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3-11 00:00:00
왓챠에서 볼 수 있는 힐링 영화(인생영화) 추천 4
코로나의 확산세가 다시 너무 무서워서 지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힐링이 필요한 시기, 힐링이 될 수 있는 영화를 추천합니다.
오늘은 왓챠에서 볼 수 있는 힐링 영화를 꼽아봤습니다.
리스트를 꼽다 보니 인생영화로 꼽게 되는 작품들이라. 제목에 (인생영화) 문구를 추가했습니다.
소년의 성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엘리어트>는 성장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작품입니다
발레는 다른 예체능 분야보다도 대부분 여성이 참여하는 예체능 분야죠.
주인공 소년 빌리처럼 발레에 관심을 갖고,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배경은 80년대이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는 발레를 하면 한 마리의 새처럼 날아다닌다고 고백하며 발레를 사랑하고 발레에 열정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빌리가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해 울림과 감동을 줍니다
짠한 사연과 따뜻한 한 끼
<심야식당 1,2>
일본에서 사랑받은 드라마를 원작으로 마스터 (코바야시 카오루)가 심야에 운영하는 식당에서 허기와 마음을 달래줍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사연은 유머러스한 사연, 짠한 사연이 다채롭습니다.
인물들의 사연만큼 영화에 등장하는 별미들도 상당히 맛깔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음식을 보는 눈도 행복해집니다!
(1편, 2편 모두 단짠 매력을 제대로 갖춘 작품입니다!)
청춘의 긍정 에너지
<세 얼간이> (171분 ver.)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은 인도영화로
세 명의 대학생의 꿈과 열정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인도의 명문대, 졸업을 인정받지 못한 학생이 살을 하는데,
영화의 주인공 세 얼간이는 이 죽음이 단지 자살이 아니라 스펙만 강조하는 인도 사회와 학교문화가 살해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세 얼간이는 학교 시스템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유쾌한 소동을 일으키고 멋진 활약을 합니다
* 영화의 주인공이 대학생이지만, 인도 국민배우 아미르 칸은 실제로 <세 얼간이> 촬영 당시 47세였는데요.
주요 인물들이 대학생 또래의 인상을 주는 영화인데, 아미르 칸은 그들 사이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촬영 당시에도 유쾌하고 열정적인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합니다.
정갈한 힐링영화
<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도 영화 <심야식당>처럼 힐링 쿡방 영화인데요. 조금 더 정갈한 느낌의 영화입니다
핀란드 해변 마을 헬싱키에 위치한 일본 여성이 운영하는 식당. 식당의 사장님, 직원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연도 있습니다
조용한 식당이었지만 점차 손님들이 모여들고 식당의 음식과 사연이 어우러지는데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이 잔잔하게 묘사되어 더욱 힐링을 받는 느낌의 영화입니다
인물의 과거를 신파극으로 나열하는 영화들과는 다른 잔잔한 힐링영화라 더욱 귀한 작품입니다
이상으로 힐링영화 (인생영화)(@왓챠)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리얼리스트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세상에 축적되어온 기억과 소리들에 대한 길고 긴 탐구일지
2021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메모리아는 필자가 개인적으로 크게 기대한 영화 중 하나였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전세계에서 가장 독자적인 시네아스트임과 동시에 시네아스트의 상징과도 같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씨네필이라면 누구나 그의 신작을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필자가 아피찻퐁 감독에 관심가지고 주목하고 있기는 하지만 집에서는 영화를 안 보는 스타일이고(아피찻퐁 감독의 영화가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더 감흥있는 영화들이라 더욱 그렇다), 스크린으로는 기회가 없어서 집에서 엉클 분미랑 메콩 호텔이랑 일부 단편을 본 게 전부이고 장편은 단 한번도 극장에서 못 봤는데,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드디어 처음으로 극장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장편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정말 느린 호흡과 전개, 때때로 (좋은 의미로) 당혹스러운 사운드와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반겨준다. 롱테이크가 정말 전작들 보다 더 길어서, 이 씬은 언제 끝나는건지 당황스러운 적도 꽤 있었을 정도. 총평하자면 메모리아는 인간 뿐만 아니라, 먼 옛날 때부터 지금, 이 지구에, 축적되어온 기억과 소리들에 대한 긴 탐구일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후반부의 한 장면은 (그 장면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정말로 강력한!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지만)아피찻퐁 감독이 한번 더 진보하고 변화를 일으켰다고까지 느꼈고, 앞으로도 아피찻퐁 감독을 더 주목하고 싶다고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필자가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들을 만나보았지만 메모리아 관람은 정말 잊지 못할 영화적 경험이 되었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
-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대라는 걸 알기에'
오늘은 공부하기가 싫었다. 외우던 단어책을 덮었다. 배고프다. 라면 끓일까? 아냐. 라면은 안 먹어도 될거같아. 그저께 <레 미제라블>을 봤었다. 오늘은 약속이 없다. 막학기를 맞은 대학생이란 이렇게나 심심하다. 올 봄 샀던 옷들을 입고 나가볼까. 여행을 못간다는건 이렇게 갑갑하다. 아예 그 맛을 안들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과 함께 신발을 신었다. 뭘 할지도 생각 안했다. 그냥 무턱대고 앉아있는거다. 이번달 통신사 무료 영화표가 있었다. 이번달에 보려고 계획했던 작품이 하나 더 있었다. 메가박스엔 상영관이 없다. 롯데시네마는 그냥 안간다. 딱 안성맞춤이었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내 계획이 순조롭게 지나갔다.
저벅저벅. 버스에서 내렸다. CGV가 있는 시청에 멍하니 서있었다. 돌아다니고 싶었다. 아무 약속도 없는 날이었다. 자주 가던 꽈배기집이 있었다. 저기 1000원치고 맛있었어.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삼삼오오 누구와 함께 가고 있었다. 누구는 연인이었고 누구는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익숙한 장소가 몇개 보였다. 아. 여기서 누가 알바했었는데. 누구는 또 무슨 일을 했었는데. 오랜만에 오는 시청이었다. 가까이 가기 싫은 곳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가보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영원한 건 없었다. 나도 변했고 세상도 많이 자랐다. 여기 근처 살던 형은 잘 사려나. 있을 때 잘할 걸 그랬나봐. 또 어떤 술집을 지나갔다. 친해지고 싶어 다가가는 걸 잘 못하는 나는 불필요한 오해도 만들어봤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생각났다. 세상에게 하고 싶었던, 속에 있는 말이 많았는데 말이지. 상영시간이 되자 다시 CGV로 돌아갔다. 영화가 시작 할 시간이었다.
