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5-10 20:38:08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리뷰
둘리가 돌아왔다.
아기공룡 둘리의 유일한 극장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4K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올랐던 문장이다. 그러나 정작 극장에서 둘리를 만난 순간, 마음속 문장을 수정했다.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하는 블랙핑크의 노래 가사로.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둘리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는 거. 그리고 둘리는 어른 되어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거.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은 1996년 개봉 작이다. 시골 마을의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1996년 이후의 그 어느 날, 노란색 비디오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질리도록 돌려 보았다.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둘리도 보고, 비디오도 보고, 딱히 둘리를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상에는 둘리가 가득했다. 12색 둘리 물감이나 24색 둘리 크레파스, 필통 같은 데에.
학년이 올라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둘리는 어쩐지 촌스럽게 느껴졌다. 크레파스도 필통도. 사실 내 그림 실력에는 딱 참했던 12색 둘리 물감 대신, 나도 뭔가 좀 더 멋지게 생긴 전문가용 튜브 물감 쓸래. 둘리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좀 더 청소년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 그렇게 한동안 둘리를 잊었다. 귀여운 비눗방울 노래도. 좋아했던 색감의 그림도. 특히 볼 때마다 '작화를 간단히 했는데 색감만으로 저렇게 맛있어 보일 수 있나?' 신기해서 유난히 좋아했던 둘리 특유의 라면 그림까지.
1억 년 전 빙하는 다시 녹고, 둘리는 더 선명한 색채를 덧입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달라졌다. 너무 어린아이 같다고 싫어했던 크레파스는 다시 비슷한 느낌의 오일 파스텔로 유행하고, 지금의 나는 둘리 굿즈 내준다면 냉큼 사러 갈 기세. 그래 우리에겐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이전에 둘리가 있었지. 이거 잘 돼서 둘리도 시즌제로 뽑아줘요. 짱구나 코난처럼 영영 다 해먹자.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둘리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본다.
첫 번째,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매력적인 둘리의 모험
둘리의 모험은 당시 어린 눈에 너무 참신했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타임코스모스도 신기하지만 그걸 타고 간 우주에서 버스 정류장이나 공중전화를 보는 것이 더 신기한 기분이었다.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이 뒤섞여 더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달까. 우주해충이나 가시고기도 임팩트 있는 캐릭터라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1996년 작품인데 지금 어른이 되어 보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불편하지 않고, 유쾌하고 다정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재미있었다.
인터넷에서 가끔 단편적인 기억만 가지고 둘리와 친구들을 민폐 취급하는 글이 많았는데, 막상 보니 둘리와 친구들은 그런 말을 듣기엔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가진 어린이들이었다. 둘리가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애였구나... 둘리와 친구들은 아이의 순수함과 호기심을 가졌으면서도 묘하게 쌍문동에 거주하는 현대 서울 사람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번 재개봉은 8090 서울을 사랑스러운 감각으로 채색한 배경 위로 몽글몽글 떠오를 추억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둘리는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역시...
두 번째, 별사탕처럼 통통 튀는 캐릭터 케미스트리
고길동 아저씨도 이제 희대의 빌런이라는 오명을 벗은 것 같지만, 둘리 등장인물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진상인지 아닌지' 평가받는 것 같다. 그만큼 둘리가 오래 사랑받고 모두가 아는 콘텐츠라는 뜻도 되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진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지친 사회를 살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둘리를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니, 짧은 대사에서도 각자 성격이 확실하게 묻어나는 캐릭터들이 서로 톡톡 튀면서 펼치는 케미스트리가 그저 유쾌하기만 했다. 한때 얄미워 보였던 캐릭터조차 왜 이리 귀엽기만 한지. 고길동 아저씨는 '불쌍한 사람' 그 이상으로 다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놀랍게도 둘리와 친구들과 수평적 관계를 맺는 어른이며, 툴툴대면서도 자식조카 밥 야무지게 챙기는 남성이었다. 게다가 왕년에 홍콩 영화 좀 본 K-소드마스터였고요.
다른 캐릭터들도 21세기의 시선으로 보니 더욱 독특한 매력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슈퍼스타를 꿈꿨던 마이콜은... 21세기에 활동했으면 혁오와 잔나비를 이어 인디씬의 독보적 존재감을 담당했을 텐데. 유퀴즈는 못 나와도 라디오스타에서 소소한 입담을 자랑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재발굴해 줄 필요가 있다.
묘하게 세파에 지친 어른의 시각을 가지고 있어, 볼 때마다 아동노동 근절을 외치게 만드는 또치의 '어른식' 현명함도. 성깔 있지만 의리도 있는 도우너도.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둘리의 MBTI는 아마도... ENFJ... 아닐까?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구역 최강자였던 희동이도. 피지컬 공격력과 상황 판단력, 어떤 상황에도 요동하지 않는 마음을 갖춘 장군감이지 민폐 빌런이 아니다. (종종 회자되는, 희동이가 둘리와 엄마의 재회를 방해하는 장면은 이 극장판 내용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보시길.)
