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24 13:34:35
3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무료한 목요일에 활기를 더해줄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한눈에 정리해 드릴게요 :)
그럼, 3월 넷째 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존 윅' 촬영 중 실수로 사람 머리를 벤 키아누 리브스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 시리즈의 액션 씬을 촬영하던 중 실수로 누군가의 머리를 베어 버린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액션이 많은 <존 윅> 촬영장에서 어떤 종류의 사고가 발생했는지 묻자 키아누 리브스는 "실수를 한 적이 한 번 있는데요, 어떤 남성분의 머리를 제가 그만 칼로 잘라 버렸어요. 정말 끔찍했죠... 그리고 또 차에 치인 사람도 있었어요. 바로 병원에 갔고, 다행히도 괜찮았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존 윅 4>와 관련해서는 그가 그동안 찍었던 영화들 중 가장 육체적으로 힘든 촬영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12주 간의 훈련 과정을 거친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액션이었다고 말하며 특히 쌍절곤을 활용한 액션이 매우 어려웠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한 <존 윅 4>는 4월 12일 국내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박성웅 주연의 '웅남이', 평론가 혹평 논란 속에 박스오피스 2위 등극

지난 수요일 개봉한 한국 영화 <웅남이>가 23일 목요일 기준 누적 관객 수 5만 4783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개봉 이후 이틀 연속 2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좌석판매율과 좌석점유율이 현재 상영작 가운데 1위로 실 관람객 수치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해당 현상에 대해서 이용철 평론가가 씨네21을 통해 공개한 20자평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가 낳은 개그맨 폄하 논란에 의한 반사이익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아닌 연출자인 개그맨 박성광을 직접적으로 저격한 평가란 점에서 해당 평가가 뭇매를 맞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관객들 사이에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라는 분위기가 퍼진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11편 공개

올해 4월 27일에 시작되는 전주국제영화제가 한국경쟁 부분 선정작 11편을 공개했습니다. 한국경쟁 부문은 연출자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을 선보이는 섹션으로 국내 신인 창작자들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요,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올해 총 111편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이 가운데 심사를 거쳐 극영화 8편, 다큐멘터리 2편, 실험 다큐멘터리 1편이 각각 선정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심사를 맡았던 관계자는 다양한 색채의 영화들이 출품된 와중에 퀴어 장르가 특히 대세로 떠올랐으며 SF 장르의 영화, 영화 또는 예술 제작 과정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선정된 작품으로는 박수연, 이유미 주연의 청춘 퀴어 드라마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어른이 되어가는 두 소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한소희 주연의 <폭설>, 여성 소리꾼 정의진의 이야기를 다룬 <수궁>, 탈북민 여성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묘사한 <믿을 수 있는 사람>, 뇌졸중으로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사시회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여배우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와 상관없이> 등이 있습니다.
'듄', '닥터 스트레인지' 각본가 넷플릭스 영화 '기어즈 오브 워' 합류

영화 <프로메테우스>, <닥터 스트레인지>, <듄>의 각본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존 스페이츠가 넷플릭스 영화 <기어즈 오브 워>에 합류했다는 소식입니다. 영화 <기어즈 오브 워>는 무려 4천만 장이 팔렸던 동명의 유명한 비디오 게임을 실사화한 작품으로, 존 스페이츠는 해당 게임에 대해 역대 최고의 액션 게임 중 하나라고 평가하며, 자신이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어 무척 기쁘고 흥분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홍콩에서 돌연 상영 취소된 '곰돌이 푸: 피와 꿀'


23일 홍콩에서 개봉 예정이었던 영국의 공포영화 <곰돌이 푸: 피와 꿀>이 돌연 상영 취소되는 사태가 발발했습니다. 기술상의 이유로 상영이 취소되었다고 보도되었지만 배급사 측은 당혹감을 표하며 자신들 역시 취소 사유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의식한 검열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그간 중국 정부는 시진핑 주석이 '곰돌이 푸'와 닮았다는 이유로 관련 콘텐츠를 제한해 왔으며 2021년 홍콩에서는 '국가 안보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영화의 상영을 금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례 개정안이 통과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한편, <곰돌이 푸: 피와 꿀>은 4월 중에 국내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며, 일각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친근하고 귀여웠던 이미지의 곰돌이 푸를 저작권이 만료되자마자 일순간에 잔혹하고 끔찍한 캐릭터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폴 메스칼 주연 '글래디에이터2'에 배리 키오건 합류 논의 중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을 맡은 <글래디에이터 2>에 배리 키오건이 출연할 수도 있다는 소식입니다. <글래디에이터 2>는 12개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상을 비롯해 총 5개의 상을 수상했던 200년 블록버스터 히트작 <글래디에이터>의 속편인데요, 앞서 영화 <애프터썬>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폴 메스칼이 전작에서 사망한 주인공 '막시무스'의 연인 '루실라'의 아들이자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루시우스'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편 <킬링 디어>, <덩케르크>, <체르노빌>, <그린 나이트>로 유명한 배리 키오건은 최근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의 연기로 올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 감독의 신작 영화에 제나 오르테가, 위켄드와 함께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져 많은 영화팬들의 기대감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현기증> 리메이크작 출연 논의 중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걸작 <현기증>이 리메이크된다는 소식과 함께 주연 배우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영화는 BBC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의 작가 스티븐 나이트가 대본을 쓰고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그의 아내이자 영화 제작자인 수잔 다우니가 함께 제작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한편, 원작인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은 고소공포증을 앓는 형사와 미스터리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 영화로 2012년 영화 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서 <시민 케인>을 제치고 역대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올해 7월 개봉 예정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로 먼저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며, 박찬욱 감독의 HBO 드라마 <동조자>의 주연 배우로 참여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내년 크리스마스에 개봉하는 조던 필 감독의 4번째 영화

<겟 아웃>, <어스>, <놉>으로 연달아 호평을 받고 있는 조던 필 감독의 신작 영화가 내년 크리스마스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에 있다고 합니다. 이는 <아바타 3>와 <소닉 3>가 개봉하는 2024년 12월 20일보다 일주일 늦은 날짜인데요, 조던 필 감독은 그가 앞서 발표했던 세 편의 영화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작품의 제목도, 장르도, 출연 배우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인데요, 그가 과연 어떤 작품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아올지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씨네랩이 들려드리는 오늘의 씨네뉴스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휴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따뜻한 봄날씨와 함께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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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2차 예고편 리뷰
+ 매트릭스1,매트릭스2,매트릭스3 결말포함
+ 매트릭스 스토리 해설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2]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매트릭스4 #매트릭스4예고편 #매트릭스_리저렉션《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 예고편 리뷰
+ 매트릭스1,매트릭스2,매트릭스3 결말포함
+ 매트릭스 스토리 해설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2]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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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방민아 배우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오랜만이다 의 #방민아 배우님 본격 탐구! ?♀️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오랜만이다]의 방민아 배우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8월 25일 대개봉!! ??
? 씨네픽쳐(스틸컷 퀴즈)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큐큐(Quote Quiz)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숏-퀴즈 절찬리 진행중!! ?
아이폰 다운로드 https://apps.apple.com/kr/app/%EC%94%...
안드로이드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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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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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숏버스 배우행> 메인 예고편
오늘도 배우들은 연기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옥상에선 내가 톱스타! <OK,탑스타> 녹색창에 떠야만 배우인가요? <31,내리다> 감독님, 제 메일은 언제 확인하실까요? <오디션>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나는 연기가 고프다 <언젠간 터질 거야> 오디션, 아빠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어 <클라운> 이들은 그토록 바라던 연기의 꿈을 펼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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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 미제라블> 2차 예고편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지방에서 전근 온 경감 스테판은 크리스, 그와다와 같은 순찰팀에 배정받는다.
증오와 불신이 난무하는 몽페르메유에서 스테판은 경찰들의 폭력에 충격을 받고
서커스단 아기 사자 도난사건을 해결하려다 예기치 못한 사건까지 발생하는데…
21세기의 ‘레 미제라블’, 끝나지 않은 분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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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토피아, 그리고 손쉬운 희망
장담한다. 디스토피아 장르는 앞으로 잘 팔릴 수밖에 없다고. 자극적인 소재를 버무리기 좋다는 것도 이유이긴 하나, 무엇보다 환경이 뒷받침해준다. 답답하고, 끔찍하고, 지긋지긋하고,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새로운 세상에 동화되고 싶은 마음. 평범한 주인공의 숨겨진 능력을 지켜보며 왠지 모를 기대감과 희망을 얻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 테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살아갈수록 살 만한 게 아닌지라 현실 외의 세상, 특히 더 끔찍한 환경의 세상을 자꾸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그런 곳에선 악바리로 살아갈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 영화의 무수한 주인공처럼. 이번에도 질문을 안고 <나이트 레이더스>를 보았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보고자 하는 대로 본다. 자신의 바람이나 욕망과 좀 더 맞닿은 지점에 눈길을 주고, 그 부분을 확장하여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 웹툰 등을 '해석'한 영상들도 같은 결이다. 타당한 이유와 논리적 근거가 덧붙여있다고 해서 사실인 건 아니니까.
관람자가 영화를 되새김질한다는 건 적어도 서너 번 이상 잘 만들었다고 인지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빠져드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는 영화도 있다. 애석하게도 이번 영화가 그랬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경험이 그러하듯 쓸모없는 건 없다. 감탄할 만한 요소가 없다고 해서 할 말이 없지도 않다. 어떤 영화든 특징이 있기 마련이다. <나이트 레이더스>는 그간 보았던 디스토피아 장르 영화와 겹치는 씬이나 설정들이 종종 보였다. 무슨 디스토피아 전문가는 아니라지만, 내 눈에 보였던 건 짚어내고자 한다.
짧은 줄거리
서기 2043년, 새로운 전쟁을 일으켜 대제국을 세우려는 국가 에머슨.인간병기를 양성하기 위해 모든 아이들을 납치하고,외딴 숲에서 칩거하던 '니스카'도 결국 사랑하는 딸을 빼앗긴다.10개월 후, 예기치 못한 비밀이 하나둘 드러나고,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던 '니스카'는딸을 되찾고자 국가의 중심부를 습격하기로 결심하는데…*아래부터 스포일러
시작은 숲이었다. 버석하게 마른나무들은 왠지 모르게 으스스했고, 그곳을 거니는 여자 아이의 모습도 심상찮았다. 그 애는 작은 새를 공격하려는 듯 손에 쥔 새총의 겨누다가 힘을 푼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말을 뱉으며 손을 뻗었다. 말보다는 주술이었다. 새는 조종당할 것처럼 굴다가 날개를 가볍게 움직이며 날아갔다.
