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작가2022-10-17 12:41:15
원하는 일에는 꼭 이유가 없어도 돼
디즈니플러스 [메리다와 마법의 숲] 리뷰
줄거리
깊은 전통을 가진 스코틀랜드의 연합 부족 던브로크. 퍼거스와 엘리노어 사이에서 난 첫째 공주 '메리다'. 빨갛게 타오르는 천연 곱슬모를 가진 메리다는 어릴 적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했다. 퍼거스는 그런 딸에게 활을 선물하기도 했지만, 왕비인 엘리노어는 메리다가 철저히 운명을 받아들여 공주로 살길 원한다.
메리다의 나이가 차자, 엘리노어는 다른 연합 부족과의 결혼을 서두른다. 자신들의 첫째를 메리다와 결혼시키기 위해 던브로크에 모인 '맥킨토시', '딩월', '맥거핀' 부족. 메리다는 그들보다 뛰어난 활쏘기 솜씨를 선보이며 결혼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다가 결국 엘리노어와 싸우게 된다.
성을 뛰쳐나간 메리다는 숲에서 자신을 이끄는 도깨비불을 따라갔다가 마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녀는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목걸이를 마녀에게 건네며, 엄마와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마법을 요구한다. 마녀는 작은 케이크 하나를 건네고, 성에 돌아온 메리다는 그것을 엘리노어에게 건넨다. 그러자 갑자기 엘리노어가 곰으로 변했다?
감상 포인트
1. (개인적이지만) 영어 발음이 쫜득쫜득하고 재밌어서 좋았다.
2. 메리다와 엘리노어가 함께 성장한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
3. 무난하게 볼만한 가족 애니메이션.
감상평
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정해진 대로, 주어진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이 이끄는 대로 운명을 만들어가라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의미에서 영어 원제목은 [Brave]라고 할 수 있겠다.
메리다는 디즈니에서 만든 여타 공주들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은 두 가지의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는데 반해, 메리다는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싫다고 완강하게 거부한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메리다는 그저 사춘기 반항 청소년에 불과하다는 혹독한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메리다가 자신이 싫은 것을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싫은 것에 'NO'라고 얼마나 완강하게 말할 수 있었던가?
우리는 'YES'만을 강요당했던 세상에서 이제 거절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메리다가 무엇을 할지, 활이나 쏘고 말이나 타면서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갈피가 안 잡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일평생 하고 살 거란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우리의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우리는 천천히 살아가며 그것들을 누리고 즐기면 된다. 그러니 메리다가 '대체 뭐해 먹고 살 건지'를 우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메리다는 목표의식이나 책임감은 없지만, 일단 현재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용기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무언가를 책임져야만 성공한 삶은 아니다.
나 한 사람만 만족시켜도 충분히 성공했다는 것을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메리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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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West Side Sto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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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이 본 작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코로나19"로 개봉일을 1년이나 연기했습니다.
먼저 본 사람들의 입에선 "아카데미 수상"을 높게 점할 만큼 평했으니 재수를 택한 게 아쉬웠는데요.
그렇게, 개봉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번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 - 여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와 함께 "여우조연상"까지 총 3개의 상을 수상하며 앞으로 다가올 "아카데미"의 전망을 밝혔습니다.
다만, 이런 호평과 달리 벌어들인 총 수익은 $88,285,000로 제작비 1억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 보통 5대 5로 극장과 분배되는 구조를 생각하면, 최소 2억 달러는 벌어야 영화의 제작비가 충당되거든요.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이고 추운 극장에는 캐럴 대신에 퍼질 노래들을 생각하면 차마 그대로 보낼 수는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한창 개발 중인 "뉴욕"의 패권을 두고 싸우는 "샤크파(푸에리코토리코 갱단)"과 "제트파(백인 갱단)"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서로의 집단과 관련된 "토니"와 "마리아"는 한눈에 반하는데요.
그리고 이들도 이런 서로의 상황을 알기에 싸움을 말리고자 나서지만, 갈등은 점점 걷잡을 수없이 커지는데...삼천포로 빠지는 건 뭘까?
1. 모든 문제는 복합적이다.
아시다시피,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첫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거며 쥐고 나타난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여타 감독들에게 느껴본 능수능란한 솜씨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다수의 오락 영화와 드라마들을 연출해온 필모를 보듯이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야기를 읽는데 좋은 작품입니다.
물론, 그의 오리지널 작품이 아니라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나 보여주는 이야기가 놀랍게도 현재와 비슷하거든요.세기의 명작이라는 이유는 있다.
앞에서 말한 "샤크파(푸에르토리코)"와 "제트파(백인)"는 표면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로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단면적으로 쓰지 않고 보다 복잡한 속내를 드러냅니다.
지난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서며 행한 정책을 살펴보면, "반이민 정책"이 있습니다. -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이민자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비자 발급의 제한을 걸었죠.
근데, 재밌는 건 "트럼프" 자신도 이민자의 후손일 만큼 미국은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은 국가입니다. (어찌 보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것이죠)
그 시작으로 돌아가면, 엄연히 "콜럼버스"가 "신대륙(아메리카)"을 발견했을 때도 그들은 엄연히 외국인의 위치였으니까요.2. 작금을 관통하는 공감대
그런 점에서 이들을 중재하는 장면은 흥미롭습니다.
경찰들이 "제트파"에게 "너희들이 감옥에 가있는 동안 여기 비싼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고, 너희는 푸에르토리코 경비원들에게 쫓겨나겠지"라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특히, 본 작품에서 "샤크파"는 집과 가족, 그리고 학교까지 다니는 것과 다르게 "제트파"는 직장과 집이 없는데 역사적인 배경에 빗대어 보면, 역전된 이들의 위치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들에게 "연대"라는 메시지를 꺼냅니다.얼른 사과해!
