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8-08 20:33:16
대체할 수 있는 기만, 대체할 수 없는 마음.
영화 <피닉스> 리뷰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넬리는 친구 레네와 함께 고향으로 향한다. 그렇게 가고 싶던 고향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고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거쳐야만 했다. 고통으로 점철된 상처를 보여주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시대의 참혹함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돌아온 고향은 모든 것이 파괴된 모습이었고 고통스러운 사실이 넬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에도 유일하게 자신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피투성이였던 넬리는 얼굴 재건을 위해 성형수술을 해야 했고 이전과는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런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게 달라진 얼굴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 남편 조니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고 ‘피닉스’에서 만난 조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슬픈 사실에도 쉽게 슬픔을 드러낼 수 없는 넬리에게 조니는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와이프 넬리를 연기해달라고 부탁하고 넬리는 그를 수락한다. 넬리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던 추억은 조니 에게 있어서 바래진 추억일 뿐이었을까. 웃지 못할 연극이 계속되면서 애써 외면해왔던 현재의 모습에 파고들면서 끝을 보이고 있었다.
끝없이 바닥 치는 내면의 마음이 과거의 따뜻한 사랑을 되찾기엔 왜곡된 진실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의술로도 원상태로 돌릴 수 없었던 겉모습과 마음이 남기는 흔적이 곳곳에 자리 잡으면서 고통과 사랑을 동시에 느낀다. 그와 함께하면서 시작된 기만을 비롯한 연극이 비극의 끝을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 자리로 자신을 옮겨 온다. 복수보다 무서운 용서가 마지막을 맴돌며 온몸에 전율이 피어오른다. 당연하게 여겨진 것을 잃어가며 소중한 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당연하게 여겨 어쩌면 외면했던 것들의 다른 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는 역사의 왜곡은 개인의 왜곡으로 이어져 예견된 비극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모습을 감추고, 눈을 감을 텐가. 이제는 대답해야 할 때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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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긴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초기 무성영화
필자가 영화지만 영화로 취급하기 싫은 영화가 몇가지 있다. 이 중에는 마블 영화, 에로 영화 등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뮤지컬 & 오케스트라 실황이다. 왜냐하면 본질을 따져보면, 단순히 기록의 성격이 컸던 1890~1910년대 무성영화들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초기 무성영화가 현재에 와서도 가치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로 당시의 기술력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기에, 현대 영화의 기틀이 되는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똑같이 카메라로 기차가 도착하는 것을 찍는다고, 1896년의 "열차의 도착"과 똑같은 평을 받을 수 있진 않을 것이다. 본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음악과 중간에 실제 성우가 출연해 작품을 훑어보는 듯한 연출도 오케스트라의 연출일 뿐, 본 영화의 연출은 아니다. 원론적으로 따져보면 단순히 열차가 역에 도착하는 것을 찍은 "열차의 도착"이랑 다를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단순히 필자가 노래방에서 노래부르는 것을 찍어 상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말 그대로 기록해서 트는 것 뿐이니! 여기에 소리와 컬러가 추가된 것일 뿐. 다만 그나마 나은 점은, 화질이 일부 노이즈가 존재하지만, 사운드는 잘 기록되어 기록 영상으로서의 가치는 있는 편이다. 이 영화의 최대 가치는 바로 "기록"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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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날로그의 손을 들어주는 첩보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디지털 상으로 모든 기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인공지능 '엔티티'가 등장하자 세계 각국은 혼란에 빠진다. IMF 역시 '에단 헌트'(톰 크루즈)에게 엔티티를 조종할 수 있는 열쇠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에단은 엔티티를 조종하기보다는 파괴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엔티티는 인류의 미래까지 통제할 수 있는 위험한 무기이기 때문.
이에 에단은 상부의 명령을 거스르고 '일사'(레베카 페르구손), '벤지'(사이먼 페그), '루터'(빙 레임스)와 함께 엔티티의 열쇠를 지닌 미지의 여인 '그레이스(헤일리 앳웰)를 쫓는다. 그러나 엔티티의 대리자인 '가브리엘'(에사이 모랄레스)이 그의 앞에서 나타나면서 에단은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의 생명과 중요한 임무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함정에 빠진다.
<미션 임파서블>에게 기대 안 한 재미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하 <미션 임파서블 7>)은 잘 팔릴 수밖에 없는 영화다. 흥행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톰 크루즈의 존재감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최소한의 흥행을 보장하는 티켓 파워를 지녔다. 작년에도 <탑건: 메버릭>으로 자기 존재감을 증명했다.
또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장수 시리즈의 힘이 있다. 이 시리즈는 팬데믹 이전 기준으로 못해도 500만 관객을 기대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다. 믿고 보는 액션 영화인 점도 한몫한다. 보기만 해도 짜릿한 톰 크루즈 표 스턴트 액션은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미션 임파서블 7>은 위의 기대를 모두 충족한다. 톰 크루즈는 여전히 우리의 '에단 헌트'다. 시리즈 내내 이어진 전통과 팀업 액션은 오래된 팬도, 새로운 팬도 만족시킨다. 그런데 이상하다. <미션 임파서블>에게 기대조차 하지 않은 맛이 유달리 강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팝콘 무비 이상의 시의성과 통찰력이 그것이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 빌런 '엔티티'가 있다.