처음부터 보여준 것이다. 여기 나오는 이 아이, '와디즈'는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그게 지금은 통하진 않았지만, 중요한 때에 힘이 드러날 것이란 것쯤은 명백히 보였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 대목에서 <유전>을 떠올렸다. 물론 기이하고도 서늘한 분위기는 다르긴 했으나, 비슷한 나이대의 주인공과 새, 그리고 능력의 복선이라는 점까지. <나이트 레이더스>도 스릴러 장르라는 게 한몫했으리라.
새를 잡지 않고 놓쳤다며, 와디즈의 엄마 '니스카'가 가볍게 핀잔을 준다.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씩씩대던 걸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덫에 걸린 와디즈의 다리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군가'에게 위치가 발각돼 캠핑카 같은 집을 태우고 둘은 어디론가 떠난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덜컥 본 터라 이쯤 보았을 때 느꼈다. 세계관 설명이 부족하다고. 대충 이 사람들이 도망자 신세라는 건 알겠는데 '하필' 이 상황에서 다리를 다친 건 꼭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한 것 같았다. 결과와 과정이 거꾸로라고 해야 할까.
인물에게 공감이 가면 근거는 이유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근거는 수단이 된다. 숲 속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사람들과 감시자들의 눈이 득시글한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 아직 뭐가 뭔지 파악이 덜 되었는데 장소가 휙 바뀌었다. 강가로.
이 장면에서는 <버드 박스>가 또렷이 생각났다. 산드라 블록-역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과 그의 아들 딸로 나오는 두 명의 아이들도 이 상황과 비슷했다. 물결을 타서 멀리 도망가는 중이고, 당장이라도 비가 올 듯 하늘은 우중충하고,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이함이 깔렸다.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어떤 느낌만 주었을 뿐.
배를 거꾸로 엎어두고서 걷다 보니, 폐허가 되었다 해도 무방한 마을이다. 니스카는 와디즈의 얼굴을 눈만 빼고 꽁꽁 숨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애쓴다는 건 와디즈의 존재를 다른 사람이 알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왜? 답은 곧 나온다.
그들이 어떤 집에 들어가려고 주변을 살피자마자 사람이 불쑥 나타난다. 잔뜩 경계한 니스카에게 남자는 안심하라는 듯 자신의 아들을 보여준다.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는 모양새다. 와디즈에겐 생전 처음 보는, 제 또래로 보이는 인간이었을 테다. 다만 영화에서는 그 새로운 상황을 주목해서 담지 않는다. 그 남자애 또한 일종의 수단으로 쓰였다.
4살이 된 아이들은 모두 아카데미로 보내진다.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는 볼 수 없다. 와디즈를 잃기 싫은 니스카가 단둘이서 숲을 전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몰랐다. 단순히 '앞으로 보지 못한다' 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강제로 끌려간 아이들이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날카로운 덫에 찔린 다리의 상흔을 약 없이 고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니스카는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아카데미는 좋은 곳'이라는, 오랜 친구의 해맑은 믿음을 믿기로 한다. 와디즈를 제 딸이라고 밝힐 수 없어 '미성년자가 쓰러져있다'는 신고만 툭 던지고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났다.
와디즈는 철창 같은 곳에서 묵묵히 나날을 보낸다. 아이들의 놀림과 비꼼을 무시하면서 건물의 구조를 몰래 파악해본다. 침대 틀 사이에 종이를 끼워두고 연필로 슬슬 끄적이는 와디즈. 꼭 이런 것 같았다. 능력 있는 자는 난관을 묵묵히 헤쳐나가니까 와디즈는 이곳을 탈출해야 하고, 그러려면 나가는 길을 알아야겠고, 적당한 컷 하나를 넣어야지.
언젠가 <월요일이 사라졌다>를 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차했는데, 이와 비슷한 감상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설명한다. 그런데 설명이 모호하다. 문장으로 쓸 순 있는데 이해할 수는 없다. 인물의 감정이나 상태, 혹은 생각과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아서겠다. 그저 인물들은 무언가를 하고, 사건은 생긴다. 알맹이는 없는 채로.
니스카가 아카데미의 실체를 깨닫고, 와디즈를 꺼내려할 때 만난 건 크리족 사람들이다. 영어보다 훨씬 낯선 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 특히 그들을 이끄는 여성은 자기 민족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 긍지가 보이는 말투와 표정이었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던 니스카와는 정반대의 생활양식이었다. 무리를 지어 유대감을 키우고, 서로 돕고 지키는 관계라는 건. 이들이 영화 끝자락에서 나오는 게 꽤나 아쉬웠다. 조금 더 일찍 니스카나 와디즈와 만났더라면. 감독의 의도인진 모르겠으나 그들 주변 사람은 마치 일회성 역할인 것처럼 쉽게 죽음을 맞이했다.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려는 찰나, 죽음을 맞이하는 허무함.
그래서 크리족과 완전히 대비된 것이긴 하다. 다만 대조를 극명히 보여줌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와디즈의 초능력으로 모든 사건이 종결되었던지라 다음 장면을 기대할 수 없도록 끝이 났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게임으로 만들면 훨씬 재밌겠다고. CG가 많이 나오니,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해도 자연스럽지 않을까. 영화에서는 와디즈와 니스카가 절반 비중이었는데, 와디즈의 시점에서 극이 전개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능력이 생기게 된 계기나 첫 발현, 엄마와 둘이 지내게 된 과정 등 사건 대신 흐름이 들어갈 여지가 많아질 듯하다.
혹은 사건을 섬세하게 다듬는 것도 방법이겠다. 척박하고 메마른 디스토피아의 배경과는 달리 주인공의 앞 날은 단순하기만 하다. 우리가 사는 현실보다도 가벼운 방식으로 끝을 낸 건 이 장르에서 가장 아쉬운 결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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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성스럽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죽음
막달라|Magdala
다미앙 매니블|Damien MANIVEL
France | 2022|78 min|DCP|Color|Fiction|15|Asian Premiere
시놉시스
예수의 죽음 이후 마리아 막달레나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마리아는 머리가 허옇게 센다. 열매를 따 먹고, 빗물을 마시고, 나무 사이에 누워 잠을 청한다. 그리고 숲 한가운데서 잃어버린 사랑을 떠올린다. 마리아는 그를 찾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프로그램 노트
마리아 막달라는 예수의 죽음 후 동굴과 숲 속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영화는 은둔한 막달라의 마지막 순간을 감독의 상상력으로 재연했다. 연기자의 움직임을 담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다미앙 매니블 감독은 전작에서도 협업했던 배우이자 댄서인 엘사(Elsa Wolliaston)에게 인간 사회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홀로 된 막달라의 마음을 따라가게 했다. 영화는 어떤 극적인 이야기나 절망을 나타내기보다 매우 단순하게 막달라의 걸음을 함께하며 연기자가 진실되게 느끼는 공간의 에너지와 자연의 반응을 충실히 묘사한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빚는 젊은 작가 감독 다미앙 매니블은 이 영화로 다시 한번 자신의 재능을 입증한다. (문성경)
성녀(聖女) 막달라 이야기
마리아 막달라(막달레나). 그녀는 호칭이 많다. 예수의 제자. 기독교의 성인(聖人). 예수가 부활했을 때 빈 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다른 제자에게 알린 인물. 오해도 많다.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죄지은 여인. 회개한 창녀. 47년 간 광야에서 지낸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와 혼동되기도 했다. 필립보, 토마스, 마리아 복음서 등 몇몇 위경 내용에 근거해 그녀가 예수의 연인이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널리 퍼졌다.
다미앙 매니블 감독의 <막달라>도 비슷하다. 위의 이미지가 전부 혼재한다. 막달라는 숲에서 고행 생활을 이어간다. 직접 만든 십자가를 놓지 않는 그녀는 환상 속에서 예수를 만난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의 발밑에서 우는 막달라. 예수와 몸을 섞는 막달라. 비가 오는 날 예수의 얼굴을 그리며 그리워하는 막달라. 스크린에 비친 그녀는 예수의 제자이자 연인이고 성녀(聖女)다.
인간 막달라의 죽음을 체험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막달라의 외관이다. 일반적으로 막달라는 어리고, 환희에 찬 백인 여성이다. 교회가 만든 그림이나 조각 속 그녀는 같은 이미지에 갇혀 있다. 영화 속 막달라는 다르다. 그녀는 노년의 흑인 여성이다. 죽음이 임박한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통념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이 든 막달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전달한다.
물론 <막달라>는 자기 의도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느리다. 그녀가 이슬 한 방울을 마시는 순간을 10초가 넘도록 보여준다. 클로즈업도 극단적이다. 러닝타임 절반은 그녀 얼굴로 가득하다. 움직임도 거의 없다. 막달라가 한 걸음을 내딛기도 어려울 정도로 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막달라>는 전통적인 성녀 막달라의 이미지를 깰 수 있다. 답답할 정도로 정적인 영화는 관음적이다. 주인공 삶의 단편을 훔쳐본다는 영화의 본분에 충실하다. 실제로 관객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막달라의 삶을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녀가 얼마나 예수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막달라는 성녀가 아니다. 마지막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막달라는 동굴에 누워 죽음을 기다린다. 천사는 촛불을 든 채 그녀가 죽기를 기다린다. 카메라는 막달라, 천사, 촛불을 천천히 오간다. 초가 녹을수록 막달라의 숨은 약해진다. 긴 시간 동안 연인을 그리워하며 고행을 이어간 한 여성의 삶을 요약하듯이. 마지막 숨을 뱉은 그녀의 손에는 작은 십자가가 있다. 막달라는 사랑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친 인간일 뿐이다.
성스럽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죽음
그래서 <막달라>는 이율배반적이다. 몇몇 요소는 '이 영화에 새로운 게 있나?' 싶은 의문을 자아낸다. 환상 속에 나타난 예수는 익숙하다. 다른 영화, 드라마, 그림 등에서 재현한 유대인 남성 그대로다. 임종을 지켜보는 천사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전통에 충실하다. 순진한 얼굴을 가진 백인 소년. 성경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모습대로다.
