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징2023-01-06 14:13:25
소설 원작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스포일러 포함
쿠키 없음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2022.11.30 개봉)
감독: 미키 타카히로
출연: 미치에다 슌스케, 후쿠모토 리코 등
이치조 미사키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보고 왔어요. 솔직히 제목 무슨 투바투 노래도 아니고... 길고 못 외우겠고 일본틱하고 그렇잖아요? 영화를 보고 나시면 왜 이런 제목인지 아실 겁니다 진짜 이렇게 딱인 제목이 없어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가장 행복한 오늘을 줄게' '잊고 싶지 않아' 토루와 마오리의 명대사인데요. 어느 대사가 들어가도 딱 들어맞는 제목이죠? 저 대사 두 개가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랍니다.
저는 소설로 먼저 봤다고 했잖아요? 솔직히 소설로 봤을 땐 이렇게까지 깊은 감명은 없었어요. 그냥 뻔하디 뻔한 일본 소설이다 싶었거든요. 선행성 기억상실증이 있는 여주에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심어 주는 남자 주인공, 알고보니 그에게는 심장병이......?! 말도 안 되는 3류 드라마 줄거리 아닌가요. 여주의 기억 상실마저도 너무 판타지스러운데 남주까지 심장병 걸려서 죽어 버린다니......
게다가 인기 있는 소설 작가가 남주의 친누나이며,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는 하루하루 버티다싶이 한다는 그런 설정은 왜 넣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누나가 쓴 소설의 내용이 전개에 등장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마지막에 이즈미를 도와주는 인물일 뿐이거든요.
실제로 그때 별점 세 개 반을 주면서 '일본 소설은 다 거기서 거기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긴 하겠네'라고 코멘트 달았었네요. 그런데 정말 영화로 나올 줄이야...... ㅋㅋㅋㅋㅋ
B급으로 만들었으면 개망했을 스토리인데 연출, 각색, 영상미가 정말 뛰어나서 다 했다 싶은 작품이에요. 포스터부터 영상까지 필름 카메라 느낌으로 찍어서 청춘물 느낌이 나게 한 것도 한몫 하는 거 같고요. 토루와 마오리가 등장할 때마다 햇빛에 솨르륵~ 비추는 남녀 둘의 비주얼이...... 지나쳐... 눈물 날 정도로 잘생기고 예뻐서 더 보고 싶은......
원래 소설에서는 이야기 전개가, 토루 시점 - 마오리 시점 - 이즈미 시점 이런 식으로 넘어가거든요. 시간 순서대로 쭉쭉 흘러가는 느낌인데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이즈미 시점으로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이즈미 시점을 유지해요. 물론 주인공은 토루와 마오리기에 그 둘의 이야기를 포함!
이즈미의 눈으로 이야기를 따라갔기에 더 처지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마무리됐던 듯해요. 현재 - 과거 - 다시 현재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게 완벽한 각색이었다는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일본 영화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유치하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나간 건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따라올 영화가 없는 거 같아요! 소설을 보셨든 안 보셨든 꼭 한 번씩 관람하셨으면 하는 영화랍니다! 너의 췌장 나는 어제의 너와 등등은 안 봤지만...... 너의 이름은이랑 견주어 보았을 때 비슷한 정도의 감동이긴 해요! 개인적으로는 너의 이름은이 조금 더 우세하지만,,,
실제로 상영한 지 한 달이 다 되었는데도 상영관이 꽉 찰 정도로 관람객이 많았고
(N차 하시는 분들 정말정말 많아 보였음)
대부분이 많이 우시더라구요 물론 저도 ㅠㅠ......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재관람의사: ★★★★
Relative contents
-
- 일망무제(一望無際)
구구절절히 설명하면 재미가 없다. 또 과하게 친절하면 매력이 없다. 왠지 모르게 이성관계에서 적용되는 이론을 꺼내오고 싶어진다. 과연 배때지가 불러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네 연애나 제대로 하고 이런 문장을 쓰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인간관계에도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던 말이지만 요즘은 그 말이 맞다고 느꼈다. 오히려 아무 연락도 안 하고 지내야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커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 같다. 누군가가 정말 좋았다가도 ‘별 쓰잘데기 없는 소릴 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멀어지게 된다. 너무 많이 말하면 다 알아서 상상력이 줄어드는데, 적게 알면 그만큼 사람이 생각할만한 건덕지가 넓어져 관계를 오래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게 만드는 결말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한 유령이 있다. 유령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이 유령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한번 열어보자.
간단하고 단촐하게
<고스트 스토리>는 살아있는 사람에 관한 영화다. 루니 마라와 케이시 에플렉이라는 할리우드의 빅 네임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근데 제작비는 10만 달러로 초초초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초저예산 영화의 특성만큼이나 줄거리는 소박하다. C와 M은 다정한 신혼부부다. 근데 갑자기 남편 C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M는 혼자 남겨졌다. 그렇게 C가 떠난 빈자리를 감당하며 일상을 보낸다. C는 이 빈자리를 조용히 관망하기만 한다. 유령이기 때문에 말도 무엇도 할 수 없다. 그가 떠난 빈 집에서 파이를 먹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등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M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이내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삿짐을 준비하는걸 전부 마무리한 M. 집을 떠나며 무언가 쪽지를 쓰고 벽에 묻는다. 유령이 된 C는 M이 떠난 후 벽을 열심히 파서 쪽지를 보게 된다.
줄거리를 쓰기에 간단한 구성이다. 그 덕에 영화는 딱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C와 M이 부부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C가 세상을 떠나고 M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이 구분은 유령이냐/유령이 아니냐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안에서 중요한 건 M이 유령이 되고 난 후다. 이 작품은 M의 사후를 조명하는데, 이 과정이 영화라고 할 것도 없이 굉장히 심심하다. 솔직히 루니 마라가 파이 먹는 걸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가 파이를 먹는 건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파이 먹는 게 재미있는 분들은 유튜브에 '먹방' 검색하고 아무 영상이나 재생하는 것이 더 도움 될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상 속의 시간까지 조명하는 이 영화다. 영화는 M의 시점에서 C를 구경한다. 다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다.
