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4-12-19 11:40:47
뻔한 K-스포츠 영화는 가라
영화 '1승' 리뷰
오래간만에 볼만한 K-스포츠 영화가 등장했다. 그동안 선보여왔던 K-스포츠 영화들의 뻔한 공식 및 단점을 보완하며 재미를 더한 영화 '1승'이 그 주인공이다.
4일 개봉하는 영화 '1승'은 전직 배구 선수 출신 감독 김우진(송강호)이 해체 위기를 맞은 여자 배구팀 핑크스톰 구단주 강정원(박정민)에게 딱 한 번만 이기면 된다는 제안을 받고 선수들과 1승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다. 신연식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디즈니플러스 '삼식이 삼촌'보다 먼저 함께 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이제야 개봉하게 됐다.
'1승'의 이야기는 '언더독'의 반란을 보여주는 기존 K-스포츠 영화들과 비슷하다. 주목받은 적 없는 선수 출신 감독은 주전들이 대거 이탈하여 후보 선수들만 남은 팀에 관심 없고, 보장된 대학 팀 자리에 가기만 기다리는 상황. 핵심이 빠져나간 팀에 남은 선수들은 오합지졸에 삐걱거렸다. 게다가 관종력이 넘치는 구단주는 감독과 선수들의 스토리를 이용해 시즌권 완판에 목을 매었다. 이른바 전형적인 '안 되는 집' 스포츠 구단이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곧바로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지난 시즌 3위를 기록했던 팀은 단숨에 꼴찌로 떨어져 밑바닥을 찍고, 비웃음과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는 가운데, 김우진과 핑크스톰은 하나의 계기를 통해 '원 팀'으로 단합하기 시작하고 결국 자신들이 목표하는 바로 달려나가게 된다.

다른 한국 스포츠 영화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1승'은 앞서 언급했던 스토리들을 구구절절하게 늘여놓지 않고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동안 봐왔던 영화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을 초반부 내내 설명하는 데에 할애한다면, '1승'은 생략과 편집을 통해 상당 부분 줄였다. 그래서 속공 플레이처럼 속도감이 느껴지고, 영화 시작 30여 분만에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던 배구 경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 '1승'은 역동감과 정교함, 그리고 속도가 강점인 배구 종목의 매력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360도를 커버하는 VR 버추얼리얼리티 기법을 비롯해 스카이 워커(사축 와이어캠), 초고속 카메라 등 다양한 기술과 장비를 활용해 쫄깃한 경기로 탄생시켰다. 이러한 기술력으로 완성한 '메가 랠리'는 '1승'의 명장면이라 해도 좋다. 그 외 전력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상대팀 선수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맞춰 전술을 짜는 장면 등은 '머니볼'이나 '스토브리그'에 비견되는 현실성이며, 스포츠 팬들이 좋아할 요소다.
'1승'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또한 영화의 매력포인트다. 저마다 부족한 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한 단계씩 밟고 나아가는 과정이 강정원의 말을 빌어 "스토리가 있다". 이 스토리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정 과잉이나 강제로 눈물착즙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적당한 유머도 곁든다. K-신파 알러지가 있는 관객들이라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너무 속도감 있게 진행되다 보니 인물들의 변화가 납득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김우진을 포함하여 핑크스톰 선수들이 각성하고 감정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섬세하지 못하다.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변모해서 생뚱맞게 느껴진다.
'1승'에서 기성 배우들과 신인 배우들의 시너지를 느낄 수 있다. 주연을 맡은 송강호는 툭하면 조소 섞인 비난을 쏟아내는 20세기 화법이나 김우진의 트라우마 등을 자신처럼 표현하며 "역시 송강호!"라는 찬사를 불러일으킨다. 박정민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재벌 2세 구단주 강정원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했고, 일본에서 온 리베로 유키 역을 소화한 이민지는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그 외 신윤주, 시은미, 차수민, 장수임 등 뉴페이스들 또한 풋풋함 매력을 발산한다.
그 외 여자배구 슈퍼스타 성유라를 연기한 여자배구계 레전드 한유미도 눈에 띄었다. 대사는 많지 않으나, 한유미의 아우라 덕분에 실제 배구경기로 착각하게 만든다. 한유미와 함께 깜짝 출연하는 김연경도 킬포인트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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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영화, 예능 신작
넷플릭스 2022년 4월신작
야차
비밀공작팀과 팀의 악명 높은 리더를 감찰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도시로 날아간 검사
정직하게 살아온 그가 스파이들 사이의 치명적인 전쟁속으로 뛰어드는데...
