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2-05-01 00:08:16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말없이 걱정과 위로를 전하는 심장소리
영화 <심장소리> 리뷰
4년만의 단편 신작으로 찾아온 이창동 감독. 그의 작품을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나고 싶었지만 티켓팅 시간을 놓쳐 대차게 예매를 실패하고 안타까워하며 어쩔 수 없이 전주돔에서 하는 심장소리 + 박하사탕 릴레이 상영을 예매했다. 그래도 운이 좋게 무대인사를 통해 이창동 감독을 만나볼 수 있어서 나름 위안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영화 <심장소리>는 여덟 살 철이가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왠지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혀 선생님께 화장실에 간다고 말한 뒤 곧장 집으로 달려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이 이후로는 영화 <심장소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어린 아이의 슬픔
영화 <심장소리>는 우울증에 걸린 엄마와 부당해고를 당한 뒤 크레인에서 홀로 농성을 하는 아빠 사이의 초등학생 아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 대부분의 장면이 아들 ‘철이’가 뛰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초반에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뛰는 장면만 보다보니 도대체 저 아이에게 어떤 상황이 닥친 것일까?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담답한 마음이 들었다. 어찌보면 아이의 기행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영화 속에서는 말미에 엄마의 불안한 심리와 아빠의 경제적 위기라는 환경을 제시하면서 그 의문점을 풀어준다. 단편임에도 짜임새 있는 구조와 관객들의 몰입감을 불어넣어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의 엄마가 잘못됐을까봐 걱정하는 한 아이의 마음이 오롯이 전달이 돼서 더욱 먹먹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농성으로 인해 떨어져 있고, 현재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도 의지하는 사람이 엄마이기에 엄마마저 잘못된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 어린아이가 얼마나 다급하고, 엄마를 걱정하는지 그 모습을 달리기를 통해, 그리고 무모하게도 베란다로 집을 들어가는 행동을 통해 어린아이가 하나에 집중하면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달려가는 그 모습을 잘 그려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심장소리로 전하는 위로의 말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 <심장소리>에 대한 정보를 거의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스터로 보여지는 이미지와 심장소리라는 영화 제목을 통해 주인공이 아픈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심장이 아파서 달리기를 하다가 쓰러지나,,,? 혼자 이상한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 <심장소리>는 아이가 아픈 것이 아니라 되려 엄마가 우울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설정이었다. 그런 엄마를 둔 아들 철이가 아침에 본 메모가 유서라고 착각을 하고 학교에서도 불안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 결국 철이는 교실을 박차고 나와 엄마가 있는 집으로 달려가지만 집 문은 굳게 잠겨있고, 갖은 노력 끝에 집에 들어오지만 엄마는 집에 없고, 옥상에 엄마가 있다는 소식을 듣자 불안한 마음에 다시 달려간다. 그곳에서 만난 엄마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자신의 감정을 달래는 중이었고, 철이는 그런 엄마를 안아주며 위로를 전한다.
“철아, 왜 이렇게 심장소리가 크게 들려”, “엄마도 심장이 뛰어요”라는 말을 통해 서로가 살아있음에, 그리고 함께 기대어 살아가고 있음에 위로를 전하고, 위안을 받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 헤매며 뛰어왔을 아들에게서 느껴지는 가쁜 숨소리와 큰 심장소리를 통해서, 하지만 그 걱정에 대한 말은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꼭 안아주는 아들을 통해서 엄마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큰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감히 유추해본다.
영화 <심장소리>는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족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위로와 위안에 대해 너무나도 압축적으로 잘 담아낸, 절로 박수가 나왔던 작품이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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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브 마이 카
흩어지며 죽어가는 이야기들에 숨을 불어넣는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이야기를 읊듯 시작되는 극 전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상실감에서 시작되었거나 혹은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방에 자신의 증표를 남기는 것처럼 남자의 마음에도 점점 쌓인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상황들이 나도 그 사람도 볼 수 있지만 나만 보고 있는 그 거울을 빗겨나간 채 자리를 비우고 고개를 돌리며 독백이 자기 생각처럼 스며든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내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테이프는 계속 같은 음성을 뱉어낸다.
그렇게 마음을 숨긴 채 세상에 하나 남은 소중한 차를 운전하는 가후쿠는 새로운 연극에 들어가며 의도치 않게 기사를 두게 되면서 기사 미사키를 만나게 되고 미사키를 비롯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국적 / 성별 / 나이,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들과의 조우로 그의 무미건조한 삶에 약간의 파도가 친다. 다른 언어로 같은 뜻의 말을 해도 연극이 진행되는 것처럼 인생도 달리는 자동차처럼 누군가가 사라져도 계속된다. 그리고 그 말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을 마주 보게 되고 뒤늦게 감정이 휘몰아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타인이지만 왠지 모르게 닮아있는 그를 안으며 살아갈, 살아 숨 쉴 자신을 향해 달린다.
