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05-01 00:43:14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두 개성 있었던 일본 영화
<우연과 상상> 영화 시사회 후기
3가지 에피소드를 담은 일본 영화!<우연과 상상>
하니엘의 영화 미리 알기
스구미와 메이코는 절친이다. 메이코는 스구미에게 소개받은 남자에 대해 어떻냐고 물어본다. 카즈야키라는 훈훈한 남자이며 첫 만남에 성관계를 하려고 했는데 쉽게 돼질 않았다. 메이코는 카즈야키와 스구미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 물어본다. 카즈야키라는 남자는 전 여자친구가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스구미는 음담패설을 한다. 서로의 이야기가 코드가 통했는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이야기가 계속된다. 스구미가 집에 도착해 내리고 난 후에 메이코는 자신이 가는 목적지와 다른 원래 있었던 회사로 돌아가는데 그곳에는 회사의 사장이자 스구미의 남자인 카즈야키가 있었고 메이코는 계속해서 카즈야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데...
나오는 성적 매력을 가진 남자들에게 쉽게 몸을 내주는 여자이다. 그런 그녀에게 섹스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나오와 함께 TV를 보는데 자신의 대학교에서 불어(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세가와라는 교수가 쓴 소설로 상을 받는 것을 본다. 사실상 나오도 그 교수님을 아는지라 상을 받은 세가와 교수가 자신의 제자였던 나오의 남자에게 갑질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가와 교수를 찾아가 미인계로 유혹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자식과 남편이 있었다. 세가와 교수 앞에서 나오는 책 중에 자신이 좋아했던 야한 구절을 자신의 목소리로 낭송을 하는데... 과연 나오에게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제논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은 편리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끊게 되고 예전처럼 편지나 우편으로 소식을 전하게 된다. 나츠코는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지만 존재감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는 동창이 있지만 나츠코는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고등학교 동창회가 끝나고 나츠코는 미카 아야라는 자신과 유독 친했던 동창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미카 아야라는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놀란다. 미카 아야와 닮은 여자의 집까지 찾아간 나츠코는 안절부절한다. 그러나 미카 아야와 닮은 여자와 나츠코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 둘은 과연 어떤 사이로 발전하게 될까?
난해했지만 코믹 요소도 있어서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였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평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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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집 남편 괜찮다!
결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 이미지들은 아마도 성장과정에 가정에서 보고 배운 바를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첫문장은 아직까지도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톨스토이가 이 책을 쓰던 1800년대에도, 지금까지도 수많은 가정이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기 때문이다.
현세대의 결혼기피현상을 집값으로 뭉뚱그려 보는 사람이 많다. 정말 돈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걸까?
남성의 입장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동물들도 수컷이 둥지도 없이 암컷에게 구애하지는 않을 테니까.
반면 여성의 경우에서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늘날 결혼적령기 여성들은 부조리한 가정 상황을 목도하며 자라왔고, 그것이 내 일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비혼을 말한다.
나도 그런 쪽이다.
이를테면 맞벌이를 하지만 요리청소빨래 집안대소사 모든 것을 감당하는 엄마와, 새벽 5시에 엄마가 일어나서 차려준 밥을 먹고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엄마가 차린 저녁 먹고 TV에 나오는 외화를 보다가 술 한잔 하고 자는 아빠. 그걸 다 치우고 녹초가 되어 잠든 엄마.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느라 집에 안 오는 아빠. 친구도 없는 엄마. 그리하여 온몸의 관절에 관절염이 왔으나 아직도 일하는 엄마와 단지 술로 인해 병든 것 외엔 건강한 아빠.
나는 결코 엄마의 삶을 답습하고 싶지 않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구한 차별의 역사쯤이야 일이 년만에도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순진한 건가 싶을 때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악습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전복시켜버린 여자가 있다. 이름은 박강아름.
#역할전복
박강아름은 진보당 활동을 하던 정성만을 만나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먼저 결혼하자고 하고, 공부를 해야겠으니 프랑스로 가자고 제안한다.
이미 결혼을 해버렸으니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비혼주의자였던 정성만은 한국에서 요리보조로 일하며 소설을 쓰던 사람이었다.
박강아름과 달리 프랑스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
박강아름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했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아이를 낳았다.
프랑스에서의 출산과정은 지난했다.
커뮤니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고, 도와줄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
본인의 선택이었기에 박강아름은 모든 걸 감내한다. 어차피 아이를 낳는 건 본인 몫이니까.
그렇다. 아이를 낳는 건 여자의 몫이다.
토하고, 쓰러지고, 입원하고, 뼈와 근육이 제멋대로 놀고, 출산 후 손목 통증이 가시질 않고. 젖을 물리는 내내 젖꼭지에 피가 난다.
그러므로 출산에 관한 선택은 여자의 것이어야 한다.
정성만은 무엇을 하는가 하니, 살림을 한다.
박강아름의 표현에 따르면 '독박살림 독박육아'다.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아이를 돌보고, 놀아주는 모든 역할을 정성만이 한다.
박강아름이 학교에 다니고 작업을 하는 동안 정성만은 박강아름의 보조, 정성만의 표현에 따르면 '식모'다.
어디서 많이 본 시나리오가 아닌가.
남편을 따라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아이를 낳고, 밥을 짓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고, 놀아주고, '식모' 같다고 느끼는 삶.
가부장제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요새 맞벌이 안 하는 여자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돈도 벌고, 애도 키우고, 집안일도 하고. 결혼 전과 돈 버는 건 같은데 노동의 양은 몇 배로 증가한다.
또는 수 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내, 엄마로서 기능해야만 한다.