떠나간 이가 느낄 감정들에 대해
누군가의 곁을 떠난 우리. 떠난다는 건 허무함과 우울함의 연속이다. 이를 수식할 수 없을까? 아니다.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이 영화와 같이 조용하다.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누군가를 떠나보내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바쁘게 보내려고 한다. 치열했던 일상이 끝났다. 하루를 마치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눕는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문득 혼자라는 걸. 난 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사람의 존재는 내 생각보다 컸었다. 그러면 무슨 행동에 전제조건이 붙게 된다. 어떤 일을 ‘그걸 이겨내기 위해’ 했었던 만큼 그 인물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다. 그러면 일상 속에서 타인의 흔적이 강하게 박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라고 파이를 혼자 먹고 싶어서 먹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익숙한 상황을 즐기지 못한다는 그 지점은 인간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되게 별 것 아닌 순간에서 사람은 그제야 떠난 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외로움과 허전함이라는 감정을 묘사할 때 일반적으로 다른 영화들은 주인공이 갖고있는 정서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보여줬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해피 투게더>의 경우 왕가위는 아휘 캐릭터가 밥알을 하나씩 하나씩 먹는 장면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반대의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관객이 인물을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롱테이크와 장면을 길게 늘이는 방식이 그 예인데, 파이를 먹는 신에서 그게 잘 드러난다. 이 장면은 4분 30초간의 한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부엌 안에 덩그러니 앉아서 파이를 먹는 M. 우리는 그걸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에 빠진다.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한 부엌. 집엔 아무것도 없고 여자 혼자만 있다. 그럼 감정이입이 된다.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고독하다는 걸 나타내는 행위는 없는데도, 인물이 외로움을 느끼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여태까지 없던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다
우리는 이 외로움이란 정서를 M과 함께 공유하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우리, 원래 둘이 있으면 뭐든 함께했다. 혼자서 먹을때도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 생각에 행복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같이 나눌 이가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함께'라는 사실에 기댔다가 누군가가 나를 떠나면 그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씁쓸함에 외로워진다. 근데 인간에게 있어 이 시간은 점점 누적된다. 외로움에 지치면 무엇이든 하기 싫어진다. 근데 지치면 지칠수록 시간은 너무나 길어서 사람이 더 고독을 느끼게 된다. 영화로 돌아가서, 한 장면을 4분 30초 동안 본다고 가정해보자. 외로움을 느끼며 시간이 진짜 안 간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난 이 시간이 안 가는 기분이 너무 싫었다. 함께라면 이 파이가 더 맛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금새 잊지 못했던 상처가 생각나 또 외로워진다. 그 외로움에 빠져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간 더럽게 안 간다. 같이 하면 더 많은 걸 하면 시간을 보냈는데, 혼자서 하니까 눈이 파이 먹는 것에만 집중되는 것이다. 이는 이 정서를 100% 의도한 연출이다. 일부러 잔잔하고 조용하게 설정해서 인물이 느낀 고통을 극대화시켰다. 만약 왕가위라면 나레이션에 색감보정에 이것저것 많이 넣었겠지만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인물 하나와 파이 하나만으로도 고독감과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는 상실의 의미와 아름다움
감독이 설정한 이 정서를 함께 느끼다 보면 우린 알게 된다. 내가 사랑했던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타인의 존재감을 느낀다. 삶의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함께 있게 된다. 극 중 예언자의 말처럼 존재를 기억하는 데 있어 흔적 같은 건 필요 없다. 우리를 떠난 사람들의 흔적이 굳이 남지 않더라도 어쩌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아름답다. 완전하게 신선한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했다. 외로움은 우리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이걸 표현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명제일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각자 다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내 옆을 떠났고 그 인물이 나에게 무슨 느낌을 줬는지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감독은 이에 대한 공감의 방식으로 색다른 방법을 택했다. 정해지지 않은 유령과도 같은 무언가를 보여줬다. 우리는 이 덕에 각자가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한한 상상을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다.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인간의 이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우리에게 각자가 품고 있는 정서를 드러나게 했다. 일망무제가 딱 적당한 표현이다. 우리 인생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 또 영화와 예술은 이런 우리의 텅 빈 무언가를 꺼내주는 아주 감사한 매개체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
- 원스 어픈 어 타임 타미 페이 인 아메리카
착하게 사는게 맞나? 아니면 그냥 나쁜 놈으로 죽는게 맞나? 인생에 정답은 없는거 나도 알지. 그런데 사실 살다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나? 진짜 100:0의 과실이 나에게 벌어졌다고 치자. 그럼 상대에게 욕 시원하게 할 수도 있다. 멀쩡히 걸어가는데 갑자기 누가 주먹질을 하면 당연히 기분 나쁘다. 그럴 때 참으면 그게 더 신기하다. 이런거 생각하면 적당히 나쁜 놈이 좋은게 아닐까 싶다. 이 검은 머리 짐승을 다 참고 이해해주면 내 속만 열불난다. 근데 또 악하게 사는건 별로인 것 같다. 어제 엄마랑 TV보다 오은영 박사가 '남을 지적하는 것은 우월감, 그러니까 열등감에 의한 것'이란 말을 하시는 걸 봤다. 내가 열등감에 찌든 놈이라는 걸 드러내기는 당연히 싫으니 그냥 좋은게 좋은거다~ 식으로 넘기는게 생을 사는 현명한 방식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로 삶은 A거나 B로 나뉘어지지 않는다. 그게 방법이 다 있으면 다 그쪽만 따라 갔을 것이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역시 내가 힘들 때 기댈 사람만 있으면 이 세상은 내가 나쁘건 좋건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왕에 사람들 등쳐먹으며 사는건 좀 아니다. 사람 신뢰라는 것이 정말 큰 의미일 때가 있다. 그 신뢰는 힘들 때 기댈 존재가 되서 보내는 것도 있다. 근데 그걸 이용해서 착한 척을 하며 남 등골 뽑아먹으면 그게 뭔 의미가 있어?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들통날 일일텐데. 금새 대통령 선거에 나왔던 어떤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모두가 아는 결말을 혼자서만 누리고 사는 그 아저씨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지구 반대편에 이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있었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타미 페이의 눈>이 그 사람에 대한 영화다.
