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보고, 말하기]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이 난다고 하던데, 무섭다가 웃어도 엉덩이에 뿔이 날까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리뷰하게 된 계기이자 사담
평소에 오컬트와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았다. 나폴리탄 괴담이나 메뉴얼 괴담 등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글을 좋아했다. 한참 그런 글을 찾아보던 작년쯤이었다. 일본에서 화제가 되어 만화화와 영화화가 거의 동시에 결정 난 글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SNS의 글들을 확인하며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이 2025년 4월 한국에 정식으로 출간이 된 것이다. 영화 또한 8월 개봉으로 소식이 들려왔기에 책과 영화를 모두 보고 리뷰해 보자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책을 조금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해 소설을 먼저 읽었으며, 그 후 영화를 관람했다. 이 글에서는 책과 영화의 공통적인 줄거리를 먼저 설명하고, 책과 영화의 차이점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두 작품의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혹시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분이 아직 두 작품을 보기 전이라면, 이 문단까지만 읽고 보고 오는 걸 추천한다. 두 작품 모두 재밌냐고 물어보면 완전 예스다. 재밌게 읽고, 보았다. 작품성이 좋냐고 묻는다면 고민된다. 두 작품 모두 80% 지점까지 잘 만들었고, 20%는 아쉬움이 크다.
Q. 그럼, 책과 영화 중 먼저 어느 것을 볼까요?
A. 책부터 보시길. 책을 먼저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이후 내용에는 영화와 책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미지의 장소로 연결되는 기묘한 이야기

책과 영화, 두 작품의 메인 스토리는 같다. 오컬트 잡지에 글을 쓰는 작가 세스지와 잡지 편집자인 오자와 군이 특집 기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긴키의 어느 장소와 엮이는 이야기다.
오컬트 잡지 특별기사로 쓸만한 이야기를 찾기 위해 창고에 있는 자료를 뒤지던 둘은 기묘한 연결성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행방불명된 아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과 수련회 집단 히스테리 사건, 자살 사건 등등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한 지역을 향하고 있었다. 지역 외에 발견되는 공통점도 있다. 맛시로상, 마시로상 등으로 불리는 하얗고 거대한 남성의 모습을 한 존재와 빨간 옷을 입고 손을 위로 뻗어 점프하는 여성, 쫓아오는 남자아이. 이상 현상을 겪은 후 사람들이 말하는 ‘산’과 ‘시집’, ‘발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말들과 이상현상을 겪은 이들이 다른 사람을 ‘어느 장소’로 데리고 가려는 점. 이 장소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주인공은 저주 같은 이야기에 엮이게 된다.
그러다 오자와 군은 이 이야기를 더 알기 위해 결국 ‘어느 장소’로 가게 된다. 그리고 오자와 군은 사라져 버렸다. 세스지는 이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며 도움을 구하듯 취재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의 비밀과 함께 세스지의 비밀도 드러난다. 바로 세스지가 취재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자신의 아이를 잃고 후 어쩌다 찾아간 사이비 종교에서 ‘어느 장소’와 연관된 저주와 엮었다는 것이다. 그 후 벗어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지만, 오자와 군이 ‘어느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퍼트려’라는 목소리가 들리며 오자와 군, 그리고 이야기를 보는 모두를 저주에 엮이게 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책과 영화의 차이점,
소재와 큰 흐름은 그대로, 디테일은 다르게
취재의 계기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이야기의 시작, 취재의 계기이다. 영화는 원래 특집 기사를 조사하던 오자와 군의 선배 편집자가 실종되며 시작한다. 오자와 군은 선배의 빈자리와 특집 기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작가이자 기자인 세스지(치히로)와 함께 선배가 모아둔 자료를 훑어본다. 영화 초반에 저주에 당하는 선배 편집자의 모습이 나오며 긴장감을 높이기도 한다. 책은 세스지가 오자와 군을 찾는다는 글로 시작한다. 그리고 오컬트 작가로 있던 세스지가 첫 업무로 긴키 지방 취재를 시작한 오자와 군을 도와주는 이야기를 밝힌다. 두 작품의 계기는 아주 다른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계기는 초반에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세스지(치히로)의 서사

세스지(치히로)의 비밀이 조금 다르다. 영화에서는 아이를 잃은 후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사이비 종교에 입단해서 돌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나서 선배 편집자와 오자와 군을 아이를 다시 되살리는 일에 끌어들인다. 영화에서는 치히로의 정체가 가장 핵심 소재로 사용되었다. 배신이라는 반전을 강조한 결말이다. 그래서 선배 편집자도 치히로에게 묘한 말을 하고, 마지막 단서도 사이비 종교의 영상이다.
