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2-12-11 12:33:44
재밌는 영화로 태어날 수 없다지만...
#탄생 / A Birth, 2022
제목만 봐선 손이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물며, "종교"와 관련된 영화는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판별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눈길이 가는 데에는 주인공 "김대건 신부"를 맡은 "윤시윤"분을 비롯한 화려한 이름들과 얼굴들이다.
"안성기 - 김강우 - 이문식 - 이경영" 외에도 "윤경호 - 정유미" 등의 출연은 '이 영화의 매력이 뭔지?'를 되려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 <탄생>은 조선 최초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의 전기 영화로 "어떻게, 사제가 되었는지?"부터 "순교"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1. 종교도 하나의 방식이었던...
해당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왜, 천주교를 싫어할까?"에 대한 질문부터 해소되어야 영화 <탄생>이 좀 더 이해가 될 거다.
물론, 이에 있어 "모든 사람이 같다"라는 신분 제도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고대사부터 "종교"는 권력자들이 애용하는 통치 수단 중 하나이다.
흔히, "단군왕검"이라는 칭호부터 "제사장"과 "군주"를 합친 말이고 이후 "삼한"에서는 "천군(제사장)"이 다스리는 "소도"는 하나의 성역으로 작용했으니 '그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라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를 왕과 소수의 기득권층에게 적용했으니 이외의 종교를 가져온다는 건. "반역"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영화 <탄생>이 선택하고 집중했어야만 했다는 말이다.
2. 역시, 재밌게 만들기가...
먼저, 영화 <탄생>은 러닝 타임이 150분으로 일반 영화와 견주어도 상딩히, 많은 분량을 가졌다.
그럼에도, 쌓여지는 설명이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이유에는 주인공 "김대건 신부"의 외적으로 벗어나지 않고, 그에게만 시점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전기"인 만큼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150분 내내 보자니 했던 말 똑같이 반복해 서사를 빼앗긴 다른 캐릭터들은 무미건조하게 말라간다.
그래서, "왜?"라는 동기를 꺼내 관객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물론, "마음이 시켰다"라는 이유도 될 수 있지만 해당 종교인이 아닌 필자와 같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 말은 "그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세도정치"로 인한 혼란한 '당시 조선의 상황과 맞물려 설명했다'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을 말해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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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무패 9단계의 최고 단계가 어쩌면 '패배하기'는 아니었을까?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 필자가 다소 꼬인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토마스 에디슨의 본 명언을 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직 실패가 너무 무섭다. 작다면 작은 실패와 고난을 반복해가며 만들어진 두려움은 당분간 도전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는 말은 필자에게 있어 '흥. 웃기고 있네'라는 멸시의 대상이면서 역설적이게도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나보다 많은 것들을 먼저 경험한 분들의 말씀, '지금 너가 겪은 것들은 모두 예고편에 불과해'와 같은 직언은 닥쳐올 실패들을 앞서서 걱정하게 해, 이 모든 역경들을 이겨낸 그분들을, 역경들을 떨쳐내고 성공을 해 명언을 남긴 토마스 에디슨을 존경하게 한다. 본 작품을 모두 관람한 이 시점에 질문을 하나 해보자. 실패를 하고 있는 난 패배자이고, 토마스 에디슨은 승리자인가? 토마스 에디슨이 과연 전구를 발명하고 축음기를 발명하기 전까지도 늘 그는 승리자였는가? 명언을 깨닫고, 내뱉기 전까지는 그도 어쩌면 수 많은 패배자들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승리자와 패배자를 구분 짓는 기준이 무엇인가.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은 승리자와 패배자로 이루어진 이분법의 재판장에서 패배자의 손을 들어 세상 모든 패배자들을 위로하고 따스히 안아준다. 재밌는 건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과연 그 구분이 실재하는 것인가 묻기도 한다는 점이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중반부, 주인공 가족인 후버 가족의 가장 별종, "드웨인"의 절규가 이어졌던 배경 속 뒤 표지판엔 흥미로운 구절이 보인다. '뭉치면 산다.' 군대나 전쟁과 어울릴 법한 구절이 가족 오락 드라마에 사용된 데엔 어쩌면 이는 의도적인 설정으로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내포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본다면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은 산개와 화합의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보여진다. 특히 이를 주 배경이 되는 장소의 구분을 통해 표현한다.
우린 흔히 '혈연으로 이어진 인간 공동체'를 '가족' 내지는 '가정'이라고 부르는데, 두 단어의 앞 글자가 모두 '집 가(家)'라는 데엔 '가족=집'이라는 걸 의미하는 지 모른다. 가족의 정신과 마음이 모두 담긴 집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는 영화의 초반부 씬을 보면 화합과 결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불안한 가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대화가 긴밀히 오가는 식사 씬에선 쇼트와 역쇼트를 빈번히 사용하여 영화의 호흡을 빠르게 가져가지만 인물들이 집의 복도 내지는 공간을 누비는 장면에선 롱테이크로 촬영한 점이 인상적이다. 대화 씬의 속도와 걷는 씬의 속도가 다른 데엔 빠른 대사와 박자감을 통해 갈등의 흥미진진한 진행을 표현하고자 함과 상대적으로 천천히 이동함으로서 집 안에 만연하게 존재하는 가족 간 미묘한 거리감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그러던 와중 불안과 불합치만이 존재하던 집안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영화의 본격적인 사건의 중심인 막내 "올리버"의 '미스 리틀 선샤인' 진출을 위한 캘리포니아 행 여행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바로 여행 중 차량 클러치가 고장 나 모두가 차를 밀면서 한 명씩 탑승하는 장면이다. 본 씬과 영화의 전 후 서사를 비교해보면, 본 씬을 기준으로 인물들의 분위기와 표정 등이 변하게 됨을 눈치 챌 수 있다. 공군 사관학교에 가고자 했던, 니체를 극심하게 믿어 침묵의 서약을 했던 아들 "드웨인"의 늘 무표정이던 얼굴이 입체적으로 변해 절규도 하고 웃기도 했으며 작품의 진 주인공으로 보여지는 삼촌이자 잘 나가는 학자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몰락해버린 "프랭크"가 무한의 우울함에서 벗어나 웃고, 떠들고, 위로하고, 도전하기 시작한 계기도 바로 본 장면을 기준으로 한 후였다. 영화의 종반부 이러한 행동이 똑같이 반복된다는 점은 본 씬의 중요도를 영화가 의도적으로 일러주는 것 같으면서 인물들의 행동이 워낙 재밌다 보니 중반부 이후 차를 출발시키려는 씬들이 등장할 때면 이번엔 어떻게 가려나 하는 흥미로운 생각마저 하게 해 영화에 크나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 운, 신, 미스 리틀 선샤인. 본 작품을 본 분들이라면 모두 인상깊다고 생각할 만한 영화의 소재들이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행복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사물과 존재들에게 아이러니를 더한 대사와 연출들을 보여준다. 이런 아이러니함의 중심엔 항상 아빠 주인공인 "리처드"가 서 있다. 달달한 맛과 시원한 온도감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아이스크림에겐 '미인대회에서 떨어지기 위해 먹는 패배자들을 위한 음식'이라는 칭호를 딸 앞에서 서슴치 않게 씌웠고, 삼촌 "프랭크"가 "올리버"에게 운을 빈다고 했을 때 "운 따위는 나약한 패배자들이나 의지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운을 비운의 존재로 전락시켰다. 인상깊은 점은 바로 이런 "리처드"가 승리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해 도착한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장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딸을 만류하기 위해 내뱉은 첫 마디가 바로 "너의 운을 빌어."라는 것이다.