여러모로 하느님이 점지해준 운명
타미 페이는 미국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그녀. 대학도 종교 관련한 학교에 갔다. 어느 날 한 목사가 설교하는 곳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 그 목사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남자의 이름은 짐 베이커다. 내면의 깊은 이야기도 할 정도로 친구가 된 짐과 타미 페이. 같은 학교에서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룰을 어기고 연애에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다. 개신교 신자인 둘은 그동안의 행보를 살려 목사로 일하게 된다.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자 팀인 두 사람. 짐 베이커는 훤칠한 외모와 청산유수 화술로, 아내 타미 페이는 인형극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선풍적인 지지를 받았던 둘. 당시에는 작은 방송국이었던 CBN이지만 어쨌든 CEO 패트 로버트슨에게 '자니 카슨 쇼'와 비슷한 프로그램의 호스트 제의를 받게 된다. 이때 CBN에서 만든 프로그램 이름은 <700 클럽>. 이 TV 프로그램을 기점으로 짐과 타미 페이 부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며 종교적으로 성공한 전도사가 되는데, 이 둘의 흥망성쇠를 다룬 것이 영화의 소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추천을 못할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짐 베이커와 타미 페이의 설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사건들을 영화로 삼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당시의 시대상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구석구석 보인다. 이런 디테일의 승리는 분명히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타미 페이와 짐 베이커의 첫 만남을 묘사하는 신이 있다. 이때 만났던 장소가 아마 개신교 대학으로 보이는데, 이때 폰트를 60~80년대 미국 TV에서 볼 법한 걸 사용했다. 또 이 영화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 상의 가치가 충분했다. 당시에 유행했을 법한 화장법과 원래 타미 페이가 갖고 있었던 과한 비주얼까지 매일 4~7시간 분장한 보람이 있다. 그 이외에도 PTL에서 방영됐던 광교의 묘사나 카메라 워킹까지 섬세한 장면 구성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TV에서 봤던 동화처럼
영화를 보고 먼저 떠올랐던 것은 <흥부전>이었다. 흥부전과 이야기가 유사하다는 뜻이 아니다. 흥부전의 이야기는 평이하다. 착한 흥부는 제비를 도와줘서 부자가 되고, 나쁜 놀부는 제비를 이용해서 망한다. 지금 2022년에 보면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전 세계에 한 5억 개쯤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타미 페이의 눈> 역시 그런 느낌으로 안정적이기만 하다. 인물의 내면을 깊게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쉽다.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분들이라면 이 작품의 엔딩을 아마 재생 누르기도 전에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타미 페이와 짐 베이커라는 이름이 현재까지 유명한 게 아니므로 이 사람들이 어떤 선택지를 골라 전락했는지는 그렇게 유추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좀 예상이 가는 엔딩을 가진 영화라면 '어떻게 전락하나'와 '왜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나'를 자세하게 묘사해야 극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무슨 중요한 행동을 할 때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거의 대부분 각자의 생활환경과 성장과정을 반영하게 되지 않나. 영화는 그런 묘사가 좀 부족하다. 이러다 보니 그냥 평범하게만 극이 진행된다. <서프라이즈>에서 볼 수 있는 자료화면 같은 느낌이었다. 어차피 영화화시켜 이야기로 만들 것이면, 더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극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 최적화된 게 아닌가 싶다.
가령 <나이트메어 앨리>에서는 후반부 주인공이 '제발 날 떠나지 마'라는 말을 아내에게 전한다. 매번 떠나기만 했던 그의 내면의 공허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대사였다. 이런 공허함의 모티브는 영화 내내 이어진다. 항상 사람들에게 관심받아야 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반복하기 싫고. 그런 '밑바닥에서 왔다'는 절실함이 극 전체를 이끄는 것이다. 반면 이 작품은 '독실한 개신교인 타미 페이'로 시작해서 실화에 기반한 엔딩으로 끝난다. 기껏해야 어머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유년시절만 제시될 뿐, '왜 타미 페이가 그런 선택을 하는가' '짐 베이커는 왜 그래야만 했는가' '극 중 동성애에 대한 대립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 흥미롭게 팠다면 더 깊게 느껴질 이야기를 그냥 '그땐 그랬다' 식으로 쓱 넘겨버린다. 이런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이야기들을 생략하니 짐 베이커와 제리가 '굳이?'싶은 구석이 생기는 것이다. 뭐 나름 연출 의도라고 볼 수는 있겠으나 좀 뜬금없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타미 페이의 눈>이라고 제목을 지을 거면 타미 페이가 포착한 삶의 굴곡을 묘사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사실 극에서 '타미 페이가 보는 눈'이 극에서 주요하게 작용한 지점이 거의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독특한 화장법만 눈에 띄었지 극의 차별점이나 개성이 도드라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원작 다큐멘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꼭 무조건 <타미 페이의 눈>이 제목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극 전체의 플롯이 제목을 받쳐주질 못하니 각자가 따로 노는 느낌이 짙다.
배우들의 변신은 찐이야
다 따로 노는 듯한 영화여도 배우들은 배역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일단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위너가 된 제시카 차스테인은 어마어마했다. 난 오리지널 한국인이라 타미 페이가 뭐하는 인간인지 모른다. 그래서 억양을 사전에 듣고 간 게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배우가 인터뷰같이 실제로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직접 들은 건 이번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발표할 때가 처음이었다. 이 수상소감의 제시카 차스테인과 <타미 페이의 눈>에서의 배우는 그냥 다른 사람이다. 또 분장도 있으니 '이 사람 제시카 차 스테 인임'이란 생각이 단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극 자체의 무난함과 평이함을 차스테인의 감정연기 하나만으로 이끌어 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파트너 앤드류 가필드 역시 좋았다. 좀 비실비실한 비주얼이나 당시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에 나올 법한 화술까지 아마 이 작품으로서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가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직업이 특성상 매일 방긋방긋 웃어야 하는 첫인상의 선함을 후반부까지 잘 이끈다. 다른 배우 빈센트 도노프리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이 아저씨는 뭘 하든 (<데어데블> 시리즈의) 킹핀으로 보인다. 머리를 기른 채로 출연했지만 말하는 억양이나 눈빛이 난데없이 옆의 사람 두들겨 팰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졌다. 아마 나만 그럴 테니 난 빨리 <데어데블> 시리즈를 지워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 영화를 보시고 난 다음 포털 사이트에 '타미 페이'라고 검색하면 뭐 안 나온다!
'짐 베이커'로 검색하시길 바란다!
이왕에 보신다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후자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
- 당신 얼굴 앞에서, 2021 홍상수 감독작품
평온한 일요일의 오후 햇살. 한껏 아픈 다음 느끼는 안온함과 미열. 이제는 폭우가 지나갔다는 안도감.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는 모른다. 한참을 울음을 삼키며 질주해야 할 때는 알 수가 없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이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고, 주변에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데 충분한 위안이 된다는 걸. 멈춰 서려고 할 때 발 밑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문득 보일 것 같은 순간에 대한 영화를 보았다.
이곳에도 국제 영화제가 있었다. 작년에는 개최하지 못했을 영화제가 올해는 열렸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다. 32회 차나 되는 줄은 몰랐고, 홍상수 감독의 ‘당신 얼굴 앞에서 (in front of your face)가’ 초청되었다는 소식은 알았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모 여배우와의 불륜 스캔들로 시끄러웠지만, 홍상수 감독의 초기작들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무렵에 무척 유명했다. 필자는 전문 평론가가 아니라서 감히 이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못하겠지만, 뭐랄까. ‘오! 수정’에서 보여준 흑백의 강렬함, 원색적인 소재를 놓고 양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아귀 맞춤이 절묘했다. 고 이은주 배우의 쇳소리 나는 신음소리를 스크린에서 접했을 때의 충격이란. 그 후에 봤던 ‘극장전’의 엄지원 배우의 애드리브 ‘이제 그만 뚝!’, 그리고 ‘생활의 발견’에서 추상미 배우의 능청스럽고 현실감 있는 연기들.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처연히 서 있던 남주인공의 그 눈빛이 선한 영화였다. 그 영화들이 홍상수 감독에 대한 나의 기억들이다. 아주 일상적이고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소재로 아주 가까이에서 렌즈를 들이대고는, ‘저것 봐, 당신 인생이 이거랑 조금은 다른 거 같아? 한 번 봐’라는 자세로 관객의 눈과 귀를 희롱했던. 사실 나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3)을 마지막으로 그의 영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정은채 배우는 연기력 논란이 늘 있어온 것도 같은데, 그 영화 속 해원이랑은 잘 어울렸다. 그 해에 나는 여기에 건너왔다. 그렇게 자주 위안삼아 찾아가던 종로 시네 코아와, 흥국 생명 건물에 있던 하이퍼텍 나다와, 아트선재 센터를 뒤로 하고. 그곳들이 밀집한 곳에 있던 직장에 다닌 게 신의 한 수였다.