'엔티티'와 '데드 레코닝'
엔티티는 낯선 존재다. 시리즈 최초로 등장한 인공지능 빌런이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된 모든 것을 해킹하는 엔티티는 모든 정보기관의 적이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따로 있다. 계산력이다. 모든 사람의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계산해 발생할 일을 예측한다.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사람들을 조종해 미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실제로 에단과 그의 팀은 잠시라도 디지털 기기를 활용할 때마다 임무에 실패한다. 엔티티는 에단을 쥐고 흔든다. 제때 일사에게 가지 못하도. 또 공항에서는 cctv가 해킹당한다. 베니스에서도 통신망을 엔티티에게 내준다. 엔티티가 심고 만들어낸 두려움과 공황 때문에 그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일쑤다.
이에 에단은 1과 0으로 이루어진 엔티티의 세상에 인간적인 방식으로 맞선다. 싸움을 아날로그 세상에 국한하면서 엔티티에게 일격을 가한다. 부제가 '데드 레코닝'인 이유이기도 하다. '데드 레코닝'은 항해 용어다. 추측항법을 말한다. 외부 시스템에 의존하는 대신 지도만 보고 경로를 정한다는 말이다.
기준점은 가브리엘이다. 엔티티에게 오류가 없을지언정 대리자인 가브리엘에게는 오류가 있기 때문. 에단 앞에서 그는 실수를 연발한다. 엔티티를 없앨 도구 중 하나인 키는 기차에서의 혈투 끝에 빼앗기고 만다. 엔티티의 예측대로 배신자가 될 운명인 패리스를 제거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 대가로 에단은 엔티티의 소스코드에 접근할 권한을 얻는다. 소스코드가 침몰한 러시아 잠수함에 있다는 정보도 파악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계의 충돌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기대치 않은 시의성과 통찰력이 느껴지는 이유다. 비록 종류는 같지 않아도 챗GPT를 비롯한 현실의 인공지능을 엔티티에 겹쳐 보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션 임파서블 7>은 짜릿하다. 디지털 세계의 신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인간 찬가는 부정하기 힘든 소구력이 있다.
인공지능과 첩보물의 만남
<미션 임파서블 7>의 인간 찬가는 다른 이유 덕분에 더욱 빛난다. 인공지능이 초래하는 불안감을 장르적으로 영리하게 승화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모두 차지해 버린다면?' 같은 우려가 커진다.
<미션 임파서블 7>은 이 불안감을 첩보물답게 풀어낸다. 작중 전 세계는 위기에 빠졌다. CIA는 본인들이 만든 엔티티를 통제하지 못한다. 오히려 엔티티가 권력을 휘두른다. 어떤 국가의 기밀도 알 수 있고, 그 어떤 유력 정치인도 조종할 수 있는 권력이 엔티티 손안에 있다. 모든 국가는 엔티티의 공격을 두려워하면서도 엔티티의 권력을 손에 쥐려 한다.
사실 제 역할을 못하는 국가의 모습은 이미 익숙하다. <위기의 국가>에서 바우만과 보르도니가 지적한 바와 같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는 초국가적 자본, 기술, 조직에게 권력을 내줬다.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중재자, 경제 규제의 주체, 안전의 보장자라고 보기 어렵다. '독립체(Entity)'라는 이름을 지닌 인공지능에게 끌려 다니는 첩보 기관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배경은 첩보원이 활약하기 가장 좋은 판이다. 첩보물은 국가의 역할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파이 영화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다룬다. 첩보원, 첩보 기관, 국가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서스펜스가 핵심이다. 달리 말해 과연 국가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지 질문을 던지는 장르다.
에단도 다르지 않다. 그는 IMF 소속이지만 미국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미국 정부가 엔티티를 이용해 전 세계의 군사적 패권을 확보하려 하자 엔티티를 파괴하기 위해 열쇠를 쫓는다. 국가의 이익과 시민의 신념이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묻는 셈이다.
이 질문은 에단을 추적하는 CIA 요원에게 향한다. 그들은 옳은 일을 한다는 처음의 확신을 잃고, 점차 고뇌에 빠진다. 누가 옳은 일을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렇기에 에단과 가브리엘의 갈등 못지않게 에단과 CIA의 추격전 비중도 클 수밖에 없다.
첩보물의 또 다른 매력
동시에 <미션 임파서블 7>은 첩보물의 다른 매력도 놓치지 않는다. 첩보 영화는 대부분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 마련이다. 흑백의 이분법으로 이루어진 스파이 세계는 다양한 색을 지닌 개개인의 이야기를 짓밟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이번 작품도 다르지 않다. 특히 에단의 죄책감과 존재 의의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가 돋보인다. 이 감정을 히로인과 빌런에 제각기 투영해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우선 영화는 에단 헌트의 죄책감을 계속해서 부각한다. 그는 1편에서 팀 전체가 몰살당한 트라우마를 여전히 떨치지 못했다. 그는 임무 완수와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 사이에서 계속해서 고뇌한다. 엔티티는 에단의 약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한다. 일사와 그레이스 중 누구를 구할지. 그렇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에단은 굴하지 않고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IMF에 들어온 선택이 헛되지 않을 거라는 오프닝 대사처럼.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딛고 일어서서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가브리엘이라는 빌런의 등장이 인상적인 이유다. 과거에 그는 에단과 같이 활동했던 여성을 살해했고, 에단은 이를 계기로 IMF 합류를 '선택' 했다. 가브리엘은 그의 선택과 존재 의의를 환기하는 존재인 셈이다.
