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07 10:31:37
3월 2주 차 개봉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이번 주 개봉 예정 영화들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부터
12,000명의 여성을 구한 비밀단체 '제인스'의 실화를 다룬 영화 <콜 제인>까지.
특별한 감성과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스즈메의 문단속
Suzume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122분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하라 나노카, 마츠무라 호쿠토, 후카츠 에리 등
개봉: 2023.03.08.
배급: (주)쇼박스
시놉시스
“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스즈메’는 문을 찾아 여행 중인 청년 ‘소타’를 만난다. 그의 뒤를 쫓아 산속 폐허에서 발견한 낡은 문. ‘스즈메’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열자 마을에 재난의 위기가 닥쳐오고 가문 대대로 문 너머의 재난을 봉인하는 ‘소타’를 도와 간신히 문을 닫는다. “닫아야만 하잖아요, 여기를!” 재난을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수수께끼의 고양이 ‘다이진’이 나타나 ‘소타’를 의자로 바꿔 버리고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스즈메’는 의자가 된 ‘소타’와 함께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꿈이 아니었어”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 재난을 막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며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던 중 어릴 적 고향에 닿은 ‘스즈메’는 잊고 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CINE PICK!
<스즈메의 문단속>은 2017년 영화 <너의 이름은>으로 국내에서만 3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입니다.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스즈메'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는 내용을 담았으며,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재난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스즈메의 이야기를 몰입감 넘치게 펼쳐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21년 만에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전 세계적인 관심은 물론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터라 더욱더 기대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일본 개봉 당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중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해 국내에서의 흥행 성적 또한 기대해 볼 만한 작품입니다.
똑똑똑
Knock at the Cabin

개요: 미스터리, 스릴러 | 미국 | 100분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데이브 바티스타, 루퍼트 그린트 등
개봉: 2023.03.08.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시놉시스
휴가를 떠난 한 가족은 별장에 무단침입한 낯선 방문자들과 대치하게 된다. ‘레너드’(데이브 바티스타)와 낯선 방문자들은 세상의 종말을 막으러 왔다며, 가족 중 한 명을 희생시켜야만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는 잔혹한 선택을 하게 하는데… 가족을 살리면 인류가 멸망하고, 인류를 살리면 가족이 죽는다!
CINE PICK!
영화 <똑똑똑>은 <식스센스>, <23 아이덴티티> 등을 연출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신작으로, 인기 공포 소설 <세상 끝의 오두막>을 원작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입니다. 휴가를 떠나 별장에서 단란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화목한 가족의 일상이 불청객의 방문으로 인해 무너지는 이야기를 담아 '인류를 구할 것인가, 당장 나의 가족을 구할 것인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을 통해 공포스러운 상황을 조성한 작품입니다.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나리오와 이를 통해 전달하는 인생의 메시지가 돋보이며, <해리 포터> 시리즈의 '론' 역할로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루퍼트 그린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드랙스'로 알려진 데이브 바티스타 등이 출연해 완성도 높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위기에 처한 가족은 게이 커플과 그들에게 입양된 동양인 여자아이로 구성되어 자신들을 혐오해 온 사람들이 포함된 인류, 혹은 자신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준 가족을 택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하는 잔인한 상황 속에 놓이며 갈등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합니다.
콜 제인
Call Jane

개요: 드라마 | 영국 | 122분
감독: 필리스 나지
출연: 엘리자베스 뱅크스, 시고니 위버, 케이트 마라 등
개봉: 2023.03.08.
배급: (주)누리픽쳐스, (주)영화특별시SMC
시놉시스
1968년 시카고. 임신으로 목숨이 위험해진 ‘조이’는 긴급 임신 중절 수술 위원회에 참석하지만 남성으로만 구성된 그곳에서 임신 당사자인 ‘조이’의 의사는 무시된다. 결국, 전원 ‘반대’라는 결과에 절망한 그녀는 “임신으로 불안하다면, 제인에게 전화하세요”라는 벽보 광고에 작은 희망을 걸어보는데…
CINE PICK!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개봉하는 영화 <콜 제인>은 <캐롤>의 각본을 맡아 여성 서사의 강자로 인정받은 필리스 나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임신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조이'가 '제인스'를 만나 세상을 바꾼 변화의 불씨가 되어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인스'는 실제로 낙태가 금지되어 있었던 1960년대에 임신으로 고통받던 12,000명의 여성을 구한 비밀 단체인데요, 실화가 주는 힘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대표 우먼파워 시고니 위버, 엘리자베스 뱅크스, 운미 모사쿠, 케이트 마라가 출연해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조건 없이 서로를 돕는 여성들의 연대의식과 주체적 인물로 성장해 가는 주인공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며, 적재적소에 배치된 팝 음악이 <콜 제인>만의 희망찬 무드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대 어이가리
A Song for My Dear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20분
감독: 이창열
출연: 선동혁, 정아미, 김유미, 장태훈 등
개봉: 2023.03.08.