영화관에 대한 추억은 참으로 많다. 다행히 이 곳에도 좋은 곳들이 여럿 있다. 코로나로 어려웠겠지만,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 위의 영화관들이 아쉽지 않게, 이곳에서도 자주 한국 영화랑 외국 영화들을 본다. 홍상수 감독은 언제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을까? 언제부터 영화들에 남자 주인공보다는 여자 주인공이 화자가 되고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을까? 그리고 2021년에 발표된 ‘당신 얼굴 앞에서’에서는, 그전의 감독에게서 보지 못했던 시각들을 볼 수 있다. 관객도 감독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경험들로 인한 것이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인 ‘상옥’은 이혜영 배우가 맡아 관록의 연기를 보여준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특별한 상옥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상옥은 과거 한 때 연기를 한 적 있는 영화배우다. 그녀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주류 소매점을 운영했다. 자신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영화감독 (권해효 배우)이 있어서 그것을 계기로, 한국에 있는 동생 집에 묶으며 한국을 다녀가고 있는 중이다. 영화는 소파 위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독백으로 시작된다. 초반에 그녀의 대사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중간중간 그녀의 독백은 기도가 된다. 오늘 하루도 평안함에 감사하고 있다. 잠든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그녀가 깨서 함께 간 브런치 카페에서의 대화는 그냥 상황만 있고 대본은 없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셈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자매의 감정이 격해지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 감독은 아주 명확히 카메라 렌즈를 줌인한다. 살면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감정선을 읽으라는 듯, 아주 친절한 교과서처럼, 알려준다.
바다 대신 산과, 고층 아파트와, 공원이 등장한다. 예전 같지 않게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은 많이 현실에 밝아졌고, 집값 시세도 너무 잘 안다. 상옥은 조카도 만나고, 그녀가 오래전에 살던 집에도 가 본다. 집안 구석구석을 보다가 만난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는 장면은, 과거의 어느 장면에서 멈춰있는 그녀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친절하고, 감독과의 대화는 길고 재미있다. 한껏 취기가 올라 영화 이야기를 하든 그들. 뭐 이제는 자타공인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버린 권해효 배우는 상옥에게, 그녀의 과거 영화들에서 보여준 얼굴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말하며, 그녀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한참 망설인 상옥은 자신에겐 살 날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며, 영화 출연을 고사한다. 감독은 단편 영화라도 찍자며, 다음 날 자신이 상옥을 데리러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여행을 약속한다. 상옥이 그제야 감독에게 묻는다.
‘결혼했어요?’
‘아들이 벌써 다 컸죠’
몇 병의 연태고량주와, 담배와, 기타 연주가 오가고 둘은 빗속에서 헤어지고, 그 다음 날의 상옥은 감독의 음성 문자 메시지에 눈이 떠진다. 거기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백하는 듯한, 감독의 대사가 있다. 이전에는 미처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치기 어린 하룻밤을 계획했던 수치스러움과 후회를, 감독은 권해효 배우를 통해 말한다. 신변잡기적인 대화들 속에서, 감독이 바라보는 그 어떤 삶에 대한 ‘진실’ 하나를 가늘고 긴 냉면처럼 뽑아내던 그의 날카로움은, 등이 가냘픈 여배우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숙취 뒤의 사과문으로 뭉뚝하고 둔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글쎄, 우리네 삶 속에 렌즈를 대고 들여다본다면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술, 마시고 하는 의미 없는 듯한 대화들. 하지만 그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들과 하는 말이라면 그런 ‘낭비’되는 시간 또한 곧 행복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상옥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의 뒤안길에서 하루하루의 평안함에 감사하며, 모두의 얼굴 앞에 놓인,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는, ‘천국’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처럼 죽음이 눈앞에 있거나,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뒤돌아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상옥처럼 내 시선과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시네코아에서 극장전을 보던 대학생인 나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던 하이퍼텍 나다에서의 나와, 해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마주 보고 있는 지금의 나.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진실, 혹은 수치심, 혹은 신념은 무엇일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나치게 과거를 돌아보고, 어쩌면 아주 오래 그 안에서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에 잠겨 있지 않을 때는 또 영화 속 상옥처럼, 열심히 일을 하며 지냈다. 일을 하지 않는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불륜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인은 아닐 홍상수 감독도,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하는 대사들로 인해 어딘가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달으며, 영화제에 초대해 주신 고마운 분과 참 많이 웃었던 즐거운 밤이었다.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내일도 어제도 아닌 오늘 안에서 살자고 내게 속삭이던 영화였다. 두 자매의 이야기 속에서 비치는 한 사람의 일생이 저렇게 짧고도 길고, 처연하기도, 강렬하기도 한 소설 (short story. 단편영화. 영화 속 감독과 상옥이 이야기를 나누던 인사동의 카페 이름이 ‘소설’이다) 같기도 하다 싶었다. 나중에 40년쯤 더 지나서 나도 내 인생을 돌이켜 본다면, 축약하면 단편 영화나 소설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 찬란한 개개인의 역사가 다 영화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다면 나도 선물 (present)처럼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요즘은 일이 버거워 자주 몸이 안 좋았는데, 몸살이 나서 아픈 것도 코로나인줄 알고 덜컥 겁이 났었다. 하지만 고열이 미열로 바뀔 즈음 또 영화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영화 속 상옥을 깨우던 햇살과 깨달음처럼, 오늘의 나는 포근함을 느낀다. 참 다행이다. 앞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더 많은 한국 영화가 초청되고, 상영되었으면 좋겠다
-
- 세상을 바꿀 the post
이 영화의 배경은 1970년 대의 미국이다. 스포는 하지 않겠다.(내 말 다는 믿지 말라.)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닉슨 대통령 시절이었다. 닉슨 대통령 시절은 언론 탄압을 상징하는 몇몇 이슈들을 떠올리게 한다. 뭐, MBC 총파업이라든가, KBS파업이라든가........ 우리 나라가 얼마나 압축적인 성장을 했는지 느끼게 해준다. 우리 나라는 미국의 70년대를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였다. 고로 우리 나라는 아직 의식적인 성장은 한참 멀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영화는 그 당시에는 일개 지역 잡지였던 워싱턴포스트가 전국적인 신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편집장으로 톰 행크스가 등장하는데, 음, 역할 아주 섹시하다. 역시 일에 미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캐서린 역할이 정말 공감이 갔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는 현재 우리나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절은 여성이 언론사 사장이 되어 결정권자가 된다는 개념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캐서린은 무시를 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요새 난리난 페미니즘 논쟁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영화를 다 보면 관객들은 아마 이렇게 느낄 것이다. '이 영화는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내용이 표면적인 시놉시스이고, 캐서린이라는 여자의 사업가로서의 성장, 이 여인의 나약한 모습에서 강인한 사업가로의 변신이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내면적 시놉시스다.'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여성 CEO가 많지만 정말 위기에 자신의 결정 하나로 회사가 기우뚱할 수도 있는데, 위험한 결정을 하는 것은 얼마나 심적 부담이 따르는 일일지 그것도 여성은 그런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이 가정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사회를 사는 여자 사람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로 다가왔을지 공감이 되었다. 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아주 간단하다. 언론의 자유는 수호되어야 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뻔한 주제인데, 역시 영화는 서사(NARRATIVE)가 탄탄하고, 연출이 절반 이상이고, 남은 절반을 배우들의 연기가 채워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그 합이 잘 맞아떨어지기가 참 힘든 것 같다.