세 번째, 그 시절 사랑했던 면과 오늘 새로 사랑하게 된 면
그 시절 사랑했던 성우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도 즐거웠다. 박영남 성우는 짱구 이전에 둘리였고, 이선 성우는 뽀로로이기 이전에 또치였지. 성우 정미숙(희동이), 최덕희(도우너), 이인성(고길동), 홍시호(텔레비전 아나운서/간수) 등 익숙한 이름들의 노련한 연기 또한 반가웠다. 캐릭터도, 연기도, 그 둘이 어우러지는 놀라운 케미스트리도 모두-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더 좋다.
엔딩 크레딧 영상도 아기자기 예쁜 데다가, 옆에 일러스트로 나름의 쿠키라고 할 수 있는 후일담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요리 보고~ 조리 봐도~”로 시작하는 익숙한 주제가의 2절까지 듣게 되었는데, “고향은 다르지만 모두가 한 마음”이라는 가사에... 어른은 울컥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고향이 다 다르네... 둘리도 기후 난민이었네... 그런데 이 우정 너무 아름답잖아... 고길동 씨를 포함하여 둘리의 모든 친구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것, 배척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둘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고 싶어 씩씩거리던 아이들이 우주로 향했듯, 아이였단 우리들도 자라 둘리에서 새로운 것들을 본다. 둘리는 떠난 적이 없었으므로 컴백할 필요도 없다. 컴백은 내 몫이었다. 어른이 되어 둘리 앞자리를 떠났던 나의 몫. 분주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전히 어른된 우리를 충분히 이해해 줄 만큼 다정하고 즐거운 둘리와 친구들을 만나러 가 보자.
*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은 5월 24일 재개봉합니다. 배경 하나까지 사랑스러운 추억 속 둘리를 극장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 보세요!
**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호쾌한 주먹 뒤에 자리한 일말의 씁쓸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리봉동 소탕작전 후 4년 뒤, 금천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가 현지 영사관에 자수했으니 그를 인도받아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이에 베트남으로 향한 부반장 ‘마석도(마동석)'와 반장 ‘전일만(최귀화)'. 그들은 영사관에 갇힌 것을 꽤 만족스러워하며 하루빨리 한국으로 인도되기를 바라는 현지 용의자에게서 수상함을 느낀다. 찝찝한 마음에 베트남에 자리 잡은 한국인 조폭들 사이에서 수상한 사건이 없는지 수소문하던 마석도는 무자비한 악행을 벌이는 ‘강해상(손석구)'의 존재가 자수 이유였음을 알게 된다. 그는 더 큰 사달이 나기 전에 강해상을 체포하려 하나 예상치 못한 이유로 실패하고, 결국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은 과거의 인연인 '장이수(박지환)'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국으로 되돌아온 강해상을 본격적으로 쫓는다.
2017년에 개봉한 <범죄도시>는 688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역대 청불 영화 흥행 TOP3에 등극해 범죄 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쓴 바 있다. 당시 <범죄도시>는 강력한 주먹으로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한국형 슈퍼 히어로 마석도를 비롯해 그 잔혹함과 악랄함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장첸(윤계상), 깨알 같은 감초였던 장이수 등과 같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매력으로 무장했었다. 통쾌한 액션과 묵직한 한 마디에서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유머는 그 매력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 형사들이 다시 한번 범죄조직 소탕에 나서며 5년 만에 돌아온 속편 <범죄도시2>도 마찬가지다. 전편의 장점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데 이어 예상치 못해 깊이까지 겸비한 <범죄도시2>는 성공적인 시리즈, 한국형 슈퍼 히어로 프랜차이즈의 미래에 청신호를 밝히는 듯 보인다.
진일보한 유머와 액션의 매력
우선 <범죄도시2>는 전편의 매력을 그대로 남기면서도, 그 매력을 보다 대중적인 형태로 탈바꿈시켰다. 일례로 전편에서 나쁘지 않은 타율을 자랑한 유머를 시작부터 더욱 강조한다. 물론 사무실에서 강력반 형사들이 주고받는 대사처럼 웃음을 노리는 게 분명한 초반 대사들은 다소 작위적인 인상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베트남으로 떠난 전일만과 마석도 콤비의 상반된 캐릭터성이 빚어내는 갈등을 풀어내는 대목부터 영화의 유머 타율은 급격한 상승세를 탄다. 베트남 영사관에서도 오픈한 마석도의 '진실의 방'이 대표적이다. 또한 8편까지 계획된 시리즈물답게 전편의 등장인물과 명대사를 적재적소에 오마주한 대목도 웃음벨로는 충분하다.