상영 시간이 길어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테이프처럼 늘어지지도 않고 꽤 따뜻하고 단단하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품이라 좋았다. 상영 시간이 더 길었어도 좋을 '드라이브 마이 카'는 시작점을 어디서 잡느냐에 따라 또 다르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굉장히 좋은 영화였다. 다른 언어로도 소통할 수 있지만,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쓰는 언어를 알아야 그에 대해서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에 닿을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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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귀를 키우는 여자 - 감각적이고 새로운 느낌의 공포
이 영화는 필자가 BIFAN에서는 관람을 하지 못했는데, 운좋게 씨네큐에서 진행하는 먼데이캐슬(현재는 시네마캐슬이 후속격으로 이어가고 있다)을 통해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겨 보게된 영화이다. "링"을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기에 이 감독...최신작은 어떨까? 라는 마음에 본 영화인데, "링"과는 다른 신선한 공포를 선사하는 수작이다. 이 영화의 평이 나빠서 사실 똥인지 알고 먹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의외로 괜찮았다. 작년 7월에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카페 행사 때 미디어캐슬 이사님을 만나 이 영화가 언제 공개되는 가에 대해 여쭈어봤는데, 추후 개설된 전용관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답하셨다. 여기서의 전용관이란 지금의 시네마캐슬을 뜻하니 언젠가 시네마캐슬 프로그램을 통해 스크린으로 만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관심이 간다면 현재 VOD로도 발매되었으니 VOD로라도 보는 걸 추천한다.
나카타 히데오는 현재는 사실상 묻힌 장르인 로망 포르노에 관해 관심가지고 실제작을 하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다. 2016년에는 그의 영화 중 "화이트릴리"라는 로망 포르노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살인귀를 키우는 여자도 이러한 로망 포르노 시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에로틱 스릴러 답게 수위높은 장면들이 상당히 나오는데, 그게 예상보다 길고 수위가 높다. 필자는 시작한지 5분도 안 지나 섹스씬이 나오는 것을 보고 충격먹었는데, 무슨 에로 영화 섹스씬을 보듯이 상당히 길게 나오는 것을 보고 더 충격먹었다. 영화를 봤을 당시에는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영화를 "링" 밖에 안 본데다가 로망 포르노 장르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섹스씬이 끝나면 나오는 자위씬. 슬슬 끝날 거 같은데 하면 또 다른 섹스나 자위가 나온다. 에로틱 스릴러라는 소개 문구를 보았을 때 필자가 기대한 것은 공포 6: 에로 4 정도의 비율이었는데, 실제로는 공포 2: 에로 8 이다. 초중반부 까지는 내가 지금 공포 영화를 보는건가 영화로 취급하지도 않는 에로 영화 따위를 보는 건가 싶었지만, 다중인격을 여러 배우를 통해 보여주는 모습은 감독이 고집하고자 하는 감각적인 미장센을 엿볼 수 있다. 수위가 높은 장면이 많지만 에로 영화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본질인 성적 흥분이 아닌, 감독의 미장센이라 평하는 것이 더 옳을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라기 보다 예술 영화라고 평하는 것이 더 옳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수위가 엄청 높을 뿐이다. 이러한 감각적 요소가 존재하기에 필자는 이 영화를 한번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최근에 "사다코"와 같은 원조 공포에서 마저도 아쉬운 모습을 보이는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후속작이 아직까지도 기대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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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
미나리
미국 영화계는 왜 '미나리'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걸까. '미나리'는 이미 수십 개의 영화상을 받았고,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미나리 현상'은 미국 영화계는 물론, 한국에서 미국의 한인 이민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잘 드러낸다. 말하자면, 낯익은 서사를 신선한 영화언어로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 있는 영화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젊은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 자격증을 갖고 미국으로 이민 온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가족은 중남부에 있는 아칸소주로 이주한다. 남편 제이콥이 이끈 땅은 비옥하고, 땅값이 싼 곳이어서 넓은 땅을 매입할 수 있었다. 아내 모니카는 이주가 달갑지 않지만, 아들 데이빗의 건강을 위해 동의한다.
캘리포니아의 대도시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제이콥이 농장을 일굴 수 있는 아칸소로 이주하는데, 가까운 마을을 가려해도 자동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외진 곳이다. 아칸소주는 중남부에서 약간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바로 옆에 오클라호마주가 있다. 신기하게도, 아칸소주가 있는 경계로 남북으로 길게 왼쪽은 사막지역이고, 오른쪽은 비옥한 땅이 있는 지역이다.
부부에게는 딸 앤(지영)이 있고, 아들 데이빗이 있다. 두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만, 엄마, 아빠와 대화할 때는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고, 한국말을 비교적 잘 알아듣는다. 남매끼리 대화할 때는 주로 영어로 대화한다. 이민 2세는 자연스럽게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그 첫 번째 현상이 언어의 사용이다.
부부가 함께 일하기 때문에 아이를 보살펴 줄 사람을 찾을 수 없자, 부부는 한국에 계신 모니카의 어머니를 초청한다. 한국에서 할머니가 도착하고, 할머니와 함께 도착한 짐에는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 재료들이 바리바리 들어 있다. 고향을 떠난 것은 젊은 부부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나, 이 시기 한국 상황은 전두환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독재국가였고, 민주화 투쟁의 불길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젊은 부부의 이민이 이런 한국 정치상황과 직접 관련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개인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의 보편적 속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당시 한국의 숨막히는 독재 상황이 이들의 이민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네 식구의 가정에 할머니 - 한국 할머니 - 의 등장은 잔잔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데이빗은 외할머니를 낯설어 하고 '할머니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할머니에게서 나는 냄새는 '한국' 냄새이며, 미국에서 태어난 데이빗은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조국'인 '한국'의 낯선 냄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손녀와 손자에게 스스럼 없는 '한국 할머니'로 말하고 행동한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영어로 말하고, 할머니의 말은 알아 듣지만 한국어로 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데이빗과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다 작은 개울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그 개울 옆에 뿌린다. 할머니는 미나리가 어디에서든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말한다.
