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5-30 18:29:57
이런 우정 현실엔 없어, 스크린에 있어
이런 찐한 우정, 현실에서 본 적 있나요 👀
듬직한 음악가 곰 ‘어네스트’와 용감한 꼬마 생쥐 ‘셀레스틴’의 빛나는 우정을 극장에서 확인해 보세요 ✨
오는 6월 11일,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을 고치기 위해 떠난 좌충우돌 뮤직 어드벤처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그럼 우린 극장에서 만나요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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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발하게 직조한 스릴러
올빼미
주인공 경수는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경수 형제의 부모님은 보이지 않는다. 돈을 버는 건 경수뿐이다. 일을 하기엔 너무 어린 동생. 경수는 침술을 익힌 한의사로서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벌이는 적당히 잘 된다. 나름 실력이 있는 침술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수에겐 페널티가 있다.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은 경수. 장님이기 때문에 지팡이가 없다면 일상생활이 어렵다. 그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했다. 숨소리, 발소리, 냄새, 속삭이는 작은 소리까지 상황 판단에 능한 경수. 경수가 침술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용한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이 역량의 힘이 컸다. 능력이 제법 있는 경수. 경수가 사는 마을에 어의를 뽑는 시험이 열렸고 주인공은 거기에 지원하려고 한다. 궁에서 나오는 월급이면 동생의 약도, 생활비도 충당할 수 있다. 그래. 한번 보는 거야. 다다른 시험장. 시험 문제는 경수 입장에서 좀 터무늬 없던 것이었다. 실 한 줄을 가지고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실 하나를 가지고? 이상한 문제에 의아해하며 출제자에게 태클을 거는 경수. '이 시험은 애초에 어불성설입니다!' 말 한마디에 어의 담당자였던 이형익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궁중에 입성한 경수. 경수가 근무하게 될 어의 집단은 위계질서가 분명했기 때문에 나이가 어린 사람이더라도 선임 대접을 깍듯이 해야 했다. 그런데 여느 군기가 심한 집단이 안 그랬나. 부조리도 있다. 앞이 안 보이는 경수. 나이 어린 선임이 반말을 찍찍 날리며 "약재를 저 칼로 정리해놔라"라고 지시한다.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해?'" "그러니까 하는 거야." 어떻게 경수가 그걸 다 해? 하지만 경수는 선임이 지시한 업무를 무탈하게 완료한다. 의외의 이유가 있었다. 경수는 낮에는 앞이 안 보이지만 어두운 밤에서는 시야가 들어오는, 병을 앓고 있는 주맹증 환자였던 것이다. 약초 정리도, 궁에서 연애질 하는 남녀에게 쌀자루를 날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단지 어려운 것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궁중에 들어올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것이다. 안 보이는 척해야 했던 경수. 그렇게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아예 못 봤으면 좋았을 텐데. 경수는 보지 말아야 할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청이 조선의 소현세자를 압송하고 8년 만에 세자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세자가 죽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침술사 경수였다.
익숙한데
어? 이런 영화 본 적 있다. 언제? 올해 여름에. 바로 <헌트>다. <헌트>는 5공화국 당시 삼엄했던 분위기를 핵심 키워드로 삼은 영화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사냥감을 '헌트'하며 우리 현대사에서 괄호 쳐졌던 역사를 질문한다. 어떻게? 기존에 존재했던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 당시 '아웅산 테러 사건'은 1983년에 일어난 명확한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의 중심 서사는 이정재 감독이 각본을 쓰며 창작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시간적 배경이 1983년인 이유가 뭘까? 극에서 제시되는 여러 사건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글쓴이는 '5공화국의 말로를 맞이하기엔 몇 년 남았기 때문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남아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 2022년에 다시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올빼미>가 취한 노선도 <헌트>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인 안태진 감독은 조선왕조실록에 쓰여있는 '소현세자가 학질로 사망했다'라는 문장에 호기심을 얻고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안태진 감독을 직접 만나 여쭤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의도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히 시대극의 틀을 빌려와서 재미있는 스릴러'만'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올빼미> 역시 <헌트>와 비슷한 화법을 쓰고 있다.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대립하는 키워드는 '보다'와 '보지 않는다'라는 대비다. 주인공 경수가 어쩔 땐 보이고 어쩔 땐 안 보이는 주맹증 환자라는 1차적인 세팅 때문은 아니다. 영화는 인조와 소현세자, 최대감, 소현세자의 부인, 원손까지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고, 또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은 현재의 한국사회에게도 질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밝지만 어두운 사실을 직면할 것인지. 어둡지만 아픈 사실을 받아들여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헌트>가 현대사의 상처를 묻는다면 <올빼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재에 대해 반문한다.
