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24 13:34:35
3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무료한 목요일에 활기를 더해줄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한눈에 정리해 드릴게요 :)
그럼, 3월 넷째 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존 윅' 촬영 중 실수로 사람 머리를 벤 키아누 리브스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 시리즈의 액션 씬을 촬영하던 중 실수로 누군가의 머리를 베어 버린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액션이 많은 <존 윅> 촬영장에서 어떤 종류의 사고가 발생했는지 묻자 키아누 리브스는 "실수를 한 적이 한 번 있는데요, 어떤 남성분의 머리를 제가 그만 칼로 잘라 버렸어요. 정말 끔찍했죠... 그리고 또 차에 치인 사람도 있었어요. 바로 병원에 갔고, 다행히도 괜찮았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존 윅 4>와 관련해서는 그가 그동안 찍었던 영화들 중 가장 육체적으로 힘든 촬영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12주 간의 훈련 과정을 거친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액션이었다고 말하며 특히 쌍절곤을 활용한 액션이 매우 어려웠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한 <존 윅 4>는 4월 12일 국내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박성웅 주연의 '웅남이', 평론가 혹평 논란 속에 박스오피스 2위 등극
지난 수요일 개봉한 한국 영화 <웅남이>가 23일 목요일 기준 누적 관객 수 5만 4783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개봉 이후 이틀 연속 2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좌석판매율과 좌석점유율이 현재 상영작 가운데 1위로 실 관람객 수치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해당 현상에 대해서 이용철 평론가가 씨네21을 통해 공개한 20자평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가 낳은 개그맨 폄하 논란에 의한 반사이익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아닌 연출자인 개그맨 박성광을 직접적으로 저격한 평가란 점에서 해당 평가가 뭇매를 맞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관객들 사이에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라는 분위기가 퍼진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11편 공개
올해 4월 27일에 시작되는 전주국제영화제가 한국경쟁 부분 선정작 11편을 공개했습니다. 한국경쟁 부문은 연출자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을 선보이는 섹션으로 국내 신인 창작자들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요,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올해 총 111편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이 가운데 심사를 거쳐 극영화 8편, 다큐멘터리 2편, 실험 다큐멘터리 1편이 각각 선정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심사를 맡았던 관계자는 다양한 색채의 영화들이 출품된 와중에 퀴어 장르가 특히 대세로 떠올랐으며 SF 장르의 영화, 영화 또는 예술 제작 과정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선정된 작품으로는 박수연, 이유미 주연의 청춘 퀴어 드라마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어른이 되어가는 두 소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한소희 주연의 <폭설>, 여성 소리꾼 정의진의 이야기를 다룬 <수궁>, 탈북민 여성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묘사한 <믿을 수 있는 사람>, 뇌졸중으로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사시회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여배우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와 상관없이> 등이 있습니다.
'듄', '닥터 스트레인지' 각본가 넷플릭스 영화 '기어즈 오브 워' 합류
영화 <프로메테우스>, <닥터 스트레인지>, <듄>의 각본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존 스페이츠가 넷플릭스 영화 <기어즈 오브 워>에 합류했다는 소식입니다. 영화 <기어즈 오브 워>는 무려 4천만 장이 팔렸던 동명의 유명한 비디오 게임을 실사화한 작품으로, 존 스페이츠는 해당 게임에 대해 역대 최고의 액션 게임 중 하나라고 평가하며, 자신이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어 무척 기쁘고 흥분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홍콩에서 돌연 상영 취소된 '곰돌이 푸: 피와 꿀'
23일 홍콩에서 개봉 예정이었던 영국의 공포영화 <곰돌이 푸: 피와 꿀>이 돌연 상영 취소되는 사태가 발발했습니다. 기술상의 이유로 상영이 취소되었다고 보도되었지만 배급사 측은 당혹감을 표하며 자신들 역시 취소 사유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의식한 검열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그간 중국 정부는 시진핑 주석이 '곰돌이 푸'와 닮았다는 이유로 관련 콘텐츠를 제한해 왔으며 2021년 홍콩에서는 '국가 안보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영화의 상영을 금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례 개정안이 통과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한편, <곰돌이 푸: 피와 꿀>은 4월 중에 국내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며, 일각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친근하고 귀여웠던 이미지의 곰돌이 푸를 저작권이 만료되자마자 일순간에 잔혹하고 끔찍한 캐릭터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폴 메스칼 주연 '글래디에이터2'에 배리 키오건 합류 논의 중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을 맡은 <글래디에이터 2>에 배리 키오건이 출연할 수도 있다는 소식입니다. <글래디에이터 2>는 12개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상을 비롯해 총 5개의 상을 수상했던 200년 블록버스터 히트작 <글래디에이터>의 속편인데요, 앞서 영화 <애프터썬>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폴 메스칼이 전작에서 사망한 주인공 '막시무스'의 연인 '루실라'의 아들이자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루시우스'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편 <킬링 디어>, <덩케르크>, <체르노빌>, <그린 나이트>로 유명한 배리 키오건은 최근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의 연기로 올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 감독의 신작 영화에 제나 오르테가, 위켄드와 함께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져 많은 영화팬들의 기대감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현기증> 리메이크작 출연 논의 중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걸작 <현기증>이 리메이크된다는 소식과 함께 주연 배우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영화는 BBC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의 작가 스티븐 나이트가 대본을 쓰고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그의 아내이자 영화 제작자인 수잔 다우니가 함께 제작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한편, 원작인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은 고소공포증을 앓는 형사와 미스터리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 영화로 2012년 영화 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서 <시민 케인>을 제치고 역대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올해 7월 개봉 예정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로 먼저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며, 박찬욱 감독의 HBO 드라마 <동조자>의 주연 배우로 참여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내년 크리스마스에 개봉하는 조던 필 감독의 4번째 영화
<겟 아웃>, <어스>, <놉>으로 연달아 호평을 받고 있는 조던 필 감독의 신작 영화가 내년 크리스마스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에 있다고 합니다. 이는 <아바타 3>와 <소닉 3>가 개봉하는 2024년 12월 20일보다 일주일 늦은 날짜인데요, 조던 필 감독은 그가 앞서 발표했던 세 편의 영화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작품의 제목도, 장르도, 출연 배우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인데요, 그가 과연 어떤 작품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아올지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씨네랩이 들려드리는 오늘의 씨네뉴스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휴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따뜻한 봄날씨와 함께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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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서 시작해 파멸로 끝난 한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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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아네트>. 영화 <아네트>는 2021년 칸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기대가 많이 되면서도 우려했던 작품이었다 왜냐면,, 그간 칸이 선택한 작품이 나의 취향에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심오했지만 정말 재밌게 봤던 작품이었다.
