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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ong2023-08-13 21:53:44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더 위험한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포일러 없는 후기

 

 

 

황궁아파트에 어서 오세요

 

영화의 배경은 주인공이 머무르고 있는 ‘황궁 아파트’ 이외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가정 하에 시작한다. 난장판이 된 세상. 집을 잃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동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법이 사라진 아파트 밖 세상. 화폐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 세상에서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며칠 안 남은 듯하다. 아파트의 주민이었던 민성과 명화. 둘은 신혼부부다. 가족이 됐다는 즐거움과 집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자연재해가 벌어졌다. 아빠한테 안 가도 될까? 불안해하는 명화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민성. 하지만 돈도 무엇도 의미가 없이 생필품만 있는 이 세상에 부부만 덩그러니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뭐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 민성. 어렵게 복숭아 캔 하나를 구해왔다. 명화랑 먹어야지! 막연한 바람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민성의 집에 입이 하나 더 늘었기 때문이다. 부부의 아파트에 아들과 어머니 모자가 들어왔다. 명화는 아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하지만 민성의 생각은 다르다. 아니 일단 우리부터 살아야지.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사소한 의견차이가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 같다. 사실 이 아파트에 ㅅ손님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는 외부인들이 서서히 문제가 되고 있었다. 민성은 명화와는 다르게 원주민들이 아닌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나가길 바라고 있다. 폭풍전야의 황궁 아파트. 어느 날 아파트의 어느 호수에 불이 났다. 모두들 어쩔 줄 모를 때 한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불을 진압한다. 남자의 이름은 김영탁.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김영탁을 중심으로 아파트가 가진 문제들을 하나, 둘씩 해결해 나간다.

 

 

 

지옥도이자 천국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취한 전략은 ‘재난이 왜 벌어졌는가’에 집중하지 않고 이 이후의 리액션에 집중한다. 재난 이후의 상황을 그리는 작품이야 많았다. 올해 공개됐던 <정이>만 봐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다. 외국영화의 경우에는 <미스트>가 그랬다. 그리고 우리가 대중적으로 잘 알고 있는 재난영화로는 <설국열차>가 있다. <설국열차>가 설정한 ‘기차 밖의 상황’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유사하다. 매우 춥기 때문에 탑승객(거주민)들은 밖으로 나가면 존재 자체에 문제가 발생한다. 공간 안에 이 인물들이 온갖 수를 써서 잔류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계급격차가 발생한다. <설국열차>의 경우에는 ‘칸’으로 등장인물들에 차등을 두며 계급을 나눈다. 공간을 통해서 인물 간의 계급과 현세태가 받아들일 사회구조가 모순적인지를 드러내는 봉준호 감독이 구사한 일종의 비유법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 <설국열차>와 공통점을 가진다. 우선 한 공간을 바탕으로 계급격차를 나눈다. 외부 세상이 전부 무너졌는데 계급격차가 어떻게 나뉠까에 대한 부분이 영화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물로서 사회를 어떻게 풍자하는지가 가진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어떻게(how), 누가(who) 계급을 나누고 또 그 사이에 들어가는가에 대한 묘사가 영화가 묘사하고 싶었던 한국사회의 구멍이자 그림자가 된다. 반대로 차이점은 비유의 방식이다. <설국열차>가 꼬리칸과 머리칸의 대비를 통해 사회계급 간의 격차를 비유로 드러냈다면 이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 삶의 현실적인 부분과 닿아있다. 한국적인 특성으로 리얼리티를 높인 셈이다.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디테일한 부분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높인 것과 유사하게 영화 플롯 구조의 입체성을 부여했다.

 

 

나는야 박찬욱 키드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다. 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박찬욱 감독의 향이 어느 정도 풍겨있다. 최근작 <헤어질 결심>에서 중요했던 건 시점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 시점이 엇갈려 서로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시점의 엇갈림은 민성-명화 두 인물의 관계, 또 영탁과 그 나머지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 <박쥐>에서는 작품에 서려있는 광기를 묘사하기 위해서 카메라나 음향이 굉장히 중요했다. 후반부 즈음에 김혜숙 배우 캐릭터 쪽에 클로즈업 역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있어 핵심으로 작동한다. 또 영화에서 기괴하게 틈입하는 청각적인 대사가 몇 줄 있다. 이 부분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복수의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했다.

 

 

 

그중 영화에서 박찬욱 감독의 향수가 느껴지는 지점은 장면의 시각화다. ‘적당히 잘 사는 아파트’를 영화에서 미술로 표현한 방식은 <박쥐>의 태주가 머무르는 집이 연상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각적인 디테일을 하나하나 다 챙긴 지점이 초반부에 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장면인데, 그 단역/엑스트라 동선이 깔끔하다. 또 이야기 듬성듬성 들어가 있는 유머가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건조한 분위기에 유머가 들어간 것과 유사한 특징이 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있다. 영탁(이병헌)의 가장 마무리 장면은 <복수는 나의 것>의 엔딩신 아이러니와 병치된다. 이런 디테일한 요소도 박 감독의 영향이 느껴지는 것과 별개로 가장 크게 ‘나는 박찬욱 키드다’라는 인장을 쾅 박은 부분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OST 삽입곡이 있다. 이 장면을 딱 둘러싸고 ‘왜 이 노래가 들어가야 했는가’에 대한 부분, 또 그 이전에 이 노래를 부르는 인물의 캐릭터 자체가 박찬욱 감독의 캐릭터 작법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거시적이면서 미시적으로

