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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2023-02-02 13:18:24

마침내, 영원을 향해

[영화] 헤어질 결심 스포일러 리뷰

영화를 처음 여러 번 보게 만든 영화가 매트릭스였다면, 영화를 보고 난 후 후유증이 이렇게 오래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던 첫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였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 보다 영화가 더 재밌어져 소위 명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들을 하나씩 찾아보던 때가 있었다. 그중 나에게는 박찬욱 감독 영화가 가장 여운이 길게 남았고 항상 지루하지 않게 보았다. 영화 개봉 전 인터뷰에서 감독이 자극적인 장면이 는 15세 관람가에, 자신의 영화가 아닌 순수한 로맨스 영화로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면서도 정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이후 스포일러)

출처: 유튜브 영화

영화에서 드러나는 내용만을 단순하게 따져보면, 이 영화는 불륜 영화에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계속 등장하는 자극적인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본 이후 든 생각은 '나는 왜 이런 영화를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거지?'였다. 라라 랜드, 어바웃 타임, 혹은 건축학개론 같이 정말 유명한 영화들을 볼 때 보다도 더 두근거렸다. 아무래도 영화를 여러 번 볼수록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배우들의 표정 연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유튜브 영화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여운이 길게 남을까를 생각했을 때, 가장 큰 이유는 영화에서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안개'라는 노래인 것 같다. 음악 자체가 눈으로 보이는 장면들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두 배우의 분위기와 감정이 노래의 음과 가사에 딱 맞아서 묘한 감정으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노래 때문인지 영화 속에서 계속 비가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영화  속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을 꼽자면 초반에 해준이 서래를 취조하고 감시하는 장면이다. 만약 내가 경찰과 용의자의 로맨스를 다루는 글을 쓰게 된다면 수사와는 관련이 없는 장소를 배경으로 할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취조의 과정은 소개팅처럼 보이고 감시의 과정은 데이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해준이 냄새를 맡는 장면을 봤을 때 사랑이 서로의 향기를 맡는 거라는 버스커버스커 '향수' 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안개와 같은 상황에서 대화와 관찰, 기록을 통해 끝없이 파고들고자 하는 것은 수사와 사랑이 맞닿아있는 지점일 수도 있겠다.

 

출처: 유튜브 영화

 

여주인공이 중국인인 이 영화는 서래가 '붕괴'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됨으로 1부를 끝낸다. 후반 해준은 자신이 언제 사랑한다는 말을 했냐고 다그치지만, 서래에게 있어 해준이 했던 붕괴되었다는 말은 곧 사랑한다는 말 이상의 말이었을 것이다. 사랑 고백도 아닌 말을 녹음해 힘들 때마다 듣곤 했다는 것만 봐도.. 이 지점까지 보았을 때는 둘 사이 타이밍이 어긋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다.

 

출처: 유튜브 영화

 

1부는 삶의 목적이 없거나 결핍이 있어 불면증에 시달리고 졸음운전을 하고, 드라마를 보다가 소파에 앉아서 졸던 두 사람이 서로가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침내 사랑하게 되어 자신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던 직업윤리를 버리면서 붕괴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후 둘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살지만, 결핍이 채워졌던 곳은 더 크게 비어 이전보다도 못한 생활을 이어간다. 서래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만날 수 없을' 방법으로 해준을 찾아가며 2부가 진행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작중에서 해준은 해결하지 못한 미결 사건들의 사진을 방에 붙여놓고 잠을 잔다. 서래가 해준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서래는 처음으로 미결사건의 뜻을 알게 되었다. 둘의 마지막 대화 때, 서래는 '당신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었다.'는 말을 한다. 해준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만, 소유보다는 사랑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더 이상 상대를 붕괴시킬 수 없던 서래는 자기 자신이 미결 사건이 되어 영원한 사랑을 만드는 마지막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핸드폰을 바다에 버리는 것이 1부에서 해준의 사랑 방식이었다면, 2부에서는 서래가 똑같은 말을 하는 것도 영화의 핵심인 것 같다. 1부에서 녹음하는 사람은 해준이었고 2부에서 녹음하는 사람은 서래였던 것처럼. 결국 서래는 자기 자신을 바다에 버림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최후에 최후에야 해준은 상대의 의도를 깨달아 해가 질 때까지 서래를 찾으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한다'는 대사를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계획을 다 이루고 바다를 택한 서래와 산으로 대표되는 '친절한 형사님'인 해준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 통화에서 서래가 가장 중요한 대사를 중국어로 말했던 것은 항상 해준의 얘기를 번역하고 붕괴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랑을 키웠던 자신의 입장을 해준도 겪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영화의 주인공이 살인범과 불륜 남인 것은 변함없지만 피를 싫어하는 상대를 위해 수영장의 피를 다 빼고 청소하고, 삶의 근간이 되는 직업윤리를 버리기도 하며, 상대를 만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이면서 가장 낭만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

 

출처: 유튜브 영화

 

+ 마지막 장면을 보고 떠올랐던 시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낮은 곳으로 - 이정하

작성자 . 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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