하지만 종교적인 인물을 묘사하되 결코 종교적이지 않다. 가톨릭 교회가 숨기려 하는 대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신비주의적 묘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예수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젊은 막달라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녀 얼굴은 희열로 가득하다. 그런데 신실한 성녀보다는 성적으로 흥분한 여성에 가깝다.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 "성녀 테레사의 법열(Ecstasy of St. Teresa)"처럼. 성적 오르가슴을 통해 종교적 신비경을 표현한다. 우연이 아니다. 신비주의적 전통에 따르면 신과 하나 되는 기쁨은 성적인 황홀경을 맛보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선 막달라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자기 심장을 도려내 하늘에 바치는 막달라. 예수가 죽은 뒤 한때 행복했던 기억만 간직한 채 숲 속을 헤매던 여성은 심장을 도려내는 고행 끝에 옛 연인을 만난다. 실제로 막달라는 죽은 뒤에야 예수를 만나러 승천할 수 있다. 즉, 영화는 한 번의 황홀경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신과 하나 되는 '합일' 경험을 다시 경험하려면 고통으로 가득한 수행을 견뎌야 하니까. 틀에서 벗어난 막달라의 죽음이 성스럽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이유다.
영화 <막달라>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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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기억, 기록, 기억
우리 모두가 너무 다른 것 같아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인류는 비슷한 보폭을 맞추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 과테말라에 대해 아는 건 마림바와 향기로운 커피밖에 없던 내가, 과테말라의 젊은 감독이 만든 <스파이의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때처럼. 이 영화는 <액트 오브 킬링>을 처음 보았을 때 못지않은 충격으로 내게 강렬하게 남았다.
영화는 한 노인이 법정에 들어서면서 시작한다. 비쩍 말랐고 거동이 불편하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형형하다. 노인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감독에게 촬영을 부탁해 둔 자리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해 내부에서 목격한 유일한 증인으로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이게 생의 마지막 증언이 될 것을 알았기에 촬영을 부탁했던 것일까? 증언 2주 후 그는 세상을 떠난다.
그는 젊어서 기자였다가, 내부무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그가 일하는 정부는 국민을 학살하는 정부였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부라 부를 수 있는가? 불행히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 "과테말라 내전"이라 부르는 1970년부터의 36년. 내전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말의 온도를 지나치게 낮춰 놓은 것이 아닌지.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뿌리에는 돈이 있다. 미국 유수의 기업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들이 토지를 대부분 소유한 상황에서, 좌파와 빈민, 토착민들의 사회적 불만이 쌓여 반군으로 조직되었다. 군사독재자를 필두로 한 과테말라 정부는 공식 군대 외에 특수군을 창설했다. 이들의 역할은 "반사회적" 인물 제거. 수많은 사람들이 납치와 살해를 당했다. 토착민들이 사는 산간지역이 토벌되고, 바른말을 하던 언론인들도 실종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정확하게 살해와 도륙의 의도를 갖고 진행되었다.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자, 법정에서 증언한 사람, 당시 내무부에서 일하던 사람, 엘리아스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말하자면 스파이였다. 군부독재 정부의 학살에 반대하는 사람임을 숨기고 들어가서, 필요한 정보를 취해 전달했다. 곧 살해당할 사람을 미리 파악하고 피신시키는 일도 있었다. 정보를 얻고 전달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익명성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루어져야 했다.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고 짓밟으며 즐거워하는 이들의 농담을 웃어넘겨야 하는 자리에서, 그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스스로를 "두더지 견습생"이라 부르면서.
때로는 잘했다 싶은 일이 있어도 거울 속 자신 외에는 함께 기뻐할 사람이 없고, 자신이 느끼는 압박감이나 괴로움을 토로할 상대도 많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 모든 것을 철저하게 의심하는 것. 단지 침묵하는 것. 군부독재 사회에서 사는 사람, 특히 스파이로 사는 사람에겐 제1의 생존 원칙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아나이스 타라세나 감독 본인도 아버지가 독재 정권을 피해 망명 생활을 했다고 한다. 법정 증언을 촬영할 때까지도 이를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지만, 관련 자료를 좇는 과정에서 점차 이 촬영은 영화로 발전해 간다. 1915년이나 1920년 영상도 남아있는 기록보관소에 1970년대 영상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언제나 증거를 파기하고 역사의 망각을 기다린다.
아나이스 타라세나 감독은 기록의 부재에 절망하는 대신, 그 부재마저 기록의 소재로 되살려냈다. 용기와 성실함으로 촘촘하게 채운 결과물이 이 영화다. 당시 엘리아스와 함께 했던 동료들의, 그때 살해당한 언론인의 자식의, 기록자료원 직원의 인터뷰를 차곡차곡 담는다. 끌려가는 사람들이, 항쟁을 외치는 사람들이, 생존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거기 남아 있다.
목숨을 걸고 남기는 작은 마크들. 사력을 다해 남기고 또 없애야 했던 정보의 조각들. 당시 엘리아스가 전달했던 정보도 그랬지만, 지금 카메라 앞에 인터뷰하는 사람들 또한 있는 힘껏 증언하고 있다. 가끔 갱단이 한 짓으로 보도되지만 실상은 그들의 소행이 아닌, "기억하고 지켜보는" 자들의 소행이 여전히 있다고 말을 아낀다. 여전히 익명으로 처리해야 안전한 이름들이 있는 것이다. 감독의 내레이션 또한 "여전히 죽음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라고 한다. 과테말라의 현대사에 무지한 사람이 들어도 위협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학살자가 여전히 살아있고, 21세기에도 목격되었으며, 도망자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나에게까지 생생한 현실적 공포로 와닿았다. 살아있다는 건, 내가 영화를 보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나타나는 것까지도 가능한 존재라는 뜻이니까. 이 공포는 아마도 과테말라와 무관한 내 것이라기보다는, 이 영화를 만들고 전하는 사람들이 느낀 공포가 전이된 것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과테말라 사람들은 여전히 그 시절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 "내전"이라는, 한껏 톤을 낮춘, '학살'이라는 거친 단어를 감춘, 용어 선택 또한 그런 공포에 기인한 것일 테다. 당시 엘리아스의 기록에는 물론, 지금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이들에게도 두려움이 생생하다. 그러나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싸웠다. 그렇게 공포 속에서도 침묵을 깨야 한다고, 엘리아스의 삶이, 또 나아가 이 영화가 말한다. 살아남아 증언하는 사람들이, 본인에게도 괴로운 기억을 필름으로 되감는 사람이, 기록하는 힘이 말한다.
도시 외곽에는 여전히 그 시절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은 차들이 쌓인 채로 녹슬어 썩어 가고 있다. 그 시절 사람들이 납치당하고, 고문당하고, 총에 맞고, 끌려갔던 곳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역사 속 녹슨 금속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파상풍 같은 아픔을 계속해서 남기고 있다. 기록이 하는 일은 아프더라도 그 자리를 되짚는 일이다. 우리가 여기 있었노라고. 여기 있다고. 도시에 고요하게 가려진 전쟁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살해당한 사람들이 잊히지 않도록.
신념을 가지고 죽은 이를 기억한다. 신념을, 살리는 힘을, 서로를. 그 신념이 누군가에겐 기적이 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나라를 사랑한다는 건, 그 나라의 명암을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시기가 끝내 아주 어둡게 끝나지 않도록 하는 어떤 힘을 사랑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테말라 현대사와 엘리아스라는 인물의 일대기에 경악하는 한편으로, 기억과 기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따금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연필 자국이 낫다" 같은 식의 말을 듣는다. 그럴 때 보면 기록은 기억의 반대편에 있는, 그래서 기억의 단점을 보완하는 도구인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역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억과 기록은 그렇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형태를 달리 하면서 몸피를 비트는, 거대하고 동일한 하나의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기록되고, 또 기록이 기억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이 몸피를 비틀 때마다 역사의 비늘은 다른 빛으로 빛난다. 살육에 대한 공포로 기억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침묵 뒤에, 살리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들의 침묵이 있었음을. 나아가 그 침묵을 스스로 깸으로써 무겁게 사회를 내리누르던 침묵을 아예 걷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엘리아스의 증언의 연장선인 동시에, 언젠가 새로운 기억이 될 새로운 기록이다. 침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한 겹 더 아로새기는 작업이다.
학살은 늘 피해자 혹은 가해자를 주목하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억까지 눌러 담아, 기록은 더욱 풍성해지고 망각과 두려움에 맞서는 힘은 그만큼 강해진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는 아직 과테말라에서 일반 상영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시사회만 2회 진행했고, 해외 영화제 상영으로 안정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 다음 6월 중에 4번의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있다고. 그리고 다음 날, 국제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사이 또 한 걸음이 추가된 이 영화의 여정을, 언젠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될 날을 기대한다. 그때는 더욱 풍성해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전주국제영화제 남은 상영 일정
▶ 5월 5일 20:30 CGV전주고사 7관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일부 온라인 상영작도 있어요. 어디 계시더라도 우리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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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들의 욕망으로 뽑아든 두 남자의 칼끝에 놓인 한 여인의 진실
지난 9월에 열린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의심할 여지없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근작 중 최고라는 외신들의 호평들을 받으며, 자신 또한 인터뷰를 통해 “중요한 문제를 조명하는 매우 도전적인 작품으로 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자평을 남겨 수많은 팬들을 설레게 했던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리뷰입니다. 다음 주 각종 매체에서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라 부르짖는 〈듄〉과 함께 개봉이 잡혀 또 하나의 명작으로, 두 편 모두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어 어차피 개인 취향에 따라 먼저 볼 것이었기에 주말을 맞아 열린 시사회를 통해 선관람을 하고 왔습니다. 역시 비주얼리스트라는 거장의 칭호에 걸맞은 훌륭한 영상미와 할리우드 명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물론,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확고해 긴 시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왜 호평을 받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어떤 이야기들이 152분을 채워줬는지 나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아웅 얄미운..수염 다 뽑고 싶어진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출연진, 줄거리 기본 정보
저는 결백합니다
1386년 12월 29일, 한 여인을 비추고 두 기사가 많은 관중이 기다리고 있는 결투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비춥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과거... 수많은 전장에 참여해 승리를 통해 나라에 충성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 둘도 없는 친구 장과 자크, 이들의 우정에 금이 간 것은 영주 피에르의 자크를 향한 편협적인 총애로 시작됩니다. 대대로 명성을 이어온 가문의 자존심은 그를 옥죄어왔고 부와 명성과 외모까지 다 가진 그에 대한 질투는 그들의 우정만큼이나 커져갔던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전장에 나갔다 돌아오니 아내 마르그리트가 자크에게 겁탈을 당했단 말을 듣게 되고 이제는 그는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전투 재판을 신청합니다.
