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2-02-12 10:51:23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은 아니지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리뷰

구파도 감독의 신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를 좀 더 깊게 감상하려면, 이 영화를 두 계보의 연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구파도의 필모그래피다. 그는 청춘의 질감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그가 각본을 쓴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는, 첫사랑의 경험을 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하 로코물) 특유의 장르적 문법과 결합한 영화다. 한편, B급 괴수물 〈몬몬몬 몬스터〉는 전혀 다른 느낌의 청춘물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로코물 주인공과는 정반대에 있는 ‘왕따’ 학생으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상처만 받은 청춘이다. 요컨대, 구파도는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혹은 가장 참혹한 순간을 (로코물이든 괴수물이든) 장르적으로 풀어내는 데 재능이 보여온 감독이다.
구파도를 이해하는 또 다른 계보는 장르 영화의 문법, 그중에서도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 보다 집중했을 때 드러난다. 특유의 과장된 연출로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프렝키 첸 감독의 〈나의 소녀시대〉, 〈장난스런 키스〉 등은 국내에서 꽤 관심을 받은 영화들이다.

대만 로코물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로코물이 더 이상 주류 장르가 아니라는 상황을 그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로코물의 ‘위기’는 로코물의 주 소비층이었던 2030 여성이 페미니즘 의식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성애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묘사하는 로코물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로코물이 소소한 화제는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과거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신드롬을 일으킬 수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대만 로코물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주류가 될 순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소비층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로서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로코물의 시대적 위기와 이를 돌파해내는 방식은 영화 내부의 표현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여름날 우리〉를 비롯한 대만 로코물뿐만 아니라 한국의 로코물(〈피끓는 청춘〉, 〈너의 결혼식〉 등) 역시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로코물은 아니지만 화제를 모았던 대만 멜로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국의 〈건축학 개론〉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다루는 이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 과거인 이유는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 대만에서는 90년대 초반에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사람들의 관심은 ‘체제’, ‘정의’와 같은 거창한 것들에서 일상으로 옮겨왔다. 사랑은 일상의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하게끔 해주는 최상의 소재다. 즉, 퍽퍽한 삶을 영위하기 바빠 사랑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시대적 조건과 맞물려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과거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소비함으로써, 과거의 아름다움을 척박한 현재로 연장시키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 영화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로 돌아와 보자. 이 영화는 귀신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두 계보(청춘 영화‧로코물)의 연장에 있다. 하지만 결이 조금 다른 지점도 있다. 이 영화는 대만 로코물의 문법을 ‘위반’한다. 기존 대만 로코물은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의 연출로 사랑을 판타지‘처럼’ 그려낸 데 반해,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함으로써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성취를 스스로 허물어버린다. 사람들이 대만 로코물에 기대하는 건 이제 더는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현실’에서 펼친다는 점인데, 영화의 무대를 아예 판타지로 바꿔버림으로써 대만 로코물 특유의 ‘비현실적 현실감’이 사라진 것이다. 사랑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있을 때는 성취 가능한 것처럼 보여 몰입할 수 있지만, 아예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면 오히려 공허한 현실을 환기해버리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컨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패착은 판타지‘같은’ 영화를 바라던 관객에게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했다는 데 있다. 저승세계의 시각적 구현과 저승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다 보니 대만 로코물의 기본이 훼손된 것이다. 이 영화는 ‘창조적 파괴’라기에는 저승세계의 비주얼과 역할이 어딘가 밋밋하고,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서도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싶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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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은 하루에 너만 없는 이곳.