그래도 다른 것
그렇게 <헌트>와 유사한 영화지만 글쓴이는 <헌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헌트>만큼이나 훌륭한 부분도 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주인공을 인조로 설정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어느 부분도 성립되지 않는다. 인조라는 인물이 고르는 선택지가 삼전도의 굴욕, 병자호란, 인조반정, 당시의 주전론/주화론 간의 대립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이는 감독이 인조라는 왕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것과도 이어지고, <헌트>와 공통점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진범이 누구인가?'라는 중심으로 서스펜스를 끈끈하게 이끌어간다는 부분은 두 영화가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이야기가 전복되는 부분도 왠지 모르게 공통점을 가진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동림'의 행적이 중요하다가 물 흐르듯 서서히 하이라이트로 넘어가는 <헌트>처럼 '소현세자'를 암살한 흑막을 찾다가 후반부로 전개되는 이야기 전개 역시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이 <올빼미>를 보고 아쉬웠던 점은 이야기의 만듦새가 살짝 아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 소현세자를 죽인 흑막이 누구인지 드러났을 때까지 이야기는 촘촘하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 제일 마지막 시퀀스까지 그 엔딩부의 장면 하나를 보여주기 위해 하나하나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주인공이 흑막의 정체를 알고 나서 어떤 행동들을 계속한다. 그런데 여기에 너무 페널티가 없다. 아예 생경한 전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주인공 경수는 거의 국정원 요원급에 준하는 스펙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글쓴이는 가장 마지막 시퀀스를 넣은 의도가 궁금해졌다. 거기서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를 지었다고 해서 쾌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쾌감 넣으라고 그 장면 넣은 거 아닌데?'라고 하면 할 말 없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무리 짓지 않아도 영화 흐름에 아무 지장이 없다.
또 인조라는 인물에 너무 감정선이 얕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조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인물이다. 세자가 독살당했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왕의 포지션은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물의 행적을 유해진 배우의 표정연기와 역사적인 평가에 의존한다. 이 인물의 입장에서 더 감정적으로 비틀대거나, 어떤 것을 표현하거나 하는 식의 장면이 초중반부부터 살짝 들어갔다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청의 문물을 거부하는 이유는 뭔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소현세자와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무엇인지. 지금 명, 청에 대한 인조의 생각은 무엇인지. 인조가 보여줄 수 있는 외교적인 한 수는 무엇인지까지 이 인물의 내적인 동기부여에 확실했다면 이야기가 흐름이 윤활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유해진 배우의 열연만 기억에 남는 것이다.
유해진 배우 멋있어요
이 영화에서 두 배우는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일단 가장 중요한 주인공 류준열 배우는 자기랑 맞는 옷을 입었다. 올해 류준열 배우의 출연작으로 <외계+인> 1부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한 부분이기도 한데, 여기서 류준열 배우는 좀 이질감이 든다. 이 영화에서 대사가 갖고 있는 임무는 막중했다. 바로 이 영화를 지탱하고 있는 세계관을 보다 쉽게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류준열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품고 있는 비밀이 있음에도 경박한 모습만 기억에 남는 것은 감독의 무리수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올빼미>에서 류준열 배우가 맡은 '경수'는 앞에서 제시한 예시와 정반대에 있다. 영화에서 코미디가 없진 않지만 경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경수는 앞이 보이지 않으나 밤에는 시야가 밝아지는 이중적인 모습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쉭쉭 무너져내리는 감정연기까지 수행해야 한다. 경수가 영화의 배경을 담당한 셈인데 류준열 배우는 어느 곳에 뭐가 들어야 전달이 쉬울지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류준열 배우만 할 수 있는 연기를 한다.
또한 유해진 배우가 맡은 인조 캐릭터도 연기를 정말 잘했다. 영화에서 인조의 서사에 구멍이 났다는 점은 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유해진 배우의 경험치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신이 있다. 인조가 청나라 사신의 히스테리에 반응하는 신이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한다. 이때 인조가 갖고 있던 정신질환과 나라의 대표가 겪는 굴욕이라는, 역할 갈등에 해당하는 스트레스를 표정으로 보여주는 호연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자체가 인조의 평가에 대해 살짝 의존한 감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무능력을 최소한의 범위에서 어떻게 보여줘야 할 것인가? 는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때 인조가 궁에 있는 신하들에게 신뢰를 잃어가는 과정을 영화가 보여준다. 이 연기를 하면서, 유해진 배우는 눈빛 연기 하나로 감정전달에 입체성을 부여하며 극을 이해시킨다. 역시 유해진 배우도 올해 개봉작 <공조 : 인터내셔날>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이때 "아니 무슨 ~~ 도 아니고"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낡은 화법은 좀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유해진 배우는 그동안 맡았던 가벼운 역할을 뒤엎는 중량감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올해 개봉작 중 남자 주연 배우들이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유해진 배우의 인조도 낄 만하다.
무리 짓는 것
영화에서 '본다'와 '보지 않는다'의 대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무리 짓다'와 '무리 짓지 않는 것'의 대비다. 영화는 끊임없이 두 집단을 대비시킨다. 인조와 대립각을 세우는 최 대감 무리. 침 하나와 나머지. 경수와 군인들. 청나라 사신과 조선의 신하들 등등 인물의 밀도에 템포를 바꾸며 영화에서 어떤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핵심 키워드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가장 큰 범주이자 선명한 대비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바로 백성들과 조선 지도부와의 대립이다. 이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게 촘촘하게 이미지를 보여줬다. 좋은 스릴러 영화다. 또 우리에게 밝지만 떼거지로 몰려있는 흑역사를 맞이할 것인지, 어둡고 혼자 밌지만 아픈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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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디 옆에 오은영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좀 달랐을 텐데
철이 들 때가 됐는데
케이시. 이제 그만하자. 차에 탑승한 케이디 가족. 여느 때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케이디는 엄마 말을 안 듣고 있다. 어떤 것에 먹이를 주고 있는 케이디. 원래 있을 때 잘해야 하는 법인데 부모님은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다. 스크린 타임 30분으로 하지 않았어? 언쟁이 오가는 부부. 금세 언쟁은 눈길에 대비를 안 했다는 소재로 이어진다. 안전하게 벨트 끼고 아무것도 안 해도 모자랄 판에 돌발행동을 한다. 놀라는 케이디의 엄마. 케이디! 안전벨트 해! 차는 잠깐 흔들릴 정도로 방향을 주체하지 못했다.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잠깐 멈춰 서기로 한 부부. 제설차가 눈을 치울 때까지 잠시 대기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때, 큰 차가 갑자기 케이디 가족을 들이받는다.
