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5-10 20:38:08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리뷰
둘리가 돌아왔다.
아기공룡 둘리의 유일한 극장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4K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올랐던 문장이다. 그러나 정작 극장에서 둘리를 만난 순간, 마음속 문장을 수정했다.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하는 블랙핑크의 노래 가사로.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둘리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는 거. 그리고 둘리는 어른 되어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거.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은 1996년 개봉 작이다. 시골 마을의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1996년 이후의 그 어느 날, 노란색 비디오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질리도록 돌려 보았다.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둘리도 보고, 비디오도 보고, 딱히 둘리를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상에는 둘리가 가득했다. 12색 둘리 물감이나 24색 둘리 크레파스, 필통 같은 데에.
학년이 올라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둘리는 어쩐지 촌스럽게 느껴졌다. 크레파스도 필통도. 사실 내 그림 실력에는 딱 참했던 12색 둘리 물감 대신, 나도 뭔가 좀 더 멋지게 생긴 전문가용 튜브 물감 쓸래. 둘리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좀 더 청소년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 그렇게 한동안 둘리를 잊었다. 귀여운 비눗방울 노래도. 좋아했던 색감의 그림도. 특히 볼 때마다 '작화를 간단히 했는데 색감만으로 저렇게 맛있어 보일 수 있나?' 신기해서 유난히 좋아했던 둘리 특유의 라면 그림까지.

1억 년 전 빙하는 다시 녹고, 둘리는 더 선명한 색채를 덧입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달라졌다. 너무 어린아이 같다고 싫어했던 크레파스는 다시 비슷한 느낌의 오일 파스텔로 유행하고, 지금의 나는 둘리 굿즈 내준다면 냉큼 사러 갈 기세. 그래 우리에겐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이전에 둘리가 있었지. 이거 잘 돼서 둘리도 시즌제로 뽑아줘요. 짱구나 코난처럼 영영 다 해먹자.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둘리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본다.

첫 번째,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매력적인 둘리의 모험
둘리의 모험은 당시 어린 눈에 너무 참신했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타임코스모스도 신기하지만 그걸 타고 간 우주에서 버스 정류장이나 공중전화를 보는 것이 더 신기한 기분이었다.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이 뒤섞여 더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달까. 우주해충이나 가시고기도 임팩트 있는 캐릭터라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1996년 작품인데 지금 어른이 되어 보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불편하지 않고, 유쾌하고 다정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재미있었다.
인터넷에서 가끔 단편적인 기억만 가지고 둘리와 친구들을 민폐 취급하는 글이 많았는데, 막상 보니 둘리와 친구들은 그런 말을 듣기엔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가진 어린이들이었다. 둘리가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애였구나... 둘리와 친구들은 아이의 순수함과 호기심을 가졌으면서도 묘하게 쌍문동에 거주하는 현대 서울 사람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번 재개봉은 8090 서울을 사랑스러운 감각으로 채색한 배경 위로 몽글몽글 떠오를 추억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둘리는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역시...

두 번째, 별사탕처럼 통통 튀는 캐릭터 케미스트리
고길동 아저씨도 이제 희대의 빌런이라는 오명을 벗은 것 같지만, 둘리 등장인물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진상인지 아닌지' 평가받는 것 같다. 그만큼 둘리가 오래 사랑받고 모두가 아는 콘텐츠라는 뜻도 되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진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지친 사회를 살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둘리를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니, 짧은 대사에서도 각자 성격이 확실하게 묻어나는 캐릭터들이 서로 톡톡 튀면서 펼치는 케미스트리가 그저 유쾌하기만 했다. 한때 얄미워 보였던 캐릭터조차 왜 이리 귀엽기만 한지. 고길동 아저씨는 '불쌍한 사람' 그 이상으로 다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놀랍게도 둘리와 친구들과 수평적 관계를 맺는 어른이며, 툴툴대면서도 자식조카 밥 야무지게 챙기는 남성이었다. 게다가 왕년에 홍콩 영화 좀 본 K-소드마스터였고요.


다른 캐릭터들도 21세기의 시선으로 보니 더욱 독특한 매력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슈퍼스타를 꿈꿨던 마이콜은... 21세기에 활동했으면 혁오와 잔나비를 이어 인디씬의 독보적 존재감을 담당했을 텐데. 유퀴즈는 못 나와도 라디오스타에서 소소한 입담을 자랑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재발굴해 줄 필요가 있다.
묘하게 세파에 지친 어른의 시각을 가지고 있어, 볼 때마다 아동노동 근절을 외치게 만드는 또치의 '어른식' 현명함도. 성깔 있지만 의리도 있는 도우너도.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둘리의 MBTI는 아마도... ENFJ... 아닐까?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구역 최강자였던 희동이도. 피지컬 공격력과 상황 판단력, 어떤 상황에도 요동하지 않는 마음을 갖춘 장군감이지 민폐 빌런이 아니다. (종종 회자되는, 희동이가 둘리와 엄마의 재회를 방해하는 장면은 이 극장판 내용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보시길.)






세 번째, 그 시절 사랑했던 면과 오늘 새로 사랑하게 된 면
그 시절 사랑했던 성우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도 즐거웠다. 박영남 성우는 짱구 이전에 둘리였고, 이선 성우는 뽀로로이기 이전에 또치였지. 성우 정미숙(희동이), 최덕희(도우너), 이인성(고길동), 홍시호(텔레비전 아나운서/간수) 등 익숙한 이름들의 노련한 연기 또한 반가웠다. 캐릭터도, 연기도, 그 둘이 어우러지는 놀라운 케미스트리도 모두-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더 좋다.

