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4-04-30 22:55:45
원초적인 웃음이 필요할 땐 과거로 회귀할 것
화이트 칙스
가끔 옛날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또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잊을 만하면 90년대 영화들을 다시 찾아본다. 요새 영화들에서는 대단한 서사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웬만한 서사들이 그 때까지 나온 영화들에서 다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00년대 헐리웃 영화들은 90년대의 황금기스러운 느낌보다는 로맨틱 코미디, 원초적 코미디가 더 많았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트랜스포머'같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영화들도 많이 등장했었지만 그런 영화들보다 그런 코미디 영화들을 즐겁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내 인생의 오글거리는 하이틴 영화들은 그 때 봤던 게 전부이지만 그 때 많이 보아서 지금 환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간에 요새 다시 향수에 젖고자 하는 미친 감성에 젖어 보았던 영화가 '화이트 칙스'였다. 굉장히 어설프지만 원초적인 웃음을 주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봤었는지도 기억이 없는데, 참 코미디라는 장르에 충실한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흑인에 대한 비하가 넘쳐나고, 그 비하가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당연시되던 사회였구나 다시 실감하게 된다.
1. 아무리 봐도 어색한 티가 나는 분장
영화는 두 재벌 상속녀로 위장하기 위해 흑인인 경찰이 백인으로 위장하는 분장을 감행한다. 참 누가 봐도 안닮았는데, 이걸 겉모습으로 알아채는 인간이 없다는 게 정말 웃긴 지점이다. 오히려 여자 치고 너무 운동 신경이 좋아서 수상함을 느끼지, 외양에서는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는 게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인 '허무하게 웃기기'이다. 약간 밑도 끝도 없는 개그를 보고 나면 아니 저게 뭐야 하다가 막판 가서 와하하 웃게 되는 그런 시간차 공격 같은 개그들이 넘쳐난다. 지금에 와서 그 영화를 처음 보는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처음엔 웃기 보다는 경악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 지점이 이 영화의 장점인데, 처음부터 영화의 목적이 코미디이기 때문에 관객을 웃기려는 데에 많은 공력을 들였다는 것이 보인다. 물론 웃음의 소재가 다소 원초적이지만 가끔 이런 영화도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참 웃긴 건 이 영화도 유치한 건 매한가지인데, 왜 요새 만들어지는 코미디 영화에서 큰 감명을 받지 못할까. 이 영화도 그다지 작품성을 논하기는 조금 애매한 그저 오락 영화이고, 웃음의 코드가 대단히 고급스럽지도 않은데, 이 영화는 계속 보게 되면서 다른 코미디 영화들은 식상하다고 느낄까. 그건 나의 위선인가, 아니면 코미디 영화가 그만큼 발전이 더딘 장르인 것인가.
2. 웃음의 소재가 비하인 것은 조금...
영화의 가장 코믹한 캐릭터 중 하나인 라트렐이라는 농구선수가 나온다. 흑인인데, 백인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가 사실은 흑인 남자였다는 사실에 실망하는데, 포커스가 남자였다는 것때문에 실망한 것이 아니라 흑인이라서 실망했다는 지점이 '이건 요새 나오면 안되는 대사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흑인에게 맛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둥 이런 대사들도 참 요새 나오면 논란 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그 시절이니 용인된 대사들이 참 많이 보였다. 주인공들이 모두 흑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흑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대사들이 참 많이 나오는데, 그걸 현재를 살아가는 흑인이 본다면 불쾌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헐리웃 영화에서 동양인들은 너드 혹은 전문직종으로만 그려지는 게 동양인 입장에서 세상 답답한 것처럼 말이다.
뭐,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뭔 불만이 많냐 싶을 수도 있지만 코미디라는 것이 누군가를 비하하지 않고 웃기는 것은 생각보다 고급 스킬이기 때문에 그런 고급 유머를 구사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장면은 배출한.
이 영화의 명장면은 그 클럽에서 댄스 배틀하는 장면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뭐라고 그렇게 여러번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여자들끼리의 춤배틀인데, 어딘지 모르게 안무를 억지로 외운 것 같은 몸치 바이브들도 웃긴데, 다 같은 몸치이면서 누가 이겼네 졌네 하고 있는 것도 코미디 포인트였다. 그 다음에 주인공들이 백인 여성으로 위장하고서 세상 올드스쿨 느낌나는 춤을 추는 것도 재밌었지만 말이다. 뭐랄까, 그 배틀 장면은 허세에 점령당해 버린 남자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굉장히 오글거리는데, 그래 어디까지 오글거리나 보자 하면서 끝까지 보게 되는 장면이다.
