놀란 식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영화다. 다양한 교차편집과 힘 있는 음악으로 가장 무섭고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냈던 인물이 겪었던 일과 느꼈던 감정이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면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원자폭탄이 개발되고 투하된 이후, 전 세계에 뻗어나간 원자폭탄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과 다양한 일들을 보며 오펜하이머는 어떤 생각들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았을까.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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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를 통해 경청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를 전달한 영화 《라따뚜이》
쥐라는 생명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영화 《라따뚜이》는 쥐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꿔준 작품이었다. 쥐에게서 이렇게 사랑스러움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 《라따뚜이》 시놉시스
파리에서 날아온 '니모를 찾아서' & '인크레더블' 제작진의 달콤한 상상
절대미각, 빠른 손놀림, 끓어 넘치는 열정의 소유자 ‘레미’.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그에게 단 한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주방 퇴치대상 1호인 ‘생쥐’라는 것! 그러던 어느 날, 하수구에서 길을 잃은 레미는 운명처럼 파리의 별 다섯개짜리 최고급 레스토랑에 떨어진다. 그러나 생쥐의 신분으로 주방이란 그저 그림의 떡. 보글거리는 수프, 둑닥둑닥 도마소리, 향긋한 허브 내음에 식욕이 아닌 ‘요리욕’이 북받친 레미의 작은 심장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쥐면 쥐답게 쓰레기나 먹고 살라는 가족들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주방으로 들어가는 레미.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요리에 열중하다 재능 없는 견습생 ‘링귀니’에게 ‘딱’ 걸리고 만다. 하지만 해고위기에 처해있던 링귀니는 레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의기투합을 제안하는데. 과연 궁지에 몰린 둘은 환상적인 요리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레니와 링귀니의 좌충우돌 공생공사 프로젝트가 아름다운 파리를 배경으로 이제 곧 펼쳐진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라따뚜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쥐가 이렇게 귀여우면 곤란한데
쥐를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고, 한편 학교에서 쥐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절레절레,, 소오름,,, 몸서리,,,, 크기로 따지자면 쥐들이 나를 무서워 해야하지만 나는 쥐고 무섭고 싫다. 그런데 영화 《라따뚜이》에서는 쥐에 대한 매력을 굉장히 다채롭게 뽐내고 있었다. 영화 《라따뚜이》를 보고 퇴근하는 길에 호도도도돋도도 지나가는 쥐를 봤는데 쟤도 뛰어나닐 때 호도도도도돋 레미처럼 귀여운 소리가 나겠지 하고 실제하는 쥐를 귀엽게 보기 시작했다.
사실 쥐라는 동물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천대받고 더러운 존재로 묘사된다. 그런 존재를 역으로 가장 청결해야할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기존의 통념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실제하는 쥐마저 귀엽게 인식하도록 그 시선마저 바꿔버린 영화의 능력에 놀랐다.
감정에 따라 걷는 방식이 달라지는 레미
영화 《라따뚜이》에서 레미에 관한 연출 중 특징이 가장 드러났던 부부은 레미가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이다. 쥐들은 4발로 기어서 움직인다. 하지만 레미는 자신의 앞발로 요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4발로 걸어다닐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렇게 요리와 사람에 대한 희망이 있을 때 레미는 아주 위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항상 두 발로 걸어다닌다. 하지만 링귀니의 배신(?)으로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쥐가 사람을 대신해서 요리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네 발로 기어서 이동한다.
항상 자신은 두 발로 걷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여주던 레미였는데 자신의 신세를 체념하면서 네발로 달려갔을 때는 그 눈빛하며 버림받은 듯한 어조가 레미 입장에서는 세상이 무너진 것과 같겠구나 하는 감정이 확 다가왔다. 그래서 그 감정과 태도의 변화를 구분되는 장치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경청할 줄 안다는 것
영화 《라따뚜이》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경청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너져가는 신뢰 속에서 그 신뢰를 붙잡은 것은 경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미가 다시 요리를 힘차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레미의 능력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링귀니를 말을 듣던 레미의 아버지가 그동안 인정하지 않아서 미안하다며 자신의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말해달라고 한다. 쥐다운 삶이 아니라고 레미를 혼냈던 아버지지만 레미의 친구라도 볼 수 있었던 링귀니의 말을 경청하면서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더불어 독설적인 비평가인 안톤 이고 역시 자신이 본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레미와 링귀니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다. 아무말 없이 돌아선 그는 다음 날 이제껏 먹었던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던 음식이었고, 이제까지 날선 비판만을 해온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과 후회의 글을 남겼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아는 자세가 우리의 삶 속에 필요하다는 것을 잘 전달해주는 작품이었다.
재미와 함께 감동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었던 영화 《라따뚜이》. 편협한 시각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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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
가족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간다. 비록 조금 관점과 사상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대화와 이해심으로 그 방향을 맞춰나간다. 어쩌면 태어나면서 맺어지는 가족과의 관계는 끊어지기 어려운 관계이고 그런 점에서 좀 더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에게 가족이 생기는 건 엄마의 뱃속에 자리한 순간부터다. 일방적으로 생성된 그 관계는 출산의 과정을 거쳐 현실 세계에서도 계속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삶을 이어나가다 보면 큰 상실감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 상실감은 가족 전체를 흔들고, 각자가 바라보는 방향을 흔들어 놓는다.
갑자기 찾아온 상실감은 어떤 경우에는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그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게 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가족을 흩어놓기도 한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극복해 나가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갑자기 찾아온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실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가 그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직시하고, 또 어떤 방향으로 걸어 나갈지를 결정하고 나면 그 뒤에는 천천히 그 어려운 상황을 회복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은 더 단단해지고, 비록 다른 방향을 보았더라도 다른 곳에 서있던 가족을 이해하게 된다.
아이를 잃은 부부의 상실감과 회복에 대해 다루는 영화
영화 <그녀의 조각들>은 출산 과정에서 아이를 잃은 부부와 그 주변 가족의 상실감과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특히 영화는 아내 마사(바네사 커비)와 남편 숀(샤이아 라보프)이 바라보는 길이 어떤 식으로 달라져가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초반 출산일이 임박한 마사와 숀의 관계는 매우 좋아 보인다. 출산에 대한 기대감과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설레임으로 가득한 그들은 출산 신호가 오자 조산사를 집으로 부른다. 그들은 병원보다는 집에서 조산사와 가정 출산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그렇게 영화는 초반 30분 동안 그들이 진통과 출산하는 과정을 아주 세세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출산의 과정은 대체적으로 안전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전문 인력이 있는 병원에서 출산을 한다. 개인적으로 출산을 하더라도 영화에서처럼 전문적인 조산사가 그 과정을 옆에서 돕는다. 출산의 과정에서 많은 부분은 부부가 원하는 부분이 반영된다. 영화 <그녀의 조각들> 속 마사와 숀도 병원보다는 집에서 출산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 방법을 부부가 선택했다. 그들의 방법 선택부터 출산의 최종 단계까지 무언인가가 잘못된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원하던 조산사는 아니지만 꽤 친절하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다른 조산사가 왔고 단계별로 출산 과정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어 마사와 숀은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지 몇 분 되지 않아 아이는 숨을 쉬지 못했고 구급요원을 불렀지만 아이가 거둔 숨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영화가 이렇게 초반 30분 동안의 출산 과정을 아주 디테일하게 다루는 이유는 이것이 주인공 마사와 숀의 심리상태를 변화하게 하는 아주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30분의 그 과정을 보고 나면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그 일련의 출산 과정들에 대한 판단을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넘긴다.