엔딩 크레딧 영상도 아기자기 예쁜 데다가, 옆에 일러스트로 나름의 쿠키라고 할 수 있는 후일담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요리 보고~ 조리 봐도~”로 시작하는 익숙한 주제가의 2절까지 듣게 되었는데, “고향은 다르지만 모두가 한 마음”이라는 가사에... 어른은 울컥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고향이 다 다르네... 둘리도 기후 난민이었네... 그런데 이 우정 너무 아름답잖아... 고길동 씨를 포함하여 둘리의 모든 친구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것, 배척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둘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고 싶어 씩씩거리던 아이들이 우주로 향했듯, 아이였단 우리들도 자라 둘리에서 새로운 것들을 본다. 둘리는 떠난 적이 없었으므로 컴백할 필요도 없다. 컴백은 내 몫이었다. 어른이 되어 둘리 앞자리를 떠났던 나의 몫. 분주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전히 어른된 우리를 충분히 이해해 줄 만큼 다정하고 즐거운 둘리와 친구들을 만나러 가 보자.
*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은 5월 24일 재개봉합니다. 배경 하나까지 사랑스러운 추억 속 둘리를 극장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 보세요!
**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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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컨트랙터> 군인의 삶과 의미를 되짚는 액션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두 복무한 경험이 있는 특수부대 베테랑 중사인 ‘제임스 하퍼(크리스 파인)’. 숱한 전투로 인해 엉망이 된 몸으로도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에 충성하고자 했던 그는 예상치 못하게 불명예 전역을 명 받는다. 당장 다음 달 관리비와 보험료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그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예전 동료 '마이크(벤 포스터)'의 도움 덕분에 고액의 계약료를 약속 받고 법의 테두리 밖에서 국가에 충성하는 극비 PMC에 합류한다.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바이러스 테러를 막으라는 임무를 받아 베를린으로 향한 제임스. 그러나 타깃인 생명 과학자를 만난 그는 그의 조직과 미션이 숨기고 있던 음모를 깨닫게 되고, 그의 애국심과 충성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찾기 위한 새로운 미션에 나선다.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전쟁과 액션이 소재인 작품에서 PMC(Private Military Company, 민간군사기업)는 이미 낯선 존재가 아니다.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드라마 <아이리스> 속 빌런 아이리스는 그 자체로 거대 PMC이고, <아바타>와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PMC는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한다. 다만 많은 작품에서 PMC는 철저한 악의 편으로, 돈이라면 금기도 없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몰개성한 집단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금전적 이익뿐만 아니라 군사학 연구개발과 훈련,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어 하는 바람도 PMC의 구성원인 PMC 컨트랙터(private military contractors)의 동기마저 평면화되는 것이다. 크리스 파인이 주연을 맡은 <더 컨트랙터>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간과되어 왔던 PMC 컨트랙터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한 영화다.
<더 컨트랙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액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작 후 40여분이 지나야 본격적인 액션씬이 등장할 정도이고, 액션의 구성도 화려하기보다는 단단하지만 절제된 인상을 남긴다. 지하 하수도에서 전등을 부수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처럼 상황마다 가장 필요한 행동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액션을 펼치는 주체들이 특수부대 출신 군인이라는 점을 반영해서인지는 멋들어지게 총알을 피하거나 화려한 격투 실력을 뽐내는 장면도 많지 않다. 실제로 독일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주인공 일행은 순식간에 무력화된다.
이에 더해 첩보 영화의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에 비하면 장르적 재미가 두드러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베를린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하던 제임스는 미션 진행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흐르기 시작하자 그 임무의 진짜 목적에 대해 서서히 의문을 갖는다. 문제는 제임스가 소속된 PMC의 진짜 정체와 그가 수행 중인 임무의 진짜 목표와 이유를 추론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의 임무가 공익 또는 국익이 아닌 기득권층의 사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반전은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액션의 분량과 비중 모두가 많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이는 액션 영화에게 분명 득이 되지 않는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액션을 통해 제임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더 컨트랙터> 진짜 목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절제된 액션이나 예측 가능한 전개 모두 군인에서 PMC에 소속된 한 개인이라는 변화를 마주한 제임스의 내면에 주목할 수 있게 한다. 일례로 영화는 화기애애한 저녁식사 장면에서 단숨에 전투씬으로 넘어가는 대목처럼 신속한 장면 전환과 편집을 통해 템포를 살리며 제임스 하퍼의 이야기 그 자체의 몰입도를 제고하는 데 집중한다.
그 중심에는 군인에서 프리랜서가 된 제임스가 느껴야 하는 정체성의 고민이 위치한다. 이는 단 하나의 액션 시퀀스도 없이 제임스의 일상을 쫓는 첫 40여분의 속에 잘 녹아들어 있다. 특수부대 중사인 그는 일전의 임무로 인해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금지 약물을 복용하며 겨우 버티지만, 규정 위반으로 인해 강제 전역당하게 된다. 제임스는 국가가 자신을 도구처럼 필요할 때 쓰고, 가치가 없게 되자 버려버렸다고 분노한다.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진 그에게 수많은 PMC들이 연락을 보내오지만, 그는 일의 위험성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당장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 아들과 다시 수영장을 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제임스는 결국 전 동료였던 마이크가 속한 회사와 계약한다. 중요한 것은 제임스의 결단이 단지 친분 때문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비록 국가가 자신을 소모품처럼 폐기 처분했다는 점에 분노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라도 국가에 합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설득되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실제로 영화는 제임스의 근처에 항상 성조기를 가져다 놓는다. 불명예 전역 명령 직후에도, 아들인 잭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장면에서도, 그의 집에서도 성조기는 항상 뒷배경을 장식하며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두 복무한 경력에서 비롯된 자부심, 군인으로서의 명예, 그리고 철저한 애국심이 제임스를 휘감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아버지와의 기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도 아들에게 생일선물로 성조기 문신을 새겨줄 만큼 철저한 애국심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며, 그는 군에서 불명예 전역을 당하자 인생이 부정당했다고 느낄 만큼 좌절한다.