OTT 영화들은 성행하는데, 볼게 없다고들 한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과거로 가보시라고 추천한다. 지금보다는 확실히 영화들이 기술적으로 만듦새가 어색한 지점이 많긴 한데, 오히려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그 내용이 더 새롭다. 그때에는 새로이 등장했던 서사여서 그런지, 요새 더 발전된 서사들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투박한 서사가 오히려 더 신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90년대 영화들을 돌려보게 된다.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들이 참 많다. 음, 그런 의미에서 '화이트 칙스'는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라고까지 칭송하고 싶진 않지만 가끔 삶이 무료할 때 대책없이 웃고 싶을 때 꺼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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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위도우, 가족의 의미를 깨닫다
진정한 가족은 그 각각의 관계들을 만들어가면서 생성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태어나면서 자신의 가족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오랜 시간 동안 현재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다. 실제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생물학적 부모와 강하게 이어져 있다. 부모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주는 우유를 마시고 그들의 품에서 잠이 든다. 아이가 태어나 바로 말을 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아이는 강하게 연결되어, 그 관계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된다. 그렇게 지속되는 관계는 쉽게 끊어질 수 없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그 관계는 삶의 많은 순간에 영향을 준다. 그들은 태어나서 바로 이어지는 관계지만 그들의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그들 각자의 대화와 노력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원래의 생물학적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성인이 되거나, 기회가 있다면 제3자에게 입양을 가기도 한다. 고아원에서 자라든, 아니면 입양을 가서 생활을 하든, 그 모든 관계는 결국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관계다. 그들을 신뢰해야 할지, 그들에게 여러 부분에서 의지해도 될지를 결정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번 관계가 끊긴 경험을 한 아이들은 그 마음을 다시 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만나게 되는 관계들에서도 그런 경향은 그대로 반영된다. 만약 오랜 시간 후 그 관계가 이어졌다면 그들 또한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어 낸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닐지라도 그들 사이에서는 신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게 강한 신뢰로 이어진 관계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최근에는 그런 생각이 확대되면서 가족의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새로운 의미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 <블랙 위도우>
영화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도 최근 확대된 의미를 가지는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마블 유니버스 영화에서 블랙 위도우로 등장했던 나타샤(스칼렛 요한슨)는 그동안 주변부의 인물이나 관계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나타샤는 초기에 굉장히 차가운 스파이의 이미지로 등장했고 다양한 모습의 역할로 변장할 수 있고 뛰어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다. 그는 늘 혼자였고, 조금은 외로워 보였다. 그나마 어벤저스에 속한 다른 영웅들과 신뢰를 형성하여 세상을 구하는 여러 임무들을 하기 바빴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사이 시점에서 전개되는 <블랙 위도우>는 나타샤 캐릭터가 등장하는 마지막 영화이자 그의 과거 삶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영화 초반에는 나타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보인다. 여동생 엘레나(플로렌스 퓨)와 엄마 멜리나(레이첼 와이즈), 아빠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이 평범한 가족의 모습으로 오하이오에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나타샤의 조금은 무표정한 얼굴을 제외하고는 그저 행복해 보이는 한 가족의 모습이다. 사실은 첩보 활동을 위한 위장 가족이었던 이들은 아주 어렸던 엘레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그것이 단순한 임무였고 언젠가 끝날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가족의 역할에서 행복해 보인다. 실제로 그 첩보 활동의 마지막 날에 엄마 멜리나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싫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3년이라는 시간은 나타샤와 옐레나가 한참 성장하던 시기였다. 실제로 생물학적 부모의 존재와는 거리가 있었던 그들에게 그 시기는 입양 후에 만들어진 가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고 부모 역할을 하는 두 사람도 아이들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 각자가 느끼기에 그 시간은 좋은 시간이었다. 영화는 오하이오의 첩보 활동이 끝나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게 되는데,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나타샤와 옐레나의 유년기 시절은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기질과 관계를 만들어낸 시기다. 또한 그 시기 이 가족의 구성원들 사이에 어떤 신뢰가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깨지는 시점 또한 첩보 활동이 끝나는 시기와 동일하다. 가짜 가족이 깨지는 그 사건을 보고 나면, 그동안 마블 시리즈에 등장한 나타샤가 왜 그렇게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늘 혼자 힘든 짊을 지고 가려고 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깨져버린 어벤저스, 신뢰하지 못하는 가족
나타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기는 어벤저스 멤버들 간의 사이가 좋지 못할 때이고, 정부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시기다. 성인이 된 이후 나타샤가 가장 크게 마음을 열고 신뢰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어벤저스 멤버들일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깨진 상황에 처한 나타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둡고 외로워 보인다. 또한 가장 신뢰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추적하고 배신했다는 생각에 자신의 주변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기에 그가 다시 만나게 되는 동생 옐레나는 이미 신뢰가 깨져버린 과거 가족의 일원이다. 이 두 인물이 영화 속에서 처음 만나서 가장 먼저 하는 건 서로에 대한 경계와 적대적인 전투다. 이 장면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와 불신 그리고 상대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다. 칼을 뽑아 휘두르고 목을 조르며 한참을 다투던 그들은 이내 그 잔인한 행위를 멈추고 대화를 시작한다.
나타샤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부모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3년간 보냈던 가짜 부모인 멜리나와 레드 가디언에 대해서는 기억한다. 그 3년간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그들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버렸다는 배신감에 가득 차 있다. 반면 옐레나는 부모를 비롯해 나타샤까지 미워한다. 옐레나에게 나타샤는 그저 자신을 버리고 간 언니일 뿐이다. 영화는 네 가족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을 공들여 묘사한다. 그들이 어색하게 처음 대화를 나누는 과정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가족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나타샤와 옐리나가 다시 만났을 때 상대를 경계하며 원망을 담았던 것처럼 레드 가디언과 멜리나를 차례로 만나는 장면에서도 이들의 얼굴에는 경계심과 원망이 담겼다. 또 한편으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따뜻한 기억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영화 후반부 엄마와 아빠, 나타샤와 옐레나가 다시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은 영화가 감정적으로 공들여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들은 모두 마음속에 과거에 대한 응어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차갑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표출되는데 그들이 가짜 가족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가족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비록 나타샤는 시종일관 거리를 두고 차갑게 대하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가진 진심을 느끼는 여러 짧은 순간들에 시종일관 흔들리는 모습이 화면에 비친다. 시종일관 터프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옐레나도 마찬가지다. 그 식탁에 앉은 이후 옐레나는 말이 없어지고 심지어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한 자리에 앉게 된 그들의 머릿속에는 가짜 가족생활을 했던 3년의 따뜻한 기억이 천천히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장면은 영화에서 던지고자 하는 영화의 주제를 명징하게 드러낸 부분이고,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아마도 그 자리에서 그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가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는지 모른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나타샤
