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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2022-04-11 01:19:30

스스로 내버렸던 사랑의 우아한 복수극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리뷰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 2016)

“스스로 내버렸던 사랑의 우아한 복수극”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러닝타임 : 116분

감독 : 톰 포드

출연 : 제이크 질렌할, 에이미 아담스, 마이클 섀넌, 애런 존슨, 아일라 피셔

개인적인 평점 : 4/5

 

사랑을 유지하려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면 눈물 날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놓쳐 버리고 나서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모든 것들을 쏟아 쟁취해낸 사랑과 권태, 이별과 배신. 그 뒤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감정들을 그린 영화들은 많지만, <녹터널 애니멀스>는 그중에서도 꽤 독보적으로 우아하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명예와 부, 잘 나가는 남편까지. 다른 이들이 부러워할 것들을 모두 가졌지만 행복보단 권태를 느끼며 살아가는 주인공 ‘수잔’이 한 택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손가락을 베이면서 겨우 뜯은 소포엔 오래전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의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가 들어있다. 출판하기 전, 꼭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바쁜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차차 사랑이 시들시들해지던 찰나, 남편과 정반대였던 전 연인 ‘에드워드’의 소설은 수잔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왠지 그때가 생각나 설레기도 하고 말이다.

 

에드워드가 보낸 소설은 부부와 딸로 구성된 토니의 가족이 텍사스 서부를 여행하다 휘말리게 된 끔찍한 사건을 그린다. 소설 속 주인공 토니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황량한 사막을 헤맨다. 소설 속 사건과 소설을 읽고 있는 수잔의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나열되고, 수잔은 소설과 겹쳐지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가고 마지막에 닿아서는 꾹 눌러놨던 본심을 소리 없이 터트린다. 그리고 무기 하나 없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겨진 이를 사정없이 찌른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 수잔은 에이미 아담스가, 에드워드와 토니는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했고, 에드워드의 소설에 등장하는 바비, 레이 역은 마이클 섀넌과 애런 존슨이 맡았다. 작은 구멍 하나 없는 탄탄한 출연진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건 제이크 질렌할이었다. 에드워드와 토니, 1인 2역을 연기하며 각자 다른 상실의 아픔을 연기하는 그의 괴물 같은 모습에 나는 마음을 탈탈 털려버리고 말았다.

 

톰포드 감독은 전작 <싱글맨>에서도 그러했듯, 이번에도 역시 색이 가진 고유의 느낌과 옷감의 텍스쳐를 이용해 이야기를 막힘없이 끌어간다. <싱글맨>이 무채색과 유채색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면 <녹터널 애니멀스>는 녹색과 빨강. 보색의 경계. 부드러운 드레스, 고급스러운 코트와 거친 워크 셔츠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가 활용한 색 중에서도 가장 집중할만한 건 바로 파란색이다. 녹색과 파란색, 그 중간에 있는 영롱한 색. 톰포드 감독은 (위에 나열한) 네 주연 배우들의 눈이 가진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화면에 담아낸다. 마치 이 푸른빛을 아름답게 담아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느끼기 나름이겠지만, <녹터널 애니멀스>가 가진 색의 절반은 이 배우들의 눈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다. 정말 지나치게 아름답다.

 

 

 

녹터널 애니멀스 줄거리

모든 것을 가졌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수잔’ 어느 날, 소설가를 꿈꾸던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로부터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소설을 받는다

 

그의 이야기 속 슬프고 폭력적인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수잔’은 잊었던 과거의 기억으로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변해버린 사랑과 상처

 

에드워드는 말한다. “누굴 사랑하면 노력하라.”고. <녹터널 애니멀스>는 사랑을 위해 총을 든 남자가 등장하는 소설이자 사랑을 잃은 남자, 사랑을 버렸던 여자에 대한 영화다. 수잔은 에드워드를 두고 바람을 핀 결과 잘 나가는 남자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지만, 모든 걸 갖고도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있는 여자다.