그러려고 공부하고 일한 건 아니었을 텐데.
그런데 사람들은 웃는다.
성만이 살림할 때, 본인을 '식모'라고 부를 때, 살림의 고달픔을 토로할 때, 혼자 김장을 하면서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말을 걸 때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과연 그 반대였더라면 웃음 포인트가 되었을까?
그저 일상적인 풍경을 보면서 웃기는 쉽지 않다.
나는 재능있는 여자들이 예술가 남편을 뒷바라지 하느라 재능을 갖다 버리는 걸 수도 없이 보고 듣고 겪었다.
#외길식당
이들 부부는 프랑스에 와서 자아가 없어진 성만을 위해 가정집 원테이블 식당을 열기로 한다.
원래도 요리를 잘했던 터라, 성만은 내심 기뻐 보인다.
부부의 식당에는 가난한 유학생, 집밥을 그리워 하는 유학생들이 찾아온다.
그릇을 사고, 좋은 재료를 고르는 성만의 표정이 밝다.
누구와도 교류할 수 없는 사람은 고립되기 마련이다.
성만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름 뿐.
뜨겁게 사랑하다 보면 세상에 너랑 나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없을 거라고 말하게 되지만, 실제로 세상에 단둘이 남겨지면 미쳐버릴지 모른다.
고립되어 가던 성만은 외길식당을 차린 후에, 한식부터 일식, 중식, 양식까지 뚝딱 만들어내며 자신의 쓸모를 다 한다.
하지만 집안 살림에 식당 영업까지, 아름은 작업에다 손님 대응까지 하려니 힘에 부친다.
결국 외길식당은 문을 닫고, 이사를 몇 번 다닌 후에야 다시 문을 연다.
이유는 역시나 그들의 고립 때문이다. 고립된 채 서로에게만 의지하는 부부에게는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넌 이런 부분이 이기적이야, 너는 늘 이기적이야. 그래서 아름은 다른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외길식당2에 다녀간 여러 형태의 커플들 역시 비슷하면서도 다른 고민들을 안고 산다.
결국 아름은 외길식당2에서도 답을 얻지 못한다.
#덩케르크
누릴 수 있는 사치라고는 커피 한 잔 사 마시는 것이 전부인 그들.
아름은 영화제작 기금을 받으러 다니느라 바쁘다.
그런 그들도 여행이라는 걸 떠난다.
덩케르크 해변으로 가는 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성만은 왜 비오는 날 바다에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아름은 바다에서 찍고 싶기 때문에 가는 거라고 한다.
이들 부부의 주도권은 대부분 아름에게 있다.
성만은 투덜대지만 어쨌든 간다.
해변에 도착하자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고, 날은 잔뜩 흐려 옥빛 바다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모래사장으로 유모차가 들어가지도 않는다. 결국 성만이 앞에서 지고, 아름이 뒤에서 들고 바다 앞까지 간다.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에서는 전쟁 상황과 대비하여 바다가 너무 예뻤다.
영화관에 앉아서도 그 대사를 떠올렸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조국(Home)."
<덩케르크>를 볼 때도 그 부분에서 속으로 으악... 하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던 기억이 난다.
덩케르크 씬은 마치 조국 그 자체, 프랑스에 있어도 부부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성만 같은 남편이 있다면 한번쯤 결혼을 해봄직도 하다.
어쩌면, 행복한 가정의 서로 닮았은 모습이 박강아름과 정성만, 정보리강 가족에게서 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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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박강아름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보니, 한편으로는 홈비디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과 가수 이랑의 노래가 아니었더라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서두에서 박강아름 감독은 개인의 이야기가 전체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확신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수상 및 국내외의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실로 개인의 이야기가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2020년 한 작가의 오토픽션(자전적 소설)이 문단에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카톡으로 나눈 대화의 전문을 작품에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문학이든 영화든 자전적일 수밖에 없다.
조근식 감독이 <품행제로>를 촬영할 때 1980년대 본인이 살았던 동네의 풍경을 재현한 것처럼.
그러나 그것이 작품이 되느냐, 한 개인의 일기장이 되느냐는 개인적 관점이 전체를 관통할 때가 아닐까.
처음에는 '도대체 이건 뭘까' 싶다가,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때는 이런 관점과 용기와 행동력을 가진 여성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작에서도 이미 여성의 몸에 관해 할 수 있는 말들을 다 했던 감독이다.
이 영화는 그동안 우리가 보고 듣기 쉽지 않았던 여성의 자궁과 질, 출산과 모유수유, 예쁘게 꾸미지 않은 여성의 몸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직면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직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현 시점에서 박강아름 감독은 응당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는 남자 주인공 다미앵은 어느날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여성중심사회로 간 이야기다.
물론 이 영화는 픽션이다.
그러나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리얼리티다.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 시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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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해피엔딩이 누군가에겐 새드엔딩일 수도 있다
감기
줄거리
전염되면 무조건 죽음에 달하는 최악의 바이러스가 한국에 퍼졌다.
너무 빠른 전염 속도에 결국 도시 폐쇄 조치가 내려지는데...
*해석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해피엔딩이 누군가에겐 새드엔딩일 수도 있다
숨은 의미 찾기
보통 이런 재난 영화 속 인물들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만 나누기 힘들다.
그들을 구분 짓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인물들에게 갈림길이 주어지고, 그중 하나를 무조건 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마치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사람들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연구원이 막상 자기 딸이 감염된 순간에는 그 사실을 숨기고 이기적 행태를 보이는 것과 같이 말이다.