게다가 내 취향을 저격한 것은 메릴 스트립을 포함한 다른 배우들의 의상이었다.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의상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나는 이상하게 중세 시절의 옷부터 옛날 사람들이 입던 의상에 관심이 많이 간다. 영화 오만과 편견을 봐도 그랬다. 의상이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메릴 스트립은 이번 영화에서 미국의 상류층 여성의 정숙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의상을 많이 입고 나온다. 정장부터 홈 웨어까지 다채로운 의상 체인지가 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눈이 참 즐거웠다.
스포 안한다 해놓고, 스포 한 것 같은 찝찝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변명을 좀 하자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스포인 것이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이 영화는 재미었다. 끝. 이렇게 되어버린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역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미국 헌법을 포함한 약간의 법률적 지식도 필요하다. 그래야 완벽하게 이해가 빠를 것이다.
-
-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 끝나지 않을 운명적 사랑에 대한 믿음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뻔하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늘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플레이 리스트에는 왜 예전에 즐겨보던 작품들뿐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저 재미있게 보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게 해주었던 로맨틱 코미디만의 몽글몽글함이 이제는 장르적 쇠퇴를 맞이한 것일까?
할리우드 또한 시대별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1930년대 계급 차이를 극복하는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스크루 볼 코미디를 시작으로, 50~6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앞세운 관습적인 역할을 지나 90~2000년대 전문직 여성까지 세상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점도 있는데,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업적 경력에도 언제나 실수를 남발하고 꼭 위기 상황에 남자 주인공이 구해주며, 사회적 성공과 반대로 연애의 부재로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자 취향을 맞춰주는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관념을 내세우며 언제나 파트너의 행동에 맞춘 쿨한 매력을 겸비한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공평한 관계를 이상적으로 그려나갔으니 양산형 영화가 쏟아지는 흐름에 갈피를 잃고, 정치적 올바름이라 부르는 PC 요소들의 대두되며 더욱 괴리감이 생겼으리라.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치부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일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사랑과 운명을 믿고 싶다면 꼭 기억해 달라고 언급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뉴욕 타임스와 에스콰이어의 기자이자, 에디터로 활동했고 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며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노라 에프론이다. 인간의 소통에서 비롯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들어 가는 두 사람의 운명적 이끌림을 통해 사랑의 힘을 전하며 관객의 감정적 동조를 일으킨다. 시대가 흐르며 여타 장르들과의 혼재를 통해 다양한 변주로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는 로맨스가 유행되었지만, 그때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판타지에서 만족감과 감동을 안긴다. 어쩌면 남녀 관계와 사랑에 대해 가벼워진 사회 분위기에 운명은 고리타분한 올드 스타일일지도 모르지만, 달콤하면서도 녹진한 로맨스 코미디를 만나보고 싶다면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 즐거운 무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참 낭만적인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이끌 수 있다는 평범한 삶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점에 대해 노라 에프론이 남긴 한마디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정확하게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지만, 우스갯소리를 덧붙여 정작 본인의 카피는 언제쯤 나올지 몰랐던 것 같다. 대표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들 대부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경험할 남녀의 만남에서 다가오는 설렘을 다루며 빠져들 수밖에 없는 멜로/로맨스를 선보였다. 특히, 말장난 섞인 가벼운 하위 장르로 여겨졌던 로맨틱 코미디에서 알면서도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을 통한 하나의 형식적 법칙으로 정립하며 시대를 대변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파워우먼으로 꼽히게 된다.
대체로 뻔하고 명확한 형태로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과정에도 오히려 관객이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로 전환시키고, 밀고 당기는 연애의 매력을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통해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표현한다. 이 같은 전개는 고전 로맨스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과도 같은 맥락을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비틀며 시대상을 반영한 노라 에프론식 로맨틱 코미디로 거듭난다. 운명에 대한 믿음을 유쾌하면서도 절절한 고백으로 이어가며 아직도 그녀의 작품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도 될 근사한 낭만으로 가득 찬 사랑의 기억을 머물게 만든다. 현실에 존재할지는 미지수일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그녀를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추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당연한 이유일 것이다.
①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년 발표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대화들이 즐비한 고전적이고 익숙한 스타일인 동시에 노라 에프론이라 각본가로서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정립한 첫 히트작이다. 두 사람이 이어지기까지 12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고, 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마치 ‘제2의 연인’ 속 결혼 전을 보는 듯한 전개를 보인다. 1977년 봄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졸업과 함께 직장이 있는 뉴욕으로 우연히 동행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라는 결론이 날 수 없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고 서로를 별종이라 칭하며 헤어진다. 몇 년 뒤, 각자의 이별과 이혼을 통보받은 시기에 운명처럼 재회하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은 늘 해리와 샐리 주변을 맴돌았고, 그저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라는 선을 긋고 다가가는데, 두려움을 느낀다. 스킨쉽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첨예하고 장황한 설명은 지칠 법도 한데, 결국 헤어지기 싫다는 애증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보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으로 즐거움을 준다.
재치 있는 각본과 별개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로맨스는 아니지만,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의 따뜻하고 포근한 케미스트리는 설렘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견고히 하고, 사소한 단점 하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성장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오랜 친구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연인이 된다는 뻔한 전개와 뻔한 결말에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아는 그 평범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가 5년 공백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노부부(연기자들) 이야기들이 들어간 부분은 이런 삶의 진리를 전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 처음 만났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짧지도 길지도 않게 말해주며 각자의 사연들을 통해 해리와 샐리의 이야기에 진정성 있는 현실을 입힌다. 마치 해리와 샐리에게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인생의 평범함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노라 에프론은 보편적인 삶 속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들과 운명적인 상황들로 극적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관객에게 영화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카츠 델리’ 식당에서 맥 라이언의 ‘가짜 오르가슴’이라는 잊히지 않을 명장면은 이제 노장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당시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스탠 바이 미’로 명장 반열에 오른 로브 라이너의 창의적인 연출력과 ‘아리조나 유괴사건’, ‘빅’ 등의 촬영 감독을 거쳐 ‘아담스 패밀리’와 ‘맨 인 블랙’ 등 독특한 세계관을 펼친 베리 소넨필드가 의기투합해 빛났던 재능꾼들의 젊은 시절이리라 생각된다.
