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2-18 10:10:24
1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서울의 봄> 천만 가시화
2023 두번째 천만영화 드디어 나오나요~? 정우성배우가 <서울의 봄> 무대인사에 참여한 횟수만 해도 217
회라고 하는데요.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영화에 대한 열정, 영화관을 찾아준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보여 마음이 따듯해지네요. 어린이들에게도 선물같은 영화 <뽀로로 극장판 슈퍼스타 대모험>이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연말을 달려가는 12월 3주차 박스오피스 같이 만나보시죠
[국내 박스오피스]
개봉 한달여가 되어가지만 식지 않는 열기를 보이는 <서울의 봄>이 누적관객수 894만 명으로 빠르면
이번주 안으로 1000만 관객을 달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2위는 뽀로로 탄생 20주년 기념작 <뽀로로 극장판
슈퍼스타 대모험>이, 3위는 <3일의 휴가>가 차지했습니다.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누적관객수 28만 명을 넘어서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일본 영화중 최고 관객수를 기록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티모시 샬라메 주연 <웡카>가 개봉 첫 주 전 세계에서 1억 5천만 달러를 기록,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웡카>는2005년 공개된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스핀오프 영화로 윌리 웡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 최고의 초콜릿을 만들어내게 되는지를 그립니다. 국내에서는 내년 1월 31일 개봉예정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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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세상의 모든 스텔라를 응원해
제목 ㅣ 사랑에 빠진 스텔라 Stella in Love
감독 ㅣ 실비 베레드
출연 ㅣ 플라비 들랑글, 마리나 포이스, 벤자민 비올레이
시놉시스
스텔라는 올해 마지막 학년이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스텔라는 유명한 80년대 파리지앵 클럽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열광적인 밤을 알게 된다. 스텔라의 친구들은 공부를 하고 있고, 스텔라의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빠져 있다. 이번 해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스텔라의 인생 전체가 결정될 것이다. 스텔라는 생각하지 않는 척 한다.
프로그램 노트
2008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스텔라>의 속편 격인 작품으로, <스텔라>가 초등학교의 마지막 해 이야기를 다룬 데 비해 6년 후인 고등학교 마지막 해의 이야기를 그렸다. 진로를 고민해야할 고등학교 졸업반인 스텔라지만, 그녀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척 외면한다. 친구들은 공부만 하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함께 떠나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리는데 스텔라는 1980년대 파리의 전설적인 클럽인 레 뱅 두슈에서 춤꾼 앙드레의 현란한 춤을 목격하고 광란의 밤을 경험한다.
대학에서 무용을 공부하겠다는 꿈도 가져보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히는 스텔라. 과연 성인이 된 스텔라는 어떤 모습일까? <스텔라>에서 나타났던 가족 안에서의 외로움과 사회적으로 소외되어가는 문제들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스텔라를 괴롭히며, 그녀의 성장기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1980년대 초반 클럽의 모습과 헤어스타일, 의상 등 레트로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는 실비 베르에이드 감독의 연출도 볼거리이다.
세상의 모든 스텔라를 응원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고민, 내가 과연 뭘 잘하는지에 대한 의문, 어딘가 완벽하지만은 않은 가정사, 친구들과의 갈등, 영화 <사랑에 빠진 스텔라>는 국적과 문화도, 시대도 다르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은 소재다. 나도 아마 스텔라처럼 영화롭게는 아니지만 이 고등학생 때 분명 이 고민을 하고 갈등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스텔라를 조금씩 응원하고 있었다. 그 응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마지막 장면 마지막 대사가 인상깊었다. 스텔라는 여러 갈등을 해소아닌 해소 한 뒤 "미래 걱정은 나중에" 라고 하고 영화는 끝난다. 그래, 미래 걱정은 나중에!
1980년대 초반 클럽 '레 벵 두슈' 간접 체험
스텔라가 스트레스를 풀러 가는 곳이자, [(앙드레와)사랑에 빠진 스텔라]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장소는 '클럽'이다. 사실 클럽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2023년의 클럽 분위기도 모르지만, 영화는 1980년대 초반 클럽의 모습을 꽤나 자주, 많이, 오래 보여주어서 간접 체험이 가능하다. 스텔라는 학생이지만 짙은 화장을 하고 입장을 하고 그 곳에서 '앙드레'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앙드레'는 춤과 노래, 음악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고 스텔라는 아마 그런 모습에서 앙드레에게 매력을 느낀 듯 싶다. 앙드레에게 사랑을 빠졌다는걸 보여주자마자 스텔라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안돼! 누가봐도 나쁜 남자의 정석이잖아?"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스텔라는 앙드레를 만났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름 마냥 나쁜남자도 아닌 것 같고.
여러모로 다양한 연출
영화는 다양한 연출을 보여준다. 사실 제목은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아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본 영화다. 영화에서는 '가사가 있는' 음악을 많이 들려준다. 그리고 <스타 이즈 본> 과같은 음악 영화에서 보여줄 법한 연출을 보여준다. 바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멜로 가득찬 눈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클럽에서 춤출때는 약간의 슬로우로도 보여주며 사랑에 빠진 스텔라의 마음을 연출을 통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약 두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인데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는 <스텔라>의 속편이라고하는데, <사랑에 빠진 스텔라>를 보고 나니 스텔라가 어렸을 적 모습을 담았다는 <스텔라>도 궁금해졌다. 성장 영화 그리고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영화 <사랑에 빠진 스텔라> 상영 시간표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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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이단인가? 어떤 걸 믿겠는가!
