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1-22 15:42:46
옷 잘 입는 영화감독 모음 ZIP
웨스 앤더슨, 소피아 코폴라, 타이카 와이티티, 이원석 감독 등
옷 잘 입는 영화감독들은 영화 때깔도 다르더라구요. 올드머니룩의 원조 소피아 코폴라 감독부터 이미 너무도 유명한 웨스앤더슨 감독까지 남다른 센스로 영화는 물론 패션까지 섭렵한 영화감독들의 작품 같이 알아보아
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매혹당한 사람들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토르: 러브 앤 썬더
졸라
스파이
라스트 크리스마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애스터 로이드 시티
패스트 라이브즈
남자 사용설명서
킬링 로맨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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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깊은 늪으로 빠져버린 마블
자신에게 엄청난 힘이 생기면 무엇을 하게 될까. 그런 힘이 있다면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주변 사람을 돕는다. 일단 그렇게 만들어진 하고 싶은 일 리스트는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이나 개인이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자기 자신이 판단해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대부분을 스스로 혼자 결정하고 판단하게 되면서 거기에는 조금씩 오류와 오판이 생기기 시작한다. 절대적인 힘이 내 손안에 있더라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마블의 히어로인 <캡틴 마블>은 의도치 않게 엄청난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 캐롤(브리 라슨)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캡틴 마블>에서의 캐롤은 가족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러 상실감과 조직에 대한 배신감으로 힘들어하다 우연히 이 에너지를 얻었다. 거의 무적에 가까운 힘으로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복수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악당들과 대결을 벌인다. 그리고 우주로 나아가 우주에서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을 위해 힘을 쓰기 시작한다.
과거의 잘못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캡틴 마블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 우주의 여러 행성과 생명체들을 돕게 된 캡틴 마블의 행위는 모두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하는 캡틴 마블의 모습이 후속편인 <더 마블스>에 담겼다. 이번 영화에선 크리족의 리더 다르-벤(자웨 애쉬튼)이 메인 빌런으로 등장한다. 과거 캡틴 마블은 AI의 지배를 받던 크리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AI를 파괴했었다. 하지만 크리족에게 캡틴 마블은 자신이 모시던 신과 같은 존재를 완전히 없애버린 파괴자와 같은 존재로 느낀다. 그러니까 캡틴 마블의 선한 의도가 완전한 악의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크리족이 원하는 복수의 방향은 캡틴 마블과 가까운 행성이나 존재들이 있는 곳을 향한다. 그 작업을 위해 우주 여러 곳에 타임 포탈을 만들게 되는데 그 부작용으로 캡틴 마블/캐럴과 미즈 마블/카말라 칸(이만 벨라니) 그리고 모니카 램보(타요나 패리스)는 자신들의 능력을 쓸 때마다 위치가 바뀌게 된다.
<더 마블스>는 이렇게 세 명의 히어로를 서로 연결시켜 일종의 제약을 만든다. 이것은 거의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캡틴 마블에게 큰 장애물을 줌으로써 세 명의 팀업으로 상황을 이겨내는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실제로 이야기의 초반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위치가 바뀌면서 벌어지는 액션장면은 꽤 신선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상황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정신없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이것 자체가 각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흥미롭게 느껴진다. 또한 새로운 히어로인 미즈 마블의 능력과 모니카의 능력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초반 액션 장면이 지나고 중후반부에 세 명의 히어로가 직접 만나서 벌이는 액션과 상황들은 대부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위치가 바뀌면서 잠깐의 긴장감을 만들지만 가장 강한 능력을 가진 캡틴 마블이 종횡무진 해결하면서 세 명의 힘이 균형 있게 발휘되지 못한다. 특히나 영화의 빌런인 다르-벤은 마블 시리즈 중에서 가장 약하고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그는 가지고 있는 팔찌 뱅글로 캡틴 마블의 힘을 흡수하여 복수를 감행하려 하지만 자신의 진짜 힘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화면에서 사라지고 만다.