<노매드랜드>는 돌아다니는 사람에 관한 영화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초반 도입부부터 아마존에서 근무하는 여자 주인공의 삶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 고장나기 5분전인 밴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화장실은 차 안에 있는 페트병으로 해결한다. 하루 벌어서 하루 끼니 해결한다. 이렇게 고정적인 집이 없는 탓에 주위 사람들의 걱정도 많이 산다. 어떻게 사냐는 말에 어찌저찌 산다고 대답할 뿐인다. 사실 주인공 펀은 말이 좋아 유랑하는 사람이지 홈리스에 가깝다. 자그마한 밴에서 자다가 부지 관리인에게 들켜 쫓겨나기도 하는게 부지기수다. 펀은 어렸을때 부터 이런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펀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자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펀을 기다리는 공동체가 있었다. 같은 노매드들이었다. 영화는 이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갈등이나 화합의 장면이 없다. 그냥 단순히 보여줄 뿐이다. 설명해주지 않는다. 관객이 함께 같이 사는 것 같은 경험을 안겨준다.
난 이 영화의 이런 연출지점이 참 좋았다. 펀에게 동정심을 갖지 않는 연출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영화는 펀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이 세상과 아예 멀어진 사람은 아니다. 그녀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나오기는 하지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안좋은 일이 일어나느냐? 아니다. 좋은 일도 없지만 부정적인 사건이 영화에 나타나진 않는다. 펀과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영화는 이런 평탄한 각본을 통해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꼭 좋은 일이나 나쁜일만 일어나야 삶인건 아니다. 감독은 연출을 통해 이런 메세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고, 나는 그렇게 이해해서 이 영화가 좋았다. 동정심을 갖지 않는 화법은 이런 이점만 갖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다른 특이점을 갖는다.
어울려 산다는 것. 영화는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 지점에 관해 이야기한다. 다들 그렇겠지만 주변사람들과 허구한 날 싸우면서 살진 않는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과 항상 무언가를 공유하며 산다. 이 영화처럼 말이다. 영화 안에선 별의 별 사람과 이에 알맞은 일상들을 보여준다. 먼저 떠난 아들을 기리기도 하고, 그릇을 깨먹기도 하고 또 신나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이런 삶을 보여주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한 부분에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부분을 제외하곤 영화는 우리 일상에 있을 법한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난 감독이 이 연출지점을 통해 관객의 공감을 얻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극적인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과 비슷한 일이 있던 사람이 공감할거다. 그런데 에피소드를 통해 이해를 돕는것이 아닌 일상을 보여주는 화법을 썼다. 이렇게 같이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는건 '그래. 나도 저렇게 좋은 주위사람들이 있었지'같은 동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함일거라고 생각한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만약 없다면 이 사람은 미래에 무슨 사건을 겪어 사연이 생길 예정일테지.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상처를 감당하고 이겨낸 후의 입장일거다. 영화는 이렇게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의 공통점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시끄러운 속사정을 최소화하고 현재에 집중해 관객에게 '당신이 겪는 소소한 힐링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극적인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 후반부의 명대사 '영원한 안녕이란 없다. 언젠가 꼭 만나게 될 테니까'란 대사도 주인공과 한 인물이 대화하다 나온 말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대부분의 기쁨은 관계에서 온다. 영화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를 괄호치고 현재만 보여줘서 우리에게 어울려 산다는게 어떤 힘을 주는지를 말해준다. 신선한 화법이다.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지 않고 '그래. 나도 저런 사람이 주위에 있지' 생각이 들게 하는거다. 그것만으로도 난 기분이 좋아졌다. 노매드랜드는 이런 특장점을 가지고 우리의 내면에 다가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상에게 하고 싶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 못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우리는 주위에 누군가가 있어서 살 수 있다. 그것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 얼굴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직 작별인사를 하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가 이 생각에 힘을 보태줬다. 이 영화처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때 쯤이면 서로 웃으면서 볼 수 있겠지. 좋은 영화다. 아마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나처럼 함께 있거나 떠나보낸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이유가 있는 작품이었다. 볼까말까 고민 많이 했었는데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마 메이저 시상식에서 적지 않게 상을 타게 될거다.
-
- 완전한 집필까지 5% 덜 쓴 것 같은 추리소설 하나
습격당한 기억
"도와주세요!" 문 밖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뭐지? 문 밖에서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때마침 문 밖에는 경찰들이 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사람들. 경찰은 방 안에 있던 남자를 체포했다. 죄목은 살인. 남자가 있던 방에는 여자 한 명이 사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객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완벽한 밀실이었던 범행 장소 514호. 밖에서도, 안에서도 문을 열 수 없다. 경찰로 연행되는 남자. 남자의 이름은 유민호였다. 잘 나가는 IT기업의 CEO였던 유민호. 그의 사회적 성공에 필요한 준비물은 여러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허울뿐인 결혼생활이었다. 피살당한 여자 김세희는 유민호의 불륜녀였던 것. 유민호가 유력한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그의 불륜사실까지 세상에 드러났다.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재판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 유민호는 변호사를 선임하려 했다. 원래 회사에 법률 자문 담당 변호사가 있지만 무슨 사정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턴이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카페에서 문서를 다듬고 있는 중년의 여성은 양신애다. 양신애 변호사는 카페 안에서 유민호가 유력한 용의자로 몰린 그 살인사건의 문서를 보고 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는 양신애. 양신애는 전화통화를 마치고 차를 타고 어느 외진 곳에 있는 별장에 도착했다. 인사를 나누는 양신애와 유민호. 양신애 변호사는 유민호와 대화를 나눈다. 사건의 진상을 천천히 되짚어 보는 둘. 둘은 그렇게 사건의 진상에 도달한다.
이런 장르 좋아해요
후더닛 무비라고 했던가. 범인이 누군지 찾는 영화는 나의 취향 저격이다. 어렸을 때 집 어딘가에 꽂아놓은 <셜록 홈스> 시리즈를 기억한다. 2편에서 셜록이 죽었다가 어느 편에서 다시 살아나고. 그 살아나는 배경에는 팬들의 원성이 있었고.. <셜록 홈스>가 나올 때나 지금 21세기나 어쨌든 사람 사는 것은 별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부터 시작해 미드 <셜록>까지 재탕에 삼탕까지 나왔던 드라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바스커빌 가의 개>다. 이상한 동물이 기어 다니는 한 가문의 정원. 마치 해치를 연상케 하는 동물이 뛰어다녀 사람을 죽이고 다녔지만 의외로 흑막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 <바스커빌 가의 개>는 인간이 아닌 초자연적인 상황처럼 보이는 현상이 돌고 돌아 결국 사람의 행동으로 결론이 나는 그런 소설이었다.
