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7-21 22:53:49
사라져도 기억될 영화와 마음, 좋아하는 마음으로도 충분하니까.
영화 <썸머필름을 타고!> 리뷰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주인공은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을 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속해있는 영화 동아리는 카린을 중심으로 로맨스 영화만 촬영한다. 사무라이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맨발은 불만을 품지만 <무사의 청춘>을 만들겠다는 마음만큼은 절대 져버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담고 싶은 영화의 주인공과 닮은 린타로를 만나게 되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눈앞에 다가온다. 과거를 아는 것보다 미래를 아는 게 더 희망적일까. 불확실함에서 확실함을 찾아가야 하는 현재는 용기를 내기가 어렵고 또 겁난다. 자신의 현재이자 미래를 바꿀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영화는 말이야, 스크린을 통해 현재랑 과거를 이어준다고 생각해. 난 내 영화를 통해 미래를 연결하고 싶어” 오해와 어려움을 거쳐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영화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기록에는 남지 않아도 기억에는 남을 열정과 영화 그리고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영화관에서 만나기 전에 재팬 필름 영화제에서 만난 작품 중 하나로 어느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만난 착한 영화였다. 그때는 봄이었는데 지금은 뜨겁고 끈적이는 여름이 되어 그 자체가 싫어지는 와중에 다시 이 영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름이었다’ 라는 흔한 말과 ‘청춘’이 그대로 담겨있는 이 영화는 민낯의 청춘들을 사랑하고 있다. 성공, 인생의 목표, 뚜렷함과 같은 것들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도 만든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영화에 한가득 담아낸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맨발은 좋아하는 것을 영화에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끊임없이 자신의 두려움의 감정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만들어내는 단어들이 떠오르고 뒤보다는 앞을 바라보게 만드는 용기를 얻어갈 수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마주하고 바라보고 있는 영화 안에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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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제94회 아카데미 수상작은?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드디어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는데요.
과연 어떤 작품들이 수상을 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상 - 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제94회 아카데미에서는 영화 <코다>가 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OTT 사상 첫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하게 되었는데요.
영화 <코다>는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감독상 - 제인 캠피온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감독상은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 감독이 수상을 했는데요.
<파워 오브 도그>는 토마스 새비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1920년대 미국 몬태나를 배경으로 목장을 운영하는 카우보이 '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남우주연상 - 윌 스미스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남우주연상은 영화 <킹 리차드>의 윌 스미스가 수상을 하였는데요.
윌 스미스는 <킹 리차드>에서 세계 최강 테니스 제왕 윌리엄스 자매를 키워낸 아버지 리차드 '윌 리엄스' 역할을 맡았습니다.
여우주연상 - 제시카 차스테인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은 <타미 페이의 눈>의 제시카 차스테인이 수상하였는데요.
제시카 차스테인 TV 전도사이자 엔터테이너로 활동하며 인기와 명성을 얻은 '타미 페이 베이커' 역을 맡았습니다
남우조연상 - 트로이 코처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남우조연상은 예상했던 것처럼 <코다>의 트로이 코처가 수상하였습니다.
트로이 코처는 <코다>에서 어부이자 농인인 아버지 '프랭크 로시' 역을 맡았습니다.
여우조연상 - 아리아나 데보스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여우조연상 역시 전에 예상한 것처럼 영화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의 아리아나 데보스가 수상을 하였는데요.
아리아나 데보스는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에서 원하는 걸 투쟁으로 쟁취하려고 하는 불같은 성격을 지닌 캐릭터 '아니타' 역을 맡았습니다.
각색상 - 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제94회 아카데미에서는 영화 <코다>가 각색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원작이 있는 경우에는 각본상이 아닌 각색상을 주는데요.
<코다>의 원작은 에릭 라티고 감독의 영화 <미라클 벨리에>입니다.
각본상 - 벨파스트
출처 | 네이버 영화
제94회 아카데미에서는 영화 <벨파스트>가 각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벨파스트>는 1969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집 앞 골목과 짝사랑하는 소녀,
사랑하는 가족이 전부였던 소년과 사랑스러운 가족의 이야기를 흑백 화면 위로 그려낸 영화입니다.
촬영상 - 듄
출처 | 네이버 영화
제94회 아카데미에서는 영화 <듄>이 편집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듄>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자 전 우주를 구원할 예지된 자의 운명을 타고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이
황제의 명령으로 폴과 아라키스로 향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의상상 - 크루엘라
출처 | 네이버 영화
제94회 아카데미에서는 영화 <크루엘라>가 의상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크루엘라>는 뛰어난 패션 감각을 이용해 완벽한 변장으로 도둑질을 하던 '크루엘라'가 꿈에 그리던 남작 부인 브랜드 디자이너로 들어간 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편집상 - 듄
출처 | 네이버 영화
제94회 아카데미에서는 영화 <듄>이 촬영상에 이어 편집상까지 수상하였습니다.
<듄>에 대한 설명은 위에 촬영상 부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분장상 - 타미 페이의 눈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아카데미에서 분장상은 <타미 페이의 눈>이 수상하였는데요.