새로운 히어로들의 등장과 신선한 초반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히어로들의 존재감도 차이가 크다. 캡틴 마블은 여러 마블영화에 등장했고, 독자적인 솔로 영화로 소개가 되었다. 하지만 미즈 마블인 카말라 칸이나, 모니카 램보는 영화만 보던 마블 팬들에게는 생소한 캐릭터다. 카말라 칸은 디즈니+의 시리즈 <미즈 마블>에서 소개되었고 모니카 램보는 디즈니+의 시리즈 <완다비전>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그러니까 디즈니+를 구독하지 않았던 관객들에게는 전혀 알지 못하는 캐릭터들이 이야기 속에 등장했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응원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 내내 이들의 존재감은 캡틴 마블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캡틴 마블이 과거에 했던 실수를 만회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끌려들어 온 미즈 마블과 모니카의 모습은 캡틴 마블의 심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큰 이유 없이 더 마블스라는 팀을 구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캡틴 마블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던 다르-벤의 악행에 왜 팀이 필요한지를 영화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캡틴 마블의 광팬은 미즈 마블과 가족과 같은 존재인 모니카의 등장은 영화에 진짜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캡틴 마블의 감정적 고뇌를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한 양념처럼 쓰였다.
다르-벤이 자신의 행성에 물이 필요하게 되자, 물을 빼앗아가기 위해 방문하는 행성이 있다. 바로 얀 왕자(박서준)가 다스리고 있는 행성이다. 이 행성에서 캡틴 마블은 얀 왕자와 혼인 서약을 맺은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별도의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노래로 대화하는 이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은 영화 전체의 서사에서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한국 배우인 박서준의 존재감도 크게 부각되지 못한다.
<더 마블스>이후 마블 영화 시리즈는 반등할 수 있을까
<더 마블스>는 마블 페이즈 5의 세 번째 작품이다. 신인 감독인 니아 다코스타에게 연출을 맡겨 반등을 하려 했지만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 마니아>의 실패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의 흥행으로 만회되는 듯했지만 이번 <더 마블스>에서 반등하지 못한 채 관객에게 실망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과거 마블 영화하면 느껴졌던 기대감이나 만족감이 많이 사라진 이번 영화 이후 마블은 현재 고수하고 있는 시리즈와의 연계성과 매력 없는 새로운 캐릭터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캡틴 마블은 영화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아주 간단하게 힘을 들여 크리족의 행성에 없어진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이번 영화 속에서 캡틴 마블의 심적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캡틴 마블이라는 이름아래서 캐럴 댄버스라는 인물은 어쨌든 심적 성장과 삶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엔 그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미즈 마블과 모니카가 옆에서 심적 안정감을 주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도 캡틴 마블은 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로서 마블 영화에 계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비록 영화와 이야기의 완성도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언젠가 다시 강력한 히어로로서 마블 영화 시리즈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여러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좋은 이야기와 완성도를 가진 마블 영화 속의 캡틴 마블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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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뢰한>, 아니면서 무뢰한 척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씨발년아."
자신을 칼로 찌른 여자가 있다. 그런데도 그 칼을 꽂힌 채로 그는 그녀를 위한 새해 덕담을 내뱉는다. 이 영화의 느낌은 마지막 대사 하나로도 충분하다. 아니다. 포스터처럼 어스름한 새벽녘의 피곤한 두 얼굴로도 충분하다. 왜 이 영화를 다시금 찾았냐고 묻는다면 그런 날이라서 그랬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담배 연기를 맡고 싶은 날이라서. 다들 그러다 담배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담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좋아하는 거니까. 담배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게 보고 싶은 날이었다. 저 대사 같은 말을 해주고픈 사람이 떠올라서일 수도 있다. 처음 봤을 땐 영화의 결말이 정말 '영화'같다고 생각했었다. 뭉근하게 피어오른 담배연기에 자욱하게 빠져있다가 저 결말을 보고선 갑자기 담뱃재가 왈칵 쏟아져내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먼 얘기도 아니더라. 정말 미운데, 그래도 정이 몽당 떨어질 만큼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온갖 상처를 받고도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 사람. 기분이 무척이나 나쁘지만 가끔 궁금은 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내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늦게 깨달은 탓이리라.