해당 작품에서 "도시 개발"로 인해 모두가 쫓겨나는 상황은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분위기를 제시합니다.
임대료가 높아져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현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떠오르게 만드는데, 이로써 싸우기보다는 뭉쳐야 함을 저들뿐만 아니라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까지 끌어들이는데요.
영화가 제시한 갈등의 문제 말고도 "젠더 이슈"와 같이 많은 대립들이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원론적이나 가장 확실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습니다.3. 느껴보지 못했던 뮤지컬의 전성기가!
이외에도 해당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것을 손꼽자면, "의도적으로 스페인어 자막은 해석하지 않았습니다"라는 텍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번역가의 의도가 아닌 감독 본인의 의도로 '이들의 갈등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미번역'은 해당 작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선 "뮤지컬" 그 자체의 존경을 표하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뮤지컬"은 "무성영화"고 "유성영화"의 과도기에 서있는 장르이거든요.모든 뮤지컬에 보내는 찬사 어린 표현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에서 관객들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과장스럽게 느껴질 만큼의 행동과 얼굴 표정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에서 보여주는 군무와 "클로즈업"과 같은 촬영기법은 관객들이 해당 캐릭터들의 감정들을 읽어야 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유성영화"로 와서 그 역할들이 유치하게 보이게 변했지만 이를 "미번역"함으로 접해본 적 없는 그때 그 시절의 뮤지컬을 경험케 하는데요.
'과연, 이게 처음 뮤지컬을 만든 사람은 맞는 건지?'를 의심할 정도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받는 감동은 끊이지가 않습니다.4. 히트곡이 이렇게나 어렵다!
이렇게, 자막을 읽을 수 없기에 이들이 보여주는 '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가야겠죠? - 아니면, '몸으로 말해요'밖에 더 안되니까...
극 중 "샤크파(푸에리코토리코 갱단)"과 "제트파(백인 갱단)"는 자신들의 생존권을 두고서 경쟁하는 조직들인데, 춤으로 이를 보여주니 우습기도 할 겁니다.
근데, "춤"은 인간에게 있어 생존을 이어나가게 만들어주는 도구입니다.
역사적으로 "강강술래"는 임진왜란 때의 상대적으로 많았던 일본군을 대항해 보이는 군사보다 많고 크게 보이려 했던 전략이었고, "탱고"와 같은 춤은 "같이 춘 사람과의 사랑에 빠진다"라는 속설처럼 세대 간의 이어짐으로 연결됩니다.이야기가 술술 읽혔다면, 듣는 건 어땠을까?
쓰다 보니 많이 길어졌는데, 그만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이야기는 앞선 수상을 납득하게 만들고 이후 "아카데미"에서의 활약을 기대케합니다.
하지만, "뮤지컬" 본연의 매력을 뽐내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안셀 엘고트"의 비중은 너무나도 적으며 귀에 쏙쏙 박힐 넘버의 부재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앞서 말한 '과연, 이게 처음 뮤지컬을 만든 사람은 맞는 건지?'라는 의심은 여기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외에도 동물들도 어떤 자세에 따라서 구애와 경계로 감정을 보여주니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보여준 춤이 그토록 격렬했던 건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개봉 연기에는 주연 배우 "안셀 엘고트"의 "미성년자 성폭행"도 있었다.
※ 극 중 "마리아"의 하얀 드레스와 빨간색 허리띠의 옷차림은 "백설공주"를 연상케하는데요. 공교롭게도 그녀의 차기작은 "디즈니"에서 제작되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백설공주"에 캐스팅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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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맘마미아, '아빠 찾기' 서사 속 어머니의 이야기
이 글은 맘마미아2를 보고 맘마미아1을 복습하면서 느낀 소소한 감상임을 밝힌다.
맘마미아2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을 예정.
내가 영화 맘마미아를 좋아하는 것은 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아빠찾기’ 서사에서 정작 중요한건 ‘아빠’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버지가 부재한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주목해왔지만 이 영화에서는 도리어 아버지 후보들을 셋이나 불러와놓고 정작 진짜 아빠가 누구인지를 가리지 않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기존의 남성중심의 서사를 답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끊임없이 그리면서 결혼식장에서 자신을 신랑에게 넘겨주기를 꿈꾸지만, 결국 이 ‘아버지 찾기’ 헤프닝을 통해 그녀가 깨달은 것은 그녀와 어머니의 끈끈한 유대와 사랑이다. 극 중 도나의 말마따나 ‘딸이 있는지도 몰랐던’ 아빠 후보 셋은 훤칠하고 개성적이며 매력적인 들러리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인공 모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한다.
그러고보면 맘마미아1에서 도나가 보였던 불안해하는 모습들은 사랑했던 옛 연인의 등장에 솔직하게 동요하고 흔들리는 모습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딸을 실망시킬까봐 두려워했던 것이 더 컸을 것이다. 20년간 부재했던 연인보다 더욱 소중했던 것은 단연코 그녀의 딸 소피였을 테니까.
맘마미아는 ‘어머니’를 어떤 이상적이고 숭고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도나’는 지극히 인간적이다. 홀몸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호텔을 운영할 정도로 강인하면서도, 옛 연인들(?의 등장에 흔들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딸이 실망할까 두려워하는. 전통적으로 싱글맘을 떠올리면 어머니의 일방적인 ‘희생’을 연상하기 쉽지만, 도나에게 소피가 그런 일방적을 희생을 강요한 존재가 아니다. 소피는 도리어, 도나의 20년을 지탱하고 꾸려나가는 것에 동참한 동반자다.