예고편│ Trailer
https://tv.naver.com/v/22728549
영제 : The Last Duel│감독 : 리들리 스콧│원작 : 2004년 출간한 에릭 제이거(Eric Jager)의 동명 실화 소설│각본 : 맷 데이먼, 벤 애플렉, 니콜 홀로프세너│출연진 : 아담 드라이버, 조디 코머,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외 多│장르 : 액션, 드라마, 역사│상영 시간 : 152분│개봉일 : 2021년 10월 20일│국가 : 미국, 영국│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평점 : 기자·평론가 6.0, 로톤 토마토 신선도 86% 팝콘 82%, IMDB 7.7, 메타 스코어 68점│시청 가능 서비스 : 10월 20일 개봉 예정
중세 남성상이 얼마나 최악인지 느껴지는 두 사람
반복되는 플롯을 탄탄하게 만드는 배우들
둘도 없는 친구에서 경쟁자로 이어서 본인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생사결을 펼치는 두 인물 중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활동을 통해 다양한 많은 모습을 선보이며 현재 할리우드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아담 드라이버가 겁탈이 아니라 사랑이라 말하는 자크를, 시기와 질투에 더불어 무너진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 목숨을 내걸은 장에 제이슨 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는 맷 데이먼이 맡았습니다. 각 파트의 분리된 시점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왜곡되고 이기적인 기억을 가졌는지 세세히 보여줌으로써 반복되는 사건 속 긴장감을 유지시켜줍니다.
정말 최선,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사건에서 보이는 하나의 시선, 마르그리트 시점은 이 작품의 백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보여주었던 두 남자의 추한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그들이 얼마나 옹졸하고 편협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밝힙니다. 남자들의 시선으로 보았던 진실은 자신들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한 허울 좋은 거짓에 불과했고 그 이면에 남은 것은 상처받은 여인만 있는 것이죠. 이러한 심적 변화를 보여주는 조디 코머의 연기는 드라마 〈킬링 이브〉 시리즈나 〈프리 가이〉의 이미지를 날려버리기 충분했고, 마지막 눈물의 의미까지 관객들의 공감을 사며 몰입도를 높여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캐스팅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됩니다.
죄다 말이 다르다..그러나 truth...파트로 보여준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평점
하나의 사건, 세 사람의 시선 그리고 진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풀어가는 구성 때문에 국내 대부분의 기사에서 1950년 일본 영화 〈라쇼몽〉을 언급하는데 너무 고전이라 가까운 시점의 영화를 들자면, 〈영웅〉, 〈헤이트풀8〉, 〈밴티지 포인트〉, 〈커리지 언더 파이어〉 등과 유사한 스타일이라 보시면 됩니다. 세 주인공이 연관된 사건의 각기 다른 시점에서 각자를 대변하는 스토리를 풀어가면서 마지막 클라이맥스인 결투까지 분위기를 고조시켜주죠. 물론,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뜩이나 긴 러닝타임을 지루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각 플롯마다 다른 해석을 넣어 같음에도 다른 새로운 사실과 관점들이 계속해서 드러나 보는 이의 흥미를 유지시켜줍니다. 이 부분에서 불필요한 장면들은 생략하고 각 인물의 시선이 닿는 디테일 포인트만 남김으로써 클라이맥스로 향해가며 점점 고조되는 세 인물들의 감정들을 통해 서서히 감춰둔 진실과 메시지를 밝힙니다.
시대적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여성의 서사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고려 말기가 배경인 14세기 중세 시대의 뒤틀린 시대상을 통해 현재 사회의 미투 운동을 떠올리게 하며 지금도 존재하는 성범죄 피해자의 침묵과 진실 사이에서의 딜레마, 이들의 상처를 더욱더 가혹하게 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기가 막히게 묘사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제의식을 완벽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디 코머가 보여준 마르그리트의 말과 행동에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 보이죠. 단편적으로 자신의 소유물인 애마와 크로스 오버시키는 장면들을 통해 그 당시의 여성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관점이 어디까지 내려와 있었는지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용기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줍니다.
이번달 퍼펙트 스틸과 다음달 구찌로 또 만나요!
이제 여든을 훌쩍 넘었지만 ‘장르의 마술사’, ‘비주얼리스트’라는 칭호에 걸맞게 거장 리들리 스콧은 혹독한 겨울의 황량함을 통해 인물들 사이의 냉랭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훌륭한 영상미로 선보이며, 그만의 색을 도드라지게 만듭니다. 전작들의 스펙터클함과는 다르게 대부분 대화로 구성된 드라마지만, 화려한 중세 의상과 감정이 도드라지는 클로즈업이나 웅장한 세트장의 모습들은 역시라는 생각이 들고, 특히 마지막 20분간의 결투는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엔딩을 통해 그가 〈델마와 루이스〉라는 기막힌 여성 서사를 그렸던 감독이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상당히 긴 러닝타임 때문에 작품이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라고는 쉽게 말할 수 없겠지만, 분명 그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충분히 극장을 찾을 값어치가 있을 듯하네요.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이상 글쓰는 식팔이 모모파로였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한 줄 평 : 자신들의 욕망으로 뽑아든 두 남자의 칼끝에 놓인 한 여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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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할 텐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다 너머, 인간이 사는 육지 세상이 궁금한 인어공주 '에리얼'(할리 베일리).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바다 위로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 난파된 배에서 '에릭 왕자'(조나 하워킹)의 목숨을 구한다. 에리얼은 첫눈에 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이자 바다의 왕 '트라이튼'(하비에르 바르뎀)은 절대로 바다 위 인간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린다. 이에 에리얼은 바다 마녀 '울슐라'(멜리사 맥카시)와 거래해 목소리를 잃는 대가로 다리를 얻어 육지로 향하고, 새로운 운명을 찾아 나선다.
모두를 실망시킨 <인어공주> 재해석
2010년대 초중반부터 디즈니는 자사 애니메이션 영화를 실사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흥행작을 만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글북>, <알라딘>,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는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하지만 논란이 가장 많은 영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인어공주>다.
<인어공주>는 제작 단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원작 파괴가 문제였다. 주연을 맡은 할리 베일리는 애니메이션 원작 속 에리얼과 달리 흑인이었다. 에리얼의 빨간 머리도 흑인 특유의 드레드 머리로 바뀌었다. 한쪽에서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재해석이라고 옹호했다. 반대쪽에서는 원작 파괴라고 비판했다. 에리얼을 닮지 않은 배우가 출연해 리메이크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영화를 보니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일단 흑인 인어공주는 나름 자연스럽다. 덴마크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삼은 역사를 반영해 배경을 카리브 해로 바꿨기 때문이다. 에리얼을 닮은 외모는 아니지만, 할리 베일리의 연기와 노래도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원작 설정을 재해석하고 변경한 이유를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당위와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을 외면한다. 그렇게 월트 디즈니 컴퍼니 100주년 기념작 <인어공주>는 새로운 해석을 기대한 관객도, 원작의 실사화를 바란 관객도 모두 실망시킨다.
공허한 재해석
새로운 <인어공주>가 힘을 준 대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양성이다. 에리얼과 에릭의 로맨스는 소통과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이야기다. 영화는 에리얼과 트라이튼의 갈등을 통해 다른 문화를 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에릭 왕자의 서사를 더해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그와 '셀리나 여왕'(노마 두메즈웨니)의 대립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에리얼과 에릭의 로맨스는 동병상련에서 시작된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무장한 부모는 자녀를 억압한다. 트라이튼은 인간이, 셀리나는 바다의 신과 인어가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두 주인공은 그들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동경한다. 다른 문화를 궁금해하고 기꺼이 수용하려 한다. 두려움 없는 그들은 서로의 세상을 배우면서 사랑을 싹 틔운다. 더 나아가 완고한 부모까지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인어공주>의 재해석은 공허하다. 원작과 다른 이야기가 두드러지지 않아서 메시지가 밋밋하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트라이튼 왕은 인간이 에리얼의 엄마를 죽였다고 암시한다. 인간 왕국의 왕도 바다 때문에 죽었고, 에릭 왕자도 표류하다가 구조됐다고 언급된다. 영화는 육지와 바다 사람이 서로 배타적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갈등을 극복하는 로맨스를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이 너무 평이하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대사 몇 마디로 그친다. 그러다 보니 추가된 서사는 뇌리를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전반적인 흐름에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국 영화는 인어와 인간의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큰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과 인어가 화해하는 결말도 그저 동화다운 교훈을 주는 결말에 그치고 만다.
흑인과 카리브해의 역사
더구나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소재를 손에 들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흑인 인어공주를 비롯해 카리브 해라는 공간적 배경과 드레드 머리는 손쉽게 소비된다. 이들을 이용해 다양성과 관련된 사회적, 역사적 문제를 깊숙이 살펴보려는 시도는 없다. 그저 관객의 상상력과 지식에 맡길 따름이다.
카리브해는 역사적 맥락이 깃든 장소다.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이 <인어공주>의 원작 동화를 썼고, 덴마크는 제국주의 시대에 카리브해 일대를 식민지로 삼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 중심지인 '샬럿아말리에이'만 해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5세의 왕비인 헤센카셀의 '샤를로트 아말리에'로부터 이름이 유래했다. 작중 에릭 왕자가 유럽과 교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총리를 비롯한 지배층 대다수가 백인으로 묘사되는 이유다.
이때 덴마크와 카리브해, 그리고 흑인 주인공이라는 조합은 곧장 한 가지 역사적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노예무역이다. 구체적으로는 아프리카, 유럽 열강,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삼각 노예무역이다. 덴마크는 영국, 포르투갈 등과 함께 노예무역 당사자 중 하나였다. 카리브해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의 종착지 중 하나였다. 19세기에 법적으로 금지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인어공주>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제거한다. 흑인 노예가 수입되는 시대에 흑인 여왕은 백인 왕국을 통치하고, 백인 왕자는 흑인 인어공주와 결혼한다. 시대상을 고려하면 어색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흑인 인어공주를 등장시키고 배경을 카리브 해로 변경해 놓고도 마치 제작진이 그 함의나 맥락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도 보인다. 영화가 흑인이라는 키워드를 고민 없이 편의적으로 활용하는 듯한 인상이 남는다.