앞서 드라마틱한 마지막 애증의 한 마디를 남긴 이는 어딘가 비뚤어진 형사 정재곤이다. 정의구현은 무슨,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법의 테두리를 왔다 갔다 한다. 그는 형사가 두려워해야 할 건 범죄자와 구분이 되지 않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뿐이지, 그의 수단과 방법은 범죄자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 헛헛해 보이는 살쾡이나 표범 같다. 그는 가장 빠른 루트로 가기 위해서라면 가장 잔인해질 수도 있다. 누군가의 약점을 빠른 시간 내에 파고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그가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이 돼지발정제를 써서 용의자의 애인에게 자백을 얻어 사건을 해결한 것일까. 그러나 그는 그걸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씁쓸한 표정으로 적당히 찌들고 풀어진 눈으로, 삐딱한 걸음걸이로 그는 그의 앞에 놓인 모든 하루를 걷고 있다.
김혜경은 열쇠 7개 있는 집에 들어갈 수도 있었던 단란주점 사장이다. 남자 때문에 인생 종친 케이스라고 모두가 인정. 회장님 세컨드로 잘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 부하와 엮이는 바람에 인생이 피곤해졌다. 그가 재곤을 만나게 된 건 그녀의 애인이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남자란 어떤 존재일까. 권력과 자리에 따라 자신을 유흥거리나 정복지쯤으로 여기는 한량이나 게임중독자일까. 확실히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을 잘 쓸 줄도 안다. 그러나 늘 여유로운 웃음을 안고 모두를 대하는 그녀라도 실상은 그녀만큼 외롭고 허망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기껏 마음을 붙였던 애인은 이제 도망자가 되어 자신을 돈줄로 써먹고 있다. 돈과 남자는 그녀에게 등짝을 쳐주고 싶은 원수가 아닐까. 남자에게 돈을 벌어 남자에게 돈을 쓴다. 게다가 지금은 범죄자의 애인이라니. 그냥 다 버리고 떠나오기엔 그것들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발목을 족쇄에 가둔다. 흘러넘치는 건 술이요, 오도독거리는 건 얼음뿐이라. 까무룩 술이 취해 아침에 잠이 들고 밤에 펼쳐지는 아득바득한 인생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무뢰한이다. 신기한 건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이 가장 무뢰한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재곤과 혜경을 묶어두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더 피도 눈물도 없는 무뢰한에 가깝다.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의 공통점이 있다면 빈틈 있고 어딘가 짠하다는 것. 무뢰한 비스무리 사는 중인데 고민이 많다는 것. 인정사정 볼 것 없을 것 같은 재곤은 사실 자존심과 연줄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과 직업의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돈이나 받아먹는 부패한 형사가 되고 싶지 않아 성질을 부렸더니 고작 그의 스폰서가 보낸 금액은 정확히 48만원. 얼척이 없다. 범인을 잡을 때 몸 성치 않게 끝내 달라면서 형사 같지 않은 요구를 하는 건 선배 형사다. 그의 몰골이 짠하다. 그는 선배님의 '내 사람이 맞냐'는 질문에 토해내듯 대답을 했고, 적은 액수의 뇌물을 확인하고 돌려주기 전 허탈한 듯 히죽거린다. 돼지발정제를 쓸 수도 있는 무자비한 형사로서의 그의 모습은 어떠면 그가 속한 교양 있는 무뢰한들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혜경 역시 보다 보면 저렇게 짠할 수가 없다. 뭐하고 살았냐고 물으면 빚 받으러 다니고, 빚 갚으러 다녔단다. 인생의 뭔 빚이 그렇게나 많은지 모르겠다. 범죄자 애인은 몇 천이 누구 집 애 이름 같나 보다. 그의 소식에 혼자 마음 졸이고 그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숨어 지켜보는 재곤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경이 궁여지책으로 외상금을 받으려 돌아다니는 모습은 당당하고 가냘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당함으로 무장했던 그녀는 웃으면서 돈을 받아내다가 결국은 술집 외상 때문에 인생 종 치고 싶냐며 사정하면서도 나 김혜경이라면서 힘들게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진 듯한 것이 마음 아픈 사람.