책에서는 사이비 종교에 잠입 취재를 간 것으로 나온다. 가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아이를 잃은 슬픔을 나누기도 하지만 들어간 계기가 조금 다르다. 또한 빠져나온 방법의 설명도 다르다. 책에서의 세이지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빠져나와 살아가다 오자와 군의 도움 요청과 함께 저주가 되살아난다. 결말에 영화 속 치이로(세이지)처럼 제물로 바쳐 아이를 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알 수 없는 ‘어느 지방’의 존재에 의해 세스지도 저주를 받아 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 공포 포인트다.
저주의 정체
아마도 여기서 영화의 호불호가 갈렸다. 영화는 코스믹 호러, 크리처 장르로 뻗어가고자 했던 것 같다. 다소 웃음거리가 되어버렸지만, 그 나름 재밌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불우한 설화로 만들어진 돌이 간절히 무언가 원하는 사람에게 나타나고, 그 소원을 이뤄주는 흰 원숭이를 닮은 감 잡을 수 없는 괴신이 나온다. 괴신은 소원을 이뤄주는 대가로 사람들을 원한다. 하지만 사람을 가져다 받쳐도 거짓된 방식으로 소원을 이루어준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형태를 보인다.
책에서는 정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설화가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는 알 수 없는 상태로 마무리가 된다. 미스터리한 느낌을 강조한 결말이며, 독자에게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텍스트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원작은 오래된 원고나 트위터 글, 블로그 글처럼 텍스트로 진행된다. 또는 사람들의 말로 이야기가 풀어진다.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영화는 푸티지 필름 형식을 선택했다. 과거의 티비 영상, 브이로그, 인터넷 방송과 같은 형식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책이 더 디테일한 정보를 담고 있고, 정보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영상은 정보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놓치기 쉽다.
두 가지 모두 매력적인 방식이기에 다양한 매체로 공포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두 가지 모두 즐겨보는 걸 추천한다. 재현력이 좋은 편이기에 내용을 아는 상태에서도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일단 영화보다는 책이 더 완성도가 높다. 한 5% 정도. 사실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5%가 부족한 상태로 웃기기라도 했지만, 책은 사실 조금 허무하다. 그럼에도 책이 완성도가 높은 이유는 이야기의 연결성이 더 설득력 있고, 구성이 재밌다. 그리고 책이라서 가능한 성별 트릭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결말이 압도적으로… 웃겼다. 미스터리한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너무 웃겨버렸다. 코스믹 호러를 노렸으나 거대한 공포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주위에는 오직 이 재미를 느끼기 위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공포 영화가 이래도 되나 싶지만, 이 결말 나름대로 재미를 느끼기도 해서 나쁘지는 않았다.
영화와 책의 공통적인 아쉬움은 이미지적인 요소다. 책은 삽화가 적극적으로 쓰였다. 특히 뒤에는 은밀하게 자료가 동봉되어 있다. 지금은 그걸 펼쳐보지 말았으면 하고 후회한다. 독자가 상상한 이미지보다 구현된 이미지가 허술하고, 무섭지 않았을 때 김이 새기 마련이다. 책에 들어있는 이미지가 그랬다. 영화는 결말 전까지는 이미지가 훌륭했다. 오히려 더 무서웠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존재의 이미지를 섣불리 드러냈다. 그로 인해 이것도 김이 새버렸다.
이야기와 매체의 시너지에 대해
이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이야기를 퍼트리는 것이 괴담인 괴담이다. 사람들이 존재를 알면 알수록 힘이 생기는 유형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매체화가 이야기가 시너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책, 영화, 만화 등 다양한 형태로 퍼져갈수록 그럴듯해진다. 이런 장치는 게임 ‘**Who's Lila?’**가 생각난다. 해결하기 위해 알아갈수록 해결할 수 없는 존재. 전형적인 패턴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가 다양한 매체로 퍼져가는 지금 시대에 잘 통하는 패턴이라 생각한다.
한 줄 코멘트
무서운 듯 하면서도 무서운가? 싶다가도 웃긴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