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2-12-11 12:33:44
재밌는 영화로 태어날 수 없다지만...
#탄생 / A Birth, 2022
제목만 봐선 손이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물며, "종교"와 관련된 영화는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판별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눈길이 가는 데에는 주인공 "김대건 신부"를 맡은 "윤시윤"분을 비롯한 화려한 이름들과 얼굴들이다.
"안성기 - 김강우 - 이문식 - 이경영" 외에도 "윤경호 - 정유미" 등의 출연은 '이 영화의 매력이 뭔지?'를 되려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 <탄생>은 조선 최초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의 전기 영화로 "어떻게, 사제가 되었는지?"부터 "순교"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1. 종교도 하나의 방식이었던...
해당 작품에서도 보이듯이 "왜, 천주교를 싫어할까?"에 대한 질문부터 해소되어야 영화 <탄생>이 좀 더 이해가 될 거다.
물론, 이에 있어 "모든 사람이 같다"라는 신분 제도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고대사부터 "종교"는 권력자들이 애용하는 통치 수단 중 하나이다.
흔히, "단군왕검"이라는 칭호부터 "제사장"과 "군주"를 합친 말이고 이후 "삼한"에서는 "천군(제사장)"이 다스리는 "소도"는 하나의 성역으로 작용했으니 '그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라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를 왕과 소수의 기득권층에게 적용했으니 이외의 종교를 가져온다는 건. "반역"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영화 <탄생>이 선택하고 집중했어야만 했다는 말이다.
2. 역시, 재밌게 만들기가...
먼저, 영화 <탄생>은 러닝 타임이 150분으로 일반 영화와 견주어도 상딩히, 많은 분량을 가졌다.
그럼에도, 쌓여지는 설명이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이유에는 주인공 "김대건 신부"의 외적으로 벗어나지 않고, 그에게만 시점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전기"인 만큼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150분 내내 보자니 했던 말 똑같이 반복해 서사를 빼앗긴 다른 캐릭터들은 무미건조하게 말라간다.
그래서, "왜?"라는 동기를 꺼내 관객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물론, "마음이 시켰다"라는 이유도 될 수 있지만 해당 종교인이 아닌 필자와 같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 말은 "그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세도정치"로 인한 혼란한 '당시 조선의 상황과 맞물려 설명했다'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을 말해본다.
Relative contents
-
- 낯선 느와르를 경험할 각오, 전도연의 얼굴
9년 만이다. <리볼버> 이후, 전도연, 오승욱 감독이 손을 잡고 만든 <리볼버>가 관객을 찾아왔다. 제목부터 풍기는 하드보일드 액션의 잔향이 짙어 보이지만, 그 반대다. 뜨겁고 찐한 지옥 불의 붉은 향이 아닌 차디찬 냉기만 흐르는 녹야의 푸르고 녹색 향이 가득하다. 감정의 파고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최대한 보여주지 않고 감내한다. ‘리볼버’의 쓰임새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격발이 아닌 격발하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둔 작품. 이 영화를 볼 관객이라면 이에 대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동안 만날 수 없었던 전도연의 얼굴도.
하수영(전도연)은 멋진 경찰이 아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 비리를 저지른 경찰이다. 그 죗값으로 그녀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서 2년을 복역한다. 혼자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7억을 주겠다는 의문의 남자 앤디(지창욱)의 말만 믿고 2년 동안 콩밥을 먹었지만, 정작 손에 쥐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연인이자 앤디와 가깝게 지낸 임석용(이정재)은 자살로 위장한 타살로 세상을 떴고, 그를 도와줄 이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 그녀는 혼자라도 약속한 돈을 받아내기로 결심한다. 그런 수영 앞에 묘령의 여인 정윤선(임지연)이 찾아오고, 그녀는 과거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을 차례로 만난다.| 더 이상 죄짓고 싶지 않은 한 인간의 몸부림!
<리볼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죄를 지은 사람이 더 큰 죄를 짓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영화다. 하수영이 시작한 이 이야기는 자신의 죗값을 치르는 과정처럼 보인다. 감옥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받아야 하는 7억이란 돈은 행동을 위한 목적일 뿐,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건 지옥이란 파멸의 길을 들어서지 않으며 본인 스스로 이 죄를 씻고자 하는 마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극 중 인물은 모두가 죄인인데, 비리 경찰은 물론, 돈을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심지어 사람도 죽인다. 마치 발을 헛디디면 돌아올 수 없는 죄악의 강물에 빠진 이들이 수두룩하다. 수영 또한 그 강물에 빠졌던 이로써 더 이상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래야 교도소 복역 이후 정체성이 상실된 그녀가 과거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고 사람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수가 다 읽힌다 하더라도 적을 향해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녀의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을 알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리볼버다. 한 발이라도 쏘면 살인죄라는 더 큰 죄를 짓게 하는 이 총은 그녀의 의지와 신념을 시험하는 물건이다. 이를 건넨 이는 수영으로 인해 인생이 뒤틀려 버린 경찰 선배 민기현(정재영). 이 악독한 선배의 의중에 반기를 들 듯 수영은 차분히 그가 자주 사용했던 삼단봉도 함께 가져가고, 리볼버보단 이 무기를 더 많이 사용한다. 앤디와의 첫 격투 장면이나, 이후 후반부 숲 대결 장면에서 그녀는 총이 아닌 삼단봉으로 자신의 적을 처단한다. 마치 그 덫에 절대 빠지지 않을 거라고 민기현에게 보란 듯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 가까이 하기 엔 너무 먼 수영, 다 이유가 있다?오승욱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리볼버>의 형식은 이소룡의 <사망유희>에서 가져왔다고 말한 바 있다. 이소룡이 총 7명의 악당과 싸워 이기는 것처럼 수영 또한 7명의 무뢰한을 만난다. 상대를 만날 때마다 사건의 실마리를 얻는 것 또한 같다. 물론 이소룡처럼 권격 액션이 아닌 구강 액션으로 승부한다는 건 다르지만, 수영은 이들을 만나면서 하나씩 잊고 지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이런 스토리라인으로 인해 초반 수영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란 쉽지 않다. 플래시백을 통해 전사가 나오지만, 속이 텅 비어있는 듯한 그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무뢰한들을 만나면서 그녀가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고, 그래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초반 멀어진 간극은 점점 좁혀진다. 물론, 차디찬 냉기와 차가움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지만 말이다.|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을 마주할 각오!