비극적인 일 이후 서로 다른 대처 방식을 보이는 부부, 마사와 숀
출산 장면이 끝난 이후에야 영화 제목의 타이틀이 나오는데 영화를 보던 이들은 안타까움을 먼저 느낀다. 그리고 나서는 앞에서 본 사건에 대한 잔상을 통해 그것에 대해 판단하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전개되는 영화의 다음 이야기는 그 일의 원인 규명에 대한 일보다는 부부가 그 일이 벌어진 이후 대처하는 모습에 대한 것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향을 본다. 다르게 말하면 각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먼저 마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출산 전 하던 활동을 이어간다. 사무실에 출근하고, 마트에서 장을 본다. 반면 남편 숀은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 울음을 터뜨리고, 그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애쓴다. 그의 노력은 결국 그것이 누구 때문인지 책임을 돌리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두 사람이 대처하는 방식 중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방법으로 그 일을 잊고 털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각자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관계에도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보고 혼자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마사는 아이의 사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부검의의 말을 그저 말없이 듣고 있지만, 숀은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냐면서 화를 낸다. 마사는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며 조각들을 맞춰가는 반면, 숀은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여러 번 충돌한다. 그러면서 이 둘의 관계는 깨질 듯 말 듯 아주 위태로워 보인다.
영화 속에는 또 다른 시선이 등장한다. 바로 마사의 엄마 엘리자베스(엘런 버스틴)가 그녀의 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딸이 그 일의 책임이 마사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책임을 조산사의 실수로 돌리려 애쓴다. 주로 법적 투쟁을 통해 조산사를 처벌하려는 노력이다. 엘리자베스는 그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딸이 좀 더 편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숀과 함께 마사를 설득하려 애쓴다. 그의 이런 시선은 어쩌면 제 3자로서 자신이 지켜낸 소중한 딸의 아픔을 최대한 덜어내려는 엄마의 모습인지 모른다. 영화는 이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엘리자베스와 마사의 충돌과 관계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마사의 심리를 정확히 전달하는 배우 바네사 커비의 연기
영화는 출산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중반에는 마사의 심리 상태와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준 후, 법정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마사는 긴 고민 끝에 그만의 해결방법을 찾는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관계는 깨지고 어떤 관계는 다시 더욱 단단해진다. 그가 여러 가지 일을 겪는 동안,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심리적인 변화 과정이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있는데,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바로 배우 바네사 커비의 연기력이다. 그저 액션 블럭버스터 영화의 주연 정도로만 생각했던 바네사 커비는 이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다. 눈물과 아픔을 억누르고 감정적인 반응을 내색하지 않으면서 그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마사의 심리를 정확히 표현한 그는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연기가 훌륭했다는 사실을 증명받았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이후에는 관객들도 회복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완전한 회복은 아닐지라도 그다음 발걸음을 옮겨갈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을 영화가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마사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사과향은 그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가 아프게 떠났다. 하지만 그 사과향은 완전히 그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의 기억 속에, 그녀의 사진 속에 그리고 그녀의 엄마인 엘리자베스의 기억 속에도 자리하며 마사의 다음 발걸음을 가볍게 할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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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조각들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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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姓)을 찾아 스스로 새장을 박차고 나가는 해방 서사
1. 주제
이 영화의 주제는 ‘진정한 자유는 본래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왕실 안, 상황 별로 입어야 하는 옷마저 정해져있는 구속과도 같은 삶을 사는 주인공 ‘다이애나’가 자신의 성(姓)이자 정체성인 ‘스펜서’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파블로 라라인의 영화 <스펜서>. 한시라도 몸을 담그고 살 수 없을 정도의 압박 그 자체의 왕가 세계인 ‘샌드링엄 하우스’와 ‘스펜서’의 모든 옛 추억이 담긴 ‘샌드링엄 파크 하우스’. 크리스마스에 그 두 공간에서 요동치는 스펜서의 내면을 다룬다. 여왕은 텔레비전에서 ‘자유 국가’라며 자유의 의미에 관한 연설을 하지만, 정작 왕실 안에서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오죽하면 다이애나가 아들에게 규칙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은 ‘기적’이라 칭할 정도이다. 영화 초반부, 어릴 적 고향임에도 길을 잃어 혼란스러웠던 다이애나는 샌드링엄 하우스 근처에 도착하여 아버지 외투가 입혀진 허수아비를 보고 이제 조금씩 기억이 난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영화 후반부, 허수아비에 입혀져있던 아버지의 외투를 가져오는 행위는 아버지의 성 ‘스펜서’로 살던 시절, 즉 자유를 되찾아 오는 의미가 돋보인다.
2. 모티프
1) ‘꿩’과 ‘총’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길바닥에 널브러진 ‘꿩’의 시체를 로우앵글의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군용차량에 아슬아슬하게 밟힐 듯하지만 피해 간다. 마치 아슬아슬한 다이애나의 상황처럼 말이다. 왕가에서는 그저 ‘재미로’ 유희를 위해 하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재미’는 매번 다이애나를 옭아맨다. ‘몸무게 재기’ 그리고 ‘꿩 사냥’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꿩’은 재미를 위해 길러져서 총을 맞아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내내, 다이애나는 사냥(유희)을 위해 길러진 이 ‘꿩’처럼 길러진 미물로써 묘사된다. 영화 중반부, 붉은 옷을 입은 다이애나가 카메라에 둘러싸인 시점샷은 파파라치들에 둘러싸인 대중의 사냥감 다이애나 역시 유희의 도구로써 사용됨을 명확히 보여준다. 총으로 꿩을 겨누는 것이 파파라치가 다이애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과 겹쳐진다. 극중 다이애나는 문학 작품에서 객관적 상관물과 같이 ‘꿩’에게 자기 자신에 빗대어 말을 걸기도 한다. “날아가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래서 영화 후반부, 다이애나가 아버지의 외투를 걸친 채 두 팔을 새처럼 들어 올려 사냥 중인 아들과 군인들 앞에 서서 상황을 어그러뜨리는 장면이 마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를 벗어나는 꿩처럼 보이는 것이다. 자유를 찾기로 결심하고 행하는 신에서 다이애나가 ‘꿩’에 투영되어 극적으로 묘사되었다. 롱 샷으로 다이애나와 두 아들이 손을 잡고 뛰는 모습을 팔로잉하는 샷은 관객에게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2) 검은색 8번 당구공
영화 중반부. 광각으로 당구대를 사이에 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거리감이 드러나는 신, 당구대에 아주 정교하고 계산적으로 공들이 놓여있다. 리버스 샷에서 두 인물 모두 정중앙에 위치하고 아주 천천히 달리 인하며 숨을 조여온다. 찰스 왕세자 앞에 날카롭게 삼각형으로 놓인 붉은색 공들은 다이애나의 모든 가능성이 다 찰스 왕세자 손안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찰스는 진짜 나의 모습과 그들이 찍는 내 모습, 두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다이애나에게 검은색 8번 공을 굴린다. 그리고 8번 공을 잡은 다이애나가 검은 공을 떨어뜨리는 걸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당구는 검은색 8번 당구공을 홀 안에 넣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 8번 공이 당구대 밖으로 떨어지는 것은 애초에 둘의 게임은 찰스 왕세자로 승자가 정해져있는 공평하지 않은 게임이고, 공을 떨어뜨리는 것은 다이애나가 더 이상 그 게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행위이다.