무더움이 밤에도 이어지는 여름밤, 퇴근길에 갑작스러운 비에 몸을 피하다가 전 남자 친구 주환의 집 근처에 오게 된다. 공중전화 부스로 비를 피하던 지영이 망설이다가 주환의 집 문을 두드리고 주환은 흔쾌히 문을 열어준다. 비를 핑계로 들어간 공간은 곳곳에 변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다. 소거된 감정은 사랑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했지만 남겨진 공간과 사람은 늘 그대로인 모습에 괜스레 슬퍼진다. 하지만 미련이 남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대비된 마음이 흐릿해진 마음을 또렷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행복으로 가득했던 시간에서 그렇지 않은 시간으로 옮겨가는 영화는 추억이 가득한 공간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감정을 조명한다. 비처럼 씻겨 내려가지 않은 기억과 비가 오지 않으면 짐이 되어버리고 마는 우산은 그 공간을 벗어나며 ‘미련’이라는 단어를 잉크처럼 퍼뜨린다. 상황의 그리움은 남았지만, 사람의 사랑은 다시 피어오르지 않고 변한 마음으로 가득 찰 것이다. 추억은 추억, 기억은 기억, 사람은 사람 자체로.
수경 / 비를 핑계로 너를 찾아갔다. 나와 함께했던 흔적과 내가 떠나갔던 그 공간이 그대로인 모습이 익숙하다. 그 공간을 미련 없이 나온 후, 옮겨진 감정은 네가 수경을 쓰고 슬픔을 쏟아냈던 것처럼 옮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너를 바라봤지만 실은 솟아오른 그리움이 울컥 흘러넘치는 걸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주환 / 너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고 네가 돌아올 자리가 여전히 있는 이 공간에 네가 돌아왔다. 익숙한 이 공간에 너만 없는 이곳에 너를 다시 데려오려 애쓰지만 너는 각자 잘 지내자고 그렇게 말한다. 손을 흔들어줄 수는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미련을 완전히 떠나보내기는 어렵다. 그래도 비 맞지 말고 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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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들의 '계보 (없음)'에 관하여
〈로스트 도터〉는 많은 여성에게 당연한 역할로 기대되는 동시에 너무도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감히 다른 결의 이야기를 보태기가 어려운 모성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영화다. 나아가 모성이 여성을 괴롭히거나 두렵게 하는 무언가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매개로 여성 간 연대의 불/가능성 역시 논한다. 영화를 감독한 매기 질렌할은 〈로스트 도터〉가 ‘여성의 정신이 깃든 영화’*라 말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이 표현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레다는 혼자서 그리스의 한 해변으로 휴가를 온다. 한적한 해변에서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던 레다. 그런데 한 대가족이 레다가 있는 해변에 오면서 변화가 생긴다. 그들은 해변이 자신들의 것인 양 행동하고 이에 불편함을 느끼는 레다에게 모욕적인 말을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레다는 그중 어린 딸아이를 둔 니나에게만은 호감을 느낀다. 아이를 잃어버린 줄 아는 가족에게 외딴곳에서 혼자 놀던 니나의 딸을 데려다주고 나서는 니나와 부쩍 가까워지기도 한다.
레다가 니나에게 느끼는 호감은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딸이 니나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귀찮게 구는 모습을 보며 레다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사랑스럽지만 때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행동으로 자신을 괴롭히며 애정을 갈구했던 딸과의 과거가 니나의 모습에 겹쳐진 것이다. 레다는 딸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온갖 어려움을 홀로 떠맡아야 했다. 레다가 ‘여자’이자 ‘엄마’였기 때문이다. 이는 레다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와는 큰 관계가 없다. 설령 그가 ‘좋은 남자’일지라도 젠더에 따라 다른 노동이 기대되는 사회에서 레다의 짐이 줄진 않았을 것이기에.
그래서 결국 레다는 3년간 남편과 두 딸을 떠나 혼자 지냈다. 그녀에게는 자기 일을 중시하는 남편만큼이나 학자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이를 키우며 잊고 있었던 내면의 존재를 다시금 자각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다시 돌아오라고 무릎 꿇고 간청하는 남편의 절망적인 눈빛 앞에서 레다가 지어 보이는 단호하고도 평온한 표정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을 질식시키는 방식으로 삶을 이어갈 수 없었던 레다가 온전한 삶을 향한 과감한 도피를 감행하고자 결심한 그 슬픔이 깃든 자유로운 표정을 말이다.