이 <자백> 역시 '어떻게 가능할까?'의 기원을 좇는 후더닛 무비다. '후더닛 '이라는 단어는 'Who done it?'이란 말의 줄임말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가며 추론하는 재미가 이 장르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상응하게 영화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반전이 있다. 이 반전이 들어가는 쾌감은 영화를 보는데 아주 큰 재미가 된다. 몇 년 전에 개봉했던 <나이브스 아웃>이 불현듯 생각난다. 누가 범인인지를 찾다가 결국 누가 진범인지 알려주는 영화. 영화는 섹시하게 딱딱 달라붙으며 마지막 엔딩을 위한 카타르시스를 준비한다. 이 <자백>도 이 후더닛 무비의 장르 특성을 그대로 따라간다. 주인공 유민호가 밀실에 갇혀어서 인간이 했을 거라고는 쉽게 믿을 수 없고. 겉으로 보이는 사건 이면에 무언가가 있고. 영화 이야기를 전복시키는 반전이 있고. 내 기억이 맞다면 최근에 이런 종류의 한국영화로 <헤어질 결심>이 있었다. 그런데 후더닛 향 첨가일 뿐이지 이 <헤어질 결심>의 메인 장르는 로맨스물이다. 한국에 이런 영화가 생소했던 만큼 이런 장르적인 시도는 분명히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영화는 이 스릴러물의 긴장감과 반전 쾌감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강점을 갖는 영화다. 이 덕에 극장에서 무난하게 보기는 안성맞춤이다.
든든하다 든든해
이에 힘입어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우선 주인공 소지섭, 나나 두 배우의 좋은 연기가 돋보인다. 특히 김세희 역을 맡은 나나 배우가 반짝반짝 빛났다. 나와 같은 20대 중반의 관객들이라면 이 배우를 '오렌지캬라멜'로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 가수 활동의 희미해질 때쯤 배우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내 김세희는 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내면을 묘사한다. 이 '인물 안에 숨겨져 있는 무언가'는 극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초중반부까지 극이 유지하고 있는 긴장감이 있다. 이 긴장감 중 하나에 이 김세희라는 사람이 가진 비밀이 들어가 있다. 이야기가 적절한 편집과 시, 청각적인 연출로 관객의 몰입도를 유지시킨다. 이에 몰입하다 보면 이야기 전개가 묘하게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이를 김세희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비밀과 겹치게 연출하며 '그래서 그랬구나' 싶은 쾌감이 느껴진다. 이를 위해 약간 불안해 보이는 눈빛을 갖고 있지만 이면에는 냉정한 사람의 성격을 잘 소화한다. 또 이 인물의 헤어스타일을 통해 입장 처지가 대비되는 느낌이 있다. 이 나나 배우는 어떤 헤어스타일도 잘 소화할 만큼 엄청난 미인이라 감독의 연출 의도도 어렵지 않게 내비치는데 도움을 준다. 소지섭 배우는 연출의 희생양이라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좀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음에도 이 영화에서 이 캐릭터의 개성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배우의 호연이 빛났기 때문이다.
이 두 배우만큼이나 김윤진 배우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어떻게 보면 늘 보는 김윤진 배우 연기 같지만 뭐랄까 저렇게 사자 들어가는 직업군의 또래 여자분들 특성을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이 양신애 배우는 첫마디부터가 이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 유민호가 어떤 입장에 처해있는지를 간단하게 제시한다. 이 두 가지를 살릴 수 있을 만큼 김윤진 배우는 높은 일관성으로 시종일관 내내 유민호를 압박한다. 이 인물이 왜 당당할 수밖에 없는가? 는 인물을 가로지르는 굉장히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직업적 특성을 꼼꼼하게 살리는 섬세한 감정연기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반전 설계까지 좋았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연출 소재는 반전이다. 뭐 이 영화를 보려고 하는 많은 분들이 이 작품에 반전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또 이 영화의 반전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개수가 특정될 수 있는 것 같은데 글쓴이는 꽤나 다수라고 봤다. 그러므로 반전이 들어간다는 말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아무튼 영화의 반전이 흐름 적재적소에 잘 배치됐다. 강박적으로 이 반전이 들어가야 해! 의 느낌이 없다. 이 반전은 인물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고. 어떤 상황은 그전에 제시된 한 장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고. 엥? 이거 말이 안 되는데? 싶으면 그 부분을 반박하는 후반부의 어떤 것이 제시된다. 이런 식으로 영화의 소재를 맞물려서 설계한 반전은 극에서 크게 작동하는 쾌감이 된다.
이는 앞에서도 쓴 이야기를 연출한 시청각적 특성과도 이어진다. 이야기 구석구석에 서스펜스가 배어있는 영화의 템포는 칭찬하지 않을 수가 있다. 영화의 초반부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양신애가 긴 운전을 마치고 유민호의 별장에 도착한다. 이때 양신애는 마치 모든 것을 알았던 것처럼 유민호에게 접근하다. 여기서 묘하게 느껴지는 눈치싸움은 영화의 후반부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이야기의 첫 시작을 끊는 좋은 시작점이 된다. 이 눈치싸움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키워드 '미스터리'와도 관련이 있다. 영화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던 순간이 모여 모여 분명한 사실이 되는 역설을 기초로 두고 있다. 이 연출법을 살짝씩만 다르게 변주하며 전하는 서스펜스가 많은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여 모여 사실이 된다'라는 말은 러닝타임에서 어느 정도 극 전개가 예상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을 느껴도 이야기가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을 생각해보면 마냥 뻔한 맛으로만 밀어붙히지만 않았다는 뜻이 된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가장 극에서 딱 두 개 반전만 못 맞추고 거의 다 적중한 듯하다.
