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3-02-23 23:07:50
당신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들릴 음악의 세계로.
영화 <타르> 리뷰
TAR는 주인공의 성인 타르(TAR)이자 쥐(RAT)와 예술(ART)의 애너그램이며 이 영화의 정체성이다. 어떤 부분에서 이 알파벳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 점을 주목하며 보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다큐처럼 느껴지는 영화의 구성은 가상의 인물을 통해 실제인 것처럼 한 사람의 성공과 몰락을 생생하게 담아내어 그 강렬한 의미를 더한다. 주변 인물의 감정이 입체적이지 않아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로지 '리디아 타르'의 심리상태를 영화의 화면에 드러내 밀도 깊은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158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가득 채우는 연기가 강렬하다. 열정을 넘어선 광기를 그린 영화 '타르'는 2월 22일 개봉했다.
상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지휘자 리디아 타르.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터라 강박증과 신경 쇠약을 달고 산다. 그만큼 주변에 끼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가 되어 평생 꿈꿔왔던 과업을 행한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있게 되며 겪게 되는 심리적인 문제는 그녀를 파괴할 만큼 큰 파도를 밀고 들어와 내부와 외부를 장악한다. 마에스트로라는 껍데기 속에 가득 메워진 알맹이의 정체를 밝힐 음악의 시작을 여는 하나의 손짓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차별이 만연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성공한 타르(TAR)는 편견에서 살아남아 그 자체의 실력을 인정받는다. (ART)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떠한 인식보다는 의무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 그녀를 뒤덮는다. (R 전부 바뀌지 않지만 조금씩 바뀌는 세상 속에 안주하며 자아도취적인 폭력성을 주변에 내뿜는다. 욕망으로 점철된 가치관과 신념은 주변을 상처 입힌다. 예술로 포장했던 모순이 자신에게 불어닥치는 순간을 예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말러 교향곡 5번의 비극처럼 급격한 상황 변화로 인해 왜곡되는 현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정말 제목처럼 타오르기도 하며 예술적이기도 하며 쥐새끼 같기도 한 인간 군상이 모두 드러난다.
자기도취적인 동시에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폭력성은 시간이 지나며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타르의 현실과 그녀가 비판했던 캔슬컬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여있었다. 얄팍한 정의감을 드러내는 현대 사회의 모순과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지점에 놓인 사람이라도 언제든지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예술가의 삶과 예술은 나누어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부합하는 지점에 도달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관객에게 달렸다.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만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사람으로서가 아닌 음악으로 마주할 때, 느끼는 위대함은 어쩌면 불편한 것 투성이의 것들이다. 지나칠 수 없는 메시지는 저마다의 해석이 담겨있다고 해도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 묘하면서도 모순적인 이 딜레마는 영영 이해하지 못할 말들처럼 보이지만 그 한정적인 한계는 인생의 단면에 불가하다. 어떠한 선입견에 갇혀 그 안의 것을 보지 못하면 그 본질 또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모순과 딜레마를 넘어서 그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녀의 마지막 길로가 밝을지, 어둠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연주가 시작된 순간부터 목적지가 정해진 여행은 시작된다. 그렇게 시간을 다루고 있는 이들은 '사랑'을 종점으로 4분을 연주한다. 감정에 대한 해석 순환 속에서도 매력을 느끼고 그 지점에 도달하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계속해서 스며드는 따뜻함은 지휘와 맞물린다. 무엇은 지휘하는가에서 시작하는 음악의 해석은 열정적인 모습을 영혼에 담아낸다. 그렇게 편견을 소거한 음악은 위대함 그 자체이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음악의 광기는 자신에 의해 파괴되지만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음악 자체의 위대함으로 표현한다. 감정, 음악, 그 이상의 것들은 타오르는 열정만큼이나 타르에게 전부다. 설령 단조로운 음표라 할지라도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연주하듯 펼쳐지는 영화는 이름처럼 악보 속에 남아 타올라 꺼진다. 설령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음악만큼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그녀의 곁을 지킨다. 새로운 시작이라 일컫는 우주선도 몰락이라고 할 수 있다면. 차별이 만연한 클래식 음악계의 벽을 허문 최초의 여성 지휘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소식에 상당한 기대를 안고 영화를 보았다. 얼마나 진취적이고 단단한 사람의 이야기일까?라는 생각으로 봤지만 그 상상을 무참히 깨버리는 소시오패스 범죄자의 몰락을 담고 있어 충격적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어려움 속에서 '최초'의 타이틀을 얻은 만큼 불합리한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지휘가라는 일은 개인의 노력에 의한 성취이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영화처럼 은연중에 기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서 다뤄왔던 '연대', '희망'과 같은 일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욕망이 그릇된 방향으로 흐를 때, 권력형 성범죄는 성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또한 영화 포스터 자체도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할 수 없는 표현을 통해 편견을 소거하여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편견'에 대한 정면돌파를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