제이콥이 아칸소주로 이사한 것은 농장을 꾸리기 위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제이콥은 한국에서도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가 농사 짓는 모습을 보며 자랐던 것이 부부의 대화에서 아주 잠깐 드러난다. 반면 모니카는 서울 또는 대도시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와서도 캘리포니아에 살았던 것을 좋아했고, 아칸소의 시골로 이주한 것이 달갑지 않은 상태였다. 모니카가 아칸소로 이주한 것에 동의한 이유는 데이빗이 갖고 있는 선천성 심장병에 자연 환경이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제이콥은 낯선 곳에서 농사를 지으려 준비하면서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는 미국인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다. 그 선입견은 이방인이 갖는 공통의 심리이기도 하다. 낯선 곳,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선 경계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태도는 자기와 가족을 지키려는 자연스러운 심리 상태이며, 생존을 위한 기본 심리이기도 하다.
제이콥은 농사를 짓기 위한 우물을 파야 하는데, 200달러를 달라는 업자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기가 직접 우물을 판다. 중고 농기계를 구입하는 것도 마을 주민에게 싼 값으로 사는데, 그렇게 우연히 폴을 만난다. 폴은 백인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백인은 아니다. 그 역시 시골 촌놈이며,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인물이고, 아마도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며, 이상한 주문과 주술을 하는, 조금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제이콥은 폴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는다. 폴 역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제이콥을 돕는다. 폴은 일요일이면 십자가를 메고 도로를 걷는 고행을 하는데, 폴의 인생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쩌면 폴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후 PTSD로 고통받는 사람인지 모른다. 폴이 제이콥에게 친절한 것도 우연이지만 제이콥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폴은 외로운 사람이고, 누구든 가까이 지낼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농사를 짓던 제이콥은 판매를 할 만큼의 농산물을 수확하고, 판로를 개척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갑자기 할머니가 뇌졸증이 발병하면서 병원에 입원하고 모니카는 미래가 확실하지 않은 농장, 어머니의 발병으로 인한 간병과 경제적 문제, 아들 데이빗의 심장병 등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로 힘겨워한다.
모니카는 이웃에 사는 폴을 초대해 식사하면서 뇌졸증으로 쓰러진 어머니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퇴마 의식을 치른다. 한국식으로 보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것인데, 모니카 역시 이런 상황이 좋은 건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한 자기 위로라고 본다. 제이콥은 모니카가 주도하는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할머니는 딸과 사위, 손자들에게 짐이 되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데이빗을 데리고 도시의 병원으로 간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선천성 심장병 진단을 받았고, 숨차게 뛰는 것도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시골로 이주한 뒤에도 데이빗이 뛰어다니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있었다. 데이빗을 진단한 의사는 심장이 많이 좋아졌다고,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한다.
시내 나온 김에 제이콥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트에 들러 자기가 재배한 채소를 납품할 수 있는지 상담하고 긍정적인 답을 얻는다. 제이콥은 아칸소 뿐 아니라 가까운 오클라호마에도 채소를 납품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가족이 모두 외출한 사이, 할머니는 혼자 쓰레기를 태운다. 몸이 자유롭지 않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애쓰는 할머니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러다 쓰레기에서 떨어진 불이 농작물 보관 창고에 옮겨 붙으면서 가족들이 도착할 때쯤 창고는 불길에 휩싸이고, 모두들 망연자실한다.
할머니는 자기의 잘못으로 제이콥의 농사를 망쳐서 절망하고 집을 떠난다. 이때 데이빗이 달려가 할머니를 가로 막고, 가족은 다시 트레일러로 돌아와 쓰러져 잠에 든다. 할머니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만, 사실 채소 저장소는 다시 지으면 되고, 채소는 계속 자라는 것이니 그것이 죽을 만큼 큰 절망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다행인 것은 데이빗의 심장이 거의 정상에 가깝게 좋아졌다는 것이고, 제이콥이 시내의 마트와 납품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에서 이민오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한국 채소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이다.
