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3-01-05 22:23:15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한 두 번의 큰 불행을 맞이한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병에 걸리거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 경우가 대표적인 불행의 한 종류 일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남은 가족들은 그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견디고 또 견딘다. 그 과정은 꽤 길게 이어진다. 한 순간에 갑자기 없어진 사람은 평생 지워낼 수는 없다. 단지 일상을 살면서, 다른 것에 집중하면서 잠시 그 생각과 감정을 떨쳐내려 노력할 뿐이다. 남은 모든 가족이 마찬가지다. 황망스럽게 떠난 사람의 자리는 채울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떠난 사람이 원하던 삶의 모습을 따라가기도 한다.
그 사람의 빈자리는 크지만 그것을 채우려 애쓰며 보내는 시간은 삶의 의지를 더 다지게 만들기도 한다. 때론 절망적인 감정들이 괴롭히지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어느덧 그 사람이 있었던 그 자리에 자신이 서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큰 슬픔과 불행을 맞았지만 그것이 조금은 더 나은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 어려움을 어떤 식으로 넘기고 극복하는지가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주장 송태섭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과거에 크게 유행했던 코믹스 [슬램덩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코믹스의 주인공들이 소속된 북산고와 산왕고가 토너먼트에서 만나 대결을 벌이는 경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경기 장면 중간중간에 플래쉬백으로 북산의 부주장인 송태섭의 과거를 끼워 넣었다. 기존 코믹스에서 주인공인 강백호와 서태웅의 서사는 충분히 담겨있었고, 나머지 멤버들인 채치수, 정대만의 뒷 이야기도 꽤 비중 있게 다뤄졌다. 하지만 송태섭의 서사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었다.
이번 영화에서 보이는 송태섭의 과거는 꽤 슬픈 사연이 있다. 송태섭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었고, 뒤이어 태섭에게 농구하는 법을 알려주던 태선의 형 준섭도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태섭만 남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태섭이 황망해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태섭은 준수한 농구 선수였던 형 준섭의 뒤를 이어 농구 선수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늘 형의 그늘에 가려 그는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영화 중간중간 삽입된 플래쉬백을 통해 태섭의 성장 이야기가 꽤 큰 비중으로 포함되어 있다.
송태섭은 가까운 사람을 두 사람이나 잃었다. 가족이 의지하고 있었던 아버지와 형이 차례로 사라지면서 태섭은 자신이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만 제대로 그 일을 해내지는 못한다. 형을 뛰어넘는 농구 실력을 가지지 못한 그는 계속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때 들어가게 된 게 바로 북산고의 농구팀이다. 이 팀의 멤버들을 만나 그는 완전히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은 송태섭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코믹스에서 보았던 강백호와 서태웅의 모습도 그대로 담겨있지만 산왕과의 경기에서 가장 집중하는 건 송태섭이 경기 중에 만나는 어려움을 어떤 식으로 이겨내는지가 중심이 된다. 더 나아가 송태섭이 북산에 어떤 존재인지 중점적으로 화면에 담는다.
박진감 있게 펼쳐지는 북산과 산왕의 농구 경기
이야기가 송태섭에 집중하고 있지만 다른 멤버들의 모습도 담겨있다. 불꽃 남자 정대만, 고릴라 채치수, 에이스 서태웅, 천재 강백호도 경기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어서 이들을 보던 과거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나머지 멤버들의 과거 서사를 자세히 제시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코믹스를 보지 않았던 관객이라면 이들의 행동이나 능력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기존 팬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만족도를 보이겠지만 [슬램덩크]를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원작이 가지고 있는 유머의 상당 부분을 덜어냈다. 가족을 잃은 송태섭의 성장기에 좀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가벼운 분위기보다는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다. 기존 주인공인 강백호가 가지는 유머러스하고 엉뚱한 모습을 완전히 덜어내지는 못하지만 강력한 우승후보인 산왕과 펼치는 북산의 대결 자체는 무척 긴장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경기 안에서 송태섭이 겪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농구 영화답게 경기 모습은 굉장히 박진감이 넘친다. 특히나 농구할 때 들리는 소리들이 인상적이다. 공 튀기는 소리, 신발이 미끄러지는 소리, 골이 들어갔을 때 공이 그물을 통과하는 소리 그리고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소리들이 실제 관객이 경기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플래쉬백에서 보이는 길거리 농구 장면도 마찬가지다. 드리블을 하며 상대방을 제치고 골을 넣는 장면은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역동적으로 담겨있다.
과거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 영화다. 그 당시 TV 애니메이션과 코믹스로 접했던 팬들은 그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과 경기모습이 좋은 감정을 떠올리게 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연출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원작 코믹스를 직접 그리고 만들어냈다. 과거에 다소 소홀히 다뤄졌던 송태섭이라는 인물을 주심으로 북산의 마지막 경기를 보여주면서 재미있는 농구 애니메이션을 다시 만들어냈다. 과거 플래쉬백이 조금 많이 들어가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다는 평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과거 코믹스의 분위기와 감정을 무척 훌륭하게 영상으로 옮긴 영화다.
이 영화는 송태섭이 북산이라는 팀에서 자신의 형이 가고자 했던 길을 똑같이 가게 되는 이야기다. 더 나아가 형의 그늘을 지우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무척 흥미롭게 담겨있다. 과거 원작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송태섭의 성장이야기와 경기를 보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또한 원작을 잘 모르더라도 농구라는 스포츠의 박진감을 느끼고 싶은 관객들이라면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북산이라는 팀원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영상으로 만난다면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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