영화 <아네트> 시놉시스
영화 <아네트>는 예술가들의 도시 LA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와 오페라 가수 안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둘 다 LA에서 잘나가는 배우들이었지만 결혼 후 출산을 하면서 오페라 가수 안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는 반면,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안의 인기에 가려 그 코미디가 먹히질 않고 집에서 딸 아네트를 돌보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던 차에 안과 헨리는 요트 여행을 떠나게 되고 폭풍우가 치는 밤 요트에서 그 둘의 운명은 갈리고 만다.
*이 이후로는 영화 <아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다크한 뮤지컬 영화 속 유머를 섞어 놓다
영화 <아네트>는 굉장히 다크하다. 하지만 이러한 다크함 속에서도 중간중간 유머는 놓치지 않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영화 중간중간 안과 헨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뉴스 속보들이 나온다. 둘이 톱스타인만큼 파파라치가 많이 따라붙는다는 설정으로 정말 헐리우드에서 볼법한 폭스사의 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심각하고 다크한 이야기들 중간중간 유쾌하면서도 조금은 비판적인 둘의 관계를 짚어주는 기사들이 섹션별로 정리되고 있어 조금은 긴 러닝타임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목각인형을 활용하다
처음 아네트가 태어났을 때 든 느낌은 ‘괴이하다’였다. 당연히 어린아이를 캐스팅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슨 목각인형이 아기의 행세를 하고 있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은 잠시였다. 안과 헨리를 연기한 마리온 꼬디아르와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 목각인형을 정말 아이를 다루듯 소중하게 다루고 있어서 나마저도 저 아이가 정말 진짜 아이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연기였다.
그렇게 영화를 다 보고나서 왜 감독이 목각인형으로 아이를 연출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했다. 아네트는 부모에게 이용만 당한다. 아빠 헨리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엄마 안에게는 헨리를 향한 복수의 수단으로 아네트는 이용된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남의 조종에 의해 살아가는 어린 아네트의 모습을 목각인형으로 표현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랑으로 시작해 파멸로 끝나다
영화 <아네트>는 안과 헨리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우리는 너무 사랑해라는 노래를 부르며 평생의 약속을 맺는다. 하지만 둘의 커리어에서 점차 차이가 나고 안은 계속해서 성공을 헨리는 계속해서 실패를 이어가면서 둘의 사이는 틀어지고 결국 그 자격지심에 빠진 헨리는 폭풍우치는 바다 속에서 안을 바다 속으로 떨어뜨린다.
그렇게 혼자 딸 아네트를 키우는 도중 아네트가 빛을 받으면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헨리는 안이 지휘자와 관계를 가졌고 아네트가 그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결국 지휘자까지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아네트는 마지막 무대에서 아빠의 모든 죄를 밝혀버린다. 그렇게 죄값을 치르러 교도소로 들어간 헨리를 향해 면회실에서 딸 아네트는 아빠는 날 절대 사랑하면 안된다고 노래를 부름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시점이 되어서야 목각인형이 아닌 실제 사람으로 등장한 아네트. 그리고 같은 멜로디지만 사랑을 표현하던 영화의 시작과 사랑을 거부하는 영화의 마지막. 이 장면을 보면서 한 남자의 사랑이 자격지심으로 인해 파멸로 이어진 것을 여실이 보여줘서 기억에 오래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아네트>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레오 카락스의 연출, 그리고 반대되는 개념으로 수미상관을 이루는 장치들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왜 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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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틱 코미디, 그런데 기후위기를 곁들인
두 사람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모든 영화에는 인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차이가 있다. 〈타이타닉〉에서는 귀족과 하층민이라는 신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앙숙 가문,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성격,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는 선량한 시민과 범죄자라는 시민적 지위 등등이 그렇다. 이들 영화는 서로의 세계를 살아보지 못한, 그래서 상대방과 그가 속한 세계가 너무나 낯선 주인공이 상대를 알아가며 조금씩 자신이 기존에 속한 세계를 허물고 나와 상대의 세계에 진입하고, 종국에는 두 사람의 세계를 결합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로 나아간다. 물론 꼭 사랑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맥락에 따른,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사랑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이 차이를 더 극단적으로 확장한다. 〈디피컬트〉가 그러하듯이.