드레드 머리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이 아니다
이에 더해 <인어공주>는 에리얼의 머리도 표피적으로 활용한다. 사실 드레드 머리는 단순한 헤어 스타일이 아니다. 아메리카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에게 아프리카 특유의 헤어 스타일은 부끄러운 대상이었다. 드레드(Dread)라는 용어 자체가 '끔찍하다(Dreadful)'는 단어에서 비롯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약품을 동원해 머리를 피다가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흑인 인권 운동이 힘을 가지면서 흑인들은 자기 본연의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드레드 스타일도 이맘때 퍼져 나갔다. 즉, 드레드 머리는 백인 중심 사회에 동화, 통합되지 않겠다는 흑인 사회의 의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상징이다. 동시에 아메리카 흑인들의 아픈 역사를 함축한 상징이다. 따라서 카리브해, 흑인 인어공주, 드레드 머리라는 헤어 스타일이라는 소재를 종합하면 새로운 인어공주는 흑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강력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에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의미심장한 소재를 그저 표피적인 의도로 활용할 뿐이다.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목적으로. 포크 사용법을 모르는 에리얼이 포크로 드레드 머리를 다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신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안전한 스토리에 의존한다. 캐스팅 논란이 무색할 정도다. 흑인 인권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을 영화에 녹여낸 <블랙팬서>와 비교해 보면 새로운 <인어공주>는 더 안일해 보인다. 칼을 뽑았는데, 무도 자르지 못한 셈이다.
큰 도움은 되지 않는 완성도
심지어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우선 <라이온 킹>과 비슷한 문제점이 있다. 동물을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심지어 이번에는 포유류가 아닌 해양 생물이라서 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화면도 어둡다. 실사 영화로 구현된 어두운 바닷속은 광원이 부족해서 어둡다. 장면을 부각할 조명도 마땅치 않다. 결국 흑인인 에리얼은 어두운 배경 속에 갇혀 버린다. 그녀를 지켜보기가 어렵다. 할리 베일리에 맞추어 연출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대목이다.
그래도 디즈니 영화로서 최소한의 재미는 갖췄다. 에리얼과 에릭이 거대해진 울슐라와 맞서 싸우는 후반부 해상 전투신은 인상적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경력자답게 롭 마샬 감독이 클라이맥스에 걸맞은 스펙터클을 그려냈다.
울슐라와 트라이톤 왕의 역할도 지대하다.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멜리사 맥카시는 선입견을 제대로 깼다. 오빠 트라이톤의 권력을 갈망하고 복수를 꿈꾸는 마녀 울슐라라의 광기와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준다. 하비에르 바르뎀도 무게를 잡아준다. 그의 연기 덕분에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의 슬픔과 외로움은 극대화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디즈니
<인어공주> 애니메이션 영화는 디즈니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20세기 중후반 침체기를 겪은 디즈니가 새로운 전성기인 '디즈니 르네상스'를 알린 시작점이 <인어공주>였기 때문이다. 이는 디즈니가 창사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 <인어공주>를 공개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인어공주>는 그 상징성과 중요도에 미치지 못했다. 과감하지 않은 사회적 메시지는 원작의 도전 정신에 미치지 못한다. 1989년에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능동적인 여성상에 비하면 이번 영화가 무슨 메시지를 담았는지 의문스럽다. 만듦새와 볼거리 역시 현재 디즈니의 위상과 자본력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그 결과 100주년을 맞이해 더 화려하고 세밀해진 디즈니 성의 미래는 마냥 밝지 않아 보인다.
Dreadful 끔찍한
충분한 고민 없는 재해석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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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차 -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내 모든 걸 버리고
*2017년도 영화 칼럼으로 발행한 글을 각색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 원고를 쓰기 전, 생각의 끈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애써 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금세 주의가 분산된다. 나이가 들수록 한가지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지는 건, 그럴 여유가 사라짐과 동시에, 삶에 대한 책임이 막중해져서 그런 것인 듯 싶다. 누군가 나에게 싱가포르에 와서 직장 생활 하는 자신이 비자와 연계된 이유로 마치 ‘생계형 직장인’ 같다는 말을 했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이 안정될 수록 더 갈망하게 되는 것이 늘어난다. 영주권 발급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최초 5년짜리 영주권이 내 삶에 시사 하는 바도 이리 큰데 하면서, 나는 2012년도 영화 화차(火車)를 생각해 냈다. 최근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도 불륜이라는 스캔들 때문에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는, 영화 ‘아가씨’의 수려하고 여리여리하고 아름다운 이 배우가 임팩트 있는 배우로서 탈바꿈된 영화는 화차가 아니었을까.
영화 속에서 첫 남편과 식당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선영의 전 모습.
그녀에게는 아버지를 죽게 해 달라는 그래서 빚을 청산해 달라는 간절한 소망과 신앙이 있었다.
화차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수레 위에 총을 수십 개 장치하여 이동이 손쉽고, 한 번에 여러 개의 총을 쏠 수 있게 한 조선시대 무기’라고 검색이 되지만, 일본에서는 ‘영화의 제목인 '화차'는 불 화(火), 수레 차(車)로, '지옥으로 가는 불수레'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화차는 헤이안 시대 일본 전설 속의 수레라고 하며,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 불 수레이며 화차에 한번 올라탄 사람은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다고 한다. 이 무시무시한 제목 속 여주인 경선(김민희 분)은 왜 자신이 화차에 올라타 운명을 재촉해야 했는지 안타깝도록 절실하게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면 5년 전에 본 영화라서 모든 스토리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경선이 자신의 빚과 과거를 모두 끊어내기 위해 선영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 친구가 되고,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새 삶을 살아내고자 한다. 수의사였던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서, 펜션에서 술을 마시고 친구의 목을 졸라 살해하며 울부짖는 경선. 이 영화에서 김민희의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슬프고, 그로테스크하고, 단죄해야 하지만 이해는 가는 그런 역할을 잘 소화했다.
그녀는 운다. 친구를 살해하고 새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기쁨에 또 웃는다.
영화의 도입부는 경선(선영의 삶을 빼앗은) 이 약혼자인 문호 (이선균 분)과 결혼 한 달을 앞두고 시부모님께 인사 가는 길에서 시작된다. 빗속에서 휴게소에 들렀으나 그녀는 돌연 사라져 버리고, 문호는 연유를 알 수 없이 그녀의 뒤를 쫓는다. 사촌 형인 형사에게 부탁해 찾아낸 그녀의 과거는 놀랍다. 원래 경선은 결혼한 적이 있었고, 남편은 건실하게 식당을 운영했고 그녀도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빚 때문에 사채업자가 들이닥쳐 생활이 망가져 버린다. 그녀는 그런 아버지를 죽게 해 달라고, 빚을 탕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작은 빚에서 시작된 사채가 커진 것을 막지 못해, 그리고 또 이어진 빚을 막지 못해 괴로워하던 그녀는, 가족이 없는 선영이라는 수의사와 만난다. 그리고는 위의 전개이다. 피칠갑을 하고 속옷 차림으로 진짜 선영을 살해하고 선영으로 거듭난 경선. 그녀는 죄책감에 울부짖는 것인지 안도감에 미소 짓는 것인지 모를 새벽을 보내고, 시체를 유기한 다음 선영의 동물병원에서 일하다가 문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문호와 선영. 선영의 과거에 대한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문호는 선영(경선)을 사랑했고,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너로 살라며 도망치라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된 기차역에서 선영은 읊조린다.
“나?? 나 강선영 아니야..... 나 사람 아니야.. 쓰레기야... 내 곁엔 아무도 없었어...”
그리고 타인의 모든 것을 빼앗은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자신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라고 자위한다. 일본에서의 원작이 1992년에 써진 것을 감안하면 타인의 ‘명의 도용’이라는 범죄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가 쓴 다른 소설들을 읽어보면 일본 내의 사회적 이슈를 모티브로 인간의 삶을 인간이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이 영화를 한국의 영화관에서 혼자 봤던 (왜 '혼자였다는' 사실은 잊히지 않는지) 2012년 3월은 내 인생에서도 정말 추운 겨울이었다. 동트지 않은 새벽이 가장 춥다고 직장을 잠시 쉬던 그때 나는 참 많은 방황을 했더랬다. 건강 차 휴직한다고는 했으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휴식이 온전히 휴식이 될 수 없었다. 영화 속 경선에 나를 이입한 건 아니었지만,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생기는 이러한 사회의 범죄가, 한국에서도 점점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은 해 봤었다.
미야베 미유키 책 중에 재밌게 읽었던 낙원, 그리고 모방범. 사진은 네이버에서 찾았다.
그때 썸 타던 남자친구 집에 있던 책들을 빌려와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도 정말 밤새서 읽었다.
그 이후의 한국 사회는 (지금은 내가 오히려 가끔 가는 곳이 되어 버렸기에 변화를 더 빨리 감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보다 더 급격히 일본화되어가고 있다. 1인 가구의 확산화, 전통적 가족 형태의 붕괴, 사회활동 이외 취미활동의 다변화, 반려동물과 식물 추구, 졸혼, 선택적 결혼, 묻지 마 범죄, 그리고 사회적 범죄, 성매매, 인신매매, 돈을 위해서 라면 희생되는 인권. 한국의 사회적 안전망이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악함과 잔학성을 막을 정도로 촘촘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점차 더 촘촘하게 변해가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학창 시절 일본의 문화를 동경해서 일본어를 배웠던 나는,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것들을 알 즈음 한국인의 정이나 따뜻함, 융통성 등을 더 높이 사게 되었다. 한국은 아직 꿈틀대는 날 것의 생동감이 있다. 위에서 아래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 생명의 샘이 솟아오른다. 민초의 힘은 여론을 형성하며 특권층을 제재하는 힘이 되어 왔다. 세계를 살펴봐도 이런 나라는 흔치 않다. 코로나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회의 모럴(morale)적 제재가 되기를 바라본다. 작금의 나는 한국의 문화나 식품은 환영받지만,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사람들에게 배척 받는 외국인으로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 이 원고를 썼던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
온전히 나 자신으로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고,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경제적으로 착취당했던 것도 어느 정도는 벗어났다. 돈이라는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고 하는 건 가진 자들의 이야기일도 몰라. 잘 살다가도 한 순간 삐끗하면 절벽 낭떠러지로 내몰릴 만큼, 세상은 무서운 곳이다. 경선처럼 자신의 모든 걸 지우고서라도 빚에서 벗어나고 싶은 젊은이들이 많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 볼뿐. 힘들어도 범죄는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 볼뿐. 이런 선한 마음들이 모여 선한 영향력을 내기를 바라볼 뿐,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씁쓸한 밤이다.