가브리엘이 모든 미래를 예측하는 엔티티의 대리자라서 에단의 선택을 거듭 강조하는 연출은 더 의미심장하다. 자기 선택에 따라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에단이 그레이스에게 선택지를 주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는 전 세계 첩보 기관의 표적이 된 그레이스에게 죽음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일러준다. 범죄로 점철된 과거를 버리고 IMF를 '선택'하라고.
이렇게 보면 <미션 임파서블 7>의 '데드 레코닝'은 단지 임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위치를 스스로 추정하고, 그다음 경로를 선택하는 추측항법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미션 임파서블 7>이 스토리에 놀라며 영화관을 빠져나오는 블록버스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날로그 액션으로 방점을 찍다
시의성 있는 소재, 본질을 꿰뚫는 장르, 인생을 통찰하는 드라마. 이들은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액션 안에서 하나 된다. 일례로 에단과 그레이스가 신뢰를 쌓고 한 팀이 되는 일련의 과정은 액션에서도 고스란히 표현된다. 로마에서 도망칠 때 오합지졸인 둘과 추락하는 기차에서 함께 사투를 벌이는 둘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극명하다.
사실 새로운 액션은 없다.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 많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찍었다는 인상은 확실하다. 시퀀스 하나하나 버릴 것 없기 때문이다. 공항 추격전, 로마에서의 카 체이싱, 베니스에서의 육탄전, 마지막 기차 액션 시퀀스까지 모두 호흡이 길고 촘촘하게 짜여 있다. 사막에서의 오프닝 총격전도 짧지만 강렬하다. 그 덕분에 액션을 간접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주제와 이야기는 직관적으로 각인된다.
달리 말하면 톰 크루즈라는 스타의 매력이 물씬 풍긴다. 에단 헌트가 인공지능과 싸울 때 톰 크루즈는 영화 산업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듯 보인다. CG로 점철된 블록버스터가 넘쳐 나고, 관객은 영화관을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지금. 톰 크루즈는 직접 발로 뛰면서 '무비 스타'의 가치를 증명한다. <탑건: 메버릭>처럼. 그래서일까? 두 차례나 나오는 톰 크루즈의 트레이드 마크, 전력 질주는 유달리 감동적이다.
어쩔 수 없는 한계와 기대
다만 <미션 임파서블 7>에게도 단점이 있다. '파트 1'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넘지 못한다. 캐릭터 활용만 해도 약간 아쉽다. 그레이스가 대표적이다. 그녀가 다음 편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엄연히 답답함을 유발하는 캐릭터였다. 인기 캐릭터인 일사 파우스트가 다소 허무하게 퇴장해서 아쉬움은 더 크다.
또 엔티티와의 결전을 위한 판을 깔아 두는 전개도 양날의 검이다. 생각보다 드라마가 많고, 스토리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163분이라는 시리즈 역사상 가장 긴 러닝 타임도 한몫한다. 다음 편에서 엔티티의 목적이 더 자세히 드러나야 비로소 서사가 완성된다는 점도 근본적인 한계를 넘지 못한 방증이다. 그럼에도 상당히 깔끔한 결말은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TWO>가 이번 편보다 더 짜릿할 거라는 기대감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톰 크루즈의 달리기에는 항상 진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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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코어 헨리
이 영화는 뭐라 정의하기 힘든 영화이다.
진짜 FPS를 하는 기분이 드는 영화이다. 1인칭 게임 울렁증이 좀 있는 나로선 오묘했다.
콜 오브 듀티와 울펜슈타인을 3~4 시간하면 좀 어지러운데, 이 영화가 딱 그러했다.
액션은 상당히 시원시원 해서, 마치 '둠' 또는 '울펜슈타인'을 하는 느낌이다.
음악도 상당히 빠른 템포라서 액션이 더 시원하며, 루즈하다는 느낌이 없다.
이 영화의 특징으로는 1인칭 시점이라는 것이다.
(쉽게말해서 머리에 캠을 달고 찍었다는 소리다.)
영화는 FPS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시원하고 짧고 굵은 액션을 선사해서 좋아할 것이다.
스토리는 그냥 일반적인 액션영화 스토리이다.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할 점은 러닝타임 96분을 전부 1인칭 시점으로 전개한 점과 주인공의 대사 없이 유쾌하며, 시원한 액션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주인공만의 대사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의사소통 하는 것이 일품이다.)
1인칭 시점으로 액션영화를 보니, 사실감과 재미는 극대화됬다.
청불등급에 맞게 시원한 액션과 피튀기는 액션이 더해져서 영화는 충분히 과격하다.
3인칭 시점에 적응되있던 나라 그런지, 충분히 재미있고, 실험정신도 좋다.
그러나, 시원시원한 액션과 스토리랑은 별개로 그냥 안맞는 느낌이였다.
(아마 이런 류의 영화를 처음 접해서 그런 것 같았다)
영화 자체만 놓고보면, 러닝타임도 길지 않아 잠깐 즐기기에 제격이다.
다만 액션의 수위가 어느정도 있으니, 잔인한 영화를 못 본다면, 비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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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설 | 공감과 청량으로 빚은 계절감 충만 로맨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학 졸업장은 손에 쥐었지만,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이 부모님 도시락 가게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용준’(홍경). 어느 날, 그는 배달 중 들린 수영장에서 완벽한 이상형 ‘여름’(노윤서)을 만난다. 청각장애인 수영 선수인 동생 ‘가을’(김민주)의 훈련을 돕던 여름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서툴지만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가고, 행운까지 따른 덕분에 용준과 여름은 친구가 된다.