둘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진심인 듯 아닌 듯 서로를 속이고 있다. 그것이 무뢰한들의 세상에 걸맞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믿으면, 속으면 바보같이 당하는 세상이니까.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상대의 모습에 흔들리고 만다. 의심 가득했던 그녀는 재곤을 완전히 믿지 못해도 그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하고, 사건을 위해서 혜경을 이용하려 했던 재곤은 혜경이 다칠까 배려해주고도 아무 일도 모르는 척한다.
그들의 진심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서로를 가장 속여야 하는 순간에 드러난다. 진심과 거짓의 경계에서 그들은 사랑 비스무리한 걸 하고 있다. 혜경이 돈을 위해 재곤(그녀는 그를 '영준'으로 알고 있지만)을 유혹해야 하고, 재곤은 범인 검거를 위해 그 유혹을 알고 짐짓 모른 척 받아들이는 순간. 재곤이 그녀가 자신의 약점이라고 말하고, 그녀가 아끼던 목걸이를 다시 전당포에서 찾아와 내려두는 순간. 지금 애인이고 뭐고 버리고 자신과 살면 안 되냐는 재곤의 말에 진심이냐, 고 물으며 흔들리던 혜경의 눈. 에이, 그걸 믿냐 하며 어설프게 둘러대는 그의 말에 끝내 숨기지 못하는 그녀의 씁쓸한 눈빛과 미소.
혜경이 어처구니가 없는 건 결국 그렇게 자신을 흔들어 놓았던 재곤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자신이 알던 '이영준'이 아니라잖나. 자신의 애인을 한 방의 총알로 날려 보낸 것보다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에 '나 김혜경이야'라는 말처럼 지켜오던 자존심이 와르르 무참히 쓸모 없어져 버려서. 아무것도 믿지 말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번에는, 그는, 그래도 자신에게만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던 자신에게 분노한 것이리라. 그녀의 집주소며 모든 정보를 알면서 정작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제대로 안 것이 없다는 것에, 겪을 만큼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이토록 무방비했던 자신이 비참하고 자존심 상해서. 충격보다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떠는 것이리라. 그 총알로 날렸던 건 애인의 심장만은 아니겠지.
재곤은 사과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찾아와 나는 형사고,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녀를 상처주려 했던 게 아니라고 할 뿐이다. 재수 없다. 술을 팔 때보다 더 구차하게 마약을 놔주며 살고 있는 혜경을 찾아가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녀를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면서도, 처량 맞게 집 앞에서 하루 종일 비나 맞고 있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혜경에게 필요한 건 그 한마디일 텐데. 미안하다고, 다시 곁에 있어달라고. 한번 안아주면 될 텐데.
세상이, 영준이, 아니 영준이라고 믿었던 재곤이 그녀에게 무뢰한이 되라고 가르쳤으니 그녀는 그녀대로 '무뢰하게' 그를 꼭 안아 칼로 찌르고 만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다. 그녀에겐 진짜 이름이 뭐 건간 그는 여전히 그의 애인 준길의 이상한 감방 친구로 그녀 눈 앞에 등장했던, 이영준이다. 그를 보고 싶었던 마음, 한번 꼭 안고 싶은 마음, 왜 비를 맞고 있냐며 묻고 싶은 마음이 한 켠.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나의 애인을 다리 하나 팔 하나 병신 만드는 것도 아니라 심장에 총알을 박아야만 했나. 나에게 했던 모든 말 그것도 거짓이었냐. 묻지 못한 그 야속함과 증오, 배신감이 한 켠. 그렇게 마음이 한 켠 한 켠 쌓인 뒤섞인 행동이다.
