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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2-03-22 09:31:17

진실이 될 뻔한 두 개의 거짓

영화 〈드라이〉 리뷰

 

 

  호주의 한 시골 마을. 극심한 가뭄이 들어 324일째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개울은 말라붙었고, 드넓은 땅은 쩍쩍 갈라졌다. 물이 부족해 샤워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듯한 건조함이 전해진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말라가는 건 땅과 냇가뿐만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타들어가고 있다. 마을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둔 가장 루크가 아내와 아이를 총으로 쏜 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간관계가 촘촘히 엮인 작은 시골 마을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사건이다. 마을 사람들은 피해자와 가해자, 삶과 죽음이 뒤섞인 이 사건으로 인해 큰 혼돈에 빠진다.

 

 

 

 

 

 

  능력 있는 경찰인 에런이 마을로 돌아온 건 이때다. 어린 시절에 루크를 비롯해 엘리, 캐더린과 함께 어울렸던 그가 엘리를 사망케 한 용의자라는 의심을 받아 마을을 떠난 지 20년 만에 루크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에런은 루크 사건을 다시 살펴봐달라는 루크 부모님의 간절한 부탁으로 마을에 머무르게 된다.

 

 

 

  보통은 출세한 청년이 오랜만에 고향 마을로 돌아오면 환대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에런은 그렇지 못하다. 에런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여전히 20년 전 사망한 엘리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여론이 좋지 않은 루크의 사건을 재조사한다는 소문까지 나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에런이 마을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일차적으로는 루크 부모님의 간절한 부탁이 그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에게 엘리의 죽음에 관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데 있다. 사랑했던 여자가 죽었는데, 심지어 그 범인으로까지 몰린 상처가 루크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영화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두 죽음에 관한 진실에 접근해나가는 과정은 빼어나다. 숨이 막힐 듯한 건조함, 20년을 거스른 두 번의 죽음, 가려진 진실에 냉철하게(그러나 동시에 간절하게) 접근해나가는 에런의 캐릭터는 훌륭한 앙상블을 이룬다.

 

 

 

 

 

 

  하지만 잘 쌓아 올린 영화의 긴장감은 다소 맥없이 밝혀지는 진실과 함께 무너져버린다. 영화는 내내 두 사건 모두가 작은 시골 마을이라 가능했을 끈적거리는 인간관계에서 기인한 비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엘리를 사랑한 에런, 다소 거친 성격으로 친구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루크, 그리고 20년 후 에런에게 호감을 보이는 캐더린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영화의 연출은, 늘 함께였으나 완전한 하나이지는 못한 채 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겪으며 성장한 네 청소년의 감정에 깃든 비밀이 무엇일지에 관한 관객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완성도 높게 쌓아 올린 두 사건의 비밀이 정작 엉뚱한 곳에서 해소되자 김이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미스터리 추리극에서 예상을 빗나가는 결말은 재미를 위한 당연한 장치다. 하지만 작품이 쌓아온 서스펜스와는 별 관련이 없는 곳에서, 예측 불가능성만 강조한 사건 해결은 오히려 영화의 완성도를 헤치는 법이다. 네 주인공의 감정 엇갈림을 밀도 높게 영상화한 영화의 성취가 못내 아쉽다. 그렇게 평범하고 통속적인 방식으로 진실을 밝힐 것이었다면, 애초에 기대하게 만들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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