무조건 직진하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수영처럼, 오승욱 감독 또한 기존 느와르 장르를 답습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대로 미니멀리즘한 느와르를 탄생시킨다. 장르적 쾌감은 덜하고, 뭔지 모를 배신감은 들지만,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진귀한 물건을 보는 새로움처럼, 이 영화만이 느낄 수 있는 매력은 다분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도연의 얼굴이다. 오승욱 감독은 ‘얼굴의 영화’라고 할 정도로 클로즈업을 많이 쓴다. 특히 전도연의 얼굴을 이렇게 가깝게 오래도록 본 영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수많은 영화에서 인상 깊고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던 전도연임에도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과 처연함, 후회, 슬픔, 피로 등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은 캐릭터임에도 미세하게 달라지는 이 노련한 배우의 표정은 그 자체로 영화를 계속 지켜보게 만든다. 어떻게든 관객을 설득하는 전도연의 연기, 그리고 마지막 비 오는 바닷가에서 내뱉는 ‘날숨’만 봐도 이 영화는 엔딩크레딧까지 꼭 봐야할 가치가 있다.
무채색과도 같은 수영과 달리, 적으로 간주되는 무뢰한들은 각기 다른 현란한색을 표출하듯 개성이 남다르다. 특히 절묘한 양다리를 걸치면서도 수영과 연대를 자처하는 임지연은 캐릭터의 이중성과 모호함을 무기삼아 한층 매력을 더하고, 지창욱은 극 중 불리는 ‘향수 뿌린 미친개’라는 닉네임처럼 그 느낌을 극대화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 밖에도 김준한, 김종수, 정만식, 이정재, 정재영, 전혜진 또한 영화의 매력을 한층 살린다.
오승욱 감독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리볼버>는 허우 샤오시엔의 2016년작 <자객 섭은낭>을 떠올리게 한다. 무협 형식을 가져오되,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자객을 등장시켜 우리가 알고 있는 무협 장르의 쾌감을 걷어낸 이 영화는 그 자리에 사랑하는 것(또는 대상)을 죽이지 않겠다는 인간의 신념을 넣는다. 결은 다르지만 수영 또한 그 신념과 맞닿아 있다. 죄인이지만 그보다 더 큰 죄를 지으며 밑바닥까지 가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인간답다.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극 중 수영의 차가운 표정 뒤에 숨은 마음의 격량에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사진 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평점: 3.5 / 5.0
한줄평: 낯선 느와르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격발하다!
-
- 파괴지왕이 정신차리고 만든 액션 영화
용서를 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누군가 나를 아프게 했으면 아프게 한 상대방에게 분노를 먼저 표출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상대방이 왜 자신을 아프게 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용서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일도 발생한다. 또한 반대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상대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를 해야 할 위치에 서기도 한다. 긴 삶 속에서 그렇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은 반복적으로 각자에게 다가온다. 그저 감정이 실린 분노와 복수보다는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영화 <앰뷸런스>는 액션 영화 전문 감독 마이클 베이의 신작이다. 이 영화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윌(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이 은행 전문 털이범인 형 대니(제이크 질렌할)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가 우연히 은행털이 범죄에 합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그들은 은행털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건물에 들어온 앰뷸런스를 타게 되는데, 그 차에는 구급대원 캠(에이사 곤잘레스)과 윌의 총에 맞은 경찰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이 구급차에 타서 병원을 빠져나가면서 추격전이 시작되게 되는데, 특히나 이 차 안의 윌, 대니 그리고 캠 사이에는 긴장구도가 형성된다.
마이클 베이표 액션 영화 <앰뷸런스>
기본적으로 윌은 우연히 은행털이를 하게 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경찰에게 총을 발포하고 만다. 그렇게 그는 가해자가 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가 그렇게 악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앞에서 제시된 정보를 통해 알고 있다. 반면 대니는 은행털이 전문으로 동생 윌을 끔찍이도 아끼지만 그의 불같은 성격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 사이에 있는 구급대원 캠은 대니와 윌을 보면서 자신의 살길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는 대니와 윌 사이에서 두 인물을 아주 세밀하게 파악하는 인물이다.
영화 속 대니는 전형적인 범죄 우두머리지만 직접 특정 인물이나 주변 인물에게 총을 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모든 범죄를 조정하고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확실히 가해자에 속한다. 하지만 다른 인물인 윌과 캠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오간다. 감독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추격 장면 속에서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어 총을 쏘고,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어 그 총을 맞는다. 그리고 영화가 그 인물들의 복잡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큰 고민 없는 용서다. 길게 이어지는 추격전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진짜 모습을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응어리를 '용서'라는 것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액션 장면 이외의 요소들은 캐릭터의 구도를 통해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가해와 용서'라는 테마를 제법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앰뷸런스 안에 있는 세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의외로 앰뷸런스 밖에 있는 인물들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수많은 경찰들이 등장하고, FBI 요원이나 은행 강도 전문 인력들을 등장시키지만 그들이 맡은 영화 속 역할은 그저 장애물 정도로 활용될 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추격 장면에도 그들은 앰뷸런스를 막지 못하는데 다르게 보면 그렇게 외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앰뷸런스 밖에 있었던 인물 중 기억에 남는 인물은 없다.