한바탕의 요란한 ‘아버지 찾기’ 서사는 도리어 가장 명확한 관계, 즉 도나와 소피라는 모녀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이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소피는 어떤 완전한 가족의 형태를 꿈꿔왔지만, 사실 그녀는 이미 완벽한 가족을 꾸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는 전통적인 가족상의 해체라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다. 소피가 막판에 결혼을 미루게 되고, 세 명의 아버지 후보들이 저마다 소피의 3분의 1만큼 아버지가 되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 만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지극히 헤테로 섹슈얼 중심의 가정에 대한 관념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이다.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렸던 샘과 타냐가 모두 돌싱이 되어버린 것은 어쩌면 꽤 의도적인 설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소피는 아빠가 셋에 엄마 하나, 그리고 잘 생긴 애인 하나라는 독특한 가족 형태를 꾸리게 되는데, 아빠 하나는 엄마와 20년 의 공백기를 둔 쌍방향 삽질()끝에 결혼했고, 아빠 하나는 엄마의 친구랑 사귀고, 나머지 아빠 하나는 게이 성향이 강한 바이섹슈얼이다.(!)
맘마미아2에서도 사실 비슷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맘마미아2가 더 좋았던 것은 전편에서 어쩌면 단순히 마음 여린 여인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도나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줬다는 것. 시시콜콜한 보이토이들의 이야기를 줄이고, 여성들의 이야기에 더욱 주목했다는 것이다.
1편에선 도나(메릴 스트립) 이외에도 훤칠한 아빠 후보들에 눈이 많이 갔다면 2편에서는 소피, 도나(릴리 에반스)의 이야기에 좀 더 확실하게 포커스를 맞춘거 같아서 좋았다. 사실 다소 뜬금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한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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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연대로 만든 따뜻한 한 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미안해요, 리키>(2019) 이후 약 4년 만에 켄 로치 감독이 세 번째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나의 올드 오크>(2023)는 켄 로치 감독의 3부작이자 은퇴작으로 남는 작품이기에 더 뜻깊은 선물로 다가온다. 켄 로치 감독 3부작은 사회 구조와 복지 제도의 어두운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관객에게 깊은 성찰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의 올드 오크>(2023)는 마지막까지 영국 북동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다른 전작들보다 영국 문화가 짙게 물들어 있고, 가장 따뜻한 영화다.
※본 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으로 참석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난민
난민 문제는 오늘날 해결해야 할 숙제로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넘어온 선량한 난민 이주자를 유럽이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다. <나의 올드 오크>(2023)는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민 수용의 갈등 문제를 그리고 있다. 시리아 내전으로 영국으로 온 야라(에브라 마리)네 가족을 본 동네 주민들은 난민 이주에 탐탁지 아니한다. 야라네 가족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거주하는 난민들의 복지가 자신들이 받는 복지보다 난민에게 더 큰 복지를 받는다는 불만과 위선을 보인다. 야라의 카메라를 망가뜨리거나 도움을 받아도 난민이란 프레임에 도리어 욕을 먹고,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The Old Oak’라는 펍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난민의 인식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함께 밥을 먹고, 영상을 보며, 점차 관계의 벽을 허물어간다. 마침내 야라 아버지 추모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추모하러 오는 장면은 모두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휴머니즘에 도달한다.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연대
영화 배경인 영국 북동부 마을은 어질러진 퍼즐과 같았다. 광산이 폐광되며 쇠퇴해 버린 마을은 각자가 살아가기 위해 바빠졌다. TJ(데이브 터너)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이혼, 아들과 깨져버린 신뢰로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자살을 택하려던 그에게 다가온 건 ‘마라’라는 강아지였다. ‘마라’는 광부 용어로 친구와 동료 그 이상의 연대를 일컫는 말이다. TJ는 다시 살아가는 용기를 얻고, ‘The Old Oak’라는 펍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이곳은 옛날 광산 노동자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쉼터이자 놀이터였다. TJ는 야라와 타니(데비 허니우드)와 함께 난민 가족들과 소외된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40년도 더 된 펍 안쪽 방을 개방한다. 과거 폐광을 막기 위한 노동자들의 연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지역 주민들의 연대라는 퍼즐 조각을 맞추기 위해 분투한다. 연대의 퍼즐이 맞춰지는가 하나 모종의 사건으로 부서져 버린 듯 보였다. 하지만, 야라의 아버지 장례식을 마을 사람들이 추모하러 오면서 아름다운 연대의 퍼즐이 맞춰졌다는 걸 알아챈다.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희망
<나의 올드 오크>는 각자가 품은 희망을 보여준다. TJ는 가족의 회복, 야라는 아버지의 생존, 펍의 단골들은 과거의 영광 등이 있다. 야라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희망과 용기가 생긴다고 한다. 야라가 찍은 사진 속 마을 사람들의 화목한 미소는 처음 마을에 도착해서 찍었던 모습과 대비된다. 의심과 낯섦에서 공존과 희망, 마을의 공동체 정신으로 변신한다. 희망은 신뢰를 통해 만들어지는 대사는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작용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 <미안해요, 리키>(2019) 보다 희망의 메시지를 그리며 극복하는 과정은 켄 로치 감독 3부작 중에서 가장 희망 있고, 따뜻한 영화다.
<나의 올드 오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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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8월 첫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정말 무더위로 힘든 한 주였던 것 같습니다.이번 주 역시 내내 비 소식이 있으니,우산 잘 챙기시고, 안전 유의하시길 바라겠습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비상선언>의 개봉주 주말의 관객 수 예측'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한산: 용의 출현> (-)▶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한산: 용의 출현>이 7월 넷째 주와 동일하게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관객 수가 굉장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1000만을 살짝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천만 관객 작품인 <범죄도시 2>가 개봉 10일째 되던 날 5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주말 동안 (8월 5일~8월 7일) 관객 수 115만 6,894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59만 8,529명을 돌파하였습니다.