젬마는 AI를 만드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일 하고 있는 엠마. 전 세계 만국공통으로 통하는 것이 직장생활 아닌가. 경쟁사의 표절부터 달달 볶는 상사까지 여러모로 짜증 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원래 훈수가 창작과 실행보다 쉬운 것이다. 상사의 이래라 저래라에 짜증 난 젬마는 자기가 만든 기계 ‘메간’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다. 시원찮은 상사의 반응. 상사 데이비드에게 메간을 보여줄 때 이 기계가 좀 이상한 리액션을 보여준 것도 한몫한다. 그런데 이 메간만큼이나 젬마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카 케이디다. 언니를 잃은 젬마. 사실 마음이 많이 복잡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일에 전념하지만 그녀에게도 가족을 잃은 슬픔은 여전히 남아있다. 임시 보호자가 된 젬마. 케이디에게 뭔가 힘이 될 수는 없을까?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젬마의 직업이었다. 그래. 내가 AI를 만들었었지? 메간과 케이디가 서로 잘 지내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일거양득 아닐까? 언뜻 보면 빛나는 센스지만 이 아이디어는 오히려 케이디와 젬마를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블룸하우스 맛
블룸하우스는 2010년대 중반부터 관객에게 신선한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우선 이야기에 그렇게 제한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큼 발랄함은 영화 내적을 굉장히 플러스 요소가 된다. <해피 데스데이>나 <살인 소설>, <인비저블 맨>은 뭐 뻔하다면 뻔한 호러지만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나름 잘 눌러 담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생각한다. <2014년 <위플래쉬>부터 시작해서 2017년 <겟 아웃>까지 데이미언 셔젤과 조던 필이라는 신인 감독을 등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 두 감독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좀 알아주는 아티스트들 아닌가? 작년 <놉>이나 올해 <바빌론>까지 수작을 뽑아내는 데 있어 안목이 좋았던 제작사의 선택이 잘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M. 나이트 샤말란과 스파이크 리라는 베테랑을 다시 등장시킨 전례도 있다. <23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샤말란도 뭐 나름 성과가 있지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석권한 <블랙클랜스맨>은 스파이크 리의 직업이 인권운동가가 아닌 영화감독임을 세계에 보여주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렇게 신선한 선택을 보여주는 블룸하우스답게 이 영화도 남다르다. 일단 AI와 호러라는 선택이 좀 익숙해 보이지만 영화가 가지는 선택은 다른 영화들과 다른 느낌은 분명히 있다. 우선 기존 호러 영화가 공포를 다뤘던 방식은 1) 인간이 무섭거나 2) 초자연적인 행동이 무서운 것이 주류를 이뤘다. 우리가 잘 아는 <랑종>이나 <곡성>은 2)에 속하고 인간이 무서운 쪽은 <미드소마>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AI 때문이다. 신선하다. 이 신선한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영화는 기괴함이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메간의 얼굴을 보면 글쓴이는 솔직히 그래픽을 입힌 티가 너무 났다. 너무 인간같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는 어떤 분들은 불쾌한 골짜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이 AI가 기계의 사용자인 젬마의 계산을 어떻게 뛰어넘는지도 역시 호러 요소로 작동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뉴스들을 생각해 볼 때 많은 분들이 ‘언젠가 AI가 인류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뉴스들을 영화가 어떻게 활용했을까? 막연히 ai가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케이디의 정서적 교류와 예측불가능함이라는 양가적인 특성으로 소화한 것이다. 영화의 기본적인 기획력이 좋았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의외로 철학적
영화에서 내적으로 작동하는 모티브는 두 가지다. 첫 번째. 가족구성원의 유대감에 대한 질문이다. 두 번째.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다. 우선 전자 가족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는 한 인물의 직접적인 대사로 나온다.’ 넌 언제?’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약간 초중반부에 나오긴 하지만 이 문장이 작품 전부를 꿰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반부. 젬마는 케이디에게 선물을 했다. 바로 AI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젬마는 제이디에게 이상한 선물을 했다. 여기서부터 젬마는 케이디에 대해서 좋은 어른으로서 아이를 성장시킬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 젬마의 선택은 2부로 이야기가 전환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반복된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별로 가족으로서의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이 부주의는 영화의 핵심 소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임감은 중반부 찍고 벌어지는 대환장파티의 결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젬마의 내적인 결함을 영화의 원동력으로 사용한 것이다. 극의 서스펜스와 모티브를 병치시킨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한 질문은 첫 번째 모티브도다 더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장 첫 장면 케이디가 부모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또 실험실 내부의 사람들은 영화 끝에 가서 어떤 입장에 놓이는지, 젬마의 부주의가 어디까지 반복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는 영화 자체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 영화에서 인간과 기계는 주종관계가 뒤엎어진 것처럼 보인다. 글쓴이는 이 영화의 모든 리액션들이, 인간이 주체가 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분명히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위해 잠식된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이 부분을 여러분이 집중해서 본다면 좀 색다르지 않을까 싶다. 이때 사람이 더 주체적으로 행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상한 준비물
뭐 이렇게 나름 철학적인 것도 넣고 장르적인 특색도 어느 정도 넣었다고 해서 단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는 영화 내적인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는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다. 영화 내적으로 품고 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지탱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중에서 메간이 벌이는 일들이 과연 가능할까? 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근본적인 설정에서도 의문점이 생겼다. 처음 케이디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다음에 바로 메간을 선물하는 행동이 좀 의문이었다. 영화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설정이지만, 또 젬마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무조건 필요한 일이지만 사건 자체의 현실성이 좀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뭐 케이디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를 수 있다. 영화 내적으로 눈이 쏟아졌던 것이 교통사고의 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니 부부와 최소한의 대화도 없이 그런 선물을 했다는 것은 의아하다.