2시간이 넘은 영화의 러닝타임은 지루할 틈이 없이 이어진다. 이 영화가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식은 현란하고 빠른 카메라 워크와 폭발 장면을 이용해서다. 조금 지루해질 때가 되면 새로운 폭발이나 사건이 생기고 카메라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앰뷸런스의 안과 밖을 다룬다. 앰뷸런스 안을 비추며 숨 고르기를 하고 관객에게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하는 반면, 앰뷸런스 밖을 비추는 카메라는 액션의 박진감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그런 카메라의 수고 덕분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지루할 틈 없이 질주하는 2시간
이 영화에 담긴 액션은 과거 마이클 베이의 영화인 <나쁜 녀석들> 시리즈나 <더록>, <아일랜드> 같은 영화에서 선보인 추격 액션을 다시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제작된 이번 <앰뷸런스>는 마이클 베이 감독 특유의 카메라 워크가 돋보이고, 그가 좋아하는 자동차 파괴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등장하는 액션 장면은 과거 전작들에 비해서 과하다는 느낌은 줄어들었다. 그래도 파괴적인 느낌을 주긴 하지만 예전 영화들에 비해서는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집중하는 등장인물을 줄이고, 조금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 그리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추격 장면으로 과거보다는 영리하게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니를 연기한 배우 제이크 질렌할은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고 터져버릴 것 같은 캐릭터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그의 전작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나 <나이트 크롤러>에서 보여준 연기처럼 꽤 믿을 만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면서도 폭주하면 무서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인물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동생 윌을 연기한 배우 야히아 압둘 마틴 2세는 순수하지만 형을 위해서 조금은 바보 같은 일도 벌이는 인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캠 역의 배우 에이사 곤잘레스는 전문적인 구급대원 역할로 윌과 대니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인물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앰뷸런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영화다. 특히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은 과거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나왔던 조금은 투박해 보이고 단순한 액션 영화 스타일을 재현하고 있다. 과거의 스타일이 최첨단 카메라 기술을 만나 꽤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야기의 구성의 완성도나 캐릭터의 구도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액션 영화로서는 손색없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앰뷸런스>
-
- 벌레의 차원을 넘어서라
인간은 몇 차원에 살고 있을까? 또한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는 얼만한 크기일까? 인간은 우주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SF소설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아시아 최초로 받은 류츠신의 <삼체>. 요새는 SF소재를 단순하게 미래에 대한 상상력, 혹은 판타지 수준에서 채용하는 소설과 영화들이 대부분이라면, <삼체>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영역, 차원을 계속해서 확장시켜 주고, 1,2,3부로 이어지면서 그 차원의 세계는 지수함수 그래프처럼 무한히 위로 올라가 버린다. 차원의 깊이가 우주만큼 깊고 넓어, 책을 다 읽고 다시 지구의 작은 집에 앉아있는 나를 인식하면 한없이 작아진 나를 느끼게 된다. <삼체>는 '삼체문제' 그 자체보다, 우주의 다차원을 다루며 차원과 차원사이에 일어나는 일, 고차원과 저차원의 인식, 차원끼리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삼체문제'는 그저 다차원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면 <삼체>에서 보여주는 '삼체문제'란 무엇이며, 차원이란 무엇인가?
삼체문제
삼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세 물체를 말한다. '삼체문제'라는 것은 세 물체 간에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그에 따라 세 물체는 어떤 궤도운동을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인간은 삼체문제를 그다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즉 이체에 가까운 세상인 지구에 살고 있다. 태양계는 태양이 압도적인 질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궤도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각각 행성의 위성들도 모성과 질량차이가 커서, 대부분 안정적으로 돌고 있다. 다만 지구의 위성인 달이 일반적인 위성보다 비정상적으로 커서 둘 궤도의 중심점이 지구 중심에서 좀 많이 비켜나 있기는 한데, 역시나 안정적이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평면적인 공전궤도면을 따라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사는 태양계의 태양이 하나가 아니라 비슷한 크기 두 개인 쌍태양이라면, 행성들의 움직임은 이보다 더 복잡한 면을 그리게 될 것이다. 심지어 태양이 쌍성이 아니라 세 개여서 삼체가 된다면, 그 세 태양의 움직임은 계산이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이 이체세상에 살고 있다면, 삼체세상은 어떤 의미로는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세상인 셈이다. 더군다나 4체, 5체, 다체로 가게 되면 아예 궤도를 알아내기가 불가능하다. 양성자와 전자 한 개로 이루어진 가장 기초적인 원자인 수소 말고, 전자가 하나 더 늘어난 그 이후 원자부터는 궤도모델을 만들 수 없는 것도 그 이유다.
<삼체>에 나오는 삼체인들의 항성은 지구에서 대략 4광년 떨어진, 가장 가까운 항성들인 센타우르스의 알파성을 모티브로 했다. 알파성은 하나의 별인 줄 알았지만 관측결과 2개의 항성으로 된 쌍성계이고, 조금 더 태양과 가까운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적색왜성이다. 이 세별은 서로 중력의 영향을 받는 삼연성계이다. 이 삼연성계에 생물이 사는 행성이 있다면, 거기에 사는 생명의 우주관은 우리와 아주 다를 것이다. 지구는 아주 오랫동안 일정하게 도는 달과 태양 때문에 하늘을 평면적인 둥근 천장이라고 생각하는 '천구'개념이 있었지만, 삼체운동을 하는 항성들이 하늘을 돌고 있다면 하늘을 처음부터 3차원 입체로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지구의 인간은 독특한 음양론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태양과 달의 크기가 우연히도 정확히 같아 보이기 때문에 생긴 철학이다. 이런 행성은 아마 삼체성계만큼 엄청나게 드물 것이다.