이처럼 투철했던 군인 제임스의 애국심 덕분에 <더 컨트랙터>는 다양한 질문과 생각거리를 관객에게 던질 수 있다. 군인 제임스가 PMC 컨트랙터가 된다는 것은 곧 그의 애국심, 자부심, 명예 등에 값을 메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단지 제임스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와 가치에도 값을 메기는 세상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국가를 위한 일이라 믿고 기꺼이 임무에 참여했던 그는 사실 자신의 미션이 바이러스 테러를 막는 것이 아니라, 획기적인 치료제의 개발을 막아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키려는 시도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자 제임스는 PMC의 리더인 '러스티(키퍼 서덜랜드)'와 동료였던 마이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이러한 임무가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기회를 뺏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냐고 반문한다.
이는 하버마스의 자본주의 비판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에서 화폐와 권력을 매체로 하는 체계의 논리가 인격의 존엄성 같은 인간 고유의 사회적 차원에 침입한다고 지적했다. 그 때문에 자본과 권력으로 치환되어서는 안 되는 고유한 질서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의 비판은 당장 영화 초반부에 제임스가 고통에 시달리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숱한 전투에 참여한 베테랑인 제임스는 국가의 소모품으로 쓰이고 버려져서 극심한 PTSD를 겪는 수많은 군인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군인과 개인들에게 냉정하고 무감각한 현실과 현재의 사회가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픔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군인의 아픔은 PMC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도 낳는다. 사실 군대라는 존재는 근대적 주권 국가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이다. 국가 내의 무력을 온전히 장악하여 내부에서의 분쟁 가능성을 현저히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구성원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 때만 온전한 형태의 국가가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군대라는 조직을 애국심의 표출로 치환시키는 작업은 강력한 무력이 국가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감정적인 동기를 제공해 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조기 문신을 새겨주듯이 애국심과 군인의 명예라는 가치를 학습함으로써 군이 유지되고, 더 나아가 국가가 유지되며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이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PMC의 등장은 이러한 기본 가정과 전제를 모두 파괴하는 듯 느껴진다. 영화는 이러한 변화를 애국심, 명예, 자긍심이 효율과 이익 앞에 무의미하고, 제임스와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혼란을 겪는 장면으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영화는 PMC의 본질적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비록 고증과 현실성의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작품이었지만,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는 군인의 신념과 관련해 인상적이었던 대사를 만날 수 있다.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고딩들을 보면 무섭긴 하지만 한 소리할 수 있는 용기,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닌 상식, 그래서 지켜지는 군인의 명예. 내가 생각하는 애국심은 그런 겁니다"라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더 컨트랙터>가 던지는 질문과 위 대사와 다르지 않다. 무력을 국가가 독점하여 개개인들을 보호하던 세상은 합리적 개인의 선택과 시장 논리 안에서 달라지고 있고, 애국심과 명예로 포장되었던 군인의 신념은 계좌에 들어오는 숫자에 의해 움직이고 또 바뀔 수 있는 세상이 찾아오고 있다. 영화는 이 과정 안에 속한 개개인은 어떠한 선택을 내리고, 어떠한 가치를 우선적으로 지키고 보호해야 할지에 대해 묻고 있으며 또 나름의 답을 보여준다. 변화하는 세상 앞에서 그대로 좌절하고 방황한 아버지와 달리, 자신의 아들과 가족에게 돌아가는 제임스의 모습은 개개인들에게 희망을 품는 <더 컨트랙터>가 내놓은 자신만의 답처럼 보인다.
A(Acceptable, 무난함)
액션을 기대했다면 실망을, 드라마에 집중했다면 쌉쌀한 희망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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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 화양연화_# 시작점이 모호한 사랑에 대해 다룬 이야기
[영화리뷰] 화양연화 _# 시작점이 모호한 사랑에 대해 다룬 이야기
안녕하세요. 세라별입니다:)
드디어 저는 완벽히 논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콩~그레~츄~ 레이션 ㅋㅋㅋㅋㅋ
그런 의미에서 며칠 전 영화관에서
보고 온 영화 한 편을 리뷰하려고 하는데요.
바로 화양연화 입니다.
굉장히 오래된 영화인데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이번에 리마스터링 개봉을 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보러가볼까
해서 영화관엘 다녀왔습니다.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사랑이야기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아니더라고요….ㅎㅎ
나 혼자 이상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
』
아니어서 다 보고 난 다음에 칭구랑
그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너는 알았어? 나만 몰랐던거야?
원래 이런 내용이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랬다고 합니다^^
양조위랑 장만옥이 식당에 앉아서
스테이크 먹는 장면만 알고 있어서
둘이 데이트 하는 줄 알았는데
……. 뭐… 어떻게 보면 데이트이긴 하지만
목적이 그건 아니었으니까…ㅎㅎ
저는 그래서 엄청 당황해하면서
영화를 봤었어요 ㅎㅎ
이 이후로는 영화 화양연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량 존재할 예정입니다.
노출되기 싫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
영화 화양연화 시놉시스
』
화양연화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첸부인과 차우.
이사 첫날 부터 자주 마주치던
두사람은 차우의 넥타이와 첸 부인의
가방이 각자 배우자의 것과 똑같음을
깨닫고 그들의 관계를 눈치챕니다.
그 관계의 시작이 궁금해진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고
감정이 깊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로에게 점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
언제 시작했는지 모를 사랑에 대한 이야기
』
저는 화양연화에 대해서 약간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 같은 그런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유명한 대사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것은 없다”를 듣기만 하고
지나간 첫사랑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담은 내용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이렇게 제목과 영화 사진 하나, 대사 하나
3가지 조합만으로 영화를 속단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영화 전반적으로 불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초반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배우자들이 불륜을 하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담담하게
더불어 그들도 불륜과 비슷한 상황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와,,, 사랑이 자신이 모르게 찾아오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참담하고 비참한 감정이었던 주인공들이
자신들 역시 똑같은 불륜을 저지르게 되면서
그리고 그 과정을 굉장히 가랑비 내리듯
감정을 발전시키다보니 언제 이 감정이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느샌가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는 그 모호한 사랑의 시작에
대해 너무나도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
비밀의 배우자들
』
제가 영화 화양연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연출이 상대 배우자들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첸부인과 차우는 각각 결혼을 해서
가정이 있지만 첸부인의 남편은
목소리만 등장할 뿐 단 한번도 모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차우의 부인 역시 뒷모습과 목소리만
등장할 뿐 실제적인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데요.