배급: (주)영화사 순수
시놉시스
30년 넘게 남편 ‘동혁’과 가족들을 위해 살아온 아내 ‘연희’. 국악인으로 전국을 떠돌던 ‘동혁’은 아내의 부탁에 고향에 정착하기로 한다. 행복한 전원생활도 잠시, ‘동혁’은 ‘연희’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다. “나한테는 당신밖에 없잖아. 약속해 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고, ‘동혁’은 모든 것이 자신의 탓만 같은데…
CINE PICK!
<그대 어이가리>는 30년 넘게 함께한 아내 '연희'가 불치의 병에 걸리며 일상이 무너진 남편 '동혁'의 애절한 러브 스토리를 그린 작품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노부부의 이야기로 공감을 자극하는 <그대 어이가리>는 개봉에 앞서 해외 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현재까지 전 세계 51관왕을 기록해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요, 특히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여우주연상, 촬영상 등 이야기와 연출, 음악 모든 면에서 수상한 만큼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입니다. 삶과 죽음, 부부관계에 대한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스토리 속 '창(唱)'과 전통 장례 문화는 <그대 어이가리>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적 미와 짙은 '한(恨)'의 정서를 담았으며, 약 3개월 동안 주 2회씩 빠짐없이 만나며 연기적인 디테일을 완성한 주연배우들의 열연이 관객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6번 칸
Compartment No.6

개요: 멜로/로맨스, 드라마 | 핀란드, 독일, 에스토니아, 러시아 연방 | 107분
감독: 유호 쿠오스마넨
출연: 세이디 하를라, 유리 보리소프 등
개봉: 2023.03.08.
배급: 싸이더스
시놉시스
고대 암각화를 보러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핀란드 유학생 '라우라'. 그녀는 무르만스크행 기차 ‘6번 칸’에서 낯설고 무례한 남자 '료하'와 만나게 된다. 거리를 두려는 여자와 가까워지려는 남자.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한 변화를 겪게 되고… 이 여행의 끝에 불완전한 그들은 어떻게 될까?
CINE PICK!
영화 <6번 칸>은 핀란드 대표 작가 로사 릭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을 연출한 유호 쿠오스마넨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입니다. 영화는 90년대를 배경으로 무르만스크행 기차의 '6번 칸'에 우연히 함께 하게 된 두 남녀가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변해가는 감정과 관계를 그렸는데요, 제74회 칸영화제에서 10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휴대폰, SNS, 구글 지도도 없는 90년대 아날로그 여행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디지털 형식이 아닌 필름 촬영 방식을 고수했고, 조명의 경우 오래된 조명이나 현재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옛 조명들을 활용했다고 하며, 주인공 '라우라'의 비디오카메라, 워크맨, 공중전화를 이용한 연인과의 전화 통화까지, 하나하나 90년대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색다른 감성의 볼거리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 주는 특별한 감성을 간직한 작품들이 여럿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정말 고민이 되는데요, 고민조차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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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적 토대 위에 구축한 새로운 세계, <언컷 젬스>
1. 들어가며
조쉬 사프디와 베니 사프디는 근래 들어 가장 주목받는 뉴욕 출신의 영화 연출가들이다. 사프디 형제의 주요 작품들에선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프디 형제는 사실적 질료를 가공하여 영화를 만든다. 각본에 자전적인 경험을 반영하기도 하고, 현장감을 위해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이들의 영화에선 존 카사베츠나 다르덴 형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와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프디 형제는 이처럼 사실주의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기초를 교란하는 형식주의적인 스타일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바로 이 점이 이들의 영화를 전형적이지 않게 만들어준다.
형제의 공동 연출작 중에서는 2014년 개봉한 <헤븐 노우즈 왓(Heaven Knows What)>부터 본격적으로 전자 음악의 과도한 배치, 다채로운 질감의 조명을 활용하는 미장센 등 특유의 접근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굿타임(Good Time)>(2017)의 놀이 공원 시퀀스, 극 전개를 보조하는 전자 음악의 활용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넷플릭스(Netflix)가 배급을 맡은 <언컷 젬스(Uncut Gems)>(2019)는 숱한 단편과 굵직한 장편 등을 통해 쌓아 온 사프디 형제의 연출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이 글은 <언컷 젬스>에서 독특하게 드러나는 사프디 형제의 접근법을 관찰하려는 시도이다. <언컷 젬스>는 사실주의적인 토대에 기초한 영화다. 각본, 촬영 장소 등을 살피면 현실적 질료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걸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사프디 형제는 이러한 영화 요소들을 전형적인 방법으로 활용하지 않고, 어딘가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에 활용한다. 이들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을 넘어 현실과 허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영화적 현실을 창조해냈다. 이 글은 그러한 작업들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피는 시도이다.
2. <언컷 젬스>의 사실적 영화 요소
우선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형제의 자전적 요소를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사프디 형제는 유대계 혈통이고, 뉴욕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들의 아버지는 보석상 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경력이 있다. 사프디 형제는 영화의 주인공인 뉴욕에 몸담은 유대인 보석상 하워드 래트너 역에 아담 샌들러를 내세운다. 자전적 경험을 각본에 녹여냈다는 점은 이 영화를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실화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이 영화처럼 자전적 요소를 살려 영화적 소재로 활용하는 방식은 사실성을 강화하는 접근법이다.