삼체의 궤도를 표현한 애니메이션. 너무 불규칙한 데다 항상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삼체문제가 아예 해가 없는 것은 아니고, 특수한 상황에서의 해는 밝혀졌다. 위는 동일한 질량, 각운동량이 없는 상황에서의 해 중 하나인 8자 모양의 해.
인식의 한계차원
1차원은 선, 2차원은 평면, 3차원은 입체. 우리는 흔히 인간은 3차원, 시간까지 더해서 4차원을 우리의 차원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건 인간이 우주에서 차지하고 있는 크기에 대한 제한적 차원이다. 우리는 인간세상이 입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주적인 위치에서 보면 거대한 지구라는 행성표면에 붙어살고 있는 2차원 생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인간이 우주로 진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차원을 진정한 3차원으로 한 단계 높여주는 행위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지구를 넘어서서 태양계도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거대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점도 벗어나지 못하는 0차원의 존재인 셈이다.
인간보다 거대한 차원이 아니라 작은 차원은 어떨까? '그래핀'은 탄소원자 한 겹의 배열로 이루어진 2차원 물질이다. 인간이 볼 때 그것은 2차원이다. 하지만 더 미시적 차원으로 들어가 보면 원자 속 에는 양성자와 전자가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 그보다 더 작게 들어가면 초끈이론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11차원이라고 하고, 여분의 차원은 작게 말려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우리보다 더 작은 차원들, 혹은 더 큰 차원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우리는 지구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일 뿐이다.
차원에 대한 소설은 1884년 에드윈 A. 애보트의 <플랫랜드>가 가장 유명하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2차원 정사각형이 1차원과 3차원으로 갈 때의 묘사가 훌륭하다. <플랫 랜드>에 나온 바에 의하면, 2차원 생물은 상대방을 위에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원이든 사각형이든 삼각형이든 선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중간에 3차원 구가 나타나면, 선이 점점 커졌다가 작아지는 구의 단면만을 인식한다. 이 흥미로운 차원 간 세계의 설정은 <삼체> 전체에 깔려있다.
또한 인간이 지동설이 검증하는 과정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차원'에 대해 큰 교훈을 준다. 처음 지동설을 주장할 때, 교회에서는 무작정 천동설을 믿고 탄압한 게 아니다. 당시 신부들은 가장 머리가 좋은 엘리트 집단이었다. 지구가 태양의 궤도를 돈다면, 반대편에 있을 때 별들의 위치가 달라져서 연주시차가 나타나야 하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인간의 관측기술로는 연주시차를 측정할 수 없었고, 별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결국 지동설이 연주시차로 검증된 것은 19세기 들어서 망원경과 천체관측기구가 발달하고 나서다. 위에서 언급한 태양과 가장 가까운 항성계여서 연주시차가 가장 큰 센타우르스의 알파성 연주시차는 2/10000도이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전혀 관측할 수 없다.
최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차원'에 대한 가장 큰 과학적 성과는 중력파의 검증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은 공간의 휘게 만드는데, 이것이 곧 중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질량에 변화가 생기면 그 시공간의 휘어짐이 빛의 속도로 파동처럼 전달되는데, 그것이 중력파다. 하지만 이 시공간의 휘어짐은 중력 변화에 비해 너무나도 작아서, 이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장치 LIGO를 만들기 전까지 측정한다는 것은 꿈의 과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시로 중력파를 검출하고 있고, 소설 <삼체>에는 나중에 중력파를 통신기술로 이용하는 장면도 나온다. 중력파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우리가 우주를 보는 눈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 한 차원 높은 우주를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우주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른다. 우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해 아는 바는 전혀 없으며, 인간이 관측한 100년 남짓한 데이터로 우주의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긴 쉽지 않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과학들이 밑바닥부터 모두 허물어진다면, 우주의 별이 사실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스크린이어서 마음대로 깜빡일 수 있다면, 오늘부터 1+1이 2가 아니게 된다면, 인간은 벌레처럼 주저앉게 될 것이다. <삼체>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드라마 vs 소설
소설 <삼체>는 나왔을 때부터, 영상 매체로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다른 대하소설처럼 물량이 많고 이야기가 복잡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을 글로 풀어서 썼기 때문이다. 요즘 소설에 비하면 진행이 느리고 묘사가 많은 데다, 많은 부분을 이미 만들어진 클리셰를 거부하고 작가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미래 세계를 새로 구축해 나간다. 요즘 SF작법으로 비유하자면 글 쓸 때 하지 말라는 짓은 다한 소설이나 다름없다. 만들기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이걸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가 있긴 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시즌1은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엿보인다. 일단 중국인 위주로 흘러가는 1,2,3권의 주인공들을 '옥스퍼드 동기 과학자들'로 모두 한 곳에 모아놨다. 그중에도 주요 인물들은 중국인으로 유지하고, 3권의 주요 캐릭터인 토마스 웨이드가 다른 캐릭터들과 합쳐진 모습으로 등장해 매력을 뽐낸다. 게다가 소설대로 진행했으면 조금 느리고 지루할 수 있는 흐름을, 1,2,3부의 내용을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빠른 전개를 보여줬다. 그리고 일반인에게 어려울 수 있는 과학은 많이 간략화했다. 드라마는 소설보다 더 쉽고, 전개가 빠르며, 거기에 '영국 이민자들의 서사'를 추가로 부여해 더 글로벌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 축약해 버려서, 인류 전체가 하는 다양한 고민들이나 캐릭터의 서사들은 많이 없어졌다. 특히 소설 2권의 주인공인 '뤄지'를 대체한 사울은 나중에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인데, 그의 가벼운 캐릭터가 많이 아쉽다. 원래 사울의 역할은 우주 사회학 교수로 극단적인 회의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고, 상상력과 내면이 굉장히 강한 사람인데 그런 서사가 시즌 1 동안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소설 3권의 주인공을 대체하는 진 청과 윌리엄 다우니의 서사만큼 쌓았으면 좋으련만.