코미디, 로맨스를 아우르는 영화 〈디피컬트〉의 배경은 파리다. 주인공은 알베르와 발렌틴. 알베르는 채무에 시달리며 주거도 일정하지 않은 가난한 하층민 남성이고, 발렌틴은 급진적인 기후 활동가다. 둘이 처음 만난 곳은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둔 어느 쇼핑몰. 알베르는 TV를 싸게 구입해 비싸게 팔 목적으로, 발렌틴은 지구를 망치는 무의미한 소비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일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첫 만남이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듯한 두 사람은 뜻밖의 장소에서 재회한다. 알베르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 브루노의 손에 이끌려 무료로 맥주와 음식을 나눠주는 곳에 간다. 발렌틴과 활동가 동료들이 친목과 결의를 다지고 다음 활동을 계획하는 모임의 장소였다. 알베르는 자기 입장에서는 얼토당토않은 일을 진지한 표정으로 도모하는 사람들을 보며 피식거리기를 멈출 수 없지만, 어쨌거나 함께하면 먹을 것이 나오고 그들이 재활용을 위해 수집한 물품을 몰래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재미도 쏠쏠하기에 브루노와 함께 슬쩍 발렌틴의 활동에 동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느덧 솟구친 발렌틴을 향한 알베르의 호감이 가장 큰 동기다. 알베르는 발렌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활동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활동의 다음 단계가 곧 로맨스의 다음 단계와 맞물리며, 영화는 전개된다. 쇼핑몰, 패션쇼, 농장, 박물관, 심지어 은행까지. 기후정의를 촉구하는 이들의 시위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의 시위 장면을 온라인 생중계를 위해 참가자들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불안정하고 흔들리지만 바로 그 이유로 생동감이 느껴지는 장면과 화면 밖 카메라가 주인공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와이드숏을 교차하며 보여주어, 시위 현장의 박진감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는 자연히 시위와 연계된 두 사람의 로맨스가 무르익는 과정과도 맞물리며 극의 감정선과 재미를 더욱 고조한다.
위기도 있다. 알베르와 발렌틴의 관계를 질투한 또 다른 활동가가 알베르가 실은 단체 물품을 장물로 팔아넘기는 등 운동에서 개인 잇속을 챙겨왔다는 점을 폭로한 것이다. 기후 우울증으로 감정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대한 동력을 잃었으나 조금씩 알베르에게 마음을 열던 발렌틴은 이후 알베르에게서 완전히 멀어진다.
당연하게도 둘은 결국 위기를 극복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건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위기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뻔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영화가 두 사람의 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캐릭터, 서사 설정이다. 〈디피컬트〉에서 누군가 기후위기를 얼마만큼 심각하게 인식하는지는 〈타이타닉〉의 신분,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문, 〈엽기적인 그녀〉의 성격, 〈베이비 드라이버〉의 시민적 지위만큼이나 커다란 차이다. 즉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의 차이가 귀족과 하층민이 살아가는 세계의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코미디와 로맨스를 버무린 영화라기보다는 동시대에 기후위기에 대한 감각‧인식의 지형이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지를 질문하는 영화로 볼 때 더 재미있다. 만약 당신이 기후 음모론자라면, 푼돈을 벌어 하루하루 근근이 사는 남자와 기후 우울증 때문에 감정적으로 파산한 여자가 사랑과 연대로 그들 개인뿐 아니라 자신들이 사는 세상까지 더 좋게 만든다는 이 영화의 서사가 한없이 지루하고 허황되게 느껴질 것이다. 〈디피컬트〉의 서사 구조는 2022년에 열린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 2021년작 프랑스 영화 〈지평선〉과 유사한데, 두 영화를 유럽에서(혹은 적어도 프랑스에서) 기후 시민이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될 만큼 분명하게 가시화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 해석해도 무방해 보인다.
같은 징후를 포착한 한국의 상업영화를 나는 알지 못한다. 즉, 한국에서 기후 시민은 아직 하나의 분명한 시민적 정체성으로 부상하지 않았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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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이의 세계, 그 속의 감정들
개봉 전 시사회에서 영화를 먼저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오마이뉴스에서 [영화 속 감정 읽기] 라는 연재를 합니다. 영화리뷰안에 각 인물이 대표하는 감정을 적고 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갓난아이들에게 옆에 있는 엄마는 의지해야 할 꼭 필요한 존재다. 먹을 것을 해결해 주고, 아직 뭐가 뭔지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엄마는 그 아이의 전부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의 세계다. 꼭 엄마만 그런 존재가 되라는 법은 없다. 아빠도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친척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이와 오랜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내고 도움을 준다면, 그 자체로 아이의 세계에 포함될 수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주 좁고 작은 세계지만, 아이에게 그 세계는 무너지면 안 되는 무척이나 큰 세계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주인공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를 어릴 적부터 키운 보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는 어쩌면 클레오의 전부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게 고향으로 떠나야 할 사정이 생기고 결국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클레오의 반응과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겪는 상실감과 그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클레오는 마음 한 구석이 시리고 슬프다. 흔들리는 클레오의 세계를 영화는 담담하고 강렬하게 담고 있다.