감독: 나현
출연: 설경구, 박해수, 양동근, 이엘, 송재림, 이케우치, 히로유키, 박진영, 이수경, 진경 등
장르: 액션, 스파이, 영화
공개: 4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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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사랑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고,
인생은 좋을 때도 슬플 때도 있는 법
바쁘게 돌아가는 섬 제주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크리에이터: 노희경, 김규태
출연: 이병헌, 신민아, 차승원, 이정은, 한지민, 김우빈, 엄정화,
김혜자, 고두심, 박지환, 최영준, 배현성, 노윤서, 기소유 등
장르: 드라마
공개: 4월9일 새로운 애피소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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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내일
사고로 반은 인간, 반은 영혼이 된 남자
저승사자가 운영하는 지하세계 회사에 채용되고,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러 나서는데...
크리에이터: 김태윤, 성치욱, 박란, 박자경, 김유진
출연: 김희선, 로운, 이수혁, 김해숙, 윤지온 등
장르: 웹툰 원작, 판타지, 드라마
공개: 4월2일 새로운 애피소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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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마더스 클럽
초등학생 학부모 커뮤니티의 다섯 엄마들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 질투심과 비밀들이 얽히고 설키는데
때로는 적을 가까이하기도, 서로 더 가까워지기도 하며
각자의 삶을 헤쳐 나가는데...
크리에이터: 라하나, 신이원
출연: 이요원, 추자현, 김규리, 장혜진, 주민경, 최덕문, 윤경호, 최재림, 임수형, 최광록 등
장르: 드라마
공개: 4월 7일 새로운 에피소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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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어른이 된 후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세 남매
한없이 평범한 삶 속에서 특별한 성취와 자유를 찾아 나서는데...
크리에이터: 김석윤, 박해영
출연: 이민기, 김지원, 손석구, 이엘, 천호진, 이기우, 박수영, 정수영, 전해잔, 이경성, 김로사 등
장르: 드라마
공개: 4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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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렙은 회의중
개그우먼으로 구성된 걸그룹 셀럽파이브가
코미디 스페셜 회의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개그와 콩트가 난무하는 무대 밖 모큐멘터리가 시작되는데...
감독: 김주형, 고민석
출연: 김신영, 송은이, 신봉선, 안영미
장르: 코미디, 예능
공개: 4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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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버거운 당신에게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버거워”
어쩌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빠지게 되는 딜레마가 아닐까. 홀로 남기엔 지독하게 외롭고, 또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자니 그 누구도 내 상처를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고. 그렇게 세상에 버팀목 없이 나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는 이러한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담담한, 그러나 따듯한 시선으로 비춘다.
영화의 주인공 ‘팬지’는 모든 일에 불만을 늘어놓는다. 가족은 물론 가구점 점원, 의사, 마트 점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까지 그는 분노 어린 불평을 뱉어낸다. 이렇듯 매사에 잔뜩 날을 세우고 있는 탓에 팬지는 만성 두통과 치통, 복통을 동반한 신경증에 시달린다. 그녀는 너무나 지쳐 있고, 또 무언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런 팬지를 보며 관객들은 도무지 이 인물과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다는 거리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왜 그녀는 이렇게 화를 낼까. 왜 가족들은 그녀의 분노에 무심하기만 할까.
영화는 인물들의 가정사나 배경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팬지와 여동생 ‘샨텔’의 대화나 자매가 떠올리는 어머니와의 관계, 아들 ‘모지스’가 준비한 꽃다발에 대한 팬지의 반응 같은 것들로부터 인물들이 지닌 결핍과 외로움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팬지는 상처받기 두려워 그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는 인물이다. 상처받을 바엔 내가 먼저 상처를 줘 버리고 떠나는 편이 나으니까. 이러한 방어기제는 신경증, 강박증, 결벽증으로 드러나면서 그녀가 겪는 불통의 원인이 된다.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모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서 줄곧 분노만 표출하는 팬지에게 남편 ‘커틀리’가 보이는 무심함과 아들 ‘모지스’가 보이는 침묵은 이들 가족 간 불통과 불화를 더 악화시킨다.그러나 어머니의 날 팬지가 모지스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순간, 영화에서 처음으로 그녀가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을 내보이면서 이 불화는 변화를 예감한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혹은 고마움인지 연민인지 모를 의미심장한 웃(울)음의 순간. 그 감정의 동요를 시작으로 팬지는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모지스가 선물한 꽃다발을 정돈해 병에 꽃아 두고, 혹여나 새나 짐승이 들어올까 굳게 닫아두었던 마당 문을 조심스레 열고 바깥공기를 느껴 보기도 하면서.
