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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ong2023-02-06 16:03:41

이런 영화를 보고 리뷰를 안 쓰면 그건 범죄지

<애프터썬> 스포일러 없는 리뷰

 

 

튀르키예 여행길

 

 

 

아빠. 아빠가 어렸을 때 원했던 건 뭐야? 튀르키예 여행길에 오른 부녀. 부녀는 영상을 기록하려고 한다. 딸 소피는 이 캠코더를 들고 아버지 앞에 섰다. 듬직한 아버지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던 아버지. 다른 아빠들처럼 딸에게 한없이 다정하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딸과 아이의 어머니는 함께 사는 것 같지만 정작 부부끼리는 이혼한 듯하다. 그래도 아버지와 딸 사이에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다. 아빠가 평소에 딸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지금 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 평소에 부녀관의 관계가 어쨌든 간에 둘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아빠와 함께라는 것이 즐거운 소피. 생글생글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환하게 웃으며 답하는 아버지 캘럼. 그런데 뭐랄까 아버지의 눈빛이 뭔가 다른 것 같다. 너무 즐거워서 그런 걸까? 어린 소피가 뭔가 어두워 보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는 나이가 11살이다. 그래도 이런 소피에게 왠지 캘럼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왠지 불안해 보이는 아버지. 아버지도 누군가와, 특히 소피와 함께하는 것을 그리워했던 듯하다. 아버지의 외로움이 느껴졌던 어린 소피였기에 이 여행이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살짝 어두웠던 아버지를 봤던 그녀의 기억이, 소피의 낡은 캠코더에서 환하게 재생된다.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이 영화는 어른인 소피가 유년시절 겪었던 아버지와의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과거 시점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이 과거를 떠올리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캠코더다. 캠코더를 보고 과거 기억을 떠올라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영화가 됐을까? 소피라는 인물에게 아버지와의 여행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살짝 덜 임팩트 있었던 기억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이 기억을 떠올리는 이유(샬롯 웰스 감독이 이 영화의 소재로 자전적인 키워드를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고, 그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에 대해 왜 아름다운 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는지를 묘사한다. 우선 왜 아름다운가? 에 대한 내용이다. 영화에 뭔가 임팩트가 쾅 찍히는 사건은 없다. 갑자기 아버지가 크게 아프다거나, 딸 소피가 위험에 처한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튀르키예 여행이 전부다. 뭔가 심심한 영화의 형식. 어떤 분들은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영화를 이렇게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 이 영화의 핵심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기로 끝나야 아버지 캘럼의 내면 묘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또 영화에서 아버지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 딸 소피다. 딸 소피의 리액션이 현재 시점과의 대조를 이뤄서 '이 사람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조명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기억들이 왜 특별할 수밖에 없는지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의미는 간단하다. 영화 전체적으로 담겨있는 것은 소피의 회한이다. 이 회한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일상적인 제스처도 알아채지 못했다'라는 아쉬움이 담겨야 한다. 이렇기 위해서 극적인 사건을 넣으면 후반부에 강조되는 영화의 내적 정서에 금이 갈 것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이 극적인 사건보다, 현재와 과거의 대비를 강조한 티가 난다. 다 보고 나서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뭐야?'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바로 아버지가 딸에게 어떤 대사를 하는 신인데, 이 대사에 방점이 찍힌 것도 형식에서 오는 강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쉽게 볼 수 없던 것에 대하여

 

이 영화가 가지는 비범함 중 하나는 창의성이다. 이 창의성은 기획력과도 관련이 있다. 영화의 핵심 소재는 사실 좀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아버지에게서 그때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다. 보지 못한 것을 본다는 것은 좀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굉장히 간단하게 이를 보여줬다.