그러나 거기서 알 수 있다. 그렇게 무뢰한같이 칼을 찌르고 나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혜경의 모습에서. 애초에 그렇게 모진 사람이 못된다는 걸. 혜경은 무뢰한이 아니며, 될 수도 없는 사람이란 걸. 재곤 역시 그 칼을 맞고도 유유히 경찰차도 보내고 꾸역꾸역 아파하며 길을 걸어 내려오는 걸 보면. 죗값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거 보면. 그 역시 무뢰한이 아니라는 걸. 차라리 아주 못돼 쳐 먹은 사람들이었으면 좋았을 걸. 무뢰한이 아닌 그들이 주변 사람처럼, 세상처럼 무뢰하게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영화는 대문짝만 하게 자신을 하드보일드 멜로라고 말한다. 세상이 녹록지 않다. 잘 믿어서도, 진심을 잘 들켜서도 안 되는 것이다. 형사인 재곤에게는 범죄자가 애인과 한바탕 나뒹굴고 있는 소리를 엿들으면서도 도시락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하는 것이고, 혜경에게는 한 때는 자기 발 밑 같았던 사람이,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자신을 은근슬쩍 더듬고 희롱해도 감정을 숨기고 웃음을 살짝 지어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 안에 사랑이란 게, 웃음이란 게 있지만 한 군데씩 비틀려 있다. 뾰족한 송곳 같은 사랑, 우스꽝스러운 웃음 같은 것. 그와 그녀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을 꼽자면 언제일까. 그건 그녀가 그가 구구절절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따졌을 때가 아닐까. 어설픈 그의 거짓말에 그녀가 날카롭게 파고들었을 때, 그러고도 그가 예리하네, 하면서 뻔뻔하게 웃어넘겼을 때. 그럼에도 서로가 밉지 않았던 순간. 밤도 아침도 아닌 그 어스름한 새벽에 무뢰한이 아닌 이들의 '무뢰한'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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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 않는 속편을 기다리며
다들 속편이 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영화가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그중에서도 요청이 쇄도했던 <콘스탄틴>의 속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 많은 팬을 기쁘게 했는데요.
<콘스탄틴>처럼 다른 영화들도 하루빨리 속편이 제작되기를 바라며 콘텐츠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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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24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 Ⅱ>가 주말 관객 수 31만 명, 누적 관객 수 44만 명을 기록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약 4,300억 원의 높은 제작비 대비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 편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제작된 <글래디에이터 Ⅱ>가 과연 기존 시리즈와 같은 영광을 누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북미에서는 오는 22일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지난 6일에 개봉했던 <청설>이 누적 관객 수 52만 명을 돌파하며 여전히 2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배우 박신양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던 <사흘>은 누적 관객 수 15만 명으로 3위를 기록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애초 '오컬트' 영화로 홍보가 된 것과 달리, '부성애'에 초점을 맞추어진 내용이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에서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강세입니다. 국내에서는 누적 관객 수 5만 명에 그쳤던 <레드 원>이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레드 원>은 드웨인 존슨을 비롯해 크리스 에반스, 루시 리우, J.K. 시몬스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총출동하며 제작비가 2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영화입니다. 북미 프리뷰 당시 250만 달러라는 저조한 수익을 올리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리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현재 누적 수익 약 3,400만 달러를 기록하며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1, 2위를 차지했던 <베놈: 라스트 댄스>와 Ever>은 한 계단씩 내려와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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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흡연하는 페미니스트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영화
8★/10★(신수원 감독 작품, 2021년, 108분, 한국.)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역사를 기록하는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의 계보를 기록한다면 어떤 영화가 포함될까?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시네마 천국〉부터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나 소외되어온 흑인의 기여를 영화사에 기입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최근의 〈놉〉까지 다양한 영화가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 〈오마주〉가 있다. 〈오마주〉는 종종 ‘홍일점’ 대접을 받았으나 대체로 빛 좋은 개살구로 취급되었던 여성 영화인에게 바치는 헌사다. 여전히 영화계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시대 여성 영화인들을 향한 연대의 마음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중년의 여성 영화감독 지완이다. 지완은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나 흥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집에서는 ‘꿈꾸는 여자랑 살면 외로워진다’는 핀잔을 받거나 돈 되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지완이 여기서 별다른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족의 말이 지완에게 모욕이 아닌 일상이란 의미다.