입이 아닌 손으로만 말하는 여름과 더 가까워지고, 소중한 사이가 되고자 노력하는 용준. 하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용준의 고백은 거절당한다. 미래와 꿈을 이야기하는 용준과의 만남이 청각장애인 동생과 부모님만을 생각하고 살아온 여름에게는 충격이자 부담이었기 때문. 하지만 용준은 희망을 놓지 않았고, 초여름이 깊어지면서 여름도 서서히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20대라는 계절
어른들이 20대 중후반에 접어든 이들을 위로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있다. 바로 인생을 시계에 비유하는 것. 100세 인생 중 20대 중후반이면 이제 1/4 정도 지났을 뿐이니, 시계에서는 새벽 6시 언저리이고, 막 해가 뜨거나 뜨기 직전의 새벽일 뿐이라고. 그러니 설령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서 좌절스럽더라도 무너질 필요는 없다고. 간 호흡으로 인생을 보면서 내실을 다지고, 다음 기회를 노려도 충분하다고.
이 비유는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다. 마라톤 같은 달리기 경주로 바꿔도 말이 된다.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미사여구를 더해도 된다. <다크 나이트> 중 하비 덴트의 대사처럼, 인생의 새벽인 20대는 해가 뜨기 직전이라서 더 어두운 것이라고. 계절로 대신할 수도 있다. 20대는 사계절 중 이제 막 초여름이 시작되려는 시기일 뿐이니 아직 열매를 수확할 가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1년을 마무리할 연말은 까마득하다고.
대만의 동명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 <청설>은 인생의 초여름, 20대 중반을 마주한 청춘들의 로맨스를 보여준다. 정확히는 로맨스를 곁들였다. '우리의 여름을 들어달라'(Hear Me: Our Summer)는 의미의 부제만 봐도 알 수 있다. 로맨스를 위한 로맨스가 아니라 세 주인공이 각자의 여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원작과 리메이크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바로 이름이다. 특히 두 자매의 이름이 독특하다. 한국판 <청설>은 자매의 이름을 계절감 가득한 '여름'과 '가을'로 변경했다. 흥미롭게도 이 이름 덕분에 세 주인공이 마주하는 인생의 초여름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여름과 가을 자매의 이야기에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름과 가을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여름의 인생은 철저히 가을이에게 맞춰져 있다. 동생이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뚫고, 함께 올림픽에 가는 게 그녀의 유일한 목표다. 그래서 여름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가을이의 훈련비로 투자하고, 시간을 쪼개서 국제 수화를 배우러 다닌다. 영준과 썸을 타고, 연인 관계로 발전을 하려는 순간마다 그 관계를 망설이거나 끊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이와의 목표를 위해 자기 자신을 오히려 다그치는 것.
여름이에게 영준과의 만남은 터닝 포인트다. 영준은 대학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이나 진로를 아직 찾지 못한 평범한 20대다. 그는 도시락 배달을 갔다가 만난 여름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에게 같이 인생의 목표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정작 여름은 충격에 빠진다. 올림픽 출전이 가을이의 목표일 뿐 자기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 처음 깨닫고, 청각장애인인 부모님이나 동생과는 다른 인생의 가능성을 비로소 발견하기 때문.
여름의 깨달음은 메타적이다. 그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열매라고 생각했던 가을이의 올림픽 출전이 자신의 '가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으니까. 그렇게 여름이는 여름이 코 앞에 다가온 후에야 비로소 자기만의 가을, 새로운 인생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영준과 여름의 로맨스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여름을 마주하고는 각자의 가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격려와 위로에 가깝다.
착한데, 착하기만 한 로맨스
물론 <청설>에는 대만 로맨스 영화에 기대하는 순간도 나온다. 사랑이 시작되는 풋풋함, 착한 풋사랑이 끝나는 아픔 등. 특히 청각 장애라는 소재를 활용한 전자가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영준이 여름에게 고백하는 순간은 유독 살랑거린다. 수영장에서 번호를 따거나 커피를 같이 마실 때 말을 하는 대신 전부 수화만 사용하다 보니 설렘과 떨림이 손짓과 몸짓만큼 크게 보이니까.
여름이 영준에게 빠져드는 과정도 흥미롭다. 호감은 느끼지만 그를 친구로만 생각하던 여름. 하지만 기분 전환 차 놀러 간 클럽에서 그녀는 시나브로 그에게 스며든다. 영준이 이끄는 대로 손을 스피커에 대고, 음악을 듣는 대신 느끼면서 비로소 그의 모습을 한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연다. 수영장에서 영준의 말이 아니라 그가 보낸 물결을 느낀 후에야 그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장면처럼 비슷한 순간이 반복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다만 착하고 순수한 로맨스가 빛이 바래는 순간도 있다. 여름과 영준의 관계를 위기에 빠트리는 전개가 부자연스럽기 때문. 특히 여름과 가을의 자취방에 불이 나는 시점부터의 진행은 다소 갑작스럽다. 물론 세 주연의 관계에 전환점을 마련하고, 그들의 성장을 강조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작위적인 전개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영화의 분위기는 끝내 불협화음을 내고 만다.