② 1993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뒤 1992년 ‘행복찾기’로 감독까지 데뷔한 그녀는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자신을 각인시킨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를 발표한다. 극 중 여주인공 애니가 매일 밤 보며 대사까지 외우는 1957년 ‘러브 어페어’에서 영감을 받아 쓴 각본을 바탕으로,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을 믿으시나요?’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풀어헤친다. 이후 ‘유브 갓 메일’에서도 빛나지만, 남녀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에 대한 설정에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감성을 품고 있다. 지금은 앱으로 간소화까지 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 수천 마일이 떨어진 대륙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적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실의 빠져있는 아버지 샘을 위로하려는 아들 조나의 발칙한 사연으로 시작된 운명의 장난은 매일 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진심이 담긴 그의 행복한 추억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애니의 마음을 강타해 공감 어린 눈물을 흘리게 하며 결혼을 앞둔 약혼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운명이라 여겨지는 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이별과 상처가 되는 순간이 교차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아도 이상하지 않지만, 해리와 샐리가 서로에 대해 고민한 많은 시간만큼 여기에서도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는 세 번의 장면들로 에프론은 운명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 같은 장치는 마지막 엠파이어 빌딩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으로 감독의 확신에 찬 답변으로 보인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바라보는 방식은 실제 마주하지 않기에 오롯이 배우들이 홀로 표현하는 감정선에 집중한 채 과거 50~60년대 로맨스 드라마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간접적인 소통으로 인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애틋함을 더한다. 라디오라는 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사연을 주고받고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느리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낭만적이었던 과거의 향수들이 불현듯 찾아온 운명이 보내는 신호를 믿고 싶은 마음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운명의 사랑에 대한 답변을 나타내는 듯하다. 1990년 ‘볼케이노’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을 보고 캐스팅한 것이겠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의 확신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연기는 마법과 같은 사랑을 향한 90년대를 관통하는 낭만을 짙게 한다. 셀린 디온과 클리브 그리핀이 듀엣으로 부른 ‘When I Fall In Love’, 태미 와이넷의 ‘Stand By Your Man’ 또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감독의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감성 한 스푼을 더해준다.
③ 1998년 <유브 갓 메일>
전작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애틋함에 안타까웠던 것인지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 컷에 담아 1998년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로 찾아온다. 지금 시대에 유행하는 독립서점처럼 보이는 길모퉁이 서점과 웹서핑 초기 시절의 이메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사랑스러운 상황들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문학과 뉴욕을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진 뉴요커 조와 캐슬린이 우연히 채팅룸에서 만나 친분을 쌓지만, 현실에서는 앙숙인 대형 체인 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과 길모퉁이 서점의 사장으로 빚어지는 갈등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담는다. 동생 델리아와 함께 집필한 이번 작품에서 자매의 문학적 소양 차이를 두 캐릭터에 녹여낸 듯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조지 버나드 쇼의 ‘캠벨 여사와의 서신 교환’, 영화 대부 등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언급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향과 성격임을 남녀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작지만 예쁜 서점을 지키려는 감성적인 캐슬린과 따뜻한 마음에도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차갑게 비치는 조의 설정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쫄깃한 밀당을 더욱 마음 졸이게 한다.
익명에 숨긴 채 서로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행동과 매번 울리는 ‘You've Got Mail!’의 알림은 그들이 이미 서로를 알고 미워하지만 깨닫지 못했다는 상황을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결말에 이르러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전환된다. 서로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들이 쌓여 그들이 마주한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감독의 운명론적 이야기는 컴퓨터를 켰을 때 설렘과 즐거움을 주었던 ‘You've Got Mail’ 알림음과 ‘당신이길 바랐어요’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다시 한번 감수성을 폭발시킨다. 소소한 일상, 누구나 해보는 고민들, 사람들 간의 따뜻한 대화들이 담긴 섬세한 묘사들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통한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여겨질지 모르는 지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중간에 놓인 감독만의 감성을 품는다. 늦게 데뷔해 단숨에 최전성기에 오른 감독으로서 뉴욕을 향한 자신의 진심 어린 사랑을 가장 뉴욕다운 풍경으로 담아낸 실력,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더할 나위 없는 호흡, 꿈같은 사랑이 전하는 특유의 안락함은 이 작품을 최고는 아니더라도 명작으로 기억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운명과 뉴욕을 사랑한 뉴요커
우리가 사랑한 노라 에프론의 필모그래피에는 공통적으로 뉴욕이 배경에 꼭 들어간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로 운명을 믿는 마음을 담아낸다. 조금 지나간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일명 ‘자만추’라는 정해진 소개팅이나 맞선이 아닌 남녀 주인공 모두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연애를 추구한다. 지고지순한 순애보 끝에 다다른 일방적인 구애가 아닌 N, S로 분리된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을 말한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서도 일어날 수 있는 남녀의 스파크를 캐치해 ‘저럴 수도 있겠다’라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믿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운명을 믿고 무작정 기다리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과 스스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내세우는 또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시나리오 데뷔작 ‘실크우드’에서는 진실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노조 대표를, ‘제2의 연인’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상처를 빗대어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커리어 우먼을, 첫 연출 데뷔작 ‘행복찾기’(1992)에서는 판타지 속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을 기다리던 공주가 아닌 세상과 타협하기보단 자신에 대한 믿음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으로 인해 변화되는 상황과 이에 얽힌 운명적 상대를 그린다. 보수적인 90년대의 분위기에서 억압되었던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행동의 제약을 깨부수며 신여성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녀가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맥 라이언의 등장이다. 초창기 두 작품의 시나리오로 연달아 만난 메릴 스트립도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2의 연인’에서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앞서 언급한 ‘행복찾기’에서 싱글맘 코미디언을 연기한 줄리 카브너 역시 큰 전환점을 만들지만, 노라 에프론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연달아 흥행한 세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아 완벽한 페르소나로 거듭나며 배우와 감독으로서 두 사람 모두가 인생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시절 맥 라이언은 지금도 정석이라 불리는 숏단발컷을 유행시켰고 헐렁한 오버사이즈의 놈코어 룩으로 편안함과 러블리함, 커리어 우먼의 세련미를 동시에 추구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오죽했으면 ‘맥 라이언이 노라 에프론을 만났을 때’라는 제목 패러디가 생겼을 만큼 그저 귀엽기만 했던 한 여배우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만들며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열었다. 