영화에는 레드룸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어린 소녀들을 납치하거나 고아인 아이들을 데려와 스파이로 만들 수 있는 아이들을 추려내고 그들의 자궁과 난소를 드러내고 훈련시킨다. 그리고 정신을 조정해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하게 만든다. 그들을 구원하려 하는 건 나타샤와 옐레나고 그들 역시 레드룸의 피해자다. 즉 이미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다른 피해자들을 타인의 추악한 욕망 속에서 구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나타샤와 옐레나에게 그들은 일종의 유사 자매, 즉 가족의 일원으로 볼 수도 있다.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위도우들은 나타샤의 손에 의해 해방되는데 결국 나타샤가 가족의 의미를 깨닫고 넓은 의미에서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위도우들을 해방함으로써 그 모든 사람들에게 가족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블랙 위도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으며 특히 가족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나타샤가 다시 그 믿음을 되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간의 마블 영화들을 보아왔던 관객들은 이미 나타샤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가 가진 과거를 궁금해하게 되는데 그의 과거까지 다 보고 난 관객들은 나타샤의 마지막 모습이 좀 더 뭉클하게 다가올 것이다. 나타샤에겐 과거의 가족도 유사 가족이고 어벤저스 멤버들도 일종의 가족이다. 나타샤는 과거의 가족을 다시 만나며 나타샤는 그 유사 가족이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무언가 답을 찾게 된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현대인만큼 이 영화에서 나타샤의 마지막 선택은 그가 결국 그 유사 가족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로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그것이 바로 현재의 사회 흐름이라는 것을 영화가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다페스트 장갑차 추격신이나 높은 고공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은 마블 영화답게 박진감 넘치게 구성되어 있다. 태스크 마스터와 나타샤가 벌이는 격투 액션과 옐레나가 보여주는 격투 액션은 사실감 있게 담겨있어 긴장감을 높인다. 그래서 영화 <본 시리즈>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운 점은 나타샤가 잘하는 타격 액션이 많이 활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스크 마스터의 특성과 나타샤나 직접 격투하는 장면의 비중이 적고, 그 외에 나타샤가 보여주는 격투 액션이 많이 없어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액션 장면은 극장에서 볼만한 큰 스케일을 보여준다.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의 멋진 퇴장
마지막으로 나타샤를 연기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그 모습 자체가 블랙 위도우가 되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한 캐릭터로 활약해 온 그의 연기는 향후의 활약이 볼 수 없다는 점을 더욱 아쉽게 만든다. 그가 고공에서 착지할 때 보여주는 포즈는 옐레나에게 항상 놀림당하지만 블랙 위도우의 대표적인 액션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그 포즈를 그대로 따라 하는 옐레나의 모습은 그가 언니 나타샤를 이어 블랙 위도우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직 누가 나타샤를 이어 블랙위도우를 할지 확정된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누가 해당 역할을 이어갈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아찔한 십대>로 2004년 데뷔한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로어>, <베를린 신드롬> 같은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인데, 이번 <블랙 위도우>를 연출하면서 마블 영화 중 최초로 단독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나타샤와 관련된 유사 가족들로부터 진심을 끌어내는 감정적인 연출도 잘 들어가 있으며, 액션 연출도 박진감 넘치게 들어가 있어 향후 다른 마블 영화의 연출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나타샤의 마지막 모습을 아주 멋지게 마무리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블랙 위도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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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낮에 경험하는 보험사기 스릴러
예상치 못한 반전이 많아서 희열을 느끼며 봤던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뻔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가 한 방을 날리는 작품이었고, 환한 낮에 경험하는 스릴러다 보니 스릴러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나에게 제격이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시놉시스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간단한 부탁에서 시작된 간단하지 않은 사건. 멋진 커리어우먼, 매력적인 아내, 아름다운 엄마, 모든 걸 다 갖춘 완벽한 여자 ‘에밀리’가 어느 날 사라진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는데요. 모든 것이 내 것이 됐다고 생각한 순간, 사라진 에밀 리가 돌아온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인플루언서를 보여주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속 스테파니는 브이로그 컨텐츠를 만드는 인플루언서로 나온다. 인플루언서가 나오는 작품을 보면 필자가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는 인플루언서인 스테파니가 자신의 친구인 에밀리의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데 자신의 브이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SNS가 이렇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못했고, 물론 부산경찰SNS가 사람들을 찾는데 많이 활용된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브이로그로 찾고 경찰 관계자가 아닌 개인이 수사를 하는 모습에, SNS가 참 여러 가지고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파급력이 굉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귀신은 없는데 소름돋은 1인
영화 속 장면 중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에밀리의 옷장을 다 치우고 스테파니의 옷들로 다 채워넣었는데 그 다음날 다시 애밀리의 옷들이 옷장 속에 다 채워져 있어서 진짜 주스 먹다가 뿜을 뻔했다. 극중 스테파니와 함께 소리를 질렀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에밀리의 흔적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서 깜짝깜짝 놀랐고, 갑자기 에밀 리가 쌍둥이라고 해서 작가... 천재인가? 하는 생각과 서로를 속고 속이는 계략 속에서 결국 스테파니가 에밀리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들을 보며 진이 빠질 정도였다. 반전이 적재적소에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고 텐션감이 높아 다른 생각할 틈 없이 영화에 빠져서 볼 수 있었다.
스릴러 보험사기
그렇게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결론적으로는 보험사기구나! 하는 생각에 허탈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험사기를 소재로 코미디나 범죄물은 만들어도 이렇게 스릴러물로 만들어진 경우는 별로 없어서 색달랐다. 그리고 영화 장면들이 대부분 대낮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환한 빛 속에서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조금 색다른 스릴러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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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빼로데이에 보기 좋은 영화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신청 받은 주제는 바로 '빼빼로데이에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이 게시물 혹은 씨네픽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동일 내용의 콘텐츠 게시물에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주신다면 다음 콘텐츠를 올릴 때 여러분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작해볼까요?٩( ᐛ )و
찰리와 초콜릿 공장
ⓒ 네이버 영화
synopsis
세계 최고의 초콜릿 공장, 윌리 웡카 초콜릿 공장의 공장장 윌리 웡카는 초콜릿 속의 황금티켓을 찾은 어린이 다섯 명에게 자신의 공장과 제작과정의 비밀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을 한다.
cine pick!