<타미 페이의 눈>은 70, 80년대에 남편 짐 베이커와 세계적인 종교 방송망과 테마파크를 세운
TV 전도사 타미 페이 베이커의 흥망성쇠와 구원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미술상 - 듄
출처 | 네이버 영화
제94회 아카데미의 미술상은 <듄>이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영화 <듄>의 미술은 약 17편의 영화에 참여한 아트디렉터 '톰 브라운'이 맡았습니다.
음향상 - 듄
출처 | 네이버 영화
제94회 아카데미의 음향상은 <듄>이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영화 <듄>의 음향에는 맥 루스, 마크 만지니, 더그 헴필, 테오 그린, 론 바틀렛이 참여하였습니다.
음악상 - 듄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음악상은 <듄>이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듄>의 음악 감독인 '한스 짐머'는
<라이언 킹>, <007 노 타임 투 다이>, <덩케르트> 등 140여 편의 영화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거장이다.
주제가상 - 007 노 타임 투 다이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주제가상은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주제가는 빌리 아일리시와 빌리 아일리시의 친오빠인 피니어스 오코널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요.
빌리 아일리시의 'No Time to Die'는 빌보드 HOT 100에서 16위, 영국에서는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시각효과상 - 듄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음악상은 <듄>이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듄>의 시각효과에는 브라이언 코너, 폴 램버트, 트리스탄 마일스, 제드 네프저가 참여하였습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 - 엔칸토: 마법의 세계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장편 애니메이션상은 바이론 하워드 감독의 <엔칸토: 마법의 세계>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엔칸토>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마드리갈 패밀리의 마법의 힘이 사라질 위험에 처하자, '미라벨'이 나서서 구하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장편 다큐멘터리상 - 소울, 영혼, 그리고 여름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장편 다큐멘터리상은 아미르 "퀘스트러브" 톰슨 감독의 <소울, 영혼, 그리고 여름>이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소울, 영혼, 그리고 여름>는 단지 흑인들의 축제라는 이유로 그 어느 곳에서도 방영되지 못한 '할렘 컬쳐 페스티벌'을 조명한 작품이다.
국제영화상 - 드라이브 마이 카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국제영화상은 많은 분들이 예측한 대로 <드라이브 마이 카>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 2014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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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의 전신 하이 스트레인저의 공동 배급 작품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아쉽게도 각본상과 국제영화상을 수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개봉을 기다리는 것을 보았는데요.
올해 개봉 예정 중에 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그럼 제94회 아카데미 수상작 정리 콘텐츠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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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에 의한 어른을 위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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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심지어 개봉 전에 계속 티비에서 광고를 했다. 광고를 많이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중에 정작 재미있었던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보기 전부터 고민을 했다. 봐야 하는 것인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사실 인기 좋은 건 잘 안 보는 편이기도 했다.
더빙편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우리 어린이들이 많을 것 같아서 자막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기쁨, 슬픔, 소심, 버럭(분노), 까칠 이들이 한 사람의 감정을 조절한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인간의 감정은 조절 당하는 것인가! 라는 안 좋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이 가출을 결심했을 때 본인의 의지라기 보다 다섯 아이들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라일리의 다섯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모양도 색도 다 다르다. 그리고 메인 기억도 아직 다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런 걸 유추해 보았을 때, 누구나 발견했을 수도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어느 누구에게도 다섯 아이들이 있다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면 '특징'이라는 것이 보인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기계를 총괄 하는 색이 어떤 색인가, 캐릭터의 모양이 어떤 모양인가가 확실하다는 것이다.(물론 고양이는 좀 달랐지만ㅋㅋㅋㅋ) 그건 즉, 인간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색과 성격을 갖춰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라일리의 아이들이 각자의 개성이 충실했던 것은 아직 고유의 성격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아마 마지막에 아이들이 뭐지? 하고 의문했던 '사춘기'가 지나면 점차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마음속에 계속 남는 것은 '빙봉'
우리의 빙봉,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악역이 아닐까 의심을 했던 '빙봉'.
어릴 때 누구나 자신만의 친구를 가져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잊는 것들이 아주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릴 때의 기억. 오히려 나의 어릴 때의 기억은 타인이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타인이라고 표현했지만 '부모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바로 가족이 아닐까.
성격을, 특징을 점차 갖춰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살게 된다. 중간에 나온 청소부가 말했듯이 '잊게 된다'.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잊게 되는 거겠지.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기억들을 다 가지고 간다면 아마 미쳐버리지 않겠나 싶다. 기분 나빴던 일, 속상했던 일, 죽을 만큼 두려웠던 일들은 살짝 날려버리는 것이 좋지만, 그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성장을 했다면 잊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리고 빙봉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같이 이야기 하고 싶은 만화 원피스이다. 원피스에서 나오는 '닥터 히루루크'는 죽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을 총알이 꿰뚫었을 때?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맹독 버섯 스프를 마셨을 때?
아냐
사람들에게 잊혀질 때다."
빙봉은 라일리의 마음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 그런데 라일리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기억이 버려지는 곳에 남는다. 잊혀지게 되는 것이다. 빙봉의 죽음은 라일리가 더이상 찾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라일리에게 잊혀지게 되었을 때였다.