3) 진주 목걸이와 앤 불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진주 목걸이는 다이애나에게 채워진 목줄과도 같다. 이 진주 목걸이는 찰스의 내연녀 커밀라와 같은 것이다. 다이애나는 극 중 꾸준히 제인 시모어 책을 읽는다. 간통은 헨리 8세가 했지만, 정작 간통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앤’과 자기 자신을 빗대어 보고, 그녀의 환영을 자주 마주한다. 영화 중반부, 식사 자리에서 여왕과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를 감시하듯 바라보는 다이애나의 시점샷이 반복되고 앤 불린의 환영이 나타난다. 연주되는 음악 역시 격정적으로 고조되며 숨통을 조여와 다이애나는 진주 목걸이를 뜯어 씹어 삼키는 환상을 본다. 그렇게 다이애나는 식사 때마다 음식물이 입에 들어오자마자 게워낸다. 다이애나의 시점샷은 영화 중반부, 크리스마스 당일 세인트폴 성당 앞에서도 볼 수 있다. 복잡한 다이애나의 마음이 투영되듯 핸드헬드로 찰스 왕세자의 내연녀 커밀라에서 찰스 왕세자로 초점이 맞는다. 반복적인 시점샷은 불안정한 다이애나의 심리를 극대화한다. 영화 클라이맥스, 옛 추억이 담긴 샌드링엄 파크 하우스에서 자살을 고민하던 운명적이고도 위험한 상황, 어둠 속에서 ‘앤 불린’ 의 환영이 나타나 말한다. 남편이 내연녀와 똑같은 초상화를 자신에게 선물했다고 말이다. 뜯고 도망치라는 앤의 음성이 들리자, 다이애나가 발레를 하고 싶던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이 춤을 추는 시퀀스가 이어진다. 그렇게, 본래 자신에게서 자유를 찾고 결심을 하는 순간, 진주 목걸이를 뜯는다.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4) 차 번호판
영화 초반부,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길을 잃은 채 샌드링엄 하우스를 찾기 위해 차를 몬다.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던 다이애나의 내면이 현실 상황에 투영된 듯이 말이다. 그러고는, 내내 혼란스럽고 어두운 표정으로 “Where Am I?”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자신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물음, 마치 다이애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 초반부, 붉은 체크무늬 재킷을 입은 채 길을 잃은 다이애나는 ‘G580SGT’ 번호판의 차를 운전하고 있다. 운전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롱 샷으로 잡혔고, 영국 특유의 구름 낀 날씨에 탁한 색감을 띈다. 야외임에도 자동차에 햇빛과 조명이 거의 비추는 양이 적어 콘트라스트가 낮은 차분하고 글루미한 분위기다. 외화면에서는 격식 있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다이애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리고, 별장 근처에 다다랐을 때, 갓길에 사선으로 세운 다이애나의 차. 그때의 차 번호판은 ‘J548LRP’이다. 하늘은 구름에 완전히 뒤덮여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콘트라스트가 거의 없고, 인물들의 얼굴 역시도 그림자가 거의 지지 않아 창백하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후반부, 꿩 사냥에서 아이들을 데려온 캐주얼한 진과 플랫슈즈 차림의 다이애나가 왕실 안에서 출발할 때의 번호판은 ‘J548LRP’이지만, 왕실에서 벗어난 직후 차의 번호판은 ‘G580SGT’이다. 롱 샷으로 다이애나와 그녀의 아들들이 질주하는 자동차를 잡고. 구름 낀 날씨임에도 햇빛이 스펜서와 아이들이 탄 차를 비춰 활기찬 분위기를 형성한다. 심도가 얕지 않지만, 가운데 빛이 강하게 반사되는 차를 탄 다이애나와 아이들에게 초점이 간다. 내화면에서 ‘All I Need Is A Miracle’ 틀어 자유롭게 노래 부르며 드라이브한다. 이제는 정확한 행선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확신에 가득 찬 모습으로 아들에게 말한다. “Trust me.”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초반부 고향에서 왕실로 들어갈 때는 ‘G580SGT’에서 ‘J548LRP’, 후반부 왕실에서 나올 때는 ‘J548LRP’에서 ‘G580SGT’이다. 진정한 스펜서의 정체성은 ‘G580SGT’, 통제받고 억눌린 다이애나의 삶은 ‘J548LRP’에 빗대고 있는 것으로, 인물의 긍정적인 변화를 직관적으로 그려낸다.
3. 결론
이 영화는 왕실에서 일거수일투족 구속받는 주인공 다이애나가 ‘진정한 나 = 스펜서’, ‘자유’를 결심하는 이야기이다. 호화로운 식사 자리에서 한 번도 마음 편히 식사를 한 적 없는 스펜서가 아들 둘과 도망쳐 나와 간 곳은 다름 아닌 패스트푸드점 ‘KFC’이다. 다이애나에겐 이런 ‘평범한’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식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스펜서’가 자신을 투영한 존재 ‘꿩’과 ‘앤 불린’ 그리고 그녀를 옭아매던 ‘진주 목걸이’와 ‘검은색 당구공’ 마지막으로 가장 직접적으로 다이애나의 진정한 정체성인 ‘스펜서’를 드러내는 번호판 ‘G580SGT’까지.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이 모티프들이 ‘자유로운 자신의 정체성’라는 하나의 주제 의식을 탄탄히 구축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다이애나 비의 일생을 잠시나마 체험하고 싶다면, <스펜서>를 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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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러 vs 액션, 익숙한 것들의 집합체 <스위트홈>
1. 신체능력 5점: 이 배우에 이 무기, 낯설지 않아
2. 판단력 5점: 검술은 거들뿐
3. 정신력 5점: 소주 한 잔으로 몇 모금까지 가능?
4. 필터링 2점: 생각을 그대로 뱉는 편
5. 포커페이스 5점: 비현실적인 초연함, 하지만 사실은....
신체능력, 이 배우에 이 무기, 낯설지 않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모리 역할을 맡은 김남희 배우가 해당 캐릭터 정재헌으로 분했기 때문에 검을 든 모습을 보자마자 친근함을 느꼈다.
"돌잡이에서 칼을 잡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납득이 갈 정도로 멋진 검술 실력을 보여준다.
판단력, 검술은 거들뿐
아무리 검술 실력이 좋다고 해도, 갖가지 능력을 가진 괴물들을 칼 한 자루로 상대하기엔 버거워 보인다.
그런데, 정재헌은 칼 한 자루로도 대체로 문제를 잘 해결한다.
관찰 결과, 그 비결은 상황 판단력!
감상의 재미를 위해 자세한 묘사는 생략한다. 그래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자면 상황을 판단하여 치고 빠지기를 잘한다.
정신력, 소주 한 잔으로 몇 모금까지 가능?
과거 알코올 중독이었다는 대사 한 마디, 그리고 빨리 마시고 가라는 식료품 담당의 핀잔을 들어가며 소주 한 잔을 몇 모금에 걸쳐 마시는 장면. 이 장면이 정재헌이라는 캐릭터의 정신력을 아주 잘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잠깐 동안 비친 인물의 성향이 훗날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도 드러난다.
필터링, 생각을 그대로 뱉는 편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도 '방이 더럽다'는 말을 툭 내뱉는다.