큰 그림은 알차지만 디테일은 약해
그렇게 영화는 본질적인 것을 다 채운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아쉬운 부분이 몇 개 크다. 일단 첫 번째. 원작 <인비저블 게스트>를 지금 왓챠 피디아에서 검색하면 좋은 평이 많이 보인다. 원작 전개를 이 영화가 그대로 따라왔다는 리뷰가 몇몇 보인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데 있어 원작의 유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글쓴이가 원작을 아직 안 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입장에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서 주요하게 작동했던 소재가 있다. 바로 의무기록사본과 전화다. 전자 의무기록 사본은 영화에서 반전의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인물의 어떤 행동에 개연성을 덧붙이는 셈이다. 직업이 경찰이 아닌 어떤 인물이 다른 사람의 의무기록 사본을 떼서 사본으로 갖고 있는 거 불법이다. 글쓴이는 강박장애를 꽤나 길게 앓고 있다. 이 강박장애 진단을 받기 전에 병원 가서 상담을 받을지 안 받을지 고민했다. '이거 다른 사람들이 알면 창피한 것 아닌가?' 싶어서 이리저리 수소문도 해보고 주치의 선생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확실하다. 그냥 불법이다. 그런데 극에서 어떤 인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진다. 이게 적지 않은 분들이 신경정신과를 찾을 일이 없어서 어물쩡 넘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 부분은 그냥 말이 안 된다. 또 극에서 어떤 인물이 전화통화를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전화통화는 한두 번이 아니라서 스포일러가 아닐 것이다. 이 통화 중 한 부분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걸 이렇게 쉽게 한다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앞서 의무기록 사본에 대한 내용이나 이 지점이 영화의 단점으로 작동하는 부분은 아쉽다.
또한 가장 큰 영화의 단점은 캐릭터 중 한 명이다. 후반부까지 이 영화에서 연기를 가장 잘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 있다. 이 영화에서 이 인물은 굉장히 주도면밀하다. 영화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사건의 설계자이자 관련 인물로서 강력한 동기부여가 캐릭터를 지배한다. 오케이.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동기부여가 어떻게 생겼어? 에 대한 원인도 조각이 맞춰질 때의 쾌감이 어마 무시하다. 이 아이디어도 좋았다. 그런데 이 자체만 좋았다. 이를 위해 그 인물이 어떤 행동들을 해야 한다. 극에서 이 사람이 이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한 캐릭터의 대사로 암시되긴 한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지나치게 비약이 이뤄진 부분이 있다. 분명히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 텐데, 이렇게 과한 능력치가 후반부에서 작동하는 반전 요소로 기능한다. 오히려 설득력이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흑막이 최종적으로 밝혀지는 후반부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어떤 사람이 영화 초반부에 '근처에 경찰들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러닝타임을 돌아 어떤 상황과 장소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 대사가 영화에서 없어도 사실 큰 관련이 없다. 단순히 후반부 특정 인물들의 어떤 상황을 관객에게 말해주기 위해 뜬금없는 소리를 집어넣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후반부에서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한 정보가 왜 적법한지를 바로 전 시퀀스에서 설명한다. 이 시퀀스가 지나면서 바로 직후에 제시되니 설정 오류를 영화가 직접 보여준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뭐 이 영화고 끝나고 난 후의 세계관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만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감독님의 의견이 궁금하다.
그래도 볼만해
영화의 역할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오락이지!'라고 대답할 수 있다. 영화 재밌으려고 보는 거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충분히 구실 한다. 위에서 상기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극장 분기마다 가는 분들이라면 사실 잘 모르고 넘어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그게 누군가의 수준을 가로지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나와 소지섭의 재발견. 김윤진이라는 베테랑이 이끄는 영화까지. 시청각적인 연출도 잘 들어갔고 군데군데 보이는 영화의 미장센도 돋보인다. 지금 극장가는 살짝 소강상태다. <공조 : 인터내셔날>이 휩쓸고 난 후 살짝 비수기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딱히 할 일 없는 분들이라면 괜찮은 추리소설 읽는 겸 극장을 찾으시는 것을 추천한다. 친구, 연인,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0월 29일,
12시에 극장을 나오고 나서 본 뉴스들은
차마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 분들에게 더한 고통이 찾아가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 Better Days)
개봉일 : 2020.07.09 (한국 기준)
감독 : 증국상
출연 : 주동우, 이양천새, 윤방, 오월, 주 이, 장예범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Was와 Used to는 둘다 과거시재지만, Used to는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야.” 아이들 앞에 서있는 선생님이 뭔가를 떠올리는듯한 표정으로 영어 지문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이제 과거가 된 일에 사로잡혀있기보단 이젠 ‘그렇지 않은’ 현재를 살고싶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소년시절의 너>라는 제목만 봐서는 왠지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하이틴 로맨스 또는 첫사랑에 관련한 아련한 영화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지만, <소년시절의 너>는 끝없이 버텨야만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개봉 당시 ‘충격적이었다’는 평이 많은 영화였는데, 그건 바로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학창시절, 물리적 폭행 장면의 수위가 꽤 높아 누군가에겐 더 힘들고 울렁이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에 관한 트라우마가 크다면 이 영화를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폭력적인 장면에 더해 가난한 주인공의 집안 사정과 대입을 앞둔 상황이 더욱 무거운 압박감이 되어 보는이의 마음을 누른다. 아프고 또 두렵지만 성공하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가기위해 꾹 참고 견뎌야만 하는 소녀와 거친 환경에 홀로 남겨져 강해질수밖에 없었던 소년. 그리고 ‘너희는 어리니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연약한 아이들을 지켜주려 노력하지 않는 무책임한 어른들. 부끄럽고 슬프고 미안했다. 거기에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말 한마디가 더 얹어지고 나니 더 부끄럽고 아팠다.
영화의 중심은 소년과 소녀의 그 나이대에 맞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매 순간 포기하고, 벗어나고 싶은 세상에서 만난 나처럼 아픈 사람, 나의 안녕을 물어준 사람, 나를 위로하고 나를 위해 희생해준 사람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위로. 그리고 그 다음에 피어난 사랑. 풋풋한 소년소녀의 첫사랑이라기보단 아픔과 멍으로 가득찬 단단한 그 감정이 긴 계단밑으로 굴러떨어지는듯했다.
몰입도가 높고 여운이 긴 영화여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본 날은 밤새 주연배우의 사진을 찾아봤던것같다. 왠지 그들이 영화 주인공이 아닌 현실에서 웃는 얼굴을 봐야만 이 슬픈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것 같아서 말이다.
소년시절의 너 시놉시스
시험만 잘 치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댈 곳 없이 세상에 내몰린 우등생 소녀 ‘첸니엔’과 양아치 소년 ‘베이’.