왜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했는지는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위에 설명한 내용이 조금은 그 이유를 알려준 것도 같지만.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봤는데, 이해를 하게 된 이 시점. 내가 어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야 말아버리는 이 시점도 사실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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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콕 휴가를 책임질 홍콩영화, <무간도>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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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지옥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 불교의 18지옥 중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이다.
죽지도 못하는 것만큼 큰 벌이 있을까 싶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고도 다음 날이면 다시 살아나 또 쪼이는 벌을 받았다.
차라리 죽여 주십사 하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무간도는 프로메테우스 쪽보다는 시지프스에 가깝겠다. 시지프스는 하데스와의 약속을 어기고 영원히 바위를 끌어올리는 벌을 받는다.
하나의 범죄조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경찰으로 위장한 삼합회 조직원과 경찰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삼합회 스파이가 된 경찰.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이분법적이다. 설정 자체가 그렇다. 그 속에 회색지대는 없다. 좋은 놈은 끝까지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물론 악인에게도 약간의 선의가 있을 수 있고, 선인에게도 악의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그들을 괴롭게 하면서도 그 질문을 전면에 배치하지는 않는다.
<무간도>는 1편, 2편(혼돈의 시대), 3편(종극무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시간 순서로 따지면 2-1-3편의 순으로 놓인다.
1편에서 경찰 진영인과 삼합회 조직원 유건명이 만나 엇갈린 운명을 확인한다면, 2편은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스토리다.
진영인, 유건명 뿐만 아니라 삼합회 보스인 한침, 1편에서 죽은 황 국장 등에게 이야기의 겹이 쌓이면서 1편의 인물들에게 서사가 부여된다.
3편은 진영인의 사망 이후의 사건들이며, 무간도 전체의 흐름에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때는 홍콩이 반환되던 시기이다.
홍콩 영화에서 유독 자주 볼 수 있는 배경인데, 이는 홍콩 반환 당시 홍콩인들의 정체성 혼란과 거부감, 혹은 회한 등 미묘한 감정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영국인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중국인이 되어버린 마음들이 홍콩 출신 감독의 영화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중국과 영국은 너무도 다른 나라다. 그리고 지금,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 보자. 그러므로 어쩌면 이 영화는 우화다.
악은 선 속에서도 악하고, 선은 악 속에서도 선하다. 3편 종극무간에서 진영인과 양 반장, 심등은 서로 총을 겨누나 죽이지 않는다.
"조준하지 않았다"는 대사에서 심등은 진영인이 경찰임을 알아본다. 셋이 서로의 정체를 확인한 뒤에 잠깐 보이는 진영인의 미소는 세 편의 시리즈 중 가장 마음이 편안해 보인다.
1편에서 진영인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묻는 유건명에게 "미안하지만 난 경찰"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3편에서의 유건명은 분노와 광기에 휩싸여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그를 더욱 더 광기로 몰아붙인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보스인 한침을 죽이는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아는 진영인의 경찰 기록을 삭제한다.
유건명의 말도 틀리지 않다. 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유건명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가.
하지만 기회를 갖고 싶었다면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다. 죄를 인정하지 않고 덮어두려고만 했기 때문에 그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지 않고 덮어버렸기에, 부패는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퍼져 나간다.
유건명은 환청과 환상, 분열된 자아 속에서 고통 받는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과 외부적으로 보이는 악행의 충돌은 자아를 흔들어놓다가, 기어이 자신을 진영인과 혼돈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자신의 악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결국 자신의 광기에 이기지 못해 양 반장을 총살하고 자신의 목에도 총을 겨눈다.
그러나 그는 자살기도마저 실패한다. 삶이라는 벌을 받는다. 모두가 죽고 혼자 남았다.
첫사랑이나 다름없었던 한침의 아내 메리를 죽게 만든 건 본인이었다. 그 뒤에 만난 아내 메리를 떠나게 만든 것도 그 자신이다.메리가 낳은 아이는 아빠라는 말을 하지만 아이를 볼 수도 없다. 진영인도, 황 국장도, 양 반장도, 한침도 죽었다.
유건명은 모두가 떠난 삶에 혼자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살아내야 한다. 그곳이 무간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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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위해서 집에 머물 수밖에 없는 휴가 기간이다.
이번 휴가는 집에 콕 틀어박혀 시리즈물을 보는 건 어떨까.
시원한 액션과 양조위, 유덕화, 여명의 리즈시절 미모를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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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부족한 서사, 하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영상미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같이 생활을 하게 된다. 서류적은 부분을 떠나서 서로 이어진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인체의 화학 작용을 통해 많은 것을 공유하고 주고받는다. 그런 달콤한 시기에 아이를 낳으면 아이와 함께 가족이 된다. 두 사람만 생활할 때와 아이가 생긴 이후의 생활은 다르다. 서로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가졌던 두 사람은 이제 아이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꽤 강하게 쏟아내고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고와 위험에도 대처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대체적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많이 경험했던 일들이다. 우리를 키워낸 부모님 세대를 봐도 그렇고 지금 막 부모가 된 젊은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서로 돌보고 지켜줘야 할 대상이 늘어났다는 건, 무언가를 같이 공유할 존재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희생과 배려를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또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상대방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도 추가된다. 그래서 위협적인 것이 주변에 있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좀 더 좋은 환경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집단의 이동은 어쩌면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다니는 인간의 본성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13년 만에 돌아온 <아바타>
최근에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은 전편에서 연인이 된 제이크(샘 워싱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가 가족을 만들고 지켜내는 과정이 담겨있다. 13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이야기에도 그런 시간의 흐름이 반영되어 있다.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직접 낳은 아이들인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 로아크(브리튼 달튼), 투크티리(트리니티 블리스)와 입양한 아이들인 키리(시고니 위버), 스파이더(잭 챔피언)를 키우고 있다. 한 부족의 리더로서 큰 문제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부족을 이끌 수 있었던 제이크는 어느 날 지구인들이 다시 판도라 행성에 대규모로 돌아오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부족을 떠날 준비를 한다.