패배자와 승리자를 항상 구분 짓고 '절대무패 9단계'라는 본인만의 잣대로 비교하던 "리처드"의 영화 속 삶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는 승리자였느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되고, 이는 아이러니함의 시작점이다. 절대무패 9단계라는 본인만의 학설을 자랑스럽게, 마치 승리자인 것처럼 강연하지만 협소한 공간에서 몇 안 되는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아이러니, 몰락한 학자인 "프랭크"를 패배자라고 멸시하지만 본인도 다른 사람의 확실치 않은 말 한마디에 설레발치며 사업을 확장시켜 결국 파산 직전에 다다르게 되었다는 아이러니는 "리처드"를 마치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것과 같은 역설로 보이게 한다.
작품의 재밌는 지점은 운과 아이스크림의 존재 뿐만 아니라 신의 등장 타이밍과 미스 리틀 선샤인의 존재에도 있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속 'GOD'이라는 단어가 실제 대사로서 등장하는 때를 생각해본다면 할아버지가 마약 하는 씬이나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리처드"가 이상함을 느끼던 때이다. 물론 영어 대사나 영문화권 사람들의 평상시 말에도 GOD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고, 관용어와 같이 각종 상황에서 사용되지만, 단어의 뜻과 같이 실제 신의 은총이나 신의 손길이 필요치 않은 장면에서 유독 'GOD'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는 건 영화가 의도적으로 단어와 대사를 통해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하고자 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미국의 최고 미인을 선정하는 대회인 미스 아메리카 그리고 아동계의 미스 아메리카인 미스 리틀 선샤인을 영화가 연출한 방법도 이러한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본 관람객마다 생각은 모두 다르겠지만 필자의 관점에선 영화가 미스 리틀 선샤인과 미스 아메리카에 선정된 인물이나 출연한 인물들 심지어 행사 자체를 그리 아름답게 담지도, 좋은 의미로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게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끔 여지를 남겨놓은 것처럼 보여졌다. 미스 리틀 선샤인과 미스 아메리카. 어쩌면 모두 승리자를 뽑기 위한 행사이고, 선발된 인원들 또한 모두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영화가 승리자를 예찬하고, 승리자를 위한 작품이었다면 두 존재를 더욱 매력적으로 그리지 않았을까?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은 모든 루저들, 모든 패배자들을 위하는 영화이다. 스스로 패배자이면서 패배자임을 인정하기 싫은 가정이 승리자가 되기 위한 여행을 떠났고, 그 끝엔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인정하는 것으로 그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영화는 그런 패배자들을 처절하고, 비참하게 그렸을까? 승리자라고 스스로를 추대했던 초반부의 처연한 분위기와 패배자임을 인정하고 승리자와 패배자를 구분짓는 행위마저 모두 의미 없음을 드러낸 종반부의 행복한 분위기의 차이는 그 반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모두 패배자이고 그저 인정만 하면 된다고 단정 짓는 작품일까? 물론 그렇지도 않다. 영화 속 승리자로 보여지는 사람들의 외양, 이미지, 풍기는 분위기 모두에서 과연 그들이 어떠한 면에서 승리자인 것인지 의심하게 만들고 오히려 패배자로 보여지는 후버 가족의 이미지와 풍겨지는 분위기를 더욱 빛내는 것처럼 연출했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은 패배자를 낙담시키지도 그렇다고 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가 패배자이자 승리자임을, 패배자와 승리자를 구분지어 평가하는 게 모두 덧 없음을, 승리자와 패배자를 구분짓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건 바로 화합 그리고 사랑이란 걸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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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승 | 엉성한 토스와 힘이 부족한 스파이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도자 생활 내내 10%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적이 없는 배구 선수 출신 감독 '우진'(송강호). 아내와도 이혼하고 맡은 팀도 없던 그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해체 직전의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 에이스 '성유라'가 이적하면서 오합지졸이 된 팀이지만, 우진은 기꺼이 감독 제의를 받아들인다. 1년만 버티면, 대학 배구팀 감독으로 옮겨주겠다는 이면의 약속과 함께.