<언컷 젬스>에서 하워드 역을 맡은 아담 샌들러. 그는 실제로도 유대인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미국의 유명 배우인 아담 샌들러는 여러 비전문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 하워드의 내연녀 역의 줄리아 폭스(Julia Fox)는 <언컷 젬스>가 첫 연기 데뷔작이며, 극 중 이름 줄리아는 실제 배우의 본명이기도 하다. 하워드가 운영하는 보석상 직원 중에 여시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배역은 실제 주얼리 관련업에 종사했던 막수드 아가자니(Maksud Agadjani)가 연기한다. 실제 삶의 경험을 반영할 수 있는 비전문 배우의 기용은 사프디 형제의 영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 영화에서 전문 배우와 비전문 배우가 주고받는 호흡으로 빚어내는 전개 양상은 극을 효과적으로 지탱하기도 한다.
한편 사프디 형제는 현장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형제가 각각 대학 시절부터 연출한 단편부터, 공동 장편 데뷔작인 <아빠의 천국(Daddy Longlegs)>(2009) 등을 거쳐 <언컷 젬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현실 속 뉴욕을 무대로 삼아 영화를 만들어냈다. 현장 촬영이 불러오는 효과는 익히 알려져 있다. 생생한 현장감을 스크린으로 구현할 수 있고, 실제 삶의 단면과 맞닿은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도 적합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도 하다. <언컷 젬스>는 정밀하게 세트로 구현된 하워드의 보석 가게를 제외하면, 전부 현장 로케이션을 바탕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그마저도 형제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실제 점포를 찾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세트를 활용하게 되었다.
3. <언컷 젬스>의 세계: 사실적 토대 위에 구축한 새로운 세계
<언컷 젬스>에서 사프디 형제가 구축한 세계는 현실을 재료로 하지만, 온전한 현실 세계가 재현되는 곳이 아닌, 새로운 개념이 정립되는 공간이다. 영화에서 중계되는 전 NBA 선수 케빈 가넷(Kevin Garnett)의 농구 경기는 사프디 형제가 지은 각본이나 촬영한 필름들과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 경기가 영화에 사용되면서 서사가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스크린 외부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과거의 일(실제 농구 경기)이 스크린 내부에서 현존하는 영화적 세계와 호응하게 된다. 즉, 이런 연출은 사프디 형제가 실험적인 시도에 목말라 있다는 걸 드러내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가넷은 이 영화에서 본인 역을 맡아 연기한다. 즉, 영화의 배역을 맡아 본인을 연기하는 가넷과 실제 선수로서의 가넷, 중계 속의 가넷이 공존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기용된 배우는 가넷 외에도 몇 명 더 있다. 영화에는 미국의 알앤비(R&B) 가수 위켄드(The Weeknd)도 본인 역으로 출연한다. 위켄드 역시 극 중 DSLR 카메라에 찍힌 사진 속의 위켄드, 자신을 연기하는 위켄드와 실제 가수 위켄드 사이를 기묘하게 유영하는 존재다. 래퍼 캐시 아웃(Ca$h Out)도 본인을 연기하며 하워드의 가게에서 보석류를 구매하고자 한다. 한편 하워드가 줄리아와 살던 아파트에 아들과 함께 찾아가는 신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드러난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아들을 데리고 하워드는 옆집을 찾아가 화장실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때 하워드가 아들에게 옆집 이웃을 왕년에 유명한 작품에 출연했던 코미디 배우라고 소개한다. 출연진 정보에는 33F의 이웃으로만 나오는, 존 아모스(John Amos)라는 배우는 실제로 하워드가 영화에서 언급한 작품에 출연했다.[1] 존 아모스도 본인을 연기한 셈이고, 하워드의 대사는 허구적인 각본이 실제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가 이렇게 독특한 형태로 허물어진다.
<언컷 젬스>에서 본인 역을 맡은 농구 선수 케빈 가넷
이제 사프디 형제가 뉴욕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삼는다는 사실이 영화 내적으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록 도입부에 ‘2012년의 뉴욕’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명시하는 문구가 삽입되기는 하지만, 영화 자체는 뉴욕을 배경으로 삼는 수많은 영화들(<스파이더맨> 시리즈, 우디 앨런의 작품이나 각종 로맨스 영화 등)과 비교했을 때 공간 특성을 전혀 살리지 않는다. <언컷 젬스>에선 맨해튼(Manhattan)의 다이아몬드 지구(Diamond District)가 뉴욕이라는 장소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는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접하는 관객은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서는 파악하기 힘든 요소들이다. 뉴욕 맨해튼에 자주 갔거나 그곳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관객은 논외로 하자.