처음에는 이렇게 둘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며 첸부인과 차우의 시점에서
불륜을 일으킨 배우자들을 관찰자적인
마인드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더욱 이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됐고,
어쩌다가 시작을 하게 됐는지
굉장히 궁금하게 만드는 연출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영화가 전개될수록
첸부인과 차우 역시 서로에 대한 감정을
키워가면서 저 둘 역시 첸부인과 차우처럼
우연한 계기로 만나 자신들도 모르게
감정이 커졌겠구나 싶더라고요.
일부러 첸부인과 차우의 모습만 보여준
연출은 아마 불륜의 시작점을 궁금하게
만들면서도 결국엔 그 시작은 알 수 없고
모호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bgm 하나로도 영화를 제작할 수 있구나
』
영화에서 음향의 효과는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는데요.
관객의 감정을 미리 끌어올리는 역할로
음향은 많이 사용되면서
영화에서는 다양한 bgm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영화 화양연화에서는 그 다양한
bgm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유지메의 테마’와 Quizas, Quizas,Quizas
두 곡을 가지고 영화를 이끌어가는데요.
그리고 임펙트가 굉장히 강하다보니
이 곡만 쓰면 오히려 루즈해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bgm만으로도 영화 자체를
꽉 채워주더라고요.
절망적일 때, 선을 넘고 싶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무료할 때,
행복할 때, 기대감이 가득 차있을 때,
등 굉장히 다채로운 감정과 모두 어울리는
bgm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감정신들과 잘 어울렸고,
특히 bgm이 흘러나올 때의 미장센은
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청각적인 부분에서의 단순함을
첸부인 역을 맡은 장만옥의 화려한 치파오를
통해서 어느정도 채워줬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영화 관람이었던
화양연화.
여러분도 시간 내서 한 번쯤
다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럼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안뇽 ><
#영화 #영화리뷰 #화양연화 #화양연화리마스터링 #중국영화 #장만옥 #양조위 #영화추천 #2020영화 #2021영화 #movie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본 콘텐츠는 블로거 세라별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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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는 행복이야말로
먹는 행복은 누구에게나 있다. 뭐, 아무리 소식좌라고는 해도 좋아하는 음식은 있을 것 아닌가. 남극처럼 삶의 낙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가장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는 식욕이다. 이 이야기는 먹방을 빙자한, 한 철부지 남편의 와이프 이해하기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다. 하지만 맛있게들 먹는 모습은 덤이라고나 할까.
1. 모든 욕구가 차단된 곳, 그곳은 남극
영화를 보고 있자면, 누군 허겁지겁 먹고, 누군 천천히 먹고 각기 먹는 스타일들이 다 달라서 그들을 비교하면서 보는 지점들이 재미있었다. 정말 각기 다른 사람들끼리 한 공간에 모여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구나 느끼게 되면서도 각자의 밥에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쓰는 지점도 은근 코믹했다. 온전히 배고픔을 충족하는 사람들을 제 3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이리 재미있는 것이었나.
이전에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들 별로라고 한 적은 있는데 이렇게 아무 욕구도 충족할 수 없는 이 남극이라는 곳에서는 먹는 게 유일한 낙일 수밖에 없으니 게걸스럽게 먹는 이들도 이해가 간다. 가족도 보고 싶고, 여자친구도 보고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그저 얼음만 바라보는 삶에서 우울증 안걸리려면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 가족애가 빛난
이 영화의 감동 포인트는 아무래도 주인공과 딸의 원거리 대화 장면이었다. 딸은 아버지임을 알고 대화하고 아버지는 딸과 대화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정보가 불공평한 상황을 이용해 딸이 타인인척 접근해 더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가끔은 가족이라는 존재들은 서로가 옆에 없을 때 서로에 대한 감정이 증폭되고 서로에 대한 다정한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옆에 있을 때 무뚝뚴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연구대원이 아닌 자신이 불려나온 것이 의아한 아버지도, 그저 아버지와 말하고 싶어 타인인척 귀여운 질문 던지는 딸도 너무 귀엽다.
3. 남에게 밥을 해주는 행복
주인공은 그전까지 와이프에게 반찬투정이나 하는 금쪽이 남편이었다. 하지만 타의이긴 했지만 남극에서 누군가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면서 은근히 기쁨을 느끼던 그는 남극에서 돌아오자 의외로 우울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딸이 생일상차려달라는 딸의 말에 묘한 생기가 도는 것을 보니 그는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매력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랍스터를 튀겨먹는 장면이 가장 명장면이다. 은근히 웃기고 계속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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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위로 흩어지는 광기 어린 숨결
더 노비스 (THE NOVICE , 2021)
"물 위로 흩어지는 광기 어린 숨결"
개봉일 : 2022.05.25.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스릴러
러닝타임 : 97분
감독 : 로런 해더웨이
출연 : 이사벨 퍼만, 에이미 포사이스
개인적인 평점 : 3.5/5
쿠키 영상 : 없음
더 노비스 줄거리
대학 신입생 ‘알렉스’는 교내 조정부에 가입한 후 동급생 ‘제이미’에게 경쟁심을 느낀다. 늘 최고를 갈망하는 ‘알렉스’는 팀 1군에 들기 위해 훈련을 거듭하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내몰기 시작하는데···
네 미친 짓으로 최고를 증명해 봐!
우리는 평생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감과 동시에 그들과 끊임없는 경쟁을 벌인다. 노력형이든 타고난 천재든 상관없이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그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 1등,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뿐이다.
