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2022-08-19 04:06:18
시행착오를 통한 스스로의 구원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본 게시글은 시사회를 통해 개봉 전 관람한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 줄거리의 일부가 기재되어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감상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율리에는 의학을 전공하던 모범생이었으나,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얼마 후, 사실 가장 원하던 것은 사진이었다고 생각해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진을 배운다. 그러나 어느새부턴가 율리에는 본인을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가고자 하는 길을 여러 번 바꾸느라 20대가 다 가 버렸지만, 율리에는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율리에의 방황은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율리에와 악셀은 아이를 가지는 문제부터 사소한 사건들까지 다툴 일 투성이다. 인생에는 단계가 있고, 율리에는 방황하며 시행착오를 겪을 시기에 와 있다. 그렇기에 악셀이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율리에는 답할 말이 없다. 스스로가 가장 복잡하고 어렵기에. 율리에는 자신이 낯설다. 뚜렷한 직장도, 심지어는 뚜렷한 전공도 정하지 못한 율리에는 만화작가로 성공한 악셀에게 사랑과 동경, 질투, 공허함을 비롯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율리에는 악셀을 보며 자신이 실패한 인생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율리에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비슷한 단계에 있어 어려운 질문을 퍼붓지 않는 에이빈드는 최선의 대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급작스레 찾아온 아이는 율리에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악셀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악셀을 찾아간 율리에는 뒤죽박죽인 마음들을 털어놓고, 악셀은 '너와 연인일 때 해주지 못해 가장 후회되는 건 네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깨닫게 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라는 말을 건넨다. 율리에는 악셀의 마지막을 위해 그가 어릴적 살았던 집에 함께 가 사진을 찍어주고, 그의 두려움을 달랜다.
그렇다면 만약 율리에가 에이빈드가 아닌 악셀의 아이를 임신했더라도, 결론은 같았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율리에와 악셀의 사랑은 시기가 맞지 않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급급한 악셀과는 달리, 율리에는 본인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어긋난 가치관이 맺는 결실은 분명 달가운 것이 아니며, 율리에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이후 율리에는 악셀의 죽음을 마주하고, 밤새 하염없이 거리를 떠돈다.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율리에는 샤워를 하던 중 유산한다. 그는 스스로를 옭아매던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비로소 제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관객은 긴 호흡의 롱테이크 숏을 통해 율리에의 세밀한 감정을 함께 느끼며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율리에와 악셀의 이별 과정에 삽입된 뮤지컬적 연출이 인상적이며, 분위기를 살리는 영화음악과 리듬감 있는 연기가 돋보인다.
최선이라 생각해 선택했던 것들은 뒤틀린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비록 아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최악처럼 느껴지더라도, 좌절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그 수단이 반드시 사랑이 아니더라도. 지금 나의 나이에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덕분에 마음껏 배회하고, 미친듯 사랑할 수 있으리. 사랑과 인생의 행방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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