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은 아니다. 그동안 시리즈를 한 편도 만들지 않았던 류승완 감독 스타일에 재탕은 딴 나라 이야기다. 이에 걸맞게 그의 첫 속편인 <베테랑2>도 재탕하지 않는다. 영화는 1편의 성공 공식에 맞춰 안전하게 가기보단 주요 인물의 전사만을 가져온 채 새로운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에 담긴 건 서도철(황정민)을 통한 이 시대의 정의와 신념에 대한 생각이다. 그것도 아주 무겁게.
강력범죄수사대 서도철 형사는 오늘도 바쁘다. 9년 전 조태오를 잡아 처넣어도, 죄짓고 사는 놈들이 하도 많아서 동료들과 함께 잡으러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 성폭행 이슈가 있던 한 교수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일어난다. 유력한 용의자는 바로 ‘해치’. 죄를 지었음에도 죗값을 받지 않는 이들만 골라 살해하는 그는 사적 복수를 감행하는 살인범이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각인된다. 해치 때문에 머리가 아픈 서도철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중범죄자 전석우(정만식)를 시민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일은 많고 사람은 없으니 죽을 맛인 상황에서 전석우를 향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유튜버를 단번에 제압한 경찰이 나타난다. 그는 다름 아닌 SNS에서 UFC 경찰로 유명한 박선우(정해인). 단번에 자신과 같은 DNA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박선우를 팀원으로 영입한다.
일단 무겁다. 경쾌한 범죄액션장르로 확실한 권선징악 서사에 통쾌함을 주 무기로 했던 1편과는 다르다. 오늘날 ‘정의 구현’이란 딜레마를 다룬 서사에 묵직한 물음표를 던질 뿐이다.
류승완 감독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를 반영하는 사회적 문제를 끌고 온다. 그 중심에는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와 이를 통해 확산하는 거짓 뉴스, 자극적 이슈몰이로 몇몇 사람들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의 모습이 자리한다. 여기에 극악무도한 죄의 무게와 반비례하는 처벌에 대한 불만과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사적 복수를 감행하는 이들의 등장도 다룬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는 선과 악이 극명하게 갈리지 않기에 이번 영화가 더 피부로 와 닿는데, 그에 걸맞게 서도철도 현실적인 고민에 휩싸인다.
권력을 남용하는 악인 한 명을 잡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는 잡아야 할 대상이 많아졌고, 고민의 깊이도 달라졌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무엇이 정의를 위하는 일인지에 대한 자문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
초반부터 서도철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는 감독은 어떤 게 진정한 정의인지 많이 고민하는 그의 내면에 집중한다. 특히 과거 폭력을 앞세워 범인을 잡았던 그는 자신의 일이 과연 진정한 정의인지 자문한다. 강력계 형사로서 중범죄자의 안전을 보호하는 게 맞는 일인지, 자기 아들이 학폭 가해자로 몰린 것이 과거 어느 정도 폭력을 용인했던 자신의 교육 때문인지 등 서도철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박선우와 해치는 단순히 극적 재미를 위한 인물이 아닌 서도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와 거울로서 작용한다.
이런 이유에서 <베테랑2>는 범죄 액션보단 누아르 심리극 같은 느낌이 강하다. 극 중 박선우(정해인)가 혈기 왕성했던 서도철의 젊은 시절 모습처럼 보이고, 해치가 악인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생각에 잠식된 서도철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선우와 해치의 전사가 나오지 않고 영화가 진행되는 건, 두 인물이 서도철의 내면 여정을 위한 장치로서의 역할이 크다는 걸 증명한다. 여기에 마약 소굴, 마지막 액션을 터널에서 진행하는 등 어두운 내면의 길을 걸어가는 듯한 공간 설정으로 이 의도에 무게를 더한다.
결국, 서도철은 고통스러운 고민을 거친 결과, 신념을 버리면서까지 행하는 정의는 진정한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믿음을 보여주듯 마지막 해치와의 대결을 통해 이를 확립한다.
서도철을 통한 감독의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메시지는 그 자체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 자체가 영화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인 셈. 물론, 어둡고, 통쾌함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전하며 1편보다 팀원들의 서사가 대폭 준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추석 시즌 개봉이라서 이 부분은 더 크게 다가온다. 더불어 <비질란테> 등 사적 복수를 통한 정의 구현 소재를 다룬 작품과의 결이 비슷해 기시감이 드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류승완 감독은 이 약점을 액션으로 상쇄한다. 초반 도박판 급습 장면에서 보이는 코믹 액션은 물론, 비 오는 옥상에서의 다대일 액션, 남산 추격 및 계단 낙하 액션, 그리고 터널 안에서 펼쳐지는 피날레 액션까지 박진감과 타격감이 오롯이 살아있다. 특히 각 장면의 분위기에 따라 액션의 리듬을 변주하며 극을 살리는 부분은 액션영화의 베테랑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가져가는 것을 물론, 차별화 포인트를 주기 위한 그만의 고민이 엿보인다.
전반적으로 주·조연 모두 고른 연기를 보여주는데, 영화의 중심인 황정민의 피로한 얼굴, 정해인의 텅 빈 눈빛은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정해인은 스크린에서 더 자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1편보단 아쉽지만, 오달수, 장윤주, 오대한, 김시후 등 강력반 형사들이 펼치는 분위기 쇄신용 코믹 연기도 나쁘지 않다.
올 추석 유일한 텐트폴 영화로서 나서는 <베테랑2>는 큰 이슈가 없는 한 손익분기점(400만 관객)을 넘어 큰 흥행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흥행을 떠나 이 영화가 가진 의미는 대중영화로서 손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미는 주면서도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려고 노력한 류승완 감독. 그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극장에서 마주하고 충분히 곱씹기를 바란다. 무겁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사유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속편을 염두에 둔 쿠키 있다. 엔딩크레딧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 바란다. 사전 시사회 때 코돌비에서 이 작품을 만났는데, 음향이 정말 좋았다. 확실히 액션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멋진 타격감의 전율을 느끼고 싶다면 코돌비를 선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진제공: CJ ENM
평점: 3.5 /5.0
한줄평: 통쾌함보단 깊은 사유, 류승완식 ‘정의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