채소 저장고의 화재는 제이콥 가족에게 한순간 절망스러운 사건이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제이콥과 모니카가 화해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제이콥은 데이빗과 함께 할머니가 심어 놓은 미나리밭을 찾아간다. 싱싱한 미나리를 뜯으며, 어디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낯설고 물선 미국에서 힘겹지만 조금씩 뿌리 내리는 한국인 이민자의 삶이 희망적이라는 메시지를 보이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시간과 정서는 1980년대를 나타낸다. 우리는 2020년에 이 영화를 보면서, 마치 한국의 1970년대를 떠올리는 기시감을 갖는다. 따뜻하고 살가운 할머니의 모습과 무한한 애정, 고생하면서 가족을 먹여살리고 가정을 지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은 가난했던 우리 부모 세대의 모습이며, 미국의 초기 이민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미국의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이민자들이기 때문이며, 이민자들이 갖는 보편적 감성을 영화가 매우 잘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을 떠날 때의 낯설고 두려운 심정, 낯선 땅에서 먹고 살려고 발버둥을 쳐야 했던 자신들의 과거가 이 영화에 과정 없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 반갑고, 무엇보다 과장하지 않고,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담담한 영화 언어로 이민자의 삶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자연이 드러내는 풍경, 바람소리, 물소리, 빗소리, 풀잎이 스치는 소리, 여기에 잔잔하게 흐르는 배경음악까지, 영화는 미국의 농촌 풍경을 낯설지 않게 보여준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 초보 이민자가 만나는 이웃들 역시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대부분의 사람은 친절하고, 다정하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이웃들이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건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영화에 필요 이상의 감정을 넣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쁜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과의 갈등으로 촉발하는 시선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약간의 희망을 보이면서 끝난다. 하지만 할머니는 뇌졸증으로 쓰러졌고, 제이콥이 하는 농사는 항상 수익이 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아칸소만 해도 한여름의 태풍이 엄청나서 태풍 피해를 입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결말을 말하지 않는다. 이 가족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만 확실하다. 사람은 힘들게든, 고통스럽게든 그렇게 한발 한발 땅을 디디며 살아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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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망 넘치고 치열하고 살벌한 이야기
야망을 가진 인물들이 치열하게 분투하는 이야기
야망을 갖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쟁취하는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가 있다. 영화 블랙스완도 그랬고, 전부터 지금껏 흥행하고 있는 보컬과 댄스 등 경연 프로그램도 같은 결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자 사연이 있는 등장인물들이 있고, 그들은 각각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정적인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개인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은 현실 속 이야기라 '우와 즐겁다'하는 마음으로 보기가 힘들다. 전에 공연계 지망생으로서 훈련하면서 동료들과 각자의 꿈, 어려움 등을 나누어본 경험 때문인 것 같다.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도 예전의 나와 동료들이 나누었던 고민과 걱정을 비슷하게 하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잘 되면, 다른 누군가는 놓치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경연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치열한 현장을 가공해서 만든 콘텐츠는 종종 소비한다. 완벽에 대한 인간 심리와 발레계의 치열함을 엮은 영화 <블랙스완>은 아름답고 치명적이었으며, 공감이 가서 좋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지휘자를 위한 1분>에서 역시 한정적인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프로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서로 알고 있는 정보나 이론을 공유하며 '더 나은 지휘자가 되기 위한 경험'으로서 경연을 받아들인다. 내가 설 자리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갈망하지만 영화 <블랙스완>만큼 파괴적으로 경쟁하지는 않는다.
블랙스완, 지휘자 1분과 유사한 점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한 드라마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 역시 어떤 자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영화 <블랙스완>, 다큐영화 <지휘자를 위한 1분>과 유사한 점이 각각 있었다.
발레계의 치열함을 다루고 있으며, 완벽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다는 점은 블랙스완과 닮았다. 내가 설 자리에 대해 고민하고, 갈망하고, 더 나은 댄서가 되기 위해 서로 돕는 장면은 지휘자를 위한 1분과 닮았다.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만의 특징
뚜렷한 1인 주연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이다 보니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한 소녀를 주인공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레 명문 학교에 극적으로 입학하게 된 그 인물은 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아니다. 에피소드를 거듭 헤쳐갈수록 확신하게 된다. 나는 '내레이션을 하고 있는 인물은 그 흑인 여성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은 뒤에 이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콘텐츠 속 콘텐츠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이 작품은 콘텐츠 속에 등장하는 콘텐츠 두 가지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우선, 잠자는 숲 속의 미녀(또는 공주). 또 다른 콘텐츠는 '리퍼'. '잭 더 리퍼'로 알려진, 오래전 영국의 미제 사건 이야기이다.
캐시가 사고를 당하기 전,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발레 공연으로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새로운 학생과 새로운 안무가가 영입되고, 살인마 이야기를 공연하게 된다.
작품 밖에서도 실존하는 두 콘텐츠를 작품 속에 녹여내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이 이야기의 발단이 된 불의의 사고로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진 '캐시'는 잠자는 미녀이다. 여성들을 살해한 리퍼 공연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솔로이스트(독무를 추는 최고 댄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서우리만치 살기를 띠는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 시즌1, 총평
여러 인물들이 겪는 각자의 문제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을 다루는 이야기인 점은 좋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된 이유인 유망했던 발레리나의 추락사고 전말은 여러 인물들을 곤란하게 했던 것 치고는 밋밋했다.
썸네일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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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룩 업> 진짜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박사는 한 혜성이 100% 확률로 지구와 직접 충돌할 것이라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한다. 이에 두 사람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의 집무실 방문부터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이 진행하는 인기 토크쇼 출연에 이르기까지 불편한 진실을 전달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대 IT 기업의 회장 '이셔웰(마크 라이런스)'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진실을 곡해하며 극심한 갈등을 빚고, 그 사이 지구와 인류는 하루하루 종말에 가까워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돈 룩 업>의 겉모습은 애덤 맥케이 감독의 전작인 <빅쇼트>와 <바이스 중 후자와 매우 유사하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부통령(vice president)이었던 딕 체니를 '악(vice)'으로 규정하고 신랄하게 비꼬았던 <바이스(Vice)>처럼 <돈 룩 업>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당장 올리언 대통령이 철저히 표에 따라 혜성에 대비하는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이나 정치적 능력이 전무한 아들 제이슨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트럼프의 포퓰리즘 정책과 가족 인사에 대한 풍자라고 할 수 있다. 올리언이 명백한 자연재해인 혜성의 접근을 부정하는 것도 지구온난화를 부정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력을 평가절하했던 그의 실책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 룩 업>을 정치 풍자 영화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정치 비판은 외관과 달리 단순히 한 개인의 실정을 비난하거나 좌우 진영 논리에 빠지는 대신, 더욱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기 때문이다. <돈 룩 업>이 진정으로 문제시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한 사회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각의 기능에 따라 분화된 현대 사회의 시스템들 사이에 가교가 부재한 현실의 결점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각자 고유한 기능을 전담하는 시스템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중세 시기만 하더라도 사회의 모든 기능은 종교와 도덕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치와 법, 경제, 문화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신성하지 못하거나 악마적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은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렇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나 도덕은 부정선거, 주가 조작, 논문 표절, 스포츠 선수의 도핑처럼 정치, 경제, 법의 시스템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렇지 않은 경우 각각의 시스템은 철저히 자신의 영역 내에서만 작동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권력의 크기와 경제적 이윤이 직접 연관될 수는 없으며, 돈이 많다고 재판에서 무조건 이기지는 못하며, 정치적 이유로 예술 창작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
문제는 이처럼 독립된 시스템들이 각자 영역 내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 전체 사회 구조의 유지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협력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경제나 과학기술의 영역에서는 암호화폐의 등장과 같은 새로운 혁신이 발생하고, 학문이나 문화의 영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각 시스템 간의 소통의 부재는 법과 정치의 시스템이 그 변화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게 하며, 더 나아가 빠르게 발전한 시스템이 뒤처진 시스템의 기능을 침범하게 한다. 그 결과 현실에서는 자본이 사회적으로 유일한 진리가 되거나, 정책 설계에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보다도 정치적 유불리가 중시되는 등 사회 전체의 구조가 무너진다. <돈 룩 업>은 바로 이 대목을 풍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환기하려 한다.