하지만 일본 문학 공부하던 그 시절 내가 읽은 소설의 탑은 바로 이것, '살인의 문' 원판.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은 문고본. 한 번쯤 살면서 생각해 볼 화와 살인의 욕망에 대해 다뤘다. 너무 그럴싸해서 나의 욕망도 함께 얹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고 싶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아일린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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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2]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매트릭스4 #매트릭스4예고편 #매트릭스_리저렉션《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 예고편 리뷰
+ 매트릭스1,매트릭스2,매트릭스3 결말포함
+ 매트릭스 스토리 해설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2]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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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방민아 배우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오랜만이다 의 #방민아 배우님 본격 탐구! ?♀️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오랜만이다]의 방민아 배우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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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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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숏버스 배우행> 메인 예고편
오늘도 배우들은 연기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옥상에선 내가 톱스타! <OK,탑스타> 녹색창에 떠야만 배우인가요? <31,내리다> 감독님, 제 메일은 언제 확인하실까요? <오디션>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나는 연기가 고프다 <언젠간 터질 거야> 오디션, 아빠가 없어도 잘 할 수 있어 <클라운> 이들은 그토록 바라던 연기의 꿈을 펼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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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 미제라블> 2차 예고편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지방에서 전근 온 경감 스테판은 크리스, 그와다와 같은 순찰팀에 배정받는다.
증오와 불신이 난무하는 몽페르메유에서 스테판은 경찰들의 폭력에 충격을 받고
서커스단 아기 사자 도난사건을 해결하려다 예기치 못한 사건까지 발생하는데…
21세기의 ‘레 미제라블’, 끝나지 않은 분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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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토피아, 그리고 손쉬운 희망
장담한다. 디스토피아 장르는 앞으로 잘 팔릴 수밖에 없다고. 자극적인 소재를 버무리기 좋다는 것도 이유이긴 하나, 무엇보다 환경이 뒷받침해준다. 답답하고, 끔찍하고, 지긋지긋하고,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새로운 세상에 동화되고 싶은 마음. 평범한 주인공의 숨겨진 능력을 지켜보며 왠지 모를 기대감과 희망을 얻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 테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살아갈수록 살 만한 게 아닌지라 현실 외의 세상, 특히 더 끔찍한 환경의 세상을 자꾸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그런 곳에선 악바리로 살아갈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 영화의 무수한 주인공처럼. 이번에도 질문을 안고 <나이트 레이더스>를 보았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보고자 하는 대로 본다. 자신의 바람이나 욕망과 좀 더 맞닿은 지점에 눈길을 주고, 그 부분을 확장하여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 웹툰 등을 '해석'한 영상들도 같은 결이다. 타당한 이유와 논리적 근거가 덧붙여있다고 해서 사실인 건 아니니까.
관람자가 영화를 되새김질한다는 건 적어도 서너 번 이상 잘 만들었다고 인지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빠져드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는 영화도 있다. 애석하게도 이번 영화가 그랬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경험이 그러하듯 쓸모없는 건 없다. 감탄할 만한 요소가 없다고 해서 할 말이 없지도 않다. 어떤 영화든 특징이 있기 마련이다. <나이트 레이더스>는 그간 보았던 디스토피아 장르 영화와 겹치는 씬이나 설정들이 종종 보였다. 무슨 디스토피아 전문가는 아니라지만, 내 눈에 보였던 건 짚어내고자 한다.
짧은 줄거리
서기 2043년, 새로운 전쟁을 일으켜 대제국을 세우려는 국가 에머슨.인간병기를 양성하기 위해 모든 아이들을 납치하고,외딴 숲에서 칩거하던 '니스카'도 결국 사랑하는 딸을 빼앗긴다.10개월 후, 예기치 못한 비밀이 하나둘 드러나고,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던 '니스카'는딸을 되찾고자 국가의 중심부를 습격하기로 결심하는데…*아래부터 스포일러
시작은 숲이었다. 버석하게 마른나무들은 왠지 모르게 으스스했고, 그곳을 거니는 여자 아이의 모습도 심상찮았다. 그 애는 작은 새를 공격하려는 듯 손에 쥔 새총의 겨누다가 힘을 푼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말을 뱉으며 손을 뻗었다. 말보다는 주술이었다. 새는 조종당할 것처럼 굴다가 날개를 가볍게 움직이며 날아갔다.
처음부터 보여준 것이다. 여기 나오는 이 아이, '와디즈'는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그게 지금은 통하진 않았지만, 중요한 때에 힘이 드러날 것이란 것쯤은 명백히 보였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 대목에서 <유전>을 떠올렸다. 물론 기이하고도 서늘한 분위기는 다르긴 했으나, 비슷한 나이대의 주인공과 새, 그리고 능력의 복선이라는 점까지. <나이트 레이더스>도 스릴러 장르라는 게 한몫했으리라.
새를 잡지 않고 놓쳤다며, 와디즈의 엄마 '니스카'가 가볍게 핀잔을 준다.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씩씩대던 걸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덫에 걸린 와디즈의 다리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군가'에게 위치가 발각돼 캠핑카 같은 집을 태우고 둘은 어디론가 떠난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덜컥 본 터라 이쯤 보았을 때 느꼈다. 세계관 설명이 부족하다고. 대충 이 사람들이 도망자 신세라는 건 알겠는데 '하필' 이 상황에서 다리를 다친 건 꼭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한 것 같았다. 결과와 과정이 거꾸로라고 해야 할까.
인물에게 공감이 가면 근거는 이유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근거는 수단이 된다. 숲 속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사람들과 감시자들의 눈이 득시글한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 아직 뭐가 뭔지 파악이 덜 되었는데 장소가 휙 바뀌었다. 강가로.
이 장면에서는 <버드 박스>가 또렷이 생각났다. 산드라 블록-역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과 그의 아들 딸로 나오는 두 명의 아이들도 이 상황과 비슷했다. 물결을 타서 멀리 도망가는 중이고, 당장이라도 비가 올 듯 하늘은 우중충하고,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이함이 깔렸다.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어떤 느낌만 주었을 뿐.
배를 거꾸로 엎어두고서 걷다 보니, 폐허가 되었다 해도 무방한 마을이다. 니스카는 와디즈의 얼굴을 눈만 빼고 꽁꽁 숨긴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애쓴다는 건 와디즈의 존재를 다른 사람이 알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왜? 답은 곧 나온다.
그들이 어떤 집에 들어가려고 주변을 살피자마자 사람이 불쑥 나타난다. 잔뜩 경계한 니스카에게 남자는 안심하라는 듯 자신의 아들을 보여준다.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는 모양새다. 와디즈에겐 생전 처음 보는, 제 또래로 보이는 인간이었을 테다. 다만 영화에서는 그 새로운 상황을 주목해서 담지 않는다. 그 남자애 또한 일종의 수단으로 쓰였다.
4살이 된 아이들은 모두 아카데미로 보내진다.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는 볼 수 없다. 와디즈를 잃기 싫은 니스카가 단둘이서 숲을 전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몰랐다. 단순히 '앞으로 보지 못한다' 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강제로 끌려간 아이들이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날카로운 덫에 찔린 다리의 상흔을 약 없이 고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니스카는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아카데미는 좋은 곳'이라는, 오랜 친구의 해맑은 믿음을 믿기로 한다. 와디즈를 제 딸이라고 밝힐 수 없어 '미성년자가 쓰러져있다'는 신고만 툭 던지고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났다.
와디즈는 철창 같은 곳에서 묵묵히 나날을 보낸다. 아이들의 놀림과 비꼼을 무시하면서 건물의 구조를 몰래 파악해본다. 침대 틀 사이에 종이를 끼워두고 연필로 슬슬 끄적이는 와디즈. 꼭 이런 것 같았다. 능력 있는 자는 난관을 묵묵히 헤쳐나가니까 와디즈는 이곳을 탈출해야 하고, 그러려면 나가는 길을 알아야겠고, 적당한 컷 하나를 넣어야지.
언젠가 <월요일이 사라졌다>를 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차했는데, 이와 비슷한 감상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설명한다. 그런데 설명이 모호하다. 문장으로 쓸 순 있는데 이해할 수는 없다. 인물의 감정이나 상태, 혹은 생각과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아서겠다. 그저 인물들은 무언가를 하고, 사건은 생긴다. 알맹이는 없는 채로.
니스카가 아카데미의 실체를 깨닫고, 와디즈를 꺼내려할 때 만난 건 크리족 사람들이다. 영어보다 훨씬 낯선 언어로 대화하는 사람들. 특히 그들을 이끄는 여성은 자기 민족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 긍지가 보이는 말투와 표정이었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던 니스카와는 정반대의 생활양식이었다. 무리를 지어 유대감을 키우고, 서로 돕고 지키는 관계라는 건. 이들이 영화 끝자락에서 나오는 게 꽤나 아쉬웠다. 조금 더 일찍 니스카나 와디즈와 만났더라면. 감독의 의도인진 모르겠으나 그들 주변 사람은 마치 일회성 역할인 것처럼 쉽게 죽음을 맞이했다.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려는 찰나, 죽음을 맞이하는 허무함.
그래서 크리족과 완전히 대비된 것이긴 하다. 다만 대조를 극명히 보여줌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와디즈의 초능력으로 모든 사건이 종결되었던지라 다음 장면을 기대할 수 없도록 끝이 났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게임으로 만들면 훨씬 재밌겠다고. CG가 많이 나오니,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해도 자연스럽지 않을까. 영화에서는 와디즈와 니스카가 절반 비중이었는데, 와디즈의 시점에서 극이 전개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능력이 생기게 된 계기나 첫 발현, 엄마와 둘이 지내게 된 과정 등 사건 대신 흐름이 들어갈 여지가 많아질 듯하다.