드라마가 아직 시즌1 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개나 주제, 철학까지 다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등장하는 몇 가지 과학기술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짚고 넘어갈 수는 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입자 가속기/카미오칸데
베라 예는 옥스퍼드 입자가속기에서 일하고 있다가, 멍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고 뒤돌아 나가는데 금색 구슬이 가득 있는 거대한 구 모양의 공간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이건 여러모로 전혀 맞지 않는 연출인데, 베라 예가 떨어져 죽는 곳은 카미오칸데라고 하는 일본의 중성미자 검출장치이기 때문이다. 입자가속기는 입자를 고속으로 운동하게 만들어서 충돌시켜 중성미자 등 다양한 입자들을 검출해 연구하는 곳인데, 거대한 도넛처럼 생겼다. 카미오칸데는 일본에 있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장치다. 그냥 두 개가 같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중성미자를 만드는 장치와 우주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장치가 같이 있는 건 사실 말이 안 된다. 그건 지하철 옆에 지진계를 설치한 것처럼 이상한 짓이다. 아마 제작진이 그냥 멋으로 넣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중에 유럽 입자물리연구소-세른이 나오는데 정문에 파괴의 신인 시바신 동상이 있는 것은 진짜다. 실제로는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 때문에 입자가속기가 블랙홀을 만들어 세상을 파괴할 것이라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유럽의 강입자가속기 CERN에 있는 시바신
입자 가속기는 입자를 충돌시켜 연구하는 곳인데, 유럽의 CERN처럼 도시만 한 것도 있지만 정말 다양한 크기의 입자가속기가 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병원에도 사이클로트론이라는 원형 입자가속기가 한국 최초의 입자 가속기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입자로 PET촬영을 했었다. 입자가속기로 다양한 입자의 성질과 발견을 해왔고 쿼크나 힉스입자의 발견 등 아주 중요한 연구와 발견을 하는 장치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실험결과가 누가 장난친 것처럼 모두 틀어진다면, 인간은 지금까지 헛된 것을 했다는 의미가 된다. 마치,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먹이를 주는 주인을 본 칠면조가 지금까지의 논리로 '이 시간에 먹이를 주러 오는 사람'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했는데, 어느 날 먹이를 주는 줄 알았던 주인이 칠면조를 잡아 죽였고 그날은 추수감사절이라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지자(智子, Sophon)
위에서 언급했듯, 초끈이론-M이론에서는 세상이 11차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할 때 다른 차원들은 작게 말려있다. 그 차원을 2차원으로 모두 펼친 다음, 그곳을 컴퓨터로 만들어 넣고 다시 차원을 말아 넣어 양성자로 만든 것이 지자이다. 전자, 양성자와 같은 소립자가 지혜를 가졌다 해서 智(지혜 지) 자를 붙여 지자(智子)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영어이름인 sophon도 지혜를 뜻하는 sophia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고차원을 저차원에 펼치면 전개도가 되는데, 차원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 전개도의 모양도 아주 복잡해지며 펼쳤을 때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이론으로 만들어진 소립자 컴퓨터다. 이런 저차원 펼침, 고차원 말림, 차원과 차원이 만나는 것, 고차원이 저차원을 해부하고 들여다보는 것은 <삼체>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주요 소재다. 특히 지자가 가상현실에서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고 다시 펼쳐졌던 양성자를 축소시키는데 그건 칼라비-야우 다양체의 모습이다. 칼라비-야우 다양체란 M이론의 대가인 에드워드 위튼이 말한 여분의 6차원을 시각화 한 형상이다.
6차원을 말아서 구현한 칼라비-야우 다양체
또한 지자는 쌍으로 만들어져, 양자 얽힘을 이용해 거리에 관계없이 4광년이나 떨어진 삼체 본대와 소통할 수 있다고 나온다. 이 부분이 과학 매니아들에게서도 오해받는 부분인데,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양자 얽힘으로는 빛보다 빠른 통신을 할 수 없다. 얽혀있는 양자의 하나의 상태를 확인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얽힌 다른 양자의 상태가 반대로 나오는 것이 양자 얽힘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양자의 상태를 바꾼다고 해서 나머지가 변하는 건 아니다. 그저 관찰을 시작할 때의 상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미래에 양자 얽힘으로 무언가 통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진 작가의 상상력이다.
어떻게 이 지자는 사람의 눈에 카운트다운을 새기고, 별을 깜빡이게 만들고, 전 세계의 통신을 장악할 수 있을까? 지자는 양성자의 크기이므로 양자역학이 적용된다. 즉 어느 한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게 가능하며 질량이 0에 가까우므로 광속에 가깝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기에 순간적으로 인간의 망막에서 별빛을 사라지게 하는 게 가능하고, 카운트다운을 망막에 새기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지금까진 전기로 하는 통신장치(스피커)가 필요하다.