하나 이 영화에서 평이한 인물은 앞서 말한 ‘인해’ 외에는 찾기 어렵다. 그 외의 인물들은 온전히 선이거나, 온전히 악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극렬하게 대립하는데, 이 과정 탓에 관객은 지루해진다. 완전한 선의 편에 서는 인물이 존재할 경우 99%의 확률로 선이 이기기 때문에 긴장감이 사라진다. 게다가 이에 맞서는 악인은 강할지언정 진부하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선한 인물로 대변되는 ‘지구’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정의감으로 무장한 구조 대원이다. 그는 조건반사적으로 타인을 돕고 무적이며 동료 조력자까지 있다. 그는 남들이라면 쉬이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해낸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감염되지 않고, 민간인 금지구역에도 자유롭게 들어가며, 자신을 막는 열댓 명의 사람들에 맞서고도 아이를 업고 기어이 빠져나온다. 이렇게 무적의 주인공을 세워놓고 그토록 진부한 악인이라니. 영화 내용은 앞의 30분만 보더라도 어떻게 이어질지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리뷰하는 것은 순전히 ‘몽싸이’라는 인물 하나 때문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밀항을 시도한 동남아인.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의문의 바이러스로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죽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면역항체를 가진 사람이다. 그가 죽는 장면을 보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는데,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어떤 질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백인이고 몽싸이가 흑인이라면?
영화가 인종차별을 의도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앞뒤 맥락 없이 ‘한국에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설정을 할 수는 없으니 그 경로를 비교적 가까운 동남아로 설정했을 뿐이다. 해외에 다녀온 한국인이나 외국인 여행객이 바이러스의 원인일 수도 있었지만,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확산되었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밀항’하는 ‘동남아인’이라는 인물을 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의아한 것은 몽싸이라는 인물을 영화 내에서 소비하는 방식이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그는 대한민국에 감기 바이러스를 퍼트린 원흉이면서도 동시에 유일하게 항체를 가진 희망이기도 하다. 상반된 두 가지의 역할을 부여받은 그는 한 쪽에게는 쫓기고 한 쪽에게는 보호받는 기이한 상황에 놓인다. 그러다가 결국 쫓는 쪽에 붙잡혀 죽음을 당하고 만다. 원흉으로서도 희망으로서도 제 역할을 종료당한 그는 ‘희망’이라는 타이틀만 미르에게 수혈하고 사라진다.
사실을 짚어보자. 그는 가난한 집에 돈을 보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밀항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밀항을 주선한 브로커는 한국인이며, 그들을 운반하려다가 놓친 운반책 역시 한국인이다. 그에게 감기를 옮아 바이러스를 산발적으로 퍼트린 사람도 한국인이고, 이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늑장을 부린 이마저 한국인이다.
그렇다고 몽싸이에게 처음 감염되어 죽은 병우를 탓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몽싸이가 밀항을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악으로 만들어버리고, 죽어도 안타깝지 않은 자로 만드는 영화의 구조가 아쉬웠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미르에게 가려져 '숭고한 희생'으로도 취급받지 못한다. 그저 한 명의 밀입국자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남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나 버린다.
우리 엄마 쏘지 마세요!
게다가 문제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어린아이를 해결책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긴박한 대치상태에서 뛰쳐나온 작은 아이가 평화를 요구하는 장면은 감동을 넘어선 한국식 신파에 가깝다. 거기에 '항체 보유자 김미르'라니. 아이는 우리 미래의 새싹입니다, 따위의 구호가 생각난다. 아무리 영화일지라도 고작 9살 밖에 안 된 어린 소녀에게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워야 했을까?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이쯤에서 인정할 건 인정하자. 동남아 계열 외국인 노동자와 어린아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 놓인 이들은 전부 사회적 약자다. 영화는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인류에게 닥친 재앙도, 인류에게 남은 미래도. 잘 생각해 보라, 영화 끝의 에필로그까지 지켜보아도 감염자의 시체를 대량으로 불태웠던 일에 대해 누가 책임졌다는 언급조차 없지 않은가.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모두에게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해피엔딩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새드엔딩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새드엔딩도 언젠가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기에.
코로나 이후 보니 하이퍼리얼리즘 공포영화
감상평
개봉 당시엔 그저 그런 흔한 재난 영화인 줄 알았더니 WHO의 팬데믹 선언을 예언한 영화, 감기.
순위권 안으로 돌아갈 땐 안 보다가 문득 볼 것도 없고 해서 다시 봤다. 영화 속 결말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 괴리감이 컸다. 금방금방 바이러스가 종식되는 영화에 비해 현실은 코로나가 장기화되는 걸로도 모자라 위대 코로나 시대로 접어드는 판국이니.
어쨌거나 코로나 사회를 살아가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기침할 때 비말이 퍼지는 슬로 모션은 소름이 돋았다.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아주 '불-편'했다. 중간중간 마스크도 안 끼고 손수건으로 대충 끼고 다닌 장혁이 대체 어떻게 감기 안 걸렸는지 그게 제일 의문.
보는 내내 그 짤이 생각났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캐릭터 중 하나가 ‘정의롭지 않고 불의를 보고도 잘 참는 장혁’이라던… 그 말이 딱 들어맞는 영화. 그야말로 장혁이 아니면 이 역할을 할 사람이 없겠다 싶은… 너무도 뻔한 캐릭터지만, 이런 뻔하디 뻔한 캐릭터에 딱 맞게 설정된 영화이다 보니 억지스러워도 이 이상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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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의 존재 이유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오늘도 비행기를 정비하는 한 조종사가 있다. 무인기의 등장으로 유인 조종사의 존재가 무의미해진 상황에서도 우리의 '매버릭'은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타이틀을 놓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는 이 남자는 구사일생으로 탑건에 복귀한다. 하지만 탑건의 조종사가 아닌 조종사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배치되는데, 과연 조종사의 피가 흐르는 이 남자는 후배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그들이 당면한 작전은 한 사람 이상은 죽어나가야 하는, 이른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매버릭은 이런 하드코어 훈련 작전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구스의 아들, 루스터까지 참여시켜야 한다. 매버릭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는 루스터와의 관계,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그의 임무 사이에서 그는 갈등한다.