결국, 피상적으로는 사프디 형제의 뉴욕이 현실을 옮겨놓은 듯한 현장감 있는 장소로 보일 수 있겠으나, 이들 영화의 뉴욕은 극도의 사실성 재현을 위한 공간보다는 극적 효과를 불러오는 서사적 도구로서 작용한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 있다. 게다가 잦은 비전문 배우의 기용 역시 얼핏 보기엔 영화를 통한 사실주의적 재현을 위한 노력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영화 속 비전문 배우는 앞서 언급했듯 대개 자신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연기에 활용할 뿐이지 궁극적으로는 각본에 구현된 캐릭터를 표현하는 작업을 수행 중인 셈이다. 이는 사프디 형제가 이전에 연출했던 <헤븐 노우즈 왓>의 홈즈(아리엘 홈즈)도, <굿타임>의 닉(베니 사프디)의 치료 의사도, <언컷 젬스>의 아가자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언컷 젬스> 속 비전문 배우의 기용(특히 본인을 연기하게 하는 방식) 및 현실을 스크린에 재소환하는 방식을 다른 영화와 유사한 전형적인 접근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언컷 젬스>의 가넷과 위켄드를 유사한 특성을 가진 다른 사람―예를 들어,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나 알앤비 가수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등―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극의 흐름이 달라지거나 영화를 지탱하는 요소가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결국, 저들은 본인을 연기할지라도, 영화적 허구에 구속된 캐릭터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2] 그런데 허구의 인물을 연기한다고 해도 자기 자신이 본인을 연기한다는―일종의 정체성에 관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넷의 실제 경기나 카메라에 찍힌 위켄드의 모습은 허구적 특성을 살려 연기하는 인물과 같은 영화에서 공존한다. 즉, 영화에 현존하는 인물들은 영화를 통한 현실의 사실적 재현의 주체도 아니고 허구적으로 표현된 내러티브에 종속된 도구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발현된다.
4. 나가며
현실과 허구라는 이분법으로는 <언컷 젬스> 속 등장인물이 자리 잡은 뉴욕의 특성을 규정할 수 없다. 즉, 이런 모호한 인물들이 유영하는 사프디 형제의 뒤틀린 뉴욕은 전통적인 유형으로 범주화하기엔 상당히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사프디 형제의 뉴욕은 뉴욕이지만 뉴욕의 특성이라고는 딱히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영화 서사를 위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가넷이나 위켄드는 본인을 연기하는데, 이는 실제 현실에서의 본인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지만, 이들이 각각 중계화면에서 경기를 뛰는 모습과 셀러브리티(Celebrity)로서 카메라에 찍힌 모습은 그 자체로 이들의 현실성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사프디 형제는 영화 속 현실에 종종 허구적 요소를 첨가하여 스크린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전략을 보여준다. 단편 <검은 풍선(The Black Balloon)>(2012)에서 자의로 움직이는 풍선이 그러하고, <헤븐 노우즈 왓>에서 일리야(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던진 휴대폰이 폭죽이 되어 터지는 쇼트 편집을 예로 들 수 있다. <언컷 젬스>는 단순히 현실에 허구를 더하는 시도를 넘어선다. 사실적 요소들에 충실하고, 현실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영화적으로 표현되는 것들은 현실과 허구를 모두 점유하는 기이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사프디 형제는 활발히 작품 활동에 전념하는 재능 넘치는 젊은(두 사람 모두 아직 삼십 대 중반이다) 영화 연출자들이기 때문에, 추후 제작될 영화들에서 <언컷 젬스>의 독특한 접근을 어떤 방식으로 변주해나갈지 기대가 많이 된다. 이들의 영화 세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언컷 젬스>에 출연한 배우들의 모습. 좌측부터 줄리아 폭스, 케빈 가넷, 아담 샌들러, 위켄드
[1] 극 중 하워드는 코미디 영화 <구혼 작전(Coming To America)>(1988)과 텔레비전 시트콤 <굿 타임스(Good Times)>(1974-1979)를 언급한다.
[2]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라. 오몽(J), 베르갈라(A), 마리(M), 베르네(M), 『영화미학』, 이용주 옮김, 동문선, 2003, pp.89-90.
사진 출처: IMDb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드플레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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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는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할 수 있는가
6★/10★
자기만의 방.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누구도 돌볼 필요 없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가족과 함께 사는 여성들이 여간해서는 갖기 어려운 공간. 〈다섯 번째 방〉은 카메라를 든 딸이 자기만의 방을 찾아 나서는 엄마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여성이 집, 공간, 가족과 맺는 관계를 위태로울 정도로 솔직한 자기/가족 고백과 함께 드러내 보인다.
딸(감독)은 조부모 때부터 50년간 산 2층 주택에서 자랐다. 엄마가 할머니의 양보로 집에서 가장 넓은 안방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빠가 사업이 망한 후 일용직으로 근근이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엄마가 집에서 유일하게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방에서 안방으로 옮긴 엄마는 자기만의 방을 얻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엄마는 집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사노동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다른 많은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집에서 가사노동은 분담되지 않고 아빠와 할머니가 엄마에게 ‘도움’을 주는 일로 여겨진다. 프리랜서 상담가, 강사로 일하는 엄마는 수시로 드나드는 가족 때문에 업무를 준비할 때조차 일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다.