2. <비상선언> (NEW)▶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수의 배우들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비상선언>.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10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특히 작품의 특성상 4DX 포맷으로 관람한다면
극을 더욱더 몰입감 있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8월 5일~8월 7일) 관객 수 81만 7,094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39만 8,281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재난 앞에 선 사람들 각각의 감정과 드라마를 담고 있다.
3. <탑건: 매버릭> (-)▶ 한 달이 넘도록 박스오피스를 지키고 있으며, 3주 넘게 3위를 유지하고 있는 <탑건: 매버릭>.
영화관에서 보면 좋은, 봐야만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관객이 줄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8월 5일~8월 7일) 관객 수 19만 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744만 8,90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12회 예측 이벤트는 8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유저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비상선언> 의 8월 5일, 8월 6일, 8월 7일의 관객 수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외계+인 1부>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49%, 여성 51%로 다른 영화에 비해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거의 동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30대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20대, 40대, 50대, 1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비상선언>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20대 초반 남성과(844,900명)과 30대 후반 남성(832,709명)이었습니다.
또한 <비상선언>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0.3%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비상선언>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미니언즈 2> (▼2)▶ 넷째 주에 2위를 차지했던 <미니언즈2>가 4위로 떨어졌습니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생각보다
적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번 주에는 <헌트>가 개봉하기 때문에 순위권에 들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말 동안 (8월 5일~8월 7일) 관객 수 17만 7,91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97만 2,79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뽀로로 극장판 드래곤캐슬 대모험> (-)▶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한 주 정도만 TOP5 안 순위권에 들어가는데 뽀로로 극장판은
현재 2주동안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기대작 헌트가 개봉하기에 이번 주에는 순위권 밖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주말 동안 (8월 5일~8월 7일) 관객 수 12만 9,40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7만 1,52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bullet Train>이 개봉과 동시에 1위를 차지하면서 7월 넷째 주 박스오피스 순위에 있던
영화 모두 한 단계씩 하락하게 되며, 5위를 차지한했던<Top Gun Maverick>이 순위권 밖으로 하락하였습니다.
주말 동안(8월 5일~8월 7일) <Bullet Train>의 매출액은 30,125,000 (한화 약 391억)의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 역시 동일합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8월 5일 ~ 2022년 8월 7일)1. <Bullet Train> 3,012만 달러 (누적 3,012만 달러)2. <DC 리그 오브 슈퍼-펫> 1,120만 달러 (누적 4,510만 달러)3. <놉> 849만 달러 (누적 9,796만 달러)4. <토르: 러브 앤 썬더> 760만 달러 (누적 3억 1,606만 달러)5. <미니언즈2> 711만 달러 (누적 3억 3,457만 달러)...씨네픽의 8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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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보여주는 건 많은데 기억에 남는 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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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치사
이 영화는 두 남자의 복싱 시합에서 시작한다. 어수선한 복싱장. 옆에 조폭들이 몇 앉아있다. 그 조폭 중에서 주인공 우철(박성웅)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식(오대환)이다. 파이팅! 우철에게 응원을 보내는 도식. 도식과 우철은 오래전부터 친한 사이다. 휴식시간이 마무리되고 다시 시합이 재개된다. 우철은 상대방에게 몇 대 얻어맞는다. 맞고 있을 수는 없다. 반격하는 우철. 상대는 우철에게 몇 방 맞고 쓰러졌다. 상대가 기절한 탓에 시합의 승부가 가려졌다. 승자가 된 우철. 하지만 금세 패자가 된다. 복싱 시합 상대가 사망한 것이다. 과실치사 혐의로 8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우철. 우철이 감옥에서 출소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성웅의 연기력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은 박성웅의 연기력이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은 두 가지다. 범죄물로서 각 세력들의 갈등이 유발하는 장르적인 재미와 명주와 우철의 로맨스가 그것이다. 박성웅 배우는 범죄물에 다수 출연한 경험을 십분 활용하듯 두 장르의 차이점을 부각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도식과 명주를 만날 때 이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는 다르다. 도식에게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 알았다 ‘ 식의 대답이 주가 된다. 명주에게는 대체로 쩔쩔매다 감정을 표현할 때는 평소보다 더 강하게 연기한다. 이 사람이 사랑에 서툴기 때문에 오히려 진심을 표현한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이 우철 캐릭터가 아닌 선에서, 나머지 인물들은 ‘가오 잡기‘ 바쁜 사람들뿐이다. 대표적으로 우철의 친구 도식은 못하는 것이 없다. 이 모든 일을 도식 혼자 전부 해결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느냐? 는 차치하고서라도 인물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영화에서 이 인물은 일만 하거나 화만 내지 별 서사가 없다. 이렇게 빈약한 캐릭터 설정 탓에 오대환 배우의 연기를 둘로 요약할 수 있다. 욕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도식의 부하 역할인 한태는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인물의 감정선이 명확하게 드러날 만큼 캐릭터의 서사가 정돈되지 않았다. 이는 이 영화가 도식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했는가? 와도 일맥상통하는데, 한태 역시 우철에게 대드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 배우의 연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센 척뿐이다. 주인공과 그에 버금가는 조연인 둘의 연기가 이런데 나머지 단역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영양가는 없는 몇 마디만 하다가 퇴장한다.