1. 멋있는 어른의 모습
최근 유튜브 콘텐츠이든 드라마 콘텐츠이든 각광받는 테마가 있다. 바로 "멋있는 어른의 모습"이다. 유튜브의 "밀라논나'도 그렇고, 드라마 컨텐츠 속에서 인기를 얻는 캐릭터들도 모두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멋있고 쿨한 어른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도 매버릭은 멋있는 어른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처음에 매버릭은 후배들의 원망을 산다. 불가능의 영역인 고도를 계속 침범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는 군인들의 비행 서적의 내용과도 반하는 내용이고, 이런 제멋대로의 가르침은 매버릭의 상관들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해고 당할 상황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가르침의 필요성을 자신의 비행 능력으로 입증한다. 불가능의 영역도 그라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비행 능력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 그 이후로 후배들은 그의 말이라면 뭐든 신뢰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세상에는 세대 갈등이라는 개념이 있다. 젊은 사람들은 기성 세대들이 납득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리는 것에 화를 낸다. 반면, 기성세대들은 젊은 사람들이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는 것에 화를 낸다. 물론, 매버릭과 같이, 불가능이 가능하다고 몸소 증명해내는 상사들은 없다. 그것은 단연코 판타지이다.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에게 왜 이런 매버릭 같이 몸소 귀감이 되어 주질 않는지 따지는 것은 결국 그들의 판타지가 빚어낸 욕심이 원인인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어른들이 그처럼 멋있는 증명을 해내지는 못하시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문제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란 과도한 기대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기성세대도 자신의 과거의 찬란함에 매료되어 젊은 사람들에게 과도한 수준의 패기를 요구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그것 또한, 기성 세대가 젊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각 세대들은 자신들이 당면해 본적 없는 감정들을 이해해볼 생각 조차 하지 않고, 각자 만의 판타지를 실현시켜 주기를 다른 세대들에게 요구하면서 의미없는 불만들을 쌓아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영화관의 존재 이유
이 영화는 굉장히 돈을 많이 들인 전투기 액션 영화이다. 내용은 기대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선택한 사람들은 내용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투기 조종 액션의 박진감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을 것이기에.
처음에 이 영화를 보기로 했던 것은 '예상 외로'인기가 많다기에 선택했었다. 탑건 1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과연 탑건 2가 이전의 미국 군인에 대한 멋있는 이미지와 톰 크루즈에 멋있는 비주얼 때문에 인기가 많았던 탑건 1의 영광을 과연 21세기에 굳이 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싶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마블 액션 등등 박진감 넘치는 소재는 차고 넘치고, 요새는 프리가이 처럼 게임을 소재로 하는 영화도 많아져 전투기 조종 액션만으로는 눈길을 끌 수 없을 텐데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영화 머리를 잘 썼다. 전투기 조종하는 장면들이 마치 전투기 조종 게임에 관객들을 참여시켜 동일시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박진감을 몸소 느끼게 했다. 그 실감나는 박진감이 이 영화의 성공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조종은 매버릭이 하지만 우리 모두 그의 전투기에 타고 있는 듯한 환상을 심어준 것이다. 전투기 액션을 하고 있는 인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도 참여시킴으로써 공감 지수를 올린 것, 머리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화들이 결국 영화관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킨다. 최근 '영화관의 위기'다 뭐다 하는데, 영화관은 세계관이 거대한 '듄'이나 '마블 유니버스' 영화 뿐만 아니라 스피디한 액션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한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소규모 독립 영화 그리고 상업 영화이지만 이 정도의 거대한 제작비가 필요하진 않은 영화들이 이런 영화들 때문에 영화관에서는 기를 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이미 그런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거대 제작사의 영화만이 영화관에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지배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작은 영화들은 그만큼 대비를 해야 할텐데, 새로운 수익 구조에 대한 논의는 필요해보인다. 아니, 이미 업계 분들은 실감하고 계실 테지만 말이다.
3. 총평
이 영화는 살짝 주춤하는 마블의 빈자리를 잘 채워준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탑건 1을 보셨던 분들이 어떤 점에서 미국 군인의 멋있는 모습에 경도되셨는지를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빠른 전개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고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블이 개봉할 때마다 반응이 이전보다는 미적지근하기에 사람들이 액션 장르에 많이 질렸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의 흥행으로 이제는 마블에 대한 충성도 때문에 본다기 보다는 이제까지 봐온 가락이 있으니,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액션 장르에 대한 수요는 꾸준했으나, 그냥 마블 유니버스에 더이상 새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 뿐이라는 추론을 하게 한 영화였다. 이 의견에 피드백 해주실 분 있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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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고뇌와 성장
*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2022)
감독: 라이언 쿠글러
출연: 레티티아 라이트, 루피타 뇽오, 다나이 구리라, 안젤라 바셋, 윈스턴 듀크 등
장르: 액션, SF, 드라마
상영시간: 161분
개봉일: 2022.11.09
‘바스트 신이시여, 시간이 없어요.’