사실 제이크는 이 부족에서 투르코 막토 라는 구원자로 불렸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강력한 리더이자 부족을 지키는 존재였지만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아빠일 뿐이다. 좀 더 공격적인 부분을 보강하고 돌아온 지구인들을 본 제이크가 처음 느끼는 건, 바로 두려움이다. 자기 자신의 죽음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가족과 부족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그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 두려움의 감정이 <아바타: 물의 길>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며 영화 내내 이어진다.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그 두려움을 느낀 후, 부족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들이 결정한 건 일단 위험을 피해 보이지 않는 곳에 숨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의 부족에 찾아가 조용히 숨어 지내려고 한다. 실제로 그건 꽤 긴 시간 동안 효과가 있었다. 조용히 살며 그의 가족들은 바다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으며 영화는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바닷속의 새로운 생명체들과 아름다운 풍경은 그들이 느낀 두려움을 어느 정도 희석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이번 영화의 중심은 제이크 가족 이야기
제이크 가족이 바다 부족과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도 담긴다. 특히나 에테이얌이나 로아크 등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바다 부족의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다투는 과정도 꽤 디테일하게 담겨있다. 그러니까 전편이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사랑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2편에서는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가족들의 삶과 적응하는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지구인들의 침공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위한 양념 정도로 활용되고 있다.
1편에서 사망한 군인인 쿼리치(스티븐 랭)도 다시 등장한다. 이미 지구인 쿼리치는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의 기억과 습성이 이미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아바타에 전송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는 아바타 모습을 한 쿼리치의 부대원들이 제이크 가족을 추적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한 빌런이고 쿼리치라는 인물의 카리스마도 여전하지만, 전편과 동일한 인물들이 단지 아바타의 모습으로 바뀌어 재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조금은 동어반복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영화 속 제이크는 전편에서는 인간과 아바타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어떤 식으로 가족을 지켜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줄 알았던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고 이번 이야기 속에서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피하려고 하지만 영원히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제이크의 성장은 이번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아이들이 판도라 행성의 바다 생명체들과 교류하고 위협에 맞서는 것을 통해서 성장하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제이크와 네이티리 가족 전체의 성장기로 봐야 할 것 같다.
부족한 서사, 그 단점을 잊게 만드는 뛰어난 영상미
1편이 우리에게 그 당시 최고 기술력을 화면으로 보여준 것처럼, 이번 후속편에서도 최고의 영상과 특수효과를 영상에 담았다. 이번엔 바닷속으로 카메라를 옮겨 아름다운 바다 생명체들을 보여주고 주인공들이 그들과 교류하는 과정을 꽤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마치 해상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눈앞에 실제로 있을 것만 같은 화면은 이것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 그야말로 지금 우리가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효과가 눈앞에 펼쳐진다.
화면만큼은 최고 수준이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는 조금 아쉽다.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가족 서사로 이이기의 규모 자체가 조금은 축소된 느낌이 있고, 19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렇게 빠르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아서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제이크 가족이 위협을 피해 숨었다가 위협에 대항하는 이야기 정도로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1편에 비해 좀 더 단순해진 서사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까지 축소시킨다.
전체 이야기 자체는 한 가족이 겪는 혼란과 성장 서사다. 최소 3편까지 제작 중이고 시리즈가 성공적으로 흥행한다면 몇 편이 더 제작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아바타: 물의 길>은 앞으로 이어질 대서사의 발판을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느낌이 강한 영화다. 1편에 비해 서사는 조금 부족하지만 화면으로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은 감각은 뛰어나다. 체험형 영화로서 3D나 아이맥스, 4D, 돌비 사운드관 같은 다양한 특수 상영관에서 체험하면서 보기 좋은 영화다. 이렇게 시각적 만족도가 주는 장점이 다른 단점을 상쇄하고 더 높은 평가를 하게 만든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인 샘 워싱턴,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 스티븐 랭 등도 전편과 같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캐릭터들이어서 크게 새로운 느낌은 없지만 전편의 연기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를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속편을 만드는데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최근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CG와 비교했을 때, 너무나 완성도 높은 화면을 보여주면서 급하게 찍어내는 것이 아닌 장인이 만들어낸 영상과 영화가 어떤 식으로 완성되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그가 앞으로 계속 이어나갈 <아바타> 시리즈의 다음 서사와 영상이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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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씬 레드 라인 the thin led line - 테렌스 멜릭
씬 레드 라인 the thin led line - 테렌스 멜릭
'천국의 나날들'을 연출하고 무려 20년의 시간이 지나서 맬릭 감독은 새로운 영화 '씬 레드 라인'을 공개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후 서너 번을 더 봤다. 처음 보고 쓴 리뷰는 아래 있으니, 이번에 새로 보면서 느낀 부분을 정리해보자.