그러던 지완에게 영상자료원에서 일 하나가 들어온다. 1960년대에 활동한 한국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인 홍재원 감독의 〈여판사〉* 상영회를 준비 중인데 필름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복원해달라는 의뢰였다. 〈여판사〉는 판사로 일했던 여성이 남편에게 독살당했다는 실제 사건에 모티프를 얻어 제작된 영화였다. 홍재원 감독은 결말을 바꾸어 주인공이 좋은 판사인 동시에 효부로도 인정받았다는 영화를 만들었다. ‘슈퍼우먼’을 강요하는 상상 속 세계에서나마 ‘단죄’ 당한 여성을 복권시켜준 것이다. 현실의 홍재원 감독은 혹시나 모를 불이익에 절친한 동료에게조차 자신에게 딸이 있음을 밝히지 않았을 정도로 고독하게 영화 작업을 이어갔지만 말이다.
지완은 어렵게 〈여판사〉의 대본을 구하고 성우와 후시녹음을 하며 영화의 사운드 공백을 채워나가는 등 복원 작업에 매진한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영화가 뚝뚝 끊긴다. 중간에 잘린 부분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검열 때문이다. 검열당한 장면이 대단히 파격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페미니스트 관객이라면, 홍재원 감독의 옛 여성 동료인 필름 기사가 복원해낸 이 장면에서 기품 있는 뒷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화면 속 주인공과 함께 흡연하고 싶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담배는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 된다.
〈여판사〉의 잊힌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지완은 홍재원 감독에게서 자신을 본다. 홍재원 감독 역시 여성이 소수자인 영화판에서 힘겹게 버티며 세 편의 영화를 찍었다. 힘들었지만 적게나마 자신의 곁을 지키는 동료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좋은 아내, 엄마이자 좋은 감독이어야 했다. 지완과 놀랍도록 닮은 데가 많다.
지완은 두렵다. 홍재원 감독을 향한 연대의 마음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공포가 샘솟는다. 홍재원 감독은 세 번째 영화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했다. 그 시절 그녀와 함께 영화를 작업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와 2020년대가 겹치기 시작한다. 지완은 세 번째 영화가 흥행에 처참히 실패했고, 오랜 세월을 함께 작업한 동료 여성 PD는 눈물 흘리며 그 영화를 끝으로 영화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지완은 남편‧아들과 다정하게 투닥거리지만 그들이 지완의 꿈을 응원해주지는 않는다. 자궁에 큰 혹이 생겨 자궁적출 수술을 받기도 한다.
영화계 여성 선배를 발견했다는 기쁨과 공포의 혼재 속에서 지완은 깨닫는다. 멈추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지완을 다잡는 건 지완 자신뿐만이 아니다. 〈여판사〉를 복원하며 가슴으로 깊게 공명한 홍재원 감독, 그리고 이제는 노쇠해진 그녀의 여성 동료도 지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자네는 끝까지 살아남아.” 지완에게 여러 여성의 삶과 꿈이 포개진다. 이제 지완은 혼자가 아니다. 끝내 히트작은 만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완은 영화를 계속함으로써 무언가가 변화했음을,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여성 선배들에게 빚진 것임을 기억하며 영화를 만들 것이다. 존경과 헌사로서의 ‘오마주’. 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그녀가 언젠가 후배 여성 영화인들에게 받을 것이기도 하다.
여성 영화의 계보와 여성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것이 〈오마주〉의 전부는 아니다. 〈오마주〉에는 어쨌든 무언가를 만들어놓는 것의 중요성도 담겼다. 지금은 아무도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하찮은’ 결과물이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판사〉가 그러했듯 성실하고 뜻있는 후배에게 발견되는 일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록을 남기는 일은 중요하다. 누군가는 그 시대를 다르게 살아냈음을 나 자신에게, 언젠가 만나게 될 이름 모를 후배에게 증언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벅차오를 정도로 감동적인 이 영화는 잊힌 창작자들에게,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창작자들에게 진한 위로와 연대의 계기로 다가갈 것이다.