욕설 전시회
이 영화가 가진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캐릭터들의 서사다. 이 영화는 수많은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다. 두 사람(우철/도식)이 8년 전에 겪었던 복싱 시합 사건, 명주(서지혜)의 여러 문제들, 출소 후 우철이 어떻게 사회에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 도식이 조직을 운영하며 마주하는 몇 애로사항 등이다. 영화는 이 벌려놓은 수많은 문제들을 정면으로 해결하는 척 하지만 제대로 결말을 내지 못한다. 우선 복싱 사건은 후반부에 반전이 펼쳐지나 두 주인공의 리액션이 미진하다. 심각한 문제임에도 두 사람은 심적인 변화가 없다. '출소한 우철의 사회 적응 문제'에 대해서는 이 인물이 극 중 첫 장면과 후반부의 모습이 아예 모순됐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사실 살다 보면 우리 일상 속에서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 것을 전제로 깔고 싶었다면 '마음이 왜 바뀌는지'에 대한 묘사가 필요했다. 명주와 관련된 서사에서도 빈약한 부분이 많다. 이 영화 후반부에 이야기의 굴곡을 만드는 단역이 등장한다. 이 단역이 내포하는 사건은 거대하다. 하지만 이 거대한 사건 역시 영화의 엔딩과 조응하지 못한다. 그럼 왜 이 인물이 필요했을까? 단지 명주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끌고 가기 위해 캐릭터를 배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큰 단점처럼 느껴지는 것은 경찰인 정곤(주석태)이다. 사실 경찰이 악역을 맡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다. 공직자들의 삶에는 감찰이라는 것이 있다. 정곤이라는 인물이 '~장'도 아니고 이 모든 범죄와 비리들을 벌이고도 아무 견제도 들어오지 않는 것은 핍진성의 문제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지점이다(심지어 서장, 총장들도 이렇게 저지른 범죄가 많으면 오래 안 가 들킬 것 같다). 이 인물이 가진 문제가 영화에 끼치는 악영향은 크다. 정곤이 도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주인공 중 한 명(도식)에게 몰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두 인물이 처한 상황이 아예 이해가 안 되는데 두 사람의 서사가 곧바로 서 있을 수 있을까?
불친절한 영화
이 영화의 각본이 불친절한 이유 중 하나는 동어반복이다. 이 영화에서 "일 하나 하자"라는 문장은 수시로 등장한다. 보통 이런 류의 대사에서 '이 일'은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도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쓰인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우철이고, 이야기도 그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우철이 받거나 제의하는 일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명주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이 일 하나 하자'라는 말을 내뱉고 있어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영화가 하나의 일이나 인물로 재편되는 구성이 아니라 각자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일들만 어찌어찌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하나로 달라붙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기-승-전-결의 형태가 아닌 기-승-전-결의 1부 / 기-승-전-결의 2부 / 기-승-전-결의 3부의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탓에 이 영화가 장황하게 들린다. 우철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기술적인 부분이다. 영화의 편집이 묘하게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둘째로 치고, 가장 먼저 이 인물들이 치는 대사가 웅얼거려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베테랑인 오대환, 오달수, 박성웅 배우는 대사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나머지 배역들이 치는 대사는 또렷하지 못하다. 이런 기술적인 문제가 영화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편집과 촬영에서도 이와 유사한 단점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부 우철의 복싱 시합, 우철이 명주에게 소리 지르는 장면, 우철의 분향소 장면 등 세심하지 못한 장면 연출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은 이 영화의 완성도를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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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하루의 총합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굉음이 터지고 피가 터지고 시체가 터지고 마음이 터지는, 뭔가 많은 것들이 팡팡 터지는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반대쪽이다. <덩케르크>도 "이것은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는 카피가 아니었으면 보지 않았을 테고, <1917>도 그다지 볼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1917>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할 땐 좀 놀랐다. 자꾸 같이 보러 가자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친구 얼굴 봐서 한 번 보러 갔다. 그리고... 같이 미쳤다. 용산 아이맥스에 출근 도장을 찍고 포토티켓을 뽑아대는 우리는 누가 봐도 과몰입 오타쿠였다. 아무리 정상인인 척 리뷰를 써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또 <러브레터> 때처럼 과몰입 오타쿠답게 구구절절 써보려 한다. 스포일러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영화 전체를 서술하고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영화 <1917>의 수식어는 항상 "원 컨티뉴어스 숏" 이야기다. 2시간짜리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촬영했다는, 물론 당연히 2시간을 원테이크로 찍은 건 아니고 그렇게 보이게끔 잘 연결한, 즉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기법을 활용한 것이라는. 최신 기술을 집약한 영화라는.
어마어마하긴 하다. 그렇게 찍기 위해 모든 세트장을 직접 제작하고, 그 세트장 동선에 맞춰 대사 길이까지 세밀하게 조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6개월의 리허설 끝에 찍었다니 부분적으로 연극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자본과 기술의 냄새가 물씬 나는 설명에 압도되어서인지, <1917> 이야기는 평론부터 리뷰까지 기술 이야기 일색이었다.
그러나 <1917>은 기술 이야기만 하고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과시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탄탄한 영화다.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기법이라 그렇게 찍은 것뿐이다.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 탁월한 연출, 감정 머리채를 잡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지 전부는 아니다. 이 모든 장점들을 모아 더없이 주제에 집중한 영화다.
영화는 노란 꽃과 흰 꽃이 섞여 산들거리는 들판에서 시작한다. 관 속의 시체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블레이크와, 나무에 적당히 기대 눈을 감은 스코필드. 블레이크를 부르며 누구 한 명 데려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손을 내민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 채.
두 사람은 참호로 들어가 장군에게서 임무를 받는다. 적진이 후퇴했으며, 데번셔 제2연대가 후퇴한 적군을 총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항공사진을 보면 적군은 작전상 한 발 물러난 것뿐이라, 위기에 빠진 건 오히려 데번셔 제2연대라는 것. 적군이 통신망을 끊고 갔기 때문에 인편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한다는 것. 해당 연대의 1,600명 중에는 블레이크의 형도 있고, 블레이크는 지도를 잘 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 그리고 얻어걸린 스코필드도 함께 간다는 것.