의욕 없는 감독과 실력 없는 선수들이 만나 개막 후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한 핑크스톰. 하지만 자기 선수 생활을 망친 '문오성'(김홍파) 감독에게 조롱을 당한 뒤 우진은 마음을 고쳐 먹는다. 악연인 스승 앞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겠다고. 이에 발맞춰 안하무인 구단주 '정원'(박정민)도 핑크스톰이 1승을 하면 상금 20억을 풀겠다는 파격 공약을 걸자, 우진은 단 한 번이라도 이기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잘못된 비빔밥
대부분의 상업 영화가 그렇지만, 특히 스포츠 영화는 모범답안이 확실하다. 서사적으로는 전력이 약한 팀이나 선수가 기대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초반 훈련 과정은 유머로, 후반부에는 감동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국내에서는 <국가대표>가 가장 대표적이다. 작년에 개봉한 이병헌 감독의 <드림>이나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도 비슷한 결의 영화다.
캐릭터는 감독과 선수가 핵심이다. 균형추가 한쪽으로 쏠릴 때도 있지만, 감독과 선수는 대체로 서로의 아픔과 상실감을 위로하며 한 팀으로 거듭난다. 근래에는 <머니 볼>이나 <스토브리그>처럼 단장, 구단주 등이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 대신 스포츠 산업 종사자의 이야기를 다룬 <에어> 같은 영화도 유사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신연식 감독의 <1승>은 스포츠 영화의 공식과 트렌드를 모두 반영하고자 했다. 오합지졸 배구 감독과 선수를 묘사한 대목은 <드림>과 같은 웃음을, 그들이 한 팀이 되어 마침내 승리를 거두는 모습은 <국가대표>나 <우생순>과 비슷한 감동을 목표로 한다. 구단주가 새로운 목표에 맞는 팀을 재조직하는 과정은 <스토브리그>를 만화적으로 변형한 듯하다. 문제는 이 모든 요소가 따로 놀면서 서로의 맛을 해치고 있다는 점이다.
웃기 힘든 코미디 영화
<1승>의 초반부는 코미디를 지향한다. 구단주의 인수 사가, 단기 감독 임명, 의지 없는 선수의 조합만 놓고 보면 누가 보더라도 코미디다. 팀 내에서 쏟아져 나오는 갈등과 문제 역시 그 재료로서 적합하다. 코칭스태프와의 어떤 논의도 없이 에이스나 가장 안정적인 포지션 선수만 팔거나, 징계받은 선수를 대거 영입하고, 현금 트레이드를 하는 등.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기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런데 <1승>은 뻔뻔함이 부족하다. 코미디나 만화적인 전개로 빠지려는 찰나에 톤을 다운시키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우진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1년만 프로 감독직을 맡은 후 대학 배구팀 감독으로 넘어가려는 속물로 묘사된다. 그런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영화는 우진과 스승과의 악연, 전처와 딸과의 미묘한 관계를 거듭 삽입하면서 웃음이 나오려는 분위기를 끊어버린다.
선수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폭행을 저질렀던 선수, 마흔이 된 베테랑 선수, 분노 조절 장애 선수, 일본 교포 출신 용병 등 각자 사연이 있는 문제아들은 훌륭한 유머 재료다. <드림>만 하더라도 노숙자 축구 선수들의 개인사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 더욱 뭉클하게 표현한 바 있다. 하지만 <1승>은 이 모든 선수들을 단지 과거 팀의 에이스였던 성유라와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소비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한다.
즉, <1승>은 만화적인 분위기를 밀어붙이는 뚝심이 부족하고, 다양한 캐릭터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했다. 꾸준히 비정상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정원 정도가 예외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인물들은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 성급하게 대사를 한다. 이는 코믹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장애물이 된다. 뻔한 유머 포인트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으니, 큰 웃음이 나오기 어렵다.
목적이 결여된 1승
중반부 이후에 톤이 완전히 바뀌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그토록 1승을 염원하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 일반적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려면 감독이나 선수가 진심으로 1승을 원하게 되거나,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던 그들이 한 팀으로 거듭나게 되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국가대표>에서도 선수와 코치 모두 각자의 개인사나 비밀을 털어놓은 후에야 한 팀이 됐다. 그런데 <1승>에서는 그 전환점이 잘 안 보인다.
그래도 구단주와 감독의 목적은 유추할 수 있다. 정원은 일관적이다. 그는 문제아만 모이는 꼴등 팀이 1승을 챙겨서 반전 드라마를 썼다는 스토리텔링을 티켓 판매에 적극 활용한다. 우진의 변심도 어느 정도 근거가 보인다. 자리만 지키자는 생각을 하던 그는 고등학생 시절 선수 생활을 망쳤던 스승에게 패배한 후 조롱 섞인 비난을 듣는다. 이에 그는 어떻게든 1승을 챙겨서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는 욕구로 무장한다.
문제는 선수들이다. 적당히 연봉만 받자는 태도를 보여주던 선수들은 우진의 일갈 몇 마디에 갑자기 훈련과 경기에 몰입한다. 그 계기는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를 받고 싶어하는 몇몇 유망주를 제외하면, 선수들이 왜 1승을 원하는지를 좀처럼 알 수 없다. 성유라 관련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 결과 <1승>은 마지막까지도 각 캐릭터의 플롯이 하나의 목적지에서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스포츠 영화' 중 '스포츠'는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승>은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매는 힘이 있다. 바로 배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힘이다. 실제로도 배구 경기 양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구현하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초중반까지는 배구 경기가 흥미롭다고 하기 어렵다. 선수들 자체의 실력 문제가 있다 보니 경기 장면은 맥 빠지기 일쑤다. 하지만 후반부부터는 박력 넘치고, 쫄깃한 경기 장면이 등장하면서 보는 맛도 덩달아 살아난다.
특히 그래픽과 촬영분을 적절히 배합해 가능한 코트 위에서의 긴장감과 박진감을 재현하려 한 시도가 눈에 띈다. 특히 배구공에 카메라를 달은 시점에서 코트 양쪽을 10번 이상 오가는 랠리를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마치 <챌린저스>에서 테니스 공에 카메라를 단 시점으로 테니스 경기를 보여준 것을 연상시킨다. 배우들의 어설픈 움직임도 감출 수 있는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특정 배구 용어와 작전이 어떻게 코트 위에서 펼쳐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연출도 흥미롭다. 사실 해당 스포츠의 열성적인 팬이 아니라면 경기 도중에 전술, 전략적인 측면을 알아챌 눈썰미를 갖추기 어렵다. <1승>은 관객의 눈썰미까지 보충해 주면서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특정 선수 교체 타이밍, 서브 공격 작전, 후위 공격과 속공 활용 시점, 포지션 변경 이유 등을 짚어주는 식이다.