엄마는 이 집에서 수십 년을 살았는데도 늘 ‘얹혀사는 사람’, ‘빌붙어 사는 사람’이라 느꼈다. 집의 주인이자 (시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갖지 못했다. 할머니 명의로 된 집이 언젠가는 부부의 집이 되리라는 믿음이 엄마를 버티게 한다. 엄마에게 집의 상속은 단순히 재산의 문제가 아니라 주인 됨과 가족의 일원이라는 감각, 나아가 오랜 시간 시부모를 모시고 가족을 부양한 데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그러나 이 믿음이 무너진다. 감독의 고모이자 엄마의 시누이 중 한 명이 할머니에게 집의 상속 지분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현재 사는 집에서는 평생 ‘나’로서 존재하지 못할 거라는 엄마의 불안이 증폭된다.*
자기만의 방을 향한 엄마의 여정이 본격화된다. 모든 가족이 쉬이 오가던 안방 대신 2층으로 올라가 작업실을 꾸리는 것. 그러나 층의 분리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아빠는 이전처럼 수시로 엄마의 작업실에 드나들고 엄마의 답답함도 점점 커진다. 할머니가 가꾸는 2층 텃밭 한편에 허브를 심는 것조차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엄마에게서 결혼 후 쭉 살아온 집이라는 공간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엄마는 어느 순간 판단을 내린다. 이 집에서는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없다고.
1층 구석의 첫 번째 방, 경제력을 획득한 이후의 두 번째 방(안방), 작업실로 꾸민 세 번째 방(2층 방)에 이어 빌라로 이사해 네 번째 방을 마련하는 엄마. 영화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엄마의 짐에 여러 살림살이까지 포함된 것을 보면 엄마가 단순히 상담실만 꾸리기 위해 빌라로 온 것 같지는 않다. 때때로 폭력적으로 구는 아빠를 달래고 중재하는 일에 지친 엄마는 직업 활동뿐 아니라 가족을 돌보고 중재하는 데 소모된 자기감정을 지키기 위해서도 네 번째 방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자기만의 방으로서 다섯 번째 방이 제시되지 않는 이유는 다섯 번째 방은 앞으로 엄마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방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서사는 오래됐지만 해결되지는 않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화두일 공간과 정체성의 문제를 질문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허나 더 흥미로웠던 건 영화에서 카메라가 맡은 역할이었다. 영화의 빌런은 명백하다. 물질적, 감정적으로 엄마에게만 기대면서도 때때로 폭력적으로 굴고 엄마의 직업적, 인격적 경계를 수시로 침범하는 아빠. 그런 아빠의 모습을 딸인 감독이 담아낸다. 집의 상속 지분을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고모에게도 물려준다고 선언하는 할머니에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엄마, 장인어른의 장례식장에서 만취해 다른 가족과 다툼을 벌이는 아빠를 다그치는 엄마, 가족회의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이 아빠에게 그의 폭력적인 모습을 성토하는 순간 등등에 감독과 카메라는 함께 존재한다. 그가 카메라를 든 감독인 동시에 가족의 딸이기 때문이다.
이때 카메라는 수동적, 객관적 관찰자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딸과 카메라는 하나가 되어 기록하는 동시에 개입한다. 딸/카메라는 엄마를 응원하지만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하기는 어렵다. 영화에는 거칠게 행동하는 아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공개하는 일에 대한 딸/카메라의 고민이 묻은 장면이 종종 나온다. 특히 인상적인 건 장례식장에서 엄마와 말다툼하는 아빠의 모습을 찍은 촬영본을 아빠에게 직접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빠는 그 장면을 보며 멋쩍게 웃으며 ‘네 영화에서 난 항상 악당이다’라고 말한다. 딸/카메라가 아빠에게 객관적 성찰의 계기를 주는 것이다. 딸/카메라에 영향받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다음 방을 찾아 나서는 엄마의 여정 매 단계에 딸/카메라가 함께한다는 데서 가족에게 거리감을 두려는 엄마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을 거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요컨대 딸/카메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증폭하고 아빠에게 성찰을 촉구하며, 엄마가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촉진한다. ‘관찰하기만 하는 카메라’가 아닌, 카메라가 행위자 역할을 한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이처럼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서사의 동력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카메라의 역할과 능력에 관한 유의미한 참조점이 되어줄 영화다.
*고모의 생각과 입장도 궁금하다. 엄마가 집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믿는 데에는 남편이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세 딸 중 한 명이 부모에게 집에 대한 권리 중 일부(25%)를 요구한 것이 과연 그렇게 잘못이기만 할까 싶었다. 가부장적 가족관계, 상속 관계에서의 을들의 부딪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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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 휴가는 넷플릭스로!
공포, 스릴러 영화로 가득했던 넷플릭스 공개작! 다들 보셨나요?
저는 집에서 넷플릭스 공포 영화를 보며 피서를 즐겼답니다!
이번 8월 공개작은 7월 공개작에 비해 좀 더 다양한 장르로 돌아왔는데요.
이번엔 어떤 영화가 공개될지, 함께 보실까요?
1. 애프터매스 - 피터 윈더 (2021)
공포/스릴러 ㅣ114분 ㅣ 미국 ㅣ청소년 관람불가
21.08.04 공개 예정
"관계 회복을 위해 환경을 바꾸려는 젊은 부부가 저렴하게 나온 꿈의 집에 입주하면서
벌어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 영화."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앨리스 컬렌 역 애슐리 그린 주연!
2. 더 스웜 - 쥐스트 필리포 (2020)
판타지,공포,드라마 ㅣ101분 ㅣ 프랑스 ㅣ15세 관람가
21.08.06 공개 예정
" 식용 메뚜기 사육을 시작한 싱글맘 비르지니.