진일보한 액션도 인상적이다. 우선 로케이션과 CG를 통해 구현해낸 베트남이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스케일이 커졌다. 또 강력반 식구들의 합이 맞아떨어지는 카체이싱 시퀀스는 자칫 간과될 수 있었던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강조해주며, 이는 마석도와 강해상 사이에서 험악해질 수 있었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무엇보다도 상극의 액션 스타일을 한 데 붙여 놓은 선택이 인상적이다. 마석도의 액션은 전편 그대로, 또 마치 <이터널스>에서 길가메시가 그러했듯이, 비교조차 되지 않는 파워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형태로 묘사된다. 유달리 강하게 느껴지는 효과음은 마석도의 주먹 한 방에 담긴 징벌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반면에 강해상의 액션은 날렵하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죄책감이나 도의를 피 한 방울만큼도 느끼지 못하며, 시신을 훼손하는 반인륜적인 행위에도 거침이 없는 그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녹여낸 날렵함이다. 다르게 말하면, 어떤 환경이든 간에 순전히 살아남겠다는 동물적인 본능이 느껴지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동물적이라는 의미에서는 표범처럼 움직이는 블랙 팬서의 액션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강해상의 액션 시퀀스는 주로 롱테이크로 이어지기에 그의 동물적, 본능적 감각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액션이 유달리 맛있는 이유
이러한 액션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더 거대해진 마석도와 달리 분량이 전작보다 15분가량 줄어든 영화의 짜임새 덕분이다. 사실 <범죄도시>는 마석도의 존재로 인해 이전의 형사물과는 사뭇 다른 볼거리를 선보인다. 이전까지의 형사물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주인공과 빌런 사이에서의 팽팽한 서스펜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에 반해 <범죄도시>는 마석도의 초인적인 힘, 빌런이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활용하여 범죄자를 벌하는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에 몰두한다. 이는 속편인 <범죄도시2>에서 더욱 극대화된 포인트다. 그래서 전편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범죄조직 간의 알력 싸움과 같은 요소는 전무하고, 마석도 일행의 수사 과정과 강해상의 악행만 담백하게 대비되어 묘사된다.
물론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끝날지 쉽게 예측 가능한 영화이기에, 영화의 흐름 자체가 심히 단순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마석도의 극단에 위치한 강해상의 캐릭터를 철저히 악마화하면서 징벌의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이를 극복한다. 이는 전작의 빌런이었던 장첸과 강해상의 차이점으로, 강해상에게 장첸처럼 밈(meme)이 될 여지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장첸과 강해상은 모두 철저히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범죄자를 미화시킬 여지를 간편하게 차단하고 있다. 다만 나름의 서사를 부여받아 매력적인 대사나 캐릭터성을 보여준 장첸과 달리, 강해상은 앞서 말했듯이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악행만을 자행한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인 것이다.
전편 속 장첸(윤계상)과 위성락(진선규), 양태(김성규)는 저마다 매력이 있는 캐릭터였다. 영화 역시 악당들의 행각에 시간을 투자하며 경찰과 대결구도를 형성했다. 반면 강해상과 그의 동료에게는 그 어떤 서사도 없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필리핀에서도 활동했다는 짤막한 그의 행적을 제외하면 범죄자가 된 동기나 개인사는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더 많은 돈과 피를 원하다는 것 외에 그를 특징 지을 수 있는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영화는 그의 악행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간접적인 묘사로도 그 전모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므로 강해상의 잔혹함은 더 강조되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서사의 빈자리를 온전히 액션으로 대체된 이 캐릭터에게는 이입할 여지가 전무하고, 강해상은 단지 마석도의 샌드백으로서 처절히 응징당할 때만 의의가 있다. 따라서 철저히 마석도의 활약상에 포커스를 맞춘 선택은 비록 단순하지만 의도한 효과를 120% 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로서의 <범죄도시2>
여기까지만 보면 <범죄도시2>에게는 단점도, 아쉬운 점도 없어 보인다. 성공한 전편을 넘지 못하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충분히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진일보한 매력들은 이후의 시리즈를 더욱 기대케 만든다. 다만 호쾌한 주먹으로 강해상을 때려잡은 마석도의 존재와 그에게 열광하는 영화 내외의 반응은 약간의 씁쓸함도 남긴다. 특히 마석도를 한국형 슈퍼히어로라고 생각할 때, 그 씁쓸함은 더욱 진하다. 왜냐하면 슈퍼 히어로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동시대의 대중들의 상실감이나 결핍을 환상으로나마 치유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어로의 활약상이 많은 공감을 사고 큰 환호를 받을 때, 그 히어로가 활동하는 사회에는 깊은 흉터가 남아 있기도 하다.
실제로 2000년대 미국의 슈퍼 히어로들은 테러가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아이언맨은 슈트를 만들어 아프가니스탄 테러 집단으로부터 탈출한 후 자기를 납치했던 테러리스트에게 복수를 가하는데, 이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이 9.11 테러라는 트라우마가 낳은 보복성 공격이었던 현실의 반영이나 다름없다. <다크 나이트> 속 배트맨의 영웅적 활약이 역설적으로 더욱 강력한 악당인 조커를 끌어들이는 것도 중동에서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미군이 오히려 ISIS와 같은 또 다른 테러 집단의 등장 원인이 되어버렸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유비라 볼 수 있다.