또 중반부 기점 찍고 전반과 후반의 이야기 전개가 확 달라진다. 후반부부터 메간의 광기가 폭발한다. 이 광기가 폭발하고 난 후는 흥미롭지만 전반부의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후반부가 오히려 더 폭발적이어서 전반부가 인간적인 느낌? 특히 (이미 해외에서 유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에 메간 춤추는 신 웃기다. 이 춤추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 가치가 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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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이른 유턴
이 글은 영화 [파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갈 때는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사진출처: 다음 영화
각각의 영화 장르가 그렇듯 오컬트라는 장르에도 "세계관"이 존재한다. 물론 마블 영화로 대변되는 대형 히어로 프랜차이즈 영화에 비하면 세계관이라는 것 자체의 설명이 똑 부러지게 되지 않을 때가 많겠지만 말이다.
등장인물의 측면에서 봐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마블 영화에서의 주인공들은 투자액수에 비례하게 번쩍이는 능력으로 입을 떡 벌어지게 할 때가 많지만. 오컬트 속 주인공들의 필살기는 빠른 확인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근거리공격인 주술적인 격투(?)도 존재하지만 원거리 공격인 저주로 힘을 겨룰 때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인물들이 가진 능력이 중첩되거나, 심지어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미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오컬트는 무려 "내공"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물의(혹은 같은 능력의) 더블링을 퉁 칠 수 있다.
보통 주인공과 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더 높은 내공을 가진 고수를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그 고수의 등장은 주인공에게는 최후의 숙적(Arch enemy)인 경우가 많으므로. 오컬트 영화의 세계관은 그 어떤 장르보다 인력난에 시달려야 한다. 또한 주인공은 마지막 대전을 겪기 위해 반드시 성장해야 하는데, 이 내적 성장(혹은 짬바가 차는 과정)은 주인공이 반드시 한 번은 뒤통수를 맞는 반전의 형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초반부 한 시간;숨이 자꾸 멎는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을 설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게 싸워야 하는 모호함을 장르적 특성을 타고났기에. 영화 초반은 이 영화만이 갖고 있는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일정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영화 [파묘]에서는 이 역할을 화림(김고은)의 초반 내레이션이 도맡는다. 어둠에 있던 것들이 빛의 경계로 슬그머니 나올 때. 그때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그때가 되어서야 어둠으로 그 존재들을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똑 부러지게 그어놓은 자신들의 한계 위에서. 화림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작두를 타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뛰어놀아야 할 고유 영역에서 가장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게 할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표현을 효과음(BGM이나 배경음악보다는 효과음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을 이용해 쌓아 올리는 것도 꽤나 유효하다.
그저 점프 스케어(Jump Scare)에 집중한 크고 단말마 같은 음향이 아닌. 앉아있는 관객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손가락으로 슬쩍 목덜미를 훑는 것 같은 서늘함을 남긴다. 분명 기척을 느꼈음에도 뒤돌아 볼 수 없기에 관객은 자신의 상상력만으로 손가락의 실체를 향한 두려움의 몸집을 걷잡을 수 없이 불려 갈 수 있다.
영화의 초반 한 시간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으로 관객들을 괴롭힌다. 다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인물들의 칼춤에 몇 번이고 떨어진 간이며 심장을 열심히 주워대다 보면. 그제야 겨우 가늘게 숨을 몰아 쉴 수 있는 잘 짜인 결말로 다다르게 된다. 안도하는 관객들에게 주어지는 후련함은 마치 여기까지 잘 버텼다며 쥐어주는 시원한 물처럼 소중하게 다가온다.
비로소 찾아온 안정을 느끼며 마른 목을 축여갈 때 즈음. 영화는 급작스런 유턴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 한 번의 유턴으로 인해 호불호라는 길 위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오컬트 장르에 없는 것은?;메신저
사진출처: 다음 영화
현대적인 천재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셜록(BBC 드라마. 오이배치 출연)을 보자. 그는 모든 것의 정보를 기억하고 엮어낼 수 있는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관찰력을 가졌다. 그런 능력을 배가 시켜주는 소시오패스적인 기질 덕에(?) 자칫 미제로 남을 수 있는 사건을 풀어내는 데 있어서는 경찰들이 오히려 몰래 찾아올 정도다. 셜록의 이름은 그들의 입에 오르내릴지언정 공공연하게 "대놓고"부를 수는 없다. 애초에 셜록이라는 방법 자체가 "공식적인" 해결 방법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경계는 오컬트라는 장르의 한계와도, 또한 초반에 화림이 선언한 자신들의 역할, 혹은 존재의 위치와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장르가 "설명이 불가함"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장르 속 인물들은 조금은 억울하고, 또 조금은 찌질한 채로 살아간다. 또한 누군가에게 감히 공식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다. 애초에 메신저로서의 자격이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후반부의 시도는 낯설고 잘 알지 못하는"다른 나라"에서 온 존재를 엮어보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이는 영화 [곡성], 그리고 드라마 [방법]에서도 시도했던 것이기에 그다지 새로운 시도라고는 부를 수 없다.