외부의 침입이 없다면 면역도 생기지 않는다. 병이 낫기 위해서는 내가 환자라는 인식보다 내가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모든 게 끝나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팬지는 그 순간 감정을 표출하면서 자신이 지나온 상처와 상실을 떠올림과 함께 자신의 앞에 놓인 다른 삶의 가능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굳게 닫혔던 문을 조심스레 열면서 이제껏 귀 기울이지 못했던 담장 너머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소외와 불통의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비단 팬지만이 아니다. 팬지가 이를 분노와 불만으로 표출한다면 커틀리는 무감함으로, 모지스는 우울로 드러낸다. 두 인물 역시 팬지와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몹시 지쳐있고, 불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지만 팬지처럼 언쟁을 일으키기보다 조용히 회피하기를 선택한 이들이다. 팬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면, 이들은 말을 너무 하지 않는다. 이들이 팬지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한다면, 팬지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때문에 이 가족에게는 불통의 문제가 드리워져 있고, 이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해소되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변화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고할 뿐이다. 모지스는 용기 내 엄마에게 마음을 전하고, 웅크렸던 몸을 펴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한편 커틀리는 허리 부상을 계기로 먼저 팬지에게 진지한 대화를 청한다. 관객은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숨죽여 이들 가족 사이 긴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 소통에 대한 희망, 또는 불통에 대한 절망 사이를 오가던 나는 문득 현실의 삶이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닿았다. ‘극적’인 갈등의 해결이나 감동적인 가족애의 회복은 현실에서 마주하기 어렵고 오히려 반복되는 관계 속 피로감과 절망을 맞닥뜨리기 다반사니까.
하지만 영화는 한 편으로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진부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옳은 것. 바로 ‘사랑’이다.
영화 속에는 팬지의 속사포 같은 분노와 불만을 유일하게 들어주는 사람이자 팬지의 아픔을 헤아려보는 유일한 혈육인 샨텔이 있다. 샨텔은 어머니의 묘 앞에서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팬지를 위로하면서, “언니를 이해는 못 해도 사랑해(I don’t understand you, But I love you.)”라고 말한다. 이해와 사랑은 다른 차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 분노를 이해받길 원하지만 우리는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불가능을 원하기에 우리는 자꾸만 외로워진다. 그러나 이해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빈자리에 사랑이 있다면,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샨텔이 팬지에게 보여 준 사랑처럼. 그렇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끝끝내 팬지를 이해할 수 없지만 처음과 같이 미워할 수도 없게 된다.
<내 말 좀 들어줘>는 이들이 지나온 상실과 결핍을 애써 긍정하며 포장하기보단 담담한 시선으로 그 상실과 외로움을 포착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스크린 위에는 상처받고 외로운, 분노하고 슬퍼하는, 그래서 우리와 닮아 있는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관객에게 다정하게 위로를 건네는 영화로 <내 말 좀 들어줘>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극복이나 나아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어설픈 위로를 전하기 보다 불편하고 지긋지긋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기를 택한다. 다만 관객은 그 속에서 자연스레 스스로 공감점을 찾아내고, 어떤 이에게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위로가 될 것이다.
*영화 웹매거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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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전생'에서 깨진 인연을 지금 다시 붙이고 싶다고?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 셀린 송
출연진 : 그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
울보 나영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 어딘가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나영이다. 외로운 삶. 어린 나영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나영에게 기댈 수 있는 그늘이 있다. 같은 학교 친구 해성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항상 해성과 함께했다. 사실 왜 둘이 집을 같이 갈까 3자가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쉽다. 다만 서로가 각자의 마음을 알기엔 너무 어릴 뿐이다. 시간은 둘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민을 계획하고 있는 나영 가족. 이미 나영의 부모는 나영에게 ‘노라’라는 영어 이름을 붙여줬다. 이별이 다가오는 둘. 나영은 해성에게 ‘나 이민 가. 한국에선 노벨상 못 받으니까’라고 전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해성이다.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지 못했다. 분명히 노라는 날 좋아했었다는 미련을 가진 채로 살아간다. 떠나기 며칠 전에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페이스북으로 사람을 찾는다. 이름은 문나영.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사실만 알았지 이름이 ‘노라’가 됐다는 건 아예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연락이 오겠지? 기다리고 있는 해성. 그날은 해성의 친구가 연인과 헤어진 날이었다. 펑펑 우는 친구 옆에서 해성은 어쩔 줄 모르고 있다. DM 알림이 온다. “안녕. 나 나영이야.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 나영이, 아니 노라에게 연락이 왔다. 미국과 한국, 뉴욕과 서울이라는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넘버 3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셀린 송이다. 영화가 흥미로웠던 점은 이야기 곳곳에 이 셀린 송이라는 인물의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셀린 송의 부친은 송능한 감독이다. 송능한 감독은 연출로 데뷔하기 이전에 임권택의 <태백산백>을 비롯한 몇 작품의 각본가로 활약했다. 충무로에서 나름의 명성을 쌓은 송능한 감독. <넘버 3>를 발표하며 금세 한국영화의 기대주로 올라선다(최근의 한국영화를 바탕으로 하면 아마 엄태화 감독쯤 됐을 것이다). 차기작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세기말>을 발표하는 송능한 감독. 하지만 영화 외적인 문제가 발생하며 흥행에 실패한다. 이민을 결심한 송능한 감독. 미국으로 떠난다.