 

 

 

우선 첫 번째 '볼 수 없던 것'은 아버지의 외로움이다. 영화가 어떻게 아버지의 외로움을 묘사했을까. 바로 캠코더라는 소재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캠코더는 기록에 관한 도구다. 딸 소피는 아버지와 여행하며 사소한 것도 기록에 남긴다. 영화가 만들어져서 우리 모두가 볼 수 있지만 작품 내적으로 소피는 '나 혼자만 볼 거'라서 이 영상을 찍는다. 이 영상은 종종 소피의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뭐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질문도 있지만 어떤 질문은 왜 아버지 캘럼이 그런 기분에 있는가? 와도 닿아있다. 그리고 또 어쩔 때는 아버지 캘럼이 이 캠코더에 어떤 코멘트를 한다. 이 답을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쉽게 투영할 수 있다. 이 코멘트는 왜 이 지점에서 아버지의 내면을 묘사하는 장치로 느껴진다. 그리고 캠코더라는 소재가 등장하지 않은 장면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 도처에 깔려있는 외로움을 묘사할 때, 주위에 캠코더가 없는 캘럼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작품에서 밑줄 쳐져 있기 때문이다. 소피가 든 캠코더 앞에서 행복해 보이는 캘럼과 대비되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연출적으로 더 강조되어 있는 듯하다. 

또 이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에게 표현하기 위해서 쓴 방법 중 하나는 상상력이다. 영화에서 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법한 요소들에 인물들의 내면이 서려있는 지점을 잘 묘사했다. 이는 이 요소들을 우리가 찾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이었나? 와도 닿아 있는 부분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최고 강점이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영화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역시 미술이다. <노매드랜드>처럼 자연 풍광을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아바타 : 물의 길>처럼 그래픽을 바탕으로 한 미장센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애프터썬>에서 보여주는 미술은 익숙하면서도 다르다. 글쓴이는 이 <애프터썬>이 시각적으로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취한 형식을 지금 팝 음악 아티스트들이 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왠지 모르게 검정치마와 저스틴 비버가 음악을 만들며 낸 뮤직비디오에서 본 듯한 느낌을 영화 러닝타임 동안 내내 끌고 간다. 이런 감성이 최근에도 유행으로 통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뉴진스'라는 팀이 'ditto'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낸 뮤직비디오가 이런 느낌이었다. 물론 이 외에도 영화의 때깔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여러분이 지금 네이버에 들어가서 '애프터썬'이라 검색하며 나오는 스틸샷들이 있다. 이 스틸샷이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튀르키예라는 지역 특성이 전부 다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대신 주인공 부녀가 동화 같은 여행지 한 곳을 방문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살짝 탁하지만 채도가 진한 색감이 등장했다. 또 영화를 보면서 안정적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건 비슷한 색을 효과적으로 화면 안에 반복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 제목이라고 볼 수 있는 '애프터 썬'의 장면이 있다. 어떤 행동을 딸에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인데, 이는 가족 간의 유대가 끈끈한 두 사람의 내면을 묘사하는 한 가지의 방법이다. 또 후반부에 아버지의 어떤 행동이 더 두드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명의 좋은 활용이 돋보였다.

 

 

 

이런 빈티지 감성을 사실 볼 만큼 봤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애프터썬>의 빈티지는 이번에도 통했다. 역시 영화는 잘 만들어야 최고다. 그런데 이 시각적으로 아날로그틱한 감성이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만 사용된 건 아닌 듯하다.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이끄는 두 가지 원동력은 기억과 기록이다. 글쓴이는 전자 기억을 이렇게 빈티지하게 연출한 것이 기억과 병치시키기 위함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 혹은 기록이 더 사실적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덕에 기록을 꺼내고, 기록 덕에 기억이 되살아나는 인물의 내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후반부 과거와 현재시점이 엇갈리는 연출이 그런 측면을 반영한 것 같다. 또 이 빈티지한 색감만큼이나 영화의 화면이 살짝 모호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모호한 느낌은 영화에서 비중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이 덕에 극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 특정 대사들이 보여주는 축축함이 과연 우리에게 시각적인 상상력을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하시고 본다면 영화의 감상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성자 . udong

출처 . https://brunch.co.kr/@ddria5978uufm/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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