기대만큼 번식은 되지 않던 중에 메뚜기가 피에 광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 시체스 영화제에서, 스페셜 배심원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초 자연적 현상을 다룬 이야기!
3. 키싱 부스 3 - 빈스 마르셀로 (2021)
멜로/로맨스, 코미디 ㅣ113분 ㅣ 미국 ㅣ15세 관람가
21.08.11 공개 예정
"절친이 있는 버클리? 아님 남친이 있는 하버드?
둘 중 어디에 입학할지 못 정한 엘. 역대급 여름을 위한 버킷 리스트부터 세운다.
근데 구 썸남의 등장으로 묘해진 이 분위기, 어쩔거야?"
★ 많은 사랑을 받은 키싱 부스 시리즈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한다!
4. 베킷 - 페르난도 치토 필로 마리노 (2021)
액션,드라마,스릴러 ㅣ108분 ㅣ 이탈리아,브라질,그리스,미국 ㅣ15세 관람가
21.08.13 공개 예정
"그리스에서 비극적인 사고를 겪은 미국인 관광객.
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암살의 표적이 된다.
남자를 조여오는 정치적 음모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답과 생존을 향한 필사의 도주가 시작된다."
★ <테넷>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 오스카 상을 수상한 알리시아 비칸데르,<나르코스>의 보이드 홀브룩의 만남!
5. 스위트 걸 - 브라이언 앤드류 멘도자 (2021)
액션,스릴러,드라마 ㅣ96분 ㅣ 미국 ㅣ15세 관람가
21.08.20 공개 예정
" 대형 제약사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약을 구하지 못해아내를 잃은 레이 쿠퍼가 유일한 가족인 딸을 지키고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넷플릭스 영화."
★ <아쿠아맨>의 제이슨 모모아가 가족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로 등장!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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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숨에 불안과 날숨에 초조함을
아가미 (2024)
감독: 유승원
출연: 유승원, 정가현, 이영석
상영시간: 77분
꿈을 좇아 극단 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 승원(유승원). 영화는 그런 승원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발걸음을 따라 시작된다. 그가 극단을 떠나게 된 이유는 7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복남매 가현(정가현)과의 어색한 만남을 뒤로하고, 승원은 어릴 적 아버지와 살던 시골집으로 향한다. 치직거리는 티비, 삐걱거리는 문과 낡은 소파에 둘러싸여 잠이 드는 그의 모습은 초조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와중, 불쑥 찾아온 가현과의 동거는 극의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의뭉스러운 사건들이 승원을 둘러싸고, 그의 불안감은 더더욱 고조된다. 승원의 초조한 시선을 따라가며 전개되는 영화는 그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을 함께 좇으며 그와 완전히 동화되게 만든다. 반복되는 기타 리프, 조용히 흐르지만 잦아들지 않는 물소리, 꽝꽝 얼어버린 호수가 오감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결국 승원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끝마치지 못했던 연극을 성공적으로 올린다. 연극을 마치고 선배와의 대화에서 나지막이 뱉은 ‘할 만큼 했으면 됐어요.’는 승원의 인생을 관통하는 한마디 같았다. 결국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극을 마치고 나눈 선배와의 대화, 다시 돌아간 시골집의 부서진 문고리는 안개가 걷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에게 <아가미>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꿈에 도전하는 승원과 현실에 순응하는 가현 중, 나는 가현에 가까운 인간 군상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 그럼에도 현실에 순응하고 싶지만은 않은 욕심을 못내 가지고 있는 애매한 사람. 그러나 승원과 가현 중 어떤 인물이 더욱 바람직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승원은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가현이 부러울 것이다. 반면 가현은 꿈을 좇아 몸을 내던지는 승원을 동경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탐욕하고, 끊임없이 바랄 수밖에 없다.
청년의 불안함은 결국 ‘알 수 없음’ 기인하는 듯하다. 마치 대문 앞에서 승원과 가현이 마주한 할머니처럼. 이유 없이 빤히 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청년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우리의 불안함은 당연하다. 사회에 내던져진 우리에게 모든 것은 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미지의 세계를 탐색해 나가는 것이 청년의 숙명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충분히 불안해도 괜찮다. 결국 영화 <아가미>는 이런 초조함과 불안함에 깊이 잠기지는 말자고, 숨을 골라 천천히 호흡해 보자고, 할 만큼은 해보자는 메시지를 담담하게 전달한다.
*<아가미> 언론배급사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ditor. 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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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말이가 없는 평화와 행복의 세상을 꿈꾸며
스포일러 주의!