목소리와 말투만 들어보면 무척 다정하고 사려 깊을 것 같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뼈 때리는 소리이다.
생각을 말로 옮길 때 필터링이 잘 안 되는 편.
예상치 못한 갭이 캐릭터의 매력도를 더 높여준다.
포커페이스, 비현실적인 초연함, 하지만 사실은....
괴물의 위협을 받고 나서, 중요한 행동을 결정하기에 앞서서도 차분해 보인다.
시청자 눈에도, 옆에 있는 인물의 시선으로도 "떨고 있다고? 하나도 안 그래 보이는데?"라고 생각게 되지만, 정작 정재헌은 '굉장히 떨린다'라고 말한다.
의도치 않은 포커페이스의 달인.
배우 개그 또는 스포일러
존재 자체로도 스포일러가 되는 배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 한 캐릭터로 분하신 김갑수 배우. "언제 어떻게 돌아가시는 걸까?" 사망 전문 배우로 유명하신 터라, 해당 배우의 캐릭터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드라마<미스터션샤인>과 영화 <박열>에서 악랄한 연기를 선보여준 이정현 배우는 "여기에서는 또 얼마나 나쁜 놈일까?" 비교하며 감상케 된다.
또, 연기 잘하는 조승우 배우가 극찬한 한 배우도 극 중에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 스쳐가는 조연으로 나온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감상했다.작품 자체 스토리뿐만 아니라 현실에서의 배우 필모그래피를 고려하며 전개를 유추하게 된다.
그 예측이 뒤집어지든, 그대로 이뤄지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더해져 좋다.
호러가 우선일까, 액션이 우선일까?
한때 재밌게 감상하던 만화가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장르를 설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sf, 역사, 액션, 개그, 모험 등 잡다한 주제들을 모두 포괄하는 만화였기 때문에 그냥 '장르는 짬뽕이야'라고 소개하곤 했다.이 드라마 <스위트홈>도 그렇다. 장르는 짬뽕 같다. 감상하다 보면 익숙한 요소들이 이것저것 보인다.
돌연변이와 인류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할 법한 고민은 영화 <엑스맨> 시리즈와 게임 <메트로>에서 먼저 들었다.
조용하던 주인공 소년이 돌연변이가 되어 고통스럽게 성장하는 장면은 굉장히 만화 <도쿄 구울>과 닮았다.
생존자들이 괴물과 괴물보다 무서운 인간들에 대항해 살아남으려는 투쟁은 드라마 <워킹데드> 시리즈에서.
캐릭터들에게 함부로 정 주면 매우 가슴앓이하게 될 수 있다는 면에서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가 떠올랐다.
거기에 의사 드라마에서도, 법정 드라마에서도 연애하듯이 세상이 망조 드라마여도 로맨스가 가미되어 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오마주한 듯,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도 보였다.이런 '짬뽕'콘텐츠 중에서도 내가 선호하는 작품들은, 아무리 잡다한 특징을 포괄하고 있더라도 명확한 한 주제가 이끌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스위트홈>은 쭉 끌고 나가는 주 특징이 없는 듯하다.특히, 배경음악과 화면이 조화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E-sport 관람은 하지 않아서 이 드라마의 주 배경음악으로 쓰인 Warriors라는 곡을 몰랐다.
하지만, 화면은 호러가 강조되고 있는데 음악은 액션에 힘을 주고 있으니 어색했다.
이 작품은 분명 호러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왜 굳이 액션을 강조하는 음악을 주로 썼을까? 이 점이 아쉽다.
원작과 다른 캐릭터 구성과 전개
N웹툰에서 유료로 전체 스토리를 감상하기는 부담스러워서 서핑을 통해 정보를 찾아봤다.
원작 웹툰의 설정과 드라마를 비교해둔 정보들을 읽다 보니, 원작 그대로의 실사화를 기대하던 팬들에겐 아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한정된 공간 안에서 괴물과의 싸움, 생존을 위한 갈등을 다룰 뿐 아니라 아파트 밖의 상황을 전해줄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추가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해당 요소들로 인해 시즌2를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쉬운 면도 분명 존재하지만, 원작과 다르게 전개되면서
새로 등장할 인물이나 에피소드들을 기대하며 시즌2를 바라고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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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그해 여름, 남매 성장기의 한 페이지
7★/10★(윤단비 감독 작품, 2019년, 104분, 한국.)
〈남매의 여름밤〉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을 법한 유년의 기억 한 페이지를 소재 삼아 아이의 성장기를 담아낸 영화다. 겉보기에는 평온하고 잔잔하지만 아이들은 그 속에서 때로 격정을 느끼고, 아파하며, 성장한다. 여름과 성장의 질감이 짙게 묻어나는 이 영화를 천천히 따라가 보자.
철거를 앞둔 재개발 골목에 흰 다마스 한 대가 서 있다. 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옥주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동주가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의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서다. 할아버지의 집은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어 있다. 나무로 된 짙은 갈색의 실내 장식에서 나는 냄새가 화면 바깥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좋지도 싫지도 않지만 어느새 아늑해지는 그런 냄새. 옥주와 동주는 아주 느린 속도로 말하고 걷는 할아버지와 그의 흔적이 담긴 집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내 적응하고는 금세 웃음을 되찾는다.
영화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빠르게 흘러가는 아이들의 시간은 꽤나 잘 어울려서 관객을 웃음 짓게 한다. 굉장히 섬세하고 구체적인 장면들도 눈길을 끈다. 어떻게 상상하고 연출했을까 싶은 장면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남매의 기분 좋은 여름날에 대한 몰입도도 높아진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시간은 마냥 행복하게만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에 아이들은 성장한다. 첫 번째는 어른이라는 문제다. 옥주와 동주는 어려운 형편에도 남매를 잘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 남편과의 문제로 언젠가부터 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사는 고모를 잘 따른다. 자신들을 아껴주는 어른들의 마음이 진짜임을 알기 때문이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현실에 지친 어른, 현실에 지치다보니 현실과 닮아버린 어른이기도 하다. 두 어른은 거동이 힘들고 용변을 잘 가리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고자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집을 팔고자 한다. 이것만으로 아빠와 고모를 욕할 순 없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어른이 엄청난 품이 드는 돌봄노동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매우 힘들다.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간다면 꼭 그 집에서 살 필요가 없는 것도 맞다.