혹여나 양자역학이 현대 물리학을 깨는 게 아니냐고 오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덧붙이면, 양자역학은 인간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뿐이지, 수학적으로는 너무도 명확한 현대물리학이다. 현대 과학은 이미 양자역학을 아주 잘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원자와 원자가 결합해 분자를 만들 때, 전자를 공유하는데 그것도 양자역학이다.
나노 섬유
나노 섬유는 나노미터 굵기의 섬유를 말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되어 온 분야로, 지금은 탄소나 아라미드, 금속 등 다양한 소재로 나노 섬유를 만들고 연구하고 있다. 나노미터가 얼마나 가는 것인가 하면, DNA가 3 나노미터의 굵기이고 탄소 나노튜브는 1 나노미터이다. 현재 개발된 탄소 나노튜브등은 철의 100배의 강도를 가졌지만, 원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무언가를 자르기보단 전기전달효율이 높고 작은 곳에 배치해 만들 수 있어서 초소형 회로나 가볍고 강한 섬유를 만드는데 주력하는 물질이다. 강도가 강하면 다이아몬드도 자를 수 있지만, 잘 휘어지지 않아 끊어지기가 쉽다. 또 드라마 <삼체>의 하이라이트인 '나노 섬유로 적들을 동강내기'에 나오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다. 배가 잘릴 것인지 섬유를 묶은 기둥이 먼저 잘릴 것인지도 여러 계산과 연구가 필요하다.
탄소 나노튜브는 2차원 물질인 그래핀을 말아서 만든다.
이 부분은 나노 섬유에 대한 과학도 과학이지만, 1차원 물질에 가까운 나노 섬유가 3차원 물질과 닿아서 파괴해 버리는 '차원의 맞닿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3차원 생물을 4차원의 생물이 들여다본다면, 3차원 생물이 2차원 생물을 위에서 바라본 것처럼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이다. 지구인보다 고차원의 세상 - 삼체성계를 가진 곳에서 더 높은 차원의 과학을 가진 삼체인이 보기에, 비록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벌레나 다름없다.
-----------
드라마 <삼체>는 소설의 긴 흐름을 흥미 있게 각색해 연출했지만, 그래도 시즌1이 다 가도록 외계인이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아 의아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직 지구가 멸망하려면 400년이나 남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삼체>의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다른 여타 이야기가 인간끼리 벌이던 함대전쟁을 빗대어 '외계인과의 전쟁'을 묘사하는 게 대부분이라면, <삼체>는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차원으로 이야기가 뻗어나간다.
동양에서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순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는 우주가 팽창했다 수축하는 것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예원제는 그저 모든 것을 끝장내려는 억하심정으로 삼체인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에게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또한, 삼체인 들은 자신들의 항성계를 떠나 지구에 살려고 오는 것이지만, 이들도 이들 나름대로의 절박한 사정이 있다. 악은 악이 아니고, 선은 선이 아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
아직까지는 꽤나 잘 각색했다 생각하고, 스케일이 너무 작아지지 않게, 동양철학을 놓치지 않고 다음 시즌을 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왕좌의 게임> OST를 만들었던 라민 자와디의 <삼체> 메인 테마를 들으며 삼체인들을 기다려볼까. <삼체> 답게 3박자에 화음을 엇갈리게 넣어놔서 삼체성계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
*삼체를 번역할 때, 영어로 3-body라고 하지 않고 중국어 발음인 Santi를 그대로 썼다. 단체를 만든 예원제가 중국인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공교롭게도 Santi는 산타클로스의 애칭인 santy와 발음이 같다. <삼체> 드라마에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는 비유로 중간에 산타클로스가 등장한다.
*지자가 동양인에 사무라이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인 이유는 자신의 이름이 智子이기 때문이다. 智子는 토모코라는 일본 여자이름이기도 하다. (영어로도 Sophia는 여자 이름이다)
-
- 총체적 가스라이팅 사회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아내가 계속 이혼을 요구하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아내 하퍼를 ‘사랑’한다. 그래서 하퍼가 이혼을 언급하자 물건을 때려 부수고, 핸드폰을 빼앗아 하퍼가 친구와 나눈 문자를 검열하고, 저항하는 하퍼의 얼굴에 주먹질을 한다. 그럼에도 이 ‘사랑’이 끝내 종결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아내와의 약속을 실천한다. 아파트를 둘러싼 창 형태의 펜스 위로 뛰어내려 처참한 몰골로 죽은 남자는 그의 소원대로 아내에게 트라우마‧죄책감의 형태로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영화 〈멘〉은 끔찍한 일을 겪은 하퍼가 시골의 저택으로 휴양을 떠나는 데서 시작된다. 한적한 데 위치해 근사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주는 저택은 몸과 마음이 지친 하퍼에게 최적의 장소인 듯 보인다. 집을 빌려준 남자도 다소 괴짜 같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친절하게 집 구석구석과 마을에 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첫 산책에서부터 이상한 일이 생긴다. 발가벗은 남자가 먼 곳에서 가만히 하퍼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 하퍼는 께름칙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친구와 통화하며 이 이야기를 들려주다 깜짝 놀라고 만다. 발가벗은 남자가 집까지 찾아와 하퍼를 쳐다보고 심지어 집 안에까지 들어오려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하퍼가 신속하게 대응한 덕에 경찰이 빠르게 출동하고 남자는 스토킹 혐의로 연행된다.