소재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유독 부각되는 단점도 있다. 바로 영화가 청각 장애라는 소재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청설>은 청각 장애인의 로맨스를 다루기에 독특한 작품이다. 소재를 강조하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상술했듯이 청각 장애인들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로 묘사하면서 고정관념을 빗겨 나간다. 또 템포가 늘어진다고 느껴지더라도 수화로 이뤄지는 대화를 가능한 끊지 않고 보여주려는 시도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하다. 여름이가 비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숨긴 반전이 특히 문제다. 영화적 재미는 더할지는 몰라도, 여름과 영준의 감정선을 어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주제와도 맞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게 비장애인의 로맨스였다는 점에서 청각 장애는 그저 도구로만 소비된 셈이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나 비주류 집단 배우나 캐릭터를 보여주기식으로만 활용하는 ‘토크니즘’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더 나아가 평면적인 청각 장애인 묘사도 구시대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청설>은 모든 청각 장애인을 착한 사람, 배려받아야 할 사람, 약자들로만 묘사한다. 마찬가지로 청각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뤄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코다>가 장애인들이 사업체를 소유하거나 지역 어업 공동체를 이끄는 식으로 그려낸 것과 비교하면 <청설>은 깊이가 얕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배우라는 눈속임
그런데 <청설>은 최소한 보는 동안에는 위의 단점이 생각나지 않게 하는 매력이 있다. 바로 영화의 감성을 온전히 살린 배우들의 힘이다. 우선 홍경이 연기한 영준의 경우 사실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일반적이고 평이하니까. 하지만 그 인물을 숨 쉬는 듯 자연스럽게 표현한 홍경의 연기는 그가 주목받는 신예인 이유를 증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기 잘못과 마음을 무심하게 고백하는 수영장 씬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여름을 연기한 노윤서는 기시감이 없지 않다. <일타 스캔들> 등에서 비슷한 결의 캐릭터를 맡았기 때문. 그러나 익숙하고 편안하게 캐릭터를 관찰할 수 있다 보니 사소한 동작 하나 놓치지 않는 표현력이 더 돋보이는 측면이 있다. 일례로 그녀는 수화를 할 때 마치 말을 하는 것 같은 입모양을 만들 때가 있다. 이러한 디테일은 여름이 사실 청각 장애인이 아니라는 반전의 복선으로 이어지면서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마지막으로 김민주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을이라는 캐릭터는 오로지 수화와 표정, 제스처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대사가 단 한 마디도 없는 제한적인 환경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혹시 모를 발성에서의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고, 아이돌다운 표정 연기와 제스처가 뛰어난 전달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언니에게 부담감과 불안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 한 가지는 가려지지 않는다. 바로 개봉일이다. 물론 부산국제영화제를 기점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수능 특수를 노린 선택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주제와 분위기를 고려하면 최선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청소년 관객을 매료하기에는 생각보다 진중하니까. 또 계절감이 충만한 영화인 만큼 초여름 분위기를 강조할 수 있는 개봉시기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Poor 형편없음
배우와 감성, 분위기만 빛나는 초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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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비지트: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The Band's Visit/2007/이스라엘, 프랑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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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낯 선 하룻밤>
이스라엘 공항에 내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경찰관현악단"은 그들을 목적지로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 버스가 보이지 않자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기로 결정한다.
밴드의 권위적인 리더 투픽은 악단원 중 가장 젊은 할레드에게 버스표를 사오라고 지시하지만 영어가 서툰 할레드는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머뭇거린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격한 경찰 분위기를 풍기는 투픽은 한번 내뱉은 말을 거둬들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할레드에게 '경찰을 그만두고 싶냐'며 윽박지른다.
버스표를 사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할레드가 영어로 지명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악단은 그만 엉뚱한 마을에 이르고 만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인적 드문 시골 중의 시골.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황량한 들판 뿐이었다.
마을 풍경과 꽤나 잘 어울리는 낡은 자동차를 요란하게 몰며 지나가던 청년들은 악단의 제복을 보고 '장군'이라고 부르며 놀리고 칠 벗겨진 간판의 초라한 가게 겸 식당에 앉은 주민 세 명은 외계인 보듯 이들을 빤히 쳐다보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아침부터 먹은 것이 없어 배가 고팠던 단원들은 무엇이라도 먹어야하지 않겠느냐고 푸념한다. 투픽은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을 죽이고 식당의 여주인 디나에게 이스라엘 화폐를 가진 것이 없다며 먹을 것을 좀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한다. 디나의 친절 덕분에 일행은 다행히 시장기를 면한다. 악단이 내일 공연할 장소는 '파타 티크바'라는 곳의 '아랍문화센터'였는데 그들이 내리고 떠나보낸 버스는 막차였다.
악단의 딱한 사정이 마음에 걸린 디나는 그녀의 집과 동네 청년 두 명의 집에 단원들을 분산시켜 하룻밤 머물게 해준다. 그렇게 이집트인들과 이 동네의 이스라엘인들은 낯 선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가간의 관계가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세 가정으로 흩어진 두 나라의 사람들은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밤을 보낸다.
디나는 투픽과 할레드를 집으로 데려가 어떻게든 이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변변한 것 없이 쇠퇴한 마을에서 그녀는 지루하고 외로운 날들을 견디고 있었던 것. 그녀는 투픽에게 마을구경을 시켜주겠다며 한껏 차려입고 나서고 할레드는 이웃 청년 파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블데이트에 끼어든다. 시몬 등 다른 단원들은 아브럼의 식탁에서 서먹서먹한 교제를 나눈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숙맥 파피의 데이트를 돕는 할레드, 썰렁한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을 상상하며 투픽과 이야기를 나누는 디나, 자신이 작곡한 짧은 미완성 곡을 연주하는 시몬과 큰 기대를 품고 귀를 기울이는 아브럼 가족의 표정 등은 예기치 못했던 두 나라 사람들의 난처한 상황을 지우고 이제 막 사귀기를 시작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분위기를 그려낸다.