영화는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극 중에서 나영의 아버지 직업이 영화감독이다. 하지만 ‘왜 아버지가 이민을 결심했는가’에 대해선 ‘설명하기 복잡하다’로 끝난다. 부친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가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영화가 주인공 나영이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직업을 ‘시나리오 작가’라고 설정했다. 실제로 셀린 송 감독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극작가(Playwriter)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작중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에게 여동생이 있다. 실제 셀린 송 감독에게도 여동생이 있다. 감독의 남편 역시 실제 배우의 외모와 닮았다. 작중에서 노라의 남편 역을 맡은 배우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다. 실제 셀린 송 감독의 남편 사진을 찾아보면 이와 유사하다.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 있어 많은 부분을 어디에서 착안했을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백을 비추는 카메라
이 영화의 강점은 감정전달에 있어 여유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앞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자기가 잘 아는 것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덕에 장면마다 정보를 더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이 안 느껴진다. 대표적으로 노라와 해성이 성인이 되고 나서 대면하는 신이 그 예다. 두 사람은 거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그걸 온갖 대사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딱 한 문장으로 끝내되 대신 다른 장면에서 인물들과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대표적으로 나영이가 울보라는 설정이 그렇다. 나영이는 잘 울었다. 하지만 봐줄 사람이 없어 감정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감정을 표현해도 울보라는 것을 알아봐 줄 사람이 없었을뿐더러 울 일도 줄어들었다. 받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노라의 성격이 변한 것이다. 반대로 해성이의 경우는 인물의 성격이 10대/20대 큰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 중반부까지 본다면 20대의 해성과 어린 시절의 해성이 둘 다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둘은 얼핏 보면 별 차이가 없다. 중간에 군 생활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의 시간이 12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체감하기 어렵다. 특히 가족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그런데, 둘을 비추는 방식은 별 차이가 없다. 시각적으로 이들이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연출해 실질적으로 변한 건 드물다는 것을 암시하는 연출이다.
또 영화에서 흥미롭게 리듬을 변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시차다. 두 사람의 시차는 영화에서 첫 대면신에만 설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시차가 영화에서 내포하는 바는 의사소통의 균열이다. 이 균열이 일어나는 장면이 인물들의 관계마다 다 묘사되어 있다. 아마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술집의 장면은 주인공 해성-노라 / 노라의 남편으로 대화 구조가 짜여있다. 둘/하나로 나뉘는 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노라의 남편은 한국어를 못한다. 그래서 둘은 내면의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언어로 시차를 둔 것이다. 이 시차는 두 주인공에게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12개월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한 번 끊는다. 여기에서 해성과 노라가 연애를 시작한다. 해성이는 사랑을 끝내는데 반면 노라는 남편을 만나는 장면도 두 사람의 차이를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 신에서는 노라가 직접('네가 원하는 나영이는 이제 없어')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해성이가 원하는 현재와 노라가 이해하는 과거가 다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해성이는 노라가 나영이의 모습으로 자기를 사랑해 주기 바라기 때문에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영화는 시차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드러내고 있고, 이를 두 인물이 가진 고유의 리듬을 비틀면서 전개한다
뜨겁게 뜨겁게 안녕
이 영화를 만든 셀린 송 감독은 이 영화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글쓴이에게 있어 ‘새롭게 시작한다’라는 의미는 시차와도 관련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시차를 두는 일과 유사하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한다. 쉽게 털어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래 가슴에 품는 이도 있다. 이 후회는 과거의 내가 보지 못했던 걸 현재의 자신이 알고 있다는, 일종에 시차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영화는 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내가 알지 못했던 걸 지금 고치기 위해 노라에게 간 해성. 하지만 과거의 내가 알든 현재의 내가 알든 그건 노라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해성이 잘 알고 있다. 영화는 이 과정을 깨닫는 해성의 내적 성장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또 사실상 노라의 현재를 상징하는 남편 캐릭터를 진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당신에게 현재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한다. ‘전생’에 있었던 그 모든 사건보다 현생의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유태오 배우는 열연을 펼친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의 중심 부분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회전목마 신에서는 이 인물이 그동안 품어왔던 그리움을 표정으로 보여준다. 