‘트찰라’의 병세가 악화되자 와칸다는 비상 국면을 맞이한다.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는 하나 뿐인 오빠를 살리고자 애쓰지만 엄마 ‘라몬다(안젤라 바셋)’는 ‘트찰라’가 선조들의 곁으로 떠났다는 말을 슬픔과 함께 전한다. 와칸다 국민들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가족을 잃은 ‘슈리’와 ‘라몬다’는 슬픔에 젖는다. 그로부터 일 년 후, ‘라몬다’가 여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강한 통치자를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외부에서는 와칸다의 자원을 호시탐탐 노린다. 미국 정부는 비브라늄 채굴선을 보내 이를 탐하지만 탈로칸의 공격으로 제지 당하고, 이를 계기로 탈로칸의 국왕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는 비브라늄을 지키기 위해 와칸다에게 협력을 강요한다. ‘슈리’는 정부의 비브라늄 탐지기를 만든 ‘리리 윌리엄스(도미니크 손)’를 찾아 상황을 해결해 보려 하지만 탈로칸과의 오해가 불거지면서 와칸다는 다시 한 번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채드윅 보즈먼’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블랙팬서’는 시리즈의 중심이 되어야 할 주인공을 잃었다. ‘채드윅 보즈먼’은 후속작 출연을 앞두고 있었지만 병세가 악화 되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제작진은 급히 각본을 전부 수정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주연 없이 조연들로만 구성된 작품으로 보일 가능성이 컸다. ‘슈리’와 ‘오코예’ 정도를 제외하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캐릭터가 많지 않고,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등장하는 ‘아이언 하트’나 ‘네이머’는 아직 서사조차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블랙팬서’라는 타이틀을 걸고 가는 작품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블랙팬서’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그의 빈 자리를 느낄 새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선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죽음과 함께 시리즈에서 퇴장한 ‘채드윅 보즈먼’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속편이다. <블랙 위도우>나 <호크 아이> 같은 최근의 MCU 작품들이 전임자의 노고를 기리기는 커녕 세대교체만을 부각하면서 골수 팬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왔는데, 본작만큼은 전임자의 흔적을 빠르게 지우려 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트찰라’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슬픔의 감정을 끌고 간다. ‘트찰라’의 크나큰 존재감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 셈이다. 누군가는 오프닝 시퀀스의 장례식 장면 이후 정적이 나올 때 그에 대한 추모를 마칠 수도 있고, 혹자는 ‘라몬다’가 ‘트찰라’의 상복을 태울 때, 그도 아니라면 모든 고뇌와 성장의 과정을 끝마친 후에 비로소 오빠를 보내줄 수 있게 된 ‘슈리’처럼 영화의 마지막까지 상실감을 끌어안은 채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극중 인물들이 순차적으로 추모를 마치고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관객도 자유롭게 각자의 속도에 따라 천천히 그의 존재를 떠올리기도 하고, 추억 속으로 떠나 보내게 만든다. 중간중간 갑작스레 등장하는 개그 신들이 억지스럽게 흐름을 깨는 경향이 있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이 작품 전반을 감싸고 있어 ‘트찰라’에게 바치는 헌정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다.
‘트찰라’가 와칸다의 통치자로서 어깨에 지고 있던 무게는 ‘슈리’와 ‘라몬다’, ‘오코예’, ‘나키아’ 등 그의 곁을 지키던 여성 캐릭터들에게 자연스레 배분되었다. 여왕으로서 위기의 와칸다를 통치하게 된 ‘라몬다’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비중으로 등장하며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연기해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다. 특히 국제 회의장에서 강경한 연설로 모두를 압도하는 장면과 ‘슈리’를 지키지 못한 ‘오코예’에게 울분을 터뜨리는 감정 연기는 압권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슈리’가 납치되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오코예’의 눈물 또한 인상적이다. 우리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당시 핑거 스냅으로 ‘트찰라’가 사라지던 순간 눈앞에서 주군을 잃은 ‘오코예’의 처참한 표정을 기억한다. ‘폐하’를 연신 외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오코예’는 이제 ‘슈리’마저 보호하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에 왕실을 수호하는 장군으로서 자괴감과 패배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작품의 핵심이 되는 캐릭터는 ‘트찰라’의 유일한 여동생 ‘슈리’다. ‘슈리’는 오빠가 살아있을 때만 하더라도 장난기와 유쾌함이 가득한 영락 없는 십 대 소녀였고, 어린 천재 과학자로서 전장의 뒤편에서 와칸다의 기술을 책임 지는 존재였다. 자신의 기술로 오빠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끝내 살려내지 못했고, 아들의 상복을 태우며 슬픔을 털어내고자 했던 엄마와 달리 상실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놓인 ‘슈리’는 더욱 벼랑 끝으로 몰린다. 미국 정부로부터 비브라늄을 지키기 위해 협력을 요구하는 ‘네이머’의 압박, 자신 때문에 쫓기는 신세에 처한 ‘리리 윌리엄스’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결국 탈로칸이 와칸다를 치는 바람에 벌어진 어머니의 참극까지. 심해에 숨겨진 탈로칸의 아름다운 광경을 본 뒤로 탈로칸에 대한 마음이 우호적으로 변하던 찰나 눈앞에서 ‘라몬다’를 수장시킨 ‘네이머’에게 극한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네이머’에 의해 각성한 ‘슈리’의 행보는 여러 편에 걸쳐 ‘트찰라’가 보여주었던 성장 서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폭탄 테러로 아버지를 잃고 ‘버키’를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며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던 ‘트찰라’의 모습은 어머니를 잃은 울분으로 탈로칸과의 전쟁을 단행하는 ‘슈리’의 거침없는 태도는 굉장히 비슷하다. ‘네이머’를 쓰러뜨리기 위해 인공 허브를 만들어 스스로 ‘블랙팬서’가 되는 ‘슈리’는 의식을 통해 어머니나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눈앞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에릭 킬몽거’였다. 복수심에 왕의 자리에 오르고자 했던 ‘에릭 킬몽거’처럼 ‘슈리’ 역시 ‘네이머’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에 ‘블랙팬서’가 되었기에 그의 모습에서 한때 오빠의 자리를 위협했던 자가 비춰졌다는 방증이었다. 처음부터 좋은 통치자가 되고자 했던 ‘트찰라’와 달리 ‘슈리’는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하지만 끝내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며 오빠와 같은 선택을 내린다. ‘블랙팬서’가 되고자 했던 목적은 ‘트찰라’와 달랐으나 결과적으로 동일한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에서 남매의 성장 서사는 닮았으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슈리’는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 놓이지만 고뇌 끝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감정적인 극복을 이뤄내는 과정을 그리며 그의 성장사를 심도 있게 표현했다.