실제로 <돈 룩 업>은 사회적 시스템 간 소통 부재와 그로 인한 문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혜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게이트와 민디 박사가 올리언 대통령에게 그 사실을 전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민디 박사가 천문학적 용어를 동원해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말해도 정작 해당 언어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전무한 백악관 대통령실의 분위기는 그저 평온하다. 참다못한 케이트가 지구와 혜성이 부딪히면 모든 생명체가 죽을 것이라고 가장 쉬운 방식으로 경고해도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과학적 발견은 정치의 시스템 안에서 철저히 득표를 위한 수단으로 치환되고, 실질적으로 정치인과 과학자 간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과학자는 언론인과도 소통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반응에 실망한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차선책으로서 언론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 여론을 움직여 보려 한다. 그러나 토크쇼에서는 그들의 발견을 그저 수많은 가십 중 하나로 취급할 뿐이다. 정작 토크쇼에서 건져낸 것은 아무도 그 진실과 미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 경악하고 분노한 케이트를 조롱하는 각종 밈과 짤, 그리고 랜들의 외모에 주목하는 인기에 불과했다. 신문사에서도 자체적인 팩트 체크를 이유로 그들의 과학적 발견을 기사화하는 것을 거절한다. 이에 더해 과학과 경제, 정치와 시민사회 사이에서도 시스템의 소통 부재가 여실히 드러난다. 혜성 충돌마저도 경제적 효용으로 계산하는 거대 IT 기업의 회장 이셔웰은 민디 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는다. 정부가 좀처럼 혜성 관련 정책 변화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의심이 자라나고, 이는 폭동으로 이어진다.
과학의 영역 안에서도 세부 분과별로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케이트의 발견을 두고 나사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나, 이셔웰이 혜성을 파괴하고 혜성에 존재하는 여러 광물 자원을 활용할 대책으로 제시한 신기술이 동료평가(peer review)도 거치지 않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진정한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심지어 종말이 임박한 순간 올리언 대통령이 아들인 제이슨 비서실장과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은 위에서 열거한 모든 문제점을 한 장면에 함축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영화가 후반부에 종교적 심성으로 회귀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민디 박사의 가족과 친구가 모두 모여 마지막 식사를 할 때, 그들은 모인 이들 중 종교를 믿는 이가 없는데도 케이트의 남자 친구인 '율(티모시 샬라메)'의 도움을 받아 신에게 기도한다. 이는 기도하는 방법도 모를 만큼 과거와 달리 탈종교화된 현대 사회의 일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개선하지 않으면 현대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모든 체계가 실패하고 끝내 종교에 기댈 수밖에 없는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은 혜성이나 지구온난화 같은 자연재해나 특정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막을 수 있는데도 막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체계적 문제라고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 룩 업>은 애덤 맥케이 감독의 장점이 잘 발휘된 작품이자 <바이스>보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을 착실하게 추적한 <빅쇼트>에 가까운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빅쇼트>는 비판의 대상을 철저히 미국 경제 시스템의 모순과 병폐에 국한한 영화였다. 애덤 맥케이 감독은 특정 개인의 사악함이나 불행함에 초점을 두고, 악한 인물들을 보여주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거나 분노를 터뜨리며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는 손쉬운 길을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케이트 블란쳇이나 티모시 샬라메처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들을 제각기 언론인, 정치인, 과학자와 같은 조연으로 캐스팅한 선택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여러 스타 배우의 존재가 특정 캐릭터에게 쏠릴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이, 영화는 친숙한 스타의 얼굴을 통해 정치, 언론, 과학, 경제와 같은 서로 다른 시스템 간의 단절된 관계성을 직관적으로 제시하고 메시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다만 몇몇 단점으로 인해 사회적 시스템 자체를 풍자하려는 <돈 룩 업>의 의도는 다소 희석되는 감이 있다. 일단 과학자들이 재난을 경고하며 울분을 토한 뒤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무시하는 전개가 몇 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것은 결코 짧지 않은 영화의 러닝타임(139분)을 고려할 때 다소 과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애덤 맥케이 감독이 SNL 작가로 일한 경력이 있는 만큼 이는 SNL의 한 코너를 가능한 길게 늘여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토크쇼 출연처럼 전체적인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으로 인해 극의 집약도와 완성도를 전체적으로 하락시킨다.