네가 그리워라고 주절주절 떠드는 것 없이, 단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응축한다. 아마 유태오 배우가 이 감정에 크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유태오 배우가 참석했다. 유태오 배우는 “이 시나리오를 받고 울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보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술집에서 대화하는 신이다. 여기서 해성을 보면 영어에 서투른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영어를 못해서 대충 눈치로 넘기는 장면을 보면 '정말 영어 못하나 보다'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연인 유태오 배우는 영국과 미국에서 연기를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연기로 이 부분을 돌파한 셈인데, 유태오 배우가 연기에 얼마나 이 장면을 잘 이해하고 있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국에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는 <패스트 라이브즈>는 10월 9일 오후 12시 30분에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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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어쩌면 나만 섬인가봐
* 제목은 타블로의 노래 <airbag>에서 인용
절해고도(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
감독 : 김미영
상영시간 : 110분
시놉시스 : 20대 때 청년조각상을 받았지만 지금은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는 40대 이혼남 윤철에게 10대 딸이 있다. 미술가로 장래가 촉망되던 딸이 어느 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겠다고 한다. 윤철도 한때 예술가로 성공하지 못하면 신부나 스님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윤철은 자신이 꿈만 꾸고 가지 못한 길을 딸이 가는 것 같아 인생을 도둑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우스갯소리로 예술하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한다. 소위 대박이 터지기 전까지 생활의 궁곤함은 차치하고, 기질적인 예민함과 높은 이상, 비대한 자의식이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일 거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이라 장점도 았다. 예민한 사람들이 가진 다정함과 배려심, 감각적인 표현과 시선 같은 것들, 먹고 사는 문제나 돈 벌 궁리 말고 다른 이야기들을 밤새워 할 수 있다는 새로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절해고도>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혹은 작업하는 사람의 이야기, 예술과 재능과 운에 대한 이야기다. 먼 바다에 있는 외로운 섬, 한때는 유배지를 절해고도라 불렀다.
너무 멀리 있어서 눈에 보이지만 다다를 수는 없는 섬이 있다. 그런 섬을 상상해보자. 먼 바다 끝에 보물섬이 있다.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헤엄을 쳐도 닿지를 않고 배를 타고 갈 수도 없다. 그 섬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거기에 있다. 어쩌면 그 섬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20대에 청년조각상을 한 번 받은 후에 그렇다할 작업물 없이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는 윤철에게 현업 조각가의 꿈은 먼 바다의 섬 같다. 한때 자기보다 못했던 후배도 개인전을 여는데,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아버지와 딸은 거푸집에서 찍어낸 듯 닮기도 한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야구선수 이대호의 딸도 그렇고 윤철의 딸 지나도 그렇다.
지나는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된다. 하필이면 질투는 경쟁자들보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한다. 때로는 가족이, 때로는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가.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가 남긴 '쓰레기'라는 댓글은 예술하는 19세 청소년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지나는 예술가이므로 자기 감정을 학교 블라인드에다가 표현해놓고 학교를 떠난다. 그림이 너무 잔혹했기 때문에 학교 선생은 지나의 부모를 호출한다.
학교에서 선생을 만나고 돌아온 윤철은 지나에게 '그림에 재능있기가 쉽지 않다'는 말만 주구장창 한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스님이 되겠다는 지나를 보며 한때 자기도 종교에 귀의하고 싶었던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금우스님의 말처럼, 윤철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지나는 윤철이 멀리서 보기만 해야 했던 그 섬에서 태어난 아이다.
지나는 머리를 깎고 '행자 도맹'이 된다. 이제 윤철과 지나의 관계는 부녀에서 행자-거사의 관계로 바뀐다. 이들은 남남처럼 서로 존대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윤철은 더 이상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지 않고 국숫집을 꾸린다. 술도 팔지 않는 국숫집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열고 국수를 삶는 일은 행자의 수행과 다름없다. 이 부녀는 요원한 섬을 꿈꾸며 허우적거리는 대신 고독한 수행자가 되는 방식을 택한다.
절해고도는 유배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컨테이너 작업장에 스스로를 유폐하는 삶과 시장으로 나가 국수를 삶는 삶 중 어느 쪽이 폐쇄적인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윤철은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쪽에 가깝다. 이전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 끼지 못해 좌절감과 자격지심으로 괴로웠다면 이제는 잘 맞는 옷을 찾아 입은 셈이다.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러빙 하이스미스>라는 제목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 <캐롤>과 <리플리>의 원작으로 유명하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민음사, 2009)>라는 제목의 단편집이 있는데, 러닝타임 내내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했다.