그러나 여기에는 빠진 게 있다. 옥주는 요양원과 집 문제를 두고 아빠에게 묻는다. “그걸 왜 우리가 결정해?”(요양원), “할아버지한테는 얘기했어?”(집). 옥주는 두 어른보다 현실과 윤리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더 잘 알고 있다. 설령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가더라도, 집을 판다고 하더라도 할아버지가 결정의 주체 혹은 의논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두 어른은 이 당연한 과정을 생략한다. 다소 화가 난 듯이 보이는 옥주의 감정은 정당하다. 어른이 부재한 곳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두 번째는 엄마 문제다. 옥주는 늘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동주를 자존심도 없냐며 다그친다. 아마도 엄마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동주에게 엄마를 만나러 가면 혼내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그런데 동주가 몰래 나가 혼자 엄마를 만나고 선물까지 받아 온다. 옥주는 화가 나서 이를 뺏으려 하고, 동주는 엄마의 선물을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결국 두 남매는 소리 지르며 몸싸움까지 한다.* 그러나 옥주가 이렇게 화가 났던 건 사실 자신도 엄마가 보고 싶기 때문이다. 엄마 문제에 의연한 척했던 건 어떻게든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긍정하기 위한 포장이었을 뿐, 그 역시 동주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어린이와 청년의 경계에서 홀로 의연히 버텨내고자 하는 옥주의 의지가 대견하면서도 쓸쓸하다. 그해 여름 한 소녀의 지극히 사적인 성장통이 보편적 호소로 다가오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덧. 이 영화를 배리어프리 영화(장애인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제작된 영화)로 봤는데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한국어 영화를 자막(일반 자막이 아닌 배경음악 등에 대한 정보까지 포함한 상세한 자막), 내레이션(박정민 배우가 재능 기부한 것으로 화면 움직임에 대한 해설 등으로 구성)과 함께 보며 모두가 볼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내레이션의 문장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굉장히 문학적인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화면 대신 내레이션만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이 그려냈을 남매의 여름밤도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싸우는 두 남매를 중재하며 달래주는 사람이 할아버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른’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노쇠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오히려 남매를 다독인다는 것은 아빠와 고모의 판단이 틀린 것일 수 있음을, 우리 시대의 어른됨이 정상성(사회생활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육체적, 정신적 기준) 바깥에서만 가능한 것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건 아닐까? 어쨌든 ‘현실’이 인간을 찌들게 하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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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세계 - 아름다움과 아픔이 비례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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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한 남자가 출소했다. 그가 본 세상은...
13년간 감옥에 복역 중이던 전직 야쿠자 미카미는 새로운 각오를 품고 출소한다.
변해버린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매번 트러블을 일으키지만
주변 이웃들의 작은 관심과 애정으로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자신의 갱생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어 하는 진지한 청년과도 만난다.
하지만 13년이라는 시간의 공백과 범죄자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정상이라 말하는 이 세상은 자신이 소중히 지켜온 것마저 버리게 만들어 버린다.
이 세상은 과연 그가 꿈꾸던 멋진 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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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 리뷰 - 누군가의 혁신이 불법으로 되버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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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금지법 이후 6개월 간의 악전고투 이야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한국의 우버로 불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TADA).
출시한 지 9개월 만에 100만 유저를 확보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택시업계의 반발로 법적 공방에 휘말린다.
뜨거운 논란 속 치러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날, 모든 팀원들은 함께 모여 ‘종이컵 와인 파티’로 자축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단 14일 뒤, ‘타다금지법’이 통과됐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이 들려오는데...
그들은 이 최악의 위기를 뚫고 타다를 새롭게 부활시킬 수 있을까?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의 이야기로 세상에 공개되는
‘스타트업’에 대한 국내 최초의 다큐멘터리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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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탈주> 2차 예고편
올여름, 극장가 포문을 열 단 하나의 추격 액션! 절박한 질주 VS 긴박한 추격! [탈주] 2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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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를 깨우는 바람> 예고편
“우리는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여성이 삶에서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빼면, 처음 보는 사람들마저 대뜸 그 여성의 비참한 미래를 예언한다. 여성의 삶은 '아내'나 '엄마'로 마무리 되어야만 해피엔딩이라는 낡은 믿음은 2020년이 된 지금도 건재하다.
2020년이 된 지금, 많은 여성들이 낡은 관습을 버리고, 자신만의 세상을 향한 비행을 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비혼의 길을 걷고 잇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선택지가 둘이 되어 자유가 확장되고 그리하여 여성들의 일상이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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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한 폭발이 불러온 감정의 분열
자신이 한 일이 복합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갈 때,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양한 결정을 하고 그것은 당연히 최선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여야만 한다. 당연히 그것은 그 모든 주변 상황 속에서 얻은 최선의 결과일 것이고 그렇게 생각해야 그 성취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결정이 다른 방향의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분명히 그것은 내 안위를 위한, 주변 사람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것으로 인한 피해를 받게 된다.
전쟁이라는 소용돌이는 그런 아이러니를 무수히 만들어낸다.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전한 여러 일반인들은 최전선에 투입되어 목숨을 걸고 적군에게 총을 겨눈다. 상대 적군으로 참여한 병사도 마찬가지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명령에 따라 상대방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 결정하나만으로도 우리 병사가 쏜 총탄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죽음의 총탄이 된다. 이렇게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는 전쟁 속에서 무수한 결정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합적인 고민과 감정을 만들어준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 팀장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개발 연구였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결국 핵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일 그리고 일본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력했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오펜하이머라는 물리학자를 중심에 세워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나치에 퍼부울 원자폭탄을 개발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을 한 이후 정보 열람권을 놓고 작은 청문회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과거 회상을 섞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다른 한 편으로는 미국 원자력 협회 소속인 스트라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장관 후보 청문회 과정을 보여주면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조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미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있다. 영화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초창기부터 원자폭탄 개발 성공의 과정을 대부분 보여주긴 하지만, 정말 이 영화가 관심이 있는 건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감정과 생각이다. 그래서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심경을 풍부한 음향과 음악으로 표현함으로써 그가 느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정들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필자는 영화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보다는 영화 속 오펜하이머의 변화되는 감정을 생각해 보면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과 후 꽤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서 많은 물리학자와 군인들을 설득하고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했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한 곳에 융합해 내기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여러 트러블이 있었음에도 그는 그 압박을 이겨냈다. 원자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난 직후 오펜하이머의 모습에선 잠시나마 안심이라는 감정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면 보이는 것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본에 수많은 일반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것은 조금씩 오펜하이머의 마음을 조여왔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경전의 말을 그 자신도 인용하듯,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사용 이후 정치인들이 자신이 개발한 무기를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서 꽤 불안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 그가 아인슈타인에게 나쁜 연쇄반응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가 가진 불안이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오펜하이머는 정치인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국가를 위해 최고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그는 메카시즘 광풍에 희생당하는 처지가 된다. 과거 공산당의 이론에 관심이 있었고, 동생을 비롯한 주변 사람이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어 결국 정치적으로 희생당하고 각종 권한을 모두 박탈당한다. 그 당시 오펜하이머는 왜 그렇게 정치적인 논쟁거리 속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저항했을까. 자신의 지위를 보존하는 데에 조금은 부족한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건 오펜하이머가 스스로 만들어낸 악마 같은 무기의 통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방어함으로써 신무기에 대한 정보와 권한을 가지길 원했고, 심지어 그 당시 트루먼 대통령(게리 올드만)을 만나 손에 피를 묻혔다는 말을 하며 그가 개발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전달하려 했다. 비록 인류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했지만 그 자신은 그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는 청문회 이후 가지고 있던 지위를 모두 박탈당하면서 그 자신의 자신감이나 뿌듯한 감정도 분열되어 조금씩 사라져 버리고 만다.