첫 번째 감정 - 클레오의 두려움
클레오의 세계에는 아빠도 있고,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도 있고, 보모인 글로리아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글로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이 웃고 떠들면서 감정을 공유한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적어도 클레오의 세계에 엄마는 없다. 그 엄마라는 존재를 대신하는 사람이 바로 글로리아다.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자 엄마 같은 존재다. 같이 샤워를 하고, 같이 병원을 가고, 같이 밥을 먹는다. 그러니까 일상을 공유하는 두 사람은 어쩌면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영화 초반 클레오와 글로리아의 수다와 장난을 지나면, 고향에 계신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온다. 그 전화를 받고 글로리아가 우는 그 순간부터 클레오에게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조금씩 생겨난다. 슬픔을 잠시 묻어둔 채 클레오를 챙기고 재우는 글로리아의 모습도 그렇게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어느 순간에 클레오에게 이제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해 버린다. 클로에는 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아이가 그렇듯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냐는 물음을 다시 던진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글로리아의 말에 클레오는 기운이 없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에겐 자신이 알던, 무척이나 친숙했던 큰 세계가 통째로 사라져 버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의 두려움은 학교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운을 없애고 때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하지만 곧 그 세계는 무너진다. 아빠에게 위로받고 또 장난도 곧잘 치지만, 그런 아빠의 노력이 텅 비어버린 클레오의 세계를 전부 채울 수는 없다.
두 번째 감정 - 클레오의 질투
글로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클레오는 마음속에서 글로리아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글로리아의 고향으로 놀러 가게 된다. 여기서 클레오가 겪는 일들의 대부분은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순간들이다. 오랜만에 자신의 모든 세계인 글로리아를 만났고, 그의 가족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클레오에겐 잃어버린 세계를 찾은 기쁨을 선사한다. 자신의 집이 있는 파리보다는 열악한 시골 섬의 작은 마을이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도 하고, 바다에서 수영도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글로리아에게는 임신한 딸과 아들이 있다. 글로리아의 딸이 출산하게 되면서 그의 집에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린다. 이때부터 글로리아는 자신의 손주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클레오는 자신이 받던 글로리아의 사랑을 갓난아이가 빼앗아갔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느끼는 온 세상을 그 아이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이 작은 클레오의 마음속에 큰 질투의 불씨를 불어넣는다. 그가 글로리아의 손주에게 하는 어떤 행동은 조금은 충격적으로 느껴지지만 클레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클레오의 세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으니까.
클레오와 갓난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과 클레오가 하는 행동을 본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때부터 클레오는 달리기 시작하고, 해변까지 간 클로에는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든다. 폭발하는 질투심과 죄책감이 동시에 그를 괴롭힌다. 어쩌면 클레오의 세계는 이미 없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당황한 클레오의 표정은 그 모든 붕괴를 표현하고 있다. 클레오의 감정은 그가 해변으로 달려가는 그 모든 순간에 완전히 방출된다. 그걸 보고 있으면 보는 이들도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르게 된다. 클레오의 질투는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속에 일종의 파괴본능을 만들어냈고, 스스로 악마가 되고 싶었던 클레오는 부끄러움에 바다로 몸을 던진다.
세 번째 감정 - 글로리아의 슬픔
이 영화가 클레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글로리아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클레오를 키워온 글로리아 역시 클레오에게 많은 감정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서로 나눈 감정은 마치 보이지 않는 끈처럼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고향으로 떠나야 하는 순간에 글로리아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의 마음에 글로리아의 자리는 꽤나 크게 만들어져 있었을 것이다. 담담히 그 상황을 설명하고 떠나는 글로리아는 자신의 힘으로 키워낸 작은 아이의 세계를 잠시 바라보고 돌아선다.
클레오가 자신의 고향으로 찾아온 방학기간 동안, 글로리아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신만의 사업을 준비하면서 딸의 출산을 돕고, 태어난 아이를 챙겨야 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잠시나마 찾아온 클레오가 너무나 반갑지만, 온전히 그에게만 신경을 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글로리아는 자신의 가족을 좀 더 신경 쓰며 챙길 수밖에 없다. 여전히 클레오에게 다정한 글로리아지만, 그런 모든 상황을 지나면서 클레오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엔 글로리아가 울음을 터뜨린다. 클레오를 공학까지 배웅하며 돌아서는 그의 마음은 복잡하다. 결국 클레오와 완전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펑펑 눈물을 쏟는다. 아마도 클레오의 방학기간 동안 클레오도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클레오는 비행기로 향하며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지만 글로리아는 끝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의 눈물은 클레오의 세계에서 완전히 떠나게 된 그 상황에 대한 슬픔이 담겨있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클레오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상황들을 따라간다. 다양한 클로즈업을 통해 클레오가 진짜로 볼만한 장면들을 화면으로 담고, 느낄만한 감정들을 무척 잘 전달하고 있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전환 장면은 수채화 같은 이미지를 통해 클레오의 세계가 가진 따뜻함을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작은 아이 클레오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협소한 작은 공간만 존재했던 클레오의 세계는 아마도 이 영화 속의 일을 겪고 나면 엄청나게 거대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겪은 성장기처럼. 글로리아는 비록 엄마는 아니었지만 클레오에게 중요한 존재였고, 두 사람이 나눴던 감정의 교류는 모두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영화는 그 거대한 사랑을 클레오의 얼굴과 표정으로 잘 보여준다. 영화의 원제에는 보모의 이름인 글로리아 가 들어간다. 하지만 한국에 수입되면서 <클레오의 세계>로 제목이 바뀌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클레오의 세계가 곧 글로리아였으니.. 어쩌면 이 상황을 잘 표현한 완벽한 번역이 아닐까.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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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외톨이별처럼
아직 내가 서울시민이 아니었던 10년쯤 전,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벌이는 설전을 보았다. 한 후보가 세계 최고의 무엇을 도내에 들이겠다고 했고, 상대 후보는 "왜 최고여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최초, 최고 속도, 이렇게 최(最)가 붙는 것들의 존재가 정말 우리에게 필수조건인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법은 아니었다.