문제는 그 시도가 어설프다는 점이다. 딱 한 번만 존재할 수 있는 오컬트 장르의 반전 장치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데다, 그마저도 긴장감이 사그라진 상태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뒤통수를 가격하는 힘이 그다지 크지 않아 사건의 중대함이 얼마나 큰지 별로 느낄 수 없다.
또한 전반부에는 이야기의 구심점이 사람들에게 있었으나, 후반부에서는 중심축이 사건을 설명하는 쪽으로 묘하게 이동한다. 이 덕분에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일본은 적이다.라는 본능이 그대로 발동되어 버리고 만다. 덕분에 이 장르에서는 존재하면 안 되는 메신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거부감이 후반부 내내 마치 망령처럼 귓가를 맴돈다.
거 어데 도깨비입니꺼?;여기서도 내가 다 했어 임마.
사진 출처:다음 영화
전반부에서 형체가 없던 적은 후반부에 가서는 완벽하게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적에 가깝게 묘사된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거대하게 묘사되는 적이 무자비한 학살을 해대는데도 형태가 흐릿한 혼령이나 날카로운 소리 한 조각보다도 무서움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 상상력이 더 이상은 쓸모없이 되어버리면서부터, 그저 화면에 보이는 존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인 감상은 초반부의 심장 롤러코스터를 겪어온 관객들에게는 그저 슬래셔 장면의 나열처럼 보일 뿐이다.
적의 속성이 바뀌면서 드러나는 첫 번째 문제점은, 유일하게 영화 속에서 오컬트적인 "전투 기술"을 갖고 있는 화림의 쓸모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화림은 후반부의 싸움에서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장면을 연출해내지 못한다. 완벽하게 기선제압을 당해 허둥거릴 뿐이다.
물론 언제나 영화 속 주인공이 승리의 편에 당당하게 서 있을 것이라는 법도 없다. 어쩌면 마이너 한 장르 영화의 특성상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이 낯설지 않거나 오히려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적을 없애야 한다면 화림이 아닌 다른 등장인물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이 사건을 종결해야 한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점이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능력치의 최대와 최대가 맞붙어야 하는 후반부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시간을 쓰다 보니 각 인물들의 숨은 능력을 보여주거나 설명할 시간이 없어져버린다는 것이다. 화림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데다 봉길(이도현)은 병원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관객의 머릿속에서 이 사태를 끝낼 "마땅한"인물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러니 뜬금없이 상덕(최민식)이 소싯적 짬바를 발휘해서 직접 K-고스트 버스터즈가 되어버리는 장면이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누가 노래방의 민족 아니랄까 봐. 끝을 앞둔 겨우 3 분 전에 갑자기 등장하는 히어로라니. 능력에 대한 빌드업이 되지 않은 영웅은 이제 마블 프랜차이즈에서도 찬밥신세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기에. 상덕의 활약에 무게감이 실리지 않는 결말이 참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마치면서;감독님 사랑합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는 "별로"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아니오. 에 가깝다.
한 시간 후의 그 유턴이 정말 길을 잘못 들어 원점으로 가려고 했던 시도였는지. 아니면 의도된 유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이 있는 관객이기에, 아쉬움의 투덜거림이 좀 더 크게 입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국의 오컬트 장르는. 누가 뭐라 해도 장재현 감독님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침한 곳에 숨어있던 무언가를 꺼내 경계까지 꺼내놓고, 자신만의 누울 자리를 용케 찾아 단단히 자리 잡아주신 덕분에.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를 한국 패치가 완벽히 장착된 채로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그것도 여러 번이나!!)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선택한 중반부의 유턴이 그저 조금 "이르다" 정도로 말하고 싶다.
스스로가 예상했던 바깥풍경을 못 보았기에 이질감이 들었고. 조금 기이한 기분과 낯섦 속에서 두리번거리는 바람에 이정 자체의 경이로움이 좀 줄어들었을 뿐.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의 TMI]
1. 독일어 공부는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못해먹겠네요.
2. 좀 아파서 쉬었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3. 오늘 과자 한 봉지 다 먹음.
4.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파묘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장재현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브런치작가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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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큰 | 사건도 캐릭터도 부서져 파편만 남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출소 후 '석창모'(정만식)의 조직을 떠난 '배민태'(하정우).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민태가 계획한 삶은 부서진다. 창모의 조직에 함께 속했던 하나뿐인 동생 '배석태'(박종환)가 돌연 시체로 발견되고, 동생의 아내 '차문영'(유다인)은 행방불명된 것. 이에 민태는 문영을 찾아 나선다.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던 만큼, 문영이 동생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던 중 민태는 자신과 같은 흔적을 좇는 소설가 '강호령'(김남길)을 만난다. 그는 호령의 베스트셀러 '야행'의 모티브가 동생과 문영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고, 문영과 호령 둘을 범인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물론 사건의 진상을 숨기고 싶은 창모까지 민태 앞길에 끼어들면서 그의 복수극은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사건이 전부인 영화
영화의 시나리오는 크게 두 범주, 인물 중심과 사건 중심으로 나눌 수 있다. 둘의 균형이 맞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중 후자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는 치명적인 단점을 떠안는다. 관객이 보기에 캐릭터가 플롯의 도구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이 경우에는 사건이 그 자체로서 얼마나 흥미로운 지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와 몰입도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다. <인셉션>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해 여러 스타 배우가 출연했지만, 그들이 맡은 캐릭터가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기억을 심는 작전에 필요한 역할과 기능을 의인화한 존재였다. 그렇지만 <인셉션>은 관객을 매료하는 데 성공했다. '꿈에 침투해서 기억을 훔치거나 심는다'라는 극 중 사건 자체의 독특함이 매력적이었으니까.