<더 노비스>는 선천적인 재능이 없는 대신 흔히 말하는 악바리 근성이 넘치는 주인공 '알렉스’의 질주를 담은 영화다. 알렉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대학에 입학한다. 고등학교에선 가까운 동네 친구들끼리만 경쟁을 펼쳤고, 그는 교내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다. 하지만 대학교에 오니 알렉스처럼 수재라고 불렸던 학생들이 바글바글한 거다. 알렉스는 더 노력하지 않으면 1등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보다 더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새롭게 가입한 교내 조정부에서 타고난 재능을 가진 동급생 '제이미’를 만나며 그 불안감은 독기로 변하게 된다.
다시 만나보고 싶었던 배우 이사벨 퍼만
<더 노비스>는 개봉을 앞두고 올해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선공개되었다. 영화제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한참 고민하던 찰나, "<오펀: 천사의 비밀> 그 여주인공이 나오는 신작도 상영한대!" 하는 소문을 듣고 이 영화 근처를 기웃기웃거렸는데 도저히 스케줄이 나오지 않아 만약 정식 개봉을 한다면 꼭 챙겨보자고 다짐했었다. (그 당시엔 정식 개봉 소식을 나만 몰랐었다..)
<더 노비스>를 기대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이 영화를 통해 데뷔한 로런 해더웨이 감독이 스스로 이 작품을 "조정을 소재로 한, <블랙 스완>의 느낌이 드리워진 <위플래쉬>"라고 소개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사벨 퍼만이라는 배우 때문이었다.
대략 10년전 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필모를 훑어보다 그가 <오펀: 천사의 비밀>이라는 영화의 제작에 참여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어? 레오가 제작한 거면… 볼만하지 않을까?" 하며 용감하게 이 영화에 도전했었다. 그리고 아주 많은 관객들이 그러했듯 큰 충격에 빠졌고 이사벨 퍼만이라는 배우에게 의구심을 가졌었다. "이 사람… 나이 속인 거 아냐?"하고. 분명 아이 같은데, 아이가 맞는데… 아이가 아닌 것 같은 그의 연기에 충격을 넘어 의심이 들었던 거다.
이사벨 퍼만은 그 이후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국내에서 크게 이슈가 되었던 작품이 많이 없었기에 나에게 이사벨 퍼만의 이미지는 '오펀 그 배우’였다. 근데 그런 그가 <위플래쉬> + <블랙 스완> 같은 영화의 주연으로 나온다니.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의 목을 조이며 나아가는 경주
광기와 독기. 그리고 약간의 호흡곤란. <더 노비스>라는 영화를 짧게 표현하자면 이 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물 위에 떠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승선을 향해 손을 갈고 위안에 든 모든 것을 토해내는 주인공 알렉스의 모습은 멋지다 못해 지독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해당 종목을 사랑한다 해도 끝없는 극한의 경쟁 속에서 부담감,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의 팀에서도 1군이 있고, 2군이 있고, 또 대표가 있다. 알렉스는 학교를 대표하는 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체구가 작았고, 그만큼 힘도 약했다.
그런 그의 옆에 있는 제이미는 알렉스보다 체구도 크고 어릴 때부터 여러 운동을 접하며 자라 뛰어난 운동 신경을 자랑하는 팀의 에이스다. 이미 자신의 입지를 확보한 제이미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훈련에 참여한다. 알렉스는 제이미에 대한 열등감, 1등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며 타고난 그의 재능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는다.
대표팀 멤버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제이미와 예비역으로 대기하다 겨우 기회를 잡은 알렉스. 같은 훈련 과정을 밟고 있지만 두 사람의 표정과 행동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타고난 천재와 노력형 수재. 겉으로 보기엔 같은 배에 앉아 같은 박자로 노를 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렉스는 제이미와 함께 대표팀 자리에 앉기 위해 숨 쉴 틈 없이 달려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같지만
제이미와 알렉스는 마치 달리기 경주에 참여한 토끼와 거북이 같다. 타고난 달리기 실력으로 여유롭게 결승선을 향해가는 토끼 제이미와 제이미가 푹 자고 있을 시간에도 열심히 훈련하는 거북이 알렉스. 근데 <더 노비스>에서 볼 수 있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화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의 초반, 열등감을 갖고 있는 알렉스가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노력해서 결국 제이미보다 더 팀에서 촉망받는 선수가 되려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렉스의 목표가 팀의 1군, 대표 선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알렉스는 그저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 팀에서도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인다.
알렉스의 목표는 팀의 단합, 팀의 우승보단 어찌 됐든 내가 젓고 있는 배가 1등으로 결승선에 통과하는 것이다. 팀의 단합보단 나의 1등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에 누군가는 훈련을 열심히 한다며 박수를 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혼자만 아는 재수 없는 놈이라며 욕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몇 번의 감탄과 탄식을 내뱉었다.