‘트찰라’의 빈 자리가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단지 그의 공백만으로 작품이 아쉬운 것은 아니다. 2시간 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 비해 액션의 비중이 부족하고, 액션 연출 스케일이 작고 미흡한 부분이 많다. 탈로칸과 와칸다의 전쟁이라는 소재만으로 충분히 스릴감 넘치는 장면을 그릴 만도 한데, 역대 마블 영화 중 손꼽힐 정도로 전투신의 재미가 떨어진다. 특히 해상에서 펼쳐지는 후반부 액션신은 근접샷 위주로 구성된 탓인지 긴장감이 떨어지고, 감탄을 자아낼 만한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 내년에 공개될 마블의 드라마 ‘아이언하트’를 위한 끼워팔기가 의심되는 ‘리리 윌리엄스’의 등장도 뜬금없기만 하다. 억지스럽게 등장 명분을 만들기는 했지만 ‘아이언하트’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작품이 진행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리리 윌리엄스’가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개그신은 특히 엄숙한 분위기를 끌고 가던 작품의 흐름을 해치기만 했다. 제2의 ‘아이언맨’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중요한 캐릭터이지만 액션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뚜렷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훌륭한 치고 빠지기를 보여주었던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의 데뷔전과 크게 비교가 되었다.
이야기 외적으로는 분명 단점들이 존재하지만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담긴 스토리만큼은 훌륭하다. ‘트찰라’는 떠났지만 그럼에도 와칸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직 남아있다. 탈로칸과 와칸다의 전쟁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자. 마야 문명을 대표하는 ‘탈로칸’과 아프리카 문명에서 비롯된 ‘와칸다’의 뿌리에는 분명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명의 핍박이 존재한다. ‘네이머’는 어머니의 터전을 빼앗은 서구 세력을, 와칸다의 여왕 ‘라몬다’는 비브라늄을 강탈해 더 강한 무기를 만들 생각 밖에 없는 미국 정부를 증오한다. 즉, 와칸다와 탈로칸은 같은 적을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선량한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을 치른 것은 같은 상대에 맞서 협력해야 할 와칸다와 탈로칸이다. 이는 서양의 강대국이 약소국을 멋대로 휘젓는 사이 소수자 문명 내에서 각종 분쟁이 벌어지는 역사와 크게 닮았다. 피해를 준 대상은 따로 있지만, 다치고 피를 흘리는 것은 결국 약자들이다. ‘네이머’와 ‘탈로칸’의 등장은 단순히 ‘와칸다’의 반동 인물로서 존재하기 위함이 아닌 서구 문명 사이에 끼인 소수자 문명의 국가들이 불필요한 싸움으로 고통받았다는 피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오락적인 면모는 줄어들었을 지 몰라도 마블은 ‘블랙팬서’ 시리즈를 통해 ‘트찰라’를 추모하는 것은 물론 연작이 진행되어야 할 당위성을 메시지를 통해 전파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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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2021)> 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라는 제목과 간략한 소개문을 보았을 때, 나는 영화 <내 사랑(2016)>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시놉시스에 짤막하게 적힌 '예술적 영감'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모두 감상한 후, 나는 자연스레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2000)>을 연상하게 되었다. 예술은 ‘작은새’ 김춘나와 ‘돼지씨’ 김종석이 살아온 곧은 삶의 부분이지, 삶 전체가 아니므로. 언제나 그렇듯 삶을 모조리 잡아 삼킬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스포일러 주의
재현
영화는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비디오로 출발한다. 어린이집에서 찍은 영상인 듯한데 주인공은 감독이 아니라는 점이 범상치 않다. 그렇다, 이 영화는 ‘돼지씨’ 김종석의 흥겨운 춤과 ‘작은새’ 김춘나의 자그마한 노래로 시작하는 두 사람의 역사이지 감독의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다.
곧바로 문학 작품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연애편지를 주고받던 젊은 남녀는 어느새 30여 년을 함께한 부부가 되었다. 언뜻 보면 많은 게 바뀐 듯하다. 알콩달콩한 연애편지를 주고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두 아이를 키우고, 슈퍼를 운영해 보기도 했던 굴곡진 나날이 당장의 일상에 침범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을 면밀히 살피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생을 어떻게 시기별로 뚝뚝 분지를 수 있단 말인가. 연애편지를 쓸 때 문학 작품을 떠올렸다던 김종석, 슈퍼를 운영할 때 담뱃갑을 활용해 시를 썼던 김종석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폐지 뒤편에 여전히 글을 쓴다. 슈퍼를 운영할 당시 답답한 마음에 문화센터에서 그림과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던 김춘나는 이제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한다.