<미키 17>은 마카롱 사업의 실패로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바람에 '니플하임'이라는 외계 행성 이주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미키 반스의 사연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미키는 무턱대고 '익스펜더블'에 지원하지만 문제는 익스펜더블이 홀로 위험한 일을 도맡고 혹시나 죽게 되면 다시 프린트되는 일상을 반복하게 만드는 매우 비인간적인 직업이었다. 결국 미키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고 무기력하게 보내지만 우연찮게 만난 나샤 배릿지와 연인이 되면서 그나마 행복감을 느끼는 삶을 이어나간다. 어느 날, 17번째로 프린트된 미키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발아래 크레바스에 빠져 땅 아래 깊은 곳으로 추락한다. 당연히 여느 때처럼 죽을 줄 알았으나 니플하임의 원주민 '크리퍼'가 미키를 구조해 주면서 가까스로 살아남게 된다. 그렇게 미키는 겨우 본부에 도착하지만 이미 18번째 미키가 프린트되어 있는 상황. 두 명의 미키가 서로 조우하고 마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한 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미키의 이야기를 그린 봉준호 감독의 SF 블랙코미디 영화다.
블랙코미디 버전 <아일랜드>로 시작해서 정치적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로 끝나는 영화. <미키 17>은 안타깝게도 봉준호 감독이 만든 여덟 편의 영화들 중 가장 아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초반에 설정을 줄줄 푸는 미키의 내레이션과 기자의 인터뷰는 대사가 너무 길고 장황해서 지루하다. 전반부에는 복제인간에 대한 윤리적 문제에 대해 다룰 것처럼 하더니 후반부에 가면 그러한 문제의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프린트된 인간도 인간인가?' '설령 합리적이라고 해도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옳은가?' '인간은 하나의 인격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자신과의 치열한 갈등을 벌인다.' 이러한 굵직굵직한 질문들이 중반부에서 멈춰버린 채 더 뻗어나가지 못하고 묻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한없이 커지는 스케일, 미키 17과 미키 18의 너무 빠른 갈등 해결, 후반으로 갈수록 정치 풍자가 더욱 강해지는 것이 원인이다.
특히 후반부의 전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대한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설정, 상황, 인물들까지 유사한 지점들이 너무나 많다. 크리처의 비슷한 디자인, 인간에게 고문을 받은 새끼 크리처, 그것에 분개하여 인간들을 향해 질주하는 크리처 종족들, 그리고 주인공의 희생으로 마무리되는 엔딩까지 놀라우리만큼 비슷하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적이 한번 있긴 했다. 바로 <옥자>다. 그러나 <옥자>는 스타일의 유사성 정도에 머물렀던 반면 <미키 17>은 표절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오마주가 지나쳐서 흥미로울 수 있는 영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니까, 마치 전반부와 후반부가 각기 다른 영화처럼 보일 만큼 이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인물들도 문제가 있다. 나샤와 티모와 카이, 마샬 부부까지 대부분의 조연 캐릭터들이 다소 기능적으로 그려진다. 티모와 카이는 순간의 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일 뿐, 영화가 어느 시점을 지나고 나면 진작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금세 존재감을 잃는다. 마샬 부부 역시 정치 풍자를 제외하면 딱히 인상적인 행적을 남기지 못한 채 허망하게 퇴장한다.
하지만 이런 치명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미키 17>을 마냥 혹평만 하기에는 좋은 지점들이 너무 많다. 첫 번째로 좋았던 점은 시의성 있는 정치 풍자다. 마샬 부부 캐릭터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키 17>은 기본적으로 하루하루 수명을 갈아가며 살아가는 평범한 노동자들을 다루는 영화다. 영화 속 미키는 문자 그대로 죽어나가면서 마치 공무원처럼 생계를 위해 복무한다. 미키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화 같은 존재다. 그리고 그런 노동자를 괴롭히는 존재는 니플하임으로 향하는 우주선을 이끄는 함장, 즉 대통령이다. 여기까지는 봉준호 감독의 세계에서 흔히 봐왔던 노동 계급과 기득권의 단순한 대립 구도로 보인다. 그런데 그런 기득권을 묘사하는 대목이 심상치 않다. 이 영화 속의 대통령은 케네스 마샬이다. 케네스는 무능하고 멍청한 데다 자신의 이익 외에 다른 것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전형적인 뚱뚱한 독재자의 모습을 갖췄다.