그러게, 왜 최고여야 하지? 우리가 왜 꼭 첨단의 첨단을 달려야만 하지? 지켜보던 나도 같은 의문을 품었다. 그가 도지사 후보로 나갔다는 것조차 가물가물해진 지금도 그 말만큼은 마음 한쪽에 남아있다가 가끔 떠오른다. 아마 지금 내가 서울시민으로, 서울에 살면서 느끼는 것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는데, 내게 서울은 시간의 첨단을 달리는 도시로 보인다. 앉아있으면 온 도시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첨단의 첨단을 달려야만 한다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좇아야 한다고.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고.
어쩌면 내가 음악이든 영화든 앞에 "인디"가 붙는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 또한, 서울에서 받는 그 메시지에 대한 저항인지 모른다. 독립영화나 인디음악은 자본의 영향력이 적다는 뜻이니 뒤집어 말하면 창작자가 더 극명하게 묻어난다는 소리니까. 창작은 어떻게든 창작하는 이의 시간을 헤집으니까. 혹시 첨단의 첨단 기술을 동원한다 해도 그건 창작의 도구일 뿐 결코 전부가 되지 못한다. 창작자의 시간은 선형으로 흐르지 않아, 현재 아닌 시간의 것들이 어떻게든 묻어나게 돼있다.
도시의 욕망과 나의 욕망 사이에서 제각각의 길을 찾는 것이 창작은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영화나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했던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같이 떠오르던, 나는 그런 식으로 글을 써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 그리고 이 영화, <다시 만난 날들>은 어쩐지 그런 상념들을 다시 끌어내 준다.
연주하고 곡도 쓰고, 아직 본인의 앨범을 내지는 못했지만 차곡차곡 음악을 쌓고 있는 주인공 태일(홍이삭)은 동료에게 대형 기획사 대표를 소개받는다. 대표는 "뻔한 사랑 노래" 같은 게 좋다고, 트렌디하고 쉬운 게 좋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면서, 태일의 곡을 들어보자고 한다.
실력이 인정받고 있지만 자기 음악을 하기엔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은 애매한 상태. 그 불안한 자리에 있던 태일은 문득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오래전 친구들과 밴드를 하던 기억이 스틸 사진처럼 남아있는 곳. 여전히 그곳에 살면서 음악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원(장하은)을 만나, 찬찬히 시간을 보낸다. 잘 풀리지 않던 곡의 후반부를 지원과 함께 쓰고, 중학생 밴드 아이들의 노래를 보아주고. 그렇게 마음의 코드까지 하나하나 짚는 모습을 살뜰히 보여준다.
그들이 만나는 곳- 내부는 따뜻한 노란 조명으로, 바깥은 푸른 보랏빛 조명으로 덮인 음악학원이라는 공간은 과거의 추억을 가득 담고 있다. 동시에 이제 막 음악에 첫 발을 떼는 중학생 밴드 '더 디스트로이어'가 새싹처럼 자라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필름 사진 속 지금 보면 촌스럽기도 하고 투박하지만 즐거웠던 시절의 그들과, 이제 막 밴드라는 작업의 재미와 신뢰를 알아가는 중학생 손에 들린 필름 카메라. 어쩌면 과거는 미래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다 카포Da Capo,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흘러가는 시간이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성장과 어른들의 성장이 나란히 포개지며 영화는 흘러간다.
음악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글을 쓴다고 컴퓨터나 노트 앞에 혼자 앉아있는 것밖에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중간중간 부러운 대목도 있었다. 악기라는 도구가 있다는 것도, 합을 맞추며 함께한다는 것도, 코드를 짚으며 음악을 언어처럼 사용해 소통하는 것도. 그러나 그렇게 탄탄해 보이고 함께 있는 듯 보여도 결국 사람 속은 다 알 수 없는 거여서. 과거의 어느 날 태일은 갑작스럽게 그 시간과 공간을 떠났고, 그래서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한편 그래도 더 크고 '메이저'한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태일과 닮은 듯 보이는 인물이 덕호다. 기태, 배돌, 북순이라는 다소 직관적인 작명으로 표현될 만큼 파트 색깔이 뚜렷한 아이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누나와 자신의 쓸모와 락에 대한 마음 같은 것에 이리저리 뒤흔들리는 중인 밴드 보컬. 덕호와 친구들을 보면서 태일은 아이들을 격려하고 또 음악을 다듬어준다. 그 '중2병' 감성을 비웃지도 않고, 과장되게 칭찬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창작이란 어떤 걸까. 영화 속 태일은 척추에서 나오듯이, 일기 쓰듯이 그냥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그 안에서 덕호는 성장하고, 태일도 자신을 돌아본다. 무언가 만들어내는 삶을 고민해본 이라면 누구든 그 안에서 쉬어갈 수 있는 쉼표 같은 대사들이 녹아 있다.
