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2-06-22 15:08:3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전쟁 중 울려 퍼진 피아노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시리아 내전 중에도 피아니스트라는 삶을 놓지 않았던 카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가 전쟁 중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고, 실화라는 사실에 더욱 혹해서 기대됐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피아노 곡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이 작품 속에서 기능하고 있을지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예매를 했던 작품이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시놉시스
극렬 테러리스트들의 점령으로 매일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시리아의 세카. 음악마저 금지되어 버린 혼란 속 피아니스트 카림은 피아노를 팔아 연주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인해 피아노가 망가져 버린다. 피아노를 다시 고치기 위해선 테러리스트의 감시와 공격을 피해 피아노 부품이 남아있다는 이웃 마을로 향해야 한다.
* 해당 내용은 서울국제영화제 공식홈페이지 소개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전쟁의 황폐화를 보여주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탄식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렇게까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준 영화가 있었을까? 치열한 전투현장을 보여준 영화들은 그간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전쟁 속에서 남겨진 민간인들의 삶에 대해 집중 조명한 작품은 개인적으로 처음봐서 그 충격이 상당했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죽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민간인을 관리하는 테러리스트와 군부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민간인들이 얼마나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일상 속에서도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총성이 bgm처럼 들리는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폭탄이 떨어지고 황폐화된 모습을 드론을 통해 촬영해 보여주는데 회색도시 그 자체였다. 생명이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무너진 건물과 잔해들만 보이면서 전쟁이라는 것이 지나고 보면 인간의 삶과 환경을 파괴시키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상공에서 황폐화된 한 도시를 보여주는데 약간 공든 탑이 무너진 듯한 허탈하고도 허망한 느낌이 나서 보는 내내 굉장히 안타까웠다.
클래식의 이야기를 알면 더욱 재밌는 작품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기에 작품에서는 중간중간 주인공 카림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한 번쯤을 들었던 곡이 들려온다. 선율을 듣다보면 그의 감정이 잘 드러나고 있어서 딱히 피아노 곡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작품에서 충분히 묻어나오기 때문에 문제는 없지만 만약 작품 속 등장하는 피아노곡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음악감독이 이 피아노곡을 선택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이 시작함과 동시에 들려오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트로이메라이는 꿈, 명상이라는 뜻으로 현실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슈만이 자신의 미래에 클라라를 초대하고자 작곡한 ‘어린이 정경’에 포함된 곡이다. 이 연주를 시작으로 영화가 이어지는데 주인공 카림이 곧 떠날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자신의 삶을 꿈꾸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장치였다. 하지만 곧 테러리스트에게 총을 맞고 돌아온 지인이 수술대에 오르고, 카림은 그를 위해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한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폭우 속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며 작곡한 곡으로 유명하다. 카림은 아마 총상을 입고 수술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에게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지인들을 생각하며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피아노를 고치는 데 성공한 카림은 브람스의 인터메조를 연주하는데, 어쩌면 이 연주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피아니스트로서 오스트리아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처럼 보였다. 브람스는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끝내 클라라와 이어지지 못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갔다. 그녀에게 헌정된 이 곡을 선택한 카림은 자신을 브람스에 빗대 피아노를 지독하게 사랑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러 오스트리아로 갈 수 없음을 알리는 복선같은 장치였다. 마지막으로 테러리스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이 작품의 명장면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 이 곡은 베토벤이 새로운 각오와 함께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과 피아노의 기술적인 발전이 맞물려서 창작된 작품인데, 테러리스트에 저항하면서 자신이 피아니스트로서 이 전쟁에서 테러리스트에 맞서겠다는 각오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투사가 되다
전쟁이 한 나라와 인간의 삶을 얼마나 망가트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잘 보여준 작품이었지만 마지막 결말은 기존 투사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이어져서 아쉽게 다가왔다. 한국의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는 ‘갑자기’ 독립군이 되는 이야기 구조를 많이 따르고 있다. 예를 들면 그저 자신의 삶이 중요했던 한 주인공이 주위 사람들이 다치고 핍박 받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독립군이 되어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 자신이 원했던 것을 희생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죽음도 불사르는 캐릭터로 거듭나는 서사가 은근히 많은 편인데, 개인적으로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에서의 카림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음악이 금지된 시리아에서 피아니스트였던 카림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엄마의 유일한 유품인 피아노를 팔아서 밀항할 수 있는 배삯을 벌어보고자 하지만 테러리스트의 방해로 피아노가 망가져 이 피아노를 다시 살리기 위해 피아노 부품이 남아있는 이웃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피아노 부품을 가져와 피아노 수리까지 마치고 판매에 성공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이 아닌 친동생처럼 아끼는 아이를 오스트리아로 보내고, 시리아에 남아 테러리스트와 맞선다.
이제까지 영화 속에서 카림이 무모할 정도로 피아노를 고치기 위해 위험한 이웃마을로 들어간 이유가 자신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하기 위해 그런것이라는 개인적 욕망으로 서사가 쌓아져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지막에 국가와 내 동료롤 위한 희생으로 바뀌면서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길거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영화 자체의 명장면이었고, 이 과정에서 테러리스트들을 공격하고 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카림의 서사와는 조금 배치되는 느낌이어서 ‘갑자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피아노 곡의 복선이 아닌 이야기 자체에서도 카림의 심리 변화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더라면 ‘갑자기’라는 느낌은 많이 없앨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아의 내전의 참혹함과 그 과정에서 민간인이 겪었던 피폐함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있었던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갑자기’라는 느낌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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