그런 케네스의 곁에는 일파라는 아내가 있다. 흥미로운 건 이 부부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아내가 대통령인 남편을 조종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통제한다. 심지어 대머리 부하 캐릭터가 한 명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뿔테안경을 썼다. 봉준호 감독은 특정 누군가를 모티브로 삼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이렇게 되면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노골적인 상징성 때문에 <미키 17>은 2054년이라는 근미래를 다루지만 오히려 2022년부터 현재까지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겨냥하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화는 권력자들을 대놓고 조롱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무능하고 부패한 기득권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자칫 익숙하다고 여길 수 있는 정치 풍자가 현실과 만나니 굉장히 시의적절해졌다. (물론 촬영은 2022년 12월에 끝났기 때문에 완전히 의도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와 현실이 이렇게나 절묘하게 맞닿은 건 우연을 넘어선 무언가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두 번째로 좋았던 점은 이전의 봉준호 영화들에서 볼 수 없었던 낙관주의다. 낙관주의는 자칫 영화를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비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결말부에 미키는 상상으로 추정되는 케네스와 일파의 부활을 목도한다. 다시 프린트된 케네스와 그었던 손목이 다시 회복되어 나타난 일파. 이는 마샬 부부로 대표되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언제든지 사회를 이끄는 높은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미키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이제 행복해도 괜찮아." 설령 그 불안이 현실이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이라는, 그러한 따뜻한 메시지를 뭉클하게 남기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와 비슷하면서 상반되는 결말이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에 있다. 바로 <괴물>이다. <괴물>에서 어둠 속을 응시하던 강두는 시선을 거두고 소년과 함께 밥을 먹는다. 카메라는 이러한 모습을 멀찌감치 떨어져 관찰하는 것으로 끝난다. 어둠이 잠식한 공간 속 희미한 불빛에 의존한 채 덩그러니 남겨진 매점을 비추면서. 반면에 <미키 17>은 드넓은 대지 아래 빛을 받고 있는 미키에게 카메라가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끝난다. <괴물>은 어둠이 다시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지만 <미키 17>은 낙관적이고 뭉클한 희망을 준다. 마마 크리퍼가 말하는 평화, 미키가 말하는 행복, 뻔하다면 뻔하다고 할 수 있는 주제들이지만 이제 그러한 것들이 없어진 지금과 같은 시대에 이를 외치는 것은 충분히 감동적이고 매력적이다. <미키 17>의 낙관주의는 그래서 좋았다. 부패한 권력자들이 빼앗아간 당연한 것들을 다시 되찾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미키 17>은 가장 실망스러운 봉준호 영화인 동시에 가장 사랑스러운 봉준호 영화다. 그래서 실망을 했는데도 비판을 하기 망설여진다. 2022년부터 시작된 지난 정치 과정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불안에 떨기도 하고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참담한 심정을 안은 채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때문에 우리는 평화와 행복이라는 단어와 멀어졌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단어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작금의 현실을 유쾌하게 조롱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거기서 나온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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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즈 앤 판처 최종장 - 4DX의 기술적인 혁신으로'만' 주목할만한 영화
필자는 개인적으로 4DX를 좋아하는 편이다. 1회차로는 그닥 어울리지 않지만, N차 관람을 할 때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4DX 여부에 따라 영화의 몰입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수준의 영화도 존재한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은 제작사가 철저하게 관여해서 4DX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 퀄리티가 좋은 편이다. 이번에 리뷰할 "걸즈 앤 판처 최종장"도 이런 경우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타겟층은 확실하다. 전형적인 재패니메이션 캐릭터를 내세워 오타쿠층을 노린 것과, 탱크, 전함 등 밀리터리 요소들을 이용해 일명 "밀덕"들을 노린 작품이다. 일반적인 대중에게(필자를 포함한) 매니악한 요소들은 다 모아둔데다가, 본 작품 역시 TVA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이다보니, 이미 원작을 보았고 전체적인 내용을 이미 감상 및 이해하였다는 전제하에 진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로서의 독립성은 매우 낮다고 평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필자도 기본적인 영화 스토리를 보고 "아니 3학년 한 명이 유급당하는 거 가지고 왜 전교생이 나서서 도와주는거지? 라는 의심이 들었을 정도니. 사실 애초에 전차를 이용한 가상의 무도 전차도(戦車道)가 여자로서의 소양이라 여겨지는 세계관이라는 것 부터가 일반적인 관객들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당연하다. 독립적인 서사가 아닌 원작과 전작 극장판을 봐야 이해가 간다는 점에서 본 영화의 입문 난이도와 더불어 영화로서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혹평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4DX 기술 활용의 혁신". 2017년에 나온 극장판의 경우에는 필자는 보지 않았지만 그 당시 4DX가 매우 호평이었다고 알고 있다. 왜냐하면 상술하였듯이 대부분의 4DX는 제작 후에 효과를 이식하는 방식인데, 이 작품은 철저하게 관여해서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이 영화의 본질은 4DX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스토리의 특성상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전차 전투씬이기 때문에, 훌륭한 효과들이 지속적으로 알차게 나온다. 전차포의 포격, 전차의 궤도 움직임, 심지어 비와 눈, 번개와 같은 기상 효과까지. 4DX 효과의 대부분을 경험해볼 수 있다. 아주 기본적인 설정만 알고 등장인물이 누가 누군지 모르는 필자 마저도 몰입해서 봤을 정도로 4DX 효과의 힘이 정말 강력하게 발휘된다. 영화의 자체적인 작품성이라면 몰라도 4DX 영화가 어떠한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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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보리] 리뷰:청각장애를 넘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따뜻한 영화
#나는보리#영화리뷰#청각장애인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장애로 인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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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이별을 겪는 우리가 유령이 된다면 어떨까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작년 말 개봉한 루니 마라와 케이시 애플랙 주연의 '고스트 스토리' 보셨나요?
영화 '고스트 스토리'를 딘의 인스타그램을 시작으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기형도의 '빈집'을 연관시켜 소개해드립니다.
아픈 이별을 겪는 우리는 모두 유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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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스토리 #니체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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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멸의 칼날>
귀살대 ‘탄지로’ 일행과 최강 검사 염주 ‘렌고쿠’는
어둠 속을 달리는 무한열차에서 모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예측불가능한 능력을 가진 혈귀와 목숨을 건 혈전을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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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메리 미> 메인 예고편
남의 결혼식 콘서트에서 갑자기 '슈퍼스타'랑 결혼하게 된 남자1이 있다?