혹은 사건을 섬세하게 다듬는 것도 방법이겠다. 척박하고 메마른 디스토피아의 배경과는 달리 주인공의 앞 날은 단순하기만 하다. 우리가 사는 현실보다도 가벼운 방식으로 끝을 낸 건 이 장르에서 가장 아쉬운 결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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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성스럽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죽음
막달라|Magdala
다미앙 매니블|Damien MANIVEL
France | 2022|78 min|DCP|Color|Fiction|15|Asian Premiere
시놉시스
예수의 죽음 이후 마리아 막달레나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마리아는 머리가 허옇게 센다. 열매를 따 먹고, 빗물을 마시고, 나무 사이에 누워 잠을 청한다. 그리고 숲 한가운데서 잃어버린 사랑을 떠올린다. 마리아는 그를 찾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프로그램 노트
마리아 막달라는 예수의 죽음 후 동굴과 숲 속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이 영화는 은둔한 막달라의 마지막 순간을 감독의 상상력으로 재연했다. 연기자의 움직임을 담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다미앙 매니블 감독은 전작에서도 협업했던 배우이자 댄서인 엘사(Elsa Wolliaston)에게 인간 사회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홀로 된 막달라의 마음을 따라가게 했다. 영화는 어떤 극적인 이야기나 절망을 나타내기보다 매우 단순하게 막달라의 걸음을 함께하며 연기자가 진실되게 느끼는 공간의 에너지와 자연의 반응을 충실히 묘사한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빚는 젊은 작가 감독 다미앙 매니블은 이 영화로 다시 한번 자신의 재능을 입증한다. (문성경)
성녀(聖女) 막달라 이야기
마리아 막달라(막달레나). 그녀는 호칭이 많다. 예수의 제자. 기독교의 성인(聖人). 예수가 부활했을 때 빈 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다른 제자에게 알린 인물. 오해도 많다.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죄지은 여인. 회개한 창녀. 47년 간 광야에서 지낸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와 혼동되기도 했다. 필립보, 토마스, 마리아 복음서 등 몇몇 위경 내용에 근거해 그녀가 예수의 연인이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널리 퍼졌다.
다미앙 매니블 감독의 <막달라>도 비슷하다. 위의 이미지가 전부 혼재한다. 막달라는 숲에서 고행 생활을 이어간다. 직접 만든 십자가를 놓지 않는 그녀는 환상 속에서 예수를 만난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의 발밑에서 우는 막달라. 예수와 몸을 섞는 막달라. 비가 오는 날 예수의 얼굴을 그리며 그리워하는 막달라. 스크린에 비친 그녀는 예수의 제자이자 연인이고 성녀(聖女)다.
인간 막달라의 죽음을 체험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막달라의 외관이다. 일반적으로 막달라는 어리고, 환희에 찬 백인 여성이다. 교회가 만든 그림이나 조각 속 그녀는 같은 이미지에 갇혀 있다. 영화 속 막달라는 다르다. 그녀는 노년의 흑인 여성이다. 죽음이 임박한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통념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이 든 막달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전달한다.
물론 <막달라>는 자기 의도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느리다. 그녀가 이슬 한 방울을 마시는 순간을 10초가 넘도록 보여준다. 클로즈업도 극단적이다. 러닝타임 절반은 그녀 얼굴로 가득하다. 움직임도 거의 없다. 막달라가 한 걸음을 내딛기도 어려울 정도로 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막달라>는 전통적인 성녀 막달라의 이미지를 깰 수 있다. 답답할 정도로 정적인 영화는 관음적이다. 주인공 삶의 단편을 훔쳐본다는 영화의 본분에 충실하다. 실제로 관객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막달라의 삶을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녀가 얼마나 예수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막달라는 성녀가 아니다. 마지막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막달라는 동굴에 누워 죽음을 기다린다. 천사는 촛불을 든 채 그녀가 죽기를 기다린다. 카메라는 막달라, 천사, 촛불을 천천히 오간다. 초가 녹을수록 막달라의 숨은 약해진다. 긴 시간 동안 연인을 그리워하며 고행을 이어간 한 여성의 삶을 요약하듯이. 마지막 숨을 뱉은 그녀의 손에는 작은 십자가가 있다. 막달라는 사랑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친 인간일 뿐이다.
성스럽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죽음
그래서 <막달라>는 이율배반적이다. 몇몇 요소는 '이 영화에 새로운 게 있나?' 싶은 의문을 자아낸다. 환상 속에 나타난 예수는 익숙하다. 다른 영화, 드라마, 그림 등에서 재현한 유대인 남성 그대로다. 임종을 지켜보는 천사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전통에 충실하다. 순진한 얼굴을 가진 백인 소년. 성경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모습대로다.
하지만 종교적인 인물을 묘사하되 결코 종교적이지 않다. 가톨릭 교회가 숨기려 하는 대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신비주의적 묘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예수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젊은 막달라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녀 얼굴은 희열로 가득하다. 그런데 신실한 성녀보다는 성적으로 흥분한 여성에 가깝다.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 "성녀 테레사의 법열(Ecstasy of St. Teresa)"처럼. 성적 오르가슴을 통해 종교적 신비경을 표현한다. 우연이 아니다. 신비주의적 전통에 따르면 신과 하나 되는 기쁨은 성적인 황홀경을 맛보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선 막달라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자기 심장을 도려내 하늘에 바치는 막달라. 예수가 죽은 뒤 한때 행복했던 기억만 간직한 채 숲 속을 헤매던 여성은 심장을 도려내는 고행 끝에 옛 연인을 만난다. 실제로 막달라는 죽은 뒤에야 예수를 만나러 승천할 수 있다. 즉, 영화는 한 번의 황홀경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신과 하나 되는 '합일' 경험을 다시 경험하려면 고통으로 가득한 수행을 견뎌야 하니까. 틀에서 벗어난 막달라의 죽음이 성스럽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이유다.
영화 <막달라>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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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기억, 기록, 기억
우리 모두가 너무 다른 것 같아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인류는 비슷한 보폭을 맞추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 과테말라에 대해 아는 건 마림바와 향기로운 커피밖에 없던 내가, 과테말라의 젊은 감독이 만든 <스파이의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때처럼. 이 영화는 <액트 오브 킬링>을 처음 보았을 때 못지않은 충격으로 내게 강렬하게 남았다.
영화는 한 노인이 법정에 들어서면서 시작한다. 비쩍 말랐고 거동이 불편하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형형하다. 노인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감독에게 촬영을 부탁해 둔 자리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해 내부에서 목격한 유일한 증인으로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이게 생의 마지막 증언이 될 것을 알았기에 촬영을 부탁했던 것일까? 증언 2주 후 그는 세상을 떠난다.
그는 젊어서 기자였다가, 내부무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그가 일하는 정부는 국민을 학살하는 정부였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부라 부를 수 있는가? 불행히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 "과테말라 내전"이라 부르는 1970년부터의 36년. 내전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말의 온도를 지나치게 낮춰 놓은 것이 아닌지.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뿌리에는 돈이 있다. 미국 유수의 기업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들이 토지를 대부분 소유한 상황에서, 좌파와 빈민, 토착민들의 사회적 불만이 쌓여 반군으로 조직되었다. 군사독재자를 필두로 한 과테말라 정부는 공식 군대 외에 특수군을 창설했다. 이들의 역할은 "반사회적" 인물 제거. 수많은 사람들이 납치와 살해를 당했다. 토착민들이 사는 산간지역이 토벌되고, 바른말을 하던 언론인들도 실종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정확하게 살해와 도륙의 의도를 갖고 진행되었다.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자, 법정에서 증언한 사람, 당시 내무부에서 일하던 사람, 엘리아스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말하자면 스파이였다. 군부독재 정부의 학살에 반대하는 사람임을 숨기고 들어가서, 필요한 정보를 취해 전달했다. 곧 살해당할 사람을 미리 파악하고 피신시키는 일도 있었다. 정보를 얻고 전달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익명성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루어져야 했다.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고 짓밟으며 즐거워하는 이들의 농담을 웃어넘겨야 하는 자리에서, 그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스스로를 "두더지 견습생"이라 부르면서.
때로는 잘했다 싶은 일이 있어도 거울 속 자신 외에는 함께 기뻐할 사람이 없고, 자신이 느끼는 압박감이나 괴로움을 토로할 상대도 많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 모든 것을 철저하게 의심하는 것. 단지 침묵하는 것. 군부독재 사회에서 사는 사람, 특히 스파이로 사는 사람에겐 제1의 생존 원칙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아나이스 타라세나 감독 본인도 아버지가 독재 정권을 피해 망명 생활을 했다고 한다. 법정 증언을 촬영할 때까지도 이를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지만, 관련 자료를 좇는 과정에서 점차 이 촬영은 영화로 발전해 간다. 1915년이나 1920년 영상도 남아있는 기록보관소에 1970년대 영상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언제나 증거를 파기하고 역사의 망각을 기다린다.
아나이스 타라세나 감독은 기록의 부재에 절망하는 대신, 그 부재마저 기록의 소재로 되살려냈다. 용기와 성실함으로 촘촘하게 채운 결과물이 이 영화다. 당시 엘리아스와 함께 했던 동료들의, 그때 살해당한 언론인의 자식의, 기록자료원 직원의 인터뷰를 차곡차곡 담는다. 끌려가는 사람들이, 항쟁을 외치는 사람들이, 생존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거기 남아 있다.
