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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남2025-03-05 00:56:01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몇 번 보고 나면 어렵지 않게 회스네 집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영화는 회스네 집의 내부를 영화 전체에 걸쳐 거의 강박적으로 속속들이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초반부 집에 군인 손님들이 찾아오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이 장면에서 특이한 점은 샴페인을 테라스로 갖다놓고 문 밖의 신발을 집 안으로 들여놓는 하녀의 동선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장면은 하녀의 동선을 따라갈 이유가 없는 장면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회스 부부이고, 두 주인공인 헤트비히와 루돌프의 대화는 각각 부엌과 루돌프의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화들을 배경 삼아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인물인 하녀의 움직임만을 따라 이 장면을 찍은 목적은 (물론 그 자체로 정치적 함의를 지닐 수도 있겠으나,) 이 집 1층의 구조를 낱낱이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장면 외에도 루돌프가 밤에 모든 방의 불을 끄며 집안을 활보하는 장면, 헤트비히가 친정어머니와 뒤뜰을 산책하는 장면 등 1층과 2층, 안과 밖까지 이 집 전체의 공간적 구조를 관객에게 정확하게 인지시키기 위한 장면들은 많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워크나 편집의 리듬 그 자체보다 그 목적이 더 중요하다. 이 영화에는 짧고 빈번한 컷 편집으로 이루어진 장면과 긴 공간을 끊지 않고 트래킹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언뜻 보면 이 둘은 대비를 이루는 듯하지만, 그 공간 전체를 빠짐없이 보여주는 것이라는 동일한 목적 하에 기능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지 않다. 그저 단순한 공간이기 때문에 트래킹했고, 복잡한 공간이기 때문에 숏을 나눈 것뿐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왕가위가 <화양연화>의 배경이 되는 집을 공간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미로와 같이 찍은 것이 영화 속 홍콩의 화양연화를 추억 속에 가둬두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같은 논리를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적용해본다면 흥미로워진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화양연화>와는 정반대로 공간의 모든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관객을 홀로코스트의 그 시간으로 적극적으로 초대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조나단 글레이저는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과격한 점프컷까지 동원하여 우리들을 그 공간, 그 시간으로 부르기도 한다(다만 마지막 장면의 경우에는 반대로 루돌프가 우리의 시간으로 끌려온 양상이기는 하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이상한 장면은 또 있다. 집의 모든 공간을 관객에게 오픈한 글레이저는 한 공간만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게 찍었다. 회스네 집에는 지하실이 있다. 영화 중반, 루돌프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젊은 하녀와 심상치 않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지하의 길고 복잡한 복도를 지나 의문의 공간에서 자신의 성기를 씻는다. 그리고는 집의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 옆에 달린 문에서 나온다. 주어진 장면들로 짐작해보자면 루돌프의 집무실은 수용소 내부에 있는 듯하고, 지하의 복도는 수용소와 집을 잇고 있으며 그 지하 안에 또 하나의 의문의 공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영화 전체의 맥락을 봐도 불필요한 이 장면은 왜 등장한 것일까? 초반부 하녀의 동선을 낱낱이 찍은 장면이 집의 구조를 자세하게 보여주어 관객을 영화 속으로 초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 장면은 그 반대의 의도, 즉 <화양연화>의 경우와 비슷한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조나단 글레이저는 이 장면을 통해 그 미로같은 지하 복도를 헤매는 루돌프를 어디 있는지도 모를 바로 그 지하실에 가둬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하강운동은 이질적이다.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대부분 수평적으로만 운동한다. 집 안을 활보할 때도, 집 밖을 나설 때도, 그리고 특히 시냇물에서도 인물들은 위아래로 움직이지 않는다. 수평운동은 이 영화에서 디폴트이다. 그래서 지하 복도와 지하실로의 하강운동은 영화 속에서 이질적이다. 하강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또다른 흥미로운 숏은 부감 숏이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부감 숏은 두 번 정도 있다. 하나는 루돌프의 방에서 군인 손님들이 회의하는 장면의 수용소 설계도를 부감으로 보여주는 숏이고, 다른 하나는 루돌프가 무도회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숏이다. 수용소 설계도 숏에서 군인들은 연기를 효율적으로 내보낼 수 있는 굴뚝에 대해 이야기하고, 무도회 숏에서 루돌프는 가스실을 떠올렸다고 이야기한다. 두 부감 숏은 각각에서 연상되는 연기의 섬뜩함으로 분명 이어져있다. 완전한 직부감은 아니지만, 장교들의 타원형 탁상에서의 회의 장면도 하이앵글로 찍혔다. 이 장면의 타원형 탁상에 장교들이 둘러앉은 숏은 수용소 설계도면와 매우 비슷하다. 다시 말해 직부감 혹은 하이앵글로 찍힌 이 세 숏은 모두 연결된 숏들이다. 이 영화 속 하강운동과 하이앵글/부감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복도의 저쪽 끝을 뒤로한 채 이쪽 끝을 응시하던 루돌프는 잠시 우리의 시간으로 끌려왔다가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루돌프의 계단 하강은 영화 속 몇 안 되는 하강운동 중 하나이다. 지하복도와 지하실로, 파티장의 계단 아래로 끝없이 하강하는 루돌프는 그렇게 심연에 갇힌다. 파티장에서처럼 수용소에서도 아마 유대인들을 내려다봤을 루돌프의 그 폭력적인 부감은 서늘한 하강운동으로 응징받는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지상 공간을 열어 우리를 초대하고 지하 공간을 닫아 루돌프를 가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후자만이 응징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컷 편집과 트래킹 숏이 같은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이 둘도 동일한 목적 하에 있다. 단지 방법이 다를 뿐이다. 조나단 글레이저는 우리에게도 경고하는 중이다. 이것 때문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무섭다.

작성자 . 윤동남

출처 . https://pedia.watcha.com/ko-KR/comments/Vw8MLbgBdx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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