그 덕분에 드라마가 공감되지 않거나, 유머 포인트가 웃기지 않더라도 <1승>은 결말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감동을 보장한다. 1세트, 1점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마지막 두 세 경기 양상을 쫓다 보면 승리를 향한 집념에 자연히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영화의 힘이라고 볼 수 없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퀸의 라이브 에이드 무대를 재현했을 때의 전율을 두고 영화보다는 퀸의 노래 덕분이라는 말이 나온 것과 비슷하다.
세대교체?
배우들 상반된 모습도 특이점이다. 박정민은 다시 한번 가치를 증명했다. 자칫 유치하거나 과장되어서 어색할 수도 있는 만화적인 캐릭터에 최소한의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배우 본인이 인터넷 방송에 익숙해서인지는 몰라도, 최근 한국 영화에서 개인 방송 화면이 등장할 때 느껴지는 위화감도 최소화했다. 만약 정원을 중심으로 더 유쾌하게, 끝까지 B금 감성을 유지했다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반면에 지난 20여 년 간 국민 배우였던 송강호의 선구안은 이제 의문스럽다. 물론 <1승> 속 모습만으로 그의 연기력을 비판할 수는 없다. 애초에 그에게 주어진 우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이니까. 과거의 상처 때문에 속물처럼 살던 감독이 어릴 적 열정을 되찾는 서사는 스포츠 영화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클리셰다.
다만 <기생충> 이후 <나랏말싸미>, <브로커>, <비상선언>, <거미집> 등 송강호가 명성에 걸맞은 완성도를 갖추거나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디즈니+의 <삼식이 삼촌>도 다른 OTT 시리즈에 비하면 반향이 크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승>은, 아무리 개봉일에 국가적 불상사가 겹쳤다 하더라도, 송강호가 믿고 보는 배우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를 남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Poor 형편없는
우격다짐, 뒤죽박죽으로 간신히 챙긴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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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가족, 보통의 뻔뻔함, 보통의 부끄러움
대형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변호사 재완(설경구) 부부다. 돈 많이 버는 변호사 재완. 여러모로 부러운 인생이다. 그 부러운 인생을 1000% 누리고 있는 건 젊은 아내 지수(수현)다. 온갖 럭셔리한 와인과 음식으로 매일을 즐기고 있는 지수. 부부사이도 좋아 재완에겐 사실 걱정할 게 별로 없다. 그 적지 않은 걱정거리 중 하나는 딸 혜윤(홍예지)이다. 아낌없는 주는 아버지인 재완. 체크카드건 신용카드건 선뜻 내준다. 심지어 공부까지 꽤나 하는 편에 인간관계도 좋으니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은 자상한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 부부다. 어느 종합병원의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재규. 불친절한 의사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같이 친근한 사람이다. 아픈 사람의 보호자에게 공감할 줄 알고, 아내에게도 가정적이다. 심지어 강직하기까지 하다. 소속된 병원에서도 뛰어난 업무처리능력과 올곧은 성품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다. 친형인 재완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선 훌륭한 사람이다. 심지어 아내 연경(김희애) 역시 약자에게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임과 동시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생이다. 가족 간의 관계도 좋은 편인데, 또 치매에 걸린 재규의 어머니도 정성스레 보살필 정도다. 형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입이 안정적인 재규. 역시 별로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몇 안 되는 걱정거리는 아들 시호(김정철)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호. 유일한 친구라곤 사촌누나 혜윤이다. 뭐 형제의 자녀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게 문제야? 두 부부가 딱히 이 둘의 사이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던 도중 사건이 터진다. 혜윤이 위축된 시호를 위해 친구들이 가득한 파티에 동행했고, 이 두 사람이 술김에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나의 자녀들이 사람을 죽였다. 과연 두 부부는 어떤 선택을 보여줄까?
지지부진한 타율 속 안타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가장 첫 번째 생각.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다는 것이다. 어느새부턴가 한국 상업영화에 문학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듯하다. 올해 흥행했던 한국영화를 보면 다 장르적인 쾌감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탈주>나 <베테랑 2> <파묘> 같은 영화를 생각해 보면 다 별개의 작품이긴 해도 ‘팽팽한 긴장감이 재미있었어’라고 결론 내기 쉽다. 영화가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시각적인 쾌감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는다. 이것에 반대선상에 있는 <리볼버> 같은 영화는 사실 사람들이 주연 배우의 기행만 기억하지 많은 사람들이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본작 <보통의 가족>은 이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정밀하게 짜여있는 세상을 그대로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글쓴이 머릿속에 생각나는 소설.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란 작품이다.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김기태 작가의 저널리스트적인 서술이 이야기 전면에 깔려있어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또 세계를 구성하는 세상에 대해 성실하게 묘사한다. <보통의 가족> 역시 이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라는 소설처럼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있어 어떤 장면은 종교를 끌어온다던가 먼발치서 촬영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너무 내밀한 사연은 쓰지 않도록 유도한다. 또 이 영화를 둘러싼 인물들의 판단과 감정, 세계관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재완과 재규 형제의 내면을 보여주는 사건이 시간순서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소설 초반 설정 설명하듯 핵심이 된다는 점에서 문학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심오한 작품성만 드러낸 영화다? 아니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서도 뛰어난 스릴러물이다. 빠른 템포로 장면을 쳐내면서 이야기를 힘 있게 전개한다. 또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의 연기와 사건 구성을 기괴하게 보여줌으로써 기이한 동력을 촉발시킨다. 어떤 면에서는 <서울의 봄>이 장르적으로 좋은 영화였다는 점과 공통점을 가지기도 한다.
