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작가2022-07-13 16:21:32
인생의 정수
디즈니플러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리뷰
줄거리
'라이프(Life)' 잡지사에서 필름 원화 관리자로 근무하는 월터 마티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다이내믹한 공상으로 이겨내는 습관이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공상을 하며 출근하는데,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그는 동료에게서 회사가 팔리는 바람에 인터넷 잡지사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핸드릭스라는 구조조정 담당자에게 최악의 첫인상을 선사하고 원판 관리실로 출근한 월터.
마지막 라이프 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필름과 선물을 보냈다. 선물은 다름아닌 회사의 모토를 새겨놓은 지갑. 감동에 젖은 것도 잠시, 필름을 인화하는데 중요한 25번 필름이 없다. 설상가상 숀이 25번 필름을 꼭 표지로 써달라고 간부에게 전보까지 보낸 상황. 사진을 꼭 찾아야만 한다. 월터는 직접 숀을 만나러 가기로 한다.
떠돌이처럼 세상을 누비는 숀은 어디에 있을까? 월터는 그를 찾을 수 있을까?
감상 포인트
1. 파워 N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상상들이 펼쳐진다.
2. 사진 속 장소와 사람들을 찾아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추리형 전개라서 지루하지 않고 재밌다.
3. 반전이라면 반전인 마지막 장면은 '라이프'라는 잡지사의 이름을 곱씹게 만든다.
감상평
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 상어와의 싸움부터 화산 폭발까지. 결코 현실이라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영화 같다고 했던가. 어쩌면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 치는 그런 일들이야말로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예측 불허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당장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있었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도 인셉션처럼 소설에 참고하려고 본 영화인데 인생 영화로 등극했다. 마지막 장면은 반쯤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그 뻔하디 뻔한 장면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돌려서 다시 보고 다시 볼 만큼 짙은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그렇다고 미련을 갖게 하는 결말이 아니라, 용기를 얻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삶에 지쳤을 때,
자신이 한심해 보일 때 보면 좋은 영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월터의 가족이 피아노를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어머니가 아닌 월터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핑계를 대며 이사를 다닐 때마다 피아노를 가지고 다녔지만, 막상 어머니는 피아노 뚜껑도 열어보지 않는다. 다만 그 상처 난 피아노의 사진을 찍을 뿐이다.
피아노는 월터의 미련을 뜻한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생긴 피아노의 상처는 월터가 아버지를 잃고 아파했던 것에 대한 상징이다.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시달리는 아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늘 말없이 믿고 바라보는 편을 택한다. 이미 옆에 없는 남편이 선물해 준 피아노를 치는 대신, 언젠가는 유럽 여행을 떠날 아들을 위해 '월터 박스' 속에 차곡차곡 옛 물건들을 보관한다.
월터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리워하면서도 막상 모히칸 머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그 시절처럼 과감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심하게 여긴다. 그가 현실의 늪에 더 깊게 빠져들어 삶에 소극적이게 될수록 그의 공상도 심해진다. 그가 그린란드로 떠나는 순간부터, 그는 단 한 번도 공상을 하지 않는다. 오직 그를 응원하고 힘을 주는 셰릴의 모습만을 발견할 뿐이다.
"언제 찍을 거예요?"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 개인적으론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순간 속에 머문다고요?"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숀은 월터만큼 자신의 사진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의미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을 줄곧 한다. 정작 월터가 숀의 사진을 그토록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담아냈던 이유는 그의 사진을 통해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곳들, 이루지 못한 꿈들을 찍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숀의 사진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숀이 말하는 '인생의 정수'는 월터의 지갑 속에 있었다. 뒷주머니에 손을 쑥 넣기만 하면 잡을 수 있었던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월터는 종종 과거에 대한 미련 때문에 공상을 하느라 놓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월터는 사진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담당자에게 넘겨준다. 그 사진 속에 무엇이 담겼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 앞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공상하느라 허비하지 않고 직접 발로 뛰고 움직이며 경험할 것이니까.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마지막 '라이프' 잡지의 표지는 사진을 검토하고 있는 필름 원화 관리자, 즉 월터 자신의 모습이었다. 인생의 본질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치열한 삶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매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것. 그 아름다운 결과물이 바로 '라이프' 잡지라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숀은 단순히 사진기 버튼을 눌러 사진기 속에 담아낸다고 해서 사진 속에 우리의 삶의 온전히 담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순간들을 잡을 수는 없기에,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그는 월터를 두고 '유령 표범처럼 아름다운 것'이라고 표현한다. 과연 숀은 월터의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 동안 그와 함께 출근하고 퇴근했을까.
우리는 때로 너무나 쉽게 현재를 잊어버린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들과 소망들에 얽매여 과거에 집착하거나, 자신의 모습이 불만족스러워 가혹하게 미래로 내달린다. 하지만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다. 사진기의 셔터를 누를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공기 속에 담겨 있는 현재를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인생의 정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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