지금의 애인이 진정한 사랑일까라는 고민을 늘 품는 주인공에 어울리는 왠지 모를 나약함과 몽상적인 상상이 어색하지 않은 귀여움은 많은 이들을 판타지에만 존재할 것 같은 운명으로 초대했고 감독이 원하는 사랑은 인생이고, 인생은 판타지라는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고전 로맨스에 대한 적절하고 탁월한 활용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카사블랑카’와 우디 앨런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를 효과적으로 배치했으며, ‘유브 갓 메일’에서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 리메이크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일반적인 로맨스 장르에서 보이는 허영심에 비친 비현실적인 요소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짜이지만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첫 작품 ‘실크우드’에서는 기자였던 과거 시절처럼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들었고, 이혼 문제를 다룬 ‘제2의 연인’에서는 사회적인 시선과 문제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토로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통분모를 찾아내 프레임을 씌우고 언제나 자신을 반영시킨 캐릭터를 통해 희망적 판타지의 결론을 통해 웃음과 설렘을 선사한 것이다. 남녀의 성격묘사에서 서로를 공격해 무너뜨리지 않는 선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내는 묘미는 이러한 경험적 요인들이 작용해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부분을 파고든다. 그리고 감독에 이르러 공통적으로 내세운 운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주인공의 만남에 마법 같은 느낌을 부여해 대중을 만족시키는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클래식 할리우드의 느낌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별은 영원히 반짝인다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는 지났어도 한참 지났을 요즘이다. 주인공 커플들이 재미를 선사하려고 온갖 멜랑꼴리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로맨틱 홀리데이’, ‘500일의 썸머’, ‘비포 선라이즈’, ‘노트북’,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정확히 로맨틱 코미디로 한정 지었을 때 2000년대 중반 이후 큰 성과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이 다시 불길을 살리려 하지만, 지금 영화 업계에서 슈퍼히어로물이나 액션 영화 등 속편, 스핀오프, 리부트라는 명명하에 흥행하면 좋다는 식으로 찍어내는 제작사의 방식도 현실적 어려움을 더한다. 궁극적으로 볼만한 작품이 아니면 극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삭막해진 현실과 DM으로 고백과 이별을 전하는 세대들에게 있어 과거 로맨틱하고 희망적이며 사랑스러운 운명의 만남으로 관객의 애간장을 태우며 감정을 이입시켰던 전형적인 로맨스 방식은 이제 꿈에나 나올 법한 일이라 자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이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날로그 감성과 레트로라는 문화를 이끌며 다양해진 OTT 서비스를 통해 고전 멜로/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를 접하며 변화하고 있다. 이 점에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걸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 그러고. 난 믿고 있어’라는 명대사처럼 시대가 변하며 뻔한 로맨스라 여겨지는 지금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보는 영화 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고 저장되며 로맨스 하면 TOP 10에 꼽히는 건 희망적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로맨스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첫사랑처럼 다가온 운명의 두근거림과 가슴 뛰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타고난 이야기꾼의 감성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와 세대의 취향은 시시각각 바뀌어 갈지 몰라도 최소한 낭만은 계속 이어지고, 여전히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또 다른 노라 에프론의 등장을 희망하며 사라지지 않을 로맨틱 코미디의 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언제고 다시 시작될지 모를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칼럼식으로 써봤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 뺄셈의 미학에 심취한 복수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허한 시간을 보내던 전직 경호원 '옥주(전종서). 어느 날, 그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유일한 친구이자 유학 중인 줄 알았던 발레리나 '민희'(박유림)가 자기 집에서 맥주 한 잔 하자고 부탁한 것. 하지만 민희 집에 도착한 옥주는 이상한 느낌을 받고, 이내 자살한 민희와 복수를 부탁한다는 편지를 발견한다.
친구의 편지를 단서 삼아 민희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기로 결심한 옥주. 그녀는 민희가 남긴 ID를 추적해 여성과의 성관계를 영상으로 남기고 팔아먹는 성범죄자 '최프로'(김지훈)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에 옥주는 가장 확실하고 잔인하게 최프로와 그의 공범을 징벌할 계획을 짜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발레리나>와 '여백의 미'
‘여백의 미’는 흔히 동양화만의 미학으로 여겨진다. 화폭을 가득 채워서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에서는 일부러 남긴 여백을 흔히 찾아볼 수 있기에 통용되는 말이다. 이는 그리려는 대상의 외적인 면모보다 본질을 강조하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간결하고 압축적인 그림을 통해 숨어 있던 대상의 본질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유도하는 미학적 접근인 셈이다.
물론 일장일단이 있다. 수용자 입장에서는 창작자의 의도나 목적이 와닿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많은 대중이 인지하는 최소한의 구성 요건을 갖출 때 창작자의 감성도 두드러질 수 있으니까. 지나치게 많이 생략해 버리면 해당 작품에서 감동을 받기는 어렵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발레리나>는 바로 이 대목을 간과했다. <테이큰> 시리즈부터 <존 윅> 시리즈까지 액션 복수극은 근 몇 년간 쏟아져 나왔다. 이에 <발레리나>는 복수 액션물의 클리셰를 깨기 위해 과감히 빼기의 미학에 도전한 듯하다. 분위기와 액션만으로 시청자를 설득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그저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빼먹었을 뿐이다. 영화는 시각 예술일 뿐만 아니라 극예술이라는 사실을.
발레처럼 풀어낸 복수극
<발레리나>는 마치 한 편의 발레를 보여주는 듯하다. 여러 스토리를 자세히 들려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인상적인 배경 안에서 화려한 액션에 집중한다. 옥주가 아무런 설명 없이 슈퍼마켓에서 강도를 때려잡는 첫 장면만 봐도 목적을 알 수 있다. <발레리나>라는 제목은 옥주의 복수극 그 자체를 의미하는 셈이다.
실제로 <발레리나>는 눈이 즐겁다. 발레의 구성 요소에 대응되는 영화적 장치를 영리하게 활용한 덕분이다. 무대 장치 및 조명과 음악으로써 무용수의 몸짓을 강조하듯이, 액션을 돋보이게 한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마약 생산 공장이 대표적이다. 공장은 마치 극장 같다. 옥주는 관객석에서 무대로 나아가듯이 계단을 내려간다. 흰색 천이 쳐진 공연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액션은 한 편의 발레 공연이나 다름없다.
배경은 스토리 전달의 주된 수단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이해시키는 대신 직관적으로 전하기 때문. 노란 조명에 살림살이가 적은 방은 옥주의 헛헛함을 보여준다. 민희의 집은 화려한 조명과 유리 소품을 조합했다. 밝고 사교적이지만 누구보다 약한 민희의 이야기를 짐작케 한다. 앤틱한 소품이 많은 저택은 쾌락을 추구하고 허영심에 찌든 최프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마구간을 배경으로 악역 간의 갈등을 고조하기도 한다.
힙합 아티스트 그레이가 만든 음악도 옥주의 액션에 힘을 불어넣는다. 특히 긴 액션이 이어지는 시퀀스에서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3개에서 4개의 곡을 활용해 변주를 주고, 모든 곡이 이어지도록 설계한 점도 인상적이다. 이에 더해 힙합 음악 속에 클래식이 섞인 듯한 사운드는 '다르다'는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발레리나의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공간, 조명, 음악의 조합은 실효가 없다. 시나리오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한 편의 '발레극'으로 설계했지만, 정작 '극'적인 요소가 없다. 자연히 눈과 귀가 즐거운 화려함도 점차 평범한 자극이 되어 버린다. 물론 새로운 서사를 전개하기 어려운 장르다 보니 자기만의 스타일, 퍼포먼스에 집중한 의도는 이해가능하다. 그럼에도 영화의 두 기둥 중 하나가 스토리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다.