또한 앞서 보았듯이 지나치게 일차원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풍자의 방식도 호불호가 갈릴 여지를 남겨놓는다. 해당 묘사 자체는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영화의 주제와 통찰에 쏠려야 할 주의와 관심이 분산되면서 영화의 의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하면 공감할수록 그 전달 방식은 역으로 더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애덤 맥케이 감독 특유의 코미디 연출 센스, 시간선을 꼬아놓는 식의 화려한 편집과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가 만난 케미스트리보다 크지는 않기에 <돈 룩 업>은 여전히 호평이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바보야 진짜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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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 끝나지 않을 운명적 사랑에 대한 믿음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뻔하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늘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플레이 리스트에는 왜 예전에 즐겨보던 작품들뿐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저 재미있게 보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게 해주었던 로맨틱 코미디만의 몽글몽글함이 이제는 장르적 쇠퇴를 맞이한 것일까?
할리우드 또한 시대별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1930년대 계급 차이를 극복하는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스크루 볼 코미디를 시작으로, 50~6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앞세운 관습적인 역할을 지나 90~2000년대 전문직 여성까지 세상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점도 있는데,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업적 경력에도 언제나 실수를 남발하고 꼭 위기 상황에 남자 주인공이 구해주며, 사회적 성공과 반대로 연애의 부재로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자 취향을 맞춰주는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관념을 내세우며 언제나 파트너의 행동에 맞춘 쿨한 매력을 겸비한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공평한 관계를 이상적으로 그려나갔으니 양산형 영화가 쏟아지는 흐름에 갈피를 잃고, 정치적 올바름이라 부르는 PC 요소들의 대두되며 더욱 괴리감이 생겼으리라.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치부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일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사랑과 운명을 믿고 싶다면 꼭 기억해 달라고 언급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뉴욕 타임스와 에스콰이어의 기자이자, 에디터로 활동했고 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며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노라 에프론이다. 인간의 소통에서 비롯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들어 가는 두 사람의 운명적 이끌림을 통해 사랑의 힘을 전하며 관객의 감정적 동조를 일으킨다. 시대가 흐르며 여타 장르들과의 혼재를 통해 다양한 변주로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는 로맨스가 유행되었지만, 그때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판타지에서 만족감과 감동을 안긴다. 어쩌면 남녀 관계와 사랑에 대해 가벼워진 사회 분위기에 운명은 고리타분한 올드 스타일일지도 모르지만, 달콤하면서도 녹진한 로맨스 코미디를 만나보고 싶다면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 즐거운 무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참 낭만적인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이끌 수 있다는 평범한 삶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점에 대해 노라 에프론이 남긴 한마디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정확하게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지만, 우스갯소리를 덧붙여 정작 본인의 카피는 언제쯤 나올지 몰랐던 것 같다. 대표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들 대부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경험할 남녀의 만남에서 다가오는 설렘을 다루며 빠져들 수밖에 없는 멜로/로맨스를 선보였다. 특히, 말장난 섞인 가벼운 하위 장르로 여겨졌던 로맨틱 코미디에서 알면서도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을 통한 하나의 형식적 법칙으로 정립하며 시대를 대변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파워우먼으로 꼽히게 된다.
대체로 뻔하고 명확한 형태로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과정에도 오히려 관객이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로 전환시키고, 밀고 당기는 연애의 매력을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통해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표현한다. 이 같은 전개는 고전 로맨스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과도 같은 맥락을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비틀며 시대상을 반영한 노라 에프론식 로맨틱 코미디로 거듭난다. 운명에 대한 믿음을 유쾌하면서도 절절한 고백으로 이어가며 아직도 그녀의 작품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도 될 근사한 낭만으로 가득 찬 사랑의 기억을 머물게 만든다. 현실에 존재할지는 미지수일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그녀를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추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당연한 이유일 것이다.
①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년 발표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대화들이 즐비한 고전적이고 익숙한 스타일인 동시에 노라 에프론이라 각본가로서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정립한 첫 히트작이다. 두 사람이 이어지기까지 12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고, 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마치 ‘제2의 연인’ 속 결혼 전을 보는 듯한 전개를 보인다. 1977년 봄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졸업과 함께 직장이 있는 뉴욕으로 우연히 동행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라는 결론이 날 수 없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고 서로를 별종이라 칭하며 헤어진다. 몇 년 뒤, 각자의 이별과 이혼을 통보받은 시기에 운명처럼 재회하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은 늘 해리와 샐리 주변을 맴돌았고, 그저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라는 선을 긋고 다가가는데, 두려움을 느낀다. 스킨쉽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첨예하고 장황한 설명은 지칠 법도 한데, 결국 헤어지기 싫다는 애증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보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으로 즐거움을 준다.
재치 있는 각본과 별개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로맨스는 아니지만,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의 따뜻하고 포근한 케미스트리는 설렘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견고히 하고, 사소한 단점 하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성장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오랜 친구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연인이 된다는 뻔한 전개와 뻔한 결말에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아는 그 평범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가 5년 공백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노부부(연기자들) 이야기들이 들어간 부분은 이런 삶의 진리를 전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 처음 만났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짧지도 길지도 않게 말해주며 각자의 사연들을 통해 해리와 샐리의 이야기에 진정성 있는 현실을 입힌다. 마치 해리와 샐리에게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인생의 평범함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노라 에프론은 보편적인 삶 속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들과 운명적인 상황들로 극적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관객에게 영화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카츠 델리’ 식당에서 맥 라이언의 ‘가짜 오르가슴’이라는 잊히지 않을 명장면은 이제 노장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당시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스탠 바이 미’로 명장 반열에 오른 로브 라이너의 창의적인 연출력과 ‘아리조나 유괴사건’, ‘빅’ 등의 촬영 감독을 거쳐 ‘아담스 패밀리’와 ‘맨 인 블랙’ 등 독특한 세계관을 펼친 베리 소넨필드가 의기투합해 빛났던 재능꾼들의 젊은 시절이리라 생각된다.