색다른 공포다. 종교를 소재로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만나는 건 흔하지 않다. 우리가 믿는 종교란 무엇인지 밑바닥까지 파묘하고, 마주한 진실에도 기존 믿음을 견고히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선택이 이어진다. 여기에 과연 모르몬교를 믿는 두 자매가 이단인지, 그들에게 종교의 실체를 까발리는 리드가 이단인지 관객에게 되묻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강도는 세지고, 하염없이 깊어진다. 어떤 걸 믿어야 할까? 종교가 없다고 해도 이 물음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모르몬교의 신실한 신도인 두 자매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은 오늘도 전도하러 다닌다. 어떻게든 신도를 모으기 위해 애쓰는 이들은 외딴 집주인 리드(휴 그랜트)의 집에 도착한다. 자신들을 이단으로 보는 사람들과 다르게 따뜻함으로 반겨주는 리드의 안내로 집 안에 들어가는 자매들. 곧이어 믿음과 종교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꼬리에 꼬리를 물은 이 질의응답은 점차 반스와 팩스턴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이상한 낌새를 차린 반스는 리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문은 굳게 잠긴 걸 확인하고서는 자신들이 이 집에 갇힌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리드는 친절함을 유지하면서 들어오는 문으로 나갈 수 없다며, 다른 두 문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 문에 ‘믿음’, ‘불신’이라 적는다.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은 살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한다.
<헤레틱>은 작정한 것 같다. 그동안 우리가 종교에 대해 묻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고, 그에 따른 답을 듣는다. 신앙을 전하기 위해 온 자매들은 오히려 리드에게 그들의 신념이 어디까지인지 시험대에 오른다. 마치 간증을 하는 자리인 것처럼, 리드는 모르몬교의 일부다처제 교리를 시작으로 물꼬를 트고, 자매를 압박한다. 주객이 전도된 자리에서 이들은 쉴 새 없는 질문을 받고 답하면서 자신들이 어떻게 이 믿음을 유지해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리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신 보드게임의 대명사 ‘모노폴리’, 라디오헤드의 ‘Creep’과 관련된 표절 시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들며, 종교와의 유관성을 주장한다.
안전한 곳에서 벌어지는 토론장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자매들은 이 집에 갇힌 상태다. 밀실 안에서 첨예한 종교적 논의는 점점 리드에게 무게가 실리고, 자매들은 독 안에 든 쥐처럼 위험한 상황에 몰린다. 그리고 리드는 계속해서 이성적인 접근법으로 두 자매에게 종교에 숨겨진 정체를 소개한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여기서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이제 누가 이단처럼 보이냐고. 신기하게도 두 자매가 이단인데, 리드가 더 이단처럼 느껴진다. 자신만의 논리로 이 자매들에게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 자체가 무논리 궤변이다. 자신의 깨우침이 곧 진리라 생각하는 이 잘못된 신념은 자매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공포의 요소로 작용한다.
흥미로운 건 이런 리드의 행동이 그동안 종교가 믿음이란 단어로 세상의 약자들에게 뻗친 가혹한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말이 곧 진리요 법이라 말하는 종교인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라야 하는 형국에 놓인 사람들. 극 중 생존의 기로에 선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들이다. 약한 자를 구원하는 게 아닌 오히려 이들을 구워삶아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종교의 어두운 민낯은 안경을 쓰고 중저음 목소리를 내뱉으며 인텔리전트한 모습 뒤 보이는 리드의 실제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종교의 민낯은 영화 첫 장면 큰 바위산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콘돔 이야기를 하는 자매들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경험해 보지도 않았지만, 콘돔 회사의 마케팅 문구나, 이를 사용해본 사람들의 말을 통해 이 제품을 믿는 자매들의 모습이 비친다. 영화는 마치 종교도 콘돔 회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로 시작해 젠더 이슈까지 건드는 <헤레틱>의 야심은 스릴러 장르의 재미로 이어진다. 추리 요소를 가미한 작품 특성상 영화는 끝까지 봐야 리드의 속내를 알 수 있는데, 이는 생존의 기로에 선 두 여성의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더한다. 특히 집 안이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다양한 감정선이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이 부분에서 <아가씨> <그것> 등 폐쇄적 공간 안에서 확실한 밀도감을 부여해왔던 정정훈 촬영감독의 장기가 잘 발휘된다. 대신 슬래셔, 고어 장르의 호러 영화는 아니다 보니 시각적인 공포는 덜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를 상쇄하듯 배우들의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휴 그랜트의 악역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인텔리전트한 외모로 분위기를 편안하게 했다가 광기 어린 신념이 삐죽삐죽 튀어나오면서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게 상당한 몰입감을 준다. 이렇게 좋은 목소리가 오히려 소녀들을 압박하니 그 자체로 낯설고 묘하면서 강압적이다. 극 중 휴 그랜트의 이중성은 안경 착용으로 빚어지는데, 언제 안경을 쓰고 벗는지 유심히 보기 바란다.
여기에 소피 대처와 클로이 이스트의 연기도 발군이다. 서로 다른 성격과 믿음의 결이 다른 이들은 각자 처한 위기를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휴 그랜트와의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극을 이끈다. 특히 최근 개봉한 <컴패니언>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소피 대처의 연기는 왜 그녀가 차세대 호러퀸인지 알 수 있게 한다. 큰 눈망울을 통해 비치는 두려움과 불안, 그럼에도 강단있는 행동 등 좀 더 진취적인 호러퀸 캐릭터로서 그 맛을 살린다.
