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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작가2023-02-03 17:57:05

우린 늘 부탁하며 살아

넷플릭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줄거리 요약 / 스포일러 / 리뷰(후기) 및 추천 / 감상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주요 인물들은 싱글맘과 워킹맘이다. 그래서인지 이 제목은 굉장히 묘하다. 무거운 짐을 끌어안고서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해 고뇌와 피로에 찌든 여자가 마지못해 전화를 걸어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고.

'부탁'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이중적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며 상호 간의 신뢰와 유대감을 쌓는 단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자면, 상대에게 나의 짐을 얹어서 부담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이렇듯 영화는 부탁이라는 단어처럼, 같은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두 인물을 통해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에밀리는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을 분출하며 살아가는 속 시원한 인생으로 보인다.

처음 스테파니를 초대한 후 옷을 벗는 장면에서 '에밀리'라는 인물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하나의 그림 같지만, 실은 작은 조각들을 얼기설기 이어붙인 퍼즐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완벽해 보였던 그림이 뒤집는 순간 와르르 수 백, 수 천 개의 조각으로 쪼개지며 쏟아진다. 에밀리의 삶은 그렇게 구축되어 있다.

 

"힘 있는 놈들한테는 세게 나가야 해. 아니면 우습게 봐."

에밀리는 자신에게 불리한 조각은 모두 걷어내고, 가장 강력하고 완벽한 부분만 추출해서 퍼즐을 만든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션의 어머니에게서 훔친 반지나 사귀던 화가에게서 훔친 그림처럼. 훔쳐 온 조각들이나 자신의 일부만 떼어낸 조각들로는 완전한 하나의 그림을 만들 수 없다.

 

이것이 스테파니와 에밀리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스테파니 역시 불편한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불완전한 모습도 자기 자신임을 받아들이고, 때론 남들 앞에서 비웃음을 살지라도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그녀의 인생은 하나의 그림처럼 천천히 칠을 더해간다.

 

 

스테파니와 에밀리에게 '부탁'이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부탁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애썼다. 남들은 다 '왜 돈 안 받는 베이비시터 노릇을 해요?'라며 비꼬았지만, 스테파니는 그것을 현실에서 몸부림치는 엄마들 간의 유대감이라고 생각했기에 기꺼이 에밀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결국 스테파니는 '부탁'의 긍정적인 힘을 이해하고, 그를 통해 상대와 함께 단단해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인 것이다.

 

당연히 그와 반대로 에밀리는 '부탁'이라는 단어를 순전히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상대방에게 그 부담을 떠넘김으로써 상대방을 짓밟고 올라가 승리자가 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부탁은 굉장히 폭력적이지만,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데에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스테파니가 에밀리의 옷을 입거나 에밀리처럼 과격하게 행동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에밀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에밀리처럼 포장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자기답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답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애쓴다.

 

스테파니는 어떠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혹은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방송을 켜서 상황을 공유한다. 그를 통해 함께 나아가는 것, 이 방식이야말로 스테파니를 승자로 만들어준 필승법이다. 스테파니는 과거에 사로잡히기보단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 결국 정말 강한 사람은 현재의 자신을 믿고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테파니'라는 인물을 통해 증명한 셈이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추리,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두 여성 인물 중심으로 풀어나갔다는 점에서 극찬을 받는다. 그 두 명의 인물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사실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밀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지향한다. 그러나 자신을 가장 강하고 완벽하게 보일 수 있는 방법에만 집착하다 보면, 때론 놓치는 게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현재의 나다. 나 자신을 믿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 그 믿음을 가진 사람만큼 강한 사람은 없다.

 

우린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부탁하며 산다. 하지만 그 부탁은 에밀리 식이 아니라 스테파니 식이어야만 한다. 상대방을 짓밟고 올라가기 위한 부정의 부탁이 아닌, 상대방과 함께 강해지기 위한 긍정의 부탁. 다르게 생각해 보면, 정말 강한 사람은 남의 부탁을 '들어' 준다.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타인에게 부탁을 '하기만' 하는 사람이, 과연 강해질 수 있을까?

작성자 . 담작가

출처 . https://blog.naver.com/shn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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