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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3-01-27 07:47:53

‘좋아요’, ‘하트’ 중독 시대의 블랙 코미디

〈해시태그 시그네〉 리뷰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좋아요’, ‘하트’, ‘구독자’ 등의 숫자가 개인의 매력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시대다. SNS 팔로워, 조회수가 높으면 매력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 숫자가 높으면 도저히 그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하겠어도 ‘뭔가 내가 모르는 매력’이 있겠거니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 숫자들은 자존감으로도 이어진다. 내가 어떤 매력을 지녔는지에 관한 본인의 생각과 주변 사람들의 의견은 점차 중요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만큼 타인의 즉각적 평가가 갖는 의미가 커진다.

 

 

 

  하지만 누군가의 매력을 짧은 시간에 간파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즉, 빠르게 회전하는 SNS의 관심 경제에서 두각을 보이는 건 ‘진짜 매력’이 아닌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매력 자본'(외모, 패션, 사연 등)이다. 문제는 매력 자본을 가진 자와 그러지 못한 자 사이의 위계가 누가 더 소중한 존재인지에 관한 문제로 성급히 확장된다는 점이다. ‘관종’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매력 자본은 갖추지 못했으나 ‘매력의 척도’요 ‘자존감의 근원’인 관심은 갖고 싶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는 관심 경제 시대의 파괴적 효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다. 주인공은 시그네라는 여성이다. 시그네는 카페에서 일한다. 촉망받는 예술가로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남자친구 토마스에 비하면 시그네의 일상은 ‘평범’하기만 하다. 시그네는 열등감을 느낀다. 토마스의 전시회를 축하하는 파티에서 시그네는 철저히 병풍 취급당한다. 아무도 시그네에게 주목하지 않는다(심지어 멸시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사람들의 관심 여부로 기분뿐 아니라 자존감이 왔다 갔다 하는 시대다. 시그네의 열등감은 점점 심해져만 간다.

 

 

 

  그런 시그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개 물림 사고의 피해자를 돕는 과정에서 시그네의 옷자락에도 피가 묻자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 근처를 지나던 시민뿐 아니라 늘 토마스만을 향하던 친구들의 시선도 시그네에게 쏠린다. 시그네가 토마스가 주인공인 중요한 저녁 식사에서 있지도 않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고 거짓말한 것도 마찬가지다. 시그네는 사람들의 관심이 토마스에게 쏠릴 때마다 견과류 알레르기로 관심의 방향을 바꾸고, 심지어는 위독한 척 쓰러지는 연기까지 선보인다.

 

 

 

 

 

 

  이 두 사건으로 시그네는 매력 자본의 부재를 거짓말로 채울 수 있음을 학습한다. 이미 관심의 달콤한 맛을 알아버린 시그네는 멈출 수 없다. 그래서 조금 더 과감한 거짓말에 도전한다. 피부에 심각한 부작용을 남기는 알약을 구매해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약을 복용하자 시그네의 몸과 얼굴의 피부가 뒤틀리고 울긋불긋한 흉터가 생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투병을 시작한 시그네에게 엄청난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 시그네는 눈물 흘리며 곁을 지키는 토마스에게 “심각해 보이지?”라고 연달아 묻는다. 몸이 심각하게 망가진 것보다 어렵게 얻은 관심을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그네에게 관심이 주는 쾌락은 섹스의 쾌락과 비슷할 정도로 짜릿하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토마스와 잠자리를 가지며 희열을 느끼는 시그네의 표정은 그녀가 황홀함을 느끼는 대상이 육체적 쾌락보다는 ‘관심받는다는 쾌락’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관심이 주는 쾌락이 큰 만큼,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을 향한 미움과 분노도 커진다. 이렇게까지 고생했는데 관심을 주지 않느냐며 분노하는 것이다.

 

 

 

  관심을 향한 시그네의 집착은 중독으로 나아간다. 시그네는 점점 더 센 자극이 필요하다. 즉, 거짓말의 스케일이 더 커져야 한다. 언론 인터뷰, 아름다움의 통념을 뒤엎는 모델 에이전시와의 계약, 자기 이야기를 담은 책 출간…. 망상과 현실을 오가며 시그네는 어렵게 얻은 관심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는 동시에 새로운 ‘도전’으로 더 많은 관심을 얻고자 고군분투한다. 문제는 이를 위해 계속 약을 먹으며 그녀의 몸이 점점 더 망가진다는 점이다. 만신창이가 된 시그네의 몸은 그녀가 부풀린 거짓 관심을 더는 지탱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그네는 멈출 수 없다. 그리하여 시그네가 마참내 도달하게 될 곳은 파국이다.

 

 

 

 

 

 

  파국을 향해 자발적으로 달려가는 시그네가 자아내는 양질의 블랙 코미디를 감상하다가도, 종종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시그네에게서 관심 경제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종종 보였기 때문이다. 관심 경제는 고작 ‘SNS를 하지 않는다’ 따위의 선언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 SNS는 매력 자본을 뽐내는 가장 대중적인 수단일 뿐, 우리 일상에는 눈짓 한 번으로 누군가의 매력을 빠르게 가늠하고 판단하게 하는 수많은 요소가 널려 있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과 자존감은 그로 인해 좌우된다. 요컨대, 우리는 모두 삶의 어느 순간 ‘#시그네’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특징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SNS를 필두로 한 관심 경제는 그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꿨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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