영화에서 '물'은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물은 곧 '생명'이다. 영화의 시작, 중간 부분의 전투, 영화의 끝에서 물이 등장한다.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바다는 만물의 생명이 탄생하는 근원으로 보인다. 평화로운 남태평양의 섬에 주민들이 살아가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물에서 헤엄치며 행복하게 놀고 있다. 이 평화 속에서 군인인 주인공은 주민들이 군인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화로운 바다에서 나와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전투가 벌어지고, 병사들은 물이 부족해 힘들어 한다. 고지를 점령하기 전에도, 고지를 점령하고도 지휘관은 계속 물을 보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물'은 갈증을 해갈하는 물질로써의 '물'이기도 하지만, '물' 그 자체가 생명을 상징한다.
여러 명의 주인공 시점으로 발화하는 나레이션은 그 상황에 맞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들의 독백처럼 들리는 이 나레이션은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기도 하다. 주인공 각자가 놓여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객관적 상황 - 전과의 전투 - 속에서 이질적이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이 영화가 다른 전쟁, 전투영화와 다른 점은, 전투를 '액션'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쟁, 전투'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멜릭 감독은 이 영화가 '전쟁 액션, 전투 액션' 영화가 되지 않도록 의도한다. 그렇다고 전투 장면이 적거나 대충 찍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전투 영화보다 뛰어난 장면들이 많고, 생생하며, 실감나는 전투 장면은 관객이 몰입하게 되는 힘이 있다.
그럼에도 전투의 사실성을 드러내면서도 관념화 하지 않으려는 장치를 곳곳에 넣고 있다. 총이나 폭탄에 맞아 죽거나 다치는 병사들의 비명이 거의 들리지 않고, 하반신이 사라진 군인의 처참한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의 모습을 희화화하지 않고 있다.
전투에서 이긴 쪽이나 진 쪽 모두 피해를 입었으며, 미군이나 일본군이나 군인의 생명은 다르지 않고, 누군가의 총과 폭탄에 죽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것이 정의인지 묻는다. 이 회의적 태도는 전쟁을 객관으로 바라보려는 것이며, 개인에게 생명은 오로지 단 한 번이라는 것에서, 전쟁이 인간을 소모품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고든 대령은 이 전투에서 공을 세워 장군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병사들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직업군인이다. 제임스 대위는 중대장으로서 자기 중대의 병사들이 적군의 총탄에 죽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 하고, 고든 대령과 대립한다. 이때 군인으로서 논리적인 주장은 고든 대령이 승리한다. 결국 눈앞에 있는 적과 싸워야 하고,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 지상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터무니없는 공격 명령에는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제임스 대위의 생각이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지휘관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어떤가를 보여줌으로써, 전쟁 또는 전투를 지휘하는 고위 장교들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들은 승진에 관심을 두고, 병사의 죽음을 외면하며,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에 반발하거나 회의하는 지휘관은 제임스 대위처럼 중간에 군복을 벗어야 한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위트 일병은 6년 동안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음에도 계급은 일병이다. 그는 여러 번 근무지 이탈을 했고, 징계를 받아 진급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위트 일병의 태도는 관조적이고 집착과 욕망을 버린 초탈한 인물이다. 무엇이 그를 무심한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오랜 전투를 통해 위트는 삶과 죽음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을 수 있다. 그는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자청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돌아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거나, 살아남는 걸 포기했는지 모른다. 그는 가장 위험한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정찰을 나가서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사살당한다.
위트 일병의 죽음으로 이 영화가 '영웅'을 만들 의지가 없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 전쟁에서는 누구나 죽을 수 있으며, 살아남는 것은 오로지 '운'이 좋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즉, 전쟁, 전투에서 총알이나 폭탄은 우연한 작용이며, 그것은 개인의 의지, 희망, 계획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의미 없는가를 말한다. 인간의 주관적 의지는 마치 바다의 물방울처럼 거대한 파도의 한 부분일 뿐이어서, 외부의 조건 즉, 시대와 역사, 시간과 공간의 어느 순간에 놓여 있는 인간은 그 한계를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제목이 늘 궁금했다. '씬 레드 라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슨 뜻일까. 얇고 붉은 선이라니.
'나무위키'에서 설명한 것을 보니, '크림 전쟁' 때 영국군의 붉은 군복을 빗댄 별명이라고 한다.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영국군은 두줄로 가늘고 길게 늘어서 승리를 했고, 이 전투를 본 종군기자가 "A thin red streak tipped with a line of steel"이라고 쓴 데서 이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사용된 제목의 의미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일 수도 있고, '이성과 광기의 경계선'을 상징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테렌스 멜릭 감독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매우 잘 만든 전쟁영화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쟁을 통한 인간의 광기와 성찰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원작이 있는 책을 바탕으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주인공이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을 느리지만 깊이 있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전쟁영화와 비교해도 결이 다르다.