김진황 감독의 신작 <브로큰>은 큰 범주에서 봤을 때 인셉션과 같은 유형의 영화다. 캐릭터 자체는 한국의 조폭 스릴러에서 익히 봐 온 인물이라서 특별하거나 흥미로울 구석이 거의 없다. 그 대신 <브로큰>은 민태의 복수극의 발단이 되는 살인 사건 차제를 결정구로 선택한 듯 보인다. 문제는 살인 사건이 신선하지도 않고, 사용법도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 그 결과 <브로큰>은 사건, 캐릭터, 플롯 모두 부서진 채 파편으로 흩어진다.
소재 자체에 동력이 없다
<브로큰>이 결정구로 꺼내든 소재는 살인 사건, 그중에서도 '소설 내용대로 진행되는 살인 사건'이다. 그 중심에는 호령과 그가 집필한 베스트셀러 소설 '황야'가 있다. 호령의 소설에는 마약 중독자 남편과 살아가는 여성이 등장한다. 극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그녀는 남편을 죽이면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살인 계획을 실행에 옮긴 후 아무도 몰래 한국을 떠난다.
그런데 극 중 현실에서 '황야'의 내용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조폭 조직원이자 마약 중독자인 석태가 돌연 사망한 채로 발견된 가운데, 그의 아내 문영이 행방불명된 것. 문영의 주변인을 탐문하던 중 호령이 그녀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경찰은 소설 내용을 근거로 호령과 문영이 함께 석태를 살해했다고 의심한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문영을 찾던 민태도 호령의 소설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이러한 <브로큰>의 메인 플롯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 우선 사건 자체의 흥미가 부족하다. 이미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미디어에서 숱하게 활용된 소재이다 보니 매력이 없다. 당장 판타지 영화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도 '타이코 도도너스'라는 마법사가 남긴 '타이타니아의 예언'이라는 시의 내용과 똑같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는 식의 전개가 등장한 바 있다.
또한 후반부에 등장하는 반전에도 악영향을 준다. <브로큰>은 호령과 문영의 관계가 살인 사건의 동기인 것처럼 꾸민 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창모가 개입한 살인 사건의 실상을 비로소 밝히면서 반전의 묘미를 살리려 한다. 그런데 정작 전반부의 스토리가 재미없으니 긴장감은 쌓이지도 않고, 반전도 인상적이지 않다. 미끼가 그럴싸하지 않으니, 숨겨진 진실이 따로 있다고 손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맥거핀
사용 방법도 문제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어설프다. 호령의 소설이 문제가 되는 과정이 거의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태나 경찰이 호령을 의심하게 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호령과 문영은 문화 센터 강좌에서 만난 후 연락을 주고받았다. 호령이 소설 집필 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문영과 그녀의 주변인물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다. 따라서 호령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추론 단계에는 논리적 비약이 많다. 소설 내용과 등장인물이 석태와 민영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호령을 의심할 합리적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호령은 민영을 1년 간 만나지 않았다. 그가 살인 및 실종 사건에 연루된 적도 없다. 즉, 호령이 소설의 내용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로 부각된다는 아이디어는 있으나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과정은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의 존재가 극 전개에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확고하다. 민태다. 제목만 봐도 그렇다. '브로큰'은 출소 후 조직을 떠나려던 민태가 동생의 죽음 때문에 원래 계획을 부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의 복수극에서 호령의 역할은 의미가 없다. 그는 동생 죽음의 주범도, 조력자도, 반동인물도 아니다. 사건의 진상을 잠시 가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의 비중이 큰 전반부가 불친절하고 허세 가득한 이유다.
호령을 맥거핀으로 봐도 문제다. 맥거핀은 극의 발단을 그럴듯하게 보여준 후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사라져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에 반해 호령은 맥거핀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복수극의 발단에는 영향을 못 끼치는 반면, 분량은 민태에 버금간다. 그러다 보니 퇴장한 후에도 그의 공백은 역으로 강조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 붙은 물음표가 안 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호령이라는 캐릭터는 실패한 맥거핀이다.무의미한 맥거핀의 나비효과
효과가 없는 맥거핀은 다방면에 악영향을 끼친다. <브로큰>에서는 특히 캐릭터의 문제가 부각된다. 애초에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는 캐릭터로 도배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동생의 복수만을 추구하는 민태의 행적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창모에게 석태를 소개하고, 동생 대신 감옥을 갈 정도로 동생을 아낀다. 하지만 그 이유가 주어지지 않다 보니 막연한 형제애를 앞세운 복수극은 일견 올드하다.
비정상적인 석태의 캐릭터성 때문에 민태의 복수극은 설득력이 더욱 부족하다. 그는 형에게 기대어 살다가 조폭이 됐고, 그 후에는 마약 중독자로 지내다가 살인도 저지르고, 아내에게 가정폭력까지 행사했다. 그 어떤 연민도, 동정도 느끼기 어려운 캐릭터인 셈이다. 그 외의 등장인물도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영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없고, 경찰은 매번 뒷북을 칠 정도로 무능하고, 조폭들도 한국영화 클리셰에 충실하다.
