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텍2022-05-22 10:49:43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아날로그에 대한 헌사와 그리움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리뷰
웨스 앤더슨 감독의 두 번째 이야기, 과거에 대한 헌사와 그리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서사의 특징은, 어딘가가 결핍되어 있는 불완전한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를 그려내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때 감독은 그들을 웃음거리로만 만들어 버리기보다는, 그들의 부족함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듯이 바라봅니다. 그렇기에 재밌으면서도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첫 번째 서사는 <로얄 테넌바움>, <다즐링 주식회사>, <문라이즈 킹덤>, 그리고 <개들의 섬> 같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 주로 초중반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서사의 특징은, 첫 번째 서사와 유사하게 불완전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그들이 에피소드를 이끌어 나갑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서사는 그들의 불완전성을 비추고 있지 않습니다. 극중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을 한데 묶고 나면, 그들은 어느 큰 주제 하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주제라 함은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어떠한 아름다운 존재에 관하여 찬양하고,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그들을 그리워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영화 속 찬양의 대상을 직접 경험해 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감독이 그려낸 대상의 아름다움에 본인도 모르게 감화가 되고, 자연스럽게 그리움이란 감정을 감독과 함께 공유하게 되는 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이러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며, <프렌치 디스패치> 또한 두 번째 서사로 이뤄져 있습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
불완전한 인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성장 이야기거나, 과거의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찬양과 그리움의 표출이거나.
잡지 형식과 유사한 옴니버스, 영리하고 아름다운 주제 선정
이전에 영화가 가진 이야기의 구조로서 내러티브와 옴니버스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둘의 차이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의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러티브>
서로 관계가 없거나 있을지라도 그 정도가 약한 짧은 서사 여럿을 하나로 묶은 <옴니버스>
즉,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벨보이 제로와 지배인 구스타브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는, 하나의 서사로 이뤄져 있는 내러티브 방식으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반면에 <프렌치 디스패치>는 주제가 완전히 다른 4개의 서사를 한 데 묶은, 옴니버스 방식으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주제가 다른데 어떻게 찬양과 그리움의 대상은 동일할 수 있는지 궁금하게 여겨질 만도 합니다.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찬양하고 있는 존재는 아날로그 시대의 활자로 이뤄진 정기간행물, 쉽게 말해 공통점 없는 4개의 주제들이 한 데 묶여있는 잡지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특정 주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가 아닌, 여행•정치•음식과 같이 여러 주제들을 한 데 아우른 작은 마을에서 발행되는 지역 잡지를 찬양의 대상을 대표하는 매체로 선정했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서 나올 법 합니다.
지역지에서 특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게재된 기획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대부분 그 독자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경험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기자의 서술과 묘사만으로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타인의 서술을 통해 어떤 주제를 간접적으로 체험한 경우, 직접 경험했을 때보다 미화되고 아름답게 기억 속에 남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즉, 지역지 형식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한 데 모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그 지역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지역지가 발행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함으로써 과거에 멈춰 있게 된 그 지역지에 대한 그리움이란 감정을 생기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네 가지 주제를 서술한 기자들을 비롯하여 잡지사 직원들 모두가 사망한 편집장에 대한 헌사를 다 같이 작성하는 씬을 비춰줌으로써 극대화됩니다. 이토록 찬양과 그리움의 대상을 명확히 하고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비슷한 주제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보다 <프렌치 디스패치>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하지만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단편 모음집을 선호하는 사람들보다 많은 만큼, 단편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렌치 디스패치>를 장편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보다 더 좋아할 사람이 많을지는 의문입니다.
아날로그 매체에 대한 찬양과 그리움. 영리한 매체 선정과, 영리한 매체 묘사 방식을 통해.