그 후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레다는 교수가 되었고 자녀들과도 다시 가까이 지내지만 과거 자신의 행동이 아이와 가족에게 상처를 남겼음 역시 잘 알고 있다. 젊고 매력적인 여성인 니나가 자신이 젊었을 때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데서 레다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레다가 니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를 바라보는 표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대로라면 그 시선은 분명 안타까움이 깃든 연대의 시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니나를 바라보는 레다의 시선은 오히려 관음에 가깝다. 나는 레나의 젊은 시절 영상이 나오고 영화의 주제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이 영화가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다. 아마도 성애적 욕망만큼이나 강력한 연대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연출이었을 것이다.
레다와 니나의 연결은 쉽지만은 않았다. 레다는 니나의 가족들에게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그들은 니나가 ‘불온한 여자’임을 본능적으로 감각한다. 그래서 니나가 레다와 함께 있는 걸 못마땅해하고 레다를 이상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만든다. 영화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남자들에게 레다가 항의하자, 관리인이 올 때만 다시 조용히 있으면서 레다를 골탕 먹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니나 역시 레다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결혼과 육아에 지친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레다가 딸과는 만들어내지 못했던 여성 간 연대가 같은 경험을 한 낯선 여성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질 참이다. 하지만 레다가 관계 초반에 충동적으로 한 행동으로 인해 어렵게 만들어진 연대의 가능성은 또 한 번 좌절된다. 니나가 마냥 행복한 줄로만 알았던 레다가 분노, 질투, 과거에 대한 회한 등이 뒤얽힌 충동적 감정으로 저지른 일이 모든 걸 망쳐버린 것이다.
이처럼 〈로스트 도터〉는 모성, 양육이 여성에게 끔찍한 굴레일 수 있음을 굉장히 섬세한 연출로 보여줌과 동시에 엄마와 딸 혹은 같은 경험을 가진 여성들의 연대가 왜 이리 어려운지를 고민하게끔 한다. 나아가 영화는 모성‧양육에 짓눌린 그들의 경험이 왜 아직도 주변부 담론으로만 취급되는지를 성찰하도록 요청한다. 왜 많은 사람이 같은 경험에서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도, 주류 담론은 그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자기 경험과 어긋나는 주류 담론에 질식하기 직전인 여성의 삶에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걸까? 레다는 끝내 딸과 니나 모두와 연결되지 못하고 혼자인 채 방치되어야 할까? 〈로스트 도터〉는 여성 경험의 ‘계보 (없음)’에 관한 슬픈 질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양육해본 적이 있거나 아이를 출산할 계획이 있는 여성의 정신이 깃든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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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922억이란 숫자
- 근현대사는 관련 인물들이 실존해 있을 정도로 현재와 밀접한 역사이기에 교과서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글로만 읽었던 1212사태가 지금의 60대들이 청년기에 겪은 일이라 생각해 보면 자못 놀랍기까지 하다. 불과 2년 전에 사망한 전두환이 신군부세력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훗날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까지의 시발점이 된 1212사태가 교과서의 한 줄로 남기에는 애석하다. 영화 <서울의 봄>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아로새겨야 할 역사를 예술을 도구삼아 설파한다.영화 <서울의 봄>은 1212사태를 배경으로 주요 인물들을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조금씩 바꾸어 마치 픽션처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와 주인공들의 이름들을 보노라면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기초하였음을 누구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 같은 일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 주로 아름답게 표현되던 수식어가 이토록 소름끼치는 것이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역사적 실화를 기초하여 만들었다는 것이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관련인들이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1212사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그 현재진행형을 교과서 한편에 문장으로 남겨두지 않도록 애쓰는 노력이자 운동이라 볼 수 있겠다.