만약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나 반전이 강조될 수 있었다면 각 캐릭터의 문제는 덜 주목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호령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순간부터 캐릭터 구축 이슈는 역으로 강조된다. 공감하거나 이입할 여지 자체가 없는 캐릭터만 남아 버리니 그들의 결점이 부각되는 것. 그 결과 모두가 문영을 찾기 위해 열심히 달리지만, 왜 달리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건, 플롯, 캐릭터가 모두 제각기 따로 노는 셈이다.
액션이라는 일말의 잠재력
그나마 액션 시퀀스 두 개는 눈길을 끈다.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리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재치와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 첫 번째는 중반부 골목길 액션 시퀀스에서 좁은 건물 틈 사이로 민태의 액션을 보여주는 컷이다. 앵글이 고정되어 있고, 이에 더해 시야 자체에 한계를 두었기 때문에 활동적인 이미지가 역으로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이는 일반적인 액션 연출의 흐름이나 리듬에서 벗어나면서 순간적으로 눈길을 잡아챈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클라이맥스에서 한 번 더 등장한다. 동생을 죽인 진짜 범인을 알게 된 민태는 창모를 찾아가고, 수산시장과 횟집에서 일 대 다의 구도로 창모의 부하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이때 민태가 싸우는 모습을 횟집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앞선 장면과 유사한 효과를, 더 증폭시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앵글은 고정된 가운데, 창문 아래쪽과 중앙부는 여러 도구 때문에 가려져 있다. 시야에 한계를 설정해서 인물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보여주지 않도록 건물 사이 틈과 같은 장치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 덕분에 민태의 액션은 역동성이 유달리 부각되고, 복수에 목마른 그의 심경도 더 거칠게 표출될 수 있다.
이러한 장점만 놓고 보면 <브로큰>에서도 나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엿볼 수는 있다. 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는 액션 연출만으로는 이미 파편화된 사건, 플롯, 캐릭터를 한 데 묶을 수 없다. 그 결과 <브로큰>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힘든 미완성 복수극으로 막을 내린다. 원래 제목이 <야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건 중심의 이야기를 무리하게 인물 중심으로 재포장하다가 벌어진 참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Dreadful 끔찍한
한 순간의 재치 외에는 다 따로 노는 파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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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덤 프로젝트 / The Adam Project, 2022
갑작스러운 "라이언 레이놀즈"의 휴식 선언은 놀라우면서도, 한 편으로 납득이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에도 <킬러의 보디가드 2>와 <프리 가이>, 그리고 <레드 노티스>까지 3편의 영화와 <크루즈 패밀리: 뉴에이지>의 더빙까지 했으니까요. (이 중 <프리 가이>와 <레드 노티스>는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다)
근데, 이런 발언과 달리 그는 여전히 작업 중이었나 봅니다.
<데드풀 3>의 작업 중에도 이번 3월 11일에 "넷플릭스"에 공개한 <애덤 프로젝트>는 <프리 가이>의 "숀 레비"감독과 함께한 2번째 작품인데요.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영화 <애덤 프로젝트>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2050년,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조종사는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을 치는데요.
그리고, 2022년 학교에서 한 아이는 얻어맞고 정학을 당하고는 집에 홀로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집 앞에 있는 숲에서 아까 그 피를 흘리는 조종사가 아이의 눈앞에 나타나는데요.
당황도 잠시, 조종사는 익숙한 듯이 집안을 찾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와 조종사 모두 "애덤"이기 때문인데...'또드풀'이 나선다!
1. 다른 메뉴도 잘하는 분께서...
앞서 말했듯이 남들은 1년에 1편 개봉하기도 어려운데도 "코로나19"에 그것도 <킬러의 보디가드 2>와 <프리 가이>, <레드 노티스>, 그리고 <크루즈 패밀리: 뉴에이지>의 더빙까지 더 바쁘게 보낸 "라이언 레이놀즈"입니다.
근데, 이런 바쁜 활동과 다르게 관객들이 그에게 느껴는 피로도는 분명히 존재하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나왔던 영화 모두가 하나같이 똑같은 캐릭터들인데, 사실 이런 문제점은 <데드풀2016>이후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는바입니다.이제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로 읽힌다.
물론, 하나같이 다른 제목들과 다른 내용인데도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유사함은 지울 수가 없는데요. (하다못해 "피카츄"마저 "데드풀"로 만들었으니...)
이런 이유에는 조심스레, 연기를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팬들이 있겠지만 사실 그는 연기를 꽤 하는 배우입니다.
잘생긴 얼굴에 맞게 "로맨틱 코미디"도 잘하나, <베리드2010>만봐도 그의 연기력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실 겁니다. (그래서, 살짝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2. 어딜 가도, 데드풀이구나!
그럼에도, <애덤 프로젝트>를 기대한 이유에는 이를 연출한 감독이 <프리 가이>의 "숀 레비"감독이기 때문입니다.
<데드풀>과 <킬러의 보디가드>를 제외하고는 성공적이었던 결과물임을 생각하면, 이들의 <애덤 프로젝트>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결과부터 말하면 익숙한 "데드풀(?)"이 나온 오락 영화이었습니다.다양한 '데드풀(?)'들이?
앞서 말했듯이 영화 <애덤 프로젝트>는 2050년과 2022년의 "애덤"이 사로 과거에서 만나 미래를 구하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여기서, 보이는 "라이언 레이놀즈"는 여전히 "데드풀(?)"인데 재밌는 건 이를 연기한 아역배우의 연기입니다.
극 중 똑같은 "애덤"이기에 똑같은 모습은 곧 똑같은 연기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 점에서 그를 연기한 '알렉스 말라리 주니어'의 연기력은 '추후 어떤 영화에 나올지?'를 충분히 기대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마크 러팔로"가 아빠이니까, 피는 못 속이겠죠)3. 그래도, 아는 맛은 포기 못하지!