이상한 일은 반복된다. 이번에는 마을의 교회가 무대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자는 소년의 제안을 거절하자, 그가 다짜고짜 하퍼에게 욕설을 날린다. 뒤이어 등장한 목사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달래주는 듯 접근해 하퍼가 마음을 열고 자기 사연을 들려주지만, 목사는 이내 남편이 하퍼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사과할 기회를 주었느냐고 하퍼를 추궁한다. 남편의 행동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사형’을 당할 만한 일도 아니지 않냐며 남편의 죽음이 그를 너무 거세게 몰아붙인 하퍼 탓이라는 투로 말하는 것이다. 잔뜩 화가 난 하퍼는 마을의 술집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 자신을 스토킹했던 발가벗은 남자가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사건을 담당한 경찰도 뭐 그리 심각하게 구냐는 듯 하퍼를 대했기 때문이다. 첫 만남 때부터 성희롱성 농담을 지속하는 집주인도 점점 하퍼의 신경을 긁는다.
인터넷, 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 시골이라는 조건은 하퍼를 추궁하며 몰아붙이는 남자들에게는 최적의 조건이다. 그들은 자신의 환경적, 육체적 우위를 바탕으로 계속 하퍼를 옥죄여 온다. 밤이 깊어가고, 불안과 분노에 휩싸인 하퍼는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없는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하퍼를 직접적‧폭력적으로 단죄하려 든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가 죽은 하퍼 남편의 분신인 양 하퍼를 해치려 하는 것이다. 하퍼는 겁에 질려 도망 다니는 와중에도 정신을 잃지 않고 칼을 들고 자신을 해하려는 하나인 동시에 여럿인 남자들에 저항한다. 삽입 ‘당하는’ 대신 칼로 그들의 몸에 ‘삽입’하여 부상을 입히는 등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변하여 끊임없이 서로를 ‘출산’하는(즉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는) 남자들에게서 하퍼는 극한의 공포를 느끼지만 결코 그에 굴복하지 않는다. 중간에 환각에 빠져 남자들의 목소리‧욕망에 무릎 꿇을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하는데 끝내 집중력을 잃지 않고 싸움을 이어간다.
하퍼가 겪은 모든 일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실존적 경험과 관련이 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집착과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여성에게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남자(남편), 능글맞은 표정으로 웃으며 성희롱 ‘농담’을 일삼는 남자(집주인), 남자의 폭력이 ‘여자 탓’은 아니었는지 의심하는 남자(목사), 자기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여자에게 다짜고짜 욕하는 남자(교회 소년), 발가벗은 몸으로 여자를 공포에 떨게 하는 남자(스토킹 범), 그리고 이 모든 걸 대수롭지 않은 일 취급하는 남자(경찰) 등등. 하퍼를 몰아붙이는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이들은 개별 남성으로 존재하지만 여럿이 모였을 경우 문화규범, 사회제도가 되기도 한다. 전방위로 하퍼를 둘러싼 이(것)들은 하퍼에게 총체적 가스라이팅을 시도한다. 하퍼가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하나. 칼을 들고 절대 자기 상식을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다.
성경‧신화적 모티프를 과잉 차용하여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는 점, 여성 주인공의 감정을 리얼하기보다는 상황적으로 연출해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굳건하게 버티고 선 하퍼의 용기와 그가 맞서는 세계의 모습을 SF, 공포 장르로 절묘하게 그려낸 영화의 긴장감은 전반적으로 빼어나다. 〈멘〉은 남자들(Men)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개별 여성의 공포란 무엇인가를 고민케 하는 수작이다.
-
- [BIFF 데일리] 가장 씁쓸한 방식으로 ‘한국적인’ 가족 이야기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
한국영화의 오늘: 스페셜 프리미어
Korea/2023/109min
*시놉시스
두 쌍의 부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성공지상주의자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원리원칙주의자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는 형제다. 재완의 아내 지수(수현)와 재규의 아내 연경(김희애)까지 네 사람은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며 고민에 빠진다.
〈보통의 가족〉은 어쩌면 가장 씁쓸한 방식으로 ‘한국적인 것’을 포착했다고 할 수 있을 영화다. 두 엘리트 가족이 있다. 형 재완은 잘 나가는 로펌 변호사고, 동생 재규는 대형 병원 의사다. 재완의 두 번째 아내 지수는 재완의 사무실에 떡 배달을 갔다가 결혼까지 하게 된 ‘젊고 예쁜’ 여성이고, 국제 봉사 NGO에서 일한 재규의 아내 연경은 올바름과 정정당당을 강조하는 재규에게 어울리는 짝으로 보인다.
이들의 관계는 묘하게 뒤틀려 있다. 재완은 동생 재규가 원리원칙주의자처럼 보여 답답할 때가 있고, 재규 역시 종종 형 재완이 돈만 아는 속물이라 생각한다. 지수는 상류층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출신 때문에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가졌고, 치매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연경은 어쭙잖게 형님 행세를 하려 드는 지수가 같잖기만 하다.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 법한 뒤틀린 관계 역학을 지닌 이 엘리트 가족에게 사건이 생긴다. 고등학생인 재완의 딸과 재규의 아들이 술을 마신 후 노숙자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제 두 가족은 시험대에 든다. 법의 허점을 악용해 승승장구하던 변호사 재완은 과연 딸이 연루된 살인사건까지 무마하려 시도할까? 형 부부를 비웃으며 ‘선하게’ 살고자하는 재규와 연경은 과연 자기 자식 일에서도 지금껏 견지해온 삶의 원칙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새엄마’라는 지위에 늘 불안을 느끼던 지수는 오히려 이번에는 그 거리감에 안도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살인을 저지른 아이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인지할까? 그리고 그들은 부모의 사회적 영향력을 어떤 방식으로 계승하려 하는가?