태일이 그리는 잔잔한 온기가 영화의 한 축이라면, 반대편에는 지원이 가진 단단함이 있다. 욕망하지 않는 소도시의 작은 음악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설정부터도 그렇지만, 태일에 비해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게 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느낌이 있다. 기죽지 않고 "야" 한 마디만으로 친구를 지켜줄 수 있는 북순도 어떻게 보면 지원과 닮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원 못지않게 북순이 좋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캐릭터에만 있지 않다. 싱어 송라이터 홍이삭의 노래와 기타, 지원 역을 맡은 기타리스트 장하은의 연주는 물론이고 중학생 아이들의 장면도 매력적이다. 밴드 아이들은 연주 실력이 훌륭하면서도 귀엽고, 각 캐릭터가 파트와 잘 어우러지면서 톡톡 튄다. 특히 지원과 기태의 '배틀' 장면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배틀 못지않게 흥미로운데, 기태 역을 맡은 양태환은 평창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공연했다고 한다. 연기를 해온 사람보다는 음악을 해온 사람 위주의 캐스팅이다.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빛을 발한다.
주연배우인 동시에 음악감독을 맡은 홍이삭이 만든 곡들도 어느 하나 지나치고 싶은 것이 없다. 뮤지컬 <러브 트릴로지> OST로 알고 있던 곡들이 나와 의아했는데, 엔딩 크레디트 보니 심찬양 감독과 홍이삭이 함께했던 뮤지컬 <러브 트릴로지>가 원안이라고 한다. 자이로부터 시작해서 이나우, 박찬영 등 중간중간 <슈퍼밴드>에 홍이삭과 함께 나왔던 반가운 얼굴들도 눈에 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김하진, 양지완이라는 이름도 봤는데... 어느 장면인지 놓친 것 같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답게, 영화 구석구석을 좋은 음악으로 빼곡하게 채웠다는 느낌이다. 후반부 각본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아쉬움을 음악이 어느 정도 상쇄해준다.
큰 기대 없이 본 영화였는데, 계절에 잘 어울리는 뜻밖의 위로를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기타를 잡고 밴드를 한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직선적인 열정이 있었던 과거와 유려해졌지만 열정이 사그라든 것만 같은 현재를 톺아보는 사람은 많으니까. 우리의 과거는 미래를 닮아있으니, 나의 오늘을 '메이저'하게 쌓는 것 못지않게 과거와 미래를 일정하게 연결하는 단단한 마음도 중요하다. 그게 뜻밖의 위로가 됐다. 큰 무대에 서지 않아도, 어제와 내일을 잘 이어주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가치가 있다는 것이.
하필 요즘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나의 20대에 쓸 수 있을 최선을 쓴 것 같은데, 좋은 평도 꽤 받은 것 같은데, 될 듯 말 듯 어떤 선을 못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 이제 더 글을 쓰려면 새로운 무언가를 살아내야 할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어쩌면 이 영화 속 태일과 비슷한 시기인 것 같다. 그런 때에 훌쩍 떠날 소도시가 있다는 건, 그 도시를 닮은 사람을 안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큰 행운인지.
조바심과 불안해하는 마음은 버리기로 했다. 중학생 덕호가 습관처럼 외치는 빌보드가 아니어도, 뮤직비디오 찍고 앨범 내는 가수가 아니어도, 이들에게는 함께 부른 노래가 있었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쓰고 싶은 것들을 소중하게 써내려가기로 했다.
* * *
천만 관객 동원하는 상업영화부터 아직 개봉하지 못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까지, 빌보드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부터 이제 막 첫 녹음을 한 누군가의 작은 공연까지. 각자의 취향과 자본의 영향력으로 그린 사분면 어딘가에, 지금도 다양한 음악과 영화가 별처럼 흩뿌려지고 있다.
존 버거의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우주의 별 절반 이상이 성운에 속하지 않은 외톨이별이라 한다. 가장 많은 빛은 그들에게서 나오는 거라고. 더 다양하고 그래서 더 풍성한, 독립영화와 인디음악의 힘도 그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나직하지만 힘 있게 빛나는 외톨이별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도 한 외톨이별로서 빛나고 있을 거라 다정하게 도닥여주는 빛. 따뜻한 마음으로 이 영화 음악을 들으며 나의 별을 밝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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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우리가 만날 때
오래 품은 소원에는 힘이 있다. 흩어지지도 해지지도 않고, 모양을 오래도록 유지했다는 그 자체로. 그 끝에 이루어진 소원은 거의 성공 신화가 된다.
그만큼 쉽지 않으니까. 소원이라는 단어는 얼핏 강해 보이지만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흐릿한 안개 같다. 흐지부지 밀려나기도 하고, 세파에 깨지기도 하고, 문득 스스로 폐기할 수도 있다. 오래 품은 소원을 이룬다는 것은 뚝심과 에너지, 자기 확신은 물론 행운까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이룬 이야기에는 거의 마법에 준하는 힘이 있다. 무심코 떠오른 강렬한 생각 하나를 한참 바라본 끝에 확장한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처럼, 남들에게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끝내 꿈꾸던 장면을 만들어낸 영화 <라라랜드>처럼.
그런데 <매드 맥스> 시리즈로 이미 반열에 오른 조지 밀러 감독에게도 그런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20년 전 읽은 단편소설을 토대로 빚은 영화를 마침내 가지고 왔는데, 공교롭게도 소원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세상 모든 이야기를 섭렵한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가 학술 대회 차 방문한 튀르키예에서 기념품으로 작은 병을 구입한다. 그런데 별안간 병에서 지니가 튀어나오고, 세 가지 소원을 묻는다. 알리테아는 이런 이야기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거절하려 하지만, 지니는 알리테아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이 세 번이나 병에 갇히게 되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건 환상일까 진실일까? 이야기는 크게 지니의 이야기 세 편과, 알레티아의 세 가지 소원 두 가지 축으로 굴러간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이 이야기를 만날 때
영화는 튀르키예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의 알리테아에서 시작한다. 오래전 이야기들처럼 ‘옛날 옛적에…’ 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데, 무미건조한 현대 사회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에 전혀 다른 색을 입혀, 마치 다른 시공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공항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는 알리테아를 봐도, 온통 무채색 옷을 입은 사람 중 유일하게 다른 색깔 옷을 입은 사람이다.