다음날 아침, 이집트대사관에서 보낸 버스를 타고 이들은 여행이 예정되로 진행되었더라면 결코 들리지 않았을 작은 마을을 떠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여 관객들 앞에서 아름다운 공연을 펼친다.
<밴드 비지트: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은 타국에서 실수로 난처한 경험을 하게 된 이집트 경찰악단의 어색한 하룻밤을 그려낸 로드무비라고 하겠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게 마련. 그러나 '낯설다'는 말은 어쩌면 '특별하다'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열 명 남짓한 이스라엘 어느 작은 마을의 주민들과 그 비슷한 수의 이집트 경찰관현악단이 경험한 특별한 하룻밤을 통해 영화는 인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엉뚱하고 낯선 일을 당하면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좌절하거나 공격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러지 않았다. 디나와 그녀의 이웃들은 어려움을 당한 이방인들에게 형편이 허락하는대로 친절을 베풀었고 이방인들은 감사함으로 그들의 친절을 받았으며 스쳐가는 만남에 진심을 담았다.
하룻밤의 만남 가운데 드러나는 미숙한 청년기의 묘사가 웃음을 짓게 하고 서툰 영어 대화에서 짐작할 수 있는 부부의 갈등, 못다 이룬 꿈을 향한 성실한 노력, 옳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와 자책 등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고민을 지니며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인생을 한여름 무더위에 비유한다면 한줄기 바람처럼 은근한 위로를 선사하는 영화이다.(©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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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뭐였지?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방금 생각했는데 말이다. 26살밖에 되지 않은 나. 왜 군데군데 기억력에 구멍이 났을까. 이유는 모르겠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큰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고 말씀해주셨다. 큰 문제 아닌 걸까? 나에게 처방된 약은 안 좋은 것보다 장점을 더 가져다줬지만 이 기억력과 관련한 문제는 왠지 모르게 단점으로 느껴진다. 내가 누군지 기억에 난다. 그런데 오늘 해야 할 일이 가끔 생각이 안 난다. 플루옥세틴이라는 약이 정말 기억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걸까. 아니라는 답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찜찜함이 남는다.
찜찜함. 오히려 이 찜찜함이 내 삶에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우울한 무언가를 분출하기 위해서. 지금의 나는 내가 느낀 걸 감상을 나누고 싶어서 쓰지만 어렸을 때는 그랬다. 이 찜찜함은 '왜 우울해졌을까'도 갉아먹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는 뜻일까. '왜 그랬어?'라고 물으면 줄줄줄 나올 것 같지만 이제는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뭐였지? 분명히 기억에 남아야 할 텐데. 기억하지 않으면 나는 그렇게 멈춰 서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성공해서 누군가의 위에 남아야만 한다고 여겼던 독기가 요즘은 기억나지 않는 것이 가끔 짜증이 난다. 분명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사실인데 말이다. 내면의 분노만 기억에 남았다. 무엇이 그 일을 구성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렇게 나처럼 내면의 분노를 지우지 못했던 인물이 있다. 이 사람은 현재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이 남자의 복수극에 동행해보자. <리멤버>다.
응어리진 채로 뱉은 넋두리
하나하나 다 잊혀간다. 뭐가 기억에 없어졌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덧 여든이다. 80대, 고령에 돌입한 한필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한필주의 머릿속에는 기생충이 있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생충이다. 필주의 일상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간다. 브레이크 타임. 낮잠을 자고 있던 필주. 귀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은 잊은 것이 없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제이슨의 인사에 응답한다. 이번 주면 이 일을 그만둔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일하는 필주. 프레디란 이름으로 탈을 썼던 하루하루도 이제 빛을 발하는 때가 됐다. 자식들은 다 가정을 꾸렸다. 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완벽히 혼자가 될 준비가 됐다.