영화의 장단점
<더 노비스>는 알렉스의 불안감과 초조함을 시각, 청각을 이용해 탁월하게 표현한다. 알렉스의 몸에 흐르는 땀과 그의 눈빛, 마치 세상에 홀로 남은 것처럼 느껴지는 훈련 장면, 조각난 채로 환각처럼 지나가는 순간들, 긴장감을 끌어올려줌과 동시에 관객을 더욱 지치게 만들기도 하는 음악의 사용까지. 마치 알렉스의 불안한 마음속에 발끝을 몇 번 담가보는 느낌을 선사하는 탁월한 화면 구성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그에 반해 최대 단점이라면 이 이야기는 감탄과 탄식을 불러오긴 하지만 커다란 짜릿함을 주진 못한다는 것이다. 영화 내내 학교에선 공부로 경쟁하고, 새벽, 늦은 밤 할 것 없이 훈련을 반복하고, 숨쉴틈 없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알렉스의 일상이 이어진다. 주인공의 치열한 일상을 함께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게 되기 마련인데, <더 노비스>의 엔딩엔 그런 보상이 없다. 상쾌한 해방이라든가, 끝내 승리하는 모습이라든가. 아니면 광기에 절여진 비극적인 결말이라든가. 딱 정해진 무언가가 있으면 탁! 정신이 환기되는 느낌이 들 텐데 어째 영화 내내 알렉스의 광기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끝나버리는 느낌이랄까. 알렉스가 결승선을 끊으며 주체적으로 만들어낸 엔딩이긴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 위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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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에서 빛을 상상하는 일
영화는 해가 뜨기 전 이미 활기차게 깨어있는 뭄바이의 모습을 배경으로, 도시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음성이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면서 시작된다. 그들의 음성은 뭄바이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도시민으로서 겪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뭄바이는 인구수가 약 2300만에 달하는 인도 최대의 도시로, “가족 중 한 사람은 뭄바이로 향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인도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자 모이는 곳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나은 삶을 모색하고자 정착한 이 도시에서 안식을 찾을 수 없으며,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오프닝 시퀀스 끝에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운행하는 출근 열차에 몸을 실은 영화의 주인공 ‘프라바’가 있다. 그는 끊임없이 흐르고 약동하는 도시 속 홀로 한곳을 응시하는 사람이다.뭄바이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프라바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로 떠나버린 후 몇 년째 연락도 닿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한다. 그런 프라바에게 어느 날 독일에서 온 발신자 불명의 소포가 도착한다. 어떤 이름이나 안부도 없이 독일제 밥솥만이 덩그러니 담긴 상자를 마주한 그는 자연히 남편을 떠올린다. 도시의 불빛이 늦은 시간까지 어둠을 밝히는 불면의 밤. 프라바는 얼굴도 모르는 채 결혼한 낯선 남편을 생각하며 밥솥을 끌어안지만, 그럼에도 외로움이 마음 한 켠을 파고드는 이상한 감각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는다.
한 편 프라바와 같은 병원에서 함께 간호사로 일하면서 방을 같이 쓰고 있는 룸메이트 ‘아누’는 남몰래 연애에 몰두하고 있다. 카스트제와 종교 등의 정치적 문제가 일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인도에서 아누의 연애에는 주변인들의 날 선 시선이 늘 뒤따른다. 힌두교도인 그녀는 이슬람교도인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표현하는 데 주저가 없다. 병원에서의 권태로운 일상이 지나면 아누와 그의 남자친구 ‘시아즈’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밤거리를 헤맨다.
병원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이 두 사람과 우정을 쌓고 있는 '파르바티’는 지금껏 수십 년간 살아온 집이 재개발 구역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거주지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프라바와 파르바티가 도움을 청하고자 찾은 변호사는 그가 그곳에 오랬 동안 거주했다는 것을 증명할 서류가 없다며 떠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그 땅, 그녀의 노동으로 일군 그 공간에는 곧 신축 아파트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설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머물렀다 떠나가는 복잡한 대도시에서 개인들의 존재는 미세해진다. 누구 하나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곳, 내가 여기 존재했다는 흔적마저 남기기 어려운 도시 뭄바이. 거대한 도시의 익명성 뒤에 지워진 개개인의 삶은 지극히 외롭고 쓸쓸하다.
영화 속 세 사람은 그런 도시의 외로움을 서로의 존재를 통해 이겨내고자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그 누구의 상실이라도 서로가 기억하면서.
이들은 이를 수 없는 사랑에 얽매여 있고, 또 자신이 살아갈 안식처를 마련하고 싶어 하지만, 이 도시에서는 그런 작은 소망마저 이루기 어렵다. 결국 도시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파르바티를 도와 프라바와 아누는 인도 남서부 라트나기리 지역에 위치한 작은 어촌마을로 향한다.
공간이 변화하면서 영화는 새로운 장으로 접어든다. 몬순 기후의 습기 어린 푸른 공기와 하늘에 닿을 듯 높게 뻗은 빌딩, 사람들의 소란으로 채워졌던 대도시 뭄바이를 떠나 당도한 작은 시골 마을은 광대한 바다와 숲, 건조한 모래와 파도 소리가 있는 곳이다. 다큐멘터리적 연출로 시작해 지극히 현실적인 도시의 삶을 담아냈던 영화는 이제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마술적 사실주의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시간을 훔치는 도시 뭄바이’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낮보다는 밤을 중심으로 펼쳐졌다면 시골 마을에서의 오후는 아주 느리게, 때로는 영원에 가깝다고 느껴질 만큼 느리게 흘러간다. 이렇듯 문명을 떠나 비문명과 가까운, 즉 자연이 펼쳐진 공간으로 이동한 파르바티와 아누는 바쁘고 소란스러웠던 도시에서의 모습보다 한결 편안해 보인다. 파르바티는 전에 없이 춤을 추며 활짝 웃음을 지어 보이고, 아누는 몰래 데려온 남자친구와 보다 과감하게 사랑을 속삭인다.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와 그늘 없이 내리쬐는 눈부신 햇빛 아래 그들은 자유를 찾은 듯하다.
그러나 오직 프라바만이 여전히 멈춰 서 있다. 먼 곳에서 아직 그녀를 얽매고 있는 남편이라는 존재의 속박 때문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해변을 거닐던 프라바는 우연히 파도에 떠내려 온 남자를 발견한다. 거의 죽음 직전에 있던 그에게 숨을 불어넣어 준 프라바는 곧 그 낯선 이에게서 자신의 남편을 본다. 수없이 많은 밤 그려보았던 남편의 형상은 프라바에게 그녀가 꿈꾸었던 말을 건네지만, 이내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줄곧 원해왔던 것이 남편의 귀환이나 그의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이제는 그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것을 결심한 프라바는 그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를 남편의 “함께 떠나자”는 말에 완강히 거절을 표한다.
“이러지 마요. 다신 보고 싶지 않아요. 다시는요.”