크리스토퍼 놀란식으로 만들어진 파워풀한 전기 영화
이런 감정의 큰 변화는 그의 개인 연애사에서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결혼 전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과 깊은 연애를 했다. 서로 무척 사랑했지만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던 진과는 결국 헤어지게 된다. 마치 원자폭탄을 개발하듯 엄청나게 깊게 빠져들었고, 원자폭탄이 폭발하듯 터졌던 두 사람의 감정은 그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 파멸을 맞는다. 진은 이후 감정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했고, 오펜하이머는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그는 그의 아내인 캐서린(에밀리 블런트)과 결혼한 이후에도 진을 완전히 잊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진에 대한 죄책감이 평생 남은 것처럼 그가 주도해서 만들었던 원자폭탄과 폭탄 투하에 대한 죄책감 역시 평생 가지고 남은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영화는 그런 그가 짊어진 죄책감을 다양한 영상효과와 편집으로 표현해 낸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묵직하고 건조한 이야기의 시간 구조를 교차로 구성하여 영화적 흥미를 높인다. 특히나 오펜하이머의 반대편에 서서 안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 스트라우스의 청문회 장면과 서사는 흑백으로 처리되어 그 당시 메카시즘이 행해져 흑백으로 나눠졌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다르게 보면 스트라우스의 서사와 오펜하이머의 서사가 충돌하는 듯한 느낌도 주는데, 결국 두 사람의 간접적인 충돌과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에 오펜하이머의 주변부가 폭탄처럼 분열되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번 영화에는 음악과 음향이 큰 역할을 한다. 다양한 방식의 교차편집에 긴장감을 더해주는 건 영화음악이다. 이번 <오펜하이머>의 음악감독은 루드비히 고란슨이 맡았다. 그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한스 짐머가 도맡아 했지만, 그가 다른 영화 음악 작업일정으로 인해, 이번 신작에서는 루드비히에게 넘어갔다. 루드비히는 2019년 마블 영화 <블랙 팬서>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은 바 있으며, 이후 <테넷>, <베놈> 시리즈의 음악도 작업한 바 있다.
다른 무엇보다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잘 전달하고 있고, 그가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영화의 주인공 역할도 훌륭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킬리언 머피의 필모 중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 외에 스트라우스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레슬리 역의 맷 데이먼, 진역의 플로렌스 퓨, 캐서린 역의 에밀리 블런트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 인물의 대한 이야기를 놀란 식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영화다. 다양한 교차편집과 힘 있는 음악으로 가장 무섭고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냈던 인물이 겪었던 일과 느꼈던 감정이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면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원자폭탄이 개발되고 투하된 이후, 전 세계에 뻗어나간 원자폭탄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과 다양한 일들을 보며 오펜하이머는 어떤 생각들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았을까.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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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를 통해 경청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를 전달한 영화 《라따뚜이》
쥐라는 생명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영화 《라따뚜이》는 쥐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꿔준 작품이었다. 쥐에게서 이렇게 사랑스러움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 《라따뚜이》 시놉시스
파리에서 날아온 '니모를 찾아서' & '인크레더블' 제작진의 달콤한 상상
절대미각, 빠른 손놀림, 끓어 넘치는 열정의 소유자 ‘레미’.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그에게 단 한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주방 퇴치대상 1호인 ‘생쥐’라는 것! 그러던 어느 날, 하수구에서 길을 잃은 레미는 운명처럼 파리의 별 다섯개짜리 최고급 레스토랑에 떨어진다. 그러나 생쥐의 신분으로 주방이란 그저 그림의 떡. 보글거리는 수프, 둑닥둑닥 도마소리, 향긋한 허브 내음에 식욕이 아닌 ‘요리욕’이 북받친 레미의 작은 심장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쥐면 쥐답게 쓰레기나 먹고 살라는 가족들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주방으로 들어가는 레미.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요리에 열중하다 재능 없는 견습생 ‘링귀니’에게 ‘딱’ 걸리고 만다. 하지만 해고위기에 처해있던 링귀니는 레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의기투합을 제안하는데. 과연 궁지에 몰린 둘은 환상적인 요리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레니와 링귀니의 좌충우돌 공생공사 프로젝트가 아름다운 파리를 배경으로 이제 곧 펼쳐진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라따뚜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쥐가 이렇게 귀여우면 곤란한데
쥐를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고, 한편 학교에서 쥐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절레절레,, 소오름,,, 몸서리,,,, 크기로 따지자면 쥐들이 나를 무서워 해야하지만 나는 쥐고 무섭고 싫다. 그런데 영화 《라따뚜이》에서는 쥐에 대한 매력을 굉장히 다채롭게 뽐내고 있었다. 영화 《라따뚜이》를 보고 퇴근하는 길에 호도도도돋도도 지나가는 쥐를 봤는데 쟤도 뛰어나닐 때 호도도도도돋 레미처럼 귀여운 소리가 나겠지 하고 실제하는 쥐를 귀엽게 보기 시작했다.
사실 쥐라는 동물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천대받고 더러운 존재로 묘사된다. 그런 존재를 역으로 가장 청결해야할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기존의 통념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실제하는 쥐마저 귀엽게 인식하도록 그 시선마저 바꿔버린 영화의 능력에 놀랐다.
감정에 따라 걷는 방식이 달라지는 레미
영화 《라따뚜이》에서 레미에 관한 연출 중 특징이 가장 드러났던 부부은 레미가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이다. 쥐들은 4발로 기어서 움직인다. 하지만 레미는 자신의 앞발로 요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4발로 걸어다닐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렇게 요리와 사람에 대한 희망이 있을 때 레미는 아주 위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항상 두 발로 걸어다닌다. 하지만 링귀니의 배신(?)으로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쥐가 사람을 대신해서 요리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네 발로 기어서 이동한다.
항상 자신은 두 발로 걷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여주던 레미였는데 자신의 신세를 체념하면서 네발로 달려갔을 때는 그 눈빛하며 버림받은 듯한 어조가 레미 입장에서는 세상이 무너진 것과 같겠구나 하는 감정이 확 다가왔다. 그래서 그 감정과 태도의 변화를 구분되는 장치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경청할 줄 안다는 것
영화 《라따뚜이》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경청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너져가는 신뢰 속에서 그 신뢰를 붙잡은 것은 경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미가 다시 요리를 힘차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레미의 능력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링귀니를 말을 듣던 레미의 아버지가 그동안 인정하지 않아서 미안하다며 자신의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말해달라고 한다. 쥐다운 삶이 아니라고 레미를 혼냈던 아버지지만 레미의 친구라도 볼 수 있었던 링귀니의 말을 경청하면서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더불어 독설적인 비평가인 안톤 이고 역시 자신이 본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레미와 링귀니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다. 아무말 없이 돌아선 그는 다음 날 이제껏 먹었던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던 음식이었고, 이제까지 날선 비판만을 해온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과 후회의 글을 남겼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아는 자세가 우리의 삶 속에 필요하다는 것을 잘 전달해주는 작품이었다.
재미와 함께 감동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었던 영화 《라따뚜이》. 편협한 시각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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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
가족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간다. 비록 조금 관점과 사상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대화와 이해심으로 그 방향을 맞춰나간다. 어쩌면 태어나면서 맺어지는 가족과의 관계는 끊어지기 어려운 관계이고 그런 점에서 좀 더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에게 가족이 생기는 건 엄마의 뱃속에 자리한 순간부터다. 일방적으로 생성된 그 관계는 출산의 과정을 거쳐 현실 세계에서도 계속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삶을 이어나가다 보면 큰 상실감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 상실감은 가족 전체를 흔들고, 각자가 바라보는 방향을 흔들어 놓는다.
갑자기 찾아온 상실감은 어떤 경우에는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그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게 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가족을 흩어놓기도 한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극복해 나가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갑자기 찾아온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실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가 그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직시하고, 또 어떤 방향으로 걸어 나갈지를 결정하고 나면 그 뒤에는 천천히 그 어려운 상황을 회복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은 더 단단해지고, 비록 다른 방향을 보았더라도 다른 곳에 서있던 가족을 이해하게 된다.