마석도의 주먹에 담긴 쾌감이 내심 씁쓸한 이유
그렇다면 마석도의 활약 기저에 깔린 한국 사회의 흉터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형량을 나날이 강화하는 데서 알 수 있는 엄벌주의에 대한 갈망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엄벌주의는 사회문제를 형사처벌로 대응하고, 처벌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해결되지 않는 것은 강한 처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가해자만 강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해당 문제의 진실이 규명되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며, 재발방지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정인이 법'의 내용 중에는 처벌 강화도 있지만, 입양아가 죽는 사건이 또 있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즉, 문제를 초래한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범죄자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그 자체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이처럼 엄벌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법과 제도에 대한 믿음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 처벌과 후속 대책이 미흡하기 때문에, 법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시스템이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의는 실현되지 못하는 듯 보이며, 서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부조리가 만연하면 누군가 강력한 힘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기를 바라는 열망과 환상은 필연적으로 강해진다. 그래서 강하면 강할수록, 그 타격감이 좋으면 좋을수록, 효과음이 크면 클수록, 강해상과 범죄자들이 아파하면 아파할수록 마석도의 주먹을 향해 큰 탄성과 환호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현지 경찰과 영사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나쁜 놈은 잡아야 한다는 사명을 끝까지 밀고 나가며 범죄 소탕에 일조하는 마석도의 모습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현실에서는 국제적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열망을 채워주는 마석도의 뚝심이 주는 쾌감이 유머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에서 <범죄도시2>를 보면 마석도를 향한 환호와 응원이 자칫 변질되면 나타날 수 있는 악몽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강해상에게 납치당해 죽은 아들 '최용기(차우진)'의 복수를 하려는 '최춘백(남문철)'의 행적이다. 그는 아들의 실종신고를 하는 대신 직접 사람들을 보내 강해상을 죽이려 한다. 경찰과 형사로 대변되는 원칙을 믿는 대신 금융회사 회장인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경제력을 동원해 사적 제재에 나선다. 엄연한 피해자이지만, 그 또한 작중 도시 한복판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의 행동에 대해 마석도와 동료들의 입을 빌려 그의 선택에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영화 말미에 그가 불구속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단신을 제외하면 그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또한 법과 경찰의 시스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표출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락적 쾌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마석도의 주먹이 러닝타임 내내 화끈한 통쾌함으로 가득한 것도 사실이지만, 유달리 큰 주먹의 효과음 잔상에서 그 주먹이 필요한 이유가 남긴 씁쓸함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슈퍼 히어로인 마석도가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이 아닌 엄연히 형사라는 점에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희망도 엿보이는 게 위안일 것이다.
<범죄도시2>는 분명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숱한 한국 영화의 속편들 중 이 작품만큼 명확한 로드맵을 지진고, 전편과 연계가 잘 이루어지며, 캐릭터들도 유지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단적으로 연초에 개봉했던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전편과의 연결고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범죄도시2>가 보여준 시리즈의 가능성이 영화 내외적으로 얼마나 큰 성취인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심지어 그 슈퍼 히어로가 단순히 오락으로 소비되지 않고, 속한 사회를 반추할 수 있는 거울도 되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다. 단지 앞으로 만날 마석도의 액션에서는 일말의 씁쓸함도 없이 온전히 쾌감이 깃들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다음을 기대케 하면서도, 마냥 기쁠 수 없는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귀환
-
- '어디서 본 것'과 '있어 보이는 것'들의 조악한 조합
어느 날의 대한민국. 진샤(판빙빙)는 인천 보안검색대에서 근무 중이다. 어느 날 초록머리의 여자(이주영)가 등장한다. 소심한 진샤.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초록머리 여자가 마냥 싫지는 않다. 운명처럼 이끌리는 둘. 티격태격 다투다 둘은 진샤의 집으로 간다. 초록머리 여자는 스스로를 ‘남자친구의 마약 밀수를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직장 상사에게 “초록머리 여자 이상하다”라고 알리는 진샤. 하지만 진샤의 마음은 냉담한 시선을 거부하고 있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에게 끌린다. 위험한 사건까지 휘말리는 둘. 이제 둘은 눈앞에 들이닥친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
당황스럽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우연에 의존하고 있다. 진샤가 ‘어쩌다 보니’ 초록머리 여자를 만나거나, ‘하필이면 거기에’ 어떤 물건이나 누군가가 있다. 영화적 허용이라기엔 그 우연이 내포하는 바가 무엇인지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그렇다고 로맨스/여성/범죄영화로서 장르적인 장점을 잘 취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녹야>에서 로맨스는 두 사람의 키스신 말고는 잘 느껴지지 않고, 범죄영화로 보기엔 공권력의 집행이 모호하며, 여성영화로 보기엔 노골적이고 작위적인 화법이 아쉽다. 각본이 독특하지도 않다. 이 영화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 <델마와 루이스>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단점들 중에서 빛을 반짝이는 것은 한국 도시들의 황량함이다. 인천항의 건조함이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 깔려있는 그림자들이 인물의 고립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주영 배우의 팬들에게도 이 영화를 추천하긴 어렵다. 이 배우가 갖고 있는 고유한 개성인 중성적인 매력이 톡톡 튀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극을 산만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이주영, 김영호 배우의 연기는 연극적이면서 판빙빙은 과잉된 감정연기를 보여준다. <야구소녀>와 <메기>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던 그녀의 매력이 영화와 어울리던 것과 정반대다. 하지만 판빙빙과 이주영이라는 신선한 조합이 영화 외적으로 충분한 이점이 될 것 같다.
-
- 구원이 대체 뭐길래
200kg의 거구를 이끌고 오늘도 살아가는 찰리, 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한다. 마음껏 일어나지도 못하고 물건이 떨어져도 그냥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담당 간호사인 리즈에게 이제 정말 더 있으면 큰일난다는 사실을 통보받아도 그는 자신의 식욕을 통제하지 않고 병원에도 가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일주일 남짓, 그 일주일 동안 그의 삶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1.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이 계신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난 그저 널 이해하고 맘대로 평가하지 않는 걸로 널 구원할게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종교인데, 토마스라는 열혈 선도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며 주님을 믿으면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종교 선도가 가진 위선을 꼬집는다. 하지만 구원은 있다고 말한다.