잡지를 보는 듯한 연출, 그리고 앤더슨의 미장센
완벽한 좌우대칭,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카메라 워킹 등,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연출은 <문라이즈 킹덤>을 전후로 하여 강박에 가까운 느낌으로 변화했습니다. 분명히 입체 공간을 촬영하고 있음에도 마치 평면에 그림을 그린 듯한 느낌을 주는 감독의 스타일은 <프렌치 디스패치>의 이야기와 더욱 찰떡궁합입니다. 그리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뒤이어 자유자재로운 화면비의 전환과, 흑백과 컬러를 넘나드는 등의 연출들은 감독이 다루고 있는 잡지란 매체를 탁월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기자들의 내레이션은 본인이 작성한 글을 읽고 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프렌치 디스패치>의 진면목은 이러한 기사의 청각적 전달이 아니라, 기사의 시각적 전달에 있습니다.
잡지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여행 섹션에서는 흑백 화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하는 예술 섹션, 정치 섹션, 음식 섹션에서는 이따금씩 컬러 화면으로 등장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흑백 화면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어느 여행지의 배경과 풍경을 글로 설명하기보다는 그 모습을 직접 담은 컬러 사진들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그 내용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과 정치, 음식의 경우에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들만 사진으로 전달해 주면 그만이며,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 풀어쓴 글이 기사에서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즉, 2•3•4번째 섹션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흑백 화면은 문자로 쓰인 글을, 이따금씩 등장하는 컬러 화면은 그 줄글이 설명하거나 묘사하고 있는 대상의 사진 혹은 삽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모세가 제작한 콘크리트화를 보여줄 때, 그리고 제피릴리를 필두로 한 혁명가들과 기득권 간의 대립 관계를 보여줄 때 화면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화면비가 전환되는 때를 확인해 보면 위의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빈틈 없이 꽉 들어찬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미장센들과 그들을 매끄럽게 연결해 준, <프렌치 디스패치>란 잡지의 편집장 웨스 앤더슨의 탁월한 연출은 이 영화에 푹 빠져들게 만듭니다.
글은 흑백으로, 사진은 컬러로. 읽는 행위와 보는 행위는 엄연히 다름에도, 읽는 행위를 보는 행위로 탁월하게 바꿔낸 웨스 앤더슨의 연출.
확실한 약점, 읽는 속도는 개개인별로 다르다
사람마다 글을 읽는 방식은 모두 다릅니다. 문장 하나하나별로 꼼꼼히 음미하면서 분석하거나, 전체적인 구성을 빠르게 훑으면서 맥락을 위주로 읽어나가거나 등등, 방식의 차이에 따라 글을 읽는 속도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렇기에 잡지를 읽는 속도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에도, <프렌치 디스패치>는 모든 독자들에게 동일한 속도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이때 더 문제 되는 부분은 <프렌치 디스패치>의 정보 전달속도는 무척 빠르단 점입니다. 꽉 차 있는 미장센의 감상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빠른 속도로 전달되는 내레이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고 보입니다. 연속성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임에도 일시정지를 누를 수밖에 없는 정보 전달의 양은 이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 치명적인 요소입니다.
너무 많이 전달되는 정보. 영화는 흘러가고 있을 뿐이지만 개개인의 수용력은 모두 다르다.
여러 번을 반복하면서 영화가 가진 디테일을 음미하고 싶은 영화는 무척 오랜만이었습니다. 웨스 앤더슨 사단의 배우들을 포함하여 뉴페이스까지, 검증된 배우들의 연기는 꽉 찬 미장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라이즈 킹덤>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번 영화까지 쭉 함께 해온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OST 역시 <프렌치 디스패치>의 분위기를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정말 매혹적인 영화입니다. 위에서 이 영화의 치명적인 부분에 대해서 다뤘지만 개인적으로는 흠잡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로 <문라이즈 킹덤>에서 새로운 영화로 바뀔 때가 왔습니다. 꼭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그냥 의도적으로 쓴 것처럼 써봐.
★★★★★
- 1
- 200
- 13.1K
- 123
- 1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