주인공과 그의 전우들, 중대장 스타로스 대위, 연대장 고든 대령으로 대표되는 인물은 이 전쟁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각을 반영한다. 실제 전쟁의 상황으로만 봐도 미군이 과달카날 섬을 점령하지 않고, 지속적인 함포사격과 비행기 폭격만으로도 얼마든지 일본군을 전멸시킬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일본은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에게 선제 공격을 했지만, 그것이 미국을 이기겠다는 전술이 아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지기위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유럽연합군에 의해 패퇴를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쏘련과 독일의 전쟁으로 이미 승패는 어느 정도 결정된 상황이었다.
독일과 일본은 추축국이었지만 그들끼리 연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리적으로 연합이 불가능했고, 미국이 초기에는 전쟁 군수물자를 엄청나게 유럽으로 보내면서, 초기에 독일에게 밀리던 유럽의 연합국은 군수품의 압도적인 우위로 인해 독일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좀 의아하겠지만, 미국은 쏘련에도 군수물자를 퍼부어 주었다. 미군이 비행기로 떨어뜨린 많은 군수물자가 독일군 진영으로 떨어지는 웃지 못할 일도 많이 발생했지만, 어떻든 쏘련군은 미국이 보내 준 다양한 군수품으로 인해 전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병력 손실도 상당부분 막을 수 있었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 가운데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는다. 이 영화에서도 미군의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휘관의 무능과 탐욕이었다는 것을 감독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는 고든 대령이 자신의 진급을 위해 끊임없이 중대장을 몰아부치지만, 사실 지휘부는 고든 대령 위에 있는 똥별들이다.
그들에게 병사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은 애국심을 내세우지만, 정작 자신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서 지도 위에 빨간선을 그리는 것으로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전쟁터는 참혹한 장면들 뿐이고, 똥별과 똑같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지만, 전쟁의 논리는 지배자의 논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주인공 위트 일병은 전쟁터에 나온 군인이지만 그는 종종 무단으로 병영을 뛰쳐나와 혼자 돌아다니거나 원주민들과 어울린다. 보통의 경우 이런 병사는 당연히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영창에 가게 되지만, 그를 이해하는 웰쉬 상사 덕분에 큰 문제 없이 군대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진급을 못하는 것이 유일한 벌이다.
하지만 위트가 바라보는 전쟁터는 총탄과 대포가 날아다니고 군인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거나 터져나가는 참혹한 현장이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과 싱그러운 바람과 구름과 따가운 햇살과 아름다운 원주민들과 고요한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전쟁터의 가운데에서 오히려 평화와 고요를 느끼며 시간을 보낸다. 역설적이다.
전쟁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전투장면이 있는데, 처음 이 장면을 볼 때, 내 심장 박동이 쿵쿵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실제 전투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테렌스 멜릭 감독의 연출은 탁월하다. 이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전쟁영화의 걸작으로 남을 수 있을 테지만, 이 영화를 빛내는 장면들은 전투 장면보다는 전투와 전투 사이에 보여주는 위트 일병의 일탈과 풍경들이다.
역시 전쟁영화 가운데 명장면의 하나인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마지막 장면이 평화로운 새소리와 함께 소리 없이 날아 온 총탄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여주는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풍경은 전투를 겪는 군인이 가장 원하는 평화로운 풍경이며, 그것은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비현실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위트 일병의 환상일 수 있다.
과달카날 전투는 많은 미군이 사망한 격렬한 전투였고, 이 섬을 탈환하면서 남태평양에서 일본까지의 제공권과 제해권을 미군이 장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영화에서는 미군의 희생도 중요하게 다루지만, 적군인 일본군의 참혹한 상태도 보여주고 있다. 적군이니까 당연히 죽여도 좋다는 심리적 동조를 테렌스 멜릭 감독은 분명히 거부하고 있다.
일본군의 악명은 당대에도 이미 유명했지만, 그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이자 소모품으로 전락한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참혹한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은 미군에게 포로로 잡히기 전에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또한 참호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일본군의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이것은 일본군 개개인을 세뇌하고 강제한 일본 군국주의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이 미군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 예상보다 훨씬 강렬하게 저항하는 것은, 미군들이 포로가 된 일본군의 피부를 산 채로 벗긴다는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군인 개개인의 전쟁범죄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강제였든, 세뇌였든, 빗나간 애국심이었든 자유로운 개인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책임을 방기한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다. 그 당시 많은 일본 군인들은 잘못된 애국심으로 군국주의를 받아들였고, 군국주의의 체제를 내면화했다. 그것은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 국민의 정서와 결코 다르지 않으며, 국가의 범죄에 동조하고, 힘을 실어주었다는 점에서 단죄를 면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군국주의, 집단체제에 맞서는 개인의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군과 일본의 군대 조직은 개인의 의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위트 일병의 일탈은 이런 집단에 맞서는 개인의 항의이며, 폭력을 만들어 내는 집단(그것이 미군이든 일본이든 상관 없다)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위트 일병이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과 평화로운 사람들은 그가 바라던 세상의 모습이었지만, 그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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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터 본 칸트 Peter von Kant, 2022
프랑스, 드라마, 85분
감독: 프랑수아 오종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사랑은 난감하다.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하면 달콤한데,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땐 한없이 어렵다. 솔직한 만큼 씁쓸하다. 좋으면서도 아프고, 모르는 척해도 다 알 것만 같고, 낯설다가도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해진다.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 조건 없는 사랑, 헌신적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 사람들은 틈만 나면 사랑에 조건을 붙인다. 그리고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그 힘을 받아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변화해 인간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 바꿔 놓는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 동시에 한계 없이 존재하는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란 사실이다. 사랑은 개인의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권력을 과시하고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 특별한 조건? 필요 없다, 나만 좋으면 된다. 그다음 당신도 좋다면, 난감해도 사랑이란 걸 할 수 있다.