아이를 잃은 부부의 상실감과 회복에 대해 다루는 영화
영화 <그녀의 조각들>은 출산 과정에서 아이를 잃은 부부와 그 주변 가족의 상실감과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특히 영화는 아내 마사(바네사 커비)와 남편 숀(샤이아 라보프)이 바라보는 길이 어떤 식으로 달라져가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초반 출산일이 임박한 마사와 숀의 관계는 매우 좋아 보인다. 출산에 대한 기대감과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설레임으로 가득한 그들은 출산 신호가 오자 조산사를 집으로 부른다. 그들은 병원보다는 집에서 조산사와 가정 출산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그렇게 영화는 초반 30분 동안 그들이 진통과 출산하는 과정을 아주 세세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출산의 과정은 대체적으로 안전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전문 인력이 있는 병원에서 출산을 한다. 개인적으로 출산을 하더라도 영화에서처럼 전문적인 조산사가 그 과정을 옆에서 돕는다. 출산의 과정에서 많은 부분은 부부가 원하는 부분이 반영된다. 영화 <그녀의 조각들> 속 마사와 숀도 병원보다는 집에서 출산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 방법을 부부가 선택했다. 그들의 방법 선택부터 출산의 최종 단계까지 무언인가가 잘못된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원하던 조산사는 아니지만 꽤 친절하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다른 조산사가 왔고 단계별로 출산 과정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어 마사와 숀은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지 몇 분 되지 않아 아이는 숨을 쉬지 못했고 구급요원을 불렀지만 아이가 거둔 숨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영화가 이렇게 초반 30분 동안의 출산 과정을 아주 디테일하게 다루는 이유는 이것이 주인공 마사와 숀의 심리상태를 변화하게 하는 아주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30분의 그 과정을 보고 나면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그 일련의 출산 과정들에 대한 판단을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넘긴다.
비극적인 일 이후 서로 다른 대처 방식을 보이는 부부, 마사와 숀
출산 장면이 끝난 이후에야 영화 제목의 타이틀이 나오는데 영화를 보던 이들은 안타까움을 먼저 느낀다. 그리고 나서는 앞에서 본 사건에 대한 잔상을 통해 그것에 대해 판단하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전개되는 영화의 다음 이야기는 그 일의 원인 규명에 대한 일보다는 부부가 그 일이 벌어진 이후 대처하는 모습에 대한 것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향을 본다. 다르게 말하면 각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먼저 마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출산 전 하던 활동을 이어간다. 사무실에 출근하고, 마트에서 장을 본다. 반면 남편 숀은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 울음을 터뜨리고, 그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애쓴다. 그의 노력은 결국 그것이 누구 때문인지 책임을 돌리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두 사람이 대처하는 방식 중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방법으로 그 일을 잊고 털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각자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관계에도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보고 혼자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마사는 아이의 사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부검의의 말을 그저 말없이 듣고 있지만, 숀은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냐면서 화를 낸다. 마사는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며 조각들을 맞춰가는 반면, 숀은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여러 번 충돌한다. 그러면서 이 둘의 관계는 깨질 듯 말 듯 아주 위태로워 보인다.
영화 속에는 또 다른 시선이 등장한다. 바로 마사의 엄마 엘리자베스(엘런 버스틴)가 그녀의 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딸이 그 일의 책임이 마사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책임을 조산사의 실수로 돌리려 애쓴다. 주로 법적 투쟁을 통해 조산사를 처벌하려는 노력이다. 엘리자베스는 그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딸이 좀 더 편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숀과 함께 마사를 설득하려 애쓴다. 그의 이런 시선은 어쩌면 제 3자로서 자신이 지켜낸 소중한 딸의 아픔을 최대한 덜어내려는 엄마의 모습인지 모른다. 영화는 이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엘리자베스와 마사의 충돌과 관계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마사의 심리를 정확히 전달하는 배우 바네사 커비의 연기
영화는 출산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중반에는 마사의 심리 상태와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준 후, 법정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마사는 긴 고민 끝에 그만의 해결방법을 찾는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관계는 깨지고 어떤 관계는 다시 더욱 단단해진다. 그가 여러 가지 일을 겪는 동안,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심리적인 변화 과정이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있는데,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바로 배우 바네사 커비의 연기력이다. 그저 액션 블럭버스터 영화의 주연 정도로만 생각했던 바네사 커비는 이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다. 눈물과 아픔을 억누르고 감정적인 반응을 내색하지 않으면서 그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마사의 심리를 정확히 표현한 그는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연기가 훌륭했다는 사실을 증명받았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이후에는 관객들도 회복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완전한 회복은 아닐지라도 그다음 발걸음을 옮겨갈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을 영화가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마사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사과향은 그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가 아프게 떠났다. 하지만 그 사과향은 완전히 그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의 기억 속에, 그녀의 사진 속에 그리고 그녀의 엄마인 엘리자베스의 기억 속에도 자리하며 마사의 다음 발걸음을 가볍게 할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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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조각들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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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姓)을 찾아 스스로 새장을 박차고 나가는 해방 서사
1. 주제
이 영화의 주제는 ‘진정한 자유는 본래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왕실 안, 상황 별로 입어야 하는 옷마저 정해져있는 구속과도 같은 삶을 사는 주인공 ‘다이애나’가 자신의 성(姓)이자 정체성인 ‘스펜서’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파블로 라라인의 영화 <스펜서>. 한시라도 몸을 담그고 살 수 없을 정도의 압박 그 자체의 왕가 세계인 ‘샌드링엄 하우스’와 ‘스펜서’의 모든 옛 추억이 담긴 ‘샌드링엄 파크 하우스’. 크리스마스에 그 두 공간에서 요동치는 스펜서의 내면을 다룬다. 여왕은 텔레비전에서 ‘자유 국가’라며 자유의 의미에 관한 연설을 하지만, 정작 왕실 안에서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오죽하면 다이애나가 아들에게 규칙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은 ‘기적’이라 칭할 정도이다. 영화 초반부, 어릴 적 고향임에도 길을 잃어 혼란스러웠던 다이애나는 샌드링엄 하우스 근처에 도착하여 아버지 외투가 입혀진 허수아비를 보고 이제 조금씩 기억이 난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영화 후반부, 허수아비에 입혀져있던 아버지의 외투를 가져오는 행위는 아버지의 성 ‘스펜서’로 살던 시절, 즉 자유를 되찾아 오는 의미가 돋보인다.