실화를 기초로 각색한 영화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온갖 신파를 끼얹어서 마치 눈물을 억지로 뽑아내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화의 기능을 충실히 만들기만 했을 뿐인데도 피가 거꾸로 솟아날 것 같은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가히 후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데, 영화가 꽤나 박진감 넘치지만 실은 담백하게 그려내려 애썼다는 것(오진호소령의 이야기는 놀랍지만 실제로도 총을 쏜 박종규 중령과 막역한 사이였다)이 그 이유이다. 배우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것과 화면분할 연출을 통해서 통화내용임에도 마치 액션장면과 같이 박진감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것 등에서 영화적 재미와 문법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다만 극 중 야망과 자격지심 등이 고루 보이던 악역에 비하여 선역으로 표현되는 이태신의 캐릭터가 다소 단편적인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긴 러닝타임 내에 주인공들이 수행해야 할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분명히 나아감에 있어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을 보아 이는 실수보다는 감독의 선택에 가깝다. 더불어 이태신을 이순신에 투영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가져왔을 뿐 이태신은 그 당시 존재했어야 하는 올바른 인간상을 함축하였다고 볼 수 있다.영화는 대중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다. 영화 <도가니> 등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를 통하여 법이 개정되기도 하며 <남산의 부장들>들과 같은 영화들을 통해 근현대사를 다시 조망하기도 하고 <명량>을 시작으로 한 이순신 프로젝트 등을 통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인물을 다시금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기도 한다. 다만 영화는 대중예술이라는 점에서 작품의 완성도가 방해가 되지 않을 때 비로소 관객은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러한 점에서 보자면 영화 <서울의 봄>은 기능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잘 만든 영화라 할 수 있겠다.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각각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이태신과 전두광은 선악으로 대비되면서도 그 시대의 인간군상에 대한 적나라한 분류로도 보인다. 더군다나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김희성(변요한)이 카메라 셔터를 마치 총성처럼 누르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극 중 인물들의 이름은 실제 인물들과 다르지만서도 그들의 이력은 실제로 알림으로써 영화 <서울의 봄>은 자신의 마지막 기능을 다하고 막을 내린다.파주에 전두환의 유해가 안치되는 것과 관련하여 파주시장과 시민들은 학살자가 누울 곳은 없다며 적극 반대하는 입장을 내세웠다. (갈 곳 없는 '서울의 봄' 전두광…파주시장 "전두환 유해 안장 결사 반대" - 뉴스1 (news1.kr)) 전두환에게 채 받아내지 못한 922억의 추징금을 가히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이 쏘아 올린 포탄이 1212사태를 잘 모르는 연령층에게 불씨로 남아 선대가 미처 다 청산하지 못한 과오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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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든 재즈!
기본 정보
감독 : 야구치 시노부
배우 : 우에노 주리, 히라오카 유타, 칸지야 시호리, 모토카리야 유이카 등
재개봉 : 2025.03.26
쿠키영상 X, 근데 엔딩크레딧 너무 귀여우니 보다 가세요!
시놉시스
재즈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즐기는 사람이 바로 재즈다.
주인공 스즈키 토모코 (우에노 주리)는 학교 야구부 경기에 응원을 하러 간 오케스트라 합주부에 도시락을 배달하러 가다가 길을 잃고 에라 모르겠다 놀다 들어간다. 그렇게 땡볕에 상한 도시락을 먹고 병원에 실려가버린 합주부를 대신해 스즈키의 친구들은 악기를 맡게 된다.
어쩌면 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스윙걸즈는 살짝씩 다르게 스윙한다.
스윙걸즈 매력포인트 #1 / 재즈를 사랑하는 각양각색의 인물들
그 첫번째 매력에는 바로 캐릭터에 있다.