목숨을 걸고 남기는 작은 마크들. 사력을 다해 남기고 또 없애야 했던 정보의 조각들. 당시 엘리아스가 전달했던 정보도 그랬지만, 지금 카메라 앞에 인터뷰하는 사람들 또한 있는 힘껏 증언하고 있다. 가끔 갱단이 한 짓으로 보도되지만 실상은 그들의 소행이 아닌, "기억하고 지켜보는" 자들의 소행이 여전히 있다고 말을 아낀다. 여전히 익명으로 처리해야 안전한 이름들이 있는 것이다. 감독의 내레이션 또한 "여전히 죽음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라고 한다. 과테말라의 현대사에 무지한 사람이 들어도 위협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학살자가 여전히 살아있고, 21세기에도 목격되었으며, 도망자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나에게까지 생생한 현실적 공포로 와닿았다. 살아있다는 건, 내가 영화를 보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나타나는 것까지도 가능한 존재라는 뜻이니까. 이 공포는 아마도 과테말라와 무관한 내 것이라기보다는, 이 영화를 만들고 전하는 사람들이 느낀 공포가 전이된 것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과테말라 사람들은 여전히 그 시절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 "내전"이라는, 한껏 톤을 낮춘, '학살'이라는 거친 단어를 감춘, 용어 선택 또한 그런 공포에 기인한 것일 테다. 당시 엘리아스의 기록에는 물론, 지금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이들에게도 두려움이 생생하다. 그러나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싸웠다. 그렇게 공포 속에서도 침묵을 깨야 한다고, 엘리아스의 삶이, 또 나아가 이 영화가 말한다. 살아남아 증언하는 사람들이, 본인에게도 괴로운 기억을 필름으로 되감는 사람이, 기록하는 힘이 말한다.
도시 외곽에는 여전히 그 시절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은 차들이 쌓인 채로 녹슬어 썩어 가고 있다. 그 시절 사람들이 납치당하고, 고문당하고, 총에 맞고, 끌려갔던 곳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역사 속 녹슨 금속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파상풍 같은 아픔을 계속해서 남기고 있다. 기록이 하는 일은 아프더라도 그 자리를 되짚는 일이다. 우리가 여기 있었노라고. 여기 있다고. 도시에 고요하게 가려진 전쟁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살해당한 사람들이 잊히지 않도록.
신념을 가지고 죽은 이를 기억한다. 신념을, 살리는 힘을, 서로를. 그 신념이 누군가에겐 기적이 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나라를 사랑한다는 건, 그 나라의 명암을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시기가 끝내 아주 어둡게 끝나지 않도록 하는 어떤 힘을 사랑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테말라 현대사와 엘리아스라는 인물의 일대기에 경악하는 한편으로, 기억과 기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따금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연필 자국이 낫다" 같은 식의 말을 듣는다. 그럴 때 보면 기록은 기억의 반대편에 있는, 그래서 기억의 단점을 보완하는 도구인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역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억과 기록은 그렇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형태를 달리 하면서 몸피를 비트는, 거대하고 동일한 하나의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기록되고, 또 기록이 기억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이 몸피를 비틀 때마다 역사의 비늘은 다른 빛으로 빛난다. 살육에 대한 공포로 기억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침묵 뒤에, 살리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들의 침묵이 있었음을. 나아가 그 침묵을 스스로 깸으로써 무겁게 사회를 내리누르던 침묵을 아예 걷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엘리아스의 증언의 연장선인 동시에, 언젠가 새로운 기억이 될 새로운 기록이다. 침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한 겹 더 아로새기는 작업이다.
학살은 늘 피해자 혹은 가해자를 주목하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억까지 눌러 담아, 기록은 더욱 풍성해지고 망각과 두려움에 맞서는 힘은 그만큼 강해진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는 아직 과테말라에서 일반 상영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시사회만 2회 진행했고, 해외 영화제 상영으로 안정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 다음 6월 중에 4번의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있다고. 그리고 다음 날, 국제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사이 또 한 걸음이 추가된 이 영화의 여정을, 언젠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될 날을 기대한다. 그때는 더욱 풍성해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전주국제영화제 남은 상영 일정
▶ 5월 5일 20:30 CGV전주고사 7관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일부 온라인 상영작도 있어요. 어디 계시더라도 우리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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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들의 욕망으로 뽑아든 두 남자의 칼끝에 놓인 한 여인의 진실
지난 9월에 열린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의심할 여지없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근작 중 최고라는 외신들의 호평들을 받으며, 자신 또한 인터뷰를 통해 “중요한 문제를 조명하는 매우 도전적인 작품으로 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자평을 남겨 수많은 팬들을 설레게 했던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리뷰입니다. 다음 주 각종 매체에서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라 부르짖는 〈듄〉과 함께 개봉이 잡혀 또 하나의 명작으로, 두 편 모두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어 어차피 개인 취향에 따라 먼저 볼 것이었기에 주말을 맞아 열린 시사회를 통해 선관람을 하고 왔습니다. 역시 비주얼리스트라는 거장의 칭호에 걸맞은 훌륭한 영상미와 할리우드 명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물론,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확고해 긴 시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왜 호평을 받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어떤 이야기들이 152분을 채워줬는지 나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아웅 얄미운..수염 다 뽑고 싶어진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출연진, 줄거리 기본 정보
저는 결백합니다
1386년 12월 29일, 한 여인을 비추고 두 기사가 많은 관중이 기다리고 있는 결투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비춥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과거... 수많은 전장에 참여해 승리를 통해 나라에 충성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 둘도 없는 친구 장과 자크, 이들의 우정에 금이 간 것은 영주 피에르의 자크를 향한 편협적인 총애로 시작됩니다. 대대로 명성을 이어온 가문의 자존심은 그를 옥죄어왔고 부와 명성과 외모까지 다 가진 그에 대한 질투는 그들의 우정만큼이나 커져갔던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전장에 나갔다 돌아오니 아내 마르그리트가 자크에게 겁탈을 당했단 말을 듣게 되고 이제는 그는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전투 재판을 신청합니다.
예고편│ Trailer
https://tv.naver.com/v/22728549
영제 : The Last Duel│감독 : 리들리 스콧│원작 : 2004년 출간한 에릭 제이거(Eric Jager)의 동명 실화 소설│각본 : 맷 데이먼, 벤 애플렉, 니콜 홀로프세너│출연진 : 아담 드라이버, 조디 코머,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외 多│장르 : 액션, 드라마, 역사│상영 시간 : 152분│개봉일 : 2021년 10월 20일│국가 : 미국, 영국│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평점 : 기자·평론가 6.0, 로톤 토마토 신선도 86% 팝콘 82%, IMDB 7.7, 메타 스코어 68점│시청 가능 서비스 : 10월 20일 개봉 예정
중세 남성상이 얼마나 최악인지 느껴지는 두 사람
반복되는 플롯을 탄탄하게 만드는 배우들
둘도 없는 친구에서 경쟁자로 이어서 본인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생사결을 펼치는 두 인물 중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활동을 통해 다양한 많은 모습을 선보이며 현재 할리우드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아담 드라이버가 겁탈이 아니라 사랑이라 말하는 자크를, 시기와 질투에 더불어 무너진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 목숨을 내걸은 장에 제이슨 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는 맷 데이먼이 맡았습니다. 각 파트의 분리된 시점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왜곡되고 이기적인 기억을 가졌는지 세세히 보여줌으로써 반복되는 사건 속 긴장감을 유지시켜줍니다.
정말 최선,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사건에서 보이는 하나의 시선, 마르그리트 시점은 이 작품의 백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보여주었던 두 남자의 추한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그들이 얼마나 옹졸하고 편협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밝힙니다. 남자들의 시선으로 보았던 진실은 자신들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한 허울 좋은 거짓에 불과했고 그 이면에 남은 것은 상처받은 여인만 있는 것이죠. 이러한 심적 변화를 보여주는 조디 코머의 연기는 드라마 〈킬링 이브〉 시리즈나 〈프리 가이〉의 이미지를 날려버리기 충분했고, 마지막 눈물의 의미까지 관객들의 공감을 사며 몰입도를 높여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캐스팅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됩니다.
죄다 말이 다르다..그러나 truth...파트로 보여준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평점
하나의 사건, 세 사람의 시선 그리고 진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풀어가는 구성 때문에 국내 대부분의 기사에서 1950년 일본 영화 〈라쇼몽〉을 언급하는데 너무 고전이라 가까운 시점의 영화를 들자면, 〈영웅〉, 〈헤이트풀8〉, 〈밴티지 포인트〉, 〈커리지 언더 파이어〉 등과 유사한 스타일이라 보시면 됩니다. 세 주인공이 연관된 사건의 각기 다른 시점에서 각자를 대변하는 스토리를 풀어가면서 마지막 클라이맥스인 결투까지 분위기를 고조시켜주죠. 물론,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뜩이나 긴 러닝타임을 지루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각 플롯마다 다른 해석을 넣어 같음에도 다른 새로운 사실과 관점들이 계속해서 드러나 보는 이의 흥미를 유지시켜줍니다. 이 부분에서 불필요한 장면들은 생략하고 각 인물의 시선이 닿는 디테일 포인트만 남김으로써 클라이맥스로 향해가며 점점 고조되는 세 인물들의 감정들을 통해 서서히 감춰둔 진실과 메시지를 밝힙니다.
시대적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여성의 서사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고려 말기가 배경인 14세기 중세 시대의 뒤틀린 시대상을 통해 현재 사회의 미투 운동을 떠올리게 하며 지금도 존재하는 성범죄 피해자의 침묵과 진실 사이에서의 딜레마, 이들의 상처를 더욱더 가혹하게 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기가 막히게 묘사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제의식을 완벽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디 코머가 보여준 마르그리트의 말과 행동에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 보이죠. 단편적으로 자신의 소유물인 애마와 크로스 오버시키는 장면들을 통해 그 당시의 여성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관점이 어디까지 내려와 있었는지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용기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줍니다.
이번달 퍼펙트 스틸과 다음달 구찌로 또 만나요!
이제 여든을 훌쩍 넘었지만 ‘장르의 마술사’, ‘비주얼리스트’라는 칭호에 걸맞게 거장 리들리 스콧은 혹독한 겨울의 황량함을 통해 인물들 사이의 냉랭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훌륭한 영상미로 선보이며, 그만의 색을 도드라지게 만듭니다. 전작들의 스펙터클함과는 다르게 대부분 대화로 구성된 드라마지만, 화려한 중세 의상과 감정이 도드라지는 클로즈업이나 웅장한 세트장의 모습들은 역시라는 생각이 들고, 특히 마지막 20분간의 결투는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엔딩을 통해 그가 〈델마와 루이스〉라는 기막힌 여성 서사를 그렸던 감독이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상당히 긴 러닝타임 때문에 작품이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라고는 쉽게 말할 수 없겠지만, 분명 그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충분히 극장을 찾을 값어치가 있을 듯하네요.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이상 글쓰는 식팔이 모모파로였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한 줄 평 : 자신들의 욕망으로 뽑아든 두 남자의 칼끝에 놓인 한 여인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