이는 아마 그녀 식의 작별인사였을 것이다. 지금껏 그녀를 얽매고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았던 남편의 유령으로부터 그렇게 프라바는 벗어난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연출과 음악, 세련된 편집 역시 훌륭한 영화지만 결말부의 작은 마법은 그 어떤 것보다도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 아름다운 결말에서 어두운 객석에 앉은 관객의 마음에는 따스한 빛이 찾아든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하려고 해도 상상이 안 돼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상상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다. 이를 반영하듯 영화는 계속해서 빛을 활용한 아름다운 연출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빛은 광원光源의 빛이 아니다. 카메라가 계속해서 포착하고 있는 빛은 스크린에 영사되는 희미한 빛과 같은 것, 그러니까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같은 빛이다.
어두운 방을 희미하게 밝히는 그 빛은 어둠 속에서 상상한 빛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 상이 비록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괜찮다. 어둠 속에서 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 희미한 한줄기 빛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또 의지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계속 빛을 상상해야 한다. 어둠에 너무 익숙해져 외로움에 잠식되지 않도록, 무정한 도시의 흐름에 쓸려 나가지 않도록.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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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 2 | 전편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속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 챙길 시간도 없이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 그들의 다음 목표는 연쇄살인범으로 의심받는 범죄자, 일명 '해치'다. 서도철은 수사 끝에 해치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하는 일종의 자경단임을 파악한다. 때마침, 해치도 인터넷에 새 예고편을 공개한다. 서도철에게 한 번 체포됐었고, 임산부를 죽인 범죄자 '전석우'(정만식)를 다음 살해 대상으로 지목한 것.
이에 형사들은 전석우 보호 작전을 개시하고, 전석우 집 앞에서 분노한 시위대와 대치한다. 그 과정에서 서도철은 칼을 꺼내든 인터넷 방송인을 거침없이 제압하는 순경, '박선우'(정해인)를 만난다. 범죄자에게 무자비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든 서도철은 박선우를 팀에 합류시킨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해치의 범행이 더 대담해지고 경찰이 그에게 농락당하자, 서도철은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박선우를 받아들인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를.
<베테랑>의 의문, <베테랑 2>의 대답
2015년 여름,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연도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흥행의 원인은 여럿이겠지만, '통쾌함'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재벌 악역 클리셰의 집합소인 '조태오'(유아인)를 비판하는 전개와 때리는 액션의 타격감은 OST만큼이나 경쾌하고 시원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선구자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은 물음표도 남겼다. 주인공 서도철의 행적을 곱씹을수록 그 물음표는 커진다. 그는 사람 패려고 경찰 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폭력적이다. 먼지를 묻힌 무기를 쥐어준 뒤 정당방위라며 범죄자를 때리는 장면은 코미디이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섬뜩하기도 하다. 단지 형사라는 이유로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암시처럼도 보이니까. 그 폭력이 과연 어느 선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9년 만에 돌아온 속편은 통쾌함에 가려진 이 딜레마를 고찰한다. <베테랑 2>는 사적제재라는 프레임 안에서 범죄자를 향한 폭력과 응징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 결과 오락성과 대중성은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잃은 만큼 얻은 것도 확실하다. 전편에서 확립한 성공방정식을 답습하는 대신 도전을 선택한 덕분에 <베테랑 2>는 품격 있는 블록버스터로 거듭났고, 3편까지 기대케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서도철이라는 물음표
사실 <베테랑 2>의 소재는 신선하지 않다. 되려 늦었다. 자경단원의 사적제재를 묘사한 작품은 <열혈사제>, <빈센조>, <빅마우스> 등 차고 넘친다. 자경단원 경찰도 이미 <비질란테>에서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신입 형사 박선우가 사실 자경단원이고 악역이라는 사실은 스포일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예고편이나 포스터만 봐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대신 <베테랑 2>는 관점을 달리하여 뒤늦은 도착, 식상함이라는 한계를 돌파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자경단원의 이야기와 사연에 집중하는 반면, <베테랑 2>는 자경단원을 관찰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서도철이 있다. 특히 서도철의 직위와 성향이 서로 어긋나는 모순이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서도철의 언행은 거칠다. 전편에서 체포한 전석우가 주취감경 판결을 받아 이르게 출소하자 그런 범죄자는 때려죽여도 시원찮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해치를 쫓으면서도 내심 그가 왜 더 악독한 범죄자를 죽이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그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준다. 마치 자경단이 공권력을 대신하더라도 무방하다는 듯이. 이처럼 경찰답지 않은 언행은 박선우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기제처럼 느껴진다.
전편보다 분량이 늘어난 서도철의 가족 이야기도 그의 모순된 언행을 강조한다. 그의 아들은 꾸준히 교내 폭력 사건에 휘말렸고, 다른 애들에게 맞으며 지내던 피해자였다. 하지만 서도철은 아들의 피해 사실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애들은 서로 싸우며 크는 거라며 방관한다. 이는 그의 폭력적인 일면, 더 나아가 그와 박선우가 본성적으로는 결이 다르지 않은 인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해치 덕분에 찾은 답
하지만 <베테랑 2>는 서도철의 모순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차분히 뒤쫓는다. 서도철은 경찰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먼저 변한다. 학교폭력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자신이 무시한 '애들 싸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사소해 보이는 애들 싸움이 도를 넘어서면 어떻게 되는지 비로소 그 결과를 실감한다. 정당방위라는 명분만 있으면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르던 그가 마침내 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눈을 뜬다.