종교는 구원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전도 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 하느님만을 끼워넣어 인도하려는 것은 결국 전도 대상이 아닌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 그를 이용하는 위선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토마스의 선도가 잘못된 것은 찰리의 게이 성향을 성경의 잣대로 평가하며 고쳐야할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고 찰리의 거구의 몸을 역겨워하고 있음을 숨겼기 때문이다. 솔직한 마음을 그에게 보이지 않고 찰리가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 크리스천의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찰리와 그의 연인 앨런의 자살을 해석한다. 그는 '나는 구원받을 종교인'이라는 잘난 척에 빠져 찰리의 상처를 쑤신 것이다.
그렇기에 찰리와 간호사 리즈의 관계가 소중하다. 찰리의 건강에 독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피자를 시켜주는 리즈의 모습을 통해 찰리의 삶은 겉은 망가졌어도 이미 구원받은 삶임을 보여준다. 리즈는 그를 가슴 깊이 이해하고 그의 자기학대에 아무런 평가도 내리지 않고 그저 그와 함께할 뿐이다. 내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매순간 우린 구원받는 것이다. 구원은 종교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사랑만 해도 가능하다. 거대한 종교 담론까지 끌고 올 필요가 없다.
2. 그의 인생의 구원자, 엘리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그는 이혼으로 8년 넘게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엘리에게 별안간 연락한다. 반항이 가득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엘리는 부정적인 어투로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 하지만 그에게 엘리의 말은 분명 상처가 될 텐데도 자신의 딸의 장점만을 바라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참 긍정적인 인물인데 왜 자신을 학대했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처가 그 아이는 손댈 수 없을 만큼 사악하다며 돈을 보태준 것만으로도 아빠 도리를 다했다고 위로해도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 자신이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모습을 통해 엘리를 자신의 성공적인 삶의 증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엘리가 더이상 엇나가지 않도록 엘리가 어렸을 적 써낸 에세이가 가장 잘 쓴 에세이라고 칭찬하며 자신의 장기인 '솔직함이 돋보이는 글쓰기'로 자신의 진심을 전한다. 엘리와의 관계 개선 노력은 어쩌면 행복한 죽음을 맞기 위한 노력인지도 모른다.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인생의 구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식은 그런 존재인가 보다. 꼭 엘리와 같은 엇나간 자식이 아니더라도 자식은 부모의 인생의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와 같은 존재라서 부모는 자식이 원하는대로만 가도록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빠가 게이여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로서의 마음까지 저버린 것은 아니기에 엘리에게 바른 길을 인도함으로써 망가진 자신과 자신의 삶에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새에게 애정을 쏟던 행위도 엘리의 옆에 있어주지 못한 죄책감에 보인 행동은 아니었을까, 엘리를 새에 동일시하면서 말이다.
3. 찰리의 자기학대
그는 게이고 자신의 연인 앨런과 함께 살기 위해 처자식을 버렸다. 그렇게 호기롭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앨런은 자살하고야 만다. 이 모든 시련들이 겹쳐 거구의 찰리를 만들어냈다.
세상 사람들은 비만을 굉장히 쉽게 말하기도 한다. 비만은 체질일 수도 있지만 자기학대일 수도 있다. 폭식이 원인인데, 세상을 살아내기에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별것도 아닌걸로 절망하지 말라고들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절망은 당한 일의 크기와 상관없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 때부터 시작이다. 찰리도 자신을 지탱하던 앨런이 사라지자, 참을 수 없는 외로움과 절망에 몸부림친 것이다. 그것이 식욕으로 터진 것일 뿐이다. 마음이 아파 폭식하는 분들에게 그만 폭식하시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면 그걸 조용히 가져다주는 리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4. 총평
나는 인간은 대체로 혼자 사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의존하고 사는 것은 민폐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내게서 나오는 행동들이 사람과 동떨어져서 사는 사람에게서 나오기 힘든 행동일 때가 있다. 아까처럼 리즈같은 되고 싶다는 말처럼 말이다. 배려와 오지랖, 의존과 도움의 그 언저리에서 해매는 듯하다. 그래서 찰리의 말에 공감이 갔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그 말이 결국 독립적이되 사람에 대한 애정은 잃지 말자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솔직한 표현을 하려고 했던 내게 조그마한 용기를 주기도 했다. '내가 이상한 건 아니구나', 오히려 내가 막 밝진 않아도 우울에 빠지지 않았던 건 최소한 난 모든 상황에서 솔직했기 때문이 아닐까.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
- #모비우스 / Morbius, 2020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흥행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테니, 해당 작품이 '어떤 청사진을 펼쳤는지?'를 말해보겠습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멀티버스(다중우주)"를 인정하며 3명의 스파이더맨을 비롯해 악당들까지 종합선물세트로 내놓은 결과물은 제작진과 관객들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제는 관객들의 바램과 제작진들의 의도가 '얼마나 일치하는지와 상충되는지?'에 걱정과 기대가 공존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첫 타자로 나서는 <모비우스>는 어땠는지? - 영화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희귀 질환을 앓고 있던 "모비우스"는 자신을 비롯해 똑같은 질환에 걸린 이들의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흡혈박쥐와 인간의 DNA 결합에 성공하고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에 나서는데요.