비슷한 상처와 외로움에 끌려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두 사람은 수능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첸니엔’의 삶을 뒤바꿔버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첸니엔’만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베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대입재수를 준비하는 학교.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첸니엔은 후 샤오디에와 함께 우유를 나르고 있다. 첸니엔은 반에서 그닥 눈에 띄지 않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었다.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은 우유들 사이에 유일하게 빨대로 뚫려있는 우유처럼 비슷한 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게 망가져있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그런 존재였다. 같은반 아이들은 후 샤오디에의 괴롭힘을 모르는척하고 후 샤오디에는 “왜 너희는 보고만 있니?”라고 묻지만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죽은 후 샤오디에를 보며 “왜 뛰어내린거야?”라고 되물을 뿐이다.
후 샤오디에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은 사람은 첸니엔이 유일했다. 바닥으로 추락해 죽은 동급생의 모습을 보며 카메라를 꺼내드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첸니엔은 체육복으로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첸니엔은 새로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된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선행을 베풀어서, 어른들에게 가해자를 고발한것 같아서. 이유는 그뿐이었다. 의자위에 고인 피 위로 첸니엔의 얼굴이 반사되고 후 샤오디에가 당했던 모든 폭력은 다음 타겟인 첸니엔에게로 향한다.
어른들은 모든 사실을 외면한다. 폭력을 당한다는 피해자에게 “애들과 잘 지내도록 노력하고, 선생님이 얘기할게.” 그게 전부다. 형사들도 이유와 상황을 물을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 행동에 더불어 엄마인 저우 레이가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부풀려진 소문까지 겹쳐지고 첸니엔은 더 심한 폭력을 당하게 된다.
불법장사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라고 말하는 첸니엔의 엄마 저우 레이. 그녀는 자신의 정수리에 흰머리가 자라고 있는것도 모를만큼 열심히 일한다. 딸을 베이징 대학에 보내고 그곳에서 함께 인생을 바꿔가겠다는 희망으로 첸니엔을 키운다. 하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매일 빚쟁이들만 찾아올뿐이다.
첸니엔은 마지막 희망인 ‘베이징 대학 입학’만을 바라보고 견딘다. 선을 넘은 폭력도, 불안한 가정 형편도. 심지어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텐데 뒷골목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남자(샤오 베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까지 하다니. 이토록 용기있고 착한 소녀가 또 어디있을까 싶다.
샤오 베이는 그날,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다. 홀로 살아남아야만 했기에 강하고 거칠어져야만 했던 소년 샤오 베이. 누구도 그 소년을 돌아보거나 챙겨주지 않았다. 같이 아파해주지도 않았고. 샤오 베이에게 첸니엔은 “처음으로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이었다.
“날 보호해줄래?”
위를 막아도 아래를 향해 날아오는 공처럼, 막아보고 또 모르는척 하려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괴롭힘속에서 첸니엔은 어쩔수 없이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샤오 베이를 만난 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새로운 방법을 찾게된다.
“다들 어리잖아. 두번째 기회는 줘야지.”라고 말하며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위하는 어른들의 이상한 법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건 ‘법’이 아닌 ‘물리적 힘’이었다. 첸니엔은 샤오 베이에게 보호 받으며 열심히 대입을 준비한다. 샤오 베이는 첸니엔이 책을 볼 수 있도록 전구를 하나 더 달고 첸니엔은 샤오 베이가 누워있는 침대 방향을 바라보며 잠이 든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 첸니엔과 샤오 베이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를 지켜주지 않는다. 폭력과 아픈 기억 또한 어른이 되면 잊혀질거라며 말도 안되는 위로를 한마디 던질뿐, ‘아픔을 잊는 법,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법’ 같은건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세상속에서 첸니엔과 베이는 함께 앉아 머리를 밀며 눈물을 흘린다. 보호자 없이 향해야하는 수험장과 모독적인 희롱과 폭력을 견뎌야했던 골목. 첸니엔은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겨낸다.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런 첸니엔을 위해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명뿐이다.
“넌 계속 걸어 네 바로 뒤에 내가 있을게.”
“첸니엔은 베이에게 갚을게 하나 있다.”
베이는 첸니엔을 위해 첸니엔의 과실치사 혐의를, 아니 살인죄를 뒤집어쓰기로 다짐한다. 사고로 인해 죽은 학교 폭력의 가해자 웨이 라이를 죽이고 여러 여성들을 성폭행 하려고 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든 베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첸니엔은 대입을 마치기 위해 끝까지 시험을 보고,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다음’과 ‘다시’가 꼭 돌아올거라는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첸니엔은 죄책감을 안고 베이징으로 떠날 준비를 하다가 정 형사의 거짓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왜 우리 둘을 그냥 두지 않냐며 울부짖는 가냘픈 소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슬프게 느껴졌다. 견디면 견디는대로 더 아팠고, 아프다 말하면 어른들은 잊혀질거라 대답하거나 임시방편을 내놓고 사건을 외면한다. 피해자를 아프게 했던 가해자는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친구로 지내면 좋았을걸, 이제 친구하자’와 같은 열불나는 말만 뱉어내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가 두려워했던건 자신의 죄가 아닌 범죄자라는 낙인정도 뿐이었으니까.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만난 유일하게 나를 지켜주고 돌봐주는 사람. 첸니엔은 베이와 함께하길 선택한다. 베이는 항상 첸니엔의 뒤 또는 옆에서 첸니엔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첸니엔은 베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가 ‘어려서 모른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이 무책임한 어른들보다 더 강한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몰랐다. 이 소년과 소녀의 아픔을. 엄마에게 버림받은 소년의 절망과 혼자서 살아남아야했던 버거움을. 한줄기 희망을 잡고 버텨야만 했던 소녀의 떨리는 손과 어깨를. 이제는 알아야한다.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되도 않는 위로와 동정보다는 이런 아픔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법과 든든한 방패막이 필요하다.
최근 큰 이슈가 되었던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들을 접하며 이 영화와 처음 봤을 당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상처를 입었던 내 마음을 되돌아봤다. 항상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와 지금도 누군가가 받고있을 상처를.
<소년시절의 너>라는 영화는 힘들고 어두운 영화임은 분명하다. 10%쯤의 희망과 서로를 향한 사랑이 빛나고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아프고 울렁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봐줬으면 한다. 폭력이라는것이 얼마나 악랄하고 피해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지. 그리고 세상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소년시절의 너>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고,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Kyung film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뒤섞인 난맥상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법정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승패를 가리는 장소라고 믿으며 각종 꼼수와 편법에 능통한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그는 감옥에서 암에 걸린 아버지의 가석방을 약속받자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 대령의 변호를 맡기로 결정한다.