혼자가 될 준비가 됐다. 책임질 것이 없다는 것은 많은 것이 열려있다는 의미가 된다. 눈이 풀려있던 필주. 갑자기 눈에 힘이 들어온다. 필주는 집 안에 있던 허름한 방으로 향한다.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를 앞에 선 필주. 한두 마디 내뱉는다. "저는 한필주입니다. 제 가족들은 일제강점기 때 모두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제에게 누명을 써 몽둥이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유로 광인이 되셨고, 누나는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일제에게 성착취를 당했습니다." 그의 손에 권총 한 자루가 쥐어져 있다. 카메라가 향하는 곳은 사진들이다. 정치인, 전직 군인, 일본인 학자 등 한필주는 오랫동안 이들을 목표로 복수극을 계획하고 있었다. 다행히 전등을 쏴서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한필주의 기력은 충분하다. 머릿속이 채 무너지기 전에 먼저 떠난 가족들의 복수극을 실행해야 한다. 한필주는 목표를 달성하고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재미있는 영화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재미있다. 장르적인 특성을 아주 잘 잡았다. 장르를 굳이 따지면 스릴러물에 가깝다. 어? 액션 들어가는 것 같던데?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한필주가 80대인걸 고려하면 빠릿빠릿한 액션이 들어갈 틈이 없다. 그 대신 스릴러물로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식이 다양한 것은 강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는 주인공 한필주의 '알츠하이머' 진단이다. 기억을 잊는 병. 이 기억이 없어지는 시기를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이렇게 들어갑니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 자체로도 서스펜스가 생길 수 있다. 주인공이 언제 기억을 잊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시각적인 이미지와 알약이라는 소재로 짜임새 있는 묘사를 보여줬다. 이 알츠하이머라는 소재가 편의적으로 들어간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점은 한필주의 복수극이다. 주인공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인물은 가족을 죽인 친일파를 처단해야 한다. 그럼 이 복수극이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는가?를 영화 안에서 보여줘야 한다. 이를 영화는 캐릭터의 속성으로 돌파하는데, 구체적으로 이를 위해 초반부의 군데군데 삽입한 한필주의 성격 묘사나 전쟁 영웅 출신이었다는 설정이 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또 복수극을 벌이면서 한필주는 자잘자잘한 문제에 부딪히는데, 이 부분을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창의적인 방식을 썼다는 것도 이 부분의 장르 특성을 강화시킨 좋은 해결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만드는 소재로는 추격극이 있다. 초반부에 피살되는 인물은 굉장히 큰 기업의 CEO로 보인다. 아마 자기가 만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재계에서 알아주는 인물이기 때문에 죽으면 엄청나게 관심이 끌린다. 이를 기점으로 정만식 배우가 맡은 형사 캐릭터가 한필주의 행보를 좇는다. 여기서 경찰 캐릭터를 단순히 권력에 굴복하거나 무능력하기만 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도 충분히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이다. 주인공 일행을 뒤쫓는 사람의 입장이자 사건의 관찰자로서 일반 관객들을 대면하는 설정이 좋았다. 이야기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과하지 않게 캐릭터를 직조한 것이다. 또 다른 요소로는 주인공 인규의 속사정이다. 인규는 그냥 한국의 평범한 20대다. 피시방에서 게임하는 거,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 인물이 어떻게 필주의 복수극에 동참할 수 있었냐? 의 원인이 극에서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인물이 왜 동화될 수밖에 없는지를 섬세하게 그리며 극에서 인물에게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네 가지 스릴러 요소가 극 이해를 돕는 윤활유가 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지루하진 않다. <콜래트럴>의 형식을 차용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영화 자체의 오리지널리티가 장르적인 특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치밀하게 그린 큰 그림
그리고 영화에서 장점으로 작용했던 부분은 큰 갈래를 잘 설정했다는 부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인공 한필주의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세팅은 주제와도 이어진다. 주인공이 어떤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또 잊어버렸는지가 영화에서 주요하게 강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와 관련한 무언가를 잊어버린 묘사가 관객 입장에서 '이 사람이 이런 걸 기억하고 있네'라고 두 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하이라이트 신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때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어떤 인물은 무언가를 기억하지만 다른 중요한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 대비가 악한 무리로 속해있는 빌런들의 후안무치를 두드러지게 묘사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이 인물이 이 일을 벌이는 동기부여의 설계는 탁월했다. 이 부분은 극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극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지점이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이 한필주의 동기부여라고 생각한다.
또 초반부의 이야기 전개가 후반부에서 잘 회수되는 부분도 각본의 큰 그림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 한필주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인물이다. 영화의 다른 한 구석에서 한필주가 그렇게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럼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인물이 이런 곤궁한 상황을 겪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전직 군인이라는 설정은 후반부까지 무력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부분과도 이어진다. 또 하이라이트 신에서 인물의 행보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각본의 큰 그림은 후반부에 그대로 이어진다. 가령 인규의 속사정을 알 수 있는 부분에서 3자의 인물이 끼어든다. 이 3자의 인물이 끼어든다는 암시가 초반부에 인규가 어떤 걸 확인하면서 나온다. 그리고 이 인물이 중반부에도, 후반부에도 등장한다. 그냥 단순히 떡밥 회수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인규의 동기부여와도 관련이 있으며 인물의 행보를 가로지르는 주요 인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나름 꼼꼼했던 인물 설정을 느낄 수 있다. 극에서 크게 막히는 부분이 없으니 몰입이 잘 되는 것이다.
바퀴에 칼이 꽂힌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은 있다. 바로 각본의 섬세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선 초반부에 한필주가 얼마나 섬세한 인간인지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어떤 진상 손님이 제이슨(인규)의 4만 원을 갖고 튀게 생겼다. 억울한 인규. 이런 인규를 대신해서 4만 원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이 설계까진 좋았다. 지갑을 놓고 간 것을 빌미로 센스를 보여주던 필주. 그런데 이 사람이 4만 원을 뺏기기 위해서 음식점에서 계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음식점에서 뭔가 먹을 때 언제 계산할까? 바로 다 먹고 계산한다. 계산 딱 하고 일행이랑 차 타고 집에 안녕하고 사라지는 게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 이 일반적인 과정을 살짝 무시한 느낌이 있다. 물리적인 시간이 안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이와 비슷한 부분에서 경찰 캐릭터랑 한필주 캐릭터가 대면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있고 나서 한필주 캐릭터와 경찰 캐릭터의 행보는 굉장히 편의적으로 끼워 맞춘 부분이 있다. 우리가 만약에 경찰 캐릭터의 입장이라고 봤을 때, 이 시퀀스의 후반부쯤에 그럴만한 객관적 이유를 제시하긴 하지만 이렇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이런 김새는 느낌은 대사 작문법에도 이어진다. 군데군데 조악한 대사들이 눈에 보인다. 일단 초반부. 인규(제이슨)와 필주(프레디)가 우정을 묘사하는 방법이 없다. 핸드사인을 하고 서로 대화를 나눈다. '야. 우리 PC방 갈래? 나 롤 배웠는데.' '(음식을 먹으며) 너무 JMT야!' 전부 80대 할아버지 필주의 입에서 나온 대사다. 글쓴이는 1997년 생이다. 글쓴이의 입에서 'JMT'란 단어가 나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또 '리그 오브 레전드'를 안 한지 거의 2년이 넘어간다. 굳이 할아버지와 20대 청년과의 우정을 이런 식으로 묘사할 이유가 있을까? 굉장히 불필요한 부분이 들어간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두 사람의 우정을 묘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정을 보여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근데 그걸 어울리지도 않는 방식으로, 현실성도 느껴지지 않는 말을 하면서 보여줄 이유가 있나? 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런 조악함은 러닝타임 도중에도 몇 번 더 나타난다. 후반부에 한필주가 복수극을 펼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직접 자기 입으로 '나는 친일파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때 인물 간이 처해있는 입장에 굉장히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거지! 이거 위해서 영화 만들었지! 그런데 그 '친일파다!'대사가 들어가니까 굉장히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굳이 그 장면에서 그게 들어가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들끓는데 말이다.