결과는 성공하나 이 과정에서 끊임없는 사람의 피를 갈구하는 것을 알게 되는데...왜, 박쥐 중에서 "배트맨"만 있는 줄 알아?
1. 면접관의 느낌이 이런 건가?
솔직히, 영화 <모비우스>는 본 작품보다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를 비롯한 "SSU(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하나의 퍼즐로 더 관심이 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하나의 영화로 끝나지 않을게 관객들이나 제작진 모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모비우스>를 어디에 초점을 두고서 봐야 우리는 좀 더 재밌고 만족스럽게 극장을 나갈 수 있을까요?그래서, 니 이름이 뭐니?
영화 <모비우스>는 104분의 분량의 상당 부분을 자기소개에 할애합니다.
"박쥐"라는 점에서 경쟁사의 "배트맨"이 연상되나 <모비우스>는 처음이라 관객들과는 처음이라서 이런 부분이 꼭꼭 필요한데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다름 영화들이 해왔기에 관객들에게는 호기심보다는 피로함부터 앞서니 나름의 차별화는 보여줘야만 합니다.
그렇게, 선보이는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보여주는 폭주한 상태에서의 액션은 나름 시선을 이끄는데 충분했습니다.2. 여러 갈래로 퍼지는 이야기들
하지만, 이후 각 캐릭터들의 동기에 있어 살짝의 아쉬움이 엿보입니다.
먼저, "모비우스"는 능력을 얻고 치료가 되지만 이후 일정 시간마다 피를 마셔야 하는 부작용에 부득이한 피해에 고민을 합니다.
이에 관객들도 납득할 수 있는 데에는 자신과 비슷한 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치료하는 이야기를 사전에 제공했기에 그런 그의 고민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의 친구 "마일로"에는 "모비우스"와는 다르게 생략된 설명이 많아 보였습니다.그래도, 악당이고 친구인데...
극중. "마일로" 역시, 똑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인물이나 "모비우스"가 만든 혈청을 맞으며 그와 똑같은 능력을 얻게 되는 캐릭터로 대척점에 서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일로"는 '왜 이를 뽐내는지?'를 설명해야 하는데요. (앞에서 '자신과 비슷한 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치료하는 이야기'처럼 말이죠)
그러나, 영화를 보면 그의 행동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만을 합니다. - 아버지와 같은 "니콜스 박사"에게는 "차별적 사랑"에 이야기하지만, 전혀 모르는 바입니다.
여렸을 적 에피소드를 살펴보면, 편지를 다른 아이들에게 빼앗겨 얻어맞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비우스"입니다. (이를 "마일로"로만 바꿨어도...)
그러면서, "모비우스"와의 힘을 합치자는 이야기와 그의 연인 "밴 크로포드 박사"와의 사랑까지 중구난방으로 뻗치는 느낌이죠.3. 결국, 쿠키 2개에 마음이 녹는다.
이렇게, "마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에는 이를 맡은 "맷 스미스"의 연기가 주인공 "모비우스"를 연기한 "자레드 레토"도 만들지 못한 스팟을 만들거든요.
바로, <유주얼 서스펙트, 1995>의 "카이저 소제"가 점점 똑바로 걸어나가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거든요.
물론, 앞서 말한 해당 능력에 따른 부작용까지의 설명이 된 상태라서 다른 의미로의 섬뜩함마저 불러오니 더더욱 설명에 아쉬움이 생깁니다.
이렇게, 본다면 영화 <모비우스>는 아쉬움 투성의 영화로 남겨지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습니다.이래서, 화날 때 쿠키가 좋다는 거야!
이번 영화를 연출한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의 이름만을 들어봐선 모르겠지만, 그가 연출해온 <세이프 하우스, 2012>와 <라이프, 2017>를 봤다면 그의 스타일이 뭔지는 잘 아실 겁니다.
특출난 작품보다는 공식대로 무난하게 만드는 연출자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비우스>는 특별히, 모나지도 않는 작품으로 충분히 바라볼만한 작품입니다.
다만, 전작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인 만큼 그 모나지도 않는 평범함이 살짝 아쉽게 다가오지만요.※ 쿠키 영상은 2개로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전에 다 나옵니다.
※ 앞서 말한 "SSU(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스파이더맨"이 "꼭, 톰 홀랜드만은 아니겠다"는 예측이 됩니다. (아니면, 말고?)
-
- 하필 한 여자를 사랑하다니, 그것도 이토록 격렬하게!
- 8★/10★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친밀성‧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해 극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 중 하나다. 상류층 중년 여인의 마음에 불어닥친 고요한 폭풍을 펼쳐내는 〈아이 엠 러브〉(2011),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사회가 금지하는 사랑을 ‘식인’에 빗댄 충격적이고도 강렬한 러브 스토리 〈본즈 앤 올〉(2022) 등등. 그가 야심 차게 도전한 공포영화 〈서스페리아〉(2019)가 영 호불호가 갈렸다는 점을 복기해보면, 아무래도 감독의 재능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을 때 극대화되는 듯하다. 〈챌린저스〉는 이를 또다시 입증한다. 〈챌린저스〉를 본 관객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감독님, 제발 앞으로는 다른 데 한눈팔지 말고 이런 영화만 만들어주세요!”