무엇보다 <애덤 프로젝트>는 "시간 여행"을 다룬 작품입니다.
여기에 이야기를 점점 듣다 보면, "가족"과 연관된 작품으로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극 중 아빠를 잃은 "애덤"을 시작으로 아내를 잃은 "애덤", 남편을 잃은 "아내", 그리고 일이 바빠서 가족을 잊은 "아빠"까지 이 모든 결핍들을 "시간 여행"으로 해결하는 모습이 소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생각 외로 흥미진진합니다.복잡함은 잠시, 미뤄두고...
흔히, 작품에서 "시간 여행"을 사용하면 번복하지 말아야 하는 규칙들로 극의 긴장감을 불러 모으지만 어려움을 호소하게 만듭니다.
그런 점에서 <애덤 프로젝트>는 어려움은 미뤄둔 채,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극 중 22년의 "애덤"이 50년의 "애덤"에게 "멀티버스"의 개념을 말하지만, "영화를 너무 봤구나"로 정리하는데요.
이외에도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연상시키는 "자기봉", <터미네이터> 등의 언급은 "데드풀(?)'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유머까지 가벼이 즐기는 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결국, "숀 레비"는 <데드풀 3>의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 재밌는 건 <프리 가이>를 "디즈니"가 만들어둔 <데드풀 3>의 가이드라인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그럴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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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능을 치려면> 리뷰
감독] 김선빈
시놉시스] 좀비시대에도 어김없이 다가온 수능날, 오합지졸 여고생들이 직접 운전을 해서 수능장으로 간다,
#스포일러 주의#
어느 누가 1년을 기분 좋게 더 수험생활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수능을 치려면은 좀비가 창궐하는 대한민국의 수능 날 아침을 보여주고 있다. 밤에만 활동하는 좀비들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수능은 정상적으로 치뤄지고 아이들은 좀비를 걱정하면서 수능장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밤에만 등장한다는 설정은 금방 영화 속에서 깨지고, 낮에도 좀비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승합차로 이동하던 수험생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이를 저지하려던 기사님이 좀비에게 당하고, 승합차에 남은 사람은 고3 수험생 4명이다. 이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경찰을 부른다던지, 구해줄 때까지 기다린다던지와 같은 상식적인 방법이 아닌 수능을 반드시 치뤄야 한다는 ‘신념’으로 직접 승합차를 몰고 수능장으로 향한다.
수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과연 이 상황에 놓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자연스럽게 상상을 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수능장으로 향하는 길에 좀비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이는 없고, 경찰은 언제 도착할지 모르고 수능을 보지 않으면 1년이라는 수험생활을 더 해야한다는 그 절망감 속에서 수험생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직접 운전을 해서 수험장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능을 본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아이들이 참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했네 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 내가 그 상황이고 다른 사람들은 수능을 보는 데 나만 좀비 때문에 덩그러니 도로 한 가운데에 남아 수능을 못본다고 생각하면 무슨 수를 쓰든 수능을 보러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그만큼 영화 수능을 치려면은 고3 수험생들의 절박한 마음을 잘 풀어내고 있었다.
과연 고3 수험생만 맹목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영화 수능을 치려면에서 결국 5명의 아이들은 직접 운전을 하고 수험장 안으로 들어간다. 수능을 치르기 위해 의도치 않은 무면허 운전이라는 범법행위를 하고 온 것이다. 이를 두고 수능에 ‘미친’ 너무나도 맹목적인 행동이라고 이들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수능을 치르면은 영화 말미 좀비들이 수능장으로 습격하는 와중에도 감독관들이 그 모습을 블라인드로 애써 가리며 고개를 돌리면 부정행위이니 시험에 집중하라고 말을 한다. 이 장면을 통해 맹목적인 것은 고3 수험생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부정행위라며 학생들을 다그치고, 주위 환경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블라인드를 내리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학생들을 ‘수능’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주변 환경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맹목적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결국 차를 운전해서 온 ‘유리’는 이 상황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벌떡 일어서지만 그녀를 향해 감독관은 자리에 앉지 않으면 부정행위로 퇴실 조치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이 장면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우리 사회의 맹목적인 학구열에 대해 넌지시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영화 수능을 치려면은 좀비 호러 장르와 고3 수험생의 웃픈 무면허 운전이라는 코미디가 합쳐져서 ‘수능’제도에 대한 맹목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었다. 호러와 코미디를 통해 문제점을 통쾌하게 찔러주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상영시간표>
2023. 9. 16.(토) 19:30 롯데시네마 은평 3관
2023. 9. 19.(화) 20:00 롯데시네마 은평 7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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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결말포함]9.79점의 첫사랑을 자식들이 대신 이루어 준다면 설레임주의!!
#로맨스영화#조인성#첫라랑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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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던전 앤 드래곤 : 도적들의 명예> 액션 30초 예고편
액션, 마법, 변신, 팀플레이까지..!!! 바쁘다 바빠 도적생활..; 일단 한 잔 하고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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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휴가> 메인 예고편
해고 5년차, 천막농성 1882일째
재복은 노조가 정리해고무효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자 열흘 간 집으로 휴가를 떠나온다.
오랜만에 가족들도 챙기고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며
잊고 있던 워킹&쿠킹 홀리데이로 일상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휴가의 끝이 보일 즈음 재복의 두 딸은,
아빠가 농성장으로 돌아가지 않길 바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