군인 신분 때문에 재판 기회가 한 번 밖에 없는 박태주. 하지만 그는 변호인에게 쉽사리 협조하지 않는다. 원칙주의자인 그의 눈에 정인후는 양아치니까. 그가 내란을 사전에 공모했는지, 아니면 위압에 의해 명령을 따랐는지가 재판의 쟁점인 가운데 박태주는 거짓 혹은 편법 증언을 요구하는 정인후와 거듭 부딪힌다.
한편, 10.26 사태를 계기로 박정희의 후계자가 되어 권력을 잡겠다는 야욕을 품은 합수부장 '전상두'(유재명). 박 대령 재판을 자기 발판으로 삼기로 결정한 그는 실시간으로 재판관에게 쪽지를 전달하고 재판을 도청 및 녹음하며 정인후의 노력을 물거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무위에 그친 역발상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경호원들은 박정희 대통령 외 5명을 사살했다. 이 사건의 재판을 다룬 <행복의 나라>는 시간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어중간하다. 사건의 전후사정이 이미 영화화돼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의 동기를, <서울의 봄>은 사건 이후 12.12 군사반란을 영화화했다. 심지어 둘은 장르도 달랐다. 전자는 누아르를, 후자는 전쟁 영화의 속성을 강조했다.
이에 <광해, 왕이 된 남자>와 <7년의 밤>을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역발상을 했다. 10.26 사태나 주동자인 김재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은 공범 박흥주 육군 대령과 그를 변호한 태윤기 변호사에게 주목했다. 특히 그들의 인생사를 각색해 극명하게 반대되는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게 되는 과정을 법정물로 포장해 감동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행복의 나라>는 역발상의 힘을 스스로 포기했다. 신념과 규칙에 충실한 삶 대 생존을 위해 유연해야 하는 삶이라는 대립 구도를 깊게 파고드는 대신 쉬운 길을 간다. 무조건적인 악역 전두환을 전면에 내세워 스케일을 키우고 군사 정권과 민주 시민의 대립을 강조한다. 문제는 같은 이야기로 천만이 넘는 관객의 뇌리에 각인된 선배들이 있다는 것. 결국 노선을 바꾼 순간 <행복의 나라>는 자기 자리를 잃고 말았다.
거대한 사건 속 개인적인 이야기
장르만 놓고 보면 <행복의 나라>는 <변호인>과 비슷해 보인다. 둘 다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법정물이니까. 하지만 두 영화의 지향점은 전혀 다르다. <변호인>은 분노를 연료로 삼아 달리는 작품이었다. 무고한 피고인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군사정권의 무도함과 그에 맞서는 변호인의 투쟁. 이 명확한 선악 구도에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력을 더하니 마치 들끓는 불과도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행복의 나라>는 다르다. 선악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 보고 있는 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성이 핵심이다.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의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두 주인공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정인후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공을 꿈꾸며 판검사가 되려다가 실패한 변호사다. 법정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곳이 아니라 이기고 지는 곳이라는 대사에는 그의 인생이 축약되어 있다.
그 반대편에는 박태주 대령이 앉아 있다. 그는 중앙정보부 비서실장인데도 판자촌에 집이 있을 정도로 청렴한 군인이다. 요직에 있지만 권력을 마다하고 최전방 전출을 거듭 요청한 참군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10.26 사태를 매개로 완전히 다른 두 삶을 충돌시킨다. 배경은 대한민국의 향배를 뒤바꾼 거대한 사건이지만, 정작 내용은 철저히 개인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감독의 전작인 <광해, 왕이 된 남자>와도 유사하다. <광해>도 중심 사건은 광해군을 축출하기 위한 정치극이었다. 하지만 정작 주된 내용은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충(忠)으로 무장한 유학자 '허균'(류승룡)이 광해군으로 위장한 광대 '하선'(이병헌)과 지내면서 자기 신념과 사상의 문제를 깨닫고 새 나라와 새로운 왕을 꿈꾸게 되는 티키타카야말로 천만 관객을 휘어잡은 원동력이었다. <행복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두 인생의 충돌로 빚은 법정극
전혀 다른 삶의 궤적과 신념을 지녔다 보니 정인후와 박태주의 첫 만남은 엉망이었다. 정인후는 철저한 원칙주의자 군인 박태주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관등성명, 상명하복이 권위주의의 발현에 불과하다며 비웃는 사람이니까. 박태주도 다르지 않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법정에서 온갖 편법을 써가며 승리를 추구하고, 정의가 아니라 돈과 이익을 위해 변호를 맡는 정인후는 단지 변호사일 뿐, 신뢰할만한 변호인이 아니다.
1차 공판만 해도 정인후는 자기 의도대로 재판에 임한다. 군인이니 군법에 따라 단심제 군사 재판을 받겠다는 박태주. 정인후는 그를 설득하는 대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한다. 군사 재판은 받지만, 단심제는 3심제로 바꿔달라며 위헌심사요청을 한다. 위헌심사요청이 기각되자 재판관을 교체해 달라며 재판을 여론 싸움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2차 공판부터는 다르다. 정인후는 점차 피고인의 입장과 신념이 녹아든 전략을 수립한다. 군인에게 명령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저 명령을 따른 박태주의 책임을 부정하는 식이다. 대통령을 살해한 후 정보부가 아니라 육군본부로 가자는 의견을 박태주가 냈다는 진술에 착안해 내란죄 혐의를 부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태주도 정인후를 만나 변한다.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재판을 포기하려던 그. 그는 군인이고 원칙주의자면 규칙대로 재판장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서 책임을 지라는 정인후의 일갈에 마음을 다잡는다.
이는 법정극 특유의 쾌감으로 이어진다. 감정 호소로 일관한 <변호인>과 달리 <행복의 나라> 속 재판씬은 판세가 거듭 뒤집히다 보니 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에 더해 흐름을 가져오려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변호인과 피고인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한 팀이 되는 이야기가 병행되니 복합적인 재미가 만들어진다. 진정한 인권변호사가 되어가는 정인후를 보면서 박 대령이 웃음과 하이파이브로 화답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익숙한 맛으로 돌파하는 고구마
정인후와 박태주가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은 자칫 고구마일 수 있다. 비록 역사를 반영한 것이기는 하나, 박태주라는 캐릭터가 다소 과하게 올곧은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 자기는 죽고, 아내와 두 아이만 남아 험난하게 살아야 할 상황에서도 그는 자기 신념을 좀처럼 꺾지 못한다. 상관도 못 버리고, 명령에 충실한 군인이라는 자부심도 저버리지 못하고, 대통령을 살해했지만 옳은 일을 했다는 확신도 내려놓지 못한다.