결말에 이르러서 영화는 과연 우리가 믿는 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또 한 번 안긴다. 감독은 이 악몽 같은 이야기 속 다양한 일들이 과연 실제 존재했는지, 누군가의 상상 속 이야기인지 혼돈에 빠뜨린다. 극 중 팩스턴은 자신이 죽으면 나비가 되어 사랑하는 이들의 손 끝에 앉겠다고 말하는데, 호접지몽(胡蝶之夢)을 뜻하는 이 말을 끝까지 유념하며 보면 이 작품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 스튜디오 오르카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평점: 3.5 /5.0
한줄평: 믿음과 불신 속 세상을 사는 이들을 향한 날선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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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니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듯
MBTI에서 끝자리 P를 담당하는 인간으로서, 나는 충동적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뭔가 헛헛함을 털어낼 수가 없어 영화라도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작정 밤 10시에 영화 예매에 돌입해 요새 관심있었던 챌린저스를 보았다.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젠데이아 배우의 팬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젠데이아로 시작해 두 남자 배우로 끝나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로맨스가 주된 내용인 영화는 서사에서 기대할 것은 딱히 없기 때문에 캐릭터가 매력있으면서도 공감을 살 수 있어야 하거나 서사에서 설정값이 독특한 지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테니스를 주제로 하는 만큼 설정값이 특이한 지점이 있었고, 세 캐릭터 모두 매력있었기 때문에 너무너무 잘만든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1. 인간의 관계성을 상징하는 테니스
"테니스는 관계야" 라는 타시의 대사가 있다. 공을 주고받으면서 상대의 강점, 약점을 모두 알 수 있으니 그럴 것이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말을 나누는 행위를 공을 주고 받는 행위와 같다고 한다면, 대화 과정에서도 이 사람의 장점, 단점, 그리고 건드리면 안되는 선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테니스는 승부를 보는 게임이기 때문에 상대의 단점을 파고들어 허점을 찔러야 한다면, 인간 관계에서도 누군가와 싸워야할 때, 관계가 진전될 수록 보이는 단점에서 비롯된 상대의 허점을 찔러 안해도 될 말을 하게 된다. 이런 인간관계의 관점에서 많이 알수록, 그리고 친해질수록 범하게 되는 실수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타시:
여주인공 타시는 두 남자 주인공인 아트와 패트릭의 사랑을 받는 여자이다. 타시는 두 남자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의 마음을 저울질한다. 패트릭은 저돌적이고 자신만만한 허세가 매력인 인물이고, 아트는 겸손해보이고, 수줍어 보이지만 내면의 야망을 숨기는 타입이다. 이 두 캐릭터의 차이를 두고 보았을 때, 타시의 애정을 갈구하는 두 남자의 대결에서 누가 이긴 걸까. 타시는 누굴 가장 사랑했던 걸까. 나는 타시가 두 남자의 성격적인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기 보다는, 두 남자의 테니스 실력을 사랑했던 것 같다. 테니스를 사랑하고 잘하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이용해 더 재밌는 테니스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는 승부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마치의 자신을 떠올릴때면 '승리'가 자동으로 떠올릴 수 있게끔 말이다.
패트릭과 아트:
패트릭과 아트는 주니어 국제대회에서 복식으로 금메달을 따며 환상의 콤비를 보여주며 둘도 없는 친구사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타시가 두 남자 중 누구를 선택한 걸까 궁금해하지만 나는 오히려 두 남자는 정말로 타시를 사랑한 것일까 의심이 든다. 타시를 일종의 트로피로 생각하고 두 남자는 서로를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증거로 아트는 타시와 먼저 사귀었던 패트릭을 질투하며 조용히 이간질을 하기도 하지만 패트릭은 바로 의도를 눈치채면서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그저 웃기만 한다. 아트 또한 패트릭과의 과거를 대수롭지 않은척 하면서 기억하지 못하는듯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신경쓰인다는 것을 그를 격하게 부정하는 모습에서 느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애정은 두 남자가 타시에게 동시에 애정표현을 하다 타시가 얼굴을 슥 빼면서 두 남자가 키스하는 장면에서 이미 다 드러나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두 남자의 애정을 확인한 타시의 그 순간의 표정은 내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실망감보다는 '한 건 했다'는 표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얘네 둘 이용하면 꽤나 재밌어지겠는데?'하는 느낌이었달까. 두 남자는 승리의 상징인 타시를 얻기 위해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향한 애정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아보인다. 그들에게 타시는 개인적인 욕망을 의미하다가도 일종의 트로피 같기도 하다.
그러니 마지막 두 사람의 숨차는 랠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약점을 파고든다는 느낌보다는 '잘 지냈냐, 이 새끼야'라고 애정어린 대화를 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타시의 테니스 관계론이 성립한다. 두 남자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관객은 두 남자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이들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을 보고 있자면, 인간은 모두 관계를 논할 때, 일정부분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은지 고민해보게 된다. 아트는 타시에게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지쳐있고, 패트릭도 타시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타시의 케어를 받는 아트가 부러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타시도 아트를 겉으로 사랑한다고 하며 코칭을 하지만 사실은 테니스를 사랑하는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현 상황에 충실하기 위해, 혹은 체면을 위해 그들은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 자신에게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누군가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하면 솔직을 가장한 거짓을 고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한심함을 느낀다. 어쩔 때는 나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한 인간인가 싶다가 정작 관심을 받으면 바로 도망쳐버리고 싶어지는 내 자신을 그들의 테니스 랠리에 비추어 고민해 보게 된다. 나는 내 인간관계에 얼마만큼 충실하고 솔직한지. 얼마나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있는지.