2. 모티프
1) ‘꿩’과 ‘총’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길바닥에 널브러진 ‘꿩’의 시체를 로우앵글의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군용차량에 아슬아슬하게 밟힐 듯하지만 피해 간다. 마치 아슬아슬한 다이애나의 상황처럼 말이다. 왕가에서는 그저 ‘재미로’ 유희를 위해 하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재미’는 매번 다이애나를 옭아맨다. ‘몸무게 재기’ 그리고 ‘꿩 사냥’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꿩’은 재미를 위해 길러져서 총을 맞아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내내, 다이애나는 사냥(유희)을 위해 길러진 이 ‘꿩’처럼 길러진 미물로써 묘사된다. 영화 중반부, 붉은 옷을 입은 다이애나가 카메라에 둘러싸인 시점샷은 파파라치들에 둘러싸인 대중의 사냥감 다이애나 역시 유희의 도구로써 사용됨을 명확히 보여준다. 총으로 꿩을 겨누는 것이 파파라치가 다이애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과 겹쳐진다. 극중 다이애나는 문학 작품에서 객관적 상관물과 같이 ‘꿩’에게 자기 자신에 빗대어 말을 걸기도 한다. “날아가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래서 영화 후반부, 다이애나가 아버지의 외투를 걸친 채 두 팔을 새처럼 들어 올려 사냥 중인 아들과 군인들 앞에 서서 상황을 어그러뜨리는 장면이 마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를 벗어나는 꿩처럼 보이는 것이다. 자유를 찾기로 결심하고 행하는 신에서 다이애나가 ‘꿩’에 투영되어 극적으로 묘사되었다. 롱 샷으로 다이애나와 두 아들이 손을 잡고 뛰는 모습을 팔로잉하는 샷은 관객에게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2) 검은색 8번 당구공
영화 중반부. 광각으로 당구대를 사이에 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거리감이 드러나는 신, 당구대에 아주 정교하고 계산적으로 공들이 놓여있다. 리버스 샷에서 두 인물 모두 정중앙에 위치하고 아주 천천히 달리 인하며 숨을 조여온다. 찰스 왕세자 앞에 날카롭게 삼각형으로 놓인 붉은색 공들은 다이애나의 모든 가능성이 다 찰스 왕세자 손안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찰스는 진짜 나의 모습과 그들이 찍는 내 모습, 두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다이애나에게 검은색 8번 공을 굴린다. 그리고 8번 공을 잡은 다이애나가 검은 공을 떨어뜨리는 걸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당구는 검은색 8번 당구공을 홀 안에 넣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 8번 공이 당구대 밖으로 떨어지는 것은 애초에 둘의 게임은 찰스 왕세자로 승자가 정해져있는 공평하지 않은 게임이고, 공을 떨어뜨리는 것은 다이애나가 더 이상 그 게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행위이다.
3) 진주 목걸이와 앤 불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진주 목걸이는 다이애나에게 채워진 목줄과도 같다. 이 진주 목걸이는 찰스의 내연녀 커밀라와 같은 것이다. 다이애나는 극 중 꾸준히 제인 시모어 책을 읽는다. 간통은 헨리 8세가 했지만, 정작 간통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앤’과 자기 자신을 빗대어 보고, 그녀의 환영을 자주 마주한다. 영화 중반부, 식사 자리에서 여왕과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를 감시하듯 바라보는 다이애나의 시점샷이 반복되고 앤 불린의 환영이 나타난다. 연주되는 음악 역시 격정적으로 고조되며 숨통을 조여와 다이애나는 진주 목걸이를 뜯어 씹어 삼키는 환상을 본다. 그렇게 다이애나는 식사 때마다 음식물이 입에 들어오자마자 게워낸다. 다이애나의 시점샷은 영화 중반부, 크리스마스 당일 세인트폴 성당 앞에서도 볼 수 있다. 복잡한 다이애나의 마음이 투영되듯 핸드헬드로 찰스 왕세자의 내연녀 커밀라에서 찰스 왕세자로 초점이 맞는다. 반복적인 시점샷은 불안정한 다이애나의 심리를 극대화한다. 영화 클라이맥스, 옛 추억이 담긴 샌드링엄 파크 하우스에서 자살을 고민하던 운명적이고도 위험한 상황, 어둠 속에서 ‘앤 불린’ 의 환영이 나타나 말한다. 남편이 내연녀와 똑같은 초상화를 자신에게 선물했다고 말이다. 뜯고 도망치라는 앤의 음성이 들리자, 다이애나가 발레를 하고 싶던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이 춤을 추는 시퀀스가 이어진다. 그렇게, 본래 자신에게서 자유를 찾고 결심을 하는 순간, 진주 목걸이를 뜯는다.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4) 차 번호판
영화 초반부,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길을 잃은 채 샌드링엄 하우스를 찾기 위해 차를 몬다.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던 다이애나의 내면이 현실 상황에 투영된 듯이 말이다. 그러고는, 내내 혼란스럽고 어두운 표정으로 “Where Am I?”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자신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물음, 마치 다이애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 초반부, 붉은 체크무늬 재킷을 입은 채 길을 잃은 다이애나는 ‘G580SGT’ 번호판의 차를 운전하고 있다. 운전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롱 샷으로 잡혔고, 영국 특유의 구름 낀 날씨에 탁한 색감을 띈다. 야외임에도 자동차에 햇빛과 조명이 거의 비추는 양이 적어 콘트라스트가 낮은 차분하고 글루미한 분위기다. 외화면에서는 격식 있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다이애나는 지도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다. 그리고, 별장 근처에 다다랐을 때, 갓길에 사선으로 세운 다이애나의 차. 그때의 차 번호판은 ‘J548LRP’이다. 하늘은 구름에 완전히 뒤덮여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콘트라스트가 거의 없고, 인물들의 얼굴 역시도 그림자가 거의 지지 않아 창백하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후반부, 꿩 사냥에서 아이들을 데려온 캐주얼한 진과 플랫슈즈 차림의 다이애나가 왕실 안에서 출발할 때의 번호판은 ‘J548LRP’이지만, 왕실에서 벗어난 직후 차의 번호판은 ‘G580SGT’이다. 롱 샷으로 다이애나와 그녀의 아들들이 질주하는 자동차를 잡고. 구름 낀 날씨임에도 햇빛이 스펜서와 아이들이 탄 차를 비춰 활기찬 분위기를 형성한다. 심도가 얕지 않지만, 가운데 빛이 강하게 반사되는 차를 탄 다이애나와 아이들에게 초점이 간다. 내화면에서 ‘All I Need Is A Miracle’ 틀어 자유롭게 노래 부르며 드라이브한다. 이제는 정확한 행선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확신에 가득 찬 모습으로 아들에게 말한다. “Trust me.”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초반부 고향에서 왕실로 들어갈 때는 ‘G580SGT’에서 ‘J548LRP’, 후반부 왕실에서 나올 때는 ‘J548LRP’에서 ‘G580SGT’이다. 진정한 스펜서의 정체성은 ‘G580SGT’, 통제받고 억눌린 다이애나의 삶은 ‘J548LRP’에 빗대고 있는 것으로, 인물의 긍정적인 변화를 직관적으로 그려낸다.
3. 결론
이 영화는 왕실에서 일거수일투족 구속받는 주인공 다이애나가 ‘진정한 나 = 스펜서’, ‘자유’를 결심하는 이야기이다. 호화로운 식사 자리에서 한 번도 마음 편히 식사를 한 적 없는 스펜서가 아들 둘과 도망쳐 나와 간 곳은 다름 아닌 패스트푸드점 ‘KFC’이다. 다이애나에겐 이런 ‘평범한’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식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스펜서’가 자신을 투영한 존재 ‘꿩’과 ‘앤 불린’ 그리고 그녀를 옭아매던 ‘진주 목걸이’와 ‘검은색 당구공’ 마지막으로 가장 직접적으로 다이애나의 진정한 정체성인 ‘스펜서’를 드러내는 번호판 ‘G580SGT’까지.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이 모티프들이 ‘자유로운 자신의 정체성’라는 하나의 주제 의식을 탄탄히 구축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다이애나 비의 일생을 잠시나마 체험하고 싶다면, <스펜서>를 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