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your bunny2022-07-12 01:27:38
현실에서 미웠을 법한 인물을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영화'의 힘
<로스트 도터>, 매기 질렌할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로스트 도터>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그런 영화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극중 인물에 이입하며 느낀 복잡한 감정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영화를 보며, 그리고 보고 난 후 느낀 감정이 마구 요동쳐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이 복잡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어 극장을 떠난 후에도 내 머릿속과 마음 속을 사로잡고 있는.
<로스트 도터>가 내겐 그런 영화였다.
영화관을 떠난 뒤에도 영화 속 주인공인 레다와 니나라는 인물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로스트 도터>는 참 복잡한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각자 얻어가는, 생각하게 되는,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다를 것이다.
본 리뷰에서는 내가 유독 깊이 생각하고 집중했던 점들에 주력해볼 예정이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레다(올리비아 콜먼)'의 그리스 휴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레다는 이전에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고 키우다가 '엄마'로서 요구되는 모성애가 깃든 역할들을 견디기 어려워서(혹은 견뎌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녀는 남편과 어린 두 딸을 두고 몇 년 간 집을 떠나 있었고, 그리고 바람도 폈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레다는 휴가로 온 그리스에서 어린 딸을 가진 젊은 여자 '니나(다코타 존슨)'를 보고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린다.
레다는 자신의 과거(제시 버클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그리고 닮은 모습을 보이는 니나를 보고 휴가 내내 자유롭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죄책감에 쌓여 있는 모습을 보인다.
- 자식들은 끔찍한 부담이에요.
영화의 초반부에 그녀가 자신의 딸들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첫째 딸은 자신을 흡수해버리고, 둘째 딸은 자신이 예쁜 것을 모른다고.
하지만 두 딸을 소개하는 레다의 모습에서는 왜인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레다는 '나는 내 자식들이 나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예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니까.' 라는 말을 남긴다.
나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나를 안 닮은 것이니까, 즉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니까.
영화 속에서 꾸준히 교차되어 보여지는 어린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젊은 레다는 가족보다 '나 자신의 삶'을 더 중요시여겼던 사람이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요구되는 역할에 대한 책임감보다는 '나의 꿈', '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로서 요구되는 희생을 견뎌내지 못한다. 혹은, 그 희생을 견뎌내는 것을 포기한다.
영화의 주요 사건은 레다가 니나가 잃어버린 딸을 찾으면서, 그리고 니나의 딸의 인형을 훔치면서 시작된다.
레다는 니나의 딸의 인형을 보고 젊은 시절, 첫째 딸 비앙카에게 건넨 자신이 아끼던 인형을 떠올린다.
젊은 시절의 레다는 자신이 아끼던 인형에 비앙카가 낙서를 하자 욱해서 그 인형을 창문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젊은 시절의 레다는 딸에게 종종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녀에게 자꾸 말을 걸고 장난을 치는 딸의 행동이 거슬린다고 느끼곤 했다.
과거에 욱해서 딸이 보는 앞에서 인형을 냅다 던져버린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아끼던 인형에 대한 미련에서 비롯된 것인지, 정신을 차린 순간 레다는 자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니나의 딸의 인형을 가져왔음을 깨달았다.
니나는 레다의 젊은 시절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자식의 보챔을 거슬려 하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종종 우울해 보이고, 그리고 바람을 피고.
자유와 사랑을 찾아 3년간 자식과 남편을 떠나 있던 레다가 잠시 집에 돌아오자 첫째 딸 비앙카는 이전처럼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장난을 치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녀에게 과일껍질로 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과일껍질을 끊기지 않게 길게 잘라서 뱀 모양을 만드는 것은 예전부터 레다가 자주 해주던 것이었다.
레다는 과일껍질을 다 자르고 슬픈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황급히 떠난다.
아마도 비앙카가 조심스레 건넨 이 말은 과일껍질로 뱀을 만드는 그 긴 시간 동안 엄마가 떠나지 않았음 싶어서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직 어리지만 또 엄마가 떠날 것을 알아버렸기에 최대한 그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
니나와 니나의 딸, 그리고 그녀의 남편, 그녀의 지인들은 영화 내내 (레다가 가져간) 니나의 딸의 인형을 찾는데 온 신경을 쓴다.
레다는 그 인형을 돌려주려다가도 자꾸 타이밍을 놓치고, 선반에 넣어둔 인형이 잠시 없어져서 혼자 전전긍긍하곤 한다.
레다가 인형을 가져간 것을 들킬 것 같은 마음에 스크린 너머의 관객인 나도 계속 불안하곤 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리스를 떠나기 전 레다는 니나에게 인형을 건넨다. 그리고 자신이 인형을 가져갔다고 말한다.
왜 인형을 가져갔냐는 니나의 질문에
나는 버릇없는 엄마니까.
라고 대답한다.
이전까지는 계속 자신이 인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자꾸 상황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던 레다는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변명을 하지 않았다.
휴가 내내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들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고, 공허해보였던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인지했다.
그리스를 떠나던 중, 해변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레다는 잠에서 깬 뒤 비앙카에게 전화를 건다.
동생과 함께 있던 비앙카는 그녀의 엄마에게 이런저런 일상을 이야기한다.
레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오렌지 껍질로 뱀을 만들며 전화기 너머에서 두 딸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레다를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레다'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비난적이지 않다.
100%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을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도드라진다.
레다에게 그저 담담하고 심심한 위로 한 마디를 전하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라고.
레다를 바라보는 주된 시선이 비난적이지 않아서 관객들도, 나도 마냥 그녀를 질책하지 않을 수 있던 것 같다.
참 많은 생각이 복합적으로 드는 영화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남편과 두 아이에게 상처를 준 레다는 이기적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자유와 사랑을 찾아 떠난 것이라는 자신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그녀를 마냥 칭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또 마냥 질책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내가 부모라면, 부모로서 주어지는 그 역할들을 성실히 이행해낼 수 있을까?
희생을 감수하면서 꾹 참고 그 책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직까지는 '아니오'이다.
나 자신을 향하지 않는 맹목적인 희생이란 마냥 쉬운 것이 아니다.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특히 나의 역할이 '부모'라는 것은 더더욱.
그래서 아직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레다를 더 질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죄책감과 아픔을 뒤늦게 절실히 느낀 레다를 향한 이 영화의 위로 어린, 담담한 시선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영화에는 그런 힘이 있다.
현실에서 마주했다면 마냥 미웠을 인물도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을 마냥 비난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영화가 그런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인 그녀의 행동을, 그리고 그녀가 느낀 죄책감과 고통을 이 영화는 보듬어준다. 그녀를 토닥여준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그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스트 도터>는 오는 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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