김미영 감독은 영화에서 '관계를 통한 성장'에 방점을 찍었으나 윤철과 매우 긴밀한 관계였던 영지(강경현 분)의 존재는 이 텍스트와 어울리지 않아 생략했다. 관계보다는 작업하는(만드는) 인간으로서의 윤철에게 더 집중했다. 나는 윤철과 비슷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지나는 윤철에게 "평생 그렇게 살"라고 가시돋힌 말을 던진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아갔을 때, 마침내 윤철도 자기 자리와 할 일을 찾았으므로 절해고도 같은 유배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평생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다르게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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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년 8월 27일 | 16:00 - 17:50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2022년 8월 29일 | 19:30 - 21:20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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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회퍼, 선한 능력으로 암흑속에 불을 밝히다
▷한줄평 : 빛을 기다리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평점 : ★★★▷영화 :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Bonhoeffer: Pastor.Spy.Assassin), 2025.4월
2022년 12월 31일,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맞이해야 할 시간.
그러나 창궐한 코로나19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운, 마치 지옥에 갇힌 듯한 나날을 이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앞에서 ‘새로운 한 해’란 말조차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노래, ‘선한 능력으로(Von guten Mächten wunderbar geborgen)’는 마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나는 그 노래를 수없이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어느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말할 수 없는 ‘평화’가 밀려오는 듯했다.
♬ 선한 능력으로 작사 : Dietrich Bonhoeffer / 작곡 : Siegfried Fietz
1.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2.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3.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온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4.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후렴)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① 독일 NGO 한국선교사 독일어/영어/한국어버전 : GINA (홍혜진, 2020년)
https://www.youtube.com/watch?v=xwlUtvHLF8U
② 독일 작곡가 버전 : Siegfried Fietz (2012년)
https://www.youtube.com/watch?v=aN7dGz6NH5M&t=111s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빛난다. 그 선한 힘이 영혼을 짓누르는 고통의 순간에도 우릴 지켜 주실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날은 다시 주어질 것이다.
그날을 기대하며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에……’
이 노래의 작사가는 바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2.4~1945.4.9) 목사.
그는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 그리고 반(反) 나치 저항 운동가였다.
이 노래는 1944년, 그가 히틀러에 저항하다 감옥에 갇힌 중, 약혼자 마리아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롯되었다.
내 사랑 마리아
1944. 12. 19. Prinz-Albrecht Straße
성탄절에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고, 이 편지를 통해 부모님과 형제자매,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군요.
이 곳 새로운 형무소에서는 아주 적막한 날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는 순간이 될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느끼곤 했습니다.
마치 우리 영혼이 일상생활에서는 알지 못하던 신경체계를 고독 속에서 만들어 내는 듯합니다.
그래서 나는 단 한순간도 내가 혼자라거나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당신과 부모님, 친구들, 전선에 나가 있는 제자들 모두 항상 나와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모두의 기도와 사랑의 마음, 내게 보내 준 성경 말씀, 그리고 지난날에 나누었던 대화, 음악, 책 등은 내 옆에서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믿음의 눈으로 확신하며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더 넓은 세계가 있는 것이지요.
“둘은 나를 덮어 주고, 둘은 나를 깨워주며”라는 옛 동요에 나오는 천사에 관한 노래처럼,보이지 않는 주님의 선하신 권능의 손이 아침에나 저녁에나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옛날의 그 아이들 이상으로 선하신 권능의 보호하심을 필요로 하니까요.
내가 불행할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행복과 불행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환경에 좌우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과 가족, 친구들이 모두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매일매일 기쁘고 행복합니다. (중략)사랑하는 마리아, 우리가 서로를 기다려 온 시간이 벌써 2년이 되었군요.용기를 잃지 말아요! 당신이 부모님 곁에 있어서 기쁩니다.
장모님과 온 가족에게 사랑의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지난밤에 떠오른 생각을 옮겨 보았습니다.
이 시는 당신과 부모님, 형제자매들에게 보내는 나의 성탄 인사입니다.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Von guten Mächten)
신실하신 주님의 팔에 고요히 둘러싸인
보호와 위로 놀라워라
오늘도 나는 억새처럼 함께 살며
활짝 열린 가슴으로 새로운 해 맞으렵니다.
지나간 날들 우리 마음 괴롭히며
악한 날들 무거운 짐 되어 누를지라도
주여, 간절하게 구하는 영혼에
이미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쓰디쓴 무거운 고난의 잔
넘치도록 채워서 주실지라도
당신의 선하신 사랑의 손에서
두려움 없이 감사하며 그 잔 받으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기쁨, 눈부신 햇살 바라보는 기쁨
다시 한번 주어진다면
지나간 날들 기억하며
나의 삶 당신께 온전히 드리렵니다.
어둠 속에서 가져오신 당신의 촛불
밝고 따뜻하게 타오르게 하시며
생명의 빛 칠흑 같은 밤에도 빛을 발하니
우리로 다시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깊은 고요가 임하며
보이지 않는 주님 나라 확장되어 갈 때
모든 주님의 자녀들 목소리 높여 찬양하는
그 우렁찬 소리 듣게 하소서
주님의 강한 팔에 안겨 있는 놀라운 평화여!