결과는 각자 감당하면 되는 일이고.
<피터 본 칸트>엔 사랑이 쏟아진다. 말로, 눈으로, 손짓과 발짓을 포함한 몸짓은 물론이고 인물들의 침묵마저도 전부 사랑을 얘기한다. 무엇이 사랑이고, 사랑이 아닌지 구분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스토리가 품은 반전도 인물이 숨긴 배신도 아니다. 천재 감독, 피터의 파격적인 짝사랑과 절절한 외사랑, 그리고 모두를 죽이고 다시 피어날 끝사랑, 그야말로 '사랑'이다.
아주 사적인 피터만의 사랑, 영화 제목이 '피터 본 칸트'인 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쓰레기를 반복적으로 찍어내기 바쁜 할리우드(?)와는 다른 차원의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자부하는 영화감독 피터는 거대한 창이 세 개나 달린 저택에서 어시스턴트 칼을 두고 새 작품을 위해 대본을 집필 중이다. 하지만 그는 대본 집필에 열성적이지 않다. 자신의 성공을 질투해 끝나버린 사랑, 즉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층 예민해져 뭐든 듣고 보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칼에게 더 날카롭고 무례하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칼은 자신의 고용주를 남몰래 사랑한다. 피터를 향해 있는 칼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피터에겐 그냥 눈알 따위로 보이는 게 슬플 뿐이다. 해서 칼은 매일 무표정한 얼굴로 피터의 손과 발이 되어 집 안을 누빈다.
한때 자신의 뮤즈였던 시도니가 찾아오자 피터는 대본에 녹여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사랑에 대한 본인의 철학과 상념을 열정적으로 토해낸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술과 담배, 마약으로 본격적인 이야기 장을 만들고 각자의 사랑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너무나 개인적인 견해이자, 누군가의 생각으로 모두의 가슴에 와닿는 명언이 아니다. 딱 내뱉는 순간 흩어지는 물거품이다. 영양가 있고 포만감도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이 내쉬는 담배 연기만큼이나 가볍고 허하다. 마치 헛배가 부른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언제나 나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진리라고 강조한다.
자신감 넘치는 시도니는 자부심까지 넘치는 피터에게 무명 배우 아미르를 소개한다. 방금 전까지 사랑을 험담했던 피터는 아미르를 보자 사랑에 빠진다. 이때의 카메라 동선이 흥미롭다. 피터와 아미르가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 장면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데, 그 찰나의 순간 피터의 눈이 반짝인다. <피터 본 칸트>는 아미르와 피터가 사랑에 빠지는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선도 매우 간결하고, 무척 간단하다. 의미를 두지 않는 컷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래 음미하며 볼 컷도 아닌 것이다.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이 모두가 예상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미리 보여준 정도랄까.
피터는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 자존심, 자부심까지 전부 이용해 아미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감독과 연인의 위치를 능숙하게 바꿔가며 적재적소에 아미르에게 꿈과 사랑을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나의 차기작은 아름다운 너를 위한 영화이며 우린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정복도 할 수 있기에 반드시 함께 해야한다고 말한다. 무명 배우 아미르는 피터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아미르에게 요구되는 건 사랑뿐이고, 완벽하게도 그는 피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다. 그에게 사랑은 꿈을 위한 조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했고 아내가 호주에 살지만, 아직 세상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그에겐 가정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을뿐더러 최우선의 고민거리도 될 수 없었다. 반면 피터에게 아미르의 사랑은 삶의 연료로 필요했다. 전부와 일부의 줄다리기,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은 처음부터 다른 선상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길 위를 달린다.
먼저 식어버린 건 아미르다. 호텔 생활을 하는 아미르를 자기 집에 살게 한 피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을이 된다. 아미르는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당연하게 갑이 됐다. 피터가 먼저 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피터의 헌신적인 사랑과 자신의 쌓여가는 업적으로 인해 소위 말해 버릇없는 애가 됐다. 자신이 모든 걸 조정할 수 있고, 뭐든 해도 괜찮다고 믿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귀중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된 것이다. 그와 같이 속물적이고 세속적이지만, 그보다 더한 것을 바라는 피터는 애원과 원망을 섞어가며 다시 아미르의 마음을 잡으려 한다.