1천 3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이 영화는 1억 5천만 불의 제작비로 완성하여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2주 연속 정상을 차지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홀리데이트
ⓒ 네이버 영화
synopsis
싱글이라 서러운 게 아니다. 또 혼자냐는 잔소리가 지겨울 뿐. 우연히 만난 동병상련 남녀, 명절용 파트너로 계약 체결! 사귀는 척만 하기로 했는데, 자꾸 생각이 난다.cine pick!
매 공휴일마다 싱글이냐는 가족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사귀는 척을 하기로 하며 진행되는 스토리이다. 킬링타임용으로 보기 좋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초콜릿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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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에 신비한 여인 비엔이 초콜릿 가게를 차린다. 비엔의 초콜릿으로 상처를 치유한 마을 사람들은 사랑이 넘치는 모습으로 변하지만, 마을 시장은 그런 변화를 아니꼬워한다.
cine pick!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로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잔잔하면서도 그 안에 강한 울림을 주며, 의상을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 네이버 영화
synopsis
짝사랑의 마음을 몰래 편지로만 남겨두었던 라라진. 어느 날 그들에게 썼던 비밀
러브레터가 발송 되면서 아슬아슬한 연애 소동이 시작된다.
cine pick!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영화를 를 공개했던 그해(2018)에 가장 많은
다시보기를 기록한 영화 2위에 오를 정도로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양과자점 코안도르
ⓒ 네이버 영화
synopsis
도쿄의 인기 양과자점 ‘파티쉐리 코안도르’를 무대로 한 조각의 케이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꿈과 인생이 담긴 달콤 쌉싸름한 감동 드라마
cine pick!
영화는 올해 제26회 산타바바라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경쟁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
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파리로 가는 길
ⓒ 네이버 영화
synopsis
영화 제작자 남편 마이클과 함께 칸에 온 앤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건너뛰고 파리로 가기로 한다. 마이클의 사업 파트너 자크가 앤의 여정에 동행하고, 파리
까지의 낭만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cine pick!
코폴라 감독의 영화 감독 데뷔작이자 감독의 실제 경험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프랑스
를 직접 여행하는 것 같은 생생한 영상미와 감미로운 음악으로 여행의 낭만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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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로맨스 없이도 로맨틱
감독] 이원석
출연] 이하늬 이선균 공명 배유람
시놉시스] 대재앙 같은 발연기로 국민 조롱거리로 전락한 톱스타 ‘여래’(이하늬).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남태평양 ‘콸라’섬에서 운명처럼 자신을 구해준 재벌 ‘조나단’(이선균)을 만나 결혼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한편, 서울대가 당연한 집안에서 홀로 고독한 입시 싸움 중인 4수생 ‘범우’(공명)는 한때 자신의 최애였던 여래가 옆집에 이사온 것을 알게 되고 날마다 옥상에서 단독 팬미팅(?)을 여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조나단의 사업 확장을 위한 인형 역할에 지친 여래는 완벽한 스크린 컴백을 위해 범우에게 SOS를 보내게 되고 이들은 여래의 인생을 되찾기 위한 죽여주는 계획을 함께 모의하는데…
2023년 개봉작 중 입소문으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역시나 <킬링 로맨스> 아닐까. “재미있겠네. 다음에 봐야지…” 정도로 가볍게 바라보고 있던 이 영화는 극단의 호불호 후기와, 해탈한 듯한 배우들의 인터뷰, 무대 인사 후기까지 죄다 재미있었다. 이제 영화만 재미있으면 되는데. 나는 <킬링 로맨스>를 보기 전에 감독의 전작 <남자사용설명서>부터 보았다. 이십대 초반 아직 풋풋하던 내가 극장에서 보기엔 너무… 포스터가 이상해 보였던 작품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았고 생각보다 웃겼으며 생각보다 뇌리에 남았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무반주 음악에 흠… 하핫… 핫초ㅑ… 하며 뻘쭘한 춤을 추던 배우 오정세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버렸다.)
이것도 재미있겠군! 웃기겠군! 좋겠군! 기대하며 <킬링 로맨스>를 보았다. 재미있었고 웃겼고 좋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영화의 어느 한 구석이 나의 오타쿠 감성을 자극하고 말았으니… 나는 감동까지 받아버리고 말았다. 팬과 스타, 로맨스 없이 로맨틱한 그 관계에 대하여.
#1. 브리트니 스피어스 <Lucky>
태초에 “She was everywhere”였던 누군가가 있었다. 존재 자체로 센세이션. 그를 모두가 “사랑”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너무 일방적이고 그만큼 오해와 편견에 빛을 잃기도 쉬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Lucky> 노래 가사처럼, 그토록 사랑을 받는 스타는 밤에 혼자 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센세이션이 저물고, 세상은 “사랑”할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선다.
이 영화의 여래(이하늬 분)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브리트니의 노래 가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무수한 말, 쏟아지던 조롱과 비슷한.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노래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HOT의 <행복> 말이다.
기묘한 마이페이스로 밀어붙이면 상대는 기세에 눌리기 쉽다. 마치 괴한을 쫓던 그의 “powerful punch”처럼. 그러나 비대한 자의식에 자리를 내어주느라 상대의 자아에는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의 언어와 행복의 노래를 가장한다 해도. 이미 세간은 이 가장을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로 담아낸 지 오래다.
#2. HOT의 <행복>과 레드벨벳의 <행복>
조나단의 입버릇은 ‘완성’이다. 그러나 그가 완성한 프레임 속 여래의 미소는 랄라텐 광고 속의 미소 반만큼도 살아있지 않다. 옆집 사수생 범우에게 받아 든 랄라텐을 예의 실력으로 순식간에 마셔버린 다음 미소를 짓는 여래는, 랄라텐 마시는 속도 하나만으로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실력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연예인인데 말이다. 그는 조나단의, 조나단을 위한, 조나단에 의한 조나단 월드에 갇혀 있다.