② 1993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뒤 1992년 ‘행복찾기’로 감독까지 데뷔한 그녀는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자신을 각인시킨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를 발표한다. 극 중 여주인공 애니가 매일 밤 보며 대사까지 외우는 1957년 ‘러브 어페어’에서 영감을 받아 쓴 각본을 바탕으로,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을 믿으시나요?’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풀어헤친다. 이후 ‘유브 갓 메일’에서도 빛나지만, 남녀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에 대한 설정에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감성을 품고 있다. 지금은 앱으로 간소화까지 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 수천 마일이 떨어진 대륙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적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실의 빠져있는 아버지 샘을 위로하려는 아들 조나의 발칙한 사연으로 시작된 운명의 장난은 매일 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진심이 담긴 그의 행복한 추억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애니의 마음을 강타해 공감 어린 눈물을 흘리게 하며 결혼을 앞둔 약혼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운명이라 여겨지는 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이별과 상처가 되는 순간이 교차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아도 이상하지 않지만, 해리와 샐리가 서로에 대해 고민한 많은 시간만큼 여기에서도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는 세 번의 장면들로 에프론은 운명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 같은 장치는 마지막 엠파이어 빌딩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으로 감독의 확신에 찬 답변으로 보인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바라보는 방식은 실제 마주하지 않기에 오롯이 배우들이 홀로 표현하는 감정선에 집중한 채 과거 50~60년대 로맨스 드라마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간접적인 소통으로 인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애틋함을 더한다. 라디오라는 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사연을 주고받고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느리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낭만적이었던 과거의 향수들이 불현듯 찾아온 운명이 보내는 신호를 믿고 싶은 마음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운명의 사랑에 대한 답변을 나타내는 듯하다. 1990년 ‘볼케이노’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을 보고 캐스팅한 것이겠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의 확신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연기는 마법과 같은 사랑을 향한 90년대를 관통하는 낭만을 짙게 한다. 셀린 디온과 클리브 그리핀이 듀엣으로 부른 ‘When I Fall In Love’, 태미 와이넷의 ‘Stand By Your Man’ 또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감독의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감성 한 스푼을 더해준다.
③ 1998년 <유브 갓 메일>
전작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애틋함에 안타까웠던 것인지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 컷에 담아 1998년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로 찾아온다. 지금 시대에 유행하는 독립서점처럼 보이는 길모퉁이 서점과 웹서핑 초기 시절의 이메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사랑스러운 상황들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문학과 뉴욕을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진 뉴요커 조와 캐슬린이 우연히 채팅룸에서 만나 친분을 쌓지만, 현실에서는 앙숙인 대형 체인 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과 길모퉁이 서점의 사장으로 빚어지는 갈등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담는다. 동생 델리아와 함께 집필한 이번 작품에서 자매의 문학적 소양 차이를 두 캐릭터에 녹여낸 듯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조지 버나드 쇼의 ‘캠벨 여사와의 서신 교환’, 영화 대부 등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언급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향과 성격임을 남녀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작지만 예쁜 서점을 지키려는 감성적인 캐슬린과 따뜻한 마음에도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차갑게 비치는 조의 설정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쫄깃한 밀당을 더욱 마음 졸이게 한다.
익명에 숨긴 채 서로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행동과 매번 울리는 ‘You've Got Mail!’의 알림은 그들이 이미 서로를 알고 미워하지만 깨닫지 못했다는 상황을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결말에 이르러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전환된다. 서로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들이 쌓여 그들이 마주한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감독의 운명론적 이야기는 컴퓨터를 켰을 때 설렘과 즐거움을 주었던 ‘You've Got Mail’ 알림음과 ‘당신이길 바랐어요’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다시 한번 감수성을 폭발시킨다. 소소한 일상, 누구나 해보는 고민들, 사람들 간의 따뜻한 대화들이 담긴 섬세한 묘사들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통한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여겨질지 모르는 지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중간에 놓인 감독만의 감성을 품는다. 늦게 데뷔해 단숨에 최전성기에 오른 감독으로서 뉴욕을 향한 자신의 진심 어린 사랑을 가장 뉴욕다운 풍경으로 담아낸 실력,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더할 나위 없는 호흡, 꿈같은 사랑이 전하는 특유의 안락함은 이 작품을 최고는 아니더라도 명작으로 기억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운명과 뉴욕을 사랑한 뉴요커