서사학자로 학회 발표 자리에 선 알리테아는 정작 이야기가 이야기일 뿐이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데, 일상의 태도를 보면 사실은 이야기 그 자체인 사람이라 물건을 고르는 기준조차 세간의 가치보다는 이야기가 묻어나는 지 여부를 본다. 빈티지 물건들이 다시 사랑받는 세상, 알리테아와 같은 이들은 여전히 꽤 많아 보인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이 좋아할 영화다. 작은 물건 하나에 깃든 이야기로 기뻐하는.
그런 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가 튀르키예인 점은 매우 적절하다. 행정 수도로 기획된 도시 앙카라 말고, 천년 고도 이스탄불이어야 한다. 오래된 도시에는 골목마다 이야기가 숨어 있으니까. 벽면에도, 발코니에도, 옛 연인의 단꿈이나 누군가의 한숨, 피, 배신, 눈물 같은 것들이 속속들이 배어 있으니까.
더없이 적절한 풍경에서 알리테아와 지니는 만나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에 의존해 영화는 진행된다. 지니의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시대가 등장한다. 시바 여왕의 시대, 오스만 제국의 시대, 제피르라는 여자가 살았던 중동의 어느 시공간까지. 각 시대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뒤섞어 매끄럽게 연출되어 있어, 눈과 귀에 화려하게 감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 이유다)
실제 역사에 마법이 존재하던 시대 같은 것은 없지만, 그저 꿈에 불과하지만, 지니의 이야기 속 세계는 마치 "옛날 먼 옛날 어딘가"에는 마법이 존재했을 것만 같아 보인다. 생각해 보면 이야기란 원래 존재였다. 아직 식량 생산이 충분하지 않고 전쟁과 기아가 코앞에 있던 그 옛날에도 사람들은 황금빛 이야기를 통해 괴로움과 척박함 속에서 살아 버텼을 것이다. 병 속의 지니처럼.
불안한 미지의 세계에서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힘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과학이 발달한 지금, 과학은 이야기를 대체했는가? 어떤 설명은 과학에게 자리를 내주었겠지만, 여전히 이야기는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기 이야기는 별로 없다는 알리테아에게 지니는 정색하고 말한다. It’s always a story. 우리의 삶은 언제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써내려 가고 어떤 식으로 편집할지 차이가 있을 뿐, 이야기가 아닐 수는 없다. 삶의 이야기, 그것은 과학이 대체할 수 없는 이야기의 영역이다.
애당초 이야기와 과학은 서로 배척하는 단어가 아니라 연결된 별개의 무언가이다. 지니의 이야기 속 제피르를 보아도, 최초의 영화와 상당히 닮은 것을 만들어냈다. 이야기와 과학이 만나는 지점에 영화도 있고 인간도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이야기를 만날 때
알리테아는 자기 이야기를 쓰기보다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파악하고, 요약하고 정리하여 갈래로 기억하는 사람이다. 떠나버린 사람의 기억은 상자 하나에 말끔하게 담아 넣고, 상처로 기억되는 순간들도 담담하게 축소해서 기술한다.
반면 이야기를 풍성하게 풀어내는 지니는 상대적으로 더 인간 같다.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이라 하나,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다. 더 강한 존재에게 붙잡히기도 하고, 미래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모르고 갈망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다운 것임을 깨닫게 한다.
바로 이 지점에 이야기의 매력이 있다. 사실 세 가지 소원에 대한 이야기는 알리테아가 말하듯 흔한 장르다. 우리도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이토록 오래된 이야기가 여전히 흡입력을 갖는 이유는 거기에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소원이란 결국 마음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아야만 알 수 있는 질문이다. 한 가지도 아니고 세 가지라는 점에서 더욱 세밀하게 속내를 드러낸다. 위험을 느끼면서도 끝내 손을 뻗게 만드는 것, 그 손끝에 무엇이 닿을지 집중하고 보게 되는 것. 마음이 편하기보다 외줄 타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위태롭다. 어쩌면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사랑하은 지니 또한 이야기를 괴로워한다. "희망은 괴물 같고, 이야기는 희망의 노리개"라는 그의 대사에서, 우리의 이 괴로운 갈망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인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끝내 희망을 찾아 헤매 온 것이었다.
절망의 중심을 직시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희망의 한 갈래 길을 찾는 것. 이야기는 이야기를 믿는 인간에게만 그렇게 존재한다. 그냥 인간이 그렇다. 인정 없이는, 사랑 없이는, 대화 없이는, 그래서 그것들로 희망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이 어둠을 헤치고 살아갈 길을 알지 못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한 번 더 무릎을 펴게 만드는 것이 "괴물 같"은 희망. 포기할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것. 이야기는 그래서 존재한다.
이 점은 현대 사회가 이야기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깨닫게 한다. 이야기조차 그저 지식의 파편으로 간주하며, 재산화되어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세상. 이야기는 갈망의 산지가 아니라 무수한 심심풀이 도구 중 하나로 간주되어 간다. 화려한 보석 같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굴러다니는 돌이 된다.
