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까2024-09-08 13:45:15
[JIMFF 데일리] 제주 바다, 여전히 아름다운지
영화 <돌고래와 헤엄치는 법>
짧은 상영시간 안에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담아내는 단편 영화는 일반 상영관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어 더 특별합니다. 때로는 짧기에 더 강렬한 공명을 자아내기도 하죠.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이름을 올린 <돌고래와 헤엄치는 법>도 그런 단편 영화 중 하나입니다. 고향집을 처분하기 위해 제주를 찾은 ‘영남’과 제주에서 오염수 방류 중단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유림’의 이야기를 그리죠. 20분 내외의 짧은 영화 속에 담긴 제주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요?
돌고래와 헤엄치는 법
How to Dive with Dolphins
Summary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고 시간이 흘렀다. ‘영남’은 고향집을 정리하기 위해 제주에 내려간다. 그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해양 쓰레기를 청소하는 옛 ‘유림’을 재회한다.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Cast
감독: 서윤수
출연: 우영남, 정은선
큰 문제 앞의 너무 작은 우리들
사회의 문제들은 언제나 겹겹이 쌓인 이해관계에 의해 그 몸집을 불려 갑니다. 거대한 문제 앞에서 개인은 너무 작은 존재에 불과하죠. 가치가 돈으로 결정된다는 논리가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세상에서, 당장의 금전적인 이익이 없는 무언가를 지키려는 개인의 노력이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합니다.
어민들은 오염수 방류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습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생존을 위한 필수 노동을 경시하는 씁쓸한 경향이 있습니다. 오염수 방류는 환경을 등한시한 결정일뿐만 아니라, 1차 산업 노동자들을 무시한 행태이기도 하지요. 제주 사람 '유림'은 그들을 지키고자 오염수 방류 중단 시위를 벌이지만, 외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혐오할 수 있으니 그만해 달라는 어민들의 부탁을 받습니다. 역설적인 상황에 마음이 아프지만, '유림'은 대신 해양 쓰레기를 주우면서 소셜 미디어에 상황을 알리는 것에 힘쓰기로 합니다. 자신의 노력을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죠.
해녀들이 바다에서 수확한 해산물을 잠시 넣어두는 바구니를 '테왁'이라고 합니다. 그곳에 해산물 대신 해양 쓰레기를 넣는 장면은 실로 인상적입니다. 해산물을 수확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는 전복이나 소라가 다시 붙기 마련인데요. 영화 속 플로빙 장면을 보면, 쓰레기를 수거한 자리를 채우는 것은 분명 또 다른 쓰레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연의 힘은 강하고 그 속의 인간은 한낱 미물일 뿐이라는데, 인간의 간섭과 횡포가 얼마나 강력하고 악하길래 자연을 거스르기만 하는지 부끄러움이 차오릅니다.
거대한 자연보다도 더 거대한 문제들 앞에 선 너무 작은 우리들. 인간이 초래한 결과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 시대의 인간으로서 존재하며 돌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방법이 있는 걸까요?
화자와 청자, 나는 누구인가
극 중에서 '유림'은 계속해서 메시지를 내뱉는 화자입니다. 작지만 행동을 멈추지 않고, 그러면서도 돌고래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반면 '영남'은 청자입니다. 그는 자연이나 환경보다는 '유림'을 향한 관심으로 플로빙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그 관심이 점점 '유림'이 있는 바다로 옮겨 가지요.
영화가 끝날 무렵, 바다를 가만 응시하는 '영남'의 표정은 참으로 묘합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기도 하고, 일견 허탈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얼굴을 단독 숏으로 잡아 보여주는데요. 화자는 유림인데, 청자의 얼굴을 자꾸 비추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남'은 행동하지도 발화하지도 않는 수많은 사람을 상징합니다. 뉴스 기사에서 보이지 않으면 쉽게 관심을 저버리는 사람들, 자신 앞에 닥친 현실을 견디느라 사회의 문제를 무시하는 사람들. 우리는 삶의 작은 괴로움 하나만으로도 사회의 거대한 문제를 쉽게 제쳐 버립니다. 그래서 사회의 문제들은 언제나 거대하지만 희미하죠. 관객은 20분 내외의 상영 시간 동안 개인의 문제에 밀려 희미해져 버리고 만 사회의 문제를 마주합니다. 알고 있었으나 모른 척했던 것들, 그러나 모른 척하기엔 너무 거대했던 문제를 말입니다.
엔딩 이후의 '영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렇지 않은 듯 현실로 돌아가 개인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까요, 아니면 '유림'처럼 화자로 변모할까요? 문득 제 자신도 돌아보게 됩니다. 그간 단 한 번이라도 화자인 적이 있었는지, 청자에만 안주해 있지는 않았는지.
제주 바다, 아름답지요. 하지만 아름다움 뒤에 곪아 있는 상처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청자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관성을 이겨내고 싶어지는 영화, <돌고래와 헤엄치는 법>이었습니다.
One-Liner
돌고래와 헤엄치는 법을 정말 몰랐던 건지, 아는데 모르는 척했던 건지, 그저 미안할 뿐이다.
Schedule in JIMFF
2024.09.09(월) 세명대 블랙박스 실험극장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