조나단이 귤을 쥐는 순간, 이 영화에 귤이 처음 등장한 순간, 아직 아무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왜 소름이 돋았을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폭력의 수단이 무엇이든 폭력은 폭력이다. 뭐든 폭력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주목해야 하는 건 그 폭력성이다. 새콤달콤한 귤에 죄가 없다고 귤을 이용한 폭력이 죄 아닐 리 없을 것이다.
수단에 감정 이입하는 건 모두 틀렸다. 폭력의 수단뿐 아니라 행복의 수단도 마찬가지다. <행복>의 노래는 새로 부르면 된다. 레드벨벳의 <행복>을 불러도 되는 거고, HOT 노래를 NCT가 리메이크할 수도 있는 거고요. (참고로 그 곡은 행복이 아니라 <캔디>이며, 공명의 동생 도영은 거기 없었지만… 이선균 씨 참고 바랍니다.) 게다가 잘 들어 보면 여래의 필모그래피에는 이미 <행복>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있다. 수단은 바꿔치울 수 있다. 중요한 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고, 칸트처럼 말해 보자.
#3. 에픽하이 <fan> 대신 자우림의 <fan>
가스라이팅 앞에 기꺼이 “bad girl”이 되겠다 일갈하고, <제발>을 부르며 일어선 여래의 분연한 얼굴은 분명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다. 그 덕분에 방범등은 꺼지는 순간 축포가 되고, 바로 그 순간 달은 가득 차올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내가 계속 주목하게 된 건 여래와 범우 사이의 마음이었다. 7년째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응원하는 노래로 자기 삶을 응원한다는 건 어떤 마음인가. 비록 범우는 여래의 소원을 척척 이루어 주지도, 여래와 같은 마음으로 손발을 척척 맞추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여래가 돌아갈 과거가 다시 여래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런 범우가 영화 속에서 불가능을 넘어 소통하는 법을 아는 인물이라는 점 또한 괜스레 뭉클하게 느껴진다. 그런 목소리라면 닿을 것이다. 여래에게 닿았듯이. 진심으로 표현하고 소통하고자 했으나 끝내 대중과 화해하지 못하고 떠난 어떤 이들에게도.
세상에는 범우의 다락방 같은 방이 얼마나 많을까. 부디 거기서 울려 퍼지는 팬의 노래가 에픽하이의 곡보다는 자우림의 곡에 더 가까웠으면 한다. 가질 수가 없는 미친 사랑을 괴로워하는 마음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더 행복하니까.
#4. 그리고 어느 팬에게 남은 말
한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우리 오래오래, 시간을 따라 함께 기쁘게 뛰어보자고. 땀 나고 타조 깃털 휘날리는 길이더라도, 같이 뛰어가고 싶다고. 뜬금없는 타이밍에 노래를 부르고(“누나 왜 노래를…”), 거기서 함께 힘을 얻으면서 가보자고. 무지하게 겁나도 끝까지. 그렇게.
나는 당신 얼굴의 자연스러운 주름, 세월 따라 더해지는 표정, 그런 것들을 오래 보고 싶다고. 그런 모습이 좋다고. 그냥 이 작업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즐거운 것이었으면 한다고.
로맨스가 아니어도 충분히 로맨틱한, 어떤 행복이라고.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중 상영일정
7월 1일 19:30-21:17 한국만화박물관 (상영코드 337)
7월 5일 19:30-21:17 CGV소풍 4관 (상영코드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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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회귀의 시간이 써 내려 간 신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행을 계속하기 위해 진급을 거부하고 현역 파일럿으로 남은 '피트 매버릭 미첼(톰 크루즈)' 대령. 그는 최신형 전투기 다크스타의 시험 비행 도중 독불장군답게 사고를 저지르고, 자신이 졸업한 탑건 학교의 교관으로 전출을 간다. 오랜만에 도착한 학교에서 우라늄 시설 폭격 작전에 투입될 12명의 파일럿을 훈련시키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그는 옛 연인인 '페니(제니퍼 코넬리)'를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 과거에 순직한 동료의 아들인 '루스터(마일즈 텔러)'가 12명의 파일럿에 속한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훈련은 난항을 겪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 빨라진 작전일자 때문에 매버릭과 그의 파일럿들은 더욱 패닉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이 가르친 동료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본인의 목숨을 걸고 그들을 생환시키기 위한 비행에 나선다.
톰 크루즈와 함께 36년 만에 돌아온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 'Top Gun Anthem'과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이 들리는 가운데 함재기들의 이착륙을 비추며 시작한 영화는 곧장 매버릭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신형 극초음속 전투기 개발 사업인 '다크스타'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던 매버릭은 마하 10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프로젝트가 폐기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에 독단적으로 마하 10 시험 비행을 하고, 멋지게 성공하며 다크스타 프로그램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매버릭의 행동에 격노한 '케인(에드 해리스)' 소장은 그를 탑건 학교로 전출시켜버리면서 그의 노력도 무의미하다고 일갈한다. 어차피 드론이 파일럿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매버릭은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은 아닙니다."