2. 마치 스포츠 광고 같은
이 영화는 세 사람의 관계성에 포커스를 두지 않아도 이미 테니스 경기를 보는 듯 혹은 나이키, 아디다스 광고를 보는 듯한 영상미도 일품이다. 선수들의 땀을 잘 보이게 하는 연출이나 공에 카메라를 붙이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랠리에 참여할 수 있게끔 했던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경기장면 하나하나 모두 세련미를 강조하고자 했다는 지점에서 박수를 치고 싶다. 세 배우의 화보집을 보는 듯한 이 지점이 이 영화를 오락영화로만 소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음악도 마치 트렌디한 광고음악같아서 ost도 따로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관객분들도 음악 얘기 해주시던데 정말 음악이 특별하다. 그 음악들을 듣고 있자면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런웨이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총평
가볍게 영화 보고 싶은 분들, 가볍지 만은 않은 영화 보고 싶은 분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젠데이아 배우의 멋있음을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잘모르는 배우 새로이 덕질하고 싶다 하는 분들도 이 분들은 어떠냐는 소개를 하고 싶게 만든다. 좋은 영화는 한 번봐서는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없으니 한 번더 봐야겠다. 요새 좋은 영화들이 참 많이 개봉해서 좋다.
그나저나올해 쓴 글들은 거의 다 괜찮았던 영화였던 것 같다.
어, 아닌가. (이전 썼던 글 다시 보고 오겠음)(확인하고 옴) 음, 맞다. 내 취향을 저격했냐 아니냐를 떠나서 만듦새가 좋은 영화들이었다고 생각하는 영화들만 글쓰게 되어서 기쁘다. 그 기쁨에 이 영화가 들어가서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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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 영화 '남매의 여름밤'
“빨리 내 방으로 와 봐! 급해!”
“왜?”
“불 좀 꺼줘^-^”
남매들의 밤은 항상 치열하다. 서로 아웅다웅 괴롭히고 못 살게 군다. 사실 남매라는 관계는 형제나 자매에 비해 훨씬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해님 달님' 속 오누이 같이 다정한 사이가 있는 반면, 좋아하는 게 달라서 서먹서먹하거나 얼굴만 봐도 으르렁 거리기도 한다. 때론 자신의 남매보다 ‘엄마 아들’ 혹은 ‘아빠 딸’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릴 때도 있다. 제목부터 이렇게 복잡한 단어를 넣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그들을 어떤 관계로 그리고 있을까?
영화 ‘남매의 여름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아빠(양흥주)와 함께 작은 지하방에서 살던 남매 ‘옥주(최정운)’,’ 동주(박승준)’는 할아버지(김상동)가 계시는 2층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고모(박현영)까지 같이 지내게 되며 한 지붕 아래 두 남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제24회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감독 조합상, 시민 평론가상, 넷팩상, KTH상을 수상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후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밝은 미래상 수상,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상 수상, 제8회 무주 산골영화제의 대상으로 불리는 뉴비전상을 연이어 휩쓸었다. 평론가의 선택이 반드시 관람할 이유가 되지 않지만,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관객들이 공감할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현실적인 가족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 흠칫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느 집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법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가족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관계를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아빠, 가출한 고모,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된 ‘옥주’, 세상 물정 모르고 해맑은 막내 동주’까지 서로 다른 인물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대화하고 행동한다.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밥 먹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수저를 건네는 모습이나 ‘콩국수 동주한테 덜어줘.’, ‘이거 맛있다,’ ‘포도가 햇빛을 많이 받아서 달아요.’ 등의 대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 위주가 아닌 식사 장면 전체를 촬영해서 실제 가정의 식사시간을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사용된 할아버지의 생신 축하 장면은 핵심 장면으로 꼽힐 만큼 가족 간의 소중한 순간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 감독은 영화의 첫 시사회에서 식사 장면에 대한 질문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말 그대로 가장 일상적인 식사 장면을 담고 싶었다. 옥주의 가족이 처음 할아버지의 양옥집에 왔을 때는 주방에서 고모가 왔을 때는 거실에서, 동주와 옥주는 2층에서 식사를 하는데 가족들이 어떤 위치에서 식사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답했다.
영화의 배경인 할아버지의 2층 집도 현실적이다. 담금주와 각종 살림살이가 쌓여서 창고가 된 작은 방과 오래된 재봉틀은 그곳의 세월을 가늠케 한다. 인천에서 어느 노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빌려 촬영했으며, 영화의 시나리오도 집에 맞춰 일부 수정했다고 한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할아버지 집 마당은 관리 안 된 텃밭이 있는 걸로 설정했지만, 촬영 장소에 맞춰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추억을 쌓는 하나의 매개체로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시간적 설정인 ‘여름’의 분위기가 한층 강조되었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14살 ‘옥주’
영화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자체는 극적이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처럼 영화의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정리된다. 화면도 감성적인 색감을 사용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담담하게 그린 가족의 일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고 잔잔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이 담백한 표현 방식에는 주인공 ‘옥주’의 영향이 크다. 주요섭 작가의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른들의 복잡한 관계를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서 담아낸 것처럼 ‘남매의 여름밤’도 마찬가지다. 14살 ‘옥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어른들의 현실적 어려움이나 불편한 상황이 많은 부분 생략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옥주’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있다.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마냥 즐거운 아이이자 또래 친구들처럼 외모와 이성에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춘기 소녀다. 하지만 어른들의 미묘한 관계를 눈치채고 그들의 대화를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옥주’는 어른의 세계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몰랐던 진실이 밝혀지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변화를 겪으며 관계와 감정에 혼란을 느낀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도 ‘옥주’네 가족은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옥주’와 ‘동주’는 계속 싸울 거고 아빠와 고모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껄끄러운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러면서 괜한 자존심과 미안함에 부끄러운 모습을 숨길게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그들은 같은 식탁에 앉아 별 거 아닌 이야기에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다. 내면의 민낯까지 솔직하게 보여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 지내던 여름밤처럼 말이다. 어느 가족의 현재이자 추억할 과거, 견뎌야 할 미래인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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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 2 |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위선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 우승자가 되어 456억 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넣었지만, 게임에서 죽은 친구와 동료를 잊지 못하는 '성기훈'(이정재). 그는 사람들이 돈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이 게임을 중단시키기로 결심하고, 게임 진행의 총책임자인 '프론트맨'(이병헌)을 쫓는다. 그 출발점으로 기훈은 2년간 서울 지하철을 뒤진 끝에 게임 참가자 모집책인 '딱지남'(공유)을 찾아낸다.