추창민 감독은 고구마를 익숙한 맛으로 뚫어버린다. 정인후의 아버지와 박 대령을 겹쳐 보이게 한다. 개척 교회 목사로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돕다가 수감되고, 가족을 돌보지 못한 아버지. 정인후는 자기 신념대로 살아야 하는 아버지를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해도 가슴으로 이해해 간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가 박태주를 만나는 장면과 이어진다. 그 덕분에 자칫 답답할 뻔한 전개는 가족애로 변환되어 더 큰 감동을 자아낸다.
물론 다소 양식적인 스토리텔링이기는 하다. 사건과 무관한 인물을 통해 시대적 사건에 접근하면서 특히 감정선을 자극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유발하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화법이니까. 야매 변호사였다가 사건을 맡은 후 진정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성장 서사는 정인후나 <변호인>의 송우석이나 다를 바 없다. 또 정인후와 아버지의 관계성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신파를 의도한 구조 배치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과욕과 함께 무너지다
하지만 과욕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행복의 나라>는 이내 본연의 색을 잃는다. 의외로 초중반부까지 이 작품은 10.26 사태의 배경이나 실체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부마 민주 항쟁이 대학살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한 김재규의 결단 정도로 언급할 뿐이다. 애초에 핵심 플롯 자체가 정인후와 박태주 둘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이는 의도적인 공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12.12 군사반란을 필두로 실제 사건에 가까워진다. 그러니 역사적 맥락의 공백이 서서히 두드러지면서 영화의 만듦새도 무너진다. 배경이어야 할 사건이 돌연 주인공이 되다 보니 묻어 두었던 의문점이 한 번에 터져 나오기 때문. 일례로 중반부까지만 해도 매력적이었던 입체적인 인물상은 중심점을 잃고 흩어진다. 정인후의 경우 단지 박태주를 살리려는지 민주주의 투사가 되려는지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박태주도 명령에 의한 피해자인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투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가 청렴한 군인이고 신념에 맞는 명령을 따랐으니 민주주의 투사로 여겨야 하는지, 군사 정권에 협력한 군인을 살리는 게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인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10.26 사태의 본질과 맥락을 외면한 채로 시작한 미시적인 이야기를 무리하게 거시적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에 더해 장르적으로도 균형을 잃는다. 12.12 군사반란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서울의 봄>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서울의 봄>처럼 쿠데타 과정을 자세하거나 긴장감 넘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10.26 사태는 지우고 12.12 군사 반란을 부각한 선택은 법정극이라는 장점도 희석시키고, <행복의 나라>만의 개성을 깎아먹는 악수가 되고 만다.
전두환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마지막으로는 극 중 전상두, 곧 전두환을 다루는 방식도 <서울의 봄>과 비교를 피할 수 없다. 황정민의 전두광과는 달리 유재명의 전상두는 상대적으로 일차원적이다. 전자는 들끓는 성공욕,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보스 기질, 위기 때마다 빛나는 간교함이 어우러진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반면에 전상두는 그저 권력을 잡기 위해 살인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절대악으로만 묘사된다.
그 결과 전상두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영화는 편의적으로 느껴진다. 전두환이 의문의 여지없는 악역이기는 하나, 그를 덮어두고 비난하면 메시지가 뻔해지고 재미도 덜해지기 때문. 정인후가 전상두 면전에서 욕을 하는 골프장 시퀀스가 통쾌하거나 희열이 느껴지는 대신 지루하고 늘어진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슈퍼맨처럼 압도적인 힘을 지닌 히어로를 잘못 활용해 액션의 긴장감과 쾌감을 모두 놓친 <저스티스 리그>와 비슷하다.
그렇기에 <행복의 나라>가 전두환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포기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유독 짙다. 악명 높은 한 인물 대신 비교적 덜 알려진 이들의 서사에 우직하게 집중했다면 한국 현대사를 다룬 이전 시대극들과는 또 다른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조정석과 이선균, 다시는 재회할 수 없는 두 주연의 연기도 함께 빛이 바래기에 더욱 안타깝다.
Acceptable 무난함
시대의 그림자에 가려진 개인을 비추기에는 조명이 너무 약하다
-
- [JEONJU IFF 데일리] 욕망의, 사랑의, 늙음의 적이 온다.
제18회 아시아 필름 어워즈 감독상, 제37회 도쿄국제영화제 도쿄 대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일본 영화제를 휩쓴 영화인만큼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혔다.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적이 온다>는 월드시네마 섹션에서 상영된다. 위 영화는 야스타카의 소설 <적>을 토대로 만들어진 만큼 평범한 일상에 불쑥 나타난 '적'의 존재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기대가 된다.
영화 정보
요시다 다이하치
YOSHIDA Daihachi
Japan
2024
108min
DCP
B&W
Fiction
15세 이상 관람가
Korean Premiere
시놉시스
은퇴한 대학 교수인 기스케는 아내가 죽은 뒤 홀로 지내고 있다. 기스케는 저축한 돈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가며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컴퓨터에 '적이 온다'는 불길한 메시지가 나타난다. 제18회 아시아필름어워즈 감독상 수상작영화리뷰
잠에서 깨어나 세수하고, 아침 식사를 정성스레 준비하여 식사를 하고, 양치 후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며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곤 잡지에 실을 프랑스 문학 에세이 원고를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때론, 글이 막혀 기간을 연장할 때도 있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던 기스케. 평소라면 무시했을 스팸이지만 '적이 온다'라는 메일이 도착한다. 그 문장 하나가 기스케의 일상을 조금씩 뒤흔들기 시작했다. 과연 '적'의 정체는 무엇일까.
77세의 은퇴한 교수 기스케는 아내와 사별한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왔다. 강연 요청이 와도 최저비용을 100만 엔을 기준으로 그 이하를 제시하면 거절하는 등 자신의 가치를 높이 산다. 더 떨어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요건인 것이다. 이 생이 얼마나 버틸지 계산해 봐. 의외로 삶에 생기가 돌아"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한편으로는 몰려오는 감정을 애써 감추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는 어느샌가 점점 더 깊어져가는 고독감과 노년의 쓸쓸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자신의 마음을 마주한다. 삶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과 함께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외로움이 어깨를 짓눌렀고 삶으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그의 안에 자리 잡았다. 최소한의 요건으로 살아가기엔 '버티는 삶'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벅찼기 때문이다.