낮이나 밤이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다가올 모든 날에도 변함없으시니
무슨 일 닥쳐올지라도 확신 있게 맞으렵니다.
출처 : 『옥중연서』-디트리히 본회퍼와 약혼녀 마리아의 편지, 정현숙 옮김, pp. 344-347
2025년 4월, 시간이 흘러 나치와 히틀러와 같은 독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이곳에,
영화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는 그를 단순한 신앙인이 아닌 ‘저항자’로 소환해낸다.
영화는 그가 어떻게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하기까지 되었는지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단지 이념이나 영웅주의로 포장하지 않고, 신앙인으로서의 고뇌와 결단의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영화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 스틸컷 / 히틀러 암살 모의 가담으로 체포되는 본회퍼(요나스 다슬러)
행동하는 신앙인 본회퍼
본회퍼는 베를린대학교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유니언 신학교 유학 시절,
흑인 교회와 인권운동을 경험하며 정의와 평화, 신앙의 본질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후 히틀러 치하의 독일로 자발적으로 돌아가, 폭력과 불의 앞에 침묵하는 독일 교회에 맞서며 외친다.
당시 독일교회는 나치 독일에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를 메시아로 숭배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악을 대면하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악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Silence in the face of evil is itself evil: God will not hold us guiltless.
Not to speak is to speak. Not to act is to act.영화 속, 나치 장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본회퍼가 히틀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설교도중 장교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그의 가족들은 예배가 끝난 후 조용히 격려의 말을 전한다.
“용기를 내, 디트리히.”, "우리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고뇌와 두려움을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영화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 스틸컷 / 교회 강단 설교에서 나치와 히틀러를 비판하는 본회퍼이후 그는 짓밟힌 독일 교회를 다시 세우고 무고한 유대인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던져 히틀러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정치적 용기는 신앙의 행위이며, 악에 직면하여 침묵하는 것은 결국 악을 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미치광이 운전수가 차를 몰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계속 치게 두고 죽은 사람들만 잘 장사 지내줄 것이 아니라
그 운전대를 빼앗아야 한다’
본회퍼는 결국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대량학살에서 구하기 위해 나치 정보국에서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며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고
종전을 겨우 한 달 앞둔 1945년 4월 9일 새벽,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서른아홉의 나이로 처형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마지막 유언
영화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 스틸컷
오늘, 우리는 어떤 신앙인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 영화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현실, 한국 사회와 교회의 상황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영화는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지?’,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더 이상 ‘빛과 소금’이 아닌, 세상의 불의에 침묵하고 사회적 약자에 무관심한 종교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주기도문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문장은 추상적 선언에 그칠 뿐이다.
기독교 신앙이 살아서는 복을 받고, 죽어서는 천당에 가는 개인의 구원과 축복에 초점이 맞춰진지 오래다.
더 이상 교회 강단에서도 세상을 향한 정의와 평화가 선포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이에 불의한 거짓 선지자의 선동과 영향력만 커져 버렸다.
본회퍼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세상 속에서 잃어버린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시 회복할지 도전한다.
예수께서 그 옛날 선포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 여기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무너진 정의와 평화는 회복되어야 한다.
본회퍼는 우리에게 묻는다.
“예수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의 삶은 말한다. 신앙은 행동이어야 하며,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결국 악에 가담하는 것임을. 정치적 용기도, 결국 신앙의 표현임을.
그리고 그 선한 능력은 여전히 우리를 감싸고 있다고.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오늘 밤, 나는 다시 그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 신앙인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 실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2.4~1945.4.9)의 모습
(우하 사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조각된 20세기의 순교자들, 맨 오른쪽이 디트리히 본회퍼
영화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 포스터
202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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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이젠, 가볍게 바라볼 수준은 아니다.
전작 <닥터 스트레인지>는 물론이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봐야 한다. (물론, 이 사이에 있는 <어벤져스>도 당연히 봤겠지?)
여기에 <완다 비전>과 <왓 이프...?>는 "디즈니 플러스"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와 "시리즈"이다.
근데, 이렇게까지 꼭? 꼭! 봐야 하냐...? - 응!먼저, 해당 장르에 있어 "돈이 잘 벌리는 장르"라는 선입견을 만들어준 사람은 누굴까?
<슈퍼맨>과 <배트맨>, 그리고 <엑스맨>도 있지만 흔히 말하는 "억대 오프닝"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준 영화는 <스파이더맨>이다.
2007년 3편을 슈트를 벗었던 "샘 레이미"가 15년 만에 다시 슈트를 입었다. (공교롭게도 "닥터 스트레인지"는 전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조력자"였는데?)1. 보직과 영웅이 달라진 "샘 레이미"
일단, 그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샘 레이미", 그가 당시에 선보였던 <스파이더맨 3부작>에는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다.