또 영화 극후 반부에서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이 끝마무리되고 극에서 굉장히 중요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신이 있다. 여기서 나누는 모든 대화가 전부 다 사족같이 느껴졌다. 여기서 어떤 인물이 한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 영화를 봤던 모든 사람이라면 이 문장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나 쓰고 있는 글쓴이도 역사의 죄인들이 합당한 벌을 받았으면 한다. 그런데 이 말을 굳이 꺼내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는 의문이다. 이는 바로 직전 시퀀스에서 이 평가를 말했던 인물의 대사와도 어울리지 않으며 신파극처럼 느끼기도 쉬운 데다가 얼핏 보면 이 친일파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초를 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왜 이 영화를 볼까? 친일파를 처단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왜 카타르시스를 느낄까? 현실에서 이뤄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왜? 어떤 친일파는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 한국사회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 또 우리가 사적 복수로 누군가를 처단하는 일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대체역사물의 느낌으로 영화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평가를 굳이 입으로 말한 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선을 흐릿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친일파들은 감옥에 가서 자연사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이 평가가 전체적인 흐름을 크게 비트는 것처럼 들린다. '이 정도면 잘 만든 스릴러' '이 정도면 잘 설계한 메시지' '친일파를 잊어버리면 안 되지' 싶은 것이 '?????' 싶은 결함을 남기는 옥에 티였다.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많이 아쉽다. 기대를 아예 안 하고 갔다. 그런데 의외로 재밌었다. 올해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준비하며 일제의 만행에 대해 공부했다. 그 공부했을 때 느꼈던 화가 스르르 생각나기도 했다. 얼마 전에 어떤 정치인이 이와 관련된 망언을 했다. 이 부분도 생각났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폭력을 저질렀다. 그 타인이 누군가를 해친 것이 아닌 한 성적으로 착취하거나 폭력을 벌이는 짓이 잘하는 건 당연히 아닐 것이다. 마치 이를 합리화하는 듯한 그 국회의원의 말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그 국회의원의 말을 반박하는 것 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뿐일까? 극에서 2022년 10월 말의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에 한 기업체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 노동자 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키워드가 극에서 중요하게 쓰였다. 당연히 나 역시 화가 났던 일이기 때문에 같이 분노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을 후반부에서 중요하게 작동시키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사회에 산재해 있는 언급되지 않는 사건사고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윗 문단, 그러니까 후반부에서 대사가 아쉬웠다고 썼던 그 시퀀스를 보고 나니 상기했던 단점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쉽다. 더 꼼꼼했으면 이런 단점이 생각나지 않았을 텐데, 싶은 것이다. 이성민, 남주혁 두 배우 연기 엄청 잘했다. 이성민 배우는 <남산의 부장들>보다 더 잘했고, 남주혁 배우는 <한산>의 와키자카를 연상케 하는 뛰어난 퍼포먼스였다. 메시지도 좋고. 서스펜스 좋고. 배우 연기 잘했고. 캐릭터 캐스팅 좋았고. 그런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 뚜렷하니 좋은 평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한산>보다 더 흥행할 수 있는 영화가 꼼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굉장히 아쉬웠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분기마다 한 번씩 가는 분들에겐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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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주 최신 개봉영화(모가디슈, 정글 크루즈, 방법 재차의, 배틀 크랙, 갈매기 )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7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모가디슈 #정글크루즈 #방법재차의 #배틀크랙 #갈매기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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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14? ?국내 영화제?!?
?씨나병의 영화정보 #14? ⠀ ?열네 번째 주제? ⠀ ? 국내 영화제?! 영화제에 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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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 <유미의 세포들 시즌2> 티저 예고편 2
오래 기다렸어요? (네!!!) 더욱 강력한 심쿵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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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각의 여름> 런칭 예고편
뒹굴뒹굴 무기력증에 빠진 시인 지망생 ‘현실’.
공모전에 내야할 마지막 시가 데굴데굴 산으로 가자,
새로운 영감을 찾아 집을 나선다.
시가 산으로 가면, 산으로 가는 게 답?
‘현실’은 생각의 여름 속에서 집 나간 영감도 찾고,
호구 잡힌 자신도 찾을 수 있을까?
남다른 현실의 한여름 기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