인간 광기의 근원을 묻다
이 영화에서 ‘보통’의 의미는 러닝타임이 가면 갈수록 변하고 있다. 초반부. 영화가 두 가족을 보여준다. 재완 가족은 쉽게 말해 금수저다. 돈이 많은 재완. 아버지가 잘 나가는 변호사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딸 혜윤(홍예지). 혜윤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외모도 예쁘고 아버지가 돈이 많으니까 평범한 학생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재규 부부의 아들 시호는 평범한 아들이다. 평범한 외모와 체형에 학원도 다닌다. 아마 성적도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호가 겪는 일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이런저런 상황을 겪으면서 인물 내면에 고요한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평범하지 않은 가족과 평범한 가족이 대칭을 이루면서 묘사되어 있다. 두 인물 간의 대비가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영화가 인물 간의 차이점을 묻는다. ‘어떤 지점에서 두 사람이 이렇게 다를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단순히 이 대비만 보여주면서 질문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라는 방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이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 있다. 첫째로 반복이다. 영화에서 유튜브라는 매체는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맥락을 가지는 것이 있다. 두 가족 6명의 인물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 영화에서 ‘보통’이라는 테마는 여기서 구현된다. 유전적으로 ‘보통’의 특성이 두 가족에게 그대로 구현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도 이 인물들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부분은 영화 안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영화 내내 빼곡히 반복될 만큼 작품이 채택한 모티브이기도 하면서 엔딩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거울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진짜 형제는 한 쌍이다. 재완과 재규다. 보통 형제라고 하면 피를 나눴다는 말을 쓴다. 이런 생물학적 배경과는 반대로 영화에서 가장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은 재완과 재규다. 실리주의자인 재완과 윤리적인/도덕적인 문제를 중요시하는 재규. 두 인물은 이 영화의 윤리적인 딜레마를 정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가 되면 두 인물은 다시 한번 엇갈린다. 두 형제가 영화 내내 으르렁거림에 따라 둘은 전혀 다른 인물유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걸 전부 의도하고 묘사한다. 영화가 이 두 남자의 차이점을 부각하면 부각할수록 이 사람들이 유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보통’하면 여러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 영화에서 두 남자가 공유하고 있는 ‘보통’은 일반적인 한국사회에서 범상치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보통의 의미를 가장 일반적인 ‘가족’이라는 소재로 뒤튼 것이다.
여기서 이 보통의 의미를 뒤틀었다는 의미를 형제에만 국한 지으면 영화의 밀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어떤 것을 주장하는 데 있어 이 영화는 여러 근거를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두 형제의 자녀인 시호와 혜윤는 사촌관계지만 영화 안에서는 사실상 형제처럼 묘사된다. 아예 정반대의 상황에서 자랐지만 두 사람은 연대한다. 이 연대의 근거가 ‘두 사람이 친척(가족)이라서’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글쓴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완 부부와 재규 부부의 공통점이다. 재완과 재규의 내면이 서로 엇갈리면서 두 사람이 형제인 것을 드러내고, 그것이 보통이라는 특성을 비튼다는 것과는 별개다. 이런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일반적이고 보통의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비는 두 가족의 밖과 안에서 반복된다. 수많은 가족들이 영화 안에서 등장하고 퇴장하는데 가족을 넘어 인간 광기의 본질을 다루는 데 있어 적합한 이야기 흐름이었다. 딱 두 사람만 떼서 보여주기보다는 연이어 이어 붙이며 보통의 의미가 여러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반복과 차이라는 테마를 밀도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을 보여줬던 허진호 감독의 역량 덕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어떻게 보여줬을까? 글쓴이가 위에서 적은 내용을 중심으로 써보자면 반복과 차이,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보여주려면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각본 안에서 필요하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이 복잡한 것들을 인물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게, 간단하게 보여줌으로써 ‘저 사람이 저렇고, 과거에 그 사람이 그랬네’라고 이해하기 쉽다. 이걸 영화가 카메라워크로 왜곡시키면거나 정면으로 보여준다. 또 템포를 짧게 잘라내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풀어지지 않게끔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 연출이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는 <행복>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와 차이점이 있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으나 글쓴이는 그렇게 생각 않는다. 이영화들(허진호 감독의 영화들)이 가진 감정적 전달력이 본작에서 여지없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역시 허진호다!’싶다.
좋은 각본과 연기
이 영화에 대한 총평은 '웰메이드'다. 장르적으로 재미있고, 문학적인 연출로 영화가 확실한 기획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또 설경구-수현-장동건-김희애 네 배우의 훌륭한 퍼포먼스를 꺼내는 허진호 감독의 연출가로서의 역량이 돋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탄탄한 연출을 타고 도착한 엔딩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 광경까지 보고 나서 드는 생각. 과연 보통의 의미는 뭘까? 우리 안에도 이 영화가 상정한 '보통'이 있지는 않을까? 상업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둘 것 같지는 않지만 2024년을 되돌아볼 때 우선순위에 있을 법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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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실감나서 포기해버린 영화
가끔 여기에 영화에 대한 글을 써내려가는 사람이지만 영화관의 모든 영화를 보지 않는다. 주로 거르는 영화의 기준이 있다면 지나치게 폭력적인 영화, 공포영화 등등이 있는데 이 서울의 봄도 총기가 등장하고 군대배경인데다가 이미 서사적으로는 널리 알려진 영화라 굳이 영화관까지 가서 보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기어코 보았고 난 보다가 중간에 나와버렸다. 관람 포기를 해버렸다. 관람포기를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영화가 너무 실감났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서사보다는 인물의 싱크로율이 치트키인 것은 보나마나한 사실이었기에 굳이 그 시기의 출세에 목마른 탐욕적인 캐릭터들을 보고 유쾌할 자신이 없었는데 역시나 보면서도 꾸준히 불쾌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잘 못 만든 영화라고 평가절하하고 싶진 않다. 이 영화는 꽤나 잘 만들었다. 그 증거로 나의 관람 포기라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댈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그 시절의 카리스마, 현 시대의 무식함은 현대의 관점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답답함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과거로 회귀한 걸까 싶은만큼 실감났다.