새 오리털 파카가 잘 어울린다는 칭찬과 아직도 마누라를 이겨먹으려고 한다는 불평처럼 시시콜콜한 일상을 파고들었며 두 사람을 소개한 영화의 초입은 <작은새와 돼지씨>가 미시적인 개개인의 역사를 조명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은새와 돼지씨'는 몇 개의 레이어가 쌓인 제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작은새와 돼지씨의 지나간 세월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제목을 가진 전시회를 열기까지의 과정이기도 했으므로. 그러하니 이것은 총체적인 역사와 현재 기록되어가는 순간의 역사가 합쳐진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라 할 수 있을 터다.
그러하니 관객은 두 사람의 행적을 쫓아가며, 감독이 딸로서 기획하는 전시에도 함께 동행하게 된다. 더없이 피로할 수 있는 여정임에도 그렇지 않았다. 그 까닭은 영화에 소박하고 따뜻한 시각이 내재되어 있으며, 감독이 두 사람의 모습을 과한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포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압축된 두 사람의 삶을 빠르게, 부담 없이 훑었을 뿐인데도 하나의 시구, 한 번의 붓질을 위해선 하나의 긴긴 인생이 필요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설령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본 후, 작은새 김춘나의 그림을 따라 그리거나, 돼지씨 김종석의 시를 모방한다 해도 큰 의미가 없으리라는 것을 이토록 먹먹하게 인지했던 적은 없었다. 정말이지, 일상을 인공적으로 재배열하면서도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감독 김새봄은 <작은새와 돼지씨>를 통해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한다.
시대
영화는 김춘나와 김종석의 연애시절 이야기로 시작하고,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서로의 예술적 면모를 존경한다는 따스한 이야기를 전하는 등 미시적인 측면에 몰두한다. 하지만 <작은새와 돼지씨>가 두 사람의 구체적 삶을 쓰다듬는 과정을 포함하다 보니, 공적인 시대상이 자연스레 흘러나올 때가 있었다. 예컨대 김종석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공을 마주 할 때 예전에는 그곳이 '국민학교'로 불렸다는 것도 있겠지만, 결혼을 하며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었던 김춘나의 사정 역시 있다. 또한 2021년에 이르러,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요지의 대화가 식사자리에서 이루어진 이면엔 가족이 운영했던 슈퍼가 있을 테니 개인의 미시사와 거시사는 분리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30여 년 전 시집에 실어도 될 것 같은 편지를 썼던 김종석은 멀리서 연인을 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던 김춘나와 결혼했지만 늘그막에 인간 김춘나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전까지는 여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진 알았다지만 새벽에 퇴근하고, 같은 날 새벽에 또다시 출근을 반복해야 했으니 도무지 아내를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그 빼곡한 삶을 살아냈다. 원체 타고난 흥이 많아 지금으로 치면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비슷한 직업군을 몇 번 제안받았음에도 가족을 생각하며 거절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김종석의 태도에선 슬픔이나 분노를 찾기 어렵다.
그의 글에 반해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으니 김종석이야말로 예술가이지 않겠냐고 말하는 김춘나는 흔히 그렇듯 10대 시절엔 회사원을 꿈꾸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며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늦게라도 대학에 진학해보고 싶었으나 그런 큰 결정은 쉬이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딸 둘을 키우는 것만큼은 행복했다고 할 때 눈물을 내비치지만 그림을 그리고 서예를 할 때 김춘나의 눈에는 생기가 맴돈다. 화폭에 자신이 감각한 현실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여러 아이디어를 적용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프로라고 칭하지는 않지만, 그는 현대 예술 안에서 자유를 분명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베벌리 클락은 책 『실패에 대하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잘 살아낼 수 있다'라고. 삶은 검은 숲을 지도 없이, 어쩌면 고장 났을지도 모르는 나침반 하나에만 의지해 걸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자신이 최초에 설정한 꿈이나 목표, 방향성에서 한참 벗어나 도착할지 모른다. 그것을 만일 실패라 한다면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삶엔 실패라는 이름표가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부류의 '실패'가 항상 참담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서든 잘 살아갈 수 있다, 끝끝내.
은희경이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적었듯 ‘살아볼수록 인생은 상투적’인 것 같고,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이 퍽 명료해져 더 이상의 신비가 없는 것 같다는 착각이 쉽게 들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생각한다. 우리 언어의 빈곤이 인생을 밋밋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 뿐, 실은 모든 인생이 찬란하며, 그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 특별하다고.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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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한 당신을 위한 영화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우리의 마음은 늘 초조하다. 빠르게 성공해서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남들은 이미 저 멀리 앞서 가는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 든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속에서 자꾸 불안하다면 영화 '행복의 속도'를 통해 마음의 소리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영화 <행복의 속도>
영화 <행복의 속도>는 일본의 '오제국립공원'에서 도보로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봇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오제국립공원'은 일본 최대의 고산 습윤지로 2005년 람사르 협약에 등재되었다.
2356m 높이의 히우치가다케 화산 폭발로 지금의 자연경관이 만들어졌으며 군마, 후쿠시마, 니가타, 도치기 4개 현에 걸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영화 속에서는 꽃이 만발하는 봄과 여름부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까지 '오제'의 다채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행복의 속도>는 '봇타'로 살아가는 '이가라시'와 '이시타카',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3년간 기록했다.
자연보호를 위해 '오제'로 들어가려는 모든 것은 좁은 나무길을 거쳐야 한다. 산장에 필요한 각종 식재료와 생필품도 예외는 없어서 '봇타'가 두 발로 좁은 나무길을 걸어 짐을 배달한다.