영화 속, 한 노인이 젊은 여자에게 개똥을 치우라고 하며 윽박을 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가 코를 막는 순간, 노인은 '나한테 냄새가 나냐'며 발끈하고 '3일에 한번 씻는데, 그 정도면 잘 씻는 거 아니냐"라고 궁시렁하며 불쾌감을 표출한다. 그때 기스케는 움찔거리며 자신에게도 냄새가 나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집에 들어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의 냄새를 맡아보며 귀 뒤, 사타구니, 겨드랑이 곳곳을 비누로 문질러가며 씻는다. 그는 오래전부터 제일 많이 받은 선물이 비누인데, 공교롭게도 일본인들이 가장 잘 선물하는 것이 '비누'라고 한다.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도 다양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혐오'의 시선이 자리 잡아 있는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냄새나고', '무례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며', '고집불통', '우기기 좋아하는' 그런 사람으로 낙인찍혀 그 생각은 편견으로 이어진다. 그 편견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로 자리 잡아 전 세대가 융화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노인은 우리의 '미래'이다. 노인을 혐오하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를 혐오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도 모르게 늙음을 두려워하는 마음 가짐으로 이어진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으며 그토록 자연스러운 일이 부자연스럽고,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일이 되는 작금의 현실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 후에도 개똥으로 인해 한 노인은 지나가던 젊은 여자에게 또 화를 낸다. 그녀가 평소에 반려견이 똥을 싸면 치웠다고 말했기에 그녀의 반려견이 싼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똥이 개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미지의 '적'과 관련되어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초반에는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세계의 위협이 될 경고음을 울렸으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고, 가짜뉴스의 일부라고만 생각했다. 정보 과부하가 불러온 무관심의 결과는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현재의 삶을 위협할 정도의 재앙이 닥쳐오며 키스케는 선택해야만 했다. 재앙에 맞설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그 재앙은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처럼, 적이 침략한 것처럼 갑작스레 닥쳐왔지만 자연스레 침투해 우리 주변에 늘 존재했고, 조금씩 침략하여 나중에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도착한 낯선 메일 한 통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그는 그 메일을 본 순간, 찾아온 내면의 변화가 꿈을 통해 표출된다. 시간의 자연스러움은 마치 적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고도 두려운 방식으로 찾아온다. 변명도, 위안도, 자책도, 욕망도 꿈을 통해 이루어져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기스케의 욕망은 주로 '꿈'을 통해 표출된다.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으며 때론 그 속의 인물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현실에는 없을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꿈과 현실이 구분이 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바로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가장 솔직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초반, 망원경을 보면서 "인간의 부끄러움을 볼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은 외부 세계가 아닌 '자신'을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망원경은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그리고 내면을 비추는 자화상이다.
그렇기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과연 현실인지 꿈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현실이 아니라면 이것은 뭘 의미하는 걸까? 영화는 쉽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조금씩 실마리를 제공하며 저만의 해석을 만들어가게끔 유도한다. 화면 자체를 흑백으로 설정하여 어떤 편견을 주입하지 않는 장치일 것이다. '적'의 존재를 막막하고 헤쳐나가야 할 두려움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살아가는 이유를 의미했다. 삶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기스케에게 '용기',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가 음식을 먹었던 것처럼, 투지 있게 삶을 살아가라는 어떤 의지로써 '적'이 탄생한 것일지도 몰랐다. 우리가 삶 속에서 종종 마주하는 장애물, 도전, 목표는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살아가야 할 의지를 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감독이 삶의 끝자락에서 소설 <적>을 통해 깨달은 그 감정이 오롯이 이 영화에 드러난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모를 이야기는 곱씹을수록 맛있는 맛이 난다. 지루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어딘가 모호해 보이는 영화 곳곳의 흔적을 조합해 가며 영화 속에 숨겨진 메시지들을 풀어가는 맛이 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인생의 균열을 통해 보이지 않던 내면의 심연과 마주하게 된다. 내면이 붕괴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 그것을 이겨내려는 의지 또한 드러난다. 영화는 그 모순적인 감정을 화면에 드러내며 '적'이라는 형체 없는 존재를 통해 한 사람, 아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꿈과 현실이 구분이 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적은 외부의 침략자이기도 했지만 실은 기스케가 외면하고 싶었던 삶의 유한함과 고독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각자의 ‘적’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상영스케줄
2025.05.03 17:30 CGV 전주고사 2관
2025.05.04 11:00 CGV 전주고사 5관
2025.05.06 21:30 CGV 전주고사 5관
-
- 왓챠 9월 1주 신작 영화
[WEEKEND CHOICE MOVIE] #왓챠#왓챠신작 #왓챠영화
#다만악에서구하소서 #파이널컷 #담보 #또하나의약속 #솔트 #피로미나의기적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
- 다우렌의 결혼 - 완성도보다는 힐링과 성장에 집중하다
-
입봉을 꿈꾸며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조연출 ‘승주’. 하지만 현지의 고려인 감독 ‘유라’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예정된 결혼식을 놓치게 되며 다큐멘터리 촬영에 문제가 생긴다. 한국에서는 연출을 해서라도 다큐를 완성해 오라는 압박을 가하는데... 이때 ‘승주’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돕던 ‘유라’ 감독의 삼촌 ‘게오르기’는 가짜 신랑, 신부를 구해서 결혼식을 찍자고 하며 ‘승주’가 신랑 ‘다우렌’이 된다. “지금부터 가짜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다큐 찍는 게 맞나…?
-
-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30초 예고편
언제 죽을지 몰라도 뜨거운 사랑은 하고싶은 마르타.
데이트 앱을 켜 운명의 남자를 찾기 시작하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째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포기 직전의 마르타에게도 기적은 있었으니.. 이시대의 완벽남 아르투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르타는 아찔한 흑역사를 생성하고,
그 대가로 단 한번의 저녁 식사 기회를 얻게 되는데..!
우리가 사랑에 빠질 확률 9.5%
마르타의 목숨을 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
-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티저 예고편
다시 시작된 마법 세계의 혼돈!
운명을 건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본격적인 대결,
과연, 뉴트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