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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2-04-10 15:20:36

고향과 유년기에 관한 보편적 호소

영화 〈벨파스트〉 리뷰

 

 

  온 동네 사람들이 친밀하게 엮인 정다운 마을에 폭동이 일어난다. 폭동을 주동한 자들은 개신교 민병대로, 그들은 마을에 있는 가톨릭교도들과 그들의 집을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화염병, 자동차 폭발 등이 일어나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사람들은 겁에 질린다. 골목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생기고 총을 든 군인이 수시로 마을을 순찰한다. 이곳은 1969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9살 소년 버디가 사는 마을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종교를 앞세워 갱단처럼 행패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지만, 그 외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다. 북아일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실업률로 고생 중이고, 경제 위기의 여파는 벨파스트를 비껴가지 않았다. 세금 문제와 수입 감소로 골머리를 썩는 버디 부모님의 갈등이 잦아지는 이유다. 아빠는 미래를 위해 벨파스트를 떠나자 하지만, 엄마는 삶의 모든 것이었던 벨파스트를 떠나고 싶지 않다. 감당하기 벅찬 여러 문제를 동시에 마주한 버디네 가족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를 구분할 줄 모르는 이들은 눈이 뒤집힌 채 폭력을 휘두르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조금은 무섭고 긴장도 되지만 늘 그랬듯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말썽을 부리는 일상을 이어간다. 버디는 따뜻한 말과 사랑을 주고받는 조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엉뚱한 방식으로 마음에 둔 여학생과 가까워지기도 한다. 버디는 벨파스트가 오래도록 쌓아온 아름다운 관계의 성취를 듬뿍 만끽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가 멀어질수록 영화의 긴장감은 커진다. 어른들의 혼란과 아이들의 천진함이 동시에 포개진 벨파스트라는 모순은 점점 첨예해지며, 따로 존재하는 게 좋았을 두 세계를 결국 부딪히게 하고 만다. 동네 친구와 비밀서클을 만들어 놀던 버디가 얼떨결에 가톨릭교도를 응징하러 가는 개신교도 무리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약탈하듯 상점을 헤집어놓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에게 선물할 세제를 챙긴다. 

 

  그러나 일은 버디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버디의 엄마는 기뻐하기는커녕 크게 화를 내며 다그치고, 물건을 제자리에 놓자며 상점으로 버디를 데리고 간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꼬여만 간다. 폭도들이 왜 가톨릭교도에 이로운 짓을 하냐며 버디 모자를 다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개신교도임에도 평소 자신들에게 거리를 두던 버디 가족을 인질로 잡아 군인들과 인질극을 벌이기까지 한다. 엄마를 위한다는 순진한 동심이 어른들의 혼탁한 세계와 만나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다행히도 버디가 일으킨 소동은 파국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버디 가족은 오랫동안 망설였던 영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떠나는 버디네 가족을 보며 할머니가 당부하듯 혼잣말로 건네는 말을 들어보자. “가거라. 지금 가거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사랑한다(Go. Go now. Don’t look back. I love you so).” 할머니는 이제 벨파스트가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아님을 안다.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인 남편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기에 버디 가족마저 떠난다면 지독히 외로울 테지만, 자신의 외로움을 볼모로 자식들을 붙잡을 수 없는 그녀는 슬픔이 깃든 결연한 표정으로 벨파스트를 떠나는 자식들을 배웅한다.

 

 

  이것이 〈벨파스트〉가 고향과 유년기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과잉 낭만으로 고향과 유년기를 그려내는 영화의 방식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벨파스트〉는 다소 성급하고 단조로운 방법으로나마 우리가 지나온 것에 대한 보편적 호소를 만들어낸다. 모든 고향과 유년기에는 고유한 색채가 있다. 지역, 시대, 성별 등에 따라 그 색채는 무한히 다양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그 시기를 거쳐왔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다. 버디가 벨파스트를 폭력이 난무하던 곳으로 기억할지, 정情이 넘치는 따뜻한 곳으로 기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어떤 곳이었든 벨파스트가 그의 원점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사실로 남는다. 종교와 경제, 폭력과 온정이 들끓으며 뒤섞였던 1969년의 '벨파스트 출신 버디'가 자식들을 멀리 보내는 할머니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과 연결되기를, 그가 언젠가 다시 벨파스트로 돌아와 할머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기를 바란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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