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있었지만, 일본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자국 영화 흥행을 갈아치울 만큼 호황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등장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서 내렸다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재밌는 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정체성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본 영화에서 실제 배우들이 나오는 건 만화의 실사화 혹은 리메이크인데 이 영화는 "오리지널 각본"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평가와 흥행(6주 연속 1위) 마저 좋았으니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리무라 카스미"의 팬이기에 그녀를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었고요.
이런 긍정적인 요소들만 모아둔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어땠는지? -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집으로 갈 막차를 놓친 21살의 대학생 "무기"와 "키누"는 우연한 만남을 가집니다.
시간은 집으로 갈 아침 첫 차까지 였지만, 의외로 취미가 맞았고 말하는 것도 통하며 그들은 어느새 연인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가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어느새 그들은 서로에게 모진 말만을 내뱉는 남들만도 못하는 사이가 되는데...
극장에서 꽃다발들 받을 준비하세요.
1. 아무런 선입견 없는 일본 로맨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영화에서 실제 배우들이 나오는 건 만화의 실사화 혹은 리메이크로 원작을 먼저, 살펴보게 만듭니다.
이런 이유에는 해당 영화들이 원작과 이야기를 크게 바꾸지 않으려는 것도 있지만, 분위기가 어떤지를 살펴보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로맨스"가 오그라든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보려는 관객들과 안 보려는 관객층을 갈라두는데요.
그런 점에서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어려운 입지에 서있는 영화입니다.
앞전부터 쌓아온 "일본 로맨스"의 부정적인 선입견과 원작이 없으니 사전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죠?
앞서 부정적인 요소들이 존재했지만, 이를 모르는 관객들은 해당 영화만으로 즐길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게 아닐까요?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을 즐길 수 있는 요소는 필자만 겪어보지 못한 현실적인 로맨스입니다.
일본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정만화체의 로맨스만 선보이다 현실적인 로맨스로 그동안의 "클리셰"가 깨지는 신선함을 다가왔을 것이고, 국내에서는 이런 유의 로맨스가 드라마로 많이 선보였던 만큼 익숙할 겁니다.
그런 점에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요소들이 없는 "제로(0)"에서 볼 수 있습니다.
2. 국가를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인 로맨스
그래서인지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은 낯선 일본 영화임에도 익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뜨거웠던 연애 초기와 다르게,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은 제목의 "꽃다발"이 서서히 시들어가는 것을 이들의 연기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를 연기만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연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꺾어 신어도 편안한 "운동화"가 이제는 뒤꿈치가 까질 정도로 아픈 "구두"로 변하는 것처럼 이들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다는 것을 장면으로 보여주거든요.
그렇기에 영화는 '똑같다는 것이 축복인지 불행인지?'를 관객들에게 건네옵니다.
사랑? 에라 모르겠다
흔히, "사랑은 잔인한 감정"이라고 일컫는데 이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행복으로 느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변화"는 괴로우나 이게 정착되면, "적응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랑"은 나보다는 너를 생각하고 내가 겪는 고통을 너의 행복함을 나의 행복함으로 받아들이는데요.
그렇기에 너의 결점도 좋게 받아들이는 "콩깍지가 씌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죠.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서는 이런 과정이 없을 정도로 "무기"와 "키누"의 달달함을 뽐내며 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게 하지만, 이내 식어가는 과정에서 불행임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3. 우리는 빙빙 돌기만 한 건 아니었어
앞서 "사랑을 잔인한 감정"으로 설명한 만큼 타인의 결점도 좋게 받아들이는 "콩깍지가 씌었다"라는 말은 너의 그런 모습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극 중 한 선배의 죽음에 "무기"는 공감해 주길 바라지만, "키누"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이런 이유에는 이들에게 그 선배의 기억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미, 콩깍지가 벗겨진 이들에게 이를 버티기에는 사랑은 또 하나의 잔인함으로 다가서니 영화는 앞서 말한 '똑같다는 것이 축복인지 불행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꼭 제자리걸음이 아니야!
그렇게, 서로의 이별을 암묵적으로 결정한 그들은 "관람차를 타본 적이 없다"라는 말로 이를 탑니다.
영화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그리고 낮은 곳으로 되돌아가는 "관람차"로 들이 사귄 4년을 말하려 합니다.
이에 내린 "무기"와 "키누"는 처음 만났던 식당과 그 자리로 가려 하지만, 이미 누군가 앉아있어 부득이하게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자신들과 똑같은 입장의 남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 장면만 본다면, '이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라는 회한의 눈물로 보이겠지만 이 장면은 그 이상의 감정을 토로합니다.
4. 끝내 다시 올라타지 못한 이들...
영화에서 "무기"는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존재하는데, 그림은 자신의 손으로 나오는 것으로 통제성이 강합니다.
관계가 깊을 때와 다르게,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부터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들의 관계가 이들의 의지에 떠난 것을 빗대어 말하면 "관람차"에 타는 것은 이들의 의도이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건 온전히, "관람차"의 역할일 겁니다.
관람차가 이들을 높은 곳과 낮은 곳으로 데리고 그만큼 좋은 시간과 나쁜 시간도 있었을 테니 결코, 제자리걸음만 걸어간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런 무수한 순간들을 반복하고 같이 겪었지만, 관람차를 다시 같이 탈 힘이 없다는 것에 눈물을 보인 게 아닐까요?
나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만...
그렇게, 맞이한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엔딩은 끝끝내 지워지지 않았던 일본 영화스러움이 살짝이나마 나옵니다.
마치, <라라랜드>에서의 "미아"와 "세바스찬"의 재회처럼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이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분명히 아쉬운 점으로 보일만도 하지만, 이미 이 영화에게 콩깍지가 제대로 씌워진 이 마당에 이는 큰 결점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부터가 큰 꽃다발을 받은 거랑 똑같거든요.
※ "무기"역의 "스다 마사키"분에게서 왠지, "박정민"배우분의 모습이...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