딱지남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기훈은 마침내 프론트맨을 만나만, 곧바로 그의 계략에 당한 나머지 다시 한번 오징어 게임에 끌려간다. 경험을 살려 경마장 친구 '박정배'(이서환)를 포함해 모든 참가자를 살리고, 게임을 멈추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기훈. 그러나 '타노스'(최승현) 등 상금에 눈이 먼 참가자들은 그의 말을 부정하며 혼란을 초래하고, 그 사이 가명으로 게임에 참여한 프론트맨은 기훈과 그의 계획을 더 자세히 파헤친다.
1승을 더한 속편의 저주
<오징어 게임>이 쌓아 올린 금자탑은 화려했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흥행한 작품 중 하나였고, 제74회 에미상에서도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비롯해 여섯 부문을 석권했다. 자연히 시즌 2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겉모습은 기대를 충족시키기도 남았다. 주연 이정재는 <스타워즈>에도 출연하면서 더 중요한 배우로 성장했고, 임시완, 강하늘, 이진욱 등 각각 드라마 한 편의 주연을 맡을 수 있는 배우들도 결집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공개된 <오징어 게임 2>는 전 세계적인 흥행력과는 별개로 실망스럽다. 시작은 좋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힘이 부족하다. 여러 이유가 있다. 다음 시즌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점이 명확하다 보니 극의 완성도가 부실하다. 지난 시즌에 비해 캐릭터들의 매력도 명확하지 않다. 새롭게 등장한 게임들도 지난 시즌에 비해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메시지다. <오징어 게임>은 잔혹하고 원초적인 자극을 통해 적자생존, 계급사회, 승자독식 같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발했다. 3년 만의 속편은 주제의식을 계승하고, 확장시키려는 듯하다. 그러나 속편의 완성도와 존재 자체가 작품과 브랜드 간의 갈등을 극대화한 결과, <오징어 게임 2>는 위선자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오징어 게임>과 경제적 합리성
자본주의 질서는 한 가지를 전제한다. 모든 사람이 경제적 합리성을 갖췄다는 가정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올 효용이 극대화되는 선택지를 자율적으로 고른다. 이익이 되는 행동을 선택하고, 피해를 주는 선택은 포기한다. 3년 전, <오징어 게임>은 경제적 합리성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상황을 보여줬다.
'상우'(박해수), '일남'(오영수)과 기훈의 대립이 그 예시다. 상우는 456억 원을 얻기 위해서 우정, 연민처럼 인간적인 가치를 기꺼이 포기한다. 일남은 기훈과 마지막까지 내기를 한다. 눈 오는 밤에 얼어 죽기 직전인 노숙자를 아무도 돕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인간의 선악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인간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명제에 대한 판단이다. 일남이 보기에 남을 도와서 얻는 정서적 만족은 경제적으로 무의미하다.
기훈은 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이유로도 타인을 수단화하거나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다면서 상우를 끝까지 설득한다. 우승 상금도 다른 참가자의 목숨값이라 여기며 쓰지 않는다. 일남과 달리 사람들이 아직 경제적인 효용보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경제적 가치 외에 인간성, 신뢰 같은 의미도 같이 고려한다는 것. 기훈은 극단화된 현실의 구조와 논리에 이상적으로 맞서는 인물인 셈이다.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 속 놀이들은 기훈의 이상과도 같았다. 언제나 아름답고, 소중했다.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은 막대한 상금 앞에서 피로 물들었다. 참가자들은 자기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인을 속이고 죽이며 인간성을 내버렸다. 경제적 합리성이 극에 달한 오징어 게임이라는 시공간에서 기훈의 믿음은 추억의 놀이처럼 변색되고 타락했다. 이 간극은 다른 데스 게임보다 오징어 게임이 특히 잔혹하고, 충격적인 이유였다.
무승부로 끝난 러시안룰렛
<오징어 게임>이 기훈의 신념을 외적으로 무너뜨리는 이야기였다면, <오징어 게임 2>는 그 반대다. 기훈 스스로 자기 믿음의 모순에 빠지는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두 번째 시즌의 첫 화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와 맞닿아 있다. 딱지남이 노숙자들에게 빵과 복권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대목, 그리고 기훈과 딱지남이 러시안룰렛을 하는 장면에 에피소드 7개가 전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빵과 복권 중 합리적인 선택지는 빵이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극히 낮으니까. 그러나 노숙자 대부분은 복권을 고른다. 딱지남은 그런 그들 앞에서 남은 빵을 짓밟는다. 일종의 세리머니다. 게임 요원이었던 그는 게임에 참가했던 아버지를 직접 죽인 후 조직에서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다. 즉, 그는 일종의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을 체화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낮은 확률에 인생을 거는 게임 참가자들은 도태된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
오징어 게임을 내재화한 딱지남과 기훈의 러시안룰렛은 향후 펼쳐질 싸움의 함의를 암시한다. 그가 보기에 기훈의 대의는 모순 범벅이다. 뺨을 맞는 대가로 돈을 받을 때 그는 이미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존엄성을 포기했다. 인간적 가치 대신 물질적 효용을 선택했고, 그 끝에서는 우승 상금도 획득했다. 모든 이득을 챙긴 후에야 게임을 파괴하겠다고 날뛴다. 딱지남의 시점에서는 기훈의 정의가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러시안룰렛으로써 기훈의 모순을 드러내려 한다. 기훈이 먼저 게임의 규칙을 어기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기훈은 규칙을 깨지 않았다. 이에 딱지남은 규칙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먼저 규칙을 어기는 것은 기훈의 모순을 인정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까지도 부정한다는 말이니까. 다르게 보면 기훈도, 딱지남도 승리하거나 패배하지 못한 셈이다.