 

영화가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일단 주요 인물들 대부분이 무슨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집착이 서려있다. 명화/민성 부부는 신혼부부다. 이 부부는 집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이 영화 대사로 표현된다. 이 대사로 표현된 부분은 재난 이후에 인물들이 대화할 때도 등장한다. 이 대화를 나누는 신에 첫 등장하는 금애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집단의 우두머리가 갖고 있는 위선을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층수마다 재난 이전에 사람들이 서로 계급을 나눴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이 부분이 영화의 어떤 지점에서 중요한지 체크하며 보는 것도 작품의 재미요소다. 이 외에도 영화에서 주민들의 직업, ‘집단이 합의해서 내린 의사결정’의 맹점, 유토피아의 진정한 의미까지 작품이 갖고 있는 ‘한국적인 요소’가 걸리적거리지 않고 더 극적인 분위기를 유발하는 장치가 된다는 점은 영화의 굉장히 큰 강점이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고 그 토대에 부동산이 있다. 엄태화 감독이 부동산이라는 소재를 탁월하게 해석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더 큰 장점은 반대측면에 있다. 바로 박보영 배우가 맡은 ‘명화’ 캐릭터 세팅이다.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 ‘명화’와 유사한 인물은 흔하다. 우리 한국사회에도 명화와 비슷하게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박보영 배우는 이를 디테일하게 살릴 수 있을 만큼 선한 미모를 가지고 있다. 캐스팅만 보면 ‘이 영화에서 너무 전형적인 패턴으로 묘사된 것 아니냐’라고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에 이 명화의 말을 어떻게 터트려서 마무리지었는지가 있다. 또 이 인물이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을 때 바로 반대에서 ‘마냥 그렇지만은 않아’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장르의 클리셰를 주파하는 좋은 선택지였다.

 

 

 

왜 다들 잘하지

 

이 영화에서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 같은 장점은 배우의 연기다. 아마 이 영화가 입소문을 탄다면 배우들의 호연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병헌 배우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묘사한다. 어떻게 입체적인가? 초반부에 등장하는 것 보고 ‘아 이 사람 후반부에 이렇게 될 것 같네’의 너머를 묘사한다. 점점 드러내는 광기가 아니라는 점이 아주 중요했다. 이 부분은 이야기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데 있어 아주 중요했는데, 한국 최고의 남자배우답게 정말 잘 이해해서 표현했다. 이런 유사한 캐릭터는 우리가 <악마를 보았다>나 <마스터> 같은 빌런 연기로 자주 볼 수 있었다. 또 선한 사람이 파멸을 맞이한다는 설정은 <달콤한 인생>에서도 봤던 모습이다. 이 이병헌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뚫고 나오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다. 아마 내년 백상예술대상 같은 시상식에서 후보 지명 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김도윤, 박지후 배우 역시 경력에서 손꼽힐 만큼 의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박서준, 박보영 배우는 그동안 전형적인 영화에만 출연했다. 키 크고 잘생겼지만 어딘가 허당인 구색이 있거나(<드림>, <청년경찰>)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특화(<과속스캔들>)가 된 캐릭터였다. 이 작품에서 두 배우는 필모그래피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다. 특히 박서준 배우는 열정이 느껴졌다. 김선영 배우는 후반부를 보면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한국영화의 수많은 캐릭터들을 정공법으로 부숴버린다. 이 사람이 <세 자매> 분했던 배우라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박지후/김도윤 배우는 <벌새>나 <럭키 몬스터>에서 봤던 연기의 연장선상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 두 배우의 연기가 당연히 좋았지만 혜원/도균이 캐릭터 핵심은 인물 연출이다. 관객분들이 이 두 사람의 특정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실 것 같다.

 

 

 

이 배우들의 호연을 뒷받침하는 데 있어 청각적인 요소를 다 잡았다는 점은 영화의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큰 장점이다. 영화에서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는 것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다. 하지만 모든 대사가 다 들리는 것은 이 부분은 이야기가 한국사회의 집단이기주의를 풍자하고자 했던 메세지적인 측면에 설득력을 부과한다. 심지어 영화 카메오에 한 배우가 나온다. 이 배우는 속삭이는 딕션으로 유명한데 이 분 마저도 대사가 다 들린다. 저번주 개봉작 <더 문>과 대비된다.

 

 

 

정말 굳이

 

전체적으로 모든 요소가 딱 달라붙은 스릴러물이지만 굳이 트집을 잡아보자면 영화가 무겁다는 점이 단점이다. 영화가 행복해지는 작품은 아니다. 올해 <범죄도시 3>이 1000만 관객을 넘었다. <엘리멘탈>은 또 6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밀수>는 400만을 넘어 손익분기를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세 작품은 시각적으로 유쾌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물의 감정이입으로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대비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정말 굳이’ 뽑는 단점이고 이야기의 완성도의 관점에서 <범죄도시 3>이나 <엘리멘탈>보다 더 훌륭하다.

 

 

 

그리고 이야기에서 한 키워드가 뜨문뜨문 등장한다. 김영탁 캐릭터에서도 보이고, 엔딩 시퀀스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장면들이 관람에 지장이 가는 건 아니지만 이해 못 하는 관객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떤 걸 보여준다는 발상은 오히려 문제의 근원을 따진다는 점에서 좋은 연출이지만 이미 밀도 높은 블랙코미디에 곁가지처럼 느껴진다.

 

 

작성자 . udong

출처 . https://brunch.co.kr/@ddria5978uufm/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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