아내를 만나러 가겠다는 아미르와 추잡스러운 몸싸움까지 벌인 피터는 자기 돈까지 건네며 흔한 연인의 사랑싸움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다시 그에게 이별, 아니 버림 이후의 시간이 온 것이다. 피터의 성공을 질투해 헤어지게 된 전 연인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피터는 늘 그런 유형의 사랑을 해 온 남자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상대의 일부만 갖는 그런 사랑. 그것이 자신의 예술을 돋보이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결국 피터는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집에 놀러 온 딸과 엄마 그리고 친구 시도니에게 분풀이하기 시작한다. 딸의 사랑을 콧방귀 뀌며 비웃고, 돈을 빨아먹는 기생충, 노력이란 걸 해본 적 없는 흉측한 늙다리 창녀, 할리우드 쓰레기나 찍는 배우라 욕하며 마지막까지 아미르의 전화를 기다리다 쓰러진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이 된 채 차라리 죽고 싶다며 오열하는 피터를 진정시키는 건 그의 엄마다.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아들을 가엽게 여기는 그녀의 손길에 피터는 아이처럼 안겨 운다. 사랑은 늘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엄마의 조언에 자신이 그동안 누리고 취했던 사랑이 잘못됐음을 시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건 없는 사랑이라면서 소유를 위한 사랑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이후 그토록 기다렸던 아미르의 전화를, 감정이 배제된 냉철한 전 연인으로서 받는다. 꼭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엔 배움이 없다. 배움을 가장한 태움이 있을 뿐이다. 피터는 처음부터 자기 사랑에 대해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불신도 의심도 필요치 않았다. 그에게 사랑이란 자기 작품과 같고, 가장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불꽃이다. 언제든 발화되어 주변의 것을 다 태우고 끝나는 삶이다. 따라서 피터에게 필요한 건 다른 불꽃이다. 그는 조건 없는 사랑을 원하는 척,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척 칼에게 향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본 칼에게 진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너에 대해 말해달라고 속삭인다. 맹목적인 숭배를 받기 위해 아미르에게, 그 전의 아미르와 같았던 이들에게 썼던 방식을 또 답습하는 것이다.
칼은 대답으로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그리곤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평생 살 것만 같았던 피터의 집에서 제 발로 떠난다. 미친 고용주를 견디지 못한 걸까? 드디어 한계가 온 걸까? 아니다, 칼이 원한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다. 피터의 엄마가 말한 사랑처럼, 피터의 딸이 처음 남자 친구에게 느끼는 사랑처럼, 본인만이 설명할 수 있기에 가장 솔직하게 원할 수 있는 '나'의 사랑과 다르기 때문이다.
감히 예상하건대, 칼이 원한 사랑엔 분명 '동등'이 있었을 것이다.
텅 빈 집 안에서 홀로 아미르의 테스트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피터, 그는 자신을 죽이는 사랑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다. 몇 번이고 스스로를 죽이더라도, 자기가 바라는 아름다운 사랑을 또 꿈꿀 것이 분명하다.
그게 피터이자, <피터 본 칸트>다.
관객은 칼의 시선으로 피터를 열심히 관찰하다 나중에서야 제삼자로 그에게서 완전히 멀어진다. 아미르와 시도니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가까워졌다가, 찰나의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리를 둔다. 지독한 일인칭 이야기는 사실 수많은 예시 중 하나에 불과하고, 칼의 이탈에 명백한 이유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상 피터의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피터, 아미르, 시도니는 사랑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야만 삶이 진행되는 인물들이다.)
"모든 이가 사랑하는 것을 죽이네."
시도니의 노래 중 한 구절이며, <피터 본 칸트> 속 세 사람의 사랑 해석본이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은 반드시 사랑하는 것을 죽이면서 사랑을 한다.' 정도가 되겠다
이야기를 이끄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빨려들 수밖에 없는 음악이 본 영화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시도니를 보여주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피터에게 전화하라고 시킨 시도니의 모습은 <피터 본 칸트>가 유일하게 가져간 긴장감이자, 뼈 있는 반전이며 풍자의 대상을 끝까지, 정확하게 겨눈 한 방이다.
p.s <피터 본 칸트>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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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17시간 시리즈 37분 요약(*액션위주)ㅣ결말포함 영화리뷰ㅣ분노의 질주 시리즈 정리 요약ㅣ분노의질주9 리뷰ㅣ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리뷰ㅣ
?「분노의 질주9 더 얼티메이트」 리뷰 보기 전, 필수로 봐야하는
분노의 질주 1~8 시리즈 결말포함 요약 정리 영상(*액션위주)
*외전 "홉스앤쇼"(2019) 제외- "분노의질주9" 정보
감독: 저스틴 린
제작: 저스틴 린, 빈 디젤, 닐 H. 모리츠,제프 커센바움, 조 로스, 클레이튼 타운센드, 사만다 빈센트
각본: 저스틴 린, 다니엘 케이시
원안: 저스틴 린, 다니엘 케이시, 알프레도 보텔로
장르: 액션
출연: 빈 디젤, 미셸 로드리게즈, 조다나 브루스터, 존 시나 등
음악: 브라이언 타일러
제작사: 원 레이스 필름스, 오리지널 필름, 로스/커센바움 필름스
배급사: 미국 유니버설 픽처스, 대한민국 UPI 코리아
개봉일:미국 2021년 6월 25일, 대한민국 2021년 5월 19일
상영 시간: 1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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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메인 예고편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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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암살> 메인 예고편 ??
1933년 조국이 사라진 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 측에 노출되지 않은 세 명을 암살작전에 지목한다.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은 이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암살단의 타깃은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
한편, 누군가에게 거액의 의뢰를 받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암살단의 뒤를 쫓는데...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이들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