참호를 빠져나가 허허벌판을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스코필드는 경악한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었다. 대량 살상 무기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말 타고 창 찌르고 칼 휘두르던 전쟁은 종말을 맞았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는 것이 당시 전쟁의 기본 포맷이 되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어깨와 등을 따라가면서 좁은 참호를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시작부터 보여주고, 짐짝처럼 참호에 몸을 기대어 죽음의 냄새를 맡는 병사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시체가 그대로 썩어 지저분해진 진흙, 시체를 파먹고 자란 큰 쥐들을 보면 적군의 공격 못지않게 비위생적인 환경 또한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의 생존을 위협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참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상상 못 할 일이었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블레이크에 비하면, 솜 전투에도 참전했다는 스코필드는 전쟁의 참상을 좀 더 겪어보고 그만큼 노련해진, 동시에 내상도 더 깊게 입은 병사로 보인다. "정말 적군이 후퇴했다면 보급품에 수류탄을 왜 줬겠냐"라고 꼼꼼히 따져보지만, 형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씩씩거리고 있는 블레이크를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참호를 벗어나기 전 그는 "Age before beauty," 장유유서라고 억지로 웃어 보이며 블레이크보다 앞서 미지의 위험에 발을 딛는다.
스코필드도 높은 직급은 아니지만, 무자비한 살육 현장이었다던 '솜 전투'를 경험했고, 거기서 훈장도 받았다. 목숨이 오가는 장면을 많이 보았고 또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순간순간 구체적인 두려움과 싸우고 있고, 말을 아낀다. 아직 순진한 블레이크에 비해 그가 좀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참 좋은 사람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장면도 그랬다.
두 사람은 아군의 참호와 적군의 참호 사이 무인지대를 지나간다. 질척한 진흙에 썩어가는 시체들만이 가득한 곳. 나무와 철조망이 기이한 형태로 뒤틀려 있는 공간. 시체가 마치 지형지물처럼 늘어져 있는 이상한 광경이다. 총검을 세우고 엄폐물을 찾으며 그들은 적진의 참호로 천천히 다가간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말 시체를 한 번 더 뒤돌아보는 표정을 봐도, 철조망에 쉽게 걸리거나 미끄러운 진흙을 올라갈 때 손 잡아달라고 이름 부르는 걸 봐도 블레이크는 전쟁터에 있기엔 아직 너무 어린 소년이다.
스코필드는 그런 블레이크를 알게 모르게 잘 챙긴다. 철조망을 잡아주다 손을 찔려도, 그 손을 썩어가는 시체에 푹 담그게 되어도 블레이크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앞만 보고 가면 그 뒤에서 총으로 엄호하고 있다. 두 배우의 섬세하고 탁월한 연기가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정말 비어 있는, 그러나 적군이 떠난 지 오래되지는 않은 적진의 참호는 반파되어 있다. 땅굴로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 날 것 같은 병사 숙소가 보인다. 누군가 미처 챙기지 못한 흑백 가족사진 앞에 잠시 멈춰서는 스코필드와 침대에 앉아 방방 스프링을 튕겨보는 블레이크. 두 사람은 부비트랩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처음부터 거슬렸던 커다란 쥐 때문에 목숨의 위기를 맞는다.
사실 둘이 출발했으니 하나는 죽거나 다치겠구나 싶긴 했다. 두 사람이 이 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플롯이면 분명 중간중간 위기를 맞고 그 위기를 해결하고 그러면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 모두가 무사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영화니까. 그럼 여기서 죽나, 하는데 블레이크의 발 빠른 대처로 스코필드는 목숨을 구하고, 첫 위기는 다행히 벗어난다.
전쟁터의 긴장감은 사람을 순식간에 옥죄었다 풀었다 한다. 사지를 벗어나고 블레이크의 농담으로 풀어지는 것 같았던 공기는 하늘을 가르는 정찰기 소리로 단숨에 다시 굳어진다. 블레이크는 때마침 나타난, 다 뭉턱뭉턱 베어졌지만 아직 꽃이 하늘거리고 있는 체리나무로 다시 분위기를 풀어본다. 5월이면 형과 함께 어머니의 과수원에서 체리를 딴다는, 아마도 가족에게 다정하고 싹싹한 둘째 아들일 그는 전장에 비현실적으로 나부끼는 꽃잎 사이를 거닐며 몇 마디 대사만으로 자신의 전사를 풍성하게 풀어놓는다.
영화가 사용한 기법 상, 그리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로드무비 느낌을 전쟁에 버무려놓은 배경 상, 게임 스테이지를 하나씩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참호의 위기를 체리 꽃잎으로 마무리하고 꼭 '2단계, 버려진 농가' 같은 느낌으로 눈앞에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젖소 한 마리와 우유 한 통이 있을 뿐 별스러울 건 없는 공간이었다.
퇴각하던 독일군은 협상국 군대의 식량 확보와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나무도 베고 젖소도 죽였는데, 한 마리가 비현실적으로 살아남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한 연대가 이런 젖소를 발견했고, 암소를 연대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스코필드는 어쩐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된다.
공중전에서 패한 적기가 추락하고, 몸에 불이 붙은 독일인 파일럿을 "편히 가게 해주"려던 스코필드와, 안 된다며 물을 가져오라고 하던 블레이크. 사제가 되는 걸 고민했던 만큼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나이브한 선의를 봐주지 않는다. 스코필드는 자신이 폭발에 쓰러졌을 때 블레이크가 그랬듯, 칼에 찔린 블레이크를 들어올려 보려 하나 이번에는 되지 않는다. 블레이크는 결국 눈을 감는다. 힘없이 떨군 그의 손 옆에 마지막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아무나 한 사람 골라잡은, 처음부터 이 작전에 반대할 수 있었다면 반대했을 이는 그렇게 유일한 전령이 된다. 동시에 군사적인 사명뿐 아니라 친구의 유언을 건네받은 개인적인 사명까지 그의 어깨에 얹힌다.