영화 주인공들 중 가장 매력을 느꼈던 인물은 바로 히라오카 유타이다. 유타는 밴드 동아리의 심벌즈 출신이지만 그 합주 동아리 안에서 가장 박자를 맞추지 못하고 뒤에서 헤멘다. 하지만 그에게는 심벌즈보다 더 하고 싶은 악기가 있는데, 바로 건반이다. 또, 합주 동아리가 식중독으로 사라지자 혼자 남아 그 빈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과연 쟤가 이끌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본은 충실해서 스즈키 친구들에게도 악기를 바로 만지게 하는 것이 아닌 체력운동부터 시킨다. 여러모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큰 친구이다. 기존의 합주 동아리는 하나의 부속품으로써 쓰였다면, 빅밴드를 하면서부터 유타는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하나의 연주자로서 사람들을 이끌고 또 함께 합주하면서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또, 재즈를 엄청 사랑하는 수학교사와 악기를 잘 하진 못하지만 재즈는 할 수 있는 이웃 선생님도 만나게 된다. 재즈는 잘하고 못하고, 하고 안하고에 상관없이 한번 좋아하게 되면 삶을 재즈하게 된다. 그런 재즈의 삶을 이 두분이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스윙걸즈 매력포인트 #2 / 스윙과 빅밴드 음악의 향연
어떤 음악이 재즈가 될 수 있을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빅밴드를 결성한 이들은 삶에서 재즈와 스윙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횡단보도의 음악 앞에서 2,4 박자를 찾아내고, "이것도 재즈잖아!" 라고 말한다. 이 몽타주 시퀀스가 제일 좋았는데, 횡단보도에서 시작해서 5명이 군무를 통해 일본 거리의 곳곳 = 삶의 곳곳에서 즐기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재즈를 잘 보여주는 시퀀스였다고 생각한다.
OST : Swing Talk 1
스윙걸즈 매력포인트 #3 / 악기 한번 만지기 쉽지 않은 우리 삶
사실 수학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모인 스즈키와 친구들. 간신히 악기에 재미를 붙여 진짜 응원전에 나가나 했는데, 얼마 안돼서 병원에서 회복한 합주부가 다시 돌아온다. 연주 기회와 악기 모두 잃어버린 스즈키는 괜찮다고 애써 나오지만 단순히 악기 이상의 마음을 가진 스즈키는 중고로 색소폰을 직접 사기로 결심한다. 스즈키와 마음이 동한 친구들도 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기를 마련하려고 하지만, 여러 일들로 인해 간신히 간신히 악기를 구한다.
나도 재즈가 좋아지면서 색소폰에 매력을 느끼고, 중고로 멀리까지 나가 당근으로 색소폰을 샀었다. 그 과정도 생각나면서 악기 하나를 구하러 가는 그 여정이 재즈였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연주를 해보겠다는, 만들어보겠다는 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악기를 마련했지만 연습할 곳이 없어 노래방에서 연습을 하기도 하고 쫓겨나 거리에서 연습을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색소폰을 다뤄봐서 알지만 정말 정----말 소리가 크다. 코끼리 소리와 비슷하기도 한데 빅밴드는 오죽할까? 정제되지 않은 소리를 좋게 들어주는 사람도 솔직히 없다. 길거리를 다니며 연주하는 모습도 그 재즈를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일본의 다른 재즈영화인 블루 자이언트에서도 매번 주인공이 추운 겨울에도 강둑에 나가 연습을 하곤 한다. 그런 비슷한 장면이 스윙걸즈에서도 나온다.
이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각자 서로 밀려나 강으로 향했는데, 서로의 소리를 알아듣고 합주를 하게 되는 장면이다. 스즈키도 너무 귀엽고.. 연주를 하겠다는 그 사랑이 보여서 너무 좋았다.
스윙걸즈 매력포인트 #4 / 성장
음악 영화의 매력은 또 무대장면과 처음에 악기를 잘 다루지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힘겹게 무대에 오른 빅밴드. 스윙을 하는 합주부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경연 무대에서 마지막 주자로 오르게 된다.
그들의 재즈는 스윙으로 마무리된다.