여기 테니스 선수 아트가 있다. 아트는 ‘위대한 선수’는 아니지만 ‘훌륭한 선수’ 축에는 든다. US 오픈 우승을 노리고 있고, 의류 브랜드에서 테니스복을 협찬받으며, 자동차 광고를 찍을 정도의 선수 말이다. 아트는 US 오픈 도전 직전, 최근 좋지 않은 성적으로 하락한 자존감 회복을 위해 하부 리그에 참석한 상태다. 만약 이 대회에서 우승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다면 US 오픈 우승이라는 목표에 더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런데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한 대회에서 뜻밖의 상대를 만난다. 패트릭이다. 모텔비를 결제할 돈도 없어 폐차 직전의 허름한 차에서 쪽잠 잔 후 대회에 참가한 그는 US 오픈은 고사하고 선수 랭킹도 처참한 별 볼 일 없는 선수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반전의 기회도 거의 없다. 그런데 경기가 묘하게 흐른다. 아트는 내내 예민한 채 긴장한 표정인데 되레 패트릭은 여유롭다. 심지어는 아트를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이 둘에게는 테니스에 한정되지 않는 오랜 인연이 있다. 어쩌면 아련한 우정이고 어쩌면 지독한 악연이다. 둘은 필생의 라이벌이다. 테니스에서도, 사랑에서도.
태초에 타시가 있었다. 유망한 테니스 선수이자 퀸카인 타시는 청소년 시절 같은 대회에 참석한 아트와 패트릭을 단번에 매혹한다. 타시 앞에서 아트와 패트릭은 퀸카와 뭐라도 해보고 싶은 얼빠진 십 대 소년일 뿐이다. 문제는 타시가 폴리아모리가 아니라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쓴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얼빠진 두 소년과 달리 타시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정반대다. 훗날 부상으로 프로 데뷔 직전 선수 생활을 끝내고 코치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전까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실력과 멘탈을 갖춰 아트와 패트릭이 넘보지도 못할 레벨의 테니스 유망주였다. 테니스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타시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들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 묻는 애타는 두 남자에게 답한다. 내일 시합에서 이기는 남자를 고르겠다고. 테니스 랠리가 사랑의 랠리로 확장된다. 스포츠가 사랑이 되고, 사랑이 스포츠가 된다. 절대로 지면 안 되는 게임의 시작이었다.
그 후 10여 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아트는 타시의 남편이자 그녀가 코칭하는 선수가 되었다. 타시는 패트릭에 비해 잠재력과 실력 모두 떨어지던 아트를 ‘훌륭한 선수’로 키워냈다. 10여 년 전의 시합에서 패트릭이 승리했다는 점을 덧붙여야겠다. 그렇다. 과거의 타시는 연인으로 패트릭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지금 아트가 타시의 남편이고, 그저 ‘구남친’일 뿐인 패트릭이 타시에게 능글맞게 굴며 아트를 조롱할 수 있는 이유는? 영화를 직접 봐야만 한다. 구구절절 줄거리 설명으로 10년간 불꽃 튀었던 세 사람의 관계 역동을 요약하기는 불가능할 테니까.
영화는 연애에서의 친밀성과 남성성 문제, 여성의 주체성을 넘나들며 아찔한 랠리를 이어간다. 그것도 격렬한 시합에서 통통 튀며 코트를 오가는 테니스공의 속도로. 현재 펼쳐지는 시합과 십수 년간 세 사람이 겪어온 과거를 교차하며 펼쳐내는 숨 막히는 랠리는 도파민을 폭발시킨다. 테니스, 사랑의 승자가 누구일지를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두 남자는 타시가 벌여놓은 사랑/테니스의 판 안에서 질투심과 열등감을 동력 삼아 움직이지만 종종 판을 뒤집어 게임의 주인이 되고, 한 여자는 능숙하게 두 남자를 주무르며 사랑/테니스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지만 예측을 불허하는 욕망의 방향성에 종종 무릎 꿇는다.
이 최종 승부에서 아트와 패트릭은 이제 타시와 테니스를 두고 벌이는 싸움의 결판을 내야만 한다. 지금까지는 줄곧 타시가 이들 관계를 주도해왔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두 남자는 지금껏 타시의 장기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생애 단 한 번 ‘남자’가 되어 타시에게 스스로를 증명해내야만 한다. 겉보기에는 번드르르하지만 속으로는 늘 타시가 떠날까 전전긍긍하는 아트와 유망주 시절 이후 모든 면에서 실패의 연속인 삶이었지만 성장하지 못한 채 소년 상태에 머무른다는 바로 그 이유로 종종 매력을 뿜어내는 패트릭. 누가 진짜 타시에게 어울리는 남자이고, 코칭받을 만한 테니스 선수인지 이 한 게임에서 모든 게 결정된다.