 

수잔이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모진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현실주의자인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가 지망생 에드워드를 선택한다. 수잔의 어머니는 실패한 자신의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며 수잔을 말리지만, 수잔은 엄마와 나는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기다려보렴. 우린 모두 자기 엄마처럼 변하게 돼.”라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수잔과 에드워드는 사랑의 결실을 맺었지만 에드워드를 바라보는 수잔의 눈빛은 예전과 같지 않다. 새로 쓴 글의 피드백을 부탁하는 에드워드에게 수잔은 첫 부분부터 읽기 싫어진다며 너의 이야기를 쓰지 말라고 질책한다. 창의성을 내려놓고 안정을 택한 수잔과 여전히 창의성을 중시하는 에드워드의 관계는 당연하게도 틀어진다. 수잔은 진심을 가진 에드워드를 두고 허영으로 가득한 허튼에게 마음을 뺏기고 에드워드와 함께 가진 아이를 지운다. 에드워드는 모든 과정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소설에 담은 죽어가던 순간

 

어쩔 수 없이 깨져버린 사랑이 아닌 지켜내려 노력하지도 않았던 잔인한 사랑의 배신. 에드워드는 그 배신감과 슬픔을 녹여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이 바로 수잔에게 보낸 ‘녹터널 애니멀스’다. 내 이야기가 아니면 쓰지 못하겠다던 그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이 죽어가던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겪은 상실의 아픔을 토니에게 그대로 투영하고, 토니는 상실의 원인을 찾아 삭막한 사막을 헤맨다.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상처를 준 사람, 수잔은 이 잔인하게 끝난 사랑의 아픔을 모른다. 수잔은 자신이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마음 편히 떠난 자리에 혼자 남은 에드워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revenge’라고 적힌 작품을 사놓고 구매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고통을 모르기에 그가 복수를 꿈꿀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자신의 잘못과 에드워드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에드워드가 보낸 자신의 별명을 제목으로 사용한 소설을 선뜻 받아 들지 못했을것이다. 심지어 수잔은 에드워드의 메시지를 보고 마치 첫 데이트에 나가는 사람처럼 신경 써 치장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준 상처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에드워드를 그저 옛 연인, 함께 꿈을 꿨던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준 사람은 그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고 웃으며 약속 장소에 나온다. 그리고 혼자 그 자리에 앉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상대방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바라는 건 재회가 아닌 복수. 똑같은 아픔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는 걸. 수잔은 그걸 아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젠 에드워드와 토니가 삭막한 사막을 헤맬동안, 행복한 도시를 누볐던 수잔이 아플 차례다. 소중한 사랑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후회, 자신이 한 잘못(바람)을 그대로(허튼의 바람) 돌려받을 타이밍이다.

 

 

 

에드워드는 나약해서 사랑을 잃은 걸까?

 

수잔의 주변인들은 말한다. 에드워드는 나약한 사람이었고, 새로운 남편 허튼은 나약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설 속 인물들은 말한다. 토니가 나약해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과연 나약함은 사랑의 적인 걸까, 에드워드는 나약한 사람이었던 걸까? 그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누군가의 방해, 상대방의 이기심으로 사랑을 잃었다. 결코 나약한 모습 따위는 보인적이 없었다. 그저 지켜내는 방식과 행동 타이밍이 달랐을 뿐, 에드워드는 강한 사람이다. 긴 고민의 시간을 이겨내고 우아한 복수를 성공했으니까.

 

소설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에드워드도 이 복수에 대해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걸로 보인다. 복수를 위해 총을 손에 쥔 토니는 매번 망설임을 반복하고, 그를 돕던 보비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에드워드는 그렇게 자신의 소설 속 인물에게 위로를 받으며 소설을 완성한다. 그리고 복수에 죄책감을 느끼던 에드워드의 마음은 복수를 마치고 끝내 자신에게도 총을 겨눈 토니의 모습을 통해 투영된다.

 

지나간 상처를 기록하고, 그 상처를 준 인물에게 마음을 내보인다는 건 엄청난 고민과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친 에드워드를 어떻게 나약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기에 처절한 감정들을 모두 절제한 깔끔하고 완벽한 마무리까지. 이 복수를 준비하며 에드워드도 꽤 오랜 기간 아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수의 끝에서 맞이한 토니의 죽음과 함께 아팠던 과거의 에드워드도 사라졌길 바란다.

작성자 . 혜경

출처 . https://blog.naver.com/hkyung769/22269691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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