듣고 가면 좋은 jazz~ 스윙걸즈 수록곡
🎵 L-O-V-E / Nat King Cole
🎵The chant / Cannonball Adderley
🎵Mack the Knife / Louis Armstrong
🎵 Love For Sale / Lionel Hampton & Oscar Peterson
🎵 In A Sentimental Mood / Duke Ellington & John Coltrane
🎵 What A Wondeful World / Louis Armstrong
🎵Moonlight Serenade / Swing Girls
🎵Mexican Flyer / Swing Girls
🎵Sing, Sing, Sing / Swing Girls
🎵In the Mood / Swing Girls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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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의 우월함은 사회 속 열등함 속에서도 빛난다
이 영화,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황인종도 나름 인종차별을 당해서 억울하다고들 하지만 흑인종만큼 억울한 인종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가고, 하대받던 것이 당연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은 그렇게 오래전에 있었던 일들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배경이 1960년대이기 때문이다. 한창 우주 산업에 박차를 가하던 그 때, 우리는 그 시절을 고대도 아니고, 중세도 아니고, 현대에 가까운 과거로 보고 있지 않나. 흑인들을 향한 차별은 아직도 완벽히 근절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는 그 차별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서 엘리트 집단은 또 얼마나 폐쇄적인 집단인가. 태생적으로 흑인들에게 부여된 폐쇄성을 딛고, 사회적으로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집단에 들어가 살아남으려는 세 여자,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1. 흑인은 백인보다 모든 면에서 열등할 것이라는 오만
능력을 인종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잣대인지 지금은 모두가 그 사실을 알지만 과거를 사시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들은 아직도 그 잣대가 유효하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를 본 적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도 아직 백인에 대한 우호가 있지 않나.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면,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오만이 되어버린 인종차별은 이 영화 전체를 좌우하는 키워드다. 백인들은 관리자이고, 흑인들은 백인들의 지휘를 받는 사람이라는 설정 부터가 보는 내내 답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세 여자들은 모두 자기 힘으로 극복해낸다. 개인적으로 많이 알려진 명장면이지만 캐서린이 백인들과는 다른 화장실을 써야해서 건물을 왔다갔다 해야하는 그 모습을 한탄하며 화내는 장면이 정말 명장면이다. 그렇게 서럽게 말하는 캐서린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그 말을 듣고, 당장 백인과 유색인종 화장실의 경계를 없애버린 상사도 참 예민하긴 해도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예민함은 직업적인 데서 오는 모습이겠구나 생각하게 되더라.
하지만 그렇게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그 사소해 보이는 화장실 문제 하나 이해를 못 하다니 싶다가도,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공감도 지능'이라는 말처럼 그들에게는 유색인종을 이해하는 공감적 지능이 양성된 적이 없는 것이다. 공감이라는 것은 내 안의 세계를 뚫고 나온 경험이 많을수록 증폭되는데, NASA의 엘리트들은 공부머리들은 좋은데, NASA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공부만 하다보니, 그런 공감적 능력까지 키울 여력은 없었던 거겠지. 그리고 또, 시대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유색인종이 받는 차별을 자신이 겪을 일이 없었을 테니, 화장실 하나 가는 것 조차 불편을 감수해야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살면서 불편함을 표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쩌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많이 남아서, 소위 쿨하지 못한 심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편함을 느꼈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불편함을 느끼겠구나 싶어서 조심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불편한 경험은 누군가의 삶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기도 하는데, 백인들의 삶에서 불편함이래봐야 얄팍했을 테니, 흑인들이 느꼈을 깊은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불편함에 대한 호소가 대단히 신선하지만 또한 낯설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특권이었을 것이기에.
2.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자리이자 누군가의 인정
결론적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글렌 파월이 연기한 조종사 역할을 참 인상깊게 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흑인이고 뭐고 그런 편견이 없어보이는 인물로 나온다. 그저 멋있는 군인 역할이었다. 캐서린에게 보이는 친절함과 그녀를 향한 굳은 믿음이 참 내가 받는 친절도 아니면서 괜히 고마웠다. 마치 그 시절 백인들도 다 그랬던 건 아니었겠구나 싶어서 괜히 안심되고 그랬다. 다행히 세 여자들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성공했지만 이 세상에 성공까지는 하지 못하고 도전까지만 해본 분들의 입장에서 판단해 본다면, 그들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조종사처럼 그저 편견없이 바라봐주는 친절함 만이라도 있었다면 더 대우받는 흑인들이 더 많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다시 언급하지만 캐서린의 상사도 참 좋은 사람이었겠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흑인이라 탐탁지 않아 했어도 능력을 입증하니 신봉하는 모습에서 그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능력차별 주의자 겠거니 싶었다.