그리고 영화 속 모두가 알지만 실명을 밝힐 수 없는 볼드모트같은 그 분, 그 분의 묘사도 뭐 언급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은 굳이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그 인물 한 사람만 욕하고 싶진 않았고, 그저 그 시절 돈없는 나라에서 출세에 목마른 사람들의 탐욕이 모인 군대라는 무논리의 집단을 보니 한국이라는 나라의 7-80년대는 진짜 아수라장이었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불법을 행해도 이기면 된다는 인식은 이 때가 더 심했겠구나 라고도 생각한다. 그 때는 이기면 불법도 묵인되는 세상이었을 테니까.
역사의 불편한 지점은 그저 역사책으로만 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감정없는 텍스트로만 봐도 분노가 생기지 않나. 이걸 서사로 풀어진 영화로 보면 분노가 max가 되어 감정과잉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역사는 무미건조한 게 차라리 더 정신건강에 나은 것 같다. 뭔가 영화에 대해 혹평을 한 거라고 오해하실 수도 있어서 다시 말씀드리면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볼만한 영화라고 추천해드릴 만하다. 입소문 탈 만했다. 주저리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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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사슬처럼 이어진 폭력이 불러온 파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ie Bad)
개봉일 : 2000.07.15.
감독 : 류승완
출연 : 류승완, 박성빈, 류승범, 배중식, 김수현
‘사슬처럼 이어진 폭력이 불러온 파멸’
6500만 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지만 순식간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여전히 ‘저예산 영화계’의 전설로 불리는 영화이자, 류승완 류승범 형제의 감독, 배우 데뷔작으로 날 것 그대로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그 당시 그들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영화. 그리고 “양아치 역할을 찾고 있었는데 집에 양아치가 누워있더라.”는 류승완 감독의 류승범 배우 캐스팅 비화(?)로 유명한 그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영화를 보면서 류승완 감독의 과감하고 거친 연출과 첫 출연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류승범 배우의 힘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온갖 쌍욕과 폭력으로 점칠 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허망함과 무거운 절규가 보는 이를 깊이 찌른다.
류승완 감독은 최근 박스오피스를 접수하고 있는 <모가디슈>의 개봉과 함께 다시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그의 처음과 이전작들을 다시 찾아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장 궁금했던 작품 <짝패>는 이번 주말에 꼭 봐야겠다.
개인적으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맨발로 차갑고 딱딱한 공사장 바닥과 거친 모래 위를 걷고 있는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거친 모래가 발바닥을 파고들 것만 같은 두려움에 힘을 잔뜩 주게 되는 것처럼, 위태로운 인물들의 처절한 무너짐을 상상하며 지레 겁을 먹고 나도 모르는 새 힘을 잔뜩 주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영화로, 폭력 밑에서 새로 태어난 폭력과 그 끝에 있는 파멸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공고 졸업생인 석환과 성빈은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시비가 붙은 예고생들과 패싸움을 하게 된다. 싸움을 붙인 석환을 말리던 성빈은 실수로 예고생 현수를 살해하게 되고 가깝게 지내던 두 친구의 삶은 전혀 다른 두 갈래의 방향으로 나뉜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어딘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성빈이 7년의 형을 살 동안 석환은 형사가 되어 성빈과 같은 범죄자들을 쫓는다. 단적으로 나누자면 석환은 사회의 선, 성빈은 사회의 악이다. 성빈은 출소한 후 석환에게 연락을 하지만 석환은 성빈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 둘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나나 싶지만,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서 뻗어 나온 인연은 다시 새로운 폭력이 되어 석환과 성빈을 붙잡는다.
2부 악몽에서는 성빈이 현수의 악몽에 시달리며 폭력의 세계로 들어서는 모습이 나오고 3부 현대인에서는 석환이 끈질기게 태훈을 검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태훈이 검거된 후 성빈과 현수는 피할 수 없는 좋은 놈(형사) vs 나쁜 놈(조폭)의 대립구도에 묶이게 되고, 석환이 쫓는 조폭 태훈과 석환의 동생 상환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시놉시스
세상 참 X같지 않냐?
19살,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패싸움
공고 졸업생인 석환(류승완)과 성빈(박성빈)은 당구장에서 예고생들과 시비가 붙는다.
당구장 문이 잠기고 시작된 패싸움!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던 성빈이 실수로 예고생 현수를 살해하고 만다.
악몽
살인죄로 7년간 감옥에 있던 성빈이 출소했다.
하지만 사회와 가족, 친구의 냉대 속에 현수의 악령만이 매일 밤 찾아와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폭력조직의 중간보스 태훈(배중식)을 구하게 되면서 앞으로 주먹을 쓰며 살기로 결심한다.
현대인
폭력 조직의 중간보스 태훈 VS 강력계 형사 석환
지하주차장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걸고 죽기살기로 싸운다.
결국 태훈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석환! 하지만 거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야간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조폭이 되고자 형 몰래 성빈의 수하가 된 상환(류승범)
폭력배들끼리의 싸움이 벌어지던 날, 자신이 희생양이 된지도 모른 채 앞서 달려간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동생을 찾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간 석환은 성빈과 둘 만의 전쟁을 시작하는데…*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돈 많은 놈들은 돈 믿고, 없는 놈들은 깡다구 믿고 까부는 세상, 떡값 받을 사람은 있고 애들 사고 치는 거 막을 사람은 없는 세상. 석환과 성빈이 패싸움을 했던 당구장 주인은 세상을 이렇게 나눈다. 돈 많은 놈 / 없는 놈. 성빈과 석환은 굳이 따지자면 졸업하고도 동기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취업하지 못하고 있던 ‘없는 놈’에 가깝다. 두 친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다 패싸움을 한 날 이후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싸움을 걸었던 석환은 형사가 되었고 석환을 말리던 성빈은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는 범죄자이자 조폭이 된다.