블레이크의 시체를 움직여보려 할 때 아군이 나타난다. 여태까지 두 명에 몰입해 따라가고 있다 보니 아군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건 전쟁이고,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뿐 아니라 어딘가에서 모두가 다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 상대가 적군이든, 시간이든, 죽음이든, 부상이든, 적막이든.
스코필드의 사정을 들은 스미스 대위는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며 스코필드를 사병 트럭에 태운다.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사병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스코필드는 혼자서만 다른 곳을 멀거니 바라본다. 멀어져 가는 블레이크의 시체를,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를 생각하며 전해야 할 편지를 틴케이스 안에 소중히 집어넣는다.
트럭을 타고 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다. 독일군이 길을 막도록 베어놓은 나무를 치우고, 진흙탕에 빠진 차를 밀어가며 스코필드는 시간과 싸워야 하는 간절함을 드러낸다. 그를 이상히 여기며 묻는 사병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들의 태도가 묘하게 바뀐다. 다들 말을 아끼지만,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은 작전과 무의미하게 터덜터덜 실려가는 그들의 현실은 곧 1차 세계대전 자체의 현실이다.
무너진 다리 때문에 다른 길로 에둘러갈 사병 트럭에서 내려, 스코필드는 조심스레 무너진 다리를 건넌다. 그 앞 버려진 저택에 있는 저격수와 맞붙게 되고, 명중 확인을 위해 들어간 곳에서 저격수와 대치하며 그도 죽음 코앞까지 다녀오게 된다. 영화가 잠시 암전되는데, 인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여기서 인터미션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노골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끊어냈다. 다시 눈을 뜬 스코필드는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시계가 깨져 더 이상 시간을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어느덧 세상은 어두워져 있다.
카메라는 죽은 저격수를 넘어 창문으로 쭉 내려가고, 음악은 서서히 고조되면서, 반쯤 무너진 마을로 스코필드가 천천히 들어가는 장면. 살아있는 적군을 찾아 끝까지 말살하려고 적기가 조명탄을 쏘며 날아다니고, 조명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번씩 낮처럼 밝아지는 광경, 적기의 움직임에 따라 건물 그림자가 유유히 자라나듯 펼쳐지는 광경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보이는 것과 음악이 어우러져 가슴을 쥐어잡게 하는, 놀라운 장면이다.
평화로웠던 시절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분수대와 커다란 교회가 있는 광장. (저 장면을 조명으로 만들었다니 놀랍다.) 역시 무사한 시절에 붙였을 서커스 공연 포스터. 그러나 구석에 피 묻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 이 뒤틀리고 모순적인 공간에서, 그만큼이나 반대되는 상대들을 마주치게 된다. 얼굴도 나오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닿을 듯 추격해 오던 독일군과, 그를 피해 들어가다가 만난 프랑스 여성과 아기.
이 영화에 나오는 단 두 명의 여성이자, 체리나무 장면 이후 처음으로 평온하게 숨 고르기를 하는 장면이다. 짤막한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두 사람은 대화한다. 독일군이 아님을 설명하며 여성을 안심시키고, 여성은 스코필드의 뒤통수에서 피를 살짝 닦아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스코필드가 고개를 든 건 아기 울음소리가 났을 때였다.
그는 아기를 보고 가방에 있던 부식과, 이렇게 쓰일 줄 모르고 담아뒀던 우유까지 모두 꺼내준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손을 어루만지고 시를 읊어주는 걸 보며, 아마도 그가 "집에 가는 게 더 괴롭다"라고 할 만큼 괴로워한 데에는 후방에 아이까지 두고 떠나온 이유가 있겠거니 느끼게 된다. 더불어 이 시는 무모해 보이지만 단단한 의지가 돋보이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시이기도 하다.
They went to sea in a Sieve, they did,
In a Sieve they went to sea:
In spite of all their friends could say,
On a winter’s morn, on a stormy day,
In a Sieve they went to sea!
그들은 바다로 갔네 체를 타고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모든 친구가 말려도
폭풍우 치는 한겨울 아침이었어도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And when the Sieve turned round and round,
And every one cried, ‘You’ll all be drowned!’
They called aloud, ‘Our Sieve ain’t big,
But we don’t care a button! we don’t care a fig!
In a Sieve we’ll go to sea!’
체가 빙빙 돌고 돌아갈 때
모두가 "너희 다 익사할 거야!" 소리칠 때
그들은 외쳤네 "우리 체는 크지 않지만
신경 안 써! 하나도 신경 안 쓴다고!
체를 타고 우리는 바다로 갈 거야!"
Far and few, far and few,
Are the lands where the Jumblies live;
Their heads are green, and their hands are blue,
And they went to sea in a Sieve.
저 멀리 점점이
머리가 초록빛이고 손이 푸른빛인
점블리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영화에서는 1연의 처음 5행과 마지막 5행만 읽는다. 가운데 5행은 읽지 않는다.)
때마침 시계탑 종이 울리고, 시간을 가늠한 스코필드는 단꿈에서 서둘러 일어난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이름을 모르는 아기를 거둬 기르고 있을 만큼 인간애 있고 단단한 프랑스 여인은 스코필드를 걱정하지만 그는 고마운 마음을 유감으로 전하고 단호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독일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강에 뛰어든다.
힘이 빠진 나머지 본인이 읽(지 않)은 시 구절처럼 익사할 뻔했지만, 때마침 거짓말처럼 하얀 벚꽃 잎이 흩날리고 새 소리가 들린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의 큰 축인 블레이크를 떠올리며 그는 다시 한번 힘을 낸다. 아름다운 벚꽃잎과 퉁퉁 불어 터진 시체들까지 건너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미 사위는 밝아져 있다. 참아온 눈물을 터뜨리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간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승인 듯 저승인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장송곡을 듣는다.