물론, 감독 본인과 제작사가 그려내는 청사진은 존재했겠지만 이에 대한 갈등은 2007년 <스파이더맨 3>로 나왔으며 '하차'와 '리부트'라는 결과로 도출된다. (그로 인해, 이후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나오게 된다.)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경기를 운영하는 "선발"이 아닌 중간에 투입하는 "중계", 그리고 선수 본인이 아닌 "감독(케빈 파이기)"의 "청사진(세계관)"대로 움직여줄까?
무엇보다 부제 <대혼돈의 멀티버스>에도 쓰여있듯이 넘나드는 세계관으로 되려, 관객들에게 혼란을 줄법하니까...
하지만, "샘 레이미"는 그 누구보다 "청사진(세계관)"을 가장 잘 이해하는 선수이다.2. 똑같은 공인데, 왜 다르지?
먼저, 전작 <닥터 스트레인지>가 호평을 받았던 시각 효과(ex.'미러 디멘션')부터 살펴보자.
"야구"를 비롯하여 스포츠에서 말하는 "자세"는 '어떻게, 힘을 전달하는지?' 혹은 '부상 없이 건강하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미러 디멘션'은 문제가 없으나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다.
무엇보다 전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까지 여러 차례 선보인 장면은 신선함이 떨어지기까지 한다.분명히, 똑같은 홈런 타자이고 강속구 투수임에도 타격폼과 투구 자세는 다르다.
그런데도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유에는 '자신에게 맞는 폼과 자세가 있다'라는 것이다.
'특히, 실밥을 어떻게 쥐는지?'에 달라지는 공의 궤적처럼 "샘 레이미"의 '미러 디멘션'은 무섭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는 관절이 우두둑거리며, '미러 디멘션'에서 나오는 "스칼렛 위치"의 장면으로 부족함이 없다.3. 외면부터 내면까지 무섭다!
앞서 말한 '미러 디멘션'에서 보여준 "스칼렛 위치"의 무서움을 비롯해 시가전에서 나타난 촉수 괴물, 썩은 시체의 "닥터 스트레인지"까지 외적인 모습부터 관객들을 한층 물러서게 만든다.
이외에도 "공포 영화"에서 볼법한 카메라 워킹까지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어떤 느낌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재밌는 건, 전작의 감독 "스콧 데릭슨"도 <살인소설> 등 "공포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 가운데에서 무서움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장면은 "스칼렛 위치"와의 추격전이다.
<왓 이프...?>에서 나왔던 "캡틴 카터"를 비롯하여 그 세상의 "어벤져스"가 등장하는데, 머리가 터지거나 돌려지고, 허리가 잘리는 등의 제법 고어스러운 장면들로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다.
여기에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을 쫓는 그녀의 모습은 역시, <왓 이프...?>에서 보았던 "좀비"를 연상시킬 만큼 우두둑거린다. (역시, 무서워!)4. 영화도 혼자가 아닌 "어벤져스"
그렇다면, 관객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원동력은 뭘까? - 아이러니하게도 이 힘의 원천은 본 작품이 아니라 <완다비전>에 있다.
물론,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설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빠와 남편, 그리고 가족을 잃은 "완다"의 감정, 그리고 마지막에 보여주는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완다비전>이 차지하는 역할을 배제할 순 없다.
앞서 말했듯이 "샘 레이미"는 그 누구보다 세계관을 잘 이해하는 선수이지 감독이 아니다.(이제는...)작년 <블랙 위도우>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터널스>, 그리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살펴보자!
"가족 영화"로 정리되는 <블랙 위도우>와 "8-90년대 홍콩 무협 영화"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팬 서비스"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그리고 <이터널스>까지 각자의 특색보단 "MCU"라는 큰 퍼즐, "세대교체"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보여준 으스스한 활기가 반갑다. - 역시, 원조가 뭐가 다르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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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캡틴 / 레드 헐크와의 대결 /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 어벤져스 빌드 업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후기입니다.
*꼭 보아야 할 쿠키영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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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발란 : 버려진 천사들의 무덤> 예고편
이 이야기는 루마니아 혁명의 혼란 속에서 1989년에 시작된다. 13살 소녀 줄리가 트란실바니아의 광산촌 발란에서 사라진다. 22년 후, 그녀의 형제 페터는 브라소프시에서 경찰로서 인신매매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그가 구하는 모든 소녀에서 그의 여동생을 본다. 어느 날 고향인 발란에서 죽은 소녀의 시신이 얼려진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동생의 시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란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혔던 과거의 그림자를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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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러 넘버 3> 메인 예고편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 작품 원소 3부작 완성작 파울라 베어 주연 · 2025 칸영화제 초청작 '미러 넘버 3 (Miroirs No. 3) 25년 10월 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