형사와 조폭의 세계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3부 현대인에서 석환과 태훈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하는 장면을 보면 사회가 말하는 나쁜 놈이든 착한 놈이든 어찌 됐든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고 있구나. 싶다. 석환 또한 강력범죄자들을 다루다보니 ‘내가 조폭인지 경찰인지 헷갈린다’고 생각하고, 석환과 태훈 모두 몸싸움에서 불리한 긴 머리와 넥타이를 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조폭들의 세계나 강력계 형사의 세계나 비슷한 애로사항과 불만, 그들만의 철칙이 있으며 두 사람 모두 무슨 일을 하든 결국은 비슷하다 생각하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펜대 굴려갖고 돈 만지나, 주먹질해갖고 돈 만지나. 뭐가 틀려?”
상환은 아직 철없는 양아치 고등학생이다. 석환은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일탈을 일삼는 동생을 걱정한다. 두 사람은 상관 말라며 소리 지르면서 싸우기도 하지만 이내 “형 괜찮아?”, “밥은 먹었어?”와 같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걱정을 나누는 우애 좋은 형제다.
상환은 펜이 아닌 주먹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석환도 상환의 나이대엔 싸움을 일삼았다. 하지만 나쁜 역할(?)을 모두 뒤집어쓴 성빈 덕분에 석환은 폭력의 세계를 벗어나 형사가 되었지만, 상환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상환을 자비 없이 잡아먹은 폭력의 끝엔 처절한 절규와 죽음이 있었다.
석환이 시작한 폭력으로 성빈은 전과자가 되고 사회의 조롱과 악몽에 시달리던 성빈은 조폭이 되어 새로운 폭력을 만든다. 폭력을 또 다른 사회적 힘이라 동경하던 상환은 성빈 조직의 칼받이가 되어 죽는다. 분노한 석환은 성빈의 목을 조르고 피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시작한 폭력으로 인해 동생을 잃고, 친했던 친구를 잃고, 자신까지 잃게 된 석환은 처절한 울부짖어보지만 그의 곁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석환이 만든 폭력의 굴레는 그것이 처음 시작됐던 당구장에서 끝을 맺는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돈도, 빽도 없는 주먹만 가진 성빈, 태훈. 나름 돈도 잘 벌고 사회에서 취급 받는 직업을 가진 석환 모두 똑같이 폭력을 휘두르며 살아간다. 착한 놈, 나쁜 놈. 인정받는 놈, 무시당하는 놈. 있는 놈, 없는 놈. 따위를 나눌 필요도 없이 이들은 모두 폭력 앞에서 무릎 꿇는다. 폭력을 시작한 사람도, 폭력에 휘말린 사람도, 폭력을 동경하던 사람도. 모두 폭력에 의해 죽거나 혹은 나쁜 놈이 되어 살아남는다.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 사람이든 폭력 앞에선 다 비슷하다. 죽거나 폭력을 휘두른 나쁜 놈으로 낙인찍히거나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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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입 베어 물어 보면
SYNOPSIS.
퇴근 후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이자 비정규직 웹디자이너 ‘정서’(나애진). 남자 친구 ‘경현’(강봉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서울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 준비가 쉽지 않다. 이에 엄마 ‘미영’(박현숙)은 이혼할 때 ‘영주’(안석환)에게 받은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건네주고, ‘정서’는 아버지 ‘영주’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항 벌교횟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가깝지만 먼, 낯선 가족들의 욕망에 휘말리게 되는데…
POINT.
✔️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가 맛깔나는 작품. 주연 나애진 배우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시상헀으며, (대단한 거 알았지만 역시나 너무나도) 대단한 안석환/박현숙 배우의 호연도.
✔️ 그리고 이 호연은 촘촘하게 설정된 캐릭터와 미술이 있기에 가능. 저기 어디 사는 누구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들.
✔️ 묵호라는 공간을 훌륭하게 활용한, 좋은 로컬시네마
✔️ 음악감독 김사월. 상서롭고 신비롭게 퍼지는 음악과 중간중간 색소폰 소리, 엔딩크레딧에서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사운드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 어쩌면 우리가 '한국 독립영화'에 기대하는 건 바로 이런 영화 같기도!
✔️ 영화는 1월 15일 개봉합니다.
혈연이라는 말의 무게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들 중에 '피가 당긴다'는 말이 있다. 대충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어감에 더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을 만큼 속절 없이 끌린다는 어감으로 쓴다. (비록 구글 검색 결과는 고혈압이 나왔지만... 종종 들어본 말이다. 나만 들은 건 아니겠지?) 그런가 하면 부모자식처럼 혈연으로 가까운 사이를 더러는 '피붙이'라고도 한다. 늘 그렇다. 피라는 단어는 끈끈한 단어들과 접착력이 좋다. 비록 실제 피는 매우 주의해서 섞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서 가족영화에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작게나마 붙이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조합이다. 보통 뱀파이어물에 가족을 작게 붙이는 형태에 더 익숙한 우리에게 상당히 생소한데도 말이다. 가족은 사랑과 돌봄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여야 하기에 많은 경우 간과되지만, 사랑 없이 돌봄의 역할만 부여하는 것은 결국 고혈을 빨아먹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영화에서 뱀파이어는 정서가 업무 전후 시간에 틈틈이 그리는 웹툰에 등장한다. 포털에 웹툰을 연재하며 언젠가 웹툰 작가로 대박 날 꿈을 꾸는 동시에, 디자인 회사에서 비정규직 자리를 간당간당 유지하고 있다. 익숙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다. 청약을 발판 삼아 결혼을 준비하고, 지금 하는 일과 양립 가능한 파이프라인을 찾고... 그러나 무엇 하나 녹록하지 않은 모습이.