그들이 데번셔 2연대 후발대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마지막 전력을 다해 뛴다. 몸을 웅크린 이들, 정신을 놓고 울음을 터뜨린 이, 동료를 붙드는 이들... 다양한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나치다가, 이렇게 가서는 시간 내 닿을 수 없음을 깨닫고 참호 위로 올라서 평야를 달린다. 포탄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리면서도, 부딪혀 넘어지면서도, 병사들과 종횡을 달리해 그는 뛰어간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가 내게로 뛰어온다. 전쟁의 내상과 외상을 모두 가진 이가, 전쟁을 막기 위해 달린다. 모두가 무의미하고 적막하게 괴로워하며 앉아있다가 우르르 뛰어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때, 그 흐름을 끊고 달리는 사람이 된다.
영화 내내 궁금해하게 만들었던, 이전의 대사들을 통해 어쩌면 답 없는 전쟁광일 수도 있겠다 싶었던 인물 매켄지 또한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망을 품었지만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며 머리를 쓸어내리고,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Last man standing.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스코필드는 고개를 든다.
자막에는 "마지막 단 한 사람까지 죽는 것"이라고 번역되었다. 매켄지의 캐릭터를 감안하면 맞는 번역이지만 사실은 중의적인 문장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전투를 끊어낸 이가 고개를 꼿꼿하게 들어 반듯하게 서는 순간.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몰살도 있지만,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인간 그 자체도 있다.
전투를 막았다고 그의 사명을 마친 것은 아니다. 그는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유품을 건넨다. 이제 다시는 두 형제가 함께 체리를 딸 수 없겠구나, 슬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블레이크의 형은 인사를 나누며 스코필드의 이름을 묻는다. 윌리엄. Thank you, Will.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 건넨다. Will은 의지의 이름이었다. 시작부터 형에게 갈 거라고, 내가 할 거라고 단단하게 말하던 블레이크의 의지가 스코필드의 이름에도 들어있었다.
모든 사명을 마친 그는 더 이상 노란 꽃이 없는 들판에 혼자 앉는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마다 열어보던, 소중해진 것을 집어넣던 틴 케이스를 열어본다. Come back to us. 꼭 우리에게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담긴 가족의 사진.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이 되고 만 전장에서 그는 잠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
이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를 비롯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일화에서 따와서 만들었다. 특정 실화를 모티프로 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실화의 가닥가닥을 엮어 만든 것이다. 참호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부식을 먹고 개를 쓰다듬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는 사람들의 시간,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거둬 기르고 낯선 군인의 상처에서 피를 닦아주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들은 생각보다도 많고, 다양한 곳에 있다. 심지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 중엔 인도 남부 출신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스코필드가 노래를 들으며 나무에 몸을 기댈 때 그 자리에는 흑인도 있었으며, 사병 트럭에는 터번을 쓴 시크교도 병사가 등장한다. 가볍게 억양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딱히 희화화하는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에 비해 철저하게 유럽 중심이었던 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영화 속 이들의 존재는 놀랍다.
(실제로 1917년은 인도 남부에 있는 하이데라바드 토후국에서 영국군에 전투기를 선물한 해다. 토후국의 왕 니잠은 엄청난 부와 탄탄한 사회를 이룬 군주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패권 다툼이라는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 싸움에 가담하여 자신도 당당히 패권국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인도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참전했음을 고증하는 것임인 동시에 자본의 영향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므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찾아와 뜻밖의 만남을 가진 이들이 실은 각각 고립되어 있다시피 한 것. 각자 자기의 죽음과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게 전쟁의 무의미한 본질이다. 그러나 전쟁은 보통 큼직한 것들로만 기억된다. 솜 전투, 인천 상륙 작전, 한산도 대첩 같은 웅장한 이름들로. 수많은 전쟁 영화도 그런 순간들을 많이 담곤 했다. 일반인들의 미시사는 전쟁의 본질이 아니라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전쟁이 깨뜨린 일상의 대조점으로 주로 담기곤 했다.
그러나 전쟁 자체를 이루는 것은 거대한 전투와 군함, 장군보다 그냥 수많은 보통 사람들임을 이 영화는 담는다. 스코필드는 그중 한 사람이다. 참호 속 혹은 트럭 속의 다른 병사들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시계가 깨져도 잔혹하게 흘러가던 스코필드의 하루는 그런 여상한 하루하루의 총합이 전쟁임을 알려준다. 그냥 보통 좋은 사람들의 얼굴로, 그들의 하루하루의 총합으로 전쟁은 이루어진다. 스코필드의 어떤 하루는 전쟁이라는 전체를 닮은 프랙탈이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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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액션, 코미디
음악: 아틀리 외르바르손
제작사: 밀레니엄 픽처스, 크리스털 픽처스
배급사: 라이언스게이트, JNC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2017년 8월 18일 한국 2017년 8월 30일
상영 시간: 118분
제작비: $30,000,000
북미 박스오피스: $75,468,583 (최종)
월드 박스오피스: $176,586,701 (최종)
대한민국 총 관객수: 1,721,757명 (최종)- 킬러의 아내의 보디가드(킬러의 보디가드2) 영화정보
장르: 액션, 코미디
감독: 패트릭 휴즈
각본: 톰 오코너
제작: 크리스타 캠벨, 라티 그로브맨, 매튜 오툴
주연: 라이언 레이놀즈, 새뮤얼 L. 잭슨, 셀마 헤이엑 외
촬영: 테리 스테이시
음악: 아틀리 외르바르손
제작사: 밀레니엄 미디어, 서밋 엔터테인먼트, 캠벨 그로브맨 필름
배급사: 라이언스게이트
개봉일 미국 2021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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