모순 끝에 패배한 2라운드
러시안룰렛이 1라운드였다면, 오징어 게임은 2라운드라고 할 수 있다. 프론트맨은 기훈의 바로 옆에서 게임에 참가하며 그의 신념과 믿음을 시험한다. 지난 게임 속 일남과 기훈을 연상시키는 언행을 보여며 기훈을 혼란에 빠트린다. 더 나아가 기훈을 자기모순 속에 가두고자 한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규칙인 투표가 있다.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이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그때마다 기훈은 딜레마를 마주한다.
거액의 상금보다 생명과 도덕성 등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 기훈의 이상은 투표 때마다 부정당한다. 그의 선의와 이상은 게임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합리성에 앞에서 무력하다. 지금까지 번 상금으로는 게임장 밖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논리는 기훈의 친구와 동료도 설득될 정도로 강력하다. 기훈이 핏대를 높일수록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게임은 중단되지 않는다"던 프론트맨의 말만 거듭 증명될 뿐이다.
결국 기훈은 1라운드와 달리 2라운드에서는 패배한다. 현실의 벽 앞에서 힘없는 이상주의가 얼마나 무용했는지를 증명하고 만다. 딱지남 앞에서와 달리 기훈은 자기 규칙과 소신을 저버린다. 인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던 그가 게임의 중단이라는 '대'를 위해 일부 참가자라는 '소'를 희생한다. 밤 사이 참가자 간에 솎아내기가 자행될 때, 기훈은 싸움에 휘말린 참가자들을 돕는 대신 사망자로 위장해 진행 요원을 공격할 기회만 엿본다.
따라서 <오징어 게임 2>의 클리프행어는 시작과 동시에 예정된 결말에 가깝다. 자신의 영웅 행세가 위선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기훈은 모순 없이 딱지남과 프론트맨의 논리를 진정으로 파훼할 방법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신념을 고수한 캡틴 아메리카와 루크 스카이워커도 한 번 패배한 후에야 타노스와 다스 베이더를 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난 데 없는 클리프행어
문제는 만듦새다. 설령 서사적으로 필요했더라도, 허술한 전개와 불완전한 내용 때문에 클리프행어는 작위적이다. 기훈의 위선을 드러내는 쿠데타만 해도 설득력이 없다. 그의 쿠데타 시도 자체는 자연스럽다. 기훈은 애초에 오징어 게임을 파괴할 작정이었으므로. 그러나 게임 중단을 원한 참가자들이 쿠데타에 순순히 가담하는 전개는 부자연스럽다. 지금까지 챙긴 상금만으로도 그들은 빚을 갚고 수술비를 낼 수 있기 때문.
즉, 기훈과 프론트맨이 대면하는 엔딩을 위해 이야기가 작위적으로 설계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 2>는 전반적으로 산만하다. 시즌 3을 위해 포석을 두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서사를 깔끔하게 갈무리하는 인물도, 눈에 띄는 새 캐릭터도 없다. 극을 주도한 딱지남과 프론트맨은 기존 캐릭터이고, 그 외의 인물들은 조상우나 '장덕수'(허성태)만큼의 생동감을 갖추지 못했다.
그나마 성전환 수술 비용을 벌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특전사 군인, '조현주'(박성훈)가 눈에 띈다. 희생정신과 의리, 정의감과 풍부한 전투 경험을 다 갖춘 그녀는 트랜스젠더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파괴하면서 유의미한 서사와 분량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 탈북자 문제, 전세 사기 피해, 미혼모와 낙태 이슈, 청년층의 영끌 투자 열풍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투영하려 한 시도 중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다.
시즌 2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량을 늘린 듯한 구성도 발목을 잡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기훈과 준호가 섬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준호의 섬 탐색은 곁가지로 밀려난다. 시즌 2에서 아무런 활약도 보여주지 못할 캐릭터를 위해 에피소드 하나를 날린 셈이다. 그 결과 클리프행어를 마주했을 때, <오징어 게임 2>가 다음을 위한 7시간짜리 티저처럼 느껴지는 실망감을 지울 길이 없다.
긴장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징어 게임 2>가 시청자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킨 것도 아니다. 기훈과 프론트맨의 대립각을 강조하기 위해서 장르적 쾌감을 일부 포기한 대가다. 물론 게임 자체가 재미없지는 않다. 새로운 게임을 활용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시도는 나름대로 유효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직후에 제기차기, 공기놀이, 비사치기, 팽이 돌리기 등과 같이 지난 시즌에 없었던 게임을 배치해 예상을 빗겨 나간 구성이 대표적이다.