테니스 게임의 박진감을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카메라 앵글과 아드레날린 솟구치게 하는 음악, 질척거리는 치정의 감정이 이렇게 다이내믹했던가 탄복하게 만드는 연출이 삼박자를 이루는 이 영화는 두고두고 반복해서 보고 싶을 만큼의 재미와 매력을 갖췄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수작을 볼 때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 감정의 역학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에 푹 빠지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챌린저스〉를 계기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재능을 추앙하기로 했다. 그는 이전부터 뛰어난 감독이었지만 보통 자기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주제에 진지하고 느린 속도로 접근했다. 이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가 〈챌린저스〉에서 지금껏 다뤄온 주제를 스포츠 영화의 박진감을 더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데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성공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자기 주제를 눈에 띄는 새로운 스타일로 그려내는 일, 결코 쉽지 않다. 그의 재능을 추앙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감독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심지어 〈서스페리아〉 같은 ‘외도’도 눈감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
- 가장 건전한 먹방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담론
요즘 먹방은 하나의 장르로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먹방을 보진 않는다. 항상 안 봤던 것은 아니고, 어느 순간부터 보게 되지 않았다. 특히 먹방이 인터넷 영상의 한 장르를 넘어 공중파의 소재로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닌, TV 채널을 돌리다가 무심코 보게 되버리는 순간들이 축적되며 점점 찾지 않게 된 장르다.
하지만 공중파의 탓만 하기엔 다른 이유가 있다. 언젠가부터 많이 먹는 행위가 보기 좋고, 복스럽게 보여 음식을 더 먹고 싶어지게 만든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많이, 그리고 과도하게 빨리 먹어버리는 행위는 복스러움을 넘어 탐욕스러워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많이 먹는 행위가 보기 좋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결핍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음식을 먹는 양과 상관없이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이미 봤던 영화이지만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정주행했다. 아, 물론 처음은 일본판으로 시작해 한국판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음식들이 다 맛있어 보여서 내가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의 요리들은 전부 다 따라해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은 수제비였는데, 그 수제비를 먹으면서 '리틀 포레스트' 시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먹방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건강한 형태로 식욕을 유발하는, 그래서 더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먹방 말이다. 물론 내 입맛이 토속적인 편이기에, 영화 속 음식이 다 맛있어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소식좌가 생겨나는 것을 보아, 많은 사람들도 이제 나처럼 많이 먹기만 하는 먹방은 질린 것 같다. 오히려 많이 먹지 않아도 천천히 먹는 것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오늘도 생겨나는 수많은 먹방 방송들 중에서 오늘도 나는 이 영화를 다시 켜보는 것은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수많은 먹방러들보다 이제는 음식을 천천히, 온전히 먹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고파진다는 것은 결국 나는 먹방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질려 버렸다는 반증인 것 같다. 수많은 퓨전 음식들이 있어도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은 음식 본연의 맛이고, 그 본연의 맛을 구현해 내고, 맛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내 것이 있는 독립적인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내가 내 요리를 만들어먹을 줄 아는 사람은 혼자 먹고 있어도 외로워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배달음식에 의존하며 오늘도 먹다남은 플라스틱통을 냉장고에 우겨넣으며 현타가 올지는 몰라도. 내가 먹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성과도 있고 희로애락이 담겨있기에 외로움에 침잠해있을 틈이 없다.
나의 엄마가 한 말 중에
"외롭다고 난리치는 사람들은 참 할 일도 없나 싶더라. 취미도 없고, 좋아하는 것을 지속할 끈기들도 없어서 계속 남한테 뭘 해달라고 조르기만 해. 외로울 시간이 어딨어, 내 할일만으로도 신경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외롭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싶더라고."
물론 내 엄마는 좀 독립적인 스타일이라 매정한 사람일 때도 있지만 이 말에 공감했다. 내 것을 나를 위해 만드는 삶은 나를 외롭게 할 틈을 주지 않고 여유를 가져다주기에 먹방러들처럼 급하게 먹을 필요도 없다. 남에게 애정을 갈구하지 말고, 남에게서 바라는 애정을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영화 속 김태리도, 일본판 주인공도 혼자 살지만 외로워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내 눈에도 멋있어 보였고 말이다.
-
- 마블 최고, 최악의 CG 장면들
#산돌구름 #마블CG #엔드게임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1. 2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마블의 CG
01:02 아이언맨3 가짜 로다주
02:09 에이지 오브 울트론 마크45
02:53 디에이징 효과
03:52 시빌워 토니&스파이더맨
05:04 닥터스트레인지의 마법
05:57 CGI 팬서
07:08 엔드게임 Final Battle
07:57 헐크버스터 in 와칸다
08:28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12월 4주 최신 개봉영화(해피뉴이어, 노웨어 스페셜, 램, 메모리 조작살인, 긴 하루)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2월 4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해피뉴이어 #노웨어스페셜 #램 #메모리조작살인 #긴하루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
-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메인 예고편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연 꿈의 프로젝트,
그 시작에는 두 천재가 있었다!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의 부활을 위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정의할 '옥스퍼드 사전 편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책임자로 부임한 이는 수십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괴짜 교수 제임스 머리(멜 깁슨). 그는 영어를 쓰는 모든 이들로부터 단어와 예문을 모으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전국에서 편지가 빗발치던 어느 날, 머리는 고전을 풍부하게 인용한 수백 개 예문이 담긴 편지를 발견한다. 보낸 이는 닥터 윌리엄 마이너(숀 펜), 그의 천재적인 능력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사전 편찬 작업엔 속도가 붙는다. 하지만 윌리엄이 정신병원에 구금된 미치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
- 영화 <승리호>
어느날, 사고 우주정을 수거한 ‘승리호’는 그 안에 숨어있던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다.
돈이 절실한 선원들은 ‘도로시’를 거액의 돈과 맞바꾸기 위한 위험한 거래를 계획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