〈보통의 가족〉은 설득력 있는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이 인상적인 영화다. ‘멜로 장인’, ‘멜로 거장’이라 불리는 허진호 감독의 재능, 즉 관계성을 탁월하게 감각하고 드러내는 재능이 가족이라는 뒤틀린 이익 공동체에 적용되자 또 다른 빛을 발한다. 허진호 감독이 새로이 천착한 가족 관계는 동시대 한국에 관한 여러 물음을 파생한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엘리트는 ‘신분’이 되었다. 상류층과 하층민의 목숨 값은 다르다.
-가족이라면 다른 가족의 ‘허물’을 덮어줘야 한다.
-각자도생의 원칙이 가족 내부에까지 침투했다. 즉 자기 이익에 반하면 자식까지 버린다.
-뼛속까지 신자유주의의 능력주의, 경쟁주의를 학습한 청소년들에게는 보편적 윤리와 도덕이 없다. 이들에게는 자기 생존만이 윤리이자 도덕이다.
-‘선함’은 본질적으로 위선과 허영이다.
〈보통의 가족〉을 보고 우리가 논쟁할 수 있는 명제들의 대략적인 목록이다. 결이 비슷한 것들도 있지만 상호 모순적인 것들도 있다. 관객의 관점과 문제의식에 따라 이는 얼마든지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도발적인 물음들은 문제를 빙글빙글 돌리지 않고 직선적으로 나아간다. 관객은 매 순간 ‘나라면?’이라고 질문해봄으로써 멜로 장인이 선보이는 ‘기괴한 가족 멜로’의 현장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와 메시지가 마찬가지로 설경구 배우가 출연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022)를 연싱시키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완성도와 몰입도가 더 높게 느껴졌다. 함께 보며 논쟁할 만한 시의성과 오락성을 고루 갖춘 영화다.
*영화 상영시간
10-03/16:0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10-04/09:00/CGV센텀시티 6관
10-07/09:00/CGV센텀시티 3관
-
- 둘리가 40살?!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리뷰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2023.05.24 개봉)
감독: 김수정, 임경원
더빙: 박영남, 이인성 등
무려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 96년도에 개봉했던!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했어요~
올해가 둘리의 40살 생일이라고 하는데요
계속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이번에 보고 왔습니다!
우선 저는 둘리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었고 극장판도 어릴 때 한두 번 봤던 거 같아요
내용이 달라진 것도 아니구 더빙을 다시 한 것도 아니구 정말 화질만 4K? 버전으로 해서 낸 거라서
15,000원 주고 보기에는 아까운 감이 있었지만 . . .
둘리 개봉 기념으로 특전 같은 거 많이 나눠 주더라구요
그게 너무 예뻐서 볼 수밖에 없었다는...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고는
캐릭터를 모르고 있던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어 놓은 구조였는데요
둘리가 쌍문동에 온 배경부터 그의 친구들인 도우너, 또치까지 모이게 된 과정
고길동과 둘리의 관계성까지 함축적으로 보여 주거든요
하지만... 그걸 보여 주고 있느라 시간을 잡아먹어서......
캐릭터 설명이랑 띵까띵까만 1시간이고 본격적인 전개는 진짜 40분 만에 후루룩 끝나 버림
고로 영화로서는...... 최악인 셈이죠
주인공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주인공인 둘리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쌍문동에서 오래도록 잘 버텨내는 것?
아니면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
엄마에 대한 언급은 정말 기승'전'결에 가서야 겨우 나와서 엥 갑자기 엄마가 그립다고,,?? 하는 생각뿐이에요
'기승'까지는 쌍문동에서의 생활만 보여 주거든요
우주로 가게 된 것도 개연성 없이 갑자기 떠나게 된 거구......
애니메이션이라 용납 가능한 스토리인 거지
일반 영화였으면 정말 욕 오질나게 먹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주인공 외 많은 캐릭터에게 사건을 부여해 준 것도 문제점이지 않을까 싶네요
둘리: 엄마가 그리움
고길동: 바요킹이랑 싸워서 이겨야 함
도우너: 타임 코스모스 망가짐
또치: 미래로 안 가고 싶었는데 따라가게 됨
둘리 엄마: 둘리를 유령섬에서 보내야 함
공실이: 둘리를 유령섬에서 보내야 함 etc...
'엄마를 찾아 떠나는 둘리'를 메인 소재로 잡고 고길동은 깔깔이쯤으로 사용,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둘리를 도와주는 전개가 좋았을 듯한데
뭐... 30년 전 극장판이라 그럴 수도 있겠죠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점이 높은 이유는 아무래도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겠죠
그림체부터 1990년대 그림이고 대사도 그렇고요 ㅋㅋㅋ
무엇보다 오프닝에서 노래 나올 때 약간 찡해짐
엔딩크레딧도 쿠키처럼 나오긴 하더군요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
-
- 완다비전이 차려놓은 마블의 탄탄한 미래
-
2021. 03. 16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마블의 미래?
00:46 화이트 비전
02:00 모니카 람보
03:11 캡틴마블2 & 시크릿 인베이젼
04:33 숙제타임!
06:03 닥터 스트레인지 & 스칼렛 위치
09:41 여러분 덕분에 많이 웃었습니다
-
- 영화 <아노라> 공식 예고편
제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감독의 달콤씁쓸 현실 로맨스 블랙 코미디! [아노라] 메인 예고편 공개! 11월 6일 대개봉
-
- 티빙 X 파라마운트+ <스타트렉 : 스트레인지 뉴 월드> 티저 예고편
새로운 우주, 새로운 모험? 엔터프라이즈호의 새로운 항해에 탑승할 티즐리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