촬영 중 길에 만난 방문객은 '이가라시'에게 '보통 어느 정도의 무게를 드냐'라고 묻고 그는 대부분의 '봇타'가 80~100Kg정도 든다.'라고 답한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각자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가라시'의 일상에선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사는 연륜과 여유가 느껴진다. 그는 20년 넘게 늘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1초도 같은 순간은 없었다고 말한다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는 작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오제' 곳곳을 신중하게 담은 사진은 그가 '오제'를 향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있다. 심지어 산장이 문을 닫아 일거리가 없는 추운 겨울에도 누군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눈길을 치운다.
그의 곁엔 '봇타'라는 직업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가족이 있다. 그의 아내는 부족한 생활비를 모으기 위해 틈틈이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 어린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소소한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이가라시'는 아이와 함께 '오제'의 나무길을 걷고 산장에서 잠을 청한다. 그는 아들에게 말한다.
"사람은 오제에게서 뭘 뺏지 않고 오제도 사람한테서 뭘 뺏지 않거든."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빠가 하는 일을 알게 되고 '오제'와 가까워진다. 그의 가족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에 집중한다.
반면 '이시타카'는 야망과 혈기 넘치는 7년 차 '봇타'이다. 휴일에도 '오제' 밖의 TV송신소에 대형 배터리를 운반하는 일을 하다가 부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는 '봇타'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청년봇타대'라는 단체를 만들고 대표로 활동한다. 겨울엔 직장인처럼 양복을 차려입고 대도시로 나가서 '봇타'를 홍보하고 다양한 협업을 제안한다.
다큐멘터리 후반부에 눈 길을 걷던 그는 섬에 들어가 다량의 짐을 옮겨야 하는 큰 프로젝트가 성사되길 바라며 들뜬 표정을 짓는다. 그는 '오제'의 '봇타'가 아닌 전국에서 일하는 '봇타'를 꿈꾼다.
그의 바람과 달리 가족들은 '봇타'라는 직업을 걱정한다.
특히 그의 할머니는 겨울엔 산장이 문을 닫아 일을 할 수 없고 일을 하다가 다치면 당장 돈 벌 사람이 없다며 속상해한다.
가족들의 말을 들으며 의례적으로 대답하는 그의 표정은 점점 굳어간다. 실제로 부상을 당했을 땐, 그의 아내와 함께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보험을 받았겠지' 같은 아쉬운 대화를 나누게 된다.
Q. 당신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요?
영화 <행복의 속도>는 짐의 무게를 두 다리로 견디는 '봇타'를 향한 존경의 결과물이다.
그리고'천천히 가도 괜찮아'라고 관객에게 건네는 응원이기도 하다. 거기에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인생의 속도보다 먼저 고민해야 하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어느 길 위에 있나요?'
예고편의 메인 카피인 이 질문은 '박혁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감독은 2019년 DMZ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의 'Director's Statement'통해 두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답한다.
또한 자신의 현실은 '이시타카'와 비슷하지만 '이가라시'같은 인물이 되고 싶었다고 답한다. 어떤 길과 방향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이가라시'가 될 수도, '이시타카'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알고 가야 할 방향을 아는 사람에게 속도는 중요치 않다. 이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또 다른 예시가 영화 속에서 등장한다.
어느 날부터 '오제'에 등장한 헬기는 냉동식품처럼 빠른 배송이 필요한 짐을 운송하기 시작했다.
헬기는 금방이라도 그들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을 듯 보였으나 결국 헬기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 철수한다.
일이 더 많아지겠다는 아내의 말에 '이가라시'는 더 나은 헬기 회사가 들어올 수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빠르다는 이유로 언제나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느리기 때문에 가지 못할 곳도 없다.
지금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든다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점검하는 건 어떨까? 당신이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는 첫 발자국을 내딛을 때까지.
참고자료
1. [해외 여행] 아내에게 ‘100점’ 맞은 트레킹 일본 오제국립공원 - http://m.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9&nNewsNumb=002514100021
2. [ 한국어 ] 오제국립공원 – 尾瀬保護財団 - https://www.oze-fnd.or.jp/ko/
3. DMZ인더스트리 - http://industry.dmzdocs.com/kor/addon/00000002/history_fund_view.asp?m_idx=101191&QueryYear=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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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티 토르와 다시 돌아온 토르! 마블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Rabbitgumi 입니다!
토르의 새로운 단독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번에 4번째 토르 단독 영화인데요.
1편과 2편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평가를 받았던 시리즈지만,
3편에서 타이카 와이키키 감독이 연출하면서 재치 넘치는 영화로 재탄생했죠.
4편도 같은 감독이 연출해서 그 분위기는 유지됩니다.
그럼 과연 이게 효과적으로 마블에 안착했을까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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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표류단지> 공식 티저 예고편
<펭귄 하이웨이>로 제42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를 연이어 제작했던 스튜디오 콜로리도. 이들의 세 번째 장편 영화가 찾아온다.
초등학교 6학년인 코스케와 나츠메는 어릴 때부터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자란 소꿉친구. 여름방학 중이던 어느 날, 철거를 앞둔 아파트 단지에서 놀던 두 아이는 어떤 신비한 현상에 휘말리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둘은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었다. 과연 코스케와 나츠메는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 한여름의 이별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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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그데이즈> 메인 예고편
사람도, 강아지도 '개' 귀엽다! 행복만 가득해지는 [도그데이즈] 메인 예고편 공개? 2024년 기분 '개' 좋은 영화 2월 7일은 극장에서 [도그데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