우리가 사랑한 노라 에프론의 필모그래피에는 공통적으로 뉴욕이 배경에 꼭 들어간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로 운명을 믿는 마음을 담아낸다. 조금 지나간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일명 ‘자만추’라는 정해진 소개팅이나 맞선이 아닌 남녀 주인공 모두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연애를 추구한다. 지고지순한 순애보 끝에 다다른 일방적인 구애가 아닌 N, S로 분리된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을 말한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서도 일어날 수 있는 남녀의 스파크를 캐치해 ‘저럴 수도 있겠다’라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믿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운명을 믿고 무작정 기다리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과 스스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내세우는 또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시나리오 데뷔작 ‘실크우드’에서는 진실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노조 대표를, ‘제2의 연인’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상처를 빗대어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커리어 우먼을, 첫 연출 데뷔작 ‘행복찾기’(1992)에서는 판타지 속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을 기다리던 공주가 아닌 세상과 타협하기보단 자신에 대한 믿음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으로 인해 변화되는 상황과 이에 얽힌 운명적 상대를 그린다. 보수적인 90년대의 분위기에서 억압되었던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행동의 제약을 깨부수며 신여성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녀가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맥 라이언의 등장이다. 초창기 두 작품의 시나리오로 연달아 만난 메릴 스트립도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2의 연인’에서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앞서 언급한 ‘행복찾기’에서 싱글맘 코미디언을 연기한 줄리 카브너 역시 큰 전환점을 만들지만, 노라 에프론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연달아 흥행한 세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아 완벽한 페르소나로 거듭나며 배우와 감독으로서 두 사람 모두가 인생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시절 맥 라이언은 지금도 정석이라 불리는 숏단발컷을 유행시켰고 헐렁한 오버사이즈의 놈코어 룩으로 편안함과 러블리함, 커리어 우먼의 세련미를 동시에 추구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오죽했으면 ‘맥 라이언이 노라 에프론을 만났을 때’라는 제목 패러디가 생겼을 만큼 그저 귀엽기만 했던 한 여배우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만들며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열었다. 지금의 애인이 진정한 사랑일까라는 고민을 늘 품는 주인공에 어울리는 왠지 모를 나약함과 몽상적인 상상이 어색하지 않은 귀여움은 많은 이들을 판타지에만 존재할 것 같은 운명으로 초대했고 감독이 원하는 사랑은 인생이고, 인생은 판타지라는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고전 로맨스에 대한 적절하고 탁월한 활용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카사블랑카’와 우디 앨런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를 효과적으로 배치했으며, ‘유브 갓 메일’에서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 리메이크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일반적인 로맨스 장르에서 보이는 허영심에 비친 비현실적인 요소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짜이지만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첫 작품 ‘실크우드’에서는 기자였던 과거 시절처럼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들었고, 이혼 문제를 다룬 ‘제2의 연인’에서는 사회적인 시선과 문제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토로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통분모를 찾아내 프레임을 씌우고 언제나 자신을 반영시킨 캐릭터를 통해 희망적 판타지의 결론을 통해 웃음과 설렘을 선사한 것이다. 남녀의 성격묘사에서 서로를 공격해 무너뜨리지 않는 선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내는 묘미는 이러한 경험적 요인들이 작용해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부분을 파고든다. 그리고 감독에 이르러 공통적으로 내세운 운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주인공의 만남에 마법 같은 느낌을 부여해 대중을 만족시키는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클래식 할리우드의 느낌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별은 영원히 반짝인다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는 지났어도 한참 지났을 요즘이다. 주인공 커플들이 재미를 선사하려고 온갖 멜랑꼴리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로맨틱 홀리데이’, ‘500일의 썸머’, ‘비포 선라이즈’, ‘노트북’,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정확히 로맨틱 코미디로 한정 지었을 때 2000년대 중반 이후 큰 성과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이 다시 불길을 살리려 하지만, 지금 영화 업계에서 슈퍼히어로물이나 액션 영화 등 속편, 스핀오프, 리부트라는 명명하에 흥행하면 좋다는 식으로 찍어내는 제작사의 방식도 현실적 어려움을 더한다. 궁극적으로 볼만한 작품이 아니면 극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삭막해진 현실과 DM으로 고백과 이별을 전하는 세대들에게 있어 과거 로맨틱하고 희망적이며 사랑스러운 운명의 만남으로 관객의 애간장을 태우며 감정을 이입시켰던 전형적인 로맨스 방식은 이제 꿈에나 나올 법한 일이라 자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이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날로그 감성과 레트로라는 문화를 이끌며 다양해진 OTT 서비스를 통해 고전 멜로/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를 접하며 변화하고 있다. 이 점에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걸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 그러고. 난 믿고 있어’라는 명대사처럼 시대가 변하며 뻔한 로맨스라 여겨지는 지금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보는 영화 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고 저장되며 로맨스 하면 TOP 10에 꼽히는 건 희망적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로맨스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첫사랑처럼 다가온 운명의 두근거림과 가슴 뛰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타고난 이야기꾼의 감성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와 세대의 취향은 시시각각 바뀌어 갈지 몰라도 최소한 낭만은 계속 이어지고, 여전히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또 다른 노라 에프론의 등장을 희망하며 사라지지 않을 로맨틱 코미디의 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언제고 다시 시작될지 모를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칼럼식으로 써봤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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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만에 넷플릭스 전세계 1위 한국 드라마 지옥 정주행 하기(해석)
넷플릭스 오리지날 한국 드라마 지옥 1~3 편의 내용입니다.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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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마일 2> 1차 예고편
곧 다시 웃게 될 거야... 올가을, 다시 공포가 전염된다 [스마일 2] 10월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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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경고> 티저 예고편
친구의 부탁으로 조카를 봐주기로 한 아이작.
어마어마한 보수에 수락했지만 기묘한 조건이 붙는다
#1. 이동을 제한하는 사슬 조끼를 입을 것
#2. 조카의 방에 들어가지 말 것
#3. 허락 없이 집을 떠나지 말 것
외딴섬에 위치한 미로 같은 집과 석궁을 들고 다니는 조카, 섬뜩한 토끼 인형까지…
이곳에서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