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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2-12-12 07:48:08

경이로운 생生의 의지로 창조해낸 ‘페르시아어’

〈페르시아어 수업〉 리뷰

6★/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유럽, 나치의 호송차 한 대에 유대인 여럿이 타 있다. 호송차 안에서 옆에 앉은 유대인 남자와 대화를 나누던 ‘질’은 남자의 간절한 요청에 자신의 샌드위치 반쪽과 그가 가진 페르시아어 책을 교환한다. 나치에게 잡혀가는 와중에 책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는 하지만 초판본이라 귀한 책이라는 남자의 말과 그가 너무 배고파 보인다는 점이 질의 마음을 약하게 했다. 이때만 해도, 질은 샌드위치 반쪽과 교환한 페르시아어 책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호송차가 한적한 숲속 어딘가에 멈춰 선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가방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넓은 구덩이 앞에 일렬로 세운다.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처리하듯 총을 쏜다. 그렇게 무리의 절반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다. 이제는 질의 차례다. 질은 총을 맞기도 전에 쓰러지는 척 연기하지만 나치 병사는 그런 질을 가소로워하며 겁박한다. 바로 그때, 질의 목숨을 보전케 한 거짓말이 시작된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다, 나는 페르시아인이다.” 품속의 페르시아어 책이 그 근거다.     

 

 

 

  페르시아어 책이 질을 살릴 수 있었던 건 독일군 대위 코흐의 꿈 때문이다. 병사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코흐는 전쟁이 끝나면 테헤란에서 식당을 열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래서 늘 페르시아어를 배우기를 원했고, 병사들에게 페르시아인을 데려오면 적절한 보상을 하겠다고 제안해둔 상태였다.     

 

 

 

 

 

 

  이제 위험한 동행이 시작된다. 코흐도, 질을 코흐에게 데려온 나치 병사도 질이 진짜 페르시아인인지 의심한다. 독일군 부대에 페르시아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진위를 따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구석이 보인다면 바로 목숨을 잃거나 끔찍한 노역을 견뎌야 한다. 질은 코흐에게 하루에 네 개씩 가상의 페르시아어 단어를 알려주며 임기응변으로 버텨나간다. 코흐뿐만 아니라 질도 이 모든 걸 기억하고 외워야 한다. 이전 페르시아어 수업을 완벽하게 기억해야 의심받지 않고 더 안정적으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흐와 병사들의 의심이 시도 때도 없는 시험으로 이어져 질은 포기하기 직전까지 몰린다. 임기응변만으로 도저히 이 상황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절망감에 빠진 것이다. 그런 질에게 페르시아어책에 이은 두 번째 구원이 찾아온다. 조금씩 질을 신뢰하기 시작한 코흐가 그에게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명단을 정리하는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질은 유대인들의 이름에서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들어낼 규칙을 찾는다. ‘마르크스(Marx)’라는 이름에서 ‘M’을 빼고 ‘아르크스(arx)’라는 단어를 창조하는 식이다.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 명단이 질의 생명을 구하는 아이러니로 이어지는 것이다.     

 

 

 

 

 

 

  코흐와 질의 불안한 동행은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 사실 코흐 역시 유대인일지도 모르는 페르시아인을 끼고돈다는 부대 내 소문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있는데, 코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이를 감내하면서까지 질을 감싼다. 수용소 상황이 변해 질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야 하거나 여러 위기에 처할 때도 코흐가 질을 구해준다.     

 

 

 

  어느덧 수천 개의 단어를 암기한 코흐가 ‘페르시아어’로 시를 지어 질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있다. 질은 더 나아가 이제는 대화 연습이 필요할 때라며 과감하게 가상의 페르시아 단어로 짤막한 대화를 시도한다.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사람은 꿈과 우정을 키우고 다른 한 사람은 생명을 연장한다. 질이 죽은 유대인의 명단으로 목숨을 구하는 첫 번째 아이러니에 이은 지독한 역설이다.     

 

 

 

  인간의 삶이 거짓 위에서 어디까지 지탱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건 이 영화를 보는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종전 후 테헤란으로 향하는 입국 심사에서 마침내 진실을 알고 폭발하는 코흐와 가짜 페르시아 단어를 만들면서 기억해둔 포로 명단을 연합군에게 알려주는 질의 모습은 거짓 위에 구축된 삶을 단순한 선악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보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영화가 재현하는 둘 사이의 긴장감의 크기가 한껏 더 증폭되기도 한다. 다소 전형적인 구석이 있는 영화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페르시아어 수업〉은 간절한 생의 의지에서 비롯한 거대하고 처절한 아이러니를 맛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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