*〈오마주〉가 참고한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는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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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 크라이스트> - ‘성경의 실수를 되짚는 이브의 광기’
안티 크라이스트 (Antichrist)
개봉일 : 2011.04.14 (한국 기준)
감독 : 라스 폰 트리에
출연 : 윌렘 대포, 샤를로뜨 갱스부르, 스톰 아체체 살스트롬
‘성경의 실수를 되짚는 이브의 광기’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올해의 가장 폭력적인 경험을 한 영화는 <사울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흐리게 처리되긴 했지만 충분히 폭력적이고 충격적이었던, 영화를 통해 경험한 그 시대의 한 조각이 내 마음을 흠씬 후려 팬 영화였다. 근데, <안티 크라이스트>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올해.. 아니 어쩌면 내 20대의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영화는 이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영화의 뜻과 장점들을 제외하고 온전히 ‘영혼에 입은 대미지’만 따진다면 <안티 크라이스트>가 1등이다.
지난여름이던가, 메가박스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전을 할 때, 이 감독님의 작품에 입문을 해볼까 고민했다. 그때는 ‘마니아층은 있으나 호불호가 극히 나뉘는 스타일의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과감하게 다른 기대작들을 먼저 감상하고, 감독전을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현명한 결정이었다 싶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다면 더 큰 대미지를 입고 울상으로 집에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미드 소마>를 보고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멘탈인데.. <안티 크라이스트>는 힘들었다. 유리 멘탈이신 분들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를 피해 가시라고 경고하고 싶다. 궁금하다고 막 볼만한 작품 색은 아닌듯하다.
음울함이 감도는 색들을 한계점 없이 풀어놓은 영화 <안티 크라이스트>는 제목처럼 반기독교적인 요소가 있는 영화다. “성경은 말도 안 돼!”라는 식의 반감을 표했다는 건 아니고,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성스러운 그 이야기에 눈치채지 못한 또 다른 힘이 있지 않았는지.. 결함이 있진 않은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담과 이브가 아니지만 두 사람이 갈등하는, 고통으로 가득 찬 장소의 이름은 ‘에덴동산’이다. 고통을 모두 정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그와 마녀가 되어버린 그녀는 에덴동산에서 각자 다른 방법으로 고통과 삶을 정의하려 한다. 이들은 실존에 의미에 맞서고 또 무너진다.
욕망으로 인해 시작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서서히 어두움에 눈을 뜨고 욕망의 시작점을 잘라내려 한다. 그는 그녀의 고통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하고 억제하기 위해 손에 더 강한 힘을 준다. 실존하는 고통, 욕망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 그리고 결국엔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끝을 맺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써 내려간 에덴동산의 이야기. 여전히 해석되지 않는 부분도, 상당히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언젠가.. 새로운 질문이 떠오르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한 번쯤은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안티 크라이스트 시놉시스
눈발이 아름답게 흩뿌려지고 있는 깊은 밤, 그와 그녀는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들의 어린 아들은 잠에서 깨어나 열린 창가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다 창밖으로 추락하고 만다. 아들을 잃은 그녀는 깊은 슬픔과 자책감으로 점점 병들어 가고 그는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에덴'으로 함께 떠난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현대판 아담과 이브의 애증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경악스러운 결말이 그들 앞에 펼쳐지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그와 그녀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눈다. 마치 성스러운 의식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흘러가고, 잠에서 깬 아이가 엄마 아빠의 눈에서 벗어나 집안을 누빈다. 책상을 지키고 있던 PAIN, GRIEF, DESPAIR. 고통, 슬픔, 절망의 이름을 가진 3개의 장식품을 손으로 밀어낸 아이는 창밖으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비탄에 잠긴다. 그는 슬픔과 비탄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을 낚아채 모두 괜찮아질 것이라 포장한다. 슬퍼하는 그녀를 비추던 카메라는 그가 슬픔의 무력함을 강요할 때마다 그의 힘에 강제로 이끌리듯 시점을 바꾼다. 심리 치료사인 그는 슬픔에 빠진 그녀를 치료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가족은 치료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며 그의 치료를 은근히 거부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두려운 게 뭔지 모르겠어.”