이들은 모두 성공했기 때문에 영화화까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 속에 그들처럼 성공까지는 못했지만 도전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한 사람, 아예 도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인종차별에 의한 소수자들은 많았을 것이다. 이 세 여자들을 보면서 인종차별을 타파한 사이다 3인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들 말고도 조명받지 못한 소수 인종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며 괜히 센치해졌다. 하지만 빛이 어둠을 밝히듯, 빛나는 보석은 어디에 둬도 튀는 것처럼 그들의 재능과 패기는 그 답답한 NASA의 엘리트 집단의 콧대를 지그시 눌러버릴 만큼 강력했던 것 같다. 흑인들이 보여준 재능과 패기는 백인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흑인들의 빛나는 보석과도 같은 우월함이었을 것이다. 그 우월함을 무기로 우월한 정신으로 무장한 백인들을 무찔렀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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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부수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던 마녀 시리즈가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긴 공백 끝에 개봉한 ‘마녀: Part 2. The Other One’은 김다미 배우가 아닌 새로운 신인, 신시아 배우가 새로운 마녀로 등장하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또한 사라졌던 캐릭터들이 다시 그 자리를 채우면서 새로운 발견까지 함께하며 영화의 재미를 더 한다. 자윤이 사라진 뒤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과거의 뿌리부터 시작하여 1보다 더 강력한 존재들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강렬한 액션과 거침없는 이야기 전개가 꽤 인상적이다. 다만 영화에서 표현되는 잔인함과 욕설의 정도에 비해 15세 관람가라는 게 약간 걱정스럽다. 그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다시 시작하는 마녀 두 번째 이야기는 이야기의 확장을 더한 마녀2는 자윤이 사라지고 난 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자윤이 사라지고 어떤 집단의 습격으로 아크가 초토화되면서 탈출한 소녀가 길을 서성이게 된다. 우연히 만난 경희에게서 처음 느껴보는 따스함이 그로 인해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한편, 목적은 다르지만, 목표 대상은 같은 그들이 모이면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소녀의 능력이 발산되기 시작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이 되는 소녀의 존재는 멀어질수록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을 구원하는 순간, 소녀도 구원받게 되었다.
늘 그렇듯 목적을 위한 목적이 가치를 잃으며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조차 잊게 만드는 순간을 조명하며 순진무구한 표정에 떠오르는 광기를 강렬한 액션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또한 마녀의 뿌리를 찾아가듯 이야기의 흐름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며 어떤 존재의 탄생을 알려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끔 만든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서 자윤과 소녀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왜 모체가 소녀를 그렇게 찾았는지를 다루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을 능가하는 힘 앞에서는 그저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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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데드 다루는 법 - 죽음을 거스른 내 사랑, 그대는 구원인가
살아있는 시체로 돌아온 나의 사랑이여! 그대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손자이자 아들 '엘리아스'를 잃고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할아버지 '말러'와 엄마 '안나', 아내 '에바'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소식을 듣고 슬픔에 오열하는 남편 '데이빗', 반려자 '엘리자베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텅 빈 집에 돌아온 노부인 '토라'. 원인불명의 정전이 오슬로 전역을 덮친 이후, 죽은 이들이 다시 깨어나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무덤에 묻혔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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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CINEPICK AWARDS] 최고의 한국영화를 pick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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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국내 개봉 한국 영화 중
최애 3편에 투표하면
커피 기프티콘이???
영화 정보도 얻고 상금도 받고!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 씨네픽!
? 기간 : ~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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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피어 스트리트> 3부작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넷플릭스 공개]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여러 세대에 걸쳐 마을을 괴롭혀온 무서운 사건들이 실은 모두 연관되어 있다면? 게다가 다음 표적이 바로 우리들이라면? 1994년, 이 섬뜩한 사실을 발견한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R. L. 스타인의 베스트셀러 공포 소설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3부작 영화. 셰이디사이드의 어두운 역사를 관통하는 악몽이 엄습한다.
《피어 스트리트 파트 1: 1994》 - 7월 2일
《피어 스트리트 파트 2: 1978》 - 7월 9일
《피어 스트리트 파트 3: 1666》 -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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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치2> 티저 예고편
돌아온 서스펜스, 더 진화된 추적 스릴러 이번엔 엄마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