특히 제목인 '발레리나'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실패했다. 발레리나 친구를 잃은 주인공은 복수를 향해 질주한다. 당연히 발레리나와 주인공의 관계가 명확히 제시돼야 했다. 옥주에게 민희가 소중해진 계기와 지키지 못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했다. <발레리나>는 그러지 못했다. 시청자가 채워 넣어야 하는 여백의 미가 과하다. 뻔한 전개를 피하려다 제목이 '발레리나'여야 하는 이유조차 못 보여줬다.
이는 <존 윅> 시리즈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사실 <존 윅>도 개 한 마리 때문에 그 사달이 나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과 우스갯소리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존 윅>은 1편부터 최소한 주인공에게 개가 어떤 의미이고, 그에게 아내와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귀중한 시간이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복수의 허망함과 굴레를 성찰하는 깊이감도 있었다.
이처럼 중심 플롯의 설득력이 없으니, 세부 플롯도 중구난방이다. 발단과 결과 외에 과정이 부족하다. '조사장'(김무열)과 최프로의 갈등만 봐도 그렇다. 두 남자의 관계는 묘하다. 친구인 듯 보이며서도 아래위가 확실하다. 영화는 이 긴장감을 활용하지 못한다. 최프로의 일방적인 불만만 강조되고, 둘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전에 조사장이 갑자기 퇴장한다. 절정 없이 허망한 결과만 남는 이야기인 셈이다.
현실을 끊어내는 데 실패하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때문에 <발레리나>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부유한다. 감독과 주연 인터뷰를 보면 <발레리나>는 철저히 환상 속에 지어진 성과 같은 영화여야 한다. 이충현 감독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어도 영화적인 판타지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말했고, 전종서 역시 "현실적으로 처벌이 될 수 없는 것을 영화상에서 통쾌하게 영화적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밝혔으니.
실제로 영화는 N번방 사건이나 버닝썬 게이트가 연상되는 소재를 철저히 허구의 공간에서 풀어내려 한다. 특히 미국 B급 장르 영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길가에 휴게소처럼 놓여 있는 식당이 대표적이다. 오프닝에 나오는 슈퍼 마켓도 비치된 제품이나 가게 인테리어, 분위기를 보면 외국 한인 마켓에 가까워 보인다. 옥주가 황무지에서 접선해 총을 구하는 장면도 서부 영화 속 한 장면을 닮았다.
그런데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많다 보니 세계관 구축도 난항이다. 최프로 집 인근에 위치한 오래된 슈퍼처럼 한국적인 요소가 튀어나오는 미세한 지점마다 <발레리나> 만의 세계는 무너지고 만다. 대신 철저히 한국적인 대사와 유머, 레퍼런스가 오히려 부각된다. 철저히 짜인 무대 위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하는데, 무대 자체의 결함이 관객에게 노출되는 셈이다.
정작 액션도 아쉽다
그 결과 메인 디쉬라 할 수 있는 액션에서도 단점이 불숙 튀어나온다. <발레리나>의 액션은 '비틀기'가 핵심이다. 뻔할 수 있는 복수극을 다른 스타일로 풀어내려는 시도다. 우연을 통해 클리셰를 비껴가기도 하고, 예상되는 전개를 생략하거나 우회한다. 슈퍼 마켓 씬처럼 템포가 빠르고 속도감이 있는 대목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2% 부족하다는 인상을 떨치지 못한다. 관습적으로 기대하는 효과까지 과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단 눈은 즐거울지언정 액션에서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스토리를 가능한 많이 생략하고 압축했기 때문에, 악을 처단하는 복수자의 처절함이나 아픔이 옥주의 몸짓에 깃들기는 어렵다. 혹자는 사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최프로를 단죄하는 결말에서 카타르시스 보다 화염방사기와 주현, 김영옥의 존재가 먼저 생각나는 이상 끝맺음이 확실한 사이다는 아닌 듯하다.
이에 더해 액션 시퀀스가 전반적으로 짧다는 인상이 짙다. 시청자가 통상적으로 익숙한 수준까지 쾌감이 도달하기 않은 채로 액션이 끝난다. 호텔방에서의 육탄전, 마약 제조 공장에서의 총격전이 대표적이다. 목적을 너무 빨리 이루고, 난관도 너무 쉽게 해결하니 영화도 싱겁다. 러닝타임이 괜히 짧은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다. 이처럼 이충현과 전종서의 조합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저주를 끝내 피하지는 못한 듯하다.
Poor 형편없음
‘여백의 미’, '빼기의 미학'이라 하기에는 빈 공간이 너무 많다
-
-
- [독립시대] 끝장리뷰 | 대만과 중국 | 에드워드 양의 양가성 | 예술에 대한 코멘트 | 오프닝, 결말해석 | 제목분석 | 아킴과 찰리 채플린 상징
[독립시대](199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대만
Chapter 2 예술
00:00 독립시대
01:20 대만 은유
02:45 유자의 곤혹
04:07 제목 분석
04:57 아킴과 채플린
08:18 양덕창 예술론
09:40 오프닝, 결말해석
11:39 별점 및 한 줄 평
11:5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립시대에드워드양 #독립시대해석 #독립시대리뷰 #독립시대 #독립시대영화 #영화독립시대 #에드워드양 #양덕창 #AConfucianConfusion #AConfucianConfusionmovie #AConfucianConfusionreview #EdwardYang
-
- 영화 <바튼 아카데미> 메인 예고편
우당탕탕 흘러가는 #바튼아카데미 에서의 겨울 ⛄️❄️ 세 사람의 따뜻한 연대와 위로가 담긴 [바튼 아카데미] #2월21일극장대개봉
-
- 영화 <다이노 마이 프렌드> 메인 예고편
용감한 다이노 특공대, 과거로 출동~!
공룡 세계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어드벤처가 시작된다!공룡 연구를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난 뒤 사라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용감한 인턴 요원 ‘우디’가 출동한다.
최강 초식 공룡 스테고사우루스부터
무시무시한 지배자 데이노니쿠스,
공룡의 제왕 티렉스까지 모인 그곳!
신세계를 발견한 기쁨도 잠시, 뜻밖의 위기에 빠진 ‘우디’는
꼬마 공룡 ‘샤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하며 둘은 친구가 된다.
한편, 초식동물 마을을 탐내는 포악한 공룡 ‘디에고’의 등장으로
모험을 떠난 ‘우디’와 ‘샤샤’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맞닥뜨리는데..
과연, 두 친구는 위기에 처한 공룡 마을을 지켜내고
‘우디’는 무사히 현재로 돌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