슬픔에 빠져있는 그녀에게 그가 묻는다. 무엇이 가장 두렵냐고. 쉽게 특정 대상을 떠올리지 못하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 머물며 논문을 준비했던 ‘에덴동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꼽는다. 그는 두려움을 깨 부셔야만 그녀의 슬픔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에덴동산으로 데려간다.
그녀는 에덴동산에 머물며 논문의 주제인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마녀사냥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여자의 본성도 악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녀는 그렇게 에덴동산에서 악에 물들고 미쳐간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에 손을 댔던 이브처럼.
그녀는 고통, 슬픔, 절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들이 오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의 죽음과 동시에 고통, 슬픔, 절망을 모두 떠안게 된 그녀는 점점 병들어가고 다음으로 다가올 죽음의 제물을 고르듯 그를 속박한다. 그녀는 그가 숨어들어간 나무뿌리를 미친 듯 파헤치고 발목에 무거운 돌을 단다. 그리고 아이를 죽게 만들고 고통, 슬픔, 절망을 불러온 욕망의 시작점(성기)을 짓이기고 잘라내며 광기를 표출한다.
“혼돈이 지배하리라.”
고통, 슬픔, 절망.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쏟아낸 강요와 폭력. 에덴동산에 머물던 그와 그녀는 광기와 폭력에 휘청이다 결국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든 것이 파멸한다. 그는 결국 그녀를 목졸라 죽이고 마녀를 처리하듯 화형을 진행한다. 슬픔으로 인해 먼저 미쳐가기 시작한 건 그녀였지만 슬픔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는 그녀에게 슬픔으로부터의 도주를 강요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대로 그녀의 운명을 정리한다.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무신론자)으로서 성경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여전히 배우고 따를만한 점들이 많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성경을 근거로 행해지는 폭력들도 있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폭력을 정당화했던 십자군 전쟁과 성경 구절의 예언서를 기준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죄 없는 여성들을 화형 시켰던 마녀사냥.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여성 억압과 동성애 혐오 등.. 예수에 대한 그릇되고 광적인 믿음으로부터 발생한 폭력들을 언제까지나 부정할 수만은 없다.
<안티 크라이스트>는 에덴동산에 떨어진 그와 그녀를 통해 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마녀사냥이라는 여성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악한 감정을 품은 그녀를 마녀처럼 화형 한 그와 에덴동산으로 모여드는 수많은 얼굴 없는 여성들, 나무뿌리 밑에 깔려있는 수많은 손들을 보며 완벽할 것만 같았던 성경의 오류를, 그로 인한 죽음을 한 번 더 되짚어본다.
우울하고 기운 빠지는 색채와 그녀의 광기에 휩쓸려 무릎을 꿇고 있다가 마지막 불꽃이 타오를 때가 돼서야 희미하게 정신이 들었다. 찾아보니 <안티크라이스트>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작품 중 그나마 약한 축(?)에 속한다는데.. 대체 약하지 않은 작품은 어느 정도일지 기대되고 두렵다. 솔직히 연달아 볼 만한 작품들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충격이라..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멘탈이 짱짱하게 회복되었을 때 그의 다른 작품에 슬쩍 발을 담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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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나기] 끝장리뷰 | 우나기(뱀장어), UFO 상징 | 섹스에 대한 탐구 | 결말해석 | 두 명의 엄마
[우나기](1997)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섹스란 무엇인가
Chapter 2 뱀장어(우나기)와 UFO
00:00 우나기 재개봉
01:12 섹스란?
05:52 엄마 두 명
07:19 우나기 상징
10:23 UFO 상징
11:41 별점 및 한 줄 평
12:01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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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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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2월 4일, 운명적인 배신과 비극적인 선택의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