짝짓기 게임을 전환점으로 활용한 선택도 영리했다. 게임과 투표를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은 나름대로 서로 의지할 팀을 만든다. 그런데 짝짓기 게임을 기점으로 참여자들의 본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로 인해 불신의 씨앗이 커지고, 참가자들의 관계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짝짓기 게임이 일반적으로 단합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과 정반대 되는 양상은 더욱 흥미롭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이라는 예상된 함정을 피하지는 못했다. 동화 같은 세트와 동요가 배경으로 깔린 살육 장면은 본질적으로 지난 시즌이 보여준 폭력적인 스펙터클과 다르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더 지루하다. 한국 한정으로는 캐스팅이 이 문제를 심화한다. 지난 시즌과 달리 각자 드라마 주연을 맡아도 될 배우들이 대거 합류한 결과 누가 살고 죽을지 모르는 스릴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치러진 투표도 역효과를 낸다. 투표는 일종의 사회적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대화와 협상, 토론과 설득이 잘 통하지 않을 정도로 양극화된 한국 정치 지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아슬아슬하게 갈린 투표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 등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투표도 세 번째에 이르면 긴장감보다는 지루함의 비율이 높아진다. 투표가 어떻게 진행되든 간에 게임이 계속 진행될 거라는 사실이 뻔히 보이기 때문.
위선자의 상술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2>는 속편의 존재 자체가 내재한 모순점을 노출하고 만다. <오징어 게임>의 메시지는 상술했듯이 명확했다. 탐욕으로 인해 극한으로 나아간 자본주의의 끝에 위치한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였다. 가난한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죽일 때, 그 과정마저도 상업화하고 즐기는 현대 사회의 구조와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2>는 본말이 전도됐다. 날카로운 풍자는 잊고, 어린 시절 놀이를 잔인하게 만들면 성공한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즉, 철저히 돈벌이를 위한 작품으로 변했다. 매텔, 크록스, 조니 워커를 비롯해 콜라보 대열에 합류한 수많은 브랜드는 그 방증이다. 황동혁 감독도 시즌 1의 금전적 보상이 충분하지 못한 나머지 계획에도 없던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으니 예견된 상황일지도 모른다.
물론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판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이미 <오징어 게임 2>가 갖가지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 넷플릭스 드라마 최초로 서비스 중인 모든 국가(93개국)에서 동시 1위를 달성했고, 첫 주에만 6,800만 시청수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드라마 역대 첫 주 최다 시청수도 경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 2>는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해 보인다. 시즌 1에 비해 덜 흥미롭고, 짜임새도 부족한 어린 시절 놀이만으로는 노골적인 상업성과 지독한 돈 냄새가 다 가려지지 않기 때문. <오징어 게임>이라는 브랜드가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의 메시지를 지운 셈이고,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시즌 3의 전개에 따라 시즌 2가 재평가될 여지가 있다' 정도가 아닐까.
Poor 형편없음
돈에 미친 개가 돈 냄새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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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일깨우는 ‘사랑’과 ‘공존’의 가치
▷한줄평 : 다시 죽음의 두려움조차 이겨낸 ‘소통’, ‘협력’, ‘사랑’, ‘희생’의 보편적 가치를 말하다
▷영화 : 미키 17(Mickey 17), 2025.2월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영화 <미키 17>에서 / 티모(스티븐 연), 카이 캇츠(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우리 모두는 ‘익스펜더블’과 같은 존재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해도 매번 죽음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생체실험에 자신의 생명을 제공하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소모품)’ 직군을 선택한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죽음을 피할 방도는 없다. “다시 만나!”라고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소각로(사이클러)에 뛰어들면 그만이다. 두려움도 반복되면 익숙해진다. 다시 프린트하면 되니깐. 이 순간 ‘미키’는 미키1, 미키2… 미키n과 같이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달리 벗어날 방법이 없다. 2054년 우주 행성 개발 시대에서조차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하층 노동자는 ‘위험의 외주화’의 도구가 될 뿐이다. 미키n이 갖는 존재의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지점에 슬픔조차 불필요한 감정이 된다. 죽는 기분이 어떤지 묻는 동료의 질문에 ‘항상 무섭다’라고 말할 것 밖에 없다. 고귀한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탄생 일조차 이제는 간단히 버튼 하나로 3D 프린터로 뚝딱 만들어내는 단순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인간 존재의 가치를 말해주는 ‘탄생’과 ‘죽음’의 신비로움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미키는 이런 소모품으로 자신이 소비되고 있음이 후회스럽다.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어쩌면 <미키 17>에서의 새로운 복제인간의 탄생은 우리가 매일같이 잠을 자고 새로운 날을 맞는 것과 유사한 메커니즘을 갖는다. 미키가 과거의 자기를 폐기하고, 새롭게 탄생한 존재를 현재 살아있는 객체로 구분해 내듯, 우리는 연속된 생을 하루라는 날로 구분하여 매번 새로운 날들을 만들어 낸다. 3월 1일, 2일…n일 처럼 말이다. 시간의 영속적 흐름 속에서 특정 시간에 대한 의미 부여를 위해 강제로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어 쳇바퀴에 올려놓은 꼴이다. 매일매일 지옥과 같은 일상 속에서 자아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을 반복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교차하는 지점에 드는 아쉬움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대한 쓸데없는 감정 소모일 뿐이다. 그래서 미키n이든 제이바다n일이든, 이 세상의 모든 ‘익스펜더블(소모품)’들은 견디기 힘들 만큼 지루한 일상을 끊임없이 버텨내야만 한다. 그 짧은 간극 사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각 개인들의 몫이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소모품으로 소비되는 미키n의 존재들
봉준호 감독은 이 지점에 미키17이 자신을 복제한 미키18을 마주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17번째 미키가 크레바스에서 죽었다고 착각한 이들이 18번째 미키를 리프린트하게 된 것이다. 이 세계에선 동일한 익스펜더블이 공존하는 '멀티플'은 불법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 상황이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둘 중 하나를 죽여야 한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존속이 행복할 것처럼 보였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해야 비로소 그 삶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은 계속 사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달라. 내가 죽으면 네가 사는 거잖아.’ 영화 <미키 17>에서 / 미키 17(로버트 패틴슨)
현재는 과거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결과물은 사뭇 다르다. 기억의 저장과 재생 과정에서 성품까지도 동일하게 반복 재생시키지는 못했다. 마치 기억의 저장소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끄집어내 나의 온전한 기억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같다. 미키18는 다혈질의 성향을, 미키17은 온유한 성품을 가졌다. 어쩌면 순간마다 달라지는 우리들의 내적 자아의 분열과 같다.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낸다.