어찌저찌 피붙이라는 말에 걸치기는 하지만, 혈연 관계가 애매한 새 가족이 섞여 있고, 그나마 그들을 보지 않은 시간도 꽤나 길었다. 그 어색한 관계 위에, 영화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진 각자의 욕망과 각자의 계산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아무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그걸 거부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자기 속내를 언제 드러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서 어쩐지 이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조금 촌극처럼 보인다. 이는 정서의 예비 남편인 경현까지 등장하면서 극에 달한다.
가짜처럼 뻣뻣한 법적 '진짜'와
어떻게 보면 정해진 듯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광경이다. 청약이 당첨된 아파트를 위해 계약금을 마련해야 하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부모님이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 온 역사를 관망하게 되고, 다소 현타가 오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친구들 앞에서는 또 자랑처럼 이야기하고. 아무튼 돈은 필요하니까 예비 신부를 달래 가며, 한우와 과일을 사서 재빨리 달려오는 남자친구의 모습까지.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자꾸 불화한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혈연을 기반으로 한 아빠-정서의 관계 혹은 엄마-정서의 관계, 혼인이라는 법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는(혹은 했던) 아빠-엄마의 관계, 아빠-새엄마의 관계, 경현-정서의 관계가 각각 뱀파이어 이미지와 맞물리면서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차용증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운 엄마와 아빠도 그렇다. 아빠와 헤어지고 열심히 일하면서 정서를 키운 엄마의 역할은 누가 보아도 톡톡했을 것이고, 아빠 또한 나름대로 용돈이나 다른 방법들로 정서와의 혈연을 자연스럽게 연장해 나간다. 이들은 딸에 대해 의무가 있음을 알고 있고 또 가끔은 권리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세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차용증 때문인지 다소 역할극처럼 뻣뻣하다.
경현과 정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마루와 강아지 같은 부드럽고 희망적인 일상어들을 사용해 미래를 설계하지만, 아파트 하나만 빠지면 훅 위태로워질 관계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차이, 안정적 삶을 위해 회사를 버티고는 있지만 사실 그 안에서 포기한 각자의 꿈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점 등이 하중을 보탠다.
진정성 있는 '가짜'와
애초에 별로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는 관계로 시작했고, 서운하면 "가짜 언니"를 운운하고, 멀리 산 시간이 있어 서로 신뢰가 깊지 않음에도, 오히려 정서-정해 자매의 관계 쪽이 좀더 가족의 바이브를 풍긴다. 이들을 가족으로 묶어낸 것은 공간을 공유했다는 것 하나 뿐이다. 심지어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들은 공간을 공유한 상대의 시간을 미루어 보며 친근감을 느낀다.
정서가 고향 집에 두고 간 것들을 정해도 먹고 자랐다. 정서가 본 영화 제목에서 거북이 이름을 따 오고, 오래된 만화책을 쌓아 놓던 언니가 그린 웹툰에 좋아요를 꼬박꼬박 누른다. 담배나 남자친구처럼 아직은 부모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언니의 그림자를 느끼며 살았다. 정서 또한 자신이 거쳐 온 시간과 중간중간 닮아 있는 정해가 아주 먼 존재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얼핏 대조적인 것 같지만 사실 둘 다 각자의 삶에 매여 있는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제법 괜찮은 자매의 모습처럼 보인다.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 건 무엇일까. 혈연은 중요한 요소지만 혈연이 다는 아니라는 문장은 이제 진부하지만, 여기서도 명확히 느껴진다.
내 안의 '진짜'와 '가짜'
사실 피를 빼앗기기도 하고 내어주기도 하는 뱀파이어는, 피의 이동 방향만 놓고 보면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촌극처럼 뻣뻣한 장면을 연출하는 관계가 있고,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녹아든 면을 보여주는 관계가 있지만, 전자가 절대악이고 후자만이 진짜인 것은 아니다. 가족은 그냥.... 그런 것이다. 늘 진심이기만 한 관계는 없다.
여기에는 우선 정서의 내부에도 '진짜'와 '가짜'가 오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 이 사회에서 사는 우리 모두 실은 진정성을 품을 때와 적당히 뻣뻣할 때가 있는 존재라는 이유도 있다. 자본이 사람을 얽어매고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이 첨단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진짜 원하는 모습도 아니라 그냥 '남들 다 그러고 사니까' 정도의 감각을 갖기 위해서 자아의 어떤 부분을 버려야만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정서의 가족에서는 차용증이라는 형태로 매우 명백히 드러났고, 그만큼 아빠의 욕망이 유난히 두드러지지만... 사실 그 감정 자체는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것들이다. 오랜 친구, 결혼을 약속한 연인, 가족의 관계에서도 이는 온전히 예외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자아는 영영 버려지지 않는다. 지금은 환멸밖에 남지 않은 정서의 아빠와 엄마 사이 같지만, 어렸던 정서에게 아빠가 남긴 색소폰 연주 CD에 얽힌 추억을 말하는 엄마는 분명 빛바랜 사랑과 오랜 상처까지 스산하게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오래 전에는 사랑만을 가득 끌어안고 있었을 사람. 지금은 욕망의 폭주 기관차처럼 살고 있는 아빠는 뿌리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또한 생선 머리를 단숨에 잘라 피가 배지 않도록 회를 치는 기백을 정서에게 물려준 사람으로서, 그 열정을 사랑으로 승화했던 시간이 있었으리라.
자본주의 사회의 차가운 은빛 단면이 우리의 살갗에 끊임없이 느껴지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은빛 살구라고 하지만, 은행에는 고소한 속살이 있듯이.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결말과,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에 강렬하게 깔리는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그게 마치 정서의 은행 속살 같아서. 김치찌개에 먹는 밥 두 그릇 같아서.
어린 시절을 묵호에서 보낸 정서의 그림에는 곰치를 비롯한 물고기들이 등장한다. 졸업 작품을 큰 돈 들여 구매하는 아빠나 물고기 위에 기어이 매직펜으로 정서의 이름을 적게 만드는 엄마나, 둘 다 정서의 마음 가까이에 있지 않은 건 매한가지지만, 정서의 물고기들은 붉은 피를 넘어서 푸르게 생동할 것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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