현대 사회는 이야기의 찬란한 빛이 많이 감춰진 시대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소비”하지 “이야기를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지 않는다. 괴로워도 희망을 향하기보다, 그저 아는 절망을 늘어놓으며 절망을 절망의 핑계로 삼는 게으른 창작도 "콘텐츠"로 훌륭하게 기능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식과 이야기의 의미는 변한다.
옛날 같았다면 환영받았을, 이야기가 풍요로운 땅에서 온 이들은 불청객 취급을 받고 있다. 알리테아가 사는 런던의 길거리에도 터번을 쓴 남자와 차도르를 두른 여자가 돌아다니는 세상인데, 알리테아의 이웃집 할머니들은 자기네 문화권이 아닌 이야기를 찾아 다닌다며 알리테아를 못마땅해 한다. 이들은 모른다. 자신들의 조상이 게으르게 그려낸 이야기가 그들의 절망에 기여했다는 걸. 아니었다면 그들은 지금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만날 때
그러나 이 척박해 보이는 시대에도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여전히 이야기를 들이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로 의미를 찾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삶의 어떤 부재 가운데서도 그 위로를 찾아 버틸 수 있는 사람. 이를 위해 이야기 끝을 뾰족하게 다듬고 섬세하게 방향을 잡는 사람. 괴로워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심지어 이야기를 사랑하다 못해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광인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알리테아의 이야기도 그렇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진실인 동시에 광기이다.
그래서일까.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방황한다 해도, 언젠가 어떤 이야기와 반드시 공명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마주친 누군가의 눈이 반드시 알아볼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살아 버텨야 한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기꺼이 기립근에 힘을 주고 끝도 없이 영화를 보며, 나의 영혼에 다정하게 공명할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마침내 만날 것이다. 그리고 말하겠지. “And yet here you are, my Impossible.”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의 개봉일은 2023년 1월 4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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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 <신의 소녀들>
알리나는 사랑하는 친구인 보이치타와 함께 떠나기 위해서 그녀가 있는 수도원으로 향한다. 알리나는 바로 독일로 떠나길 원했지만
알리나와 떨어져 있었던 시간 동안 수도원에 머물렀던 보이치타는 계속 수도원에 있기를 원한다. 알리나는 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보이치타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도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이치타도 신을 믿지 않는 알리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도원에서 알리나는 철저한 이방인일 뿐이다. 신을 믿지 않는 알리나의 말과 행동으로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은 알리나의 몸속에 악마가 있다며 퇴마의식을 시작한다. 그들은 알리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구원이 아니라 마녀사냥이고 학대일 뿐이다. 퇴마의식 전에 알리나는 사랑하는 보이치타를 위해서 잠시 떠났던 수도원에 다시 돌아온다. 알리나는 신을 믿으려고 노력했지만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의문을 제기하는 게 죄인가.
영화 속에서 수도원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의 신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은 타인을 죄인으로 만들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게 만든다.
이 영화는 종교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대립을 보여준다. 종교를 믿는 수도원의 사람들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구원한다고 말하지만 전혀 아니다. 철저하게 이방으로 대우하며 악마라고 취급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구원이 신념이 다른 사람을 마녀사냥하는 것인지 어쩌면 맹목적인 믿음은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퇴마의식을 진행하면서 알리나를 걱정하지 않는 수도원 사람들의 모습은 이질적이었고 광기를 느꼈다.
고아원에서 함께 있었던 알리나와 보이치타는 서로를 사랑했다. 어쩌면 보이치타는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신을 믿기 시작한 게 아닐까. 영화는 알리나가 수도원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심했던 병원과 신의 힘으로 알리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사람들의 오만함을 조롱한다.
신을 믿는다면서 가치관과 신념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집단을 비판하는 영화 퇴마의식이 구원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나의 신념은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 그 신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라고 영화는 어쩌면 가장 기본이지만 중요한 답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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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오어 티 영화 후기 / 중국영화 맞아?! / 대만 로코인줄 ㅎㅎ / “스물” 느낌의 유쾌한 코믹 드라마
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커피 오어 티"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윈난의 아름다운 풍경과 흥겨운 OST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중국영화, #코미디, #드라마, #팽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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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제]리뷰:원작의 중요한 설정을 모두 갖다버린 리메이크작. 남는 건 배우의 얼굴 뿐(원작분석)ㅣ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해석
#조제#한지만#남주혁
원작보세요 여러분!음악 출처
1.
myuu - Wind's Wr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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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ttps://youtu.be/XWfdbDZM2vA2.
Title: Naoya Sakamata – Dissociation
Free Download / Stream: https://soundcloud.com/naoya-sakamata...
License: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
????? ???????? : https://youtu.be/XWfdbDZM2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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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티저 예고편
레전드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귀환!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티저 예고편 공개 2024년 극장 대개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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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울림의 탄생> 메인 예고편
소아마비 고아, 한쪽 귀의 청력마저 상실한 그를 품어준 북 만드는 장인.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북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며 이 악물고 버텨 온 60년. 이제 일흔을 앞둔 임선빈 악기장은 다른 한쪽 귀의 청력마저 잃게 될 거라는 비보를 접하고, 어린 시절 처음 들었던 그 북소리를 담은 대작을 만들기 위해 23년을 아껴 두었던 나무를 꺼낸다. 그러나 날씨도, 몸도, 전수자인 아들 동국과의 협업도 마음같지만은 않은데 ...
60년 동안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첫 북소리의 울림. 그 울림이 담긴 북을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