미키의 이러한 다른 성품은 둘 중 어느 하나가 살아남을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 둘은 처음에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격하게 부정한다. 서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소통’이 만들어낸 대결과 파멸의 극복
기록된 역사는 정복자의 관점을 투영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말 그대로 우연한 ‘발견’일뿐이지, 그 대륙에도 사람들이 이미 번성한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최근에는 유럽인의 시각에서 사용한 ‘발견’이라는 말 대신에 ‘만남(Encounter)’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지금도 정복자의 시선이 담긴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s)’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당시에도 문명국가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잉카, 마야, 아즈텍은 대표적인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이다. ‘니플헤임’ 식민 우주 행성 개척은 생육과 번성을 꾀해왔던 인류의 역사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외계인인데 왜 쟤네더러 외계인이래?" 영화 <미키 17>에서 / 나샤(나오미 애키)
이 프로젝트의 총사령관인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과 일파 마샬(토니 콜렛) 부부는 이런 정복자 DNA의 야욕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행성에 이미 살고 있었던 외계 생명체, 크리퍼 (Creeper)를 ‘추악한 외계인’이라 부른다. 그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을 ‘인디언(Indian)’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크리퍼들이야말로 이곳 니플헤임의 원주민이며 외계인은 오히려 지구에서 찾아온 우리 인간들이다. 크리퍼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체계가 있었으며, 그 수많은 개체들마다 각자의 이름(루코, 조코, 등)이 있을 정도로 공동체성을 보유하고 있는 종족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케네스 일당은 여전히 그들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마샬은 벌레의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다며 식민지 개척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크리퍼를 몰살할 계획을 세운다.
영화 <미키 17>에서는 이 지점에서 외계인을 포함한 타인을 대하는 탐욕스러운 인간 본성을 탐구한다. 아둔하고 차별적이며 폭력적인 케네스 마샬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독재자들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옆에서 이를 부추기며 소스(Sauce) 개발에 열을 올리는 등 사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아내 일파 마샬과 조력자들의 존재는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들은 철저히 계급을 나누고 명령과 복종을 강요한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대화와 타협, 소통은 늘 뒷전이다.
이젠 미키17과 미키18에게는 극복해야 할 공공의 적이 생겼다. 어떤 식으로든 케네스 일당으로부터 크리퍼의 파멸을 막아보겠다는 미키 17과 미키 18은 외계인과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다.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 인류와 외계 인간의 공존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렇게 ‘소통’과 ‘협력’은 파멸을 이겨내는 과정이 되었고, 종국에는 ‘희생’을 통해 희망이라는 미래를 만들어 내었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외계 생명체를 만나러 가는 미키
죽음의 두려움조차 이겨낸 ‘사랑’과 ‘희생’의 가치
이러한 분열된 자아와 같은 또 다른 미키의 등장으로 인한 혼란, 생사의 키를 쥐고 흔드는 독재자의 압박, 처음 마주한 외계 생명체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미키17과 미키 18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케네스 마샬은 미키가 그동안 느껴왔던 ‘두려움’조차 이용하려 든다.
"너도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너도 인간이잖아, 중요한 존재지."
영화 <미키 17>에서 / 케네스 마샬 (마크 러팔로)
그러나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하며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영원한 사라져야 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다를 것이다. 이 ‘두려움’을 ‘희생’으로 치환 시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랑’과 ‘공존’에 대한 염원이다. 사랑이야말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가 가치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요인이 되었다.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멀리서 보이는 사랑하는 나샤(나오미 애키)와 미키 17을 바라보면서 ‘희생’을 선택한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나샤
봉준호 감독은 참으로 일관된 스토리텔러이다. 영화의 시간과 공간을 <설국열차>의 멈추지 않는 기차와 <기생충>의 어두침침한 지하실에서 <미키 17>의 미래와 우주로 옮겨 놓았을 뿐,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보편적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설득해 내려고 한다. 그동안 인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등장해 왔던 독재자, 아메리카 신대륙을 정복하러 나섰던 콜럼버스와 같은 야욕가, 인간의 생명의 존엄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정치가 등 부와 권력의 위계질서는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 한 지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의 모색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다. 영화 <미키 17>은 ‘사랑’, ‘협력’, ‘소통’, ‘희생’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낼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는 바로 우리, 여기,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영화 <미키 17> 포스터
20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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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자] 끝장리뷰 | 경계인 | 예언, 사슴 상징 | 아버지 죽이기 | 성장 영화 해석
[예언자](2010)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성장 영화
Chapter 2 예언자
00:00 자크 오디아르
01:49 성장영화
03:28 아버지 죽이기
05:38 예언자
08:02 레예브와 리아드
09:21 별점 및 한 줄 평
09:39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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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들의 그림자에서 마블 최강의 마녀까지 간 소녀
#산돌구름 #엘리자베스올슨 #완다비전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3. 04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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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어바웃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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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경찰로 웬만한 특수 요원보다 죽을 고비를 더 많이 넘겼던 멀론.
완전무장한 사냥꾼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완벽한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