전편의 오프닝을 고스란히 옮겨 온 오프닝 시퀀스와 뒤따라 나오는 이 짧은 대화는 긴 세월을 기다린 속편이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이고 동시에 단독 작품으로서의 <탑건: 매버릭>을 설명하는 완벽한 도입부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에는 아날로그적 액션이 그 어느 때보다 박력 넘치고 강렬한 이유, 그리고 마침내 당도한 속편이 향수와 동시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로 무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모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는 매버릭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본인이 원하면 별도 두 개는 족히 달았을 미 해군의 전설적인 파일럿. 그러나 그는 수많은 훈장이 방증하듯이 과거의 영웅이다. 케인 소장의 지적처럼 명령에 불복하는 파일럿보다 더 충실한 드론이 등장한 시대에 과거의 영웅이 있을 자리는 이제 없다. 그래서 다크스타를 몰고 마하 10에 도달한 것이 전설의 건재함을 보여준다면, 마하 10 이상에 도전했을 때 전투기가 폭발하는 것은 과거의 유산이 서 있을 자리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런데 매버릭의 위기는 사실 그저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에 뒤처진다는 이유로 존재와 의미를 부정당하는 과거의 유산은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매장에서 직원의 자리는 키오스크가 대신하고, 종이 영수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메신저 알람이 대신한다. 우리의 미래는 현재에서 과거의 모습을 철저히 지우고 새로운 것으로 가득해진다. 이는 사람들이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과거를 폐기할 때 현재가 등장하고, 거기서 한 발짝 더 진보할 때 미래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시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매버릭과 케인 소장의 충돌은 단지 유인 전투기와 드론 사이의 논쟁과 대립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 넓은 관점에서 과거와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탑건: 매버릭>은 일반적인 통념을 벗어난 답을 내놓는다. 영화는 과거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야 한다고 말한다. 매번 반복되는 과거를 직시할 때 비로소 새로운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주제 의식으로 무장한다. 마치 "시간 자체도 하나의 둥근 고리"라며 순환론적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니체의 영원회귀 신화처럼. 그래서 영화는 2막의 시작과 동시에 매버릭을 그가 30여 년 전에 졸업한 탑건 학교로 보낸다. 과거로 되돌아가고, 과거를 새로 겪으면서 그가 미래에도 유의미해질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만든다.
그래서 <탑건: 매버릭>은 전편의 구조, 장면, 상황을 되풀이한다. 시간대만 달라졌을 뿐 사실상 동일한 상황 속에 매버릭을 던져 놓는다. 사고를 친 후 탑건 학교로 좌천되고, 탑건 학교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깊이 좌절하지만, 끝내 극복하고 실전에 투입되는 흐름이었던 전편의 구성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실 오마주로 가득한 구성은 자칫 영화 전체를 진부한 클리셰 덩어리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탑건: 매버릭>은 전편의 내용과 과거의 사건을 반복하는 이야기를 파일럿으로서의 매버릭, 인간으로서의 매버릭으로 나누어 보여줌으로써 그 함정도 피해 간다.
우선 파일럿으로서의 매버릭은 과거의 사건들을 다시 직면한다. 교관으로 불려 와 적국의 우라늄 원자로를 파괴하는 작전을 12명의 파일럿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임무를 알게 된 매버릭. 그는 이 작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건이 본인이 실전에서 직접 경험해 본 사건들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훈련 과정에서도 그는 자신의 과거를 조우한다. 그는 최고 중의 최고만 모인 파일럿들에게 기초적인 도그파이트 훈련부터 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30여 년 전 자신이 그랬듯 윙맨을 희생해 적을 격추하는 전술을 구가하는 파일럿을 오래간만에 상대한다.
한편 그의 훈련은 반복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는 2분 30초라는 시간제한이 있는 작전을 수없이 반복 학습시키며 파일럿들을 숙달시킨다. 실제 작전과 같은 상황 계획 속에 그들을 거듭 던져 놓는다. 이미 겪었던 상황을 다시 출발점에서 경험하도록 만들고, 결승점에서는 이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게 훈련시킨다. 누군가는 처참히 실패하고, 누군가는 팀원과의 불화로 실패하고, 누군가는 신체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지만 같은 훈련을 반복하면서 파일럿들은 조금씩 차이를 만들어낸다. 또 각자의 자존심만 내세우던 파일럿들이 한 팀이 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전편의 비치발리볼 장면을 비치 풋볼로 바꿔서 등장시킨다.
한 인간으로서의 매버릭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돌아올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탑건 학교에 귀환한 그는 학교 근처 바에서 ‘페니’ 벤자민을 만난다. 전편에서 헤어진 여자 친구로 언급되었던 그녀와의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나간다. 매버릭 특유의 미소를 짓지 말라는 페니와 그런데도 굴하지 않는 매버릭의 모습은 이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페니는 전편의 여주인공이었던 쿠거가 그랬듯이 좌절에 빠진 매버릭을 수렁에서 구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매버릭은 몇십 년째 그를 괴롭히던 트라우마를 루스터의 모습으로 마주한다. 전편에서 전투기를 탈출하던 도중 윙맨이자 절친이었던 구스를 사고로 떠나보내야 했던 매버릭. 그는 구스를 똑 닮은 그의 아들 루스터가 훈련받을 12명의 파일럿 중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된다. 페니의 바에서 아버지 구스의 애창곡이었던 "Great Balls of Fire"를 부르는 루스터를 지켜보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대면한 매버릭. 그는 오랜 기간 그래 왔듯이 루스터를 보호기로 결심하고, 작전의 성공만큼이나 생존하여 귀환하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트라우마가 매버릭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 아버지를 잃은 루스터는 아버지를 지켜주지 못했던 매버릭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으며 자신을 지켜주려는 매버릭의 관심을 외면한다. 이렇게 과거의 트라우마 안에 함께 갇힌 이들의 골은 훈련 중 함께 추락하는 듯한 장면만큼이나 깊어진다.
이처럼 수없이 등장하는 오마주, 곧 과거의 사건들은 훈련 교관이었던 매버릭이 끝내 작전의 한가운데에 서는 것에서 눈치챌 수 있듯 영화의 3막인 실제 작전에서 한데 얽히고설킨다. 그래서 <탑건: 매버릭>의 박력 넘치는 액션 시퀀스는 단지 눈 호강일 뿐만 아니라 가슴 벅차오르는 뜨거운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물론 20여 분간 쉼 없이 이어지는 액션 시퀀스는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다. 줄곧 연습하던 작전을 실제로 실행하는 그 순간의 가슴 멎을 듯한 긴장감, 작전 이후 뒤따르는 지대공 미사일과의 목숨을 건 사투, 그리고 성능의 차이가 큰 전투기 간의 살 떨리는 도그파이트 장면까지. 고막을 때리는 굉음과 눈을 사로잡는 회피 기동과 폭발이 한데 뒤엉키기 시작하면 좀처럼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은 화려한 포장지일 뿐, 그 알맹이는 매버릭과 루스터의 트라우마 극복기라고 할 수 있다. 매버릭은 구스처럼 죽을 위기에 빠진 루스터를 구하고, 루스터는 생각하지 말라는 매버릭의 조언을 받아들여 본능적으로 전투기를 비행하고 매버릭을 구한다. 또 생환하기 위해 2인 1조로 전투기를 조종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오래전 매버릭과 구스의 팀플레이가 겹쳐 보인다. 이러한 액션씬은 결국 과거는 반복되기 마련이고 인간은 시간이라는 고리 안에서 특정 순간으로 계속 되돌아오지만, 영원 회귀하는 시간 안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갖는 사건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순간의 무게와 책임을 견뎌낼 때,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초인'이 되어 과거와 트라우마의 늪에서 벗어나 새 미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같은 사건을 마주해도 다르게 채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매버릭의 오랜 동료인 아이스맨이 남긴 "과거를 잊을 때가 되었다"라는 충고의 진의일 것이다.