그제야 서도철은 박선우에게서 위화감을 느끼고, 그를 의심한다. 이는 영화가 박선우의 정체를 굳이 숨기지 않는 이유다. 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수도 있었고, 그의 정체를 미스터리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 2>는 박선우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그와 서도철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다. 비슷한 결을 지닌 듯 보이던 그들이 대립하게 되는 계기가 등장할 때까지의 긴장감을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몇몇 카메라 구도나 연출은 유달리 눈에 띈다. 일례로 박선우의 옆얼굴과 서도철의 정면 얼굴, 혹은 그 반대를 동시에 한 화면에 잡으면서 그들의 관계성을 부각한다. 직선으로 자르지 않은 화면 분할도 독특하다. 서도철은 검은 마스크를 쓴 박선우의 얼굴 앞에 작게 위치한다. 마치 그가 박선우의 계략에 집어삼켜지는 듯하게. 그 덕분에 차도철이 형사이자 아버지로서 고통받는 이야기는 더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그 결과 <베테랑 2>는 마치 류승완표 <다크나이트> 같기도 하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배트맨에게 "너와 나는 같다"라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법을 가볍게 어긴다는 점에서 그들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는 것. 배트맨 역시 조커를 거울삼아 자기 정체성에 관해 고민한 끝에 '다크나이트'가 된다. 이러한 둘의 관계성은 서도철과 박선우의 관계와 유사하다. 서도철 또한 박선우를 거울삼을 때 성숙한 '베테랑' 형사로 거듭날 수 있으니까.
액션이라는 느낌표
이 지점에서 <베테랑 2>는 액션을 스토리텔링의 도구로써 영리하게 활용한다. 액션은 리트머스 종이 같다. 더 잔혹해진 연출로써 차도철과 관객을 동시에 시험에 빠트린다. 액션의 중심에 박선우를 위치시켜 정의 실현과 사적제재의 선을 넘나드는 불편함을 유발하고, 경찰이라기에는 과한 그의 대응을 어디까지 용인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바로 이 순간 관객과 서도철의 시선은 일치를 이룬다.
액션 시퀀스의 배치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액션만 따라가도 서도철과 박선우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도박장을 습격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전편처럼 경쾌하다. 반면에 자극적으로 연출된 남산과 약쟁이 골목 시퀀스는 질문을 던진다. 박선우의 범죄자 제압 방식을 보다 보면 그가 자기 과라고 확신한 서도철의 판단이 과연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클라이맥스에서는 서도철과 박선우를 가르는 경계선을 보여준다. 뻔할지도 모르지만, 그 선은 살인이다. 다만 살인이라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한 서도철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자칫 식상할 뻔한 대답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박선우를 제압하는 액션보다 그를 살리려는 액션이 눈에 띄기에 더 독특한 시퀀스라고 할 수 있다.
액션 자체의 질이 상당하기에 액션에 담긴 스토리텔링은 더욱 효과적이다. 특히 공간의 특성을 이용한 장면이 뇌리에 박힌다. 복도처럼 좁은 공간에서의 추격전과 그 이후 갑작스레 등장하는 넓은 공간에서의 격투라는 패턴이 반복된다. 그런데 액션 합의 타격과 속도감이 뛰어나다 보니 넓은 공간에서 액션이 펼쳐질 때 장점은 극대화되고, 부딪히는 인물들의 갈등도 덩달아 극대화될 수 있다.
형보다는 부족한 짜임새
다만 <베테랑 2>의 만듦새는 아쉽게도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 일단 여러 층위의 플롯을 쌓아가는 전개가 매끄럽지 않다. <베테랑 2>는 서도철의 가족사나 해치와의 추격전 등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한 데 모여서 터지는 구조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로의 전환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다 보니 전편에서 비해 폭발력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원인은 악역의 존재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가 서도철의 서사에 집중하다 보니 박선우의 서사는 빈약하다. 개인적인 동기도 제대로 못 보여주니 매력은 부족하고, 그저 서도철을 각성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결국 선한 마스크와 대비되는 광기 어린 눈빛을 보여준 정해인의 연기와는 별개로, 박선우는 조태오만큼 부각되지 못한다. 자연히 <베테랑 2>는 구심점 하나를 잃은 듯 보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는 인터넷 개인 방송을 활용하는 방식도 문제다. 물론 개인 방송을 등장시킨 이유는 납득할 수 있다. 이는 사적제재가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폭력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다. 근래에 밀양 성폭행 사건이 재조명되고 새로운 논란을 일으켰듯이, 사적제재가 유발할 수 있는 폐해를 경고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다만 지금의 방식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개인 방송의 일부를 스크린에 직접 띄워서 보여주데, 그럴 때마다 분위기가 끊기고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톤과 매너가 근본적으로 다른 영화와 인터넷 방송이라는 매체 간의 괴리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베테랑 2>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영화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보이기 때문.
시리즈라서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베테랑 2>는 여전히 칭찬이 아깝지 않다. 시리즈인데도 1편의 성공 공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전편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전편이 남긴 의문점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는 길을 선택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다른 맛과 재미를 갖춘 속편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그 결단은 더욱 인상적이다. 이는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범죄도시>가 2편부터 4편까지 관성에 의존한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기에 관객의 반응도 어떤 작품보다 궁금하다. <베테랑 2>가 천만 관객을 동원할 환경은 이미 만들어졌다. 추석 연휴 동안 경쟁작이 없고, <파묘>와 <범죄도시 4> 이후로 마땅한 작품이 없었으니 관객이 몰릴 여건은 충분하다. 다만 작품성과 메시지를 챙기기 위해 대중성과 상업성을 다소 내려놓았으니, 과연 이 선택이 흥행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미지수일 따름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9년 만의 속편이 필요했던 이유를 윤리와 액션으로서 증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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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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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메인 예고편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군말 없이 집으로 내려온 아들은
엄마가 들려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구슬픈 노래를 담담하게 듣는다.
엄마와 아들,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바람이 되어 안개를 걷어갈 수 있을까?
때로는 지긋하고 때로는 애틋한 엄마와 아들,
우리 시대 가족 이야기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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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트롤헌터: 라이즈 오브 타이탄>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넷플릭스 공개]
어둠의 세력이 다가오고 있다.
지구를 파괴하고 세상을 손에 넣으려 한다.
그에 맞서 일어선 <트롤헌터> <3 언더> <위저드>의 영웅들.
굳게 손잡은 그들을 맞이하라. 운명을 걸고 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