적군의 F-14 톰캣을 탄 채 귀환을 시도하는 둘의 모습은 이러한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준다. F-14 톰캣은 성능만 놓고 보면 적군의 5세대 전투기를 이길 수 없는 고물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미래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시간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되풀이되는 시간에 새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처럼 이 도그파이트에서 중요한 것은 전투기가 아니라 파일럿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두 파일럿은 시간의 흐름에 압도되지 않고,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최신 전투기와 치열한 싸움을 펼칠 수 있다. 이는 영화의 결말에서도 다시 한번 반복된다. 1950년대에나 쓰던 P-51 머스탱을 함께 타고 노을 지는 현재를 즐기는 매버릭과 페니. 이처럼 다시 만난 옛 연인과 과거의 유산 안에서 미래의 사랑을 꽃피우는 장면은 도입부에서 던진 물음에 대한 완벽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제는 단지 주인공인 매버릭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에도 해당된다. 달리 말해 <탑건: 매버릭>은 자신을 둘러싼 의구심에 맞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먼저 개봉한 미국에서 들려온 극찬 덕분에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사실 제작이 발표됐을 때 이 영화를 둘러싼 걱정은 상당했다. 오마주로 가득한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의 리메이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나 과거의 명작을 미래에 맞게 일신한다는 목적으로 과거를 부정하다가 결국 실패를 맛본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탑건: 매버릭>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굳이 시대에 맞게 무언가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과거에 좋았던 점들을 더 멋지게 만들어서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영화는 좋아진 기술력을 자랑하는 만큼이나 오래전 감성으로 가득하다. 누르스름한 시각적 묘사와 영화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장면들은 80년대의 흐름과 분위기를 그대로 재연해내며, 이는 노을 속에 올라오는 토니 스콧 감독을 향한 추모의 메시지로 완성된다.
대신 과거의 매력을 접하는 이들이 알아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즐기도록 유도했다. 그 덕분에 <탑건: 매버릭>은 그저 추억을 되풀이하는, 향수를 자극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과거를 폐기하지 않는 대신 반복하는 현재가 얼마나 가슴 뜨거울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며, 다음 이야기는 또 무엇일까 하고 자연히 꿈꾸게 만든다. 이렇게 영원 회귀의 시간 속에서 <탑건: 매버릭>은 할리우드의 힘을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신화를 써 내려간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응축된 과거의 반복이 써 내려간,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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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와 상상을 품은 마음에 피어난 기적
“당신은 산타를 몇 살까지 믿었나요?”
산타는 연말이 다가오면 한 번씩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이다. 이 흐뭇한 주제는 의외로 열띤 대화를 만든다. 산타를 기다리며 지새우던 밤에 대한 기억, 선물을 주던 부모님과 눈이 마주쳤던 기억, 산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했던 착한 일에 대한 기억 등 ‘산타’라는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존재가 자신에게 남긴 기억에 관해서 말이다.
우리가 이토록 이 주제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타가 아이들의 마음에 가져다주는 기대와 설렘,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아이의 상상력을 지키기 위한 선의, 순수함에 대한 애정, 돌아갈 수 없는 마음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 이것을 모든 사람이 공통되게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산타의 존재를 말한다.
“산타는 여러 사람에게 의미 있는 상징이오!”
크링글은 산타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한다. 산타를 믿지 않는 워커에게 산타라는 존재, 즉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이기심과 증오를 누를 수 있는 인간 능력을 상징하는 인물이죠.”
영화는 크링글의 입을 빌려 말했듯, 산타를 믿을 마음의 여유 한 줌 남기지 않은 사회는 이기심과 증오만 남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잔은 어른처럼 말하는 아이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이 없는, 아이 같지 않은 아이. 그녀는 퍼레이드의 썰매 위 손을 흔들고 있는 남자가 엄마의 선택으로 고용된 남자라는 것을 알고, 원하는 선물은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엄마가 사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느 날 나타난 진짜 산타 같은 크링글은 계속해서 수잔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다. 수잔은 크링글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조금의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산타는 그런 존재다. 사람들의 마음에 기대를 품게 하는. 그리고 기대는 사람들의 일상에 원하는 미래를 상상할 힘을 갖게 한다. 크리스마스에 트리 아래 놓인 선물을 기대하고, 이루어질 소원을 기대하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에 피어나는 작은 여유이자, 기쁨일 것이다. 그렇기에 크링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들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었다. 돈과 경쟁, 그 외의 현실은 그에게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익스프레스 백화점 직원들은 본인이 진짜 산타라 주장하는 크링글을 믿지 않았다. 그저 연기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미치광이 취급한다. 그러고는 산타를 보기 위해 모인 아이들에게 모인 아이들 앞에서 산타는 거짓이라 말하고, 폭행을 사주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크링글을 악으로 끌어내린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위한 마음은, 그가 보여준 미소를 사랑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은 전혀 없다. 경쟁사를 끌어내리며 그를 발판 삼아 그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이기심과 증오, 경쟁과 대립뿐이다.
믿는다는 것
크링글의 재판에서 브라이언은 “웃음을 자아내는 거짓을 선택할 것인지, 눈물을 자아내는 진실을 선택할 것인지.” 판사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크리스 크링글이 산타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믿음’을 가진 마음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를 통해 유약하고 보잘것없던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힘은 바로 '상상력'이었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은 비웃음당할 일이 아니다. 그 자체로 살아갈 동력을 주는 일이다. 영화 속 산타를 믿지 않는 어른들은 자신이 진짜 산타라고 말하는 크링글을 비웃고, 미쳤다고 말하고, 심지어는 정신 병동에 가둔다. 하지만 그를 믿는 어른들과 아이들은 달랐다. 그를 믿고, 믿음이 실현되는지 기대하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를 응원하며 ‘I BELIEVE’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 드리운 표정은 매우 달랐다. 검사와, 익스프레스 사장의 얼굴에는 당장의 경쟁에서 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의 다정함을 증언하는 증인들, 응원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본인의 믿음에 대한 기대와 생동감이 담겨 있었다.
냉소는 현실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미래로 나아가게 만들지는 못한다. 돈과 힘이 정의인 세상은 윤택한 삶을 보장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술을 사 먹을 수 있는 하루를.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24일 밤에 산타로부터 받을 선물을 기대하기 위해 1년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행위가 가치를 잃는다면, 우리의 삶에 어떤 선(善)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동전과 명함만 남는 세상에는 온기가 없다.
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온기를 주는 행위다. 삶에서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혼자는 외로울 뿐이다. 부모들이 산타의 도움을 받았듯, 워커가 브라이언의 도움을 받았듯, 산타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듯, 타인을 믿는 다정함,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다정함은 선(善)이 다른 선(善)을 낳도록 도왔다.
믿음이 준 온기는 워커와 수잔에게도 역시 동일했다. 워커는 환상과 신화를 믿는 건 불행을 가져다줄 뿐이라며, 자신이 믿던 것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불행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도 어렸을 때는 산타를 믿었다. 하지만 살면서 믿음을 주었던 것으로부터 상처를 입었기에 그녀는 믿음을 지웠다.
수잔 역시 믿음을 지웠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상상력의 공간을 지웠다. 워커의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산물이었지만 아버지가 없는 상처를 안은 아이의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진짜 갖고 싶은 것은 가질 수 없는, 엄마가 주는 ‘가능성’ 안에서만 마음을 키우는 편이 더 이상의 상처를 만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것들로부터 상처받고, 주변을 돌아볼 정신이 없던 워커는 크링글을 통해 잊었던 미소를 되찾는다.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어 믿고 싶은 것을 믿지 못하게 된 수잔 역시 어린아이의 마음을 되찾았다. 크링글이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에 심은 기대의 씨앗이 믿음이라는 온기를 품고 자라난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게 뭐니?’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원하는 것을 생각할 틈을, 그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키워준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믿었던 것들은 우리를 배신한다. 하지만 그 사랑과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자명하다. 사랑하고 믿는 동안 나를 채우는 행복,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것을 사랑하고 믿을 용기.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충만한 삶을 만들기에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 수잔이 원했던 집과 워커와 브라이언이 함께하는 소원이 이뤄진 모습을 보며, 기적을 만드는 연금술은 사실 무척 간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의 상상력과 그것을 믿을 용기, 이 두 가지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상상한 미래 앞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ditor. H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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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청소년 성장드라마 / 너의 색 / 사람의 색을 보는 아이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너의 색" 후기입니다.
*볼만한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과 함께, 그리고 다 끝나고 1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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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바이킹스 : 발할라> 공식 예고편
《바이킹스: 발할라》는 1,0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간 11세기 초를 배경으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바이킹들의 영웅적인 모험담을 그린다. 그 주인공은 전설적인 탐험가 레이프 에릭손(샘 콜릿)과 불같은 성격의 완고한 여동생 프레이디스 에릭스도테르(프리다 구스타브손), 그리고 야심 있는 노르웨이 왕자 하랄드 시구르드손(리오 수터). 바이킹과 잉글랜드 왕실 사이의 긴장이 핏빛의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바이킹 내부에서는 기독교도와 이교도의 충돌로 싸움이 벌어지면서 이 세 바이킹의 장대한 여정이 시작된다. 그렇게 세 사람은 생존과 영광을 위해 싸우면서 바다와 전장을 넘나들며 카테가트에서 잉글랜드, 그리고 그 너머로 나아간다. 《바이킹스: 발할라》: 넷플릭스에서 곧 공개 예정. 《바이킹스: 발할라》를 시청하세요,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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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 2> 공식 예고편
더 스케일이 커진 홈즈가 온다. 《에놀라 홈즈 2》,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첫 번째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고 기쁨에 찬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 유명 인사인 오빠 셜록(헨리 카빌)의 발자취를 따라 탐정 사무소를 연다. 그런데 여성 탐정으로 사건을 따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냉혹한 어른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사무소의 문을 닫으려던 찰나, 돈 한 푼 없는 성냥 공장 소녀가 에놀라에게 첫 정식 사건을 맡긴다. 바로 사라진 자매를 찾아달라는 것. 하지만 사건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것으로 드러난다. 런던의 부패한 공장과 화려한 음악 공연장, 초상류층의 사교계, 그리고 셜록이 사는 베이커 스트리트 221B까지, 위험천만한 새로운 세상에 던져진 에놀라. 치명적인 음모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에놀라는 친구들, 그리고 셜록의 도움으로 미스터리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 게임은 다시 시작됐다! 해리 브래드비어와 잭 손이 원안을 작성하고 해리 브래드비어가 연출을, 잭 손이 각본을 맡은 《에놀라 홈즈 2》. 새로운 아군과 적군이 등장할 이번 작품에는 밀리 바비 브라운, 헨리 카빌, 데이비드 슐리스, 루이 파트리지, 수전 워코마